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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8 십자가마을 여름수련회 9강자유게시판잠언

2008 십자가마을 여름수련회 9강

이름 : 최형중(IP:221.159.6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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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마을 여름 수련회 잠언 9강

시간이 되었음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잠언 1장에 보면,

(잠 1:2)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나는 너희를 어리석은 자로 기정사실화시키겠다.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이 말은 너희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겁니다. 내가 가르치기 전까지는 내가 지혜를 전파하기 전까지는 너희에게는 지혜가 없다. 아무것도 모른다. 잘 들어라. 잘 들어라. 그리고 알아야 된다. 들어라. 알아야 된다. 그게 잠언의 전부에요. 들어라. 알아야한다. 왜, 너희들은 왜, 무식하니까. 무식하니까.

그래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헤아리게 하기 위해서 1장 2절에 나옵니다. 철부지를 깨우쳐 뜻을 세우게 하고, 그 다음에 그 모든 것의 뜻의 그 목표점은 여호와를 경외하고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섬기게 하는 것이 내 가르침의 목적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이 가르침이 없기 때문에 너희들은 여호와를 경외하기 않고 섬기지 않고 있으니까 너희들은 들어라, 알아라.

그 이유는 너희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경외하지 않기 때문에 오직 너희를 정의하려는 목적, 그 목적 하나의 일념으로 너희를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부모와 아들 사이에 여호와의 지식이 개입되어야 됩니까? 그것은 바로 8절부터 쭉 나와요.

너는 아들이기 때문에 아들은 나쁜 길로 가서는 안 되기 때문에 아들은 아버지를 만나야 되잖아요. 아들이 아버지를 못만나는 아들은 아들이 될 수 없지요. 그래서 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에 너를 진정 아들의 길, 아버지를 만나는 길로 내가 가르치는데, 그것이 바로 지혜다. 그 제대로 가르치겠다는 증거는 뭐냐? 여호와를 경외하고, 두려워하고 섬기는거. 그런 것이 나온다면 넌 아들 맞아.

그렇다면 못된 길로 간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이 세상에 악한 길이 이미, 기존 상주되어 있기 때문에, 악한 길이. 이 세상에 악한 길이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지혜와 명철이라는 것이 무엇인가하면, 좋은 것이 무엇이냐만을 아는 것이 아니라 무엇도 알아야 돼요? 아하, 이것은 아들의 길이 아니구나, 이것은 나쁜 길이구나를 깨우치는 것도 그것이 여호와를 섬기고 경외하는 자는 반드시 거기서 도출될 수밖에 없는 현상이 뭐냐? 이것은 나쁜거야. 이것은 옳은 것이 아니야 하는 것도 같이 병행해서 알 때, 양쪽을 다 알 때 비로소 아들답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아들 알라고 할 때 자꾸 뭐만 생각하면 돼요? 모델이 예수님이니까, 예수님께서 날 믿어라 그 이야기 한 것이 아니죠. 너희들은 독사의 새끼들아 라고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이것은 아니고, 이것은 기고 자꾸 양쪽을 대비시켜서 구분한다는, 그 양쪽 다 알 때, 한쪽만 알아서는 안 돼요. 양쪽 다 알 때, 제대로 여호와를 경외하고, 여호와를 섬길 수 있는 아들다운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그 이야기를 1장부터 쭉 하고 있는 겁니다.

1장부터 5장까지는 하나님의 지혜를 붙들어라. 6장부터 31장 마지막까지는 뭐냐, 아들아 알아라, 지키라는 것은 나중 문제이고. 무조건 이것이 나쁜 것이니 그것은 알고 있으라는 말입니다.

1장 16-17에 보면 그 악한 길에 있는 길이 그냥 길만 덜렁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길에서 이미 활동하는 악한 세력이 있다는 거에요. (잠 1:15)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악은 그냥 악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실재로 거기서 자기 편으로 악한 편으로 끌어 댕기기 위해서 활동하는 어떤 세력이 상주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로 갔다가는 그들에게 잡아 먹힌다. 그래서 21-22절에 보면, 직접 지혜되시는 분이 지혜의 모델이 되시는 분이 직접 나서서 거리에서 외치죠. 뭐라고 외칩니까? 나무라면서 외치죠.

(잠 1:20)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잠 1:21)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 (잠 1:22)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그러면서 그 길거리에 다닙니다. 그래도 그들은 뭡니까? 그 하나님의 말씀을 손을 내밀지도 않고, 충분히 받아들이지도 않고, 그냥 자기 본성대로 가지요. 그럴 때 갑자기 그 외쳤던 지혜자에게 박장대소, 크게 웃으시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것을 세 자로, 경상도 말로 ‘꼬시다’<샘통이다, 까불더니 잘됐다-녹취자 주> 라고 합니다. 살짝 꼬신 일이 일어납니다. 26절을 봅시다.

(잠 1:26)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꼬시다. 1장 내용은 아들아, 그냥 아들이 아니라 어리석은 아들아 나에게 배워라. 아들답게 하나님을 섬겨야지. 나쁜 길로, 나쁜 놈들이 기다리고 있다. 너 말 안 들으면 꼬시다. 여기까지 했어요.

그 때 너희가 나에게 부르고 하더라도 그 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 나는 온데간데 없이,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사라져버렸다. 결국 어리석은 자는, 그 어리석은 자의 본색을 들어내어서, 아하, 아들인줄 알았더니만, 아들이 아니었구나. 교회 다녀가지고 성도인줄 알았더니만, 교회 다닐 뿐이지 성도가 아니었구나. 그냥 너 갈 길로 가세요. 어디 복음 아는 기회가 늘 오는 것이 아니잖아요. 다음에 내년을 기약합시다. 하지만 내년에 가야산 폭파 당하면 어떡합니까?

여기서 어리석은 자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지혜가 외칠 때, 있을 때 잘해, 있지요. 외칠 때 어리석은 자는 거역하고, 지혜로운 자는 반기게 되는 겁니다. 그런 현상으로 어떤 분이 지혜자로 길거리에 나타나실 것이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지혜자 할 때 뭘 생각했습니까? 예수님의 공생애를 생각하시면 딱 들어 맞지요. 아하, 주님께서 외치시니까 아무도 반겨주는 이가 없었구나.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 신을 보내주시는 것이, (잠 1:2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반드시 성령이 올 때는 뭘 합니까? 우리로 하여금 포기라는, 포기라는 흔적을 남기고 성령이 와요. 자기를 부인케 하는, 아하, 내가 잘못 살았구나. 깨닫게 하는, 책망을 받으면서, 책망을 뚫고, 주님의 영생의 신이, 하나님의 영이 우리 속에 예수의 마음이 우리 속에 들어오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도권이, 주체가 우리가 아니라 우리 속에 들어온 하나님의 지혜가 주도권을 쥐고, 우리는 솔로몬처럼 지혜롭게 살아갑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살아가죠.

2장 봅시다. 2장에 보면, 제 3의 인물을 소개합니다. 제 3의 인물은 여호와를 말해주는 그 메시야가 오죠. 여기에... 2장 5절, 2장 4절부터 보죠. (잠 2:4)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잠 2:5)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잠 2:6)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잠 2:7)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이 지혜에 대해서 여호와께서 직접 관여하신다. 직접 관여하시는데, 그것은 무엇과 대비가 되는가하면, 여호와의 약속을 언약이, 언약을 위배한 어떤 여인과의 그 태도와 완전히 대비된다는 겁니다. 이게 어려워요. 무슨 뜻인가 하면, 이 음녀가, 음녀라 하는 이 이방, 하는 말이 뭔가하면, 사람을 찾는 작업을 하잖아요. 음녀가 사람을 찾을 때는 뭐하게 찾습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뭡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없는, 하나님의 언약이 없는, 성경이 없는, 말씀이 없는, 곳으로 데려가서 오시는 그와 똑같이, 지혜를 아는 사람은 음녀가 하는 것처럼 똑같이 여호와를 찾아다녀야 된다는 이 말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모습에 누가 개입한다? 여호와께서 개입해서 만나게 해 주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지혜의 세계가 구상되는 겁니다. 그래서 2장 마지막에 보면, 그 지혜의 세상은 흠 없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떳떳한 사람만 살아남는, 완전한 자만 땅에 남는, 그런 세계를 이루겠다. 지혜의 목적, 목표에 대해서, 그리고, 앞의 구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3장에 넘어가 봅시다. 3장에 보면, 지혜를 통해서 누구를 만나는가 하면, 여호와를 만나고, 여호와하고, 맺어진 관계를 합니다. 지혜를 통해서 여호와를 만나는 겁니다. 여호와와 우리 사이에 그냥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쪽에서 내민 지혜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사귐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일어난다면, 그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천사보다 더 뛰어난 하나님과 아는 사이죠. 청와대하고 서로 아는 사이 같더만, 보통 아니잖아요. 30억 받았... 청와대가 얼마나 대단한지.

여호와께 개방된 사람, 여호와로부터 개방된 사람, 여호와가 밀려 들어 온 사람, 그런 사람이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선물을 주는데, 그것이 농경 사회에서는 뭡니까? (잠 3:10)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잠 3: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잠 3:10)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이것은 이미 이것은 하나님과 잘 하면 뭘 받는 관계가 아니고, 이미 하나님과 한 통속이 되어있는 그런 가치있는 관계 속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말을 하면 무슨 뜻인가하면, 사람이 사는 목적, 마지막 성도가 사는 재미가 뭐냐하면, 사람하고 상대하고, 하나님과 상대하는 그 재미, 그것이 그게 전부다는 말입니다. 여호와와 함께 교제하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고,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행복입니다.

그 다음에 3장 12절에 보면, 지혜에서 사랑과 미움의 대상이 확실히 구분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선 사랑의 대상이 되면, (잠 3:11)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잠 3:12)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무슨 아들입니까? 기뻐하는 아들이에요. 뭐가없으면 기뻐하는 아들이 아니다? 징계가 없으면 기뻐하는 아들이 아니에요. 징계가 있을 때, 징계를 맞을 때마다, 아, 기쁘다. 기뻐하는 아들, 내 아들, 내 아들 하면서 때리신다는 말이죠. 하나님은 참 특이한 성격을 가지고 계신 분이에요. 기쁘면 쓰다듬어 줘야하는데, 쓰다듬지 않고 때리신다는 거죠. 왜, 우리는 이미 어리석은 자이니까.

네가 붙잡는 지혜라는 것은 사실은 이 우주 전체를 붙잡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는 거죠. 왜냐하면 3장 18절에 보면, (잠 3:19)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에 터를 놓으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견고히 세우셨고

그래서 이런 사랑하는 자에게 갑자기 어떤 화가 미치더라도 너는 놀라지 마라. 왜, 여호와께서 너 곁에 계셔가지고 발목을 잡아주고 있기 때문에. 3장 24절 (잠 3:24)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

자다가 깜짝깜짝 경기들지 마세요. 여러분은 잠 자지만 주님은 주무시지 않는다고 했지요. 그런 사이, 그런 사이에 그런 관계에 들어가는 것은 그것은 바로 세상 사람들의 연애감정이나 사랑에서 얻을 수 없는 거에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 될 때 이런 혜택이 주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아들에게는 어떤 임무가 주어지는데, 그 임무는 맨 처음에 설명했습니다. 뭔가하면 우리 속에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들어오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의 운반체가 되고, 그럴 때 27-28절에 보면 (잠 3:27)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잠 3:28)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왜, 그 이웃을 누가 보냈기 때문에?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셨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들의 사명,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다 이 말이죠. 그래서 너는 아들이기 때문에 이웃에 대해서 헤칠 생각하지 말고, 시비 걸지도 말고, 그렇게 해라 이 말이죠. 이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어떻게 사셨는가를 여러분 보시면 되는 겁니다.

4장에 보면 아버지가 있으매 아들이 생겨난다는 겁니다. 아주 지극히 당연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4장 3절에 보면, (잠 4:2) 내가 선한 도리를 너희에게 전하노니 내 법을 떠나지 말라 (잠 4:3)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노라

그러니까 솔로몬이 다윗에게 아들이었다는 말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 아버지가 받았던 그 하나님의 축복을 나는 너에게 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에 전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 전할 수밖에 없다는 그런 뜻이죠.

아브라함의 복이 이삭에게 갔고, 이삭의 복이 누구에게 갑니까? 야곱에게 가고, 야곱의 복이 누구에게 갑니까? 요셉의 두 아들에게 가죠. 어긋맞게 축복해서. 창세기에 보면 나오죠.

그런 식으로 아버지를 십계명에 보면, 아버지를 공경하라 되어있죠. 아버지가 뭔가하면, 그 당시에 계시의 전달자에요.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는 자가 아버지였습니다. 그 때는 학교라는 것이 없었고, 서당도 없었고, 누가 교육하느냐, 아버지가 그 애의 장래를 책임질 수 있는 교육을 하는데, 그것은 아버지가 또 아버지에게 받았던 하나님의 언약에 관한 내용을 아들에게 아버지를 통해서 언약을 전하는 겁니다.

유월절을 보면, 유월절에 어떤 일이 있었다는 것은 대대로 아버지를 통해서 전해야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어디서 배우는가하면, 일 년에 세 차례, 유월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에 세미나를 열죠. 가야산에서 열리듯 세미나를 여는데, 그것은 성전에서 전체 아버지, 가장들을 모아놓고, 제사장이나 선지자가 가르쳐서, 그들이 가르쳐서 그 가르친 것을 가정에서 교육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그것은 내 아들이다, 이 말입니다.

아들하면서, 얼마나 이 아들아, 얼마나 이 지혜를 알면, 혜택이, 엄청난 혜택이 나오는가 쭉 나옵니다. 너를, 아버지... 내 아버지에게, 나에게 아들다워야 한다. 그리고 주신 모든 지혜를 단단히 붙들어라. 그러니까 아직까지 1장부터 5장까지 그냥 지혜를 붙들라, 붙들라 이야기 하지, 지혜가 뭔지 아직 이야기를 안 해요. 그런 것을 이야기를 안 해준다고. 계속 잔소리처럼 붙들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4장 7절 8절에 보면, (잠 4:7)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 (잠 4:8)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이것은 뭐냐? 그 지혜가 밀려오면, 우리 안에, 우리는 운반체니까, 그 지혜가 얼마나 존귀하고 슬기로운가를 우리 자신들이 우리 안에 있는 지혜를 보고 감탄하고 감동을 먹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지혜만을 자랑하게 됩니다. 지혜가 너를 길을 가르쳐 줄 것이고, 그것도 곧은 길을 가게 될 것이고, 12-13절, (잠 4:12) 다닐 때에 네 걸음이 곤고하지 아니하겠고 달려갈 때에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잠 4:13) 훈계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 이것이 네 생명이니라

그 다음에 또 이야기 해요. 14-15절 (잠 4:14) 사악한 자의 길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지어다 (잠 4:15) 그의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돌이켜 떠나갈지어다

그 놈들은 얼마나 악한지, 자꾸 대비시키는 거에요. 지혜없는 자를 알아야, 지혜없는 자가 어떤 행색인지 같이 아는 것이 통합적으로 지혜를 아는 것이죠.

(잠 4:16) 그들은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며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아니하며 (잠 4:17) 불의의 떡을 먹으며 강포의 술을 마심이니라

이렇게 왜 이런 짓을 합니까? 이것은 뭐가 아니기 때문에? 아들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지혜가 없기 때문에 그렇죠.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고, 지혜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원래 내 아들아 하는 인간도 어떤 인간인가하면, 똑같은 인간이었죠. 똑같은 인간인데, 뭘 주신다? 특별히 지혜를 주심으로써 네 속에 지혜있다. 내 속에 지혜있다. 이런 식으로 지혜가 이끄는 세계로, 네가 지금 끌려가야 될 내 아들이 되어야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불의한 자는 19절에 보면, 불의한 자는 지가 엎어지고 자빠져도 모든 것이 깜깜하기 때문에 무엇에 걸렸는지 알지 못하고, 어디에 걸렸는지 몰라요. (잠 4:19)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사람이 어두울 때, 누구만 볼 수밖에 없습니까? 앞이 깜깜하니까 자연스럽게 시선이 어디로 갑니까? 누구에게 모이죠? 자기 자신에게 모이죠. 그게 바로 어리석은 자에요. 어리석은 자에요. 여러분 형제들, 자식들 보세요.

형은 눈이 밝아서, 엄마아빠를 챙길 수 있어요. 역시 장남 값을 합니다. 그렇지 않는 장남도 있지만. 동생을 보살필 줄 알고 배려할 줄 아는데, 이 동생은 어릴 때 보면, 깜깜하기 때문에 슬기없이 깜깜하기 때문에 뭐만 챙깁니까? 자기 배만 챙기는 거예요. 엄마 아빠 이혼해서 슬퍼하고 있는데, 아는, 밥 줘, 밥 줘. 사태 파악이 안 돼, 분위기 파악이 안 돼. 그것을 가지고 뭐라하는가 하면, 어둡다 하는 거예요. 이게 어두운 거예요.

교회 다니는 사람과 안 다니는 사람의 특징이 뭔가하면, 신앙이 있든 없든, 자꾸 뭔가 들었기 때문에 사람이 뭐 조심하면 교회 다니는 사람인데,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은, 맨 날 술에 젖어 있는 사람은, 순경에게 대들고 하다가 유치장에 들어가 벌금내고, 오늘 재수 되게 없다. 이럽니다.

음주운전 걸려가지고, 오늘 한 잔 무심더. 한 번 봐 주소. 이번 하면 나는 처 못 봅니다. 우리 애들 굶어 죽습니다. 아시면서 왜 3번이나 걸립니까? 안 됩니다. 봐 주소! 인류 평화에 대해서 압니까?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 압니까? 아무것도 몰라요. 오늘 기분 나빠서 술 한 잔 했다. 이것밖에 몰라요. 그러니까 지혜가 없는 사람은 깜깜해요. 깜깜하니까 관심사가 안 보이는 것이 아니에요. 관심사를 어디로 돌립니까? 맨 날 지 기분이라.

마누라 기분도 안 알아주고, 아 기분도 안 알아주고, 지만 기분 좋아서 헐렁헐럴 술 먹고, 들어와 가지고, 자는 애들 다 깨워서 하는 말 또 하고, 하는 말 또 하고.

사람이 어두우면, 그것밖에 몰라요. 어두우니까 사람들은 뭘 하느냐하면, 유혹에 잘 넘어가서, 뭘 하면 돈 번다. 휴대폰 바꾸면 공짜 몇 개 더 준다. 거기에 빠져가지고, 사기 당해가지고, 사기 당하면 어둡기 때문에 사기 당한 사람이 꼭 복수한다고, 꼭 지보다 못한 놈 골라가지고 또 사기를 쳐요. 사기 친 사람은 꼭 자기가 사기 당해 본 사람이에요. 노는 동네가 그 동네에요. 같은 동네에요.

세상에 도박 판 돈 100만원씩 거는 사람이 쌀 한가마니 값 알겠습니까? 그 백만원이 얼마나 크겠어요. 만지다 보면 큰 돈이라도 좋은지 모르죠. 하지만 그 콩나물 값, 물세를 얼마나 아끼는지 그것은 모르고, 지는 지 기분만 날리고 있다는 말이죠.

그 다음 4장 21절에 보면, 지혜가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복된 삶의 샘이 되고, 남을 속이는 말은 입에도 담지 말고, 25절에 남을 해치는 말은 입에도 올리지 마라. (잠 4:24)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왜? 그것은 지혜없는 자들이, 어두운 자들이 하는 짓인데, 이제는 지혜를 알았으므로 밝아야지. 마음이 밝아야지. 그 짓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26절에 똑바로 앞만 보고 살아라. 인생을 살라하면 조심조심 조심해야 한다. 왜 조심해야 되는가하면, 주위에 뭐가 있기 때문에? 악한 자들이 상주해 있기 때문에 조심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항상 악에서 발길을 돌려라. 악에서 발 길을 돌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방향이 있어야하는데, 그 방향이 어딥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그 쪽이라말이죠.

어쨌든 여기서는 여호와를 경외, 그 내용에 대해서는 안 나오고, 어쨌든 간에 무조건 뭘 붙들어라? 지혜를 붙들어라. 그런데 지혜는 무조건 뭘 가르친다? 아버지의 자격으로써 너를 아들로 인정하는 사람의 말을 무조건 들어라. 너는 이유도 없이 무조건 아버지의 아들이 되어야 해. 이런 뜻입니다. 그 어디를 가도 너는 네 아버지의,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는 그 관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그런 팔자야라는 것이죠. 이게 잠언이에요. 아들다운 아들이 되어야 해요. 지혜있는 아들되기 위해서...

5장에 들어가면, (잠 5:1)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 (잠 5:2) 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 (잠 5:3)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의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잠 5:4) 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 같이 날카로우며

이것은 뭐냐? 지혜에 반대되는 반(反)지혜는, 지혜가 아닌 것은? 잘 들어보세요. 어렵습니다. 지혜가 아닌 것, 지혜가 아닌 것은 비(非)지혜가 아니고, 반대하는, 반지혜로 작용한다는 거에요. 상당히 중요하죠.

나는 교회 안 나갈래. 그것은 교회 안 나가는 사람이 아니고,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복음에 반대하는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라는 이 말이죠. 적극적인 의미를. 나는 안 믿는 친구들이 많은데, ... 별로 신경 안 쓰던데요. 아닙니다. 안 믿는 친구는 결국 하나님을 반대하는 사람이에요. 반대하는 사람이에요. 중립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중립이 아니에요. 지금 친하게 지내서 그렇지. 만약에 어려움을 당해보세요. 대번 하나님 욕하죠.

결국 난처할 때가 뭔가하면, 안 믿는 친구가 하는 말이, 너 교회 다니잖아. 나 어려움 당했다. 기도 좀 해줘. 참 거 난처해요. 갓바위 중도 아니고, 점쟁이도 아니고. 네 효과 좀 보자. 이러거든요. 네 기도 효과로 나에게 넘어오도록 좀 해 줘. 그래 한다 이 말이죠.

물론 그것을 위해 기도하죠. 주여, 친구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게 하셔서 감사하나이다. 이제 세상에 자기가 중심이 아닌 것을 알겠지요.

옆에 친구가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도 그렇게 당하더라도 나는 어떻게 내 속의 지혜를 보여줄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모델로써 있는 거예요.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죽었을 때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도 ... 웅이 아빠는 죽었고. 망대가 무너져 죽을 수도 있는 문제라는 겁니다.

그 다음에 5장, 반 지혜라 하는 거에요. (잠 5:7) 그런즉 아들들아 나에게 들으며 내 입의 말을 버리지 말고 (잠 5:8)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 하라 그의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

(잠 5:9) 두렵건대 네 존영이 남에게 잃어버리게 되며 네 수한이 잔인한 자에게 빼앗기게 될까 하노라

이게 뭐냐? 지혜의 관점에서 봤을 때 악의 모습은 바로 강력하게 지혜 자체를 그 다음에 모욕하고, 그걸 우습고, 소용없는 것으로 뭉게버리죠. 그래서 반대, 복음의 가장 큰 적수가 누구냐하면, 바로 이단이나, 불교 신자가 아니고, 우리 자신. 우리 자신이 스스로 십자가 믿어서 무슨 소용있나? 하루에도 열 네 번, 어떤 사람은 열 다섯 번, 통계 안 내봤습니다. 십자가 안다고 뭐 돈이 되나? 스물 댓번씩 이런 이야기 합니다.

반지혜가 울컥울컥하고 토하듯이 계속 나와요. 복음 안다고 내가 뭐 돈이라도 한 푼 번게 있나. 뭐 이거 알아서 뭐하노? 죽을 때 믿으면 되지. 내가 펄펄 살았는데, 내가 왜 믿나. 이제 이건 잊어도 되지, 라는 생각이 들 때, 항상 바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우리 주변에 항상 배치되어 있고, 우리를 노리고 있는 반 지혜. 세상 쪽으로 오라고 유혹하는 그 지혜에 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는 그런 ...이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너 자신과 싸우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4절에 보면, (잠 5:15)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여기서 유대인들은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토라라고 합니다.

(잠 5:16)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잠 5:17) 그 물이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과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이런 식으로 해석을 해요. 그럴 듯 하죠. 그들은 성경의 도사니까. 문자적 도사니까. 이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하면, 바로 뭡니까? 하나님 주신 이 복음이 그렇게 무가치하게 남발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이 아니다는 말이죠.

(잠 5:19)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이게 뭐냐하면, 이것이 바로 여호와께서 주신 아내이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내 여자를 주신 것이 아니고 누구의 여자? 지혜의 여인으로써 우리 곁에 좋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내가 아까 했잖아요. 잠언서에서는 왜 여자 입장에서, 여인들이여, 이런 남자를 모셔라. 왜? 지혜의 남편이다. 이런 이야기는 왜 없느냐 이 말이죠. 그것은 순서상, 남자 잘 되면, 여자도 덩달아 잘 되게 되어 있어요. 그렇게 되는 겁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감사원에서 감사를 할 때, 어떤 국정 공기업을 감사할 때, 감사했다고 그 감사를 취직시켜 줍니까? 감사만 하고, 다시 감사원으로 돌아가야죠. 마찬가지입니다. 둘이 그 회사 인수하라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국감원에서 금융기관 감사를 나갈 때, 사실 그러면 안 되잖아요. 감사만 해야 되는데, 어이, 행장님, 내가 감사 잘 봐 줄테니 ... 하거든 나중에 지점장 자리 하나 주소. 이래 되면 안 되잖아요. 낙하산 인사 되잖아요.

이처럼 여인은 남자 하나 잘 되게 하기 위해서 배치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여자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좋은 남편 개념은 성경에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없앤 것은 아니니까. 왜냐하면, 지혜라는 것은 남편을 통해 아내에게 전달되는 것이기 때문에 남편 잘 되는 것이 아내 잘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잠언서 마지막에 보면 뭡니까? 여자가 밤새도록 길쌈하고, 열심히 가족 돌보고 하는 것이 결국 누구로 하여금, 남편이 그 성읍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존대를 받는, 존귀를 받는 역할을 하니까 이것이 무슨 역할이냐? 아까 지혜가 우리 속에 들어오면 지혜가 우리를 뭘 한다? 업, 업... 지혜를 우리가 존귀히 맞는다. 그 역할인 거에요.

그렇다면 요새 같으면 여자는 얻은 것이 뭐가 있노? 없지요. 없는 거예요. 왜 없느냐? 그 여자는 (잠 31:30)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그 여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그것으로 자기는 만족하는 거예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여호와를 경외하는 그 ...으로써 못난 남편을 주위 사람들에게 존귀하게 하면 그 역할은 다 끝나는 겁니다.

그런 슬기로운 여자 밖에 없으니까(?) 지금 신직수가 혼자 있습니다. 생활 된답니다. 원룸에 살아요. 전세 2300만원. 오늘 갔지요. 아직 안 갔습니까? 있어요. 아, 있네요.

그러니까 남자들이 여자를 자기 사람으로 삼으면 안 되요. 인간 만들기 위해서 주님이 붙여주셨다,고 남편들이 생각하면 어느 여자들이 오지 않겠습니까?

그 다음에 이웃에 대해서 6장에 이웃에 대해서, 아들답게 굴어라. 절대로 이웃들에게 종속되지 말고, 이웃에게 하나의 지혜자가 없다... 네가 한 말을 걸려들게 하지 말고, 네가 한 말을 함부러 말해서 걸려들지 말고. 어서 이웃에게 가서 간청하여 거기서 벗어나도록 해라. 3절. (잠 6:3)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그 다음에, 게으르지 말고, 6절부터 13절까지.

(잠 6:6)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잠 6:7)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잠 6:8)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잠 6:9)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개미를 보면 부지런하다 이 말이죠. 여기서 유대인들은 여기서 부지런한 것이 그냥 농사짓는 부지런함이 아니고, 어떻게 부지런하냐? 토라.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부지런함을 떨어라. 그렇게 이야기해요. 충분히 일리가 있죠. 그래야 그게 조화가 되니까. 농사가 잘 된다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이미 지혜로 고정되어 있단 말이죠. 토라, 말씀, 말씀을 통해서 여호와를 경외하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아들이 되려면, 부지런하려면, 어디에 부지런해야 하느냐? 말씀 연구에 부지런해야 하는 그것이 바른 해석이 되지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을 안 하고, 여기에 부지런 한다는 것은 말씀이나 성경 공부에 메이지 않고, 일상 속에 모두 하나님의 지혜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일에 부지런해도 거기에 뭘 느낄 수 있다? 아, 이런 일을 통해서 지혜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을 만드신 분은 주님이시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잠 6:10)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

(잠 6:11)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잠 6:12) 불량하고 악한 자는 구부러진 말을 하고 다니며

(잠 6:13) 눈짓을 하며 발로 뜻을 보이며 손가락질을 하며

(잠 6:14) 그의 마음에 패역을 품으며 항상 악을 꾀하여 다툼을 일으키는 자라

이것은 뭘 봤는가하면, 이건 개미와 반대되는 그러니까 유대인들의 해석이 일리가 있는 것이 뭔가하면, 여기 부지런한 사람은 어디에 공로를 안 돌린다? 이런 놀기 좋아하고, 남 비하하기 좋아하는데 신경을 안 쓰고, 오직 자기가 해야 될 여호와 경외하는 일에 열중하는 것. 그것이 아들답다는 것이죠.

그 다음부터 16절부터 보면 악이 무엇인지 눈치 채라. 앞을 되풀이 했네요. (잠 6:16)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잠 6:17)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잠 6:18)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잠 6:19)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

자. 이것은 뭔가하면, 눈, 혀, 손, 마음, 발 그리고 신체. 이런 것들이 바로 여호와께서 미워하는 것들이다 이말이죠. 다시 이야기합니다. 지혜를 안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뭘 좋아하시고, 뭘 싫어하시는지 양쪽 다 알아야 해요. 살림을 하는 여자가 남편이 좋아하는 것만을 해 버리면, 자칫하면 남편이 싫어하는 반찬을 올릴 수 있어요. 그러면 실컷 요리 해 놓고, 싫어하는 것 때문에 욕 얻어 먹을 수 있다고.

전체 다를 알아야 하듯이, 여호와께서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것만 알지 말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양쪽 다를 알아야 ... 이게 바로 예수님께서, 자꾸 이런 식으로 예수님께서 이야기 하실 때 싫어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구분해서 이야기...

그런데 여기에 보면, 인간의 눈, 혀, 손, 마음 이런 것은 뭐냐하면 전천후 마징가 제트 라는 겁니다. 인간은 틈만 나면 주위의 악함과 친밀해 지려는 속에서 악이 발동을 합니다. 자기 점잖은 척 하지만, 그 점잖은 것도 어떤 계기가 되면, 그 점잖은 것이 날아가 버리죠.

그 다음에 21절(잠 6:20)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실컷 해 놓고, 지금 뭘 어떻게 하지 말라하는 그것은 뭐라 합니까? 나쁜 쪽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뭘 하라는지 나오지를 않아요.

24-25절에 보면 (잠 6:24) 이것이 너를 지켜 악한 여인에게, 이방 여인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 (잠 6:25) 네 마음에 그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잠 6:26) 음녀로 말미암아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여인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잠 6:27)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야 어찌 그의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그 음녀의 옷은 무슨 옷이다? 불 붙는 옷이다.

(잠 6:28) 사람이 숯불을 밟고서야 어찌 그의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

음녀의 가는 길은 무슨 길이다? 지금 불이 있는 그 길을 네가 왜 가느냐 이 말이죠.

(잠 6:29)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 그를 만지는 자마다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잠 6:30) 도둑이 만일 주릴 때에 배를 채우려고 도둑질하면 사람이 그를 멸시하지는 아니하려니와

(잠 6:31) 들키면 칠 배를 갚아야 하리니 심지어 자기 집에 있는 것을 다 내주게 되리라

(잠 6:32) 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잠 6:33)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되나니

(잠 6:34) 남편이 투기로 분노하여 원수 갚는 날에 용서하지 아니하고

(잠 6:35) 어떤 보상도 받지 아니하며 많은 선물을 줄지라도 듣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그림을 그려야 설명이 되는데, 지금 이 상황이 불에 상황이에요. 불에 상황이니까, 여기는 아주 무서운 세계에요. 원래 이 불의 세계에 누가 살았어요. 아들이 살았어요. 아들이 살 때는 이게 불이 불인지 모르는 거예요. 이걸 끄집어 내어서 끄집어 놓고, 다시 들어가 보면 아, 이게 보통 나쁜 세상이 아니구나. 아주 이게 흉한 세상이고, 무서운 세상이구나는 것을 그때서야 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도 닦지 말고, 산 속이나 기도원 가지 말고, 예수 믿고 세상살이 해 봐라. 해보면서, 내가 예수 믿고 난 뒤에 믿기 전에 보던 세상과 믿고 난 다음에 본 세상이 어떻게 다른지 한 번 보시란 이 말입니다. 특히 예수 믿게 되면 직장 생활하다가도 그 차이점이 확연히 들어나게 되어 있어요. 만약에 와서 차이남을 모르면 언제가는 다시 도로 가 버립니다.

아, 저 세계가 보통 무서운 세계가 아니구나. 뭐가 없다? 언약이 없는 세계. 언약이 없을 때는 아까 뭐라 했죠. 어둠의 세계. 어두운 세계의 특징이 뭡니까? 자기 밖에 모릅니다. 여기에 있는 이 세계는 뭐냐? 전부다 자기밖에 몰라요. 자기밖에. 뭔가 증거하는 것이 없어. 자기가 즐거우면 끝나요. 자기 감각만 짠 하면 끝나는거예요.

뭔가 증거하고 보이지 않는 지혜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이 없어요. 그냥, 됐나? 됐다! 하면 끝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당부했잖아요. 이 어리석은 자, 불의한 자. 그쪽이 바로 우리라고 생각하고 보면, 목사님 이게 뭐가 나쁩니까? 정말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일단 거기서 건짐을 내본 사람, 정말 격리시킨 상태에서 나쁨이 나쁨이 되는 겁니다.

7장. (잠 7:1)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계명을 간직하라

(잠 7:2) 내 계명을 지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뭐? 어떻게 하란 말인지 자꾸 잔소리만 늘어놉니다. 잔소리만. 복되게 살려거든 내 말을 들어라. 그 말이 뭔데? 말을 안 해. 계속해서 내 가르침을 눈동자처럼 지키라. 7:2

6절에 보면 (잠 7:4)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

너는 누구하고 결혼해라? 하나님의 지혜와 결혼해라. 왜? 그래야 어디에 ... 지혜없는 자에게 걸려들지 않는다 이 말이죠.

6절부터 봅시다.

(잠 7:6) 내가 내 집 들창으로, 살창으로 내다 보다가

(잠 7:7) 어리석은 자 중에, 젊은이 가운데에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노라

(잠 7:8) 그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의 집쪽으로 가는데

(잠 7:9)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

(잠 7:10) 그 때에 기생의 옷을 입은 간교한 여인이 그를 맞으니

(잠 7:11) 이 여인은 떠들며 완악하며 그의 발이 집에 머물지 아니하여

(잠 7:12) 어떤 때에는 거리, 어떤 때에는 광장 또 모퉁이마다 서서 사람을 기다리는 자라

(잠 7:13) 그 여인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입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그에게 말하되

(잠 7:14) 내가 화목제를 드려 서원한 것을 오늘 갚았노라

(잠 7:15) 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

(잠 7:16) 내 침상에는 요와 애굽의 무늬 있는 이불을 폈고

(잠 7:17) 몰약과 침향과 계피를 뿌렸노라

(잠 7:18)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

(잠 7:19) 남편은 집을 떠나 먼 길을 갔는데

(잠 7:20) 은 주머니를 가졌은즉 보름 날에나 집에 돌아오리라 하여

(잠 7:21) 여러 가지 고운 말로 유혹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잠 7:22) 젊은이가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같도다

(잠 7:23) 필경은 화살이 그 간을 뚫게 되리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의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같으니라

웅이 아빠는 죽었고, 23절에.

그러니까 엄마 입장에서 세상이 이정도로 나쁜 것이 나쁘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무딘 감각을 가지고 있는 이 세상에서 이것을 끄집어 내 주니까 이렇게 아버지, 어머니 입장에서는 예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 내 아들 구원하려고, 이 심정이 누구 심정이겠어요. 여호와 하나님 심정입니다.

쉽게 말해서 이렇습니다. 네가 받고 있는, 네가 알고 있는 십자가 복음이 천하의 어떤 아름다움, 어떤 탕녀의 유혹과 어떤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술과 고기와 그 모든 쾌락보다 너를 위해 죽었던 그 피가 너를 살게 할 것이다. 그게 고귀하다. 그게 더 고귀하다 이 말이죠.

그러니 이런 관점에서는 뭐냐? 부부끼리 서로 간통하지 않는... 지금 이런 이야기가 아니죠. 지금 이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입니까? 하나님의 지혜를 남편으로 삼고, 우리는 철저하게 지혜 중심으로 살아야 된다. 그것이 지혜는 뭡니까? 솔로몬이 하나님께 받은 지혜.

장차 그 지혜 덩어리를 예수님. 십자가, 세상의 구원의 능력. 그 복음. 그 십자가 복음을 대체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말이죠. 그러면 나머지 것들은 뭐로 보입니까? 어떻게 보이겠어요? 시시하게. 시시하게 하니까, 시시한 것은 시시하게 생각해야. 그것을 만약에 심각하게 생각한다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일 수도 있어요. 구원 못 받았기 때문에 시시하게 안 보이고, 시간을 벌 수가 있단 말이죠.

교회 헌금하려고 돈을 가져 왔는데, 그 돈 가지고 가다가 주식에 투자했는데, 망했는데, 하나님께 벌 받았는데, 이게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여 어떡하면 좋습니까? 예수님 피가 있으면 헌금 .... 괜찮습니다. 그걸 뭐로 보자? 시시하게 봐야 되는데, 시시하게 봐야 돼요.

하나님의 긍휼이 선악보다 더 초월합니다. 이미 아버지는 이 세계를 아니까, 어둠에 있는 슬기 없는, 철없는 아이들은 아직 모르니까, 세상에 대해서 이렇게 아주 날카롭게 하는 겁니다.

8장 봅시다. (잠 8:1)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지혜의 완전함에 대해서, 지혜는 빈틈이 없고, 그 자체가 완전함을, 지혜의 모델은 바로 지혜의 모델은 왕이 됩니다.

15절 지혜가 부르지 않는냐? 쭉 하면서 (잠 8:15) 나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방백들이 공의를 세우며

지혜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왕이 왕답지 못한다 이 말입니다.

그 다음에 21절에 보면, 지혜의 정체, 본질이 뭐냐? (잠 8:22)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여호와께서 만물을 지으신 처음에 모든 것에 앞서서 이 지혜인 나를 지었다.

그리고 8절에서 10절에서 보면 이 지혜는 붉은 산호보다 값진 것이고, 너가 원한 그 무엇을 어떻게 지혜에 비교할 수 있느냐? (잠 8:11) 지혜는 붉은 산호보다도 값진 것, 네가 원하는 그 무엇을 이에 비하랴.

네가 아무리 가지고 싶은 돈이라든지, 자식이 잘 되고 이런 것 보다도 정말 살리는 것은 자식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뭐가 살린다? 지혜가 너를 살리니 지혜가 얼마나 귀하냐! 이 말이죠. 그리고 그 지혜는 이미 창조 전부터 있었던 ... 었다.

그러면 지혜가 그냥 가만 있는 것이 아니고 지혜가 천지창조 활동하는데, 그 지혜가 노리는 자가 누구냐? 아들을 배출하는 거. 아들을 생산하는 것. 그게 32절입니다.

(잠 8:32)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잠 8:33)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그러므로 지혜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지혜를 모르는 자는 뭐가 되느냐? 반지혜가 됩니다. 반대하는 지혜 이 세상은 지혜를 수용하느냐, 아니면, 지혜를 반대하느냐, 두 패 밖에 없지요. 그 어준간한 중립은 없습니다. 그것을 네가 알아라 이 말이죠. 그것을.

지혜 편에 서든지, 저쪽으로 가려거든 가든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것은 없다 이 말이죠. 지혜 자체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지혜 자체가 자기 아들을 생산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9장에 보면 (잠 9:1) 지혜가 그의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지혜가 일곱 기둥을 세워서 저희 집을 짓고 손수 잔치를 베풉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합니까?

(잠 9:4)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잠 9:5) 너는 와서 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고

어리석은 이여 여기로 들어오너라. 속없는 사람을 이렇게 초대하지요. 와서 음식을 먹고, 내가 빚은 술로 마셔보지 않겠소? 이것은 뭔가하면 적극적으로 자기 아들에게 손길을 보내는 겁니다. 제발 천민짓을 버리고, 슬기로운 길에 나서 보세요.

더 쉽게 이야기하겠습니다. 관심사를 어디에다 두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 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간단할 것을. 그런데 신약이 아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간단하게 이야기 하죠. 주 예수를 믿어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얼마나 간단합니까? 로마서 10:10. 대게 간단해요. 그런데 여기서는 굉장히 여러 가지 당부, 그 당시 상황을 이야기를 합니다.

7절부터 18절까지는 뭐냐? 악함을 의식한 지혜의 충고다. 그러니 이 지혜라는 것은 항상 어떤 모습인가하면, 악한 자에게, 지혜가 등장할 때는 악한 자에게 뭘 당한다? 수모를 당하는, 억울한 수모를 당하는 그런 모습으로 등장할 때 그게 지혜인줄 알아라, 이 말이죠.

내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고, 이런 메시야다 이 말이죠. 그만큼 너희들은 모르지, 너희들은 악한 놈들과 한 편이니까 모르지만, 그런데 진짜 순수한 지혜가 오면, 악들이 지혜를 알아보고, 확 달라 들어서 나를 죽이게 만든다 이 말이죠. 나를 팔아먹고, 나를 뺨을 때리고, 나를 때린다 이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십자가 광경을 쳐다보면서 세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악한 세상인 것을 알고 있어야 이게 올바른 지혜를 십자가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10장에 보면, 조금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10장에 보면, 나쁨을 아울러 드러내는 착함. 무엇이 착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이런 것은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잠 10:1) 솔로몬의 잠언이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그러니까 이 세상에는 둘 밖에 없다는 거예요. 제 3의 결론을 생각하지 말라 이 말이에요. 이것은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는 말입니다. 계속 나옵니다.

(잠 10: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이렇게 쭉 대비시키면서 10장을 끝내버립니다.

사람이 ..하는 것은 여호와의 손에 달렸기 때문에 모든 것이 여호와께서 주시면 되는 겁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바로 악함입니다. 악함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는데, 그것은 뭐냐? 악한 것도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그러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

축복이라는 것이 뭐냐하면, 나 잘났다가 아니라, 아하, 저게 악하구나. 그게 나쁜 거구나를 아는 것. 그것이 악함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나머지 21장은 내일 아침에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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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