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02-제사,창세기(강의정리) - 잘린부분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02-제사,창세기(강의정리) - 잘린부분
이름 : 구득영(IP:203.223.97.201)
이번에 북한 용천에서 대폭발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이 우리가 보기에는 엄청난 사건이지만, 그러나 저 멀리 조그마한 섬인 괌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이 별 게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들에게는 날씨가 좋지 않아서 관광객이 줄어드는 것이 큰 사건이지 말이다.
◈ 인생은 내가 아닌 남의 연극 !!
그러니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울고불고 하는 것도 다 남들이 조작해낸 것 때문에 그렇게 난리를 피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연극이다" 라고 하는데, 그것도 자기 연극이 아니라, 남의 연극이라는 말이다. 남이 웃기면 웃고, 울리면 운다는 것인데, 그리고 자기 것은 하나도 없고 말이다. 그러니 이 세상이란 것이 이렇게 허무하게 마구마구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정작 자기는 자기가 누구인지도 전혀 모르면서 말이다.
◈ 하나님의 약속만 챙기면, 끝 !!
이렇게 되면 아마 여러분들이 "목사님, 그러면 도대체 우리보고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라고 하지 싶은데, 사실은 너무 간단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의 약속만 찾아가면 되는데, 허다한 죄를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그 약속만 챙기고 살아가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간단한가?
남들이 아파트를 사던 논을 사던 그런 것에 너무 신경을 쓰지 말고, 그것은 그 사람 인생이고, 단지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만 챙기면 된다는 말이다. 바로 그 약속이 무엇인고 하니, 우리가 어떤 식으로 용서를 받고 천국에 가게 되었냐는 그 사랑인데, 그것만을 느긋하게 마음에 담고서 살아가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가 아벨처럼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한다면, 사실 아벨처럼 그렇게 죽더라도, 우리야처럼, 스데반처럼, 그렇게 죽게 되더라도 괜찮다는 말이다. 허다한 허물을 덮어주는 그 사랑만 알고 있다면, 죽는 그 순간이 천국이니 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우리야'처럼 그렇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해도, '스데반'처럼 순교를 당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분의 사랑만 알면 그것이 바로 성공한 인생이이기에 말이다. 그러니 죽음보다 더 강한 것이 곧 하나님의 사랑, 즉 진리라는 것이다.
◈ 이제 다시 본론으로 !!
지금까지 창세기 4장까지 흐름을 이야기했는데, 이제 조금만 더 하고 질문을 받고 마치겠는데, 우리가 오늘 창세기 어디까지 했는고 하니까, "이삭이 대적의 원수의 문을 얻는다" 라는, 그 부분까지 했지 싶은데, 이러한 이삭에게서 자식이 둘이 나오는데, 그들이 곧 '에서'와 '야곱' 이라는 것이다.
◈ 에서와 야곱 중에서 누가 약속의 자녀인가?
여기에서 에서와 야곱 중에서 누가 약속의 자녀인지 불분명한데, 누가 우리에게 약속을 전달할 씨앗인지, 곧 여자의 후손인지 말이다. 과연 누가 여자의 후손과 선이 서로 맞닿아 있는지가 분간이 전혀 안 되는데, 그래서 리브가와 야곱 쪽은 그 후손이 야곱이라고 보았고, 이삭과 에서 쪽에서는 에서라고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집안의 식구들이 패싸움을 하게 되었는데, 두 명씩 서로 나누어져서 말이다. 과연 누가 맞는가? 정답은 4명이 다 틀렸다는 것이다. 이삭 쪽은 물론이고, 리브가 쪽도 틀렸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 누가 약속의 사람인가? 몰라, 몰라 !!
그것이 창세기 32장에 보면 나오는데, 하나님의 약속한 사람은 누구인고 하니, 이삭도, 에서도, 리브가도, 야곱도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보내는데, 누구를 보내는고 하니 천사를 보내는데, 이 천사가 나타나서 하는 것이, 자기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그 야곱을 죽이고, 그 자리에 '이스라엘'을 대신 태어나게 한다는 것이다.
(창 32:1) 야곱이 그 길을 진행하더니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창 32: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창 32: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 야곱 + 하나님의 사자 = 이스라엘 !!
그러니 이러한 이스라엘 속에는 하나님의 사자가 포함되어있는데, 즉 "야곱+사자=이스라엘" 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을 죽이고 이스라엘 되게 할 때, 이 이스라엘이 곧 여자의 후손인데, 즉 생명을 주는 약속이라는 것이다. 창세기가 이렇게 흘러간다는 말이다.
그래서 야곱이 무엇이라고 하는가? 30절을 보면, 자기는 하나님을 만나고 마땅히 죽어야 하는데,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살았다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자기는 당연히 죽어야 하는데,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만나고 살았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서 야곱을 이스라엘이 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서, 드디어 이스라엘은 이 세상의 모든 잡신들을 모두 이기고,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 창세기를 다시 정리하면 !!
이 부분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더 정리하겠는데, 아담이 살게 된 것은 누구의 덕분인가? 마누라 덕분에 살았는데, 그래서 그 이름이 하와, 즉 생명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살게 된 것도 자기 아내인 사라의 죽은 태가 열려서 약속의 자식인 이삭이 태어났기 때문이고, 또 이삭의 경우에도 자기 아내인 리브가가 아기를 낳지 못하는데 천사가 와서 낳게 해줌으로 살았고, 그리고 야곱의 경우에도 천사가 나타나서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꿔줌으로서 그 가족이 모두 살아남을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하나님 쪽에서 뭔가를 해주어야만 살아남고 구원을 받는 것이지, 우리 인간들 쪽에서 무엇을 해야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가지고 오셔서 우리에게 집어 넣어줄 때만이, 비로소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야곱의 경우에는 누가 여자의 후손이 되는가? 야곱의 아들들이 12명인데, 사실은 여자의 후손이 누구인지 아직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꿈을 누가 꾸는고 하니 요셉이 꾸는데, 이것은 바로 요셉이 나머지 가족들을 모두 살리는데, 그것이 바로 '창세기' 라는 책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하나님 쪽에서 찾아오셔서, 자기들끼리 잘났다고 하는 인간들을 모두 박살내고, 하나님의 자기 약속을 통해서 구원하시는데, 그것이 창세기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이고 말이다.
◈ 우리 모두는 '아담' 이라는 이름의 장독대에 !!
다시 정리하면, 이렇게 장독이 있는데 이 장독 이름이 아담이라는 것이다. 이 장독 안에 아담의 후손들이 줄줄이 들어있는데,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께서 약속을 가지고 오심으로 구원을 받았는데, 그것이 바로 생명인데, 이 생명이 아담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다른 후손들, 즉 아벨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그리고 요셉 등인데, 이들을 전부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가지고 오셔서 건져내시고, 또 건져내시고, 그렇게 독안에 든 인간을 구원하시는데, 이것이 바로 창세기의 흐름이라는 말이다.
◈ 창세기가 왜 두꺼운가? '죄(罪)' 때문에 !!
이렇게 하면 사실상 창세기가 아주 간단한데, 그렇다면 왜 창세기의 내용이 그렇게 많은가? 그것은 바로 그 중간 중간에 보면, 인간들이 이런 하나님의 약속을 오해해서 서로 자기들이 잘났다고 하면서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는 모습들이 담겨있으니, 그래서 창세기가 이렇게 두껍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죄(罪)' 라는 것이고 말이다. 하나님께서 약속이 자기들을 구원하는지 모르고 말이다.
야곱의 경우에는 형에게 팥죽을 한 그릇 팔아서 자기가 장남이 되려고 하지만, 그래서 자기가 장남이 된 줄 알지만, 그러나 그런 것들이 다 소용없는 짓이라는 말이다. 이삭의 경우도, 야곱이 아닌 에서를 불러서 몰래 축복해주려고 에서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별미를 사냥해서 만들어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 이삭 : 에서야, 이리 오너라.
* 에서 : 예, 아버지.
* 이삭 : 빨리 오라니까.
* 에서 : 예, 불렀습니까?
* 이삭 : 응, 그래. 저 야곱은 미워서 안 되고, 너에게 내가 마지막으로 축복을 해주겠다.
* 에서 : 예, 고맙습니다.
* 이삭 : 야곱은 알면 안 된다. 그런데 너는 사냥을 잘하지?
* 에서 : 예, 그렇습니다.
* 이삭 : 그러면 너는 내가 좋아하는 별미를 얼른 사냥을 해오너라.
* 에서 :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리브가가 몰래 듣고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삭의 축복을 자기가 좋아하는 야곱에게로 바꾸기 위해서 야곱을 그만 에서로 변장을 시켰다는 것이다. 몸에 털도 좀 붙이고 해서 말이다. 그렇게 해서 이삭이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주어서, 그가 베풀어주는 축복을 강탈하다시피 받았다는 것이다.
◈ 그런데 왜 이삭은 축복을 취소하지 못하는가?
그렇다면 나중에 이삭이 이런 사실을 알았다고 하면 취소시키면 되는데, 즉 에서가 숨을 헐떡이면서 사냥을 해서 돌아왔으면, "에이, 못된 야곱. 아까 한 축복은 취소이다" 라고, 그렇게 자기가 한 축복을 원천무효를 시키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삭이 뭐라고 하는가? "한번 한 축복은 바꾸지를 못한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 드디어 야곱이 이스라엘로 !!
이것은 바로 이삭의 고집을 꺾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였는데, 이삭은 이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에서에게는 저주를 주고 야곱에게 모두 다 축복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야곱은 또 이러한 축복이 자기가 잘나서 받은 줄로 알고 까불다가, 나중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서 원수가 되어서 싸우다가 실컷 얻어터지고서는 살려달라고 빌게 되는데, 드디어 그때 그의 이름이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뀐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창세기가 이렇게 두꺼운 이유는 무엇인고 하니까, 오로지 하나님의 약속으로만 구원을 받는데, 그런데 이것을 인간들이 오해해서 서로 자기들이 잘났다고 싸우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게 두껍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야곱의 두 아내인 레아와 라헬도 서로 자매지간이면서도 지독하게 싸우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낳으면 신랑 사랑은 내 독차지다" 라는 것 때문에 그렇게 이판사판으로 싸운다는 말이다.
남자들의 생각에는 어떠한가? 사랑을 그냥 골고루 나눠주면 될 것 같은데, 그러나 여자들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자의 경우에는 사랑은 누가 뭐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독점적인데, 그것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생각하는 구조가 전혀 달라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항상 서로가 삐걱거리고 다투고 한다는 것이다.
◈ 죽은 라헬이 낳은 요셉이 가족들을 살리고 !!
그렇다면 사랑을 차지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뭔가 차별화가 되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먼저 레아에게 아들이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야곱의 부인은 누구인가? 라헬인데, 그러니 그녀는 그만 불임여성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는 도저히 안 되니 자기 여종을 남편에게 보내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은 요셉과 베냐민을 낳고 죽어버리는데, 그러나 이렇게 죽는 것이 패배가 아니라, 이렇게 죽은 여인이 낳은 아들인 요셉이 나머지 모든 가족들을 다 살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라헬은 그만 자기가 희생되어서 다른 사람을 살리게 되는는데, 즉 라헬은 자기가 죽어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바로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미리 앞당겨서 보여주는데, 그것이 바로 창세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힘으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허다한 허물을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항상 우리를 덮침으로 말미암아서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이 항상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어떤 경우라도 의심하지 않고 감사함으로서 받아드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
이제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 질문 - 아담 안에 있는 상태와 마귀와의 관계는요?
아담 안에 있다는 것은 마귀도 그 안에 함께 들어있는데, 그 아담 안에서 아담이 왕이 아니라 마귀가 왕(?)인데, 세상의 권세를 잡은 자이기 때문에 말이다. 악마를 조교라고 보면 되는데, 우리는 그 조교에게 잡혀서 꼼짝도 못하고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마귀를 이기고, 그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는 우리를 건져내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마태복음 12장 29절에 나오는데, 강도가 와서 주인을 결박하고 난 뒤에 세간을 늑탈하는 것이 바로 하늘나라라는 것인데, 즉 배후에서 누군가가 와서 그 집주인을 꽁꽁 묶어놓고 물건을 가져가는 식으로, 그렇게 구원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구원방법이라는 말이다. 물론 모두를 다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만 골라서 구원해 가신다는 것이다.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 12: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 질문 -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애비는 마귀이다" 라고 하시면서, 여기에서 '애비' 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요?
* '애비' 라는 것은 직역을 해서 그런 것인데, 이것이 에베소서 2장에 나와있는데, 옛날에는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고 말이다. 아무튼 오늘 강의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마귀는 이 여자의 후손을 믿지 않도록, 그런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이다. 자꾸 그렇게 하는 시험이 평생을 통해서 다가온다는 것이다.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마귀는 예수님과 우리는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유혹한다는 말이다.
(엡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 질문 - 야곱의 경우에, 엄청 끈질기게 달라붙어서 복을 받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데요?
야곱은 혼자서 무서워서라도 얍복강가에서 살려달라고 할 수밖에는 없는데, 죄를 짓고 나서 회개하는, 즉 "제가 하나님을 몰라 뵈었습니다. 제가 너무나도 잘난 체를 했습니다" 라고 하는 말이다. 실제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그 어떤 인간이라도 여유 만만하게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귀는 우리를 유혹하기를, "니가 하나님께 충성하고 교회에 그렇게 열심히 나가서 받은 것이 무엇인가? 그러므로 하나님은 허상이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일종의 취미생활이지, 정말이지 아무 것도 아니지" 라고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성경을 덮어놓고 생각하게 되면, 즉 그런 성경의 흐름을 놓치게 되면 우리가 평소에 알고 있는 상식이 들어가게 되는데, 자기가 지금까지 경험해온 것들이 말이다. 어릴 때 교회에 다니면서 들었고, 또 장로가 한 이야기들이 말이다. 그런 것들이 조립이 되어버리면, 성경말씀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성경을 보더라도 흐름을 가지고 보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여기서 찔끔, 저기서 찔끔, 그렇게 해버리면 성경이 모자이크가 되어서, 어설픈 몽타쥬가 된다는 것이다.
* 질문 - 주기도문을 보고 나서, "나는 이루지 못하고, 주님만 이루신다" 라고 보면 되는지요?
주기도문을 반드시 주께서 그대로 실시하시는데, 마치 식당에서 밥을 먹고 고마운 친구가 계산서를 먼저 들고 가서 계산을 하듯이, 그렇게 주님이 주기도문이란 계산서를 들고 가서 다 계산을 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에게 적용을 시키고 말이다. 우리는 그런 주기도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이고 말이다.
* 질문 - 창세기를 보면서 하나님의 약속으로 해석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 이전에는 그냥 상식(?)으로만 이해를 했는데요?
그렇게 약속으로 알게 되면 어려울 것이 없는데, 성경이 원래 약속이고 말이다. 이삭이 베푼 야곱에 대한 축복도 이삭의 행위차원이 아니라, 약속 때문에, 즉 장차 오실 예수님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모든 것이 그렇게 다 약속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는 출애굽기를 하겠는데, 그 맥이 출애굽기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 말이다.
* 질문 - 좀 창피했던 이야기이지만, 그 동안 막혔던 것이 오늘 많이 뚫렸는습니다. 아무튼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데, 이 정도만 알아도 대박(?)이 터지겠다 싶고 말입니다. (??) 그리고 목사님이 숙제를 내기를 해밀턴의 '용서'을 읽으라고 해서 저는 다 읽었는데, 예수님의 용서하심 말고는 완벽한 용서는 없지 싶은데요?
물론 예수님 말고는 그런 용서가 없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마귀가 주는 용서가 있는데, 마귀가 주는 용서의 특징은, 용서하는 주체자인 인간이 그렇게 용서함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확신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악마가 주는 용서라는 말이다. 그러니 성도라고 한다면 그런 것을 이겨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 질문 - 성경에 보면, 해가 지기 전에 분을 풀어야 하고,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을 수 없다고 했는데, 그러니 인간이 용서를 해결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러니 마귀는 어떤 식으로든지 인간이 자기 힘으로 용서하라고 우리를 유혹한다는 것이다. 주님의 그런 용서하심을 배제하려고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성경말씀 속에도 악마의 이야기가 많은가요?
성경에 악마의 이야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가 악마에 물들었기 때문에 성경을 그런 식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욥의 세 친구가 무엇이라 하는가? 욥에게 하는 말이, "니가 뭔가 나쁜 짓을 했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한다" 라는 것이다.
* 질문 - 조교가 악마라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은 그것에 개의치 않고 살아가는가요? 아니면 껄떡 껄떡 걸리면서 살아가는가요?
우리 인간이 어디에 걸리는 정도가 아니라, 성경이 아니라면 몽땅 다 빠질 수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날마다 조교에게 당하지만 날마다 성령께서 그것이 아니라고 일깨워주신다는 말이다. 성령께서 말이다. 왜냐하면, 악마는 원래 천사인데 이 천사는 단수가 하나님보다는 낮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부리는 종이니 말이다. 욥기에 보면 천사(악마)가 하나님과 이야기하는데, 하나님으로부터 허락을 받아서 욥을 시험한다는 것이다.
* 질문 - 지난주와 오늘 시작할 때에 "인간의 현실은 허구이다" 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인간에게 진짜 허구가 아닌 실존(?)은 무엇인가요?
그런 것은 없는데, 사실상 없다기보다는 있지만 본인이 모른다는 것이다. 하나님 쪽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 죄인이고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정작 자기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모르는데,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 자꾸만 변하기 때문인데, 즉 10년 전에 자기와 작년의 자기와, 그리고 지금의 자기가 또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은 아까도 말했지만, '똑딱'으로 조립을 하는데, 자기 기분에 따라서 조립을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어떤 때는 좋아서 펄펄 날뛰다가도 어떤 때는 기가 팍 죽어있고 말이다. 즉 인간은 이성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감정에 치우쳐 살아간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만약에 이성으로 살 수만 있다면, 이성은 정직한가요?
원래 이성은 없고 인간이 만들어내었는데, 인간은 욕망 덩어리라는 것이다. 인간의 합리성은 15세기의 주체의식에서 나왔는데, "인간이 주인공이다" 라는 것이 말이다. 그런데 현대철학의 포스터모더니즘에 들어와서 이런 것은 다 깨어져 버렸는데, 즉 "사람은 우연에 의해서 지배를 받고, 기분에 따라서 자기 자신도 주체할 수가 없다" 라는 것이다. 인간은 과거에 대한 향수가 있어서 그리움이 있는데, 그러나 한번 돌아가 보라는 것이다. 얼마나 힘이 들는지 말이다.
* 질문 - 천국에 죽지 않고 올라간 사람들이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에녹과 엘리야가 그런 경우인데, 이들은 장차 오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는 승천을 보여주는 역할이라는 것이다. 아벨은 십자가에서 죽는 역할을 맡았고 말이다. 이것이 곧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데, 예수님을 각 파트별로 모자이크를 따로 떼듯이 그렇게 떼 내어간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아브라함이 맡고, 저 부분은 에녹이 맡고, 에녹이 맡고, 그리고 아벨이 맡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전체의 구조가 예수님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
(히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히 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 질문 - 그러면 총체적으로가 아니라, 기능적으로 각각 나타나나요?
그런 기능 속에 총체적인 것이 들어있는데, 아무튼 에녹이 죽지 않고 올라가는 것은, 예수님의 승천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이름과 그 의미는 어떻게 되나요?
이 이름이라고 하는 것은 장래에 그 속에 그 사람의 운명이 들어있는데,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사래'에서 '사라'로 말이다. 그리고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말이다.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이방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경우인데, 물론 그들이 이스라엘이 되기 전의 각 족장으로 있을 때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이스라엘로 그렇게 하나로 묶여버리면 끝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각 지파 별로 나아가는데, 그 이전까지는 이름에는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는 내용이, 즉 그들의 운명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하늘나라를 그들을 통해서 설명이 가능하니 말이다. 사람은 피조물이기에, 그러니 그들은 하나님이 쓰시는 '붓' 이라고나 할까요?
* 질문 - 그런데 죽지 않고 하늘로 가버리면 죄의 문제는 어떻게 되나요?
그런 것은 본인이 알고 있는데, 자기가 죽지 않고 천국에 가도 자기는 죄로 말미암아서 죽어야 하고, 그래서 예수님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엘리야가 변화산에서 예수님에게 뭐라고 하는고 하니, "예수님, 언제 돌아가십니까? 그렇게 해야 제가 구원을 받는데요" 라고 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데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그것도 전혀 모르고, "주여, 여기가 좋사오니" 라고 한다고 말이다. 그 세 분들은 별세를, 즉 십자가를 이야기하는데 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승천을 바로 해도, 어느 누구라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예수님을 볼 것을 기다리면서 그렇게 기뻐했고, 또 보고 나서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요 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 질문 - 성경을 본다고 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다 빼놓고 본 것 같은데요?
앞으로 이렇게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성경을 연결해보면 "아하,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서 성경을 기록하셨구나" 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 질문 - 율법이 오기 이전의 시대에서는 자기 죄를 무엇으로 알았나요?
아담이 했던 경험들은 자손 대대로 전달이 되었는데, 그렇게 옛날 이야기가 계속해서 흘러나왔기에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04,21 오후 5시 51분에 마침 (2005판 재정리).
새털같이 가벼운 남자,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