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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8우리교회 여름수련회 2강자유게시판누가복음

2008우리교회 여름수련회 2강

이름 : 오용익(IP:59.3.201.241)

(2008년 우리교회 여름수련회, 강의 : 이 근호 목사)

제 2강, 호세아

이번시간에는 호세아를 강의하겠습니다. 지난시간에 잠깐 선지자에 대해서 언급을 했는데 선지자와 보통사람들의 차이가 뭐냐?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독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받은 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계시이기 때문에 선지자의 신의 개념과 인간들의 속에서 나오는 계시, 신적계시, 신에 대한 인상, ‘신은 아마 그럴 거야’라는 모든 인간이면 다 가지고 있는 신의 개념이 달라요.

이쪽(선지자) 신의 개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반면에 인간에게서 나오는 신의 개념은 반드시 주고받는 것이 있어요. 여기에는 인간의 행함이 있어요. 인간의 행함으로서 뭔가 신에게 흥정을 하려는 거죠. 시장에서 흥정할 때 어떻게 합니까?

“콩나물 좀 더 주소.”

“그만 됐습니다.”

“좀 더 주소.”

“에이 모르겠다. 더 드립니다.”

보통 인간들이 생각하는 신의 개념은 여기에 인간의 행함이 들어 있어요. 그런데 그 행함의 주체자가 바로 ‘나’잖아요. 나에게서 신에게로 가는 어떤 선물, 어떤 정성, 신에게 가져다 바치는 나의 착함, 이런 것들 가지고 나의 행함이라는 이름으로 신과 거래를 시도합니다. ‘이만하면 정성 바칠 만큼 바쳤는데 어지간하면 복 주시지요.’

이렇게 내가 생각한 행함을 가지고 신과 거래에 나서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함이라면 선지자가 알고 있는 신의 개념은 모든 것이 ‘주로부터 와서 주로 말미암아 주로 돌아간다’, 모든 것이 거저 주시는 거예요. 거저주심. 그러면 이 보통사람 가운데 누가 있느냐? 성도가 있지요.

성도는 보통 사람하고 또 달라야 되지요. 보통 사람은 자기 행함을 가지고 자기가 알고 있는 신의 개념과 흥정, 거래, ‘이만하면 정성이니까 한번 봐 달라’는 식으로 나서지만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고 선지자 쪽을 따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저주심만 여기에 남아 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제가 어제 밤 시간에 이야기 했지만 성도라 할지라도 자기 의로움, 자기 행함을 포기 못하죠. 왜? 보통사람이나 성도나 다를 것이 없잖아요. 유전자, 성격, 환경과 사회구조가 똑같으니 성도라 할지라도 안 믿는 사람하고 다를 것이 없이 똑같아요.

똑같은데 성도도 자기 행함을 포기 못하는데 보통 사람들이 자기 행함을 주장하는 반면에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거저주심만 성도 안에 남아 있어야 되지요. 따라서 진짜 하나님의 은혜가 오면 하나님의 거저주심이 거저주심만 오는 것이 아니고 여기에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하면, 빼앗김 현상이 일어납니다.

뭔가 빼앗기는 것, 몽땅 다 빼앗기는 현상이 일어나야 돼요. 성도가 보통사람으로서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깁니다. 자기의, 다른 말로 하면 자존심, 자기 잘남, 자기 우수함, 이기성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가 오면 다 빼앗깁니다. 어제도 이야기 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누가 나오지요? 탕자가 나옵니다.

탕자가 구원받았습니까, 못 받았습니까? 탕자가 구원받았지요? 구원받을 때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 작기가 갖고 있던 자기자존심이나 자기의를 다 빼앗긴 채 아버지가 주시는 거저주심이 이 탕자 속에 들어오니까 구원받은 거예요. 이 탕자가 가지고 있는 가락지는 누구 것입니까? 아버지 거죠.

탕자의 이 옷은 누구 것입니까? 아버지의 것입니다. 탕자가 먹었던 소고기국밥, 그것은 누구의 것입니까? 아버지의 것입니다. 자기 행한 것은 세상에 나가서 다 날렸잖아요. 아버지 주신 재산을 다 날렸다는 이유 때문에 탕자가 구원 못 받았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날려야 돼요. 이것이 중요한 겁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날려버려야 돼요.

어제 두 가지 층을 이야기 했습니다. 위에 있는 층은 약속의 층입니다. 이 약속의 층은 누구와 누구와 의논한 겁니까?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하고 의논해서 약속의 층이 다 이루어졌어요. 밑에는 무슨 층이라 했습니까? 생존의 층. 이것은 우리가 평생 못빠져 나갑니다. 목회 30년 하고, 50년 했다고 해도 ‘살고 싶어라’하는 이것을 어떤 인간이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냥 살기만 합니까? ‘이왕이면 잘살고 싶어라.’ 그것으로 끝입니까? ‘이왕이면 남을 지배하고 싶어라.’ 이것은 인간이 말릴 수가 없어요. 처음에 배고플 때는 ‘배부르고 싶어라’ 하지요. 그런데 배부르면 그 다음엔 뭡니까? ‘나도 뜨고 싶어라.’ 그것으로 그냥 끝나는게 아닙니다. 좀 뜨게 되면 ‘남을 삼키고 싶다. 남을 지배하고 싶다. 모든 것을 다 갖고 싶다.’

마귀가 예수님한테 그러잖아요. ‘모든 것을 너한테 다 줄게. 나를 섬겨라.’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생존 층이죠. 여기에 약속이 생존 층에 침투하는데 오늘 본문에는 다니엘이 아니고 호세아입니다. 호세아가 약속의 층을 가지고 우리 생존 층에 침투할 때 어떻게 침투하는가? 호세아 6장 1절입니다.

호세아 6:1-2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이 그림이 무슨 그림입니까? 자아, 나지요? 하나님의 약속의 층이 우리 속에 들어오면 그 나, 살고 싶고 뜨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고 남 지배하고 싶은 이것을 사정없이 찢어버립니다. 이거 며칠 만에 찢으신다고 했습니까? 이틀 만에 찢으시고 다시 살리는데 삼일이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은 뒤에 며칠 만에 부활했습니까? 삼일 만에.

그러면 예수님이 죽었다는 말은 예수님이 혼자 죽은 것이 아니고 호세아 6장 1, 2절을 완성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껴않고 죽은 거예요. 하나님이 구원코자 하는 자기사람과 함께 죽었습니다. 그것을 십자가의 대신죽음이라고 하는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었다는 말은 사실은 우리가 찢어져야 된다는 뜻입니다.

제가 아까 박박 찢은 것이 여기 이 것입니다. 아까 제가 여기에 자아 그림을 그리고 이것을 찢었어요. 이거 이틀 만에 작살났어요. 이거 죽고 저주받았지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한 이 말은 누가 해야 될 말을 대신 한 겁니까? 우리가 해야 할 말을 대신 한 거예요.

‘아버지, 나처럼 교회 잘 다니고 나처럼 기도 잘하고 나처럼 설교 잘하는데 왜 저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말을 예수님이 나 대신 내뱉은 거예요. 이거 이틀 만에 찢었습니다. 그리고 삼일 만에 다 붙입니다. 그 붙인 그림을 보여드릴게요. 이 그림입니다. 다시 결합이 되었는데 그냥 말짱한 것이 아니고 사이사이에 꿰맨 흔적이 있지요.

이렇게 찢어진 사람이 예수님의 부활에 의해서 다시 새 생명을 얻었으면 ‘나는 말짱하다’가 아니라 ‘나는 찢어져도 마땅합니다’라는 흔적을 죽을 때까지 계속 가져가야 돼요. 아, 이게 안돼요. 사람들이 ‘나는 복음에 대해서 안다. 십자가에 대해서 안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찢어진 자기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고 ‘나 예수 믿었다. 뭐? 나는 의인이다.’ 이렇게 만 날 자기 자랑을 해요.

찢어져야 할 행세를 또 하고 있다는 말이죠. 찢어진 흔적이 새사람한테는 반드시 담겨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사도바울은 ‘내 안에 십자가 흔적이 있다’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나는 죄인중의 괴수입니다.’ ‘내가 죄인중의 괴수라’는 말은 한 것은 지금 죄 용서를 못 받아서가 아니라 이미 완전하게 죄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당당하게 이야기 하는 겁니다.

‘나는 죄인중의 괴수다.’ 이미 구원받았기에.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것을 믿으시니까 지금부터 호세아를 시작하겠습니다. 호세아의 주제를 글로 써보겠습니다. 호세아는 1번, 2번 중에서 1번은 아니고 2번입니다. 1번,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될까? 이것 이다, 아니다? 이것 아닙니다. 호세아, 아모스, 모든 성경 이것 아닙니다.

2번입니다. ‘내가 어떻게 해서 구원되었나?’ 이것이 ○표입니다. 이 차이점을 아시겠습니까? 내가 어떻게 해서 구원될까?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인간은 자기 힘으로 구원 안 됩니다. 그런데 호세아는 ‘구원이 안 되는 내가 어떻게 해서 구원이 되었나?’ 이것이 호세아입니다. 그러면 정답은 어떻게 되는가? 그 정답은?

나는 평생토록 어디에 매여 삽니까? 생존 층입니다. 사람이 몸이 아파보세요. 몸이 아프면 만사가 귀찮고 오직 생각하는 것이 ‘주여, 저를 낫게 해주시면 주께 영광돌리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뒷전이고 사실은 낫고 싶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꼭 하나님의 영광을 들먹일 때 ‘나를 낫게 하시면, 나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면’ 이런 식으로 만날 자기 자신에 대해서 미련을 못 버리고 있습니다.

생존 층에 무엇이 밀려옵니까? 약속 층이 밀려오면, 침투하게 되면 ‘나는 어떻게 하면 구원될까’가 아니라 ‘나는 어떻게 하면 구원되었습니까?’ 라고 약속 층에 대한 관심사가 높아지게 됩니다. 제가 자꾸 이런 식으로 설교하고 강의하니까 어떤 분이, 특히 많은 목사들이 저에게 시비를 걸기를, 이렇게 불평하고 불만을 해요.

‘당신은 교회에서 하는 모든 행동을 다 부정해 버리는 사람이다.’ 맞습니다. 잘 알아차렸습니다. 기독교나 그 모든 것을 다 부정해 버리죠. ‘그러면 모든 것을 부정한 당신에게 내가 묻노니 그러면 성도가 앞으로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이렇게 묻고 싶은 분이 여러분 중에서도 계실 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베드로후서 3장 18절을 해답으로 제시해드리겠습니다. 다른 교인들이 들으면 기분 나쁜 소리일 수 있겠지만 우리교인들 같은 경우에는 자꾸 했던 것을 반복하고 싶은 경향이 있어요. 왜냐하면 그냥 건성으로 알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다시 다짐을 하고 또 하고 싶은데 첫째시간에 했던 이야기를 다시 반복해 드리겠습니다. 그 이유는 남이 아니니까. 물론 다른 교인도 남이 아니지만.

베드로후서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

우리 어머니는 예수님 아는 지식이 자라가고 있습니까? 이때는 보통 멘트는 아멘으로 화답이 되어야 하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뭐라고 화답을 해야 할지 장단을 잘 못 맞추네요. 늦게 오신 분들 계시기에 강의 새로 다시 합니다. 여기 베드로후서 3장 18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부합니다.

‘제발 네 행함 말고, 자기가 열심 낸 것 말고 하나님에게 받은 은혜가 있잖아요.’ ‘하나님에게 받은 은혜에 대해서 더 감사하면서 살 용의 있나?’ 그걸 묻는 거예요. ‘목사님은 모든 교회행사 다 부정해 버리고 모든 교리 다 부정해 버리고 교회에서 활동하는 모든 것을 다 거부해 버리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라고 이야기하는 사람, 그 사람 당신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 덩어리로 존재한다는 것을, 이게 내 몸이 아니고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날마다 알아가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임을 알아 가는데 방해가 있어요. 뭐가 방해냐 하면 우리는 날마다 생존 층에서 나를 내 스스로 살려내기 위한 부당한 내 노력이 내 욕망에서 쉴새없이 나옵니다. ‘목사님, 이래 사나 저래 사나 다 한평생 사는 건데 그 뭘 그렇게 따집니까?’ 이래 사나 저래 사나 한평생 사는 것이 그만이라면 은혜 받은 사람과 안받은 사람과 차이가 안나요.

천국 가는 사람은 ‘이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다’, 이게 천국 가는 사람이고 지옥 가는 사람은 ‘내가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했더니만 내가 이만큼이나 챙겼구나’라고 자꾸 자기 자신의 종교적인 행함에 대해서 의미를 부과한다는 말이죠. 그 의미를 깨고 부수기 위해서는 그것을 유발할 수 있는 요인을 공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가 하면, ‘이목사의 설교는 치는 것 밖에 모른다’고 하거든요. 세상에 구원받은 자가 좀 치임을 당하면 어때요? 이미 구원을 받았는데. ‘아직도 자기 것이 있습니까?’ 라고 묻는 그것이 치는 거예요.

“아직도 자기 것이 있습니까? 자기가 기도해서 구원받았습니까? 예수님이 기도해서 구원받았습니까?”

“주님이 기도해서 구원받았지요.”

정답은 이야기해요. 그런데 그렇게 정답을 말해도 기분 나쁘게 대답을 해요. (아주 불쾌한듯이 ‘그야 주님이 기도해서 구원받았지요!’ 그것을 왜 기쁘게 대답 못하고 기분 더럽게 대답을 하느냐? ‘그래도 내 기도도 효과 있다고’ 이것이 밑에 잠재되어 있으니까 기분이 나쁜 거예요. 내가 애쓴 것은 절대로 심지어 하나님 앞에서도 안 빼앗기려고 하는 거예요.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내가 노력했는데 그걸 왜 몽땅 빼앗기느냐’ 이 말이죠. (자아가 그려진 종이를 북북 찢으면서) 이 자아를 찢어야 됩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내 안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산다’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이것을 찢어 줘야 된다고요. 내 것이 없어야 돼요.

“그러면 목사님, 없애야 된다는 말입니까?”

“없애야 된다는 말이 아니고 내 것이 없어야 돼요.”

“없애야 된다는 말입니까?”

“내 것이 없어야 돼요.”

“그럼 누구 것이 있어야 됩니까?”

“주님의 것이 있어야 돼요.”

이것을 수 천번 이야기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것이 없어야 됩니다.”

“그러면 나는 죽을까요?”

“주님의 것으로 있으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씩씩!!”

이 씩씩, 이게 뭐예요? 참 이상해요. ‘내 것이 없어야 됩니다’라는 말을 ‘진짜 주님의 것으로 있어야 됩니다’라고 여기는 사람은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데 ‘내 것이 없어야 됩니다’라고 하니까 ‘알았어요! 씩씩!’ 자꾸 그 이야기를 기분 나쁘게 듣는다는 것은 ‘난 내 것을 포기 못 하겠다’는 뜻이에요. 특히 목사들에게 설교할 때,

“당신 교회는 없습니다.”

“내가 이 교회를 세우려고 얼마나 기도하고 설교하고 심방하고 수고를 많이 했는데 왜 내 교회가 없어?”

“그거, 당신 교회 아닙니다. 주님의 교회입니다.”

“그것은 내가 동의하죠. 씩씩!”

동의 한다고 해 놓고 화를 왜 내느냐 말이죠.

“그게 주님의 교회죠. 주님의 양떼를 내게 맡겼지요. 그런데 그 정도는 나도 압니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잘 아시네요. 잘 아시면 지금 교인들이 당신보고 나가라고 하는데 나가시죠.”

“지금 나가면 어디로 갑니까?”

“당신 것이 아니라면서?”

“그래도 내가 이 교회를 개척해서 5천명을 모았는데. 한 명 한 명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데.”

“당신 것이 아니라며?”

이것 참! 그래서 제가 되풀이 하고 또 되풀이 하는 겁니다. 사기꾼입니다. 사기꾼인데 교인들이 사기꾼을 더 좋아해요. 왜냐하면 목사의 것은 목사의 것이라고 인정을 해야 그래야 내 것은 내 것이라고 인정을 받거든요. ‘하이고, 집사님, 기도 많이 하시더니 이런 축복을 받았군요. 충성을 더 하시면 복을 더 많이 받습니다.’

이것이 남의 일 같으면 기분 안 좋아요. 내 것이라는 이유로 인해서 기분이 좋은 거예요. 그러니까 이것은 약속의 층이 침투를 안 하고 계속 생존의 층에서 해결을 보려고 여기서 그냥 머물러 있다는 말이죠. 교회는 교인들이 교회오자 마자 이것(자아를 찢어주는 일)을 해 줘야 교회입니다.

우리 자아(그 자아의 집합체인 교회)를 찢어 버려야 교회입니다. 왜 찢느냐? 찢어야 주님의 것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나는 찢어지고 또 찢어지고 그럴 때 남아 있는 것은 다 내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이고 그것이 십자가가 계속해서 우리에게 작용하고 또 작용하고 그래서 ‘주여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가 계속 나오는 거예요.

만약에 내 것이 남아 있게 되면 ‘주여 이것은 주의 은혜입니다, 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내 것을 더 크게 해 주세요’라고 뒤에 또 토를 달아요. ‘내가 주의 은혜입니다, 라는 말을 했기에 더 큰 복을 주시옵소서’라고 또 자기 것을 챙기려고 해요. 약속 층에서 생존 층으로 내려앉게 되면 바로 그런 것들이 다 엉터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계속 진도 나가 봅시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틀 만에 찢어버리고 사흘 만에 살린다’는 것이 바로 십자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며칠 만에 살아나셨어요? 예수님께서 왜 죽음과 부활사이에 삼일이라는 간격을 두셨는가 하면, 죽은 자에서 산자까지 연결하는 것은 주님께서 다리를 놔야 되지 이미 죽은 인간이 스스로 자기를 부활시키는 방법은 인간에게는 아예 없음을 십자가를 통해서 이야기해 주는 겁니다.

십자가가 작용할 때마다 우리가 느끼는 것은 뭐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봤지만 결국 그것으로는 구원이 안 됩디다’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바로 ‘저는 십자가를 믿습니다’라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저는 십자가를 믿습니다’라는 말은 ‘나는 내 힘으로 아무리 해도 이것은 안 됩니다. 주님께서 은혜 주셔야 됩디다’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십자가에요.

그러면 다른 사람이 묻지요. ‘보니 너도 좀 배운 사람이고 너도 양심도 있고 평생토록 남에게 해코지도 않았고 참하게 살아온 훌륭하고 착한 네가 네 힘으로 구원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게 호세아 1장부터 3장까지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다른 집회 같으면, 특히 서울 의존교회 같으면 연극을 합니다.

우리도 수련회니까 연극을 해 봅시다. 우란이가 좀 나와서 도와주세요. 이제부터 호세아 1장부터 3장까지의 내용을 설명하겠습니다. 저는 호세아 목사입니다. 호세아목사, 저와 우란이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란이는 어떤 타입의 남자를 좋아하느냐 하면, 평소부터 저를 안 좋아하고 우석이 타입을 좋아했습니다.

결혼을 했으면 호세아 목사인 저와 살아야 될 텐데 결혼을 해 놓고는 우석이한테 가서 게서 그만 살림을 차리고 말았어요. 이것이 1장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여자가 다른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선지자에게 일부러 결혼을 하라고 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제가 첫 시간 강의 때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강의 들으신 분들이 대답해 보세요. 이유가 뭡니까? 선지자는 뭘 독점한다? 하나님의 계시를 독점한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독점하기 때문에 남들이 이해 못할 짓을 해요.

“어이, 호세아야! 바람피운 저 아내에게 가거라.”

“예, 뭘 가지고 갈까요?”

“네가 네 아내가 좋아하는 그 남자에게 가서 값을 치러라.”

그래서 호세아가 그 값을 가지고, 그 값은 3장에서 포도주와 이런 저런 것들이 나옵니다만, 그 값을 가지고 ‘너 얼마주면 거기서 나올 수 있나’라고 해서 값을 치르고 다시 호세아집에 들어왔어요. 다시 돌아와서 애를 둘 낳습니다. 둘을 낳고서 하는 말이 왜 호세아가 그 행실 나쁜 여자가 결혼을 해야 되느냐 하면, 그 행실 나쁜 여자에게서 나온 자식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애를 낳아야 됩니다.

이것이 어렵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독점합니다. 다른 사람은 모르는데 하나님이 선지자인 호세아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비록 호세아라는 목사 몸에서 낳은 자식이라도 원래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저주받고 지옥 갈 사람이 호세아의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면 그 자식 지옥 가는 것은 누가 책임져야 됩니까? 호세아가 책임져야 되지요.

우리가 여기 있는데 우리는 천국도 지옥도 모르고 자기 멋대로 삽니다. 누가 호세아냐 하면 예수님이 호세아입니다. 호세아,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한테 계시합니다.

“어이 호세아야!”

“예!”

“너는 내 백성 아닌 자식을 낳아라.”

“예!”

이렇게 호세아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를 자기가 낳는 자식에 포함시켜요. 그렇게 포함시키고 십자가에서 값을 치릅니다. 저 인간 그냥 내버려두면 지옥 가는데 호세아로 보여진 예수님께서 값을 치러서 행실 나쁜 여자지만 천국에 가는 혜택을 주겠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뭐보다 큰가? 수학에서는 ‘ 〉’는 ‘크다’는 뜻입니다. ‘사랑 〉 죄.’ 사랑은 죄보다 커요. 이것을 복음, 기쁜 소식이라고 합니다. 사랑은 죄보다 큽니다. 여러분들이 완벽하려고 하지 마세요. 교회는 도 닦는 데가 아닙니다. 보다 더 완벽하게, 보다 더 완벽하게, 이런 도 닦는 데가 아닙니다.

제가 십자가마을 수련회 하면서 헌금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헌금 내는 목적이 ‘목사님, 네가 헌금 냈으니까 우리 교인들이 더욱더 완벽한 교인되게 해주시고 또 우리교회가 더욱더 우수하고 훌륭한 교회 되게 해 달라’는 의미인줄 아는데 교회는 그런 도 닦는 일에 돈이 필요하고 헌금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여러분, 도 닦는 데는 돈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산위에 올라가서 말 그대로 도 닦으면 됩니다. 헌금은 뭐냐? 복음을 전하는데 필요한 군자금입니다. 군자금 아십니까? 경성에 나이트클럽해서 만주의 독립군에게 보내는 돈을 뭐라고 하지요? 군자금이라고 합니다. 전쟁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군자금이라고 합니다.

도 닦는 데는 돈이 필요 없어요. 바위위에 올라가서 저 혼자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하고 도 닦는데 무슨 돈이 필요합니까? 다른 복음과 싸우는데 돈이 필요합니다. ‘아, 이게 복음이 아니고 엉터리 같은 거구나’라는 데 필요한 것이 군자금이고 그게 헌금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 헌금을 하면 안 되느냐 하면 도 닦는데 돈 달라 하거든 헌금하지 마세요.

‘목사님, 혼자 도 닦으세요. 혼자 훌륭하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돈 줄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목사가 복음을 전하려고 하거든 ‘아하, 복음을 붙들고 싸우려고 하는구나’ 할 그 때는 군자금 주세요. 헌금 하라는 말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왜 헌금을 안 하느냐 하면 ‘목사님, 지금 바빠서 도 닦을 시간이 없습니다’라는 이유 때문에 헌금을 안 해요.

‘목사님, 도 닦아야 되는 줄은 알지만 지금 너무 바빠서 시간 안 되거든요. 도 나중에 닦을게요. 나중에 죽어갈 그 때, 천당이냐 지옥이냐 하는 것으로 아주 다급할 때 그 때 헌금도 많이 하고 그 때 도 닦을게요.’

지금도 닦아서 천당 가는 게 아니에요. 다시 이야기 할게요. ‘어떻게 하면 구원 받겠습니까’가 아닙니다. ‘어떻게 해서 내가 구원 되었습니까’의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이미 호세아 같은 누가 있기에? 예수님입니다. ‘사랑이 죄보다 크다. 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값을 치렀기 때문에. 우리의 죄 값을 치렀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슴팍에는 예수님이 치렀던 죄 값이 묻어 있어야 돼요. 죄 값을 한자로 하면 뭡니까? ‘피.’ 피지요. 출애굽 때 유월절에서 문설주에 피 발라서 구원받았잖아요. 피가 있으면 죄 값을 이미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피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피가 있으면 이미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악마가 되었든 천사가 되었든 피 보고 넘어가요.

‘저 사람은 내가 갋을 사람이 아니구나. 피 보니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구나.’ 그냥 넘어가버린다고요. 교회를 뭐라고 합니까? 사도행전 20장 28절에 ‘교회는 하나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것이 교회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뭐만 남아 있어야 합니까? 피만 남아 있어야 돼요. 뭐는 없어져야 됩니까? 인간의 모든 행함은 부정당해야 됩니다.

피를 위하여. 나의 기도덕분에 내가 구원받은 것 아니잖아요. 예수님의 피 때문에 구원받았잖아요. 사람이 기도하는 것은 주님의 기도를 알기 위해서 기도해야 돼요. 기도하는 나와 내 기도 뽐내기 위해서 하지 말고 ‘아하, 주님이 지금 기도하고 있구나.’ 그 기도 가운데서 주님이 하신 일, 주님의 노동을 더 크게 느끼기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주여, 내가 사는 것은 내 덕이 아니고 주님의 기도한 덕입니다’라는 것을 느끼면서 주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요즘 우리교회 군자금 다 떨어졌어요. 총알 살 돈이 없어요. 도 닦으라고 내라는 것이 아니고 군자금이 바닥이 났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시는 분도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왜? 무슨 교회를 포기하라고? 내 교회를 포기하라고.

이것도 빼앗겨야 됩니다. 내 교회 없어지면 무슨 교회 남습니까? 하나밖에 없는 우리교회만 남는 거예요. 십자가마을에 참석하시는 분들이 그런 분들입니다. 십자가마을에 있는 새순교회는 십자가마을수련회 강사비를 일 년 예산에 이미 포함시켜 놓고 있어요. 우리교회가 아니고 새순교회이야기입니다.

새순교회라는 교회에서 십자가마을 강사비를 일 년 전부터 예산으로 세워놓고 심지어 얼마나 세세한지 십자가마을수련회 간식비를 그쪽에서 부담하겠다고 아예 일년 예산 속에 아예 포함시켜 놓았습니다. 어떤 조건하에 그랬습니까? 이 근호에게 주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조건하에? 복음만 전해야, 예수의 피만 전해야, 이 군자금, 이 총알 살 돈은 당신에게 돌아간다는 조건!

‘예수 피 안전하면 군자금 한 푼도 없다.’ 그게 바로 진짜 피로만 구원받은 사람의 고백입니다. 피로만 구원받았기 때문에 피만 전하는 사람은 도와줄 지언 정, 십년동안 피를 전했는데 그 다음주일에 피를 안 전한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고 이미 그냥 맛이 간 놈입니다. 맛이 갔어요.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해서 교회가 이만큼 되었는데’라고 하면 그것은 이미 맛이 가서 끝난 인간입니다. 그것은 마트에 진열된 상품 같으면 유효기간이 지나서 진열장에서 빼버려야 됩니다. 치워버려야 됩니다. 한국방송공사를 비롯해서 맛이 간 공공기관장들이 많은데 안 나온다고 버티는 것 보면 목사들 안 나온다고 버티는 것과 똑같아요.

자기 것이 있다는 거예요. 목사는 자기 것이 없어야 돼요. 그저 사도바울처럼 ‘복음, 이 피 복음만 전하는 것이 나의 받은 상급이다.’ 이것을 전하면 상급을 받는다는 말이 아니고 복음을 전한다는 그 자체가 이미 상을 받았기 때문에 나눠주는 거예요. ‘에라, 피 먹어라. 피 먹고 구원받아라.’ 나눠주는 것 자체가 상이라는 거예요.

사도바울에게는 그 자체가 상이었어요. 자기 생명의 면류관을 그런 식으로 나눠주는 거예요. 그래놓고는 하는 말이 뭐냐? ‘심는 자도 아무것도 아니고 물주는 자도 아무것도 아니요….’ 누가 자라나게 한다?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목사로 인해서가 아니고 누구 때문입니까?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신다.’(고전 3:6-7)

‘심고 물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로되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사도바울에게는 하나님자체가 상급이었습니다. 창세기 15장 1절에도 나오지요? ‘나의 상급은 여호와니라. 나의 방패도 여호와니라. 나의 요새도 여호와니라.’

여기서 좀 더 어렵게 해 봅시다. 우리 생각에는 호세아라는 목사집안에서 경건한 자만 나와야 할 텐데 왜 내 백성,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음란한 자가 나와야 되느냐? 우리 예수님은 잘난 사람 뽑으러 온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다’(마 9:13)라고 했습니다. 의인되지 마세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온 겁니다. 그래서 목사가 설교할 때는 ‘나처럼 의인 되세요’라고 설교하면 안돼요. ‘나처럼 기도 많이 하시고 나처럼 성경 많이 보세요.’ 이러면 안 돼요. 이렇게 해야 돼요. ‘여러분, 저처럼 하루 종일 성경 봐도 역시 생존 걱정하는 것 밖에 안 되는 것이 목사입니다. 그래서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이야기를 해 줘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하루에 성경 열장 봐도 밥 먹고 사는 것을 염려하는 사람이나 농사짓는다고 바빠서 하루에 성경 한 장밖에 못 보면서 밥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하는 인간이나 둘 다 똑같은 죄인이니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의 피만 바라봅시다’라고 해야 그게 교회라는 말이죠. ‘다만 여러분들이 더욱 더 자기의 죄인 됨을 알기 위해서 저처럼 열장 보세요.’ 이것은 좋지요.

왜? 보면 볼수록 내가 얼마나 더 죄인인지를 아니까. 내 앞에 있는 피가 얼마나 소중한 피 인가를 아니까. ‘어떻게 해서 구원받을까’ 가 아니죠? ‘어떻게 해서 이미 구원받았나?’하는 그 문제입니다. 그것은 호세아처럼 미리 앞당겨 보여주는 이 계시 이 계시는 다른 사람이 알 도리가 없는, 선지자에게만 주었던 독점적인 계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까 그 그림 다시 그려보겠습니다. 다시 하기 때문에 묻고 답변하는 식으로 합시다.

문) 선지자와 보통 사람이 차이점이 뭐라 했습니까?

답) 선지자는 무엇을 독점한다? 하나님의 계시를 독점하는데 보통 인간들은 뭐가 나온다? 자기가 알고 있는 자기세계의 신이 나오죠. ‘아, 하나님은 자비로운 하나님, 신은 정의로운 신 하나님’ 이런 식으로 보통 인간들 속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신이 나와요. 그런데 선지자의 계시는 뭡니까? 한글자로 뭐예요? 피!

피를 내어서 인간 같지도 않은 것, 사람 같지도 않은 것, 피로 말미암아 뭘 주고? 피로 값을 주고 사서 구원하는 방법이라면 이것이 선지자의 독점이라면 여기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여기서 뭐가 나온다고 했습니까? 행함이 나오지요. ‘하나님, 저 사람보다 헌금 내가 더 많이 했잖아요. 기도 더 많이 했잖아요.’

이렇게 자기 행함을 가지고 누구하고 흥정해요? 자기 행함을 가지고 신과 거래하고 흥정하고 심지어 타협까지 들어갑니다. ‘하나님, 이번 죄지은 것은 좀 봐 주소. 우리 애 지금 고 3 아닙니까? 고3이 교회 안 간다고 닦달내면 안되시지. 좋은 대학 들어가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나서 교회 나올게요.’

이렇게 거래한다고요. ‘하나님, 눈 한번 찔끔 감아주소. 지금 고 3인데 다음에 잘하면 되지.’ 이렇게 자꾸 어떤 흥정을 한다고요. 흥정을 한다는 것은 자기 내부에 나름대로의 법이 있고 규칙이 있습니다. 이것이 어렵지만 이것을 설명하고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제가 끝나는 시간만큼은 철저히 엄수하겠습니다.

이것도 어렵기 때문에 물어가면서 합시다.

문) 사람이 만든 규칙은 어디서 온 겁니까?

답) 자기가 평생을 살면서 경험한 거지요. 경험이라는 것은 우리 내부에 평생을 살면서 차곡차곡 쌓이는 겁니다.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 두 사람의 경험이 다릅니다. 경험이 다르다면 A라는 사람이 내세우는 법과 B라는 사람이 내세우는 법이 같을까요, 다를까요?

서로 다르지요. 그런데 인간의 규칙이 뭐냐 하면 보다 더 완전해 지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인간이 자기가 a라는 위치에 있다면 뭘 생각하느냐 하면, a에서 b가 되기를 원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a에서 b가 될 때 자기가 만들었던 뭘 적용시킵니까? 규칙을 적용시켜요. 하나의 예를 들면 ‘나는 예배당 앞자리에 앉으니까 은혜 되더라.’

앞자리에 앉으면 은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침만 튀깁니다. ‘앞자리에 앉으니까 은혜 되더라.’ 이것은 누구 일방적입니까? 자기 일방적인 쌓이고 쌓였던 자기 규칙이죠. 그런데 어떤 사람은 뒷자리에 앉으니까 은혜가 돼요. 어떤 사람은 또 중간에 앉는 것도 은혜가 됩니다. 그러면 세 가지 법 중에서 어느 것이 맞습니까?

정답은 뭐예요? 다 틀렸습니다. 왜 다 틀렸느냐 하면 규칙이라 하는 것은 자기행동을 변명하고 정당화하기 위해서 규칙을 정한 거예요. 만약에 뒷자리에 있는 사람을 강제로 앞자리에 앉혀 보세요. 뒷자리에 앉을 때는 ‘뒷자리가 은혜 되는 자리야’ 하다가도 ‘역시 앞자리가 은혜 되는구먼.’ 이렇게 된다고요.

시키면 시키는 대로 적응하게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규칙이라 하는 것은 전부 다 자기가 되고 싶은 b, b에서 더 나가면 b′, b2′, 계속 나갑니다. 그러니까 그 법칙에 누구를 끼워 넣느냐 하면 하나님을 집어넣어요. ‘하나님, 이만한 정성 같으면 들어주겠지요.’

그러면 그 옆에 있는 c라는 집사가 보고 있다가 ‘아이고, 집사님 그래갖고는 아직 멀었습니다. 그것도 정성이라고, 그것도 기도한 거라고. 나처럼 해야 은혜 받지 그거는 정성이 많이 부족합니다. 나처럼 해 보세요. 하나님한테 복 많이 받지.’ 이렇게 자기신앙, 자기규칙을 강조를 하지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네 규칙, 내 규칙, 이 규칙, 저 규칙 다 부수어 버립니다. 특히 목사들이 교인들에게 무슨 행함을 이야기할 때에는 목사가 한평생 살아왔던 자기규칙을 가지고 그것이 진리인양 교인들에게 강요를 합니다. 그런데 막상 그 목사가 목사를 그만두고 직장생활을 해 보세요. 주일날 예배참석 꼬박꼬박 할 수 있는가?

백수가 아닌 이상 그게 잘 안됩니다. 이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세상이 아닙니다. 밀리고 밀리는 세상입니다. 지하철에서 혼자 기도하고 있는데 기도를 방해받을 경우가 어떤 경우가 있습니까? 기도 하고 있는데 뒤에서 확 밀어버리면 기도가 됩니까, 안됩니까?

“왜 밀어?”

“내가 밀고 싶어 밉니까? 저 사람이 미니까 떠밀려서 그런 거죠.”

‘주여, 이제부터는 술 끊고 교회 갑니다. 이제부터 한주도 빼먹지 않고 교회 가겠습니다’라고 해도 누가 떠밉니까? 주위에 있는 관계들, 식구들, 친지들, 직장 모든 것이 다 나를 떠밉니다. 떠밀 때 우리는 규칙을 세워요. ‘주여, 내가 처음에 교회 한주도 안 빠지고, 오전 오후 예배 한 번도 안 빠지고 다 꼭 참석하겠다고 했는데, 막상 해보니 힘들겠네요. 오전 예배만 가겠습니다.’

‘오후 예배는 좀 빠지더라도 좀 봐주소’ 하거든요. 한두 달 지나면 ‘주여, 한 달이 네 주인데 그 중에서 한 주는 좀 빠져야 되겠습니다. 봐 주소 좀.’ 한 6개월 더 지나게 되면 ‘한달에 한 두어 번 빠질 텐데 그러면 하나님이 저주할 겁니까? 저주하면 하나님이 나쁘지. 성질 더러운 하나님이지. 이 바쁜 것을 알면서도… 그러니 좀 봐주소.’

그렇게 한 일 년이 지나면 그만 ‘내년에 착실하게 다니겠습니다.’ 그런데 ‘내년에 착실하게 다닌다’는 규칙을 정해도 주님께서는 고맙게도 우리가 어떤 규칙을 정하든지 아예 그 규칙 ‘지었나?’ 이렇게(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합니다. 아예 규칙을 따지는 것이 아니고 어떤 규칙을 정하든지 간에 그 규칙은 늘 상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예 보지도 않아요.

혼자 자기 규칙 정해놓고 자기가 안달 났어요. 그런데 진짜로 구원받는 것은 뭐로 한다?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는데 인간들은 피로 구원받는 것은 모르고 만 날 도둑놈이 자기 발 저리다고 규칙 만들고 규칙 어겼다고 또 회개하고 반성하고 자기한테 벌주고 또 헤헤거리고 살다가 또 규칙 어겼다고 회개하고 만 날 그러는 거예요.

주님께서는 아예 우리 규칙을 아예 안보는 이유가 주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러 왔지 좀 더 의인되는 것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죄인 됨을 아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죄인 됨을 알지 내 규칙 내가 어겼다고 죄인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자기규칙 만들고 거기에 매인 사람을 보면 아, 참! 언제 인간되나 싶은 생각이 들어가요.

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여, 이 교회 어려운데 내가 다음에는 꼭 5만원 올리겠습니다.’ 주님께서 헌금 올려달라고 언제 그랬습니까? 예레미야에 나옵니까? 에스겔에 나옵니까? 자기가 만든 규칙입니다. 주님께서는 뭐라고 하시는지 압니까? ‘네 마음대로 하세요. 네 마음대로.’ 교회재정이 어떠하든, 5만원을 올리든 10만원을 올리든 구원은 뭐로 한다? 구원은 예수의 피로 구원받는 거예요.

헌금에 대해서 이것보다 더 확실한 정답은 없습니다. 관심사, 구원받은 자의 관심사가 자기규칙을 완벽하게 세우는 것이 관심사가 되면 안돼요. 신학의 나쁜 점이 그거예요. 신학을 하게 되면 그 신학이 자기의 규칙이 되고 법이 되어 버려요. 로마서 3장 19절과 21절을 봅시다. 이 대목이 중요합니다. 이 대목을 이야기 하고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우리 진주엄마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대목을 이야기 하고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로마서 3:19,21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모든 법은, 우리가 만든 법이든 성경의 법이든 모든 법은 우리로 하여금 ‘너는 죄인일 수밖에 없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주어졌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때 율법으로 구원시키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구원합니까? 율법이 여기에 있다면 율법 말고 뭡니까? 율법 말고 다른 파이프가 있어요.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의’라고 하는데 그 안에 뭐가 들어 있습니까?

피가 들어 있어요. 그래서 첫째시간에 한 것 다시 되풀이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라면 이것이 십자가로 만들었어요. 이것을 여기 이 컵에 넣었습니다. 또 다른 컵에는 이것이 없습니다. 나중에 주님께서는 ‘저 율법 잘 지켰는데요. 법 잘 지켰는데요’ 하면 ‘그것 말고 율법외의 것을 내놔. 율법 외의 것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율법 외에 내놓을 것이 있어야지요.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받는 거예요.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받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우리 주위에 많은 율법들이 있어야 할까요? 없어야 할까요? 그게 있어야 돼요. 많은 율법이 있어야만 우리가 그 율법을 다 못 지키는 죄인인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이죠. ‘하루에 성경 다섯 장 읽어보세요.’ 그것 지키기 힘들어요.

‘하루 열 시간 기도하세요.’ 열 시간 할 수도 있죠. 그런데 건성으로 하는 거죠. 자다 깨다 하면서. 억지로 하면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에 신경 쓴다는 것 자체가 뭡니까?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없으면, 이것이 없으니까 최선을 다하는 이쪽에 자꾸 신경을 쓰게 됩니다. 신경을 쓰니까 그것이 점점 더 자기를 위선자로 만들어갑니다.

자기가 점점 더 잘난 사람 되어 버리고 ‘이만큼 훌륭한데 왜 복 안주나’ 하면서 하나님께 대들고 따진다는 말이죠. 호세아에서 이야기하는 핵심이 뭐냐 하면, 주님께서 아예 우리 자신이 음란하고 더러운 세상에 태어난 것을 기정사실화 하시면서 이미 알아요. 이미 다 아십니다. 십자가 옆에 달린 강도가 무엇 때문에 ‘오늘밤에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했습니까?

그 사람이 뭐 했어요? 아무것도 안했는데 그냥 그날 밤에 구원받았잖아요. 그게 뭐예요? 이미 알아요. 우리가 얼마나 자기 가꾸기를 잘하고 우리가 얼마나 자기 죄를 숨기는데 급급한지를 압니다. 그걸 닦달 내지를 않아요. ‘그래, 네가 한번 고생해봐라. 네 규칙에 얽매이고 그 규칙대로 살려고 한번 노력해봐라. 네가 마귀한테 잘 속아 넘어간다. 그래 사기꾼한테 넘어가봐라. 하지만 네가 그렇더라도 아무리 어떻게 한다 해도 구원은…’

한자로 뭡니까? ‘…피다. 구원은 오직 피로 받는 거다. 다른 것은 없다. 복 받고 영생 얻는 것은 다 피다’ 이 말이죠. 에베소서 1장 7절 읽고 설명하고 마치겠습니다.

에베소서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

뭐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피로 말미암아.’ 그것도 그 피가 조금입니까, 많습니까? ‘풍성함’ ‘풍성하게’ 그러니까 피로 용서받지 못할 것이 없어요. 넉넉하게, 유 영철 아니라 그보다 더한 무지막지한 죄를 지어도 풍성하게 모자람이 없이 용서합니다. 제가 아까 했지요. 주님의 사랑은 무엇보다 큽니까? ‘사랑 > 죄’ 사랑은 죄보다 크지요.

우리가 지은 죄보다 피의 능력이 더 큽니다. 이것으로 구원받는 거예요. 그것은 우리 인간이 갖고 있는 어떤 자생적인 하나님의 계시로서는 알 수가 없어요.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독점적으로 아는 거예요. ‘아하, 주께서 우리를 찢어버리는구나. 찢어도 괜찮구나. 왜? 사흘 만에 도로 살리기 때문에.’ ‘내 붙여줄게. 찢은 것을 사흘 만에 도로 붙여줄게.’

붙일 때 무엇으로 붙입니까? 우리 행함으로 붙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피, 그 피로 우리를 다시 살려내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복음입니다. 이것을 안다고 하지 마시고요. ‘아하, 그동안 헛짓 했구나’라고 생각하시고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되는 것은 뭐냐?

지금부터 이 주님께서 주신 피의 사랑을 더욱더 많이 알아가는 것, 우리가 이 성경을 보면서 ‘아하, 내가 의인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죄인이구나. 나밖에 몰랐구나’라는 것을 점점 더 알아가면서 ‘나는 돈만 사랑하고 돈만 챙기고, 나만 사랑하면 그만이고, 나만 잘살면 그만이고 나만 승리하면 그만이고’라는 이 생존 층에서 나오는 욕망.

하지만 약속 층에서 호세아같은 분이 오셔서 십자가를 이야기하면서 약속 층에서 침투하니까, 이 더러운 생존 층에 깨끗한 약속 층인 십자가가 내려오니까 그 꽂혀 버린 거기에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이 사실, 그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 속에 뭐가 들었는지를 다시 한 번 살피게 하옵소서. 과거의 내 경력과 내 잘남과 나의 똑똑함과 훌륭함이 들어 있는지 아니면 내가 죄밖에 없다는 것이 들어 있는지 돌아봐서 그 죄마저 풍성하게 용서해주시는 주님의 죄사함의 능력이 앞으로 우리 마음에 가득 채워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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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31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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