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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8 십자가마을 여름수련회 10강자유게시판잠언

2008 십자가마을 여름수련회 10강

이름 : 최형중(IP:221.159.6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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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마을 여름 수련회 잠언 10강

자,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언을 끝 마무리 하면서 잠언이 뭐야? 했을 때, 한마디로 구조입니다. 구조. 잠언을 우리가 어제 1장부터 10장까지 했지만 잠언은 뭐냐하면 구조가 우리를 뒤집어 씌우는 거예요. 그러면 잠언을 뒤집어 씌우면, 구조가 들어오게 되면, 구조가 어떤 일을 하는가 하면, 이게 면도칼, 도로코 면도칼.

선과 악을 날카롭게 가르는 면도칼을 가지고, 우리 주체가 항상 자기 긍정이거든요. 자기 변명, 자기 규칙만을 늘어 놓는데, 잠언을 10장까지 읽다보면, 악한 자는 이렇고, 슬기로운 자를 이렇고, 지혜는 이렇고, 이러면 망하고, 면도칼처럼 와서 구조가 내려옵니다. 내려와 가지고, 그 구조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 우리가 잘난 척 하고, 나는 이 정도로 착하다, 그래도 남보다도 최선을 다했잖아. 이걸 또또또또 해가지고, 컴퓨터 게임에 보면, 또또또 해가지고... 잡아 먹는단 말이죠. 이것을 다 잡아먹어요. 몽땅.

잡아 먹으면 우리 맘에 남는 것이 뭐가 있는가 하면, 허공 속에 묻혀야 말 될... 우리 마음이 허공이 되어 버려요. 여기까지가 유대인들이나 일반 교회에서 여기까지는 되요. 잠언서에서 잔소리를 듣고 나니까, 이젠 잠언서는 안 본다. 왜? 잔소리만 늘어 놓으니까, 내 주장할 것이,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한 것이 남아 있지 않으니까, 그래 하나님 니 잘났다 하고 그냥 나는 이 허공 속에 내 것을 채우려고 합니다. 그 뒤에 물음표를 합니다.

구조가 내려오면 면도칼 그 선과 악을 가지고 모든 우리의 잘남과 나의 그 ...을 다 잡아 먹는거죠. 돌아다니면서. 몽땅 다. 삭제 하듯이, 파일 삭제하듯이 몽땅 다 잡아 먹고, 돌아 다니면서, 우리 마음을 허무로 만들어 버립니다.

허무로 만들어 버리면, 허공이 되어버리면, 허공 속에 그 다음에 뭐가 오는가하면, 나중에 성령을 받는 자에 한에서 뭐가 오는가하면, 정죄함이 없나니,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고 여기에 하나님의 긍휼하심, 하나님의 긍휼하심, 용서 사랑, 이런 것이 여기에 차게 돼서 그 사람은 누구를 자랑하거나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허공 밖에 없는 나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스스로 성취되어서 우리 속에서 하나님의 정죄함이 없고, 긍휼함이 없는 이것을 자랑할 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경외하심, 여호와의 하신 일만, 여호와의 긍휼하심만 높이는 거예요.

그래서 잠언이 뭐냐할 때, 구조. 하나의 구조 속에 놓여 있는 겁니다. 만약에 구조가 아니고 나라는 인간이 한 번 지켜 보겠다 하면 잠언은 전혀 이해가 되지 못합니다.

이 면도칼이 날아오면 이 면도칼에 대비해서 나름대로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너무 지적하지 말라는 식으로 극렬 반항이 일어나죠. 우리 속에, 그러면 이 정도 살았으면 이 세상 종 치자는 말인가? 그러면 이래가지고는 사회 생활 못한다. 우리는 그러면 도나 닦으란 말인가? 극렬한 저항이 일어나요. 구조가 아니고.

이 구조는 무엇을 위한 구조냐면, 아들됨, 아들됨인데, 이 아들됨은 반드시 허공이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죄함이 없나니가 와 줘야, 율법외에 한 의라 했죠. 율법 외에 한 의, 정죄함이 없는 그 용서가 들어올 때에만 그 사람 허공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이 말이에요. 이해 됬습니까?

여러분들이 10장부터 31장까지는 어떤 것이 .... 하면 또또또 돌아다니면서 그동안 나도 교회 다니면서 할만큼 했다 하는 이러한 나의 모든 주체에 대한 ..을 이것을 보면서 우리 안에 용납이 안 된다는 것. 다 잡아 먹는다는 거에요. 다 잡아먹고, 면도칼로 잘라서, 어떤 인간이 잠언 앞에서 나 잘났다 할 인간이 전무하다는 것을, 자기 마음으로 허공으로 만들어야 돼요. 허공을 만들고 그냥 집에 가면 곤란하고, 그러면 인생은 허무하다. 허공으로 끝나버리면 유대교나 기독교나 불교가 전부 하나가 돼버려요. 인생, 그 거 뭐 있어, 한 방이지. 아무 것도 아니지. 뭐. 천주교, 힌두교, 유대교, 정교, 불교. 유교, 종교도 없는 사람들이 대화가 가능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에요.

모든 종교는 인간 속에는 인간은 흐름에 불과하고 인간의 실체는 없다. 그저 흘러 가는대로 흘러갈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생각이 같네. 진리는 하난데, 이를 길은 다를 지라도 진리는 하나지. 산 길은 높고 위에 정상을 가는데, 어떤 사람은 힌두교, 불교로 올라가면 결국은 종교가 없더라도 인류 공영의 평화를 위해서 하는... 이래 되어 버려요.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아들 아닌 자를 작살내는 그러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언약적 가치는 날아가 버린다. 자기들끼리 탐구해가지고, 나는 잠언 안다. 불경도 알지만, 잠언을 보니까 잠언이나 불경이나 마찬가지고, 다 똑같아, 이래 되어 버립니다.

면도칼.. 있는데, 왜 면도칼, 잠언이 날카로운 면도칼이 되야 하고, 그것이 잡아 먹혀야 되는지 예를 들면, 옛날 이야기, 우리 집안의 10년 전 이야기인데, 10년 전에 우리 작은 숙모가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나는 우리 시어머니가 전화 못 걸어서 얼마나 기분 좋은지 모른다. 전화 걸 줄 몰라서, 숫자를 몰라서. 그것을 듣고 있던, 이상하다, 왜 시어머니하고 전화하고, 통화하고 하면 사이좋고 좋은데, 왜...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20년 지나고 난 다음에, 조카 며느리가 50이 되니까, 왜 시어머니에게 전화가 안 오는 것이 그렇게 좋은지 이제 알았단 말이죠.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하니까.

젊은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하는 10,20년 전에 작은 숙모가 그렇게 못되 보이고, 지밖에 모르고, 잠언에 보면 진짜 어리석은 여자 같아 보이는데, 자기는 슬기롭고 하나님 잘 믿는데, 막상 자기가 그 나이가 되니까 아하, 잠언을 사람이 이룬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그동안 자기 변명에 지나지 않았고, 그래서 맨날 시도때도 없이 전화하는 시어머니가 바로 면도칼 역할을 하는 것과 똑같았다. 내 속에 의롭다, 훌륭하다는 것을 다 잡아먹는 다 돌아다니면서 구석구석 다 잡아먹는,... 따라와서 잡아먹고, 또또또.... 30점 올라가고... 60점 올라가고... 남는 것은 내 속에 의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내 속에 도대체 이래 가지고 구원 받나?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다 잡아 먹히는 그 구조. 그 구조의 역량, 그 능력이 잠언입니다.

그래서 산상설교로 구원받지 못하고, 잠언으로 구원받지 못해요. 천독, 만독을 해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여기에 그 허공에, 유교 불교 그 허공에, 십자가의 복음이 오게 되면 결코 그런 인간도 정죄함이 없느니라. 하는 주님께서 주신 그 사랑, 아드님의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겁니다. 피를 바름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사자가 넘어가듯이 아들이 그렇게 탄생 하는 거예요. 아버지는 그런식으로 아들을 만든 겁니다. 그런 것을 각오하시고, 날카로운 면도칼로 마음껏 베어 봅시다. 쭉 한 번 해 봅시다.

6, 7장 참 이거 녹취하실 때 제가 지금 공동번역 읽지만 녹취하시는 분은 기존 개역 성경으로 바꿔서 하면 됩니다. 어제 한 것 재밌어서 한 번 해 봅니다. 7장6절 이하...

내가 우리 집 창에 기대 섰는데, 창살로 내가 봤는데, 어느 젊은이가 왔었는데, 여기에 대해서 여러분은 나는 안 그렇다 하지 마세요. 나중에 전부가 면도칼로 다 베이니까 ...

8장 봅시다. 8장 한 것 같은데, 10장. 나쁨을 아울러 드러내는 착함, 착하다는 것은 단독적으로 착한 것은 없고, 반드시 나쁘다는 것을 드러내는 착함, 한쪽이 착함으로 자동적으로 그 착함을 못한다면, 자동적으로 악함이 되야 합니다. 면도칼이죠. 이건 아주 날카로워요. 아주 좁은 면적으로 짝짝 .... 버려요.

2절에 봅시다. (잠 10:2)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이것이 얼마나 우리를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대충 넘어가는 우리의 가슴팍을 면도칼로 짝짝 찌르는 것 같아요.

(잠 10:3) 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

3절에, 우리는 맨 날 밥 그릇 깨져야 해요.

(잠 10: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할 말이 많습니다. 도박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부자 되었습니까? 경륜, 경마, 심지어 객장에 아침부터 나와 가지고 객장에 앉아있는 사람, 다 부자 되었습니까? 쪽박 찬 사람 한둘이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주님께서는 면도칼로 나쁜 것과 좋은 것을 날카롭게 째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21절 쭉 보면, 사람이 기대하는 것은 여호와의 손에 달렸다하는 내용이 쭉 나와요. 사람이 기대하는 것은, 사람이 아무리 기대하고 싶어도 여호와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축복을 받더라도 그것은 악함을 드러내는 축복, 악한 자는 축복 받지 못한다는 식으로 축복을 드러내는 축복을 주시는 분이 누구냐? 바로 여호와 하나님. 왜냐하면 27절에 보면, (잠 10:27)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수명은 짧아지느니라 라고 해서 여호와를 모르고 수명 줄어든 사람은 졸지에 뭐가 됩니까? 너는 나쁜 놈이 되어 버려요. 이게 면도칼 아닙니까?

예수님은 면도칼처럼 왔기 때문에 예수님을 잊어버리면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되어 버리는데, 만약에 예수님 앞에 나서게 되면, 나는 그대 앞에 서면 나는 왜 그리 작아지는지, 주님 앞에 서면 나는 졸지에 나쁜 사람이 되어 버려요.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밀치고 교회 안 나오려고 하는 이유는 뭔가하면 자기는 열심히 살았는데, 막상 교회 나오면 말씀에 비춰보면 죄 아닌 것이 없으니까, 만약 허공이 될 수 있다면 나는 내 것으로 이 마음을 채우고 싶은데, 하나님은 자꾸 나를 허공 되라고 하네. 허공. 너는 바람이다. 너는 바람밖에 없는 허공이라는 겁니다. 찬바람만 쌩쌩 분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 줘야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하나님이 원하는 정죄함이 없다는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찰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1장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가짜 저울을 역겨워 하시고, 바른 추를 좋아하신다. (잠 11:1)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그러니 이 면도칼은 시장 바닥부터 시작해서 가정사, 국가사, 교회 어디에도 하나님을 믿는, 인간의 개인행동, 마음가짐, 마음 속을 면도칼이 다 파고 들어가서 전부다 면도칼이 날카롭게 다 찢어 버려요. 전부다. 이것은 나쁜 것이고, 이것은 좋은 것이고...

11장 2절에(잠 11:2)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한 두 번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늘 이렇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지혜는 뭐냐? 너부터 살 생각해라.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사기꾼 이야기 나오고, 그렇게 되죠. 8절에 보면, (잠 11:8)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으나 악인은 자기의 길로 가느니라

차카게살자.

조폭 생활하다가 나와가지고... 조폭들이 차카게 살자. 조폭은 잠언을 안다 말이죠. 그런데 좀 살만하면 착하게 사는 것을 버리고, 다시 옛날 모습으로 되돌아가버리죠. 교도소 한 번 갔다오면 착하게 살자. 해 가지고, 실패해가지고, 다시 교도소 들어가고... 마찬가지입니다.

신명기에 있죠. 사람이 좀 형편이 풀리고, 배 부르다 싶으면 가장 먼저 잊어버리는 것이 뭡니까? 제일 먼저 잊어버리는 것이 여호와를 잊어버립니다. 경제 사정이 어렵다싶으면 제일 먼저 끊는 것이 헌금부터 줄여버립니다. 아이들 피아노 레슨 다 줄여버리고... 제일 먼저 일순위 헌금부터 줄여버리고, 여러분 착하게 사세요.

10절 쭉 보면 (잠 11:9) 악인은 입으로 그의 이웃을 망하게 하여도 의인은 그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

(잠 11:10)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 외치느니라

나쁜 사람 죽으면, 야호... 이 세상의 구조가 완벽한 착한 사람만 세우는, 살기를 원하는 그런 구조를 주님은 양보한 적이 없다 이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이룰 수 있는 역량이 우리에게는 없는 거예요. 그래서 미련한 인간아 착하게 살아야지, 그런 역량이 우리에게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라, 무엇이 착한 것이고, 무엇이 악한 것인지 네가 지금 알아야 한단 말이죠. 자칫하면 자꾸 변명조로 나갑니다. 해도 안 되는데, 나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런 변명조가 결국 왕명을 거부하는가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다루신다는 것을 자꾸 밀치는 요인이 되어 버려요. 자꾸 변명을 하다 보면. 주님의 은혜가, 용서가 들어온 것을 밀쳐버리고, 부족하지만 괜찮은 놈이다라는 것을 그것을 자꾸 남기려는, 그런 보람으로 살려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죠. 변명으로 일관하면.

선과 악의 구분은 혜택으로 구분되며, 결과로 구분... 이건 뭐냐하면, 선과 악을 아는 것도 여호와께서 선과 악을 알게 해주셨기 때문에 아니까, 선이 뭐고, 악이 뭔지 알게 된 것도 감사하란 말입니다. 그런 내용으로 쭉 되어 있습니다.

12장에, 12장에는 스스로의 가치를 추구하지 마라. 선을 찾고 악을 버리라. 여기에 보면 3절에 보면, (잠 12:3) 사람이 악으로서 굳게 서지 못하거니와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

역시 이건 차원이 달라요.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우리가 방금 교도소 나와가지고 두부 삼키고 있는 사람에게 하는 말 같아요. 착하게 살아라. 나쁜 짓하면 또 간다. 이런 식이라.

5절에 가면, (잠 12:5) 의인의 생각은 정직하여도 악인의 도모는 속임이니라 이걸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다 알지. 이건 양심상 다 아는 이야기잖아요. 다 아는 이야기인데, 이런 것을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긴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지혜의 뭘 안다? 구조. 처음도 구조. 끝도 구조에요. 이 구조 속에 놓여 있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고 교회 안 다니는 그런 사람, 말씀을 안 보는 사람은, 관심이 뭔가하면, 구조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이 어떻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가 어떻게 나를 키울까,, 이런 쪽에서 버티다가, 만약 교회 다니는 사람이 나쁜 짓이라고 하면, 나도 내 마음대로 그 정도는 안다. 이러고 마는 거에요.

결국 자기 마음을 비울 생각은 안한단 말입니다. 남도 그렇게 사는데, 난들 어떻게, 나하나 똑바로 한다고 나라가 바뀌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나에게 닦달이냐 이 말이에요.

그래서 학자들이 연구해 보니까, 인간은 인간의 모든 행동은 존 듀이가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존 듀이의 책에 보면 나오는데, 인간의 행동은 다른 것이 아니고 딱 하나에서 나온다. 습관이다. 습관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 사람의 구조에서 나오는 거에요. 그 사람의 삶의 구조에서, 옛날 우리 할머니가 전화를 못 건 것은 숫자를 안 배웠거든요. 초등학교를 못 나왔기 때문에 글자를 모르고, 숫자를 몰라서 전화를 못 건 거에요.

그러면 그 뒤에 학교가 있으면 다녀야 하는데, 안 다닌 거에요. 왜냐하면 이미 무식한 것이 자기 내부에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자기가 그렇게 자기를 습관화 시켰던 그 구조를, 그 구조와 함께 안 벗어나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 나 무식하다. 나 이래 살래. 구조가 만들어 준 그것을 자기가 정당화하면서 습관화시켜 버린 겁니다. 습관화.

이렇게 단체 생활로 합숙을 할 때, 사람마다 다른 것이 고생이 아니에요. 집에서 하는 행새를 그대로 못 한다는 것이 힘들어요. 여기서는. 아침 12시에 자서 12시에 일어나는데, 여기서는 8시에 일어나야 식사를 하니까, 그것을 순식간에 바꾼다는 것이 힘든거에요. 습관이 힘들다는 것을 잠언을 통해서, 이것도 면도칼로 들려야 할 나쁜 짓이 하면 되는데, 이 잠언을 공부하지 않으면 나는 습관이 그런데, 어떡하란 말이고, 이렇게 나온단 말이죠. 이게 지혜가 아닙니다. 이게 구조를 몰라요. 구조를 모르니까 대신 대체하는 것이 뭐냐? 나는 이렇게 산다. 내버려둬. 나는 이렇게 살거야. 주체가 나와요. 주체가. 주체가 나온다고.

세대 별로 의사 소통이 안 되는 이유가 옛날 사람들이 나를 만들었던 그 구조와 지금의 구조가 다르거든요. 어떤 젊은 신혼 부부를 보니까 아내가 남편 출근하기 전에 남편이 해야 할 일을 메모를 해서 냉장고 앞에 딱 붙친다는 거죠.

설거지는 깨끗하게 하기, 방 청소는 두 번 닦기, 빨래는 해서 ... 그런데 이걸 70, 80이 된 시어머니가 와서 보면 기가 찰 일이다. 나는 공주니까 공주다워야.. 이러고 있다. 모든 것을 남편에게 시키고 지는 노는 거에요. 그러니 너는 이렇게 사노. 내버려 둬요. 구조가 그런 습관이 되어서, 이제는 안 시켜 주면 뭔가 나쁜 짓한 걸로 느껴진다는 거죠.

습관에서 뭐가 발생되는가하면, 선악구조가 발생되요. 길을 그렇게 드러났어요. 길을 그렇게 해 놔서 이것을 안 하면 마치 남편 구실을 못해가지고 아내에게 잔소리를 들어도 합당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죠. 그러면 다른 기성세대에서 그것을 나무라면 그건 기성세대를 그런 식으로 습관화시킨 구조가 문제지. 지금 아버지 구조와 지금 구조에서 나는 어느 것이 더 편한가 하면, 지금 이 구조 속에, 마누라에게 시킴을 당하는, 종으로 부림받는 그 재미가 솔솔하다는 말이죠. 본인이 솔솔하다는데, 어떡합니까?

그런데 문제는 잠언에 의하면 그것을 정당화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정당화 해버리면 정죄함이 없나니라는 십자가 복음이 의미가 없잖아요. 이게 문제라는 겁니다. 사람이 구조가지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따질 것이 아니라 자기를 비우지 않고, 자기가 죄인인 것을 모르는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아들답지 못하다. 그리스도가 소용없는 그런 존재가 되는거에요.

13장 9절에 보면, (잠 13:9)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

이것은 종교의 성인 군자를 떠나서 일반 상식으로도, 나이 좀 드신 분은 이 정도 상식을 다 알 수 있잖아요. 하지만, 이것을.... 하는 것은 인간들이 할 가능성이지만, 이것을 구조적으로 보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아니면, 구조적으로 하나님의 지혜라는 구조 속에 오지 않으면 우리는 이 깊은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내가 물음표를 쳤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없으면 십자가의 영이 없으면, 우리 마음 속에 주님의 용서가 없으면, 이게 없다고 한다면, 이 전체를 두 자로 할 수 있습니다. 그냥, 흔적. 흔적이 되면 이건 바로 불교의 무아론입니다.

네 마음판 마저 버려라. 모든 것은 우연이며 흐름에 불과하다. 모든 것은, 전도서 1장 1절과 비슷하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 이래 됩니다. 모든 것이 흔적이죠. 흔적이니까, 흔적이라는 것은 로랑 바르트라는 사람이 흔적을 이야기, 기호학을 텍스트와 연결해서 기호학을 정리한 사람인데, 그 사람이 사진론을 연구하면서, 뭐라고 이야기했는가하면, 일본에 있는 어떤 할아버지 사진, 손자와 찍은 할아버지 사진을 내면서, 여러분 중에 이 사진 속에서 일주일 후에 죽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나와 봐라. 그러면 그 사진 봐서는 할아버지가, 할아버지와 손자가 찍었다 그것만 나오죠. 정지된 시간만 나오죠. 그런데 일주일 뒤에 할아버지가 죽은 후에 그 사진을 다시 보면, 그 사진은, 그 사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없어질 것을 미리 보여준 하나의 흔적이라는 것이죠.

그러니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모든 사진은 하나의 사실을 찍는 것이 아니라 없어질 것을 찍어내는 것이 그것이 사진이라는 것이죠. 결국 이 세상이라는 것은 멈췄다고 생각하면 멈춘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어디론가, 알 수 없는 곳으로 빠져 나가는, 그런 흐름을 찍어 내는 것이 사진의 기호학이라고 합니다. 로랑 바르트가 하는 말이.

그래서 이것도 마찬가지. 어떤 주어진 하나님의 지혜의 완성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지혜라는 것을 모르게 되면, 십자가가 구원한 지혜를 모르게 되면 인생이라는 것은 결국, 자기 변명조로 그래 너는 그렇게 살아라 나는 이렇게 살래. 자기 옹호하는 쪽으로, 세상은 어차피 그렇고 그렇게 흘러가는 걸. 이런 식으로 그것을 정당화 시켜버려요. 이것은 극히 자아 중심적이며, 자기밖에 모르는 어리석은 자의 대표...다 이 말이죠.

14장에 보면, 선의 원칙과 악의 원칙은 분명해서, 14장 22절에 (잠 14:22) 악을 도모하는 자는 잘못 가는 것이 아니냐 선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인자와 진리가 있으리라 역시 또 구조입니다. 지혜라는 구조에서는 면도칼이 작용해서, 또또또... 모든 인간들이 이 정도 하면 괜찮지 않습니까? 하는 것을 다 삼켜버리고 잡아 먹는, 말씀이 우리를 못살게 굴어요. 다 잘라버리는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29절에 보면, (잠 14:29)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다른 말로 하면 타인을 대할 때는 지혜를 앞장 세워야 한다. 제발 너 자신을 앞장 세우지 말고, 지혜를 앞장 세워라.

어떤 사이에, 지혜가 흘러야 하는데, 부부사이도 마찬가지고, 지혜를, 아내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면 안 되죠. 항상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지혜가 흘러서 지혜가 맺어줄 때 그 때 아내는 아내답고, 남편은 남편다운 것이죠. 부부관계에서.

그런데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자기 개인 중심으로 나가 버려요. 본드가 있어야 해요.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께 경외할 수 있는,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스도를 위해서 하라는 말이 있잖아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해 준 허락 때문에 했다 하는 뭔가 너 말고, 제 3자. 제 3자 하니까 기억나는데, 솔로몬의 재판 가운데, 마찬가지로, 기억나죠?

제가 되풀이 합니다. 여러분 또 다 끝나고 난 다음에... 잠언, 뭐...

눈에 보이지 않는 제 3자의 지혜가 개입해서 그래서 공정한 재판이 유지된 거에요. 자칫하면 둘 다 다 잘났다. 하고 억울한 사람은 억울한 길로 계속 가버리면, 억울함이 계속 가버리면 이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잖아요.

제발 자기 혼자 나서지 마라. 인생을 살면서 어느 자리에서 뭔가 동반자, 동행자를 끌로 왔어요. 그 동행자가 누구여야 합니까? 지혜죠.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예를 들어서 기도하려고 산 위에 올라갔는데, 하나님 저 기도하려고 산 위까지 올라왔습니다. 하나님 응답하기를, 내려가라. ... 있어야죠. 하나님 하늘에 가만 계셔요. 제가 기도 열심히 할께요. 이러면 안 돼요. 쓸데없는 기도하지 말고, 내려가라. 네가 지금 기도할 군번이 아니다. 기도할 의도가 뭐야. 내가 한 번 지적해 볼까? 잠언서 한 번 들이 대? 네 욕심이잖아. 내려가. 내가 따라서 내려갈테니, 내려가. 이게 기도의 응답이에요. 기도라 하는 것은 항상 뭔가 차 있는 것을 쓰레기 비우듯이 비워야 해요. 우리 동네는 화목금에 쓰레기 비웁니다. 이렇게 비워져야 돼요.

교회 몇 번 안 나오면 쓰레기가 꽉 차 있어서, 이게 습관화 되어서, 자꾸 변명조로 나가 버립니다. 나올라고 했는데, 오다가 박았는데...

15장에서는 여호와의 여유를 닮아라. 그것이 지혜다. 악한 사람이 잘 되는 것에 대해서 너무 부러워하지 마라. 이것이 여유 아닙니까? 보통 가진 자의 여유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반대로 비운 자의 여유, 내 것이 없다는 것에 대한 여유. 내 속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서 불쌍하게 여겨서 주신, 내 것이 아닌 주신 것으로, 내 것이 없다는 것에 대한 여유.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헤어지더라도 여유. 이것은 남녀관계에 있어서 목사님, 어떻게 하면 남에게 인기있는 여자가 되고, 인기있는 남자가 될 수 있습니까? 하는데, 남녀관계에서는 묘한 법칙같은 것이 있어요. 그것은 내게 결핍된 것을 채울 수 있는 상대를 찾는 찾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은 결핍을 느끼면 뭘 찾는가하면, 여유있는 사람을 찾아요. 여유있는 사람. 돈으로... 정신적으로 여유있는 사람. 돈 좀 있어도 아끼는 사람은 안 좋아해요. 여유있는 사람. 그래서 넉넉하고 여유있는 사람을 말려도 존경하게 되어 있고, 그렇게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유가 있다는 말은 뭔가 안정감이 있다는 것, 정서적으로 안정감이 있다는 것. 사람이 정서적으로 안정감이 있다는 것은 내가 지킬만한 내 것이 없어질 때, 지킬만한 내 것이 없어질 때, 우리의 모든 짐은 없어진 것이에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짐을 대신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짐을 지되 그 짐이 너의 짐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줌으로써 그 짐을 편하게 질 수 있는 방법을 지혜로써 이야기하는 겁니다.

아예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날아가버려도 소용, 상관없는 여유, 욥기가 바로 그런 것이잖아요. 주신 자도 하나님이요. 주신 자도 하나님이요, 가지고 가신 자도 하나님이요. 주신 자가 줄 때 뒤에 끈이 묶여 있어요. 언제 가져 간다는 것이 되어 있는데, 우리는 주신 것만 하고 끊을 생각 안하고, 주신 자가 고무줄 튕겨서 가져 가면, 왜 가져 갑니까? 따지는 겁니다. 원래 맛만 보라고 준거야.

마트에 가서 제일 얄미운 사람은 세상에 마트에 있는 조그마한 군만두를 맛만 보라 하는데 거기서 식사 한 끼를 해결해 버려요.

우리는 맛만 보고 세상을 떠납시다. 여러분. 할렐루야다. 이것저것 맛만 보고 떠나요. 내것 가지지 말고, 뭐 그거 붙잡았다고 하나님 천당 보내는 것이 아니거든요. 이런 저런 겪은 일에 대해서 서로 감사하면서 구원 받는 것은 주님의 정죄함이 없나니, 죄가 없는 자만이 천국 갑니다. 죄가 없는 해결은 예수님 십자가 피가 죄를 없애주지, 열심히 살았다는 이유가, 나의 습관이 죄를 없애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 습관은 구조가 바뀌면 또 다른 습관으로 대체됩니다. 인간의 생물은 적응하는 본능이 있어서 그래요.

그 다음에 15장, 시간 내에 끝납니다. 빨리 하면 끝날 수도 있어요.

지혜의 속성은 가난한 자의 존재의 이유를 드러낸다.

15장 25절에 보면 (잠 15:25) 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느니라

거만한 자의 집을 헐어버리시고, 원래 출애굽을 할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 것이 없었어요. 고아요, 과부요, 나그네였습니다. 애굽에 있을 때,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된 사람을 하나님의 사회적 조건과 가정적 조건에 의해서 전쟁에 의해서, 실제로 이스라엘이 건져내 놓고, 그 사회 속에 고아와 과부를 뿌려놔요. 뿌려 놓고, 고아와 과부를 가지고, 그들 가운데 지혜처럼 움직일 때, 고아와 과부를 보면서 야, 저게 옛날에 애굽에 있을 때 그 실체다 하면서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그게 바로 지혜를 아는 사람이고, 꼴 좋다. 재수 되게 없네. 나는 잘 되었는데, 이렇게 하고 자기 과거를 잊어버리면 주님의 은총을 잊어버리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주위에 고아와 과부를 나두신, 땅이 없는 사람을 나 두신 지혜의 교묘한 전략에 말려들게 되지요. 너는 쓸데없는, 너는 악한 놈이다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일을 꼭 그렇게 하세요. 그렇게 해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나는 부자이지만,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관계없이 가난한 자로, 나는 가난한 자로 유지돼 줘야, 거기 가난한 주님의 풍요한 부요하심이 생명이 주어지는 겁니다.

여러분 일상에서 하나님이 항상 여러분들을 가난으로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뭐가 있나니 복이 있나니, 뭐가 그의 것이다. 천국이 저희 것이다. 천국 가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뭐냐? 전부다 가난한 자에요. 심령이 가난한 자라니까.

그것은 구조적으로 역사해야지, 우리 힘으로는 안 돼요. 주체 활동으로 되지를 않습니다. 가난한 자를 만들기 위한 구조 만들기가 잠언이에요. 그게 지혜고, 욥기고, 욥은 다 뺏어가잖아요. 이게 구약, 이해 되시죠. 우리는 어떤 구조 안에 놓여 있다는 것, 주체가 아니고, 내가 이것을 지켜서 구원받겠다는 것이 어떤 구조 안에 놓여 있는 겁니다. 이미 아들이기 때문에 그 안에 놓여있는 겁니다.

이런 고아와 과부를 어려운 사람을 비웃다가는 우리가 언제 본인이 또 그러한 하나님의 가난한 자의 매개체로써 그들 가운데서 참 서러움과 혹독한 비난을 받고, 그렇게 받을 수밖에 없어요. 그럴 때 우리는 십자가의 아픔을 느끼죠. 아, 주님도 이렇게 하나님의 지혜였지만 이 땅에 와서 서러움을 받고, 심지어 죽기까지 낮아졌구나. 사람들에게 떠 밀림을 당했구나, 배척을 받았구나. 그래서 베드로전서에 보면, 너가 복음으로 고난을 받거든 오히려 기뻐해라. 성령이 너희 머리 위에 있느니라, 성령이 머리 위에 있느니라.

예수의 복음, 복음으로 인하여 네가 환란을 받거든 네가 증거하는 복음 때문에 환란을 받거든 오히려 즐거워하라. 주님의 성령이 너와 함께 있느니라 이랬어요. 오늘 날 교회 이런 설교 했다가는 교회 다 나옵니다. 축구하러 나오는데, 뭐 할라고, 이제 교회 축구하러 나와요. 축구하러.

완전히 교제 단체에요. 그러니까 노닥거리는 곳입니다. 16장 1절에 (잠 16:1)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이것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일은 제 눈에는 다 잘되어 보여도 여호와께서는 속 사정을 속 마음을 다 헤아리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16장의 주제는 뭐냐? 세상만사는 여호와 손에 달렸다. 그 다음에 17장, 진도 나가는 재미도 있어야지.

16장 25절, 자신의 총기를 의존하지 마라. (잠 16:25)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참 무서운 말 아닙니까? 면도칼. 면도칼. 봐 주는 것이 없어요. 잠언 되시는 분이 동사무소 직원 같으면 주민등록 떼로 가지 않고 다 피할 겁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주민등록초본 떼러 왔습니다. 당신 보기에는 바른 길 같지만 당신은 죽음에 이릅니다. .... 알았심더, 다른 데 가버려야지.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를 피해 버린 거에요. 분명 똑똑한데, 너무 똑똑해도 탈이라. 우리 습관에 안 맞아. 우리 구조, 우리 현재 그 시대 구조에 안 맞아. 우리 습관에 안 맞는단 말이죠.

그 분이 죽으심으로써 그 분의 의가 우리 더러운 죄를 대체함으로써 우리가 구원받는 겁니다. 그러니 제발 예수님을 밀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싫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찌어다. 막 가자는 것입니다. 주님 쪽에서는 양보가 없습니다. 이제 막 가자는 이야기입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 받은 줄 알아라. 심지어 그것보다 더 과격한 이야기를 하시죠. 무덤에서 다시 만나자.

네가 뺀질이처럼 죽으면 이제... 싶은데, 무덤에 있는 자들이 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환장합니다. 옆 집에 있는 아가씨가 자기는 안 좋아하는데, 앞 집 아가씨가 따라다녀가지고... 영국, 영국씨 따라다니면, 저거 귀신이 안 잡아 가나,,, 해서 이사를 갔단 말이죠.

이사를 가서 두 번 다시 귀신 같은 춘자 씨 안 본다고 좋아했는데, 무덤 뒤에 가니까,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누구닙까? 춘자씨 아닙니까? 어머나! 영국 씨 여기서 만났네요. 찐드기도 그런 찐드기가 없어요. 그 최고 찐드기가 누굽니까? 예수님 아닙니까! 네가 내 음성 들어서 교회 안 나오는데, 죽고 난 다음에는 안 들을 줄 알았는데, 세상에 그 때에 인자의 목소리를 들을 때가 오나니, 예수님 믿는 자는 영생의 부활로, 안 믿는 자들은 지옥의 부활로 결정됩니다. 아~ 찐드기. 왜냐면, 구조가 그렇기 때문에, 주님도 구조 밖으로 못 벗어나요.

17장에 보면, 쓸데없이 인간과 경쟁하지 마라. 주님의 지시를 받기 분주한 사람은 사람에 대해 의식할 여유가 없습니다. 사람의 행동에 의식한다는 것은 그만큼 죄가 하나님에게 관심이 없는 순간에 와요. 주님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은 사람이 뭐라고 해도 별로 신경이 안 쓰이는데, 달리 주님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는 사람은 맨날 저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생각하고, 맨 날 그거 연구하는 거에요. 너무 남을 의식하니까.

사람이 왜 자살 합니까? 혼자 살면 자살 안 해요. 꼭 남을 의식해서 그래요. 목사님 그렇게 장담할 이유가 있습니까? 이유가 있지요. 자살할 때 꼭 한강 뛰어 들어가요. 보란 듯이. 일종의 복수라는 차원에서. 네 엄마 때문에 못 살겠다. 농약 먹고 자살한 사람. 내가 교회있으면서 한 두 번 당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당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마을에, 우리 교인들 가운데서, 아빠 미워서 못 살겠다. 16살 먹은 애가 농약 먹고 자살을 기도해요.

주님의 말씀 볼 생각 안하고, 내가 주님 앞에 ... 생각 안하고, 자기 자존심을, 자기 죽음을 담보로 해서 자존심 유지하려는 거에요. 그 놈의 자존심이 목숨보다 더 중요해요. 성경에도 나오지만 네가 명예를 찿으라면... 해라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만.

지혜는 17절 하나님의 원칙과 세상의 원칙 둘 다를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께서 개입하지 않으시는 세상이란 아예 없습니다. 그것이 17장의 내용에 나옵니다. 쭉 보면 그렇게 나옵니다.

그 다음에 18장, 인간을 의식하지 마라. 마찬가지입니다. (잠 18:1) 무리에게서 스스로 갈라지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공동번역 잠 18:1) 남 잘되는 것을 배아파하는 사람은 외톨이가 된다.

그 다음에 8절에 보면, 지혜는 남의 심지까지 꿰뚫을 수 있다.

(잠 18:8)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이런 지혜를 알면 고자질 하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고자질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깊게 하는구나는 것을 알고 듣는 사람은 그것을 상처는 아니지만 기분 좋게 오래...

그런 의미에서 연예인들의 사생활은 노출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연예인들의 수입이라는 것은 남들은 농사 지어서 돈 벌지만, 연예인들은 자기 사생활을 가지고 남들이 씹는 그 대가로 돈을 받는 거에요. 씹으면 씹을수록 돈이 생기는 거에요. 일부러 스캔들까지 조작하죠.

그게 인기가 있으니까, 그런데 뒤에 가장 문제는 씹을 때 그 때가 좋을 줄 알아요. 씹히는 대상도 아닐 정도면 이미 인기도 날아가버립니다. 연예인은 죽음입니다. 그래서 연예인들은 무슨 일도 많아요. 안제리나 졸리라는 사람은 사생활까지 다 이거 해 가지고, 카메라 대고, 수 백명이 앉아서 .... 뭔가 졸리 돈 되는 것.... 그게 사는게 사는 것이 아니죠. 완전히. 원숭이 우리 안에 사는 것이죠.

마이클 잭슨은 아 앉고... 하다가 걸려가지고 벌금 물고... 저 멕시코 사람들 백 날 해도 괜찮은데, 마이클 잭슨은 이거 한 번 흔들었다고 벌금 물고, 유아 핍박했다고....

14절에 보면 (잠 18:14) 사람의 심령은 그의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공동번역 잠 18:14) 정신만 살아 있으면 병도 이긴다. 정신이 꺾인 사람은 희망이 없다.

이 말은 세상에 대해서 겁내지 말라는 말입니다. 세상 반경이라는 것은 지혜에 따르면 뻔하다 이 말입니다. 뻔할 뻔자다. 세상이라는 것은 별개없다. 뻔하다. 지혜가 있으면. 모든 것이 선과 악, 악과 선의 충돌이라고 보는 겁니다.

19장 1절 재산에 주눅들지 마라. 1절에 보면 (잠 19:1) 성실히 행하는 가난한 자는 입술이 패려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

더럽게 재산을 모으기 보다도 가난해도 떳떳하게 살아라. 이렇게 고집해서 가난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지킵니까? 못 지킵니까? 못 지켜요. 자기가 부자 안 되어 봐서 어려운지 몰라요. 부자되면 다 버립니다.

19장 11절에 사람이 슬기로우면 좀 처럼 화를 내지 않는다. (잠 19:11)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아까 말 했듯이 여유를 가져라.

13절에 보면, 아내의 바가지를 긁으면 천장에서 비가 센다.

(잠 19:13)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재앙이요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얼마나 긁었으면 비가 세겠습니까? 다른 말로 하면, 아내의 바가지는 끝났나 싶으면 안 끝나고, 끝났나 싶으면 안 끝나고, 마치 뚝, 뚝, 끝났지? 뚝, 뚝, 천장에서 세는 빗방울 같이, 계속해서 떨어져가지고, 고마해래, 고마해래, 끝도 없어요. 끝으로 마지막으로 당부한데이. 노파심을 가지고 다시 한 번... 계속 떨어져요.

그렇게 바가지 긁으라고 하나님께서 슬기로운 아내를 붙여주신 겁니다. 그게 자칫하면, 뭐가 되요? 구조 안에서. 습관이 되어가지고, 잔소리를 듣지 않으면 살 맛이 안 나는거죠. 그런 남편이 한둘이 아닙니다. 저를 포함해서. 구조화되었어요.

세상 사람들의 허점을 알아야 해요. 그걸 위해서, 그걸 위해서. 그렇지 않으면요, 부부 간에 대화 끊어지면 끝나는 겁니다. 죽은 겁니다. 진짜 이것은 이혼감이에요. ...것을 해도 대화는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20장에 보면, 19장은 세상 사람들의 허점을 알아라.

20장에 보면 인간은 뻔하다. 20장 1절에, (잠 20:1)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

인간 뭐 있어? 한 방이지. 인간 아무것도 아니에요.

20장 11절에 보면, 지금 한 행실을 나쁜 짓, 좋은 짓을 안다고 했지요. 인간의 속성, 버릇도 알고 있어야 된다. 인간은 속에서 나오는 것이 뻔하다.

(잠 20:11) 비록 아이라도 그 동작으로 자기의 품행의 청결하며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

14절에 보면, 물건 살 때는 나쁘다, 나쁘다 하면서 돌아서서는 잘 샀다하면서 속으로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어요.

(잠 20:14) 사는 자가 물건이 좋지 못하다 좋지 못하다 하다가 돌아간 후에는 자랑하느니라

인간의 심보를 알아라는 말이죠. 이게 잠언에 나와요. 그러니 인간은 믿을 것이 못되고 그 다음에 변덕쟁이라 이말이죠. 변덕쟁이.

25절에 보면, (잠 20:25) 함부로 이 물건을 거룩하다 하여 서원하고 그 후에 살피면 그 것이 그물이 되느니라

인간 자체가, 인간의 심성이 오래 못 가요. 결심, 결심해서 내가 다시는 안 그럴게. 다시는 안 그럴게를 믿는 그 사람은 정말 바보입니다. 그것은 반대로, ‘다시 또 할게’로 들어야 해요.

그래서 우리는 회개할 때, ‘다시는 안 그럴께요’로 하지 말고 주여, 날마다 면도칼이 나를 또또또... 돌아다니면서 다 주께서 저를 삼켜주옵소서. 저를 늘 허공으로 만들어줘서 여유있게 살게 하옵소서. 여유있게. 예민하게 살지 말고, 여유있게. 어차피, 어차피 우리는 뻔한 인생인데, 뻔한 인생을 관까지 지금 운반을 하고 있어요. 죽을 때까지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끝까지 운반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끝까지 계속 비어지고, 그리고 주님의 은총, 사죄, 용서. 그것만이 우리에게는 귀한 보물입니다.

제가 어제 이야기했죠? 세리가 기도할 때 뭐라했습니까?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이것을 20대 한 번만 하지 말고, 30대 하지 말고, 40대 하지 말고,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나는 죄인입니다. 그렇게 살아야해요. 한 번 죄인했다고 그 다음부터 봐 주는 것이 없어요.

21장에 보면, 세상사 인간 힘으로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잠 21: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22장 24절, 달란트에 우쭐되는 사람은 거만한 자다 그런 사람은 남을 깔보는 무례한 짓을 한다. (잠 21:24)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

사람에게 기대하지, 기대할 것이 없어요.

21장 30절에 누가 감히 여호와 앞에 나서서 지혜롭고, 슬기를 얻겠느냐, (잠 21:30)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하느니라

31절에 전시를 대비해 병마를 준비하더라도 승리는 누구에게 있다? 승리는, 여호와께 있다.

(잠 21:31)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세상은 하나님 뜻대로 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을 허공으로 비워야해요. 22장 8절에 보면, 악을 심으면 재난을 거두고, 홧김에 남을 때리면 그 몽치에 제가 맞는다. (잠 22:8)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

그 자기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그 허무한 행위는 결국 자기에게 허무로 돌아온다는 거죠.

23장 1절에 보면, 그 때는 눈치없이 살지 마라. 상황에 맞도록 행동하라는 말이죠. 임금과 한 식당에 앉게 되거든, 그 앞에 누가 있는지 살펴서 마구 먹지 않도록 조심하라. 입에 망을 씌워라. 분수를 지켜라. 주제 파악을 하라는 말이죠.

(잠 23:1) 네가 관원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게 되거든 삼가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 생각하며

23장 12절에 보면, 세상 일을 너무 완벽하게 기하려고 하지 마라. 세상 일을 너무 완벽하게 하지 마라 이 말이죠. (잠 23:13)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때리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완벽을 위해서, 나는 안 때리고 멈추겠다. 이러지 마세요. 성질 나는데, 성질 나는대로 패줘야 돼요. 니성질 내성질 합쳐서 지혜가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지혜가 그 가운데 사이 사이에.... 아까 식당에서 식사하실 때 호텔 직원들이 사이 사이에 다니면서 뭐 합니까? 써빙하죠. 물 써빙하고, 반찬 써빙. 계란 한 번 더 얹어주고 하죠. 지혜가, 우리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하나님 아들 만들기 위해서 지혜를 보내셔서, 수호천사를 보내셔서 우리 가운데 이렇게 해요. 부부 사이든, .... 활동을 합니다.

그분이 .......우리 개인이 늘 허공이 되어서, 말씀에서 전부다 또또또 해가지고 다 잡아 먹혀야 우리 마음에 다른 분이 도와 주셨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25절에 보면, 23장 25절에, 남의 기쁨을 받아줘라.

(잠 23: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유일한 효도인데, 이것은 뭐냐하면 하나의 지혜로써 하나님의,...... 성경에는 효도라는 이런 해석(개념)이 없어요. 뭐냐하면 아버지는 계시 전달자입니다. 그것을 잊으면 안 돼요. 부모는 자식에게 다 해 주고, 그냥 가면 되지. 무슨 대가를 바라면 안 됩니다.

디모데전선가에 있어요. 50 넘은 과부는 교회에 ... 하지 말고, 자식들에게 공궤를 받으라는 말이 뭔가하면, 최소한의 생활은 ..... 어떻게 전적으로 부모를 위해서 자식이 있다는 것은 이것은 말이 안 돼요.

부모의 역할을 하도록 하세요. 그것은 뭐냐? 다 주고, 다 주고... 모든 것을 자식에게 다 주고 가는 거에요. 여러분 가운데 형제가 없고, 자기 혼자 인 사람은 기분 좋아하세요. 아버지 엄마 재산 몽땅 지가 땡겨 쓰면 됩니다. 형제있으면, 형하고 나중에 싸웁니다. ....... 아들이고, 딸이고 하나만 있으면 편해요. 보험도 챙기면 되고... 결혼 조건에서 혼자십니까?

그 다음에 23장 30절에, (잠 23:30)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폭탄주죠. 혼합주를 찾아 다니는 사람들, 이 사람은 이미 눈은 풀렸고, 정신이 나갔다 이 말이죠. 이건 해석이 뭐냐? 사람이 어두우면 앞이 캄캄하면, 뭐만 쳐다본다? 자기 그것만 생각해서 아무리 때려보아도 아프지 않고, 맞아도 아무렇지도 않더라. 술김에 또 마셔야지.

23장 35절. 술김에 또 마셔야지. (잠 23:35)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술아, 술아, 술아, 이런 노래가 있어요. 노래 희한해요. 한 잔의 술을 마시며, 이런 노래도 많아요.

24장에 보면, 세상을 부러워하지 마라. 악한 자를 부러워하지 마라. 지혜가 없다. 그들 사이에 지혜가 통하지 않는다. 바람이 안 통해요. 서빙하는 사람이 없어요. 우리를 서빙해주는 사람이 없어요.

지혜의 발휘에 있어서, 모든 공로는 지혜에 있고, 너에게는 없다. 이것이 바로 죽음에 있는 자들도 지혜가 끄집어 낸다는 구절로 알 수가 있습니다.

24장 25절에 보면, 사람을 갈구지 마라. 대적할 가치가 없다. 그냥 봐줘라. 넘겨줘라. 다투지 말고.

24장 11절, 잠 (24:11)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라

이것은 지혜가 그렇게 하는 것.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그만큼 효과가 있다는 말이죠.

25장에 일을 숨기는 자는 하나님께 영광이고, 일을 파헤치는 것은 임금님의 영광이다.

(잠 25:2)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

이 세상은 두 분 다 해먹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임금은 누구입니까? 다윗 언약대로 하시는 메시야 그리스도지요.

25장 7절에 보면, 낮은 자리에 가거라. 괜히 높은 척 하지 말고, 존경을 강요하다가 존경으로 인하여 비난을 받는다. 아예 처음부터 낮은 자리에 가거라. 그래서 올라오시오. 할 때, 그런 소리가 있거든, 그 때 올라오면 된다는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과욕은 금물이다. 지혜자는 과욕을 금지해야 한다. 꿀을 봐도 너무 먹지 마라. 아는 사람도 문턱이 닿도록 드나들지 마라. 목사가 교인 사정을 너무 알아도 안 되죠. 그건 실례입니다. 어떤 때는 제가 가끔 아침에 휴대 전화에 전화해 가지고, 실례한 적이 있지만, 그것은 급한 경우에만 그렇습니다.

(잠 25:16) 너는 꿀을 만나거든 족하리만큼 먹으라 과식하므로 토할까 두려우니라

(잠 25:17) 너는 이웃집에 자주 다니지 말라 그가 너를 싫어하며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시도 때도 없이 출근 도장 찍을 때, 처음에는 좋던데, 이젠 지겨워. 이 말은 뭔가하면 쓸데없이 이웃의 화를 돋우지 마라.

다같이 이야기합니다. 사람이 어떤 사람을 원한다? 여유로운 사람을 원해요. 여유로운 사람. 어지간히 비난해도, 예, 알겠습니다.하고. 예민하지 않는 사람. 여유 있다는 말은 뭐다? 또 잊어버렸죠? 여유가 있을 때는 그 마음에 뭐로 있다? 허공이에요. 허공! 그 사람 마음 속에 뭐만 들어있다. 난 죄인인데, 뭐... 뭐가없다? 정죄함이 없느니라. 그런 여유만만. 그게 여유만만이에요.

26장에 보면, 반(反)지혜, 어리석은 놈들을 구경해봐라. 얼마나 어리석은지!

27장에 보면, (잠 27:1)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세상 너 중심이 아니라는 말이죠. 너 중심이 아니다.

27장 10절에 보면, 이웃 사촌이 너 먼 동기보다 낫다. (잠 27:10) 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네 환난 날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지어다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

무리하게 완벽한 대책을 강구하지 마라. 그냥 다급한대로 그냥 쓰라 이 말이죠. 너무 완벽하게 살려고 하지 마라 이 말이죠. 그러면서 자기 일은 완벽하게 살려고, 그러니 모순되죠.

27장 19절, 니 꼬라지를 알라. 니 자신을 알라. 지옥과 저승이 아무리... 한이 없듯이 사람의 목숨도 뭐가 없다? 끝이 없다. 사람의 목숨도 끝이 없다. 부모가 자식 때릴 때, 이젠 인간 되겠지? 천만의 말씀입니다. 때리고 난 다음, 헤헤 거립니다.

자식은 적응이외에는 없어요. 적응입니다. 적응. 자식은 적응이에요. 좀 부모가 헬렐레 하면 달라지고, 좀 엄하면, 기가 팍 죽어서 헤헤 거리면서 뭐 해 드릴까요? 설거지 도와드릴까요. 이게 뭐냐? 적응을 배우는거에요. 사회에 살아가는 적응. 누구를 좋아한다고? 지밖에 안 좋아해요. 부모 안 좋아해요. 부모는 이용가치가 있을 뿐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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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79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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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