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과 시편의 연결점?
잠언과 시편의 연결점?
이름 : 김대식(IP:220.81.176.150)
1. 이번 수련회 강의의 잠언강의 중에 가난한 자가 시편의 원수를 뽑아내는 그런 관점이 된다면 한나의 찬양 마리아의 찬양은 그야말로 원수를 뽑아내는 찬양이고, 그렇지 않은 찬양 곧 원수를 뽑아내지 못하는 찬양(언약)은 거짓복음이라고 볼수 있는데요,
어떻게 잠언과 시편이 연결이 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프네요
2. 잠언을 통한 야고보서의 행함이 있는 믿음에 대해서 다루셨는데 좀 짧았다 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오랬동안 말씀을 같이 나누는 자도 늘 이 행함의 문제에서 또 갈등을 새로 갖게 되니 안타깝게 느껴지거든요.
사실상 성경 전체의 문제가 바로 이 행함과 믿음의 갈등이고 우리의 인생 자체가 이 문제의 갈등에서 한치도 벗어날수가 없는데
왜 행함의 문제에 반드시 예를 든 아브라함의 이삭 바치는 행함과 기생라합의 거짓말로 정탐군을 빼돌리는 행함을
아무리 알려줘도 전혀 상관도 없는 자기들만의 행함을 고집하고 이 두 믿음의 증인의 행함은 깡그리 무시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쩜그렇게도 성령의 일하심의 원수인 육의 소욕인 행함만 골라서 주장하는 성화론에 빠지는지 참으로 신기하기도 합니다.
왜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결국 인간의 여부가 아닌 주님이 두 패로 나누시겠다는 강력한 의지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은 없는 것입니까?
이근호(IP:117.♡.129.103)
08-08-07 23:06
1. 시편은 이스라엘 역사로 표현된 지혜를 말합니다. 잠언은 역사를 초월해서 인간 생활 속에서 구조적인 활동성으로 나타내는 지혜를 말합니다. 연결점이 있다면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점입니다.
2. 제가 야고보서에 대해서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설명한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설명했습니다. 즉 '행함'을 말하는데 있어 '믿음'을 운운하지 말하라는 겁니다. 그런 것은 귀신들도 주장하는 것이라는 것이 야고보서의 취지입니다. 그런데 그 행함이라는 것이 바로 성도가 아니면 불가능한 행함이라는 겁니다. 즉 구원받을 행함은 따로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늘의 은사로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자신의 행함을 포기 못하는 것은 행함의 주체를 자기로 간주하지 아니하면 자신이 존재 가치가 없기에 그것이 싫은 겁니다. 즉 평소에 자기 부인이 되지 않기 때문인데 '자기 부인'이 안되는 이유는, 자기를 부인할 만한 대상자를 그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그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없기 때문에 타인과 견주고 비교해서 자신의 가치를 놓치지 아니하면 그만이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2.
채한욱(IP:122.♡.42.52)
08-09-21 23:29
십자가 마을에 자주 들어 오는 사람이지만 컴맹 이라서 로그인 한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장문의 글을 쓸려면 게시판이 좋을까요 아니면 질문답변 란이 좋을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