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02-제사,창세기(강의정리)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02-제사,창세기(강의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201)
04 칠곡강의 [뒤에서 본 한국교회] 02 - 제사, 창세기
04,05,01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죽은 자'에 대해서 !!
* 질문 - 목사님, 한식(寒食)에 산소에 가고 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들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 라고 하셨는데, 즉 인간이 죽고 사는 것이 우리 마음대로가 아니라 하나님 마음대로 인데, 그러니 그렇게 죽고 살고 하는 것은 너무 애착을 두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과거에 집착하게 되면 현재 주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 소홀히 할 수가 있는데, 하나님은 현재 살아있는 우리와 관계를 하겠다는데 말이다.
(눅 9:60)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물론 자기 식구 중에서 누군가가 죽으면 섭섭한데, 왜냐하면 자기가 그동안 공들인 것이 많이 있기 때문에 말이다. 싸움을 했던 안 했던 어찌 되었던 간에, 그 양반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그런데 그런 양반이 떠나고 나면 살아갈 맛이 나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럴 때는 죽은 자가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마음의 위로를 받기 위해서, 그래서 죽은 자를 마치 평소에 살아있는 것처럼 어떤 장소에다 모시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옛날의 제천의식이나 고인돌 등에 나타났지 싶은데, 그냥 화장을 해서 산이나 강에 뿌려버린다면 정작 살아있는 본인이 개인적으로 너무 아쉽고 허전하다는 것이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차원에서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다 핑계이고 말이다. 아쉬워서 그 정도 하면 괜찮은데,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온갖 미신이 다 들어온다는 것이다. 조상을 섬기지 않으면 후손이 저주를 받는다든지 말이다. 그런 것들이 수 백년 동안 압력을 가해서 찜찜하게 여겨진다면, 기독교 교인의 입장에서라면 그런 것들은 흔적도 없이 다 없애버리라는 것이다. 집안에서 욕을 좀 들어도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고 개인적으로 아쉬워서 그렇다고 하면, 그런 묘지를 관리하고 하는 것이 거리도 멀고 해서 너무 힘이 들고, 형제들도 다들 멀리고 있고 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국가적으로도 토지가 너무 낭비되고 말이다. 그렇다면 외국에서 하는 것처럼, 그냥 작은 공간에 꽃이라도 하나 둘 수 있도록 간단하게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요즘 공원묘지에도 보면 모두가 차를 가지고 오니 얼마나 밀리는가? 자식들에게 가르친다고 데리고 가지만, 그러나 그들은 관심조차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가능하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죽은 자들이 다 알아서 하도록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좋은데, 소위 '추도예배' 라는 것도 말이 안 되고, 다음 해에 모여서 아쉬움을 달래면서 음식을 함께 먹을 수는 있지만, 그것도 한 두 번하고 다 끝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 이유가 있어서 죽게 했는데, 꼭 자기가 잘못해서 그런 것처럼 책임을 지려고 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말이다.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서로 누군가가 싸워서 돌아가셨다면, 괜히 옆에 있던 며느리가 우울증에 걸려서 난리인데, "살아계시면 잘해드릴 텐데" 라고 하면서 말이다. 잘해주기는 뭘 말해준다는 말인가? 맨 날 하는 짓이 그게 그것인데 말이다.
그러니 쓸데없이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도록 하신 그 대상을 가지고, 그만큼 하나님에게 관심을 가져도 시원치 않을 판에 이미 죽은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이다. 요즘 산소에 가는데 돈이 어디 한 두 푼이 드는가? 누구는 어떻고 하면서, 잘못하다가는 형제간에 싸움이 일어나고 집안이 박살이 나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장례식의 경우에는 어떤가요?
서울과 같은 경우에는 상주들이 남자든 여자든 이미 다들 검은 옷으로 입고서 하는데, 우리 대구와 같은 경우에는 아직도 허연 한복 같은 입고서 한다는 것이다. 검은 옷이 간결하고 비용도 적게 들어서 좋다는 것이다. 그리고 향을 피우든 국화를 놓던 그런 것 자체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데, 그냥 빈손으로 있으면 허전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향을 피우는 경우에도 특별한 의미를 둘 필요가 없는데, 냄새도 좀 제거되고 말이다. 그러니 이런 장례식은 성경하고 아무런 연관이 없는데, 성경에 어긋날 것도 없고 말이다. 시신을 병원에 기증하든, 화장을 하든, 그런 것도 자기가 알아서 하면 되고 말이다.
이런 것이 다 '문화' 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문화를 존경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굳이 기를 쓰고 반대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추도예배는 이렇게 하고 제사는 저렇게 하라고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제사와 같은 경우에, 저의 주장은 하지 않으면 좋은데, 하는 것도 허용해주자는 의미는 아니고, 성경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젓가락질을 오른손으로 하든, 왼손으로 하든 말이다.
문화라고 하는 것은 풍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서, 악수를 하는데 손을 잡고 하지 않고 얼굴을 비비면서 하는 동네가 있다면, 그 동네에 가서 그렇게 굳이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역겨운데 말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믿고 난 뒤에 제사가 역겨울 수가 있는데, 그럴 때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가능한 한 그런 흔적들은 지우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 질문 - 어릴 때부터 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들어왔는데, 그것도 의식(儀式)입니까?
그런 제사는 의식이 아니라 성경말씀에 있는 것인데, 고린도전서 10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이방인의 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이니 참여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고전 10:20)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고전 10: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 질문 - 의식적인 요소를 가지고 하면 제사가 되고, 아무런 생각 없이 하면 아닙니까?
이 세상에서 아무런 생각도 없이 행동하는 사람은 없는데,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제사가 자기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식구들의 다 딸려 있는 것이니, 그리고 너무 섭섭하니 뭔가 몸짓으로라도 하는데, 그런 몸짓이 좋고 나쁘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은 내려오는 하나의 풍습에 불과하니까, 그런 것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우리 조상님이 계신다. 영혼이 찾아오니 절하자" 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은 우상숭배이니 참여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죽으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이 병원에 기증해서 아예 흔적을 없애버리는 것이 제일 좋은데, 그러면 병원에서 바로 죽은 그 시신을 들고 가기 때문에 관도 필요가 없고, 얼마나 경제적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시신도 없이 장례를 치르니 좀 그렇지만, 오히려 깨끗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병원에서 장례를 해도 시신은 다 따로 있으니 별로 이상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3년 뒤에 병원에 연락이 오는데, "어떻게 해드릴까요?" 라고 하면서 말이다. 화장을 요구하거나 납골당에 해달라고 하면 그대로 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간단하고 좋은가? 의료발전에도 도움이 되고 말이다. 물론 요즘은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골라서 받는다는 말도 있지만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장례식에 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단 분위기를 좋게 해주니 꽃이 좋은데, 국화의 경우에는 값이 비교적 저렴하고 말이다. 그리고 손이 허전하니 꽃을 한 송이라도 두고 해야 덜 서먹서먹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유세차~ 어쩌고" 라고 하는 것은 용납하면 되지 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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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란 무엇인가?
지금 시간이 7시 반이 넘었는데, 그만 먹고 이제 본격적으로 강의를 시작하겠는데, 일단 지난 시간에 한 것을 요약해보면, 지난번 시간에 "교회란 무엇인가?" 라는 것을 했는데, 일단 교회라고 하는 것은 선택을 받은 사람이 오는데, 즉 선택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선택을 받은 것이지 자기가 선택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는 반드시 사랑이 온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기가 자기를 선택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말로만 선택이 아니라, 뭐가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혜택이 바로 십자가의 사랑인데, 즉 "내가 너를 위해서 대신 죽노라" 라는 것인데, 이 얼마나 지독한 사랑이냐는 말이다.
그렇게 대신 죽음으로 말미암아서 평생에 지은 죄가 다 없어지면서, 그렇게 죄는 사라지고 그 안에 선택하신 분의 자비와 긍휼, 즉 불쌍히 여기심이 가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결코 완벽하게 살려고 하면 안 되는데, 완벽해야 되고, 철저해야 되고, 대단해야 되고, 이런 식으로 살면 피곤해서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그렇게 살아갈 수도 없지만 말이다.
◈ 범사에 감사하라 !! - 예 ??
예를 들어서, "범사에 감사하라" 라고 했는데, 그렇게 할 인간이 누가 있느냐는 것이다. 인간은 항상 자기가 감사할 것만 감사하고, 싫어할 것은 싫어하도록 구분하는 것이 인간인데 말이다. "처나 자식이나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면 하늘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죽은 자는 죽은 자로 장사지내게 하라" 라고 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어떻게 감당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 말씀을 하는 것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말씀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라는 것이다.
또 예를 들어서, 성경에서 "탐내지 마라" 라고 했는데, 우리 인간은 눈만 떴다하면 자기 것을 챙기려고 하는데, 아니 눈을 감고 꿈속에서까지 탐을 내는데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는 꿈속에서 탐을 내었으니 지옥에 가라" 라고 하면, 사실 우리는 할 말이 없는데, 꿈속이라도 하나님의 법을 어겼으니 당연히 지옥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 교회 - 불쌍한 놈들만 모여라 !!
바로 그런 사람을 불쌍히 여겨서 죄를 씻어줌으로 말미암아 모이는 것이 곧 교회라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는 항상 사랑만 있으면 되는데,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만 있으면 교회이고, 만약에 그분의 불쌍히 여겨주시는 사랑이 빠져버리면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사랑이 빠져버리면 어떻게 되는고 하니, "니가 잘났는가, 내가 잘났는가?" 라고 하는 잘남의 경쟁만이 남는다는 말이다. "야, 이번에 우리 아이는 반에서 2등을 했는데, 니는 몇 등이고?", "응, 우리 아이는 뒤에서 2등을 했다" 라고 하는, 이렇게 인간들의 모든 대화가 자기 잘남의 문제라는 것이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니가 사랑을 아는가?" 라고 하시는데, 하지만 사회에서는 뭐라고 하는고 하니, "당신은 얼마 짜리 소득을 매 달 만들어내는 사람인가?" 라는 것을 가지고, 그것을 가지고 그 사람의 가치를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 니는 한 달에 얼마 짜리이고?
* 응, 50만원.
* 사니 뭐하노. 그냥 죽어라.
* 니는 얼마이고?
* 응, 5천만원.
* 와, 대단하네. 가치가 좋아.
◈ 사랑은 관계이지, 양(量)과는 상관이 없어 !!
이렇게 사람의 가치를 돈으로 계산을, 즉 숫자로 균일화시켜버리는데,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인 경우에는 그렇게 숫자로 계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니는 몇 개 받았노? 나는 2개인데" 라고 하는 것이 말이다. 즉 예수님의 사랑은 그렇게 양(量)으로 계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양으로 전혀 계산이 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관계'이기 때문인데, 여기에 예수님이 계시고 또 이렇게 우리가 있다고 하면, 이 사랑은 이렇게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로 성립이 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데 어느 방향으로 가면 됩니까?" 라고 한다면, "예, 이쪽 방향으로 가시면 됩니다" 라는 것은 말이 되는데, "제가 한 달에 수입이 얼마나 되면 서울에 갈 수 있습니까?" 라고 하면, 그것은 질문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십일조를 얼마 내면 된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는 말이다.
◈ 천국에 가는데 얼마면 되는지요?
이렇게 사랑으로 가는 나라를 두고서, 인간들은 자기 쪽에서 얼마나 기도를 하면 가는지, 헌금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 그렇게 말이 안 되는 짓을 오늘날 교회에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교회에서 지금 말이 되고 교인들은 순진하게 그런 협박을 받아드리고 있고 말이다.
그렇게 "맞자. 내가 기도를 하지 않아서 그렇지" 라고 하면서, 자기가 스스로 양(量)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주님이 주신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를 받고, 그 사랑으로 축복을 받고, 그 사랑으로 구원을 받는데, 그렇게 해야 교회인데, 사랑의 관계로 유지되는 말이다. 그 사랑의 관계로 말미암아서, 고래 힘줄보다 더 질긴 사랑으로 구원을 받는데 말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기 쪽에서 뭔가를 꼼지락 꼼지락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마치 마술사가 손을 꼼지락거려서 비둘기를 만들어내듯이 말이다. 그렇게 마술을 부려서 멋있는 자랑거리를 만들려고 하는데, 하지만 인간 쪽에서 그렇게 만들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주님이 주신 사랑으로 넉넉하니 말이다.
◈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야 !!
그 사랑이 무엇인고 하니, 여기서 성경을 한번 찾아보자. 베드로전서 4장 8절 말씀인데, 저는 이 말씀에 큰 위로를 받는데,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는 것이다. 주님의 사랑이 이렇게 다가왔는데, 무엇을 골라서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허다한 죄를 덮는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말이다. 몇 몇 죄는 제쳐두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벧전 4: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저는 이것을 두고서, 겨울에 어머니가 자식에게 몰래와서 덮어주는 솜이불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날씨가 추울 때 어떻게 덮어주는가? 발만 덮어주는가? 아니면 허리만 덮어주는가? 전부를 다 덮어준다는 것이다. 온기가 밖으로 새어나가서 자식이 자는데 춥지 말라고 말이다.
이러한 주님의 두꺼운 사랑의 솜이불이 우리에게 덮치는데, 우리가 이것을 안다면 우리도 사랑으로 덮어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이라면 허다한 죄를 덮어주어야 그것이 진짜 사랑이지, 죄도 덮어주지 못하면서 죽죽 빤다고 해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 그러나 세상의 사랑은 소유물에 불과 !!
하지만 청춘남녀들이 말하는 사랑은 무엇인고 하니, "넌 내 꺼야" 라는 것인데, 그러니 자기 손에서 벗어나면 사고를 친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은, 자기 사유물이고 또한 소유물인데, 허다한 죄를 덮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만큼 했으니, 너도 나에게 그 정도는 해주어야지" 라고 하는, 반대급부를 요구하고 흥정을 한다는 것이다. 자기 소유물론 삼으니 말이다.
저는 거의 보지 않는데, 가끔 TV 드라마를 보면, 드라마에서 말하는 사랑이 거의가 다 이런 것인데, "나는 너를 사랑했는데 너는 나를 배반했잖아" 라고 말이다. 이게 말이 안 되는 것이, 사랑하면 사랑 그 자체로 그만이지 사랑에 무슨 배반이 있느냐는 것이다. 엄정화의 '배반의 장미'가 갑자기 생각이 나는데, 배반을 하지 않는 조건하에서 사랑을 하는 것은 흥정이지 말이다. "내가 이 정도 했으니, 너도 그 정도는 내놓아야 하지 않는가?" 라는 것이다.
◈ 결혼도 좀 살아보고 나서 !!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일종의 계약인데,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을 할 때 이혼계약서부터 쓰고 한다는데, "이런 이런 조건이 아니면 이혼을 한다" 라고 말이다. 물론 재산도 공동명의로 하고 말이다. 나중에 갈라질 때 싫은 소리를 하지 않고 깔끔하게 말이다. 그리고 좀 살아보고 결혼을 한다는 계약결혼도 유행하고 말이다.
특히 시어머니의 경우에, 새 며느리가 들어오면 사랑으로 덮어줄 생각은 하지 않고, "너는 이제 우리 집안 사람이야" 라고 나오는데, 즉 "너는 내 것이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자기 것이 확장되는 데서 어떤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일종의 정복욕인데, 즉 땅따먹기 말이다. "누가 누가 많이 차지하는가?" 라고 하는 말이다.
◈ 이것이 인생이다 !!
이것은 제가 들은 이야기인데, 참으로 비정한 내용인데, 어느 두 쌍의 부부가 결혼생활을 하다가 그만 똑같이 남편이 죽었다는 것이다. 한 쪽에서는 시어머니가 하는 말이, "야야, 너는 이 집 귀신이 되어야 하니,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그대로 청상과부로 살아라" 라고 하니, 며느리가 불만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 집은 이 며느리가 몸이 건강하지 못하니, "야야, 우리는 니 병까지 돌보아주지 못한다. 그러니 재가를 해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똑같이 남편이 죽고 혼자되었는데 그 반응태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것은 며느리를 사랑하고 말고 하는 게 아니라, 과연 어느 쪽이 돈이 되는지, 그게 측정의 기준이 된다는 말이다. 즉 건강해서 돈벌이를 할 수 있다면, 즉 자기 집안에 도움이 되면 그대로 데리고 있고, 아니면 쫓아낸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 그 남편이 죽지 전에도 그랬다는 말인데, 단지 그것이 밖으로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지 말이다. "야야, 너는 우리 집 며느리이다" 라고 귀여워하고 좋아했는데, 물론 돈이 된다는 조건하에서, 즉 자기 집안에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조건하에서 말이다. 그러니 얼마나 비정하냐는 것이다.
◈ 니가 과연 우리 집안에 도움이 되는가?
흔히들 결혼을 하면서 종교가 같니 다르니 어쩌고 하는데, 그 따위 소리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것은 전부가 껍데기이고, "과연 니가 우리 집에 와서 집안을 일으킬 여자인가? 아니면 돈을 다 까먹고 집안을 말아먹을 여자이냐?" 라는 것을 밑바탕으로 깔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 아들이 살아있을 동안에는 자기는 다른 시어머니와는 다르다고 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 며느리가 남편이 죽고 다른 남자와 사귀니 동네에 좋지 않은 소문이 도는데, 사실은 나쁜 일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서는 부정한 여자라고 단정하는데, 시어른들이 살아있는데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느냐고 하면서 말이다. 자기는 시집을 가면 그만이지만 자식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하면서, 자식들까지 들먹인다는 것이다.
성경공부를 하는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성경공부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경공부는 우리 삶 속에 있는 죄를 겨냥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말씀 앞에서 숨을 생각은 말아야 하는데, 교회생활로 만족해버리면 그냥 껍데기로 와서 껍데기와 마주치고 돌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보면, 그것이 우리의 삼겹살을 통과해서 우리의 마음까지 꿰뚫어 보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허다한 죄를 덮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이 이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돈보다도 더 귀하다고 하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주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말이다.
◈ 드디어 창세기와 한국교회 !!
지금까지가 지난 시간의 이야기이고, 이제부터는 우리 교재 53페이지에 있는 '창세기와 한국교회'를 하겠는데, 그 다음에 출애굽기, 레위기, 이렇게 66권을 다 해보려고 하는데, 제가 공부를 할 때는 진도를 상당히 빨리 나가겠는데, 여러분들이 신학을 전공한 것이 아니기에 하나하나 세밀하게 따지지를 않겠다는 것이다. 공부는 진도 나가는 재미가 있어야 하니 말이다.
오늘은 창세기를 다 한번 해보겠는데, 창세기는 이렇게 그림을 그리면 좋은데, 제가 전에 이런 그림을 그린 적이 있는데, 여기에 위에는 모래가 있고 그 밑에는 원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모래 위에서 시추봉을 박아서 시추를 하는데, 여기도 박고, 저기도 박고 말이다. 이것이 영화 '자이안트'에 보면 나오는데, 제임스딘과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주연한 말이다.
◈ 어디를 박아도 그분의 사랑이 !!
아무튼 여기에 이렇게 첫째로 박은 것을 두고 창세기라고 하자는 것이다. 그러니 창세기 이야기 따로, 출애굽기 따로, 그렇게 나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창세기를 통해서 허다한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이 나와야 하고, 또 들어가기는 출애굽기로 들어가도 십자가의 용서해주심이 나와야 하는데, 이 용서해주심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말이다.
* 질문 - 그런데 베드로전서 4장에서, 허다한 허물을 덮는 '사랑' 앞에 '열심' 이란 말이 있는데요?
그것은 사랑에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니 용서해준다는 말이, 우리가 언제 그것을 실감하는고 하니, 정말이지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질렀을 때, 그때 그야말로 실감이 나고 고맙다는 것이다. 비록 남들에게는 뻔뻔스럽게 보일지 몰라도 자기는 받아들이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 자존심이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은 용서대신에 자살을 택한다는 말이다. 요즘 자살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이 늘었다고들 하는데, 사실은 과거에도 많았었지만 말이다. 그들은 주님의 용서하심을 믿지 않으니 그러한 현상들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비록 교회에 다닌다고 해도 말이다.
◈ 자기 자존심이 아닌, 그분의 용서하심이 !!
그러니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존심을 챙기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존심이 뭉개져서 남들에게 돌을 맞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돌을 던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들은 너를 지옥에 가라고 저주를 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너와 함께 낙원에 있겠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믿는다면, 우리의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어놓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비록 자기가 그렇게 죄를 지었지만 구원을 받았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주님께서 주신 그 수명 아래에서 살아야, 그것이 성도의 모습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되는데, 아무튼 우리는 창세기를 통해서 어떤 사랑이 나오는지 살펴보자는 것인데, 거기에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처음 인간이 바로 '아담' 이라는 것이다. 이 아담이 죄를 지었는데, 그러면 "아담은 죄를 지었구나" 라고 하고 창세기가 끝나버리는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서 죄를 지었구나. 이제 빠바이" 라고, 그렇게 창세기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담이 죄를 지은 것은 분명하지만, 사랑으로 찾아오신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고, 우리가 그런 하나님을 믿자는 것이다.
◈ 인간은 '아담' 이라는 항아리에 !!
이것을 그림으로 그리면 좀 더 쉽게 이해가 되지 싶은데, 우리가 창세기를 보면서 이 아담만을 아담으로 알지만 사실은 그 뒤에 줄줄이 따라오는 놈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오늘날의 저와 여러분들이라는 것이다. 저는 이 아담을 어떤 글에서 '항아리'로 묘사를 했는데, 왜 우리가 김치독이라고 부를 때 그 '독' 말이다.
여기에서 아담이 그 독의 입구이고, 그 안에 소복소복하게 들어있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서 '아담 안' 이라고 하는데, 또는 '아담의 후손' 이라고 하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이렇게 아담 안에 갇혀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어떤 인간도 아담을 닮지 않은 인간은 없는데, 이것이 고린도전서 15장에 나오는데, 우리는 흙에 속해서 흙의 형상을 입었다는 말이다. 물론 인간은 백인과 흑인과 황인(?)이 다르지만, 그러나 모두가 아담과 하와에서, 즉 한 조상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물론 그 조상은 하나님이 만드셨고 말이다.
(고전 15: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따라서 제가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독 안에 있는 아담에게 창세기 3장에 보면 하나님이 찾아오셨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아담에게 찾아오셨다는 것은, 이 아담에게만 온 것이 아니라, 독 안에 들어있는 우리들에게 동일한 모습으로 다가오신다는 말이다.
(창 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그러니 "아담아, 어디 있느냐?" 라고 하는 것은, 아담과 같은 콘도를 사용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그렇게 찾아오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너는 죄를 지었구나. 죽어라" 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를 지은 줄 알면서도 다가오시는 하나님, 이것이 바로 아까 이야기한 허다한 죄를 덮어주시려고 오시는 바로 그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목사님, 그러면 성경공부를 할 필요가 없네요. 그렇게 하지 않아도 구원을 받는데 말이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그런 사람은 무엇을 모르는고 하니까, 아담이 죄를 지었으면 그 아담 안에 있는 우리들도 같은 죄를 지었다는 말인데, 하지만 사실 우리는 선악과를 따먹기는커녕 구경해본 적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우리 눈앞에 선악과가 있다면 우리는 따먹을 인간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성이 다 아담에게서 나왔으니 말이다.
◈ 천사와 같던 우리 아이가 !!
아이들을 키워본 분들은 알겠지만, 그들이 어릴 때는 다들 천사와 같다는 것이다. 모두 백설공부이고, 신데렐라이고 말이다. 그렇게 엄마만 졸졸 따라다니고 말도 잘 듣고 하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그래도 자기가 컸다고 좀 안다고 어디서 그런 땡깡(고집?)을 부리는지 말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주면 사랑한다고 이야기를 하다가, 그렇지 않으면 이건 엄마나 아빠를 부모로 보지도 않고, 그야말로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천상천하유아독존' 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줄 때까지는 말이다. 그것을 '부랑스럽다(?)' 라고 하는데, 그렇게 자기밖에는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타고난 것이 무엇인고 하니, 물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맞지만, 하지만 자식은 부모를 이용하는데, 결혼을 해서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사업을 한다면서 땅이나 좀 팔아달라고 하고, 딸은 와서는 더 가지고 갈 것이 없는지 두리번거리고 말이다. 그래서 자식은 도둑놈이라 하는데, (사위가 도둑인가?) 아무튼 타고났다는 것이다. 물론 그 부모도 자기 부모에게 그렇게 했고 말이다.
◈ 지상 최고의 과일, 선악과 !!
아무튼 선악과가 지금 여기 있으면 당장 따먹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인데, 왜냐하면 이 선악과가 보기에 끔찍한 것이 아니라 먹음직하다는 것이다. 얼마나 맛있어 보이는지 모른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최고로 맛있는 과일인데, 그 유혹을 누가 이기느냐는 것이다.
(창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 내 마음 나도 모르게 !!
남자들이 예비군 훈련을 받는데, 그 앞을 늘씬하고 예쁜 여자가 지나가면 휘파람을 불지 않는 남자가 없다는 것이다. 예비군 교관도 하던 강의를 잠시동안 잊어버린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가 성경공부를 할 때는 그런 일이 절대로 일어난 적이 없었지만 말이다.
그때 예수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마음속으로 한 것도 간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인간이 자기 행동을 어떻게 하느냐는 차원이 아니라, "니 미음을 니가 알아라" 라는 것이다. 즉 우리 인간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자기 것이라도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내를 구타하는 폭력남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고 하니, 때려놓고는 미안하다는 것이다. 다시 때리면 손을 자르겠다고 하는데,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손을 자른 놈이 누가 있느냐는 것이다. 도박을 하다가 자기 손을 자른 놈은 있어도 말이다. 그러면 도대체 이런 성질이 어디서 나왔는가? 타고났는데, 그런 유전자를 자기 엄마 아버지로부터 반반씩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 이런 아담이 구원을 받았다면 !!
그런데 만약에 이러한 아담이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도 희망이 있는데, 그러니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에 대해서 아쉬워하면 안 되는데, "나 같으면 참았을 텐데. 아이쿠, 우리가 조상을 잘못 그만 만나서 조졌구나" 라고 말이다. 하지만 선악과를 따먹은 것을 아쉬워할 것이 아니라, 선악과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즉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담이 천국으로 갔음에 대해서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수로 천국에 갔는가? 지금 아담은 천국에서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고 있는데, 하지만 원래는 선악과를 따먹기 때문에 천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천국에서 생명의 기쁨을 맛보고 있으니, 지금 우리들도 그런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같은 아담 안에 있으니 말이다.
아담이 죄를 짓고 난 뒤에 처음 한 행동은 바로 자기의 부끄러움을 가리는 것인데, 왜냐하면 수치를 느끼니 말이다. 그 이전까지는 이들에게는 옷이라는 것이 없었는데, 왜 그런고 하니, 물론 죄를 짓고 난 뒤에는 옷도 안 입고 돌아다니면 정신병자 소리를 듣겠지만 말이다.
아담이 죄를 짓고 난 뒤에 벌거벗은 자기를 보고 부끄러워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러나 그런 상대방을 보고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인데, 즉 죄를 짓고 난 뒤에는 타인을 보면서 자기의 수취를 느끼는데, 이러한 수치심이 극도로 심해지면 곧 우울증이 되고, 이런 우울증은 자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 인간은, 바람이 부는 대로 춤만 출 뿐 !!
아니, 로또복권에 당첨되어서 자살하는 사람이 있는가? "주님, 우째 이런 일이. 어떻게 저에게 이런 저주를 내리십니까?"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 사람은 없는데, 그러나 주식이 폭락하면 문제가 달라지지만 말이다. 하지만 사람의 가치라고 하는 것이, 로또복권에 당첨이 되든지, 주식이 폭락을 하든지, 그 어떤 일들이 일어나도 변함이 없어야 하는데, 그것이 곧 사람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밖에서 찬바람이 불든지 뜨거운 바람이 불든지 간에 "나는 나이어야 한다" 라고 해야하는데, 그런데 복권에 당첨이 되면 좋아서 기리 기리 날뛰고, 주식이 폭락하면 죽으려고 한다는 것은,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즉 '나' 라고 잡을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바람이 부는 대로 춤만 춘다는 말이다.
이러한 교인들을 보면서, 물론 저도 그렇지만, 우리 모두가 얼마나 답답한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즉 자기에 대해서 하나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외부의 조건에 의해서 어떤 조그마한 일이 하나라도 생기면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고 말이다. 그러니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 그때 그때마다 다른 인간으로 변한다는 말인데, 그러므로 인간은 언제나 폭발 직전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주님께서 주신 이런 인간이다" 라고 하는 정립되고 확증된 자기가 없고, 그냥 방치된, 그래서 도둑놈이 오면 도둑을 맞고, 강도가 오면 강도를 당하는, 그렇게 모든 것을 자기 것이 아니라 상황에 지배받는, 그야말로 다른 사람에 의해서 조종을 당하는 로봇과도 같은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 여보, 이것도 아파트라고 !!
예를 들어서, 자기는 지금 30평 짜리 아파트를 사서 기분이 좋아서 감사헌금을 봉투에 넣고 있는데, 그런데 갑자기 동창생 순이에게 전화가 와서 받으니, "응, 난데. 큰 것은 못하고 겨우 52평 짜리 하나 건졌다" 라고 하니, 그만 화가 나서 감사헌금이고 뭐고 다 던져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신랑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는 "당신 그동안 뭐했노? 결혼해서 고생고생은 다 시키고, 겨우 30평 짜리 하나 사주고는 큰 소리가? 이것도 아파트라고?" 라고 하면서, 바로 바가지를 긁는다는 말이다. 그러면 신랑은 열을 받아서 또 한 잔 걸치고 말이다.
세상 사람들도 아니고 교인들이 그렇게 하면서 사는 것을 보면 참으로 한심스러운데, 아무튼 인간은 이렇게 자기 것이라고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설령 가지고 있다고 해도 언제 빼앗길지 모르고 말이다. 그러니 사실 자기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 날개 잃은 천사가 되어서 !!
그동안은 자기 자식이 2등을 해서 기분이 좋았다가도, 바로 그 다음날 시험을 쳐서 25등을 해 가지고 오면, 졸지에 25등 짜리 자식을 가진 부모가 되니 그만큼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런 것이 발전하게 되면 우울증이 되고, 나중에는 날개를 잃은 천사가 되어서 아파트 옥상에서 그만 날아버린다는 것이다. 어느 특정인이 아니라 누구나 다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우울증이 날개를 잃은 천사 쪽이 아니라, 그만 지상으로 내려오게 되면 어떻게 되는고 하니, 쇼핑 중독이나 도박 중독증에 걸려서, 온 백화점이나 경마장을 돌아다니면서 자기 혼자만 죽는 것이 아니라 온 집안이 다 박살내고 만다는 것이다. 아니면 바람을 피우면서 이곳 저곳을 마구 돌아다니든지 말이다. 그 어떤 형태로든지 해소를 해야 되니 말이다.
◈ 인간의 모든 행동은 자기 욕망의 발산 !!
그래서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말하기를, 여자들이 뜨개질을 하는 것은, 간음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서 한다고 했는데, 옛날 우리 조상들의 삼베질(?)이나 다듬이질도 역시 그렇고 말이다. 뭔가 가슴에 응어리진 분통을 삭히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평생 먹을 돈이 있다고 해서 마구 노는 것이 아니라, 돈이 아무리 있어도 사업을 벌린다는 것이다. 자기의 욕망을 어떤 방식으로든지 해소를 해야 되는데, 그래서 있는 놈은 크게 벌려서 크게 망하고, 없는 놈은 적게 벌려서 적게 망하고 말이다. 서로 서로 노는 동네가 다를 뿐이지, 하는 짓들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안절부절 하면서도 뭔가 자꾸만 일을 벌인다는 것이다. 취직을 하면 직장에 다닌다고 바빠서 돈을 좀 적게 쓸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백수의 경우에는 집에서 놀면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사업을 한답시고 돈을 다 써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백수들이 용돈도 더 많이 든다고 말도 있고 말이다.
◈ 문제는 창세기 2장의 '부끄러움' !!
이러한 현상들이 왜 일어나는고 하니까, 그것이 바로 창세기 2장에 나오는 '부끄러움'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데, 예수님이 언제 소득을 많이 올려서 교회에 헌금을 왕창 하라고 했는가? 하나님이 그런 것을 보고 우리를 구원해준다고 했느냐는 것이다. 물론 목사들은 입만 열면 그렇게 말을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왜 교회에서 그러한 기도나 헌금과 같이 마치 바람에 나부끼는 것을 가지고서 자랑을 하느냐는 말이다. 그것이 목사 때문에 그런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마치 대일밴드처럼 '쫙' 하고 붙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십자가' 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십자가가 왜 좋은고 하니까, 그것은 바로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니기에 좋다는 말이다. 이 십자가의 은혜는 목사가 만든 것도 아니고, 부모가 만든 것도 아니고, 오직 예수님께서 만드셔서 우리에게 앵겨다(?) 주었다는 것이다.
◈ 덮어주시는 그 솜이불 덕분에 !!
그렇게 안겨줌으로 말미암아서 우리의 허다한 죄가 덮어지는데, 아까 말한 것과 같이 마치 어린아이에게 엄마가 덮어주는 솜이불과도 같이 말이다. 그 이불이 아직도 남아있으면 구원을 받고, 물론 그것이 없으면 추워서 얼어죽고 말이다. 그러니 이것이 얼마나 간단한가?
다시 말해서, 자기 쪽에서 얼마나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느냐가 아니고, 비록 자기는 폭삭 망하는 한이 있다고 해도, 예수님이 일방적으로 주시는 용서하심과 사랑은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에게 은혜로 주어졌다는 사실을, 그것을 아직도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오늘밤에 죽어도 천당에 간다는 것이다. 그 따뜻한 솜이불을 덮고 말이다.
◈ 정말 부끄러운 것이 무엇인가?
거지 나사로가 죽을 때 그의 직업이 무엇이었는가? 총회장이었는가? 그냥 거지였다는 말이다. 혼자 월남을 했다면 그렇게 거지로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미국에 이민을 가서는 그렇게 살 수 있을지는 몰라도 말이다. 그러나 일가친척들이 다 있고, 어릴 때부터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하는 모든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면서 자란 자기 동네에서, 그렇게 거지꼴로 죽는다고 하면 과연 가족들과 교인들이 좋아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야말로 모두가 엄청나게 부끄러워하지 싶은데, 소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진정한 하나님 영광이란 무엇인가? 자기가 이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자기가 거지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도대체 잘 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되어야만 잘 되는 것인가? 참 행복이란 것은, 자기의 가진 것으로, 즉 자기의 열심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행복은 자기 소유와는 상관없이 그냥 공짜로 주어질 때, 그것이 진짜 행복이라는 말이다. 자기가 제 아무리 행복해지려고 노력을 해도, 그것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는 말이다. 어서 오세요. (??)
◈ 다시 창세기를 정리하면 !!
지금 늦게 오신 분들을 위해서 다시 창세기를 정리해보면, 창세기 속에서 무엇을 끄집어내는고 하니, '사랑'을 끄집어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랑이 어떤 경우에 나타나는 사랑인고 하니, 아담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 잘하고 잘났을 때가 아니고,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지었을 때, 바로 그때 하나님은 사랑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우리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으니 상관이 없는가? 그것이 아니라, 우리도 역시 '아담 안'에서 동일한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마치 아담은 장독과 같아서, 그 항아리 안에 앞으로 올 사람들이 다 들어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아담의 육신을 그대로 복제하듯이 그렇게 번식을 했기 때문에 말이다. 즉 우리는 아담의 씨로 말미암아서 번성된 자들, 즉 아담의 복제품이라는 것이다.
◈ 아담이 천국에 갔다면, 우리도 !!
그러니 우리는 '아댐'이나, '아맘'에서 온 것이 아니라, '아담'에서 왔다는 말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태어나는 제2의 아담, 제3의 아담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 1장에서의 누가 누구를 '낳고', '낳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담에게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원조인 아담에게서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죄를 지은 아담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담 안에 있기 때문에 매일같이 죄를 짓지만, 그런데 그 죄를 허다한 허물을 덮어주는 주님의 사랑으로 덮어주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담이 천국에 갔다고 하면,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동일한 아담 안에 있기 때문에, 그러한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찾아오면, 우리의 허다한 죄가 모두 덮어져서 우리도 아담처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창세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고, 진리라는 말이다.
* 질문 - 고등학생 같은 질문을 하나 하겠는데, 하나님께서는 왜 죄가 있도록 하셨나요?
그것은 바로 죄가 없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만약에 죄를 짓지 않는 인간이라면, 자기 잘남과 완벽함만이 있지, 하나님의 감추어진 십자가의 사랑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실은 순전히 '하나님 위주' 라는 것이다.
◈ 죄가 있어야 하나님의 사랑이 !!
창세기에서 아직 아담은 십자가가 무엇이지를, 그 십자가의 정상을 제대로 모르는데, 물론 죽어서는 알았겠지만 아무튼 그 당시에는 몰랐다는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것을 크레인을 가지고 '좍' 당겨서 가지고 오는데, 물론 지금 우리는 알지만 말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세례요한도 위대하지만, 천국에서는 아주 작은 자도 세례요한보다도 더 위대하다는 것이다. 세례요한은 제대로 모르고 죽었는데, 물론 믿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십자가 사건은 세례요한보다 우리가 더 잘 안다는 말이다. 그래서 세례요한보다 우리가 더 위대하다는 것이다. 물론 같이 죽은 입장에서는 세례요한이 더 위대하겠지만 말이다.
(마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아무튼 아주 좋은 질문을 했는데, 왜 아담이 죄를 지었는고 하니까, '감추어진'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기 위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고 에베소서 3장에 나오는데, 하나님의 감추어진 비밀이 드러난다는 말이다.
(엡 3: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바로 이렇게 특별히 하나님께서 꼬불쳐놓은 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것이 바로 사랑인데, 그렇게 꼬불쳐놓은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죄를 짓도록 하신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
그러므로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것이 곧 하나님이 용서하심이고, 오직 그런 하나님의 자기 사랑으로 푹 덮어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진리가 십자가에서 모두 드러난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제가 이야기 한 것이 이해가 되지요?
◈ 다시 장독 그림을 그려보면 !!
이제 진도를 좀 나가보겠는데, 조금 전에 제가 장독 그림을 그렸는데, 우리가 그 장독 속에 소복하게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아오셨다는 것은, 그 아담 한 사람만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아담 안'에 들어있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찾아오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 아담이 죄인이었다면, 우리도 아담의 새끼이니까 동일하게 우리 모두가 다 죄인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로마서 5장에 나오는데, 아담이 죄인이 됨으로 말미암아서 우리는 모두가 다 죄 안에 갇혀있다는 것이다.
(롬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 실존성 - 인간은 독 안에 든 쥐 !!
그러니 우리가 우리 힘으로 어떻게 이 장독을 탈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전혀 불가능한데, 아무리 철야기도를 열심히 하고, 금식을 하고. 머리를 깎고 깊은 산에 들어가서 모든 세상적인 생각을 버리고 도를 닦아도, 사람도 전혀 만나지 않아도 말이다. 우리는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이기 때문에 결단코 밖으로 나가지를 못한다는 것인데, 이것을 두고 실존주의 철학에서는 '실존성'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 하나님, 용서하소서 !!
교회에 다니는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부모에게서 용돈을 타서 쓰는 학생시절에는, 이 세상을 보면서 다 썩었다고 말하고는, 자기는 결코 그렇게 살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뇌물도 안 받고 착하게 살면서 어려운 사람은 도와주는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고등부를 다닐 때는, 그리고 일부는 대학까지도 술 담배도 하지 않고 잘 버티지만 말이다.
그러나 막상 사회에 나가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 용서하소서. 이것이 인생이죠. 그래도 이 정도로 기특한 생각은 갖고 있으니, 남들보다는 제가 좀 낫지요?" 라면서 스스로 자기를 위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더 험악한 곳으로 보내버리는데, 그러면 이 사람은 전에 자기가 가졌던 "그래도, 이 정도면..." 라고 했던 그 선을 넘어버리는데, 그러면 또 거기에 사람들이 있으니, 이 사람은 또 뭐라고 하는가? "이왕 선은 넘었지만, 그래도 저 사람보다는 제가 더 낫지 않습니까?" 라고 한다는 것이다.
◈ 범죄치 않은 인간이 있는가?
이것이 바로 바리새인들이 한 짓거리인데, 꼭 자기 의(義)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렇게 인간들을 들추어내시는데, 그러니 이 세상에서 범죄하지 않은 인간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열왕기상 8장 46절을 한번 찾아보자.
(왕상 8:46)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저희가 주께 범죄함으로 주께서 저희에게 진노하사 저희를 적국에게 붙이시매 적국이 저희를 사로잡아 원근을 물론하고 적국의 땅으로 끌어간 후에
지금 이 장면이 무엇인고 하니,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놓고 하나님이 왜 성전을 짓게 하셨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인데, 그런 솔로몬이 하나님께 무엇이라고 기도하는고 하니,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라고 한다는 것이다. 자기만 죄를 짓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매일같이 범죄하지 않는 인간이란 있을 수가 없는데, 그러므로 인간이 일단 죄를 지은 이상, 범죄를 많이 하고 적게 하고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일단 범죄를 했다는 그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범죄를 적게 했다고 어디 봐주는 법이 없다는 말이다.
◈ 범죄한 인간은 구원과 무관 !!
이렇게 모든 인간은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서 자기 힘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 힘으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로 하여금 범죄를 할 수밖에 없는 인생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지고 있어도, 제 아무리 교회에 잘 다니고 목사가 된다고 해도, 그것으로 인해서 구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에서 전혀 빠져 나오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은 독 안에 든 쥐이기 때문에, 그런 범죄에서 도저히 빠져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20년 동안 죄를 지은 사실이 전혀 없다고 해도, 물론 그럴 수도 없지만, 아무튼 바로 그 다음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 아직 현대그룹 총수가 아니기에 !!
이번에 한강에 투신한 전남지사의 경우도, 비록 그가 뇌물은 받았지만, 평소에 얼마나 대쪽같았는지 모른다는 말이다. 물론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일했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도 가상히 여겨줄지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들통이 나니까 자기의 완벽주의가, 즉 자기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아리수에 그만 잠수했다는 것이다. 현대그룹의 정몽헌 회장도 그렇고, 날개도 없으면서 뛰어내려서 어쩌자는 것인지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아직 멀쩡한가? 그것은 우리가 전남지사가 아직 되지 않았고, 현대그룹 회장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는 아직도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기에, 즉 자살할 틈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 자기 위치가 높아지면 그만큼 자존심도 더욱 세어지기 마련인데, 그래서 한번 부자였던 사람이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죽기보다도 더 싫다는 말이다.
미국의 어느 유명한 여배우는 자기가 젊은 시절 그렇게 잘 나가다가 200억이 넘는 아파트에서 살고 말이다. 그런데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인기가 없고 수입이 없어지자, 씀씀이는 줄이지를 못하고 젊은 시절처럼 펑펑 쓰다가, 그 돈이 다 떨어지자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 생각에는 지출을 좀 줄여서 알뜰하게 살면 되지 싶은데, 인기가 없었던 시다바리(?) 시절로 돌아가서 말이다.
◈ 어떻게 선악과를 잊으리요 !!
그러나 그것이 안 되는 것이, 그 달콤한 선악과의 맛을 본 사람은 죽으면 죽었지 결코 잊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아직도 안 죽는 것은, 그 달콤한 맛을 아직 보지를 못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 세상의 이런 선악과라고 할 수 있는 돈이나 명예나 권력은 참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데, 자기가 점점 더 완벽한 인간으로 만들어지기를 요구하니 말이다.
◈ 아담을 구원하는 방식은, 바로 '여자의 후손' !!
이렇게 범죄하지 않는 인간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가오셔서 아담을 구원하신다면, 우리도 역시 희망이 있다는 말이다. 즉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신 그 방식을 믿기만 하면 우리도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아담에게 접근해서 구원한 그 방식이 무엇인가?
그것이 창세기에서 엄청나게 중요한데, 그렇게 하나님께서 죄인인 아담을 구원을 했는데, 그 방식이 무엇인고 하니, 이것을 창세기 3장 15절에 보면 뭐라고 하는고 하니까, '여자의 후손'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여자의 후손 말이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 이제 당신의 이름은 '하와' !!
하나님이 아담에게 약속을 하기를, 여자의 후손이 인간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고 하니, 이러한 약속의 사건 이후에 아담이 자기 마누라 아름을 지어주는데, 그 이름을 뭐라고 하는고 하니, 하와, 즉 '산 자의 어미' 라는 것이다. 우리말로 하면 '생명' 이라는 말이다.
바로 직전에 아담은 하나님으로부터 흙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말이다. 처음에는 아니지만 그러나 이제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죽는다고 하는 사형선고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는데, 그런데 아담은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자기가 죽는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자기 아내의 이름을 '생명' 이라고 지었다는 것이다.
(창 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 3:20)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혹시 여러분 가운데 이렇게 자기 마누라 이름을 '생명'으로 바꿀 수 있는가? '이생명', 최생명' 이라고 말이다. 여기에서 '생명' 이라는 의미는, "너 때문에 내가 산다" 라는 것인데, 즉 "하와, 당신 때문에 못난 남편인 내가 산다" 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고 누가 자존심 상하게 이런 이름을 짓느냐는 것이다. "생명님, 오늘 아침메뉴가 무엇입니까?" 라고 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말이다.
◈ 남자가 아닌, 여자의 후손 !!
그것은 바로 장차 태어날 이 '여자의 후손' 때문에 여자의 이름이 '생명'으로 지어지는데, 그런데 바로 이 여자의 후손이 누구인고 하니,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면 '예수님' 이라는 말이다.
(계 12: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계 12: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계 12: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계 12:4)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계 12: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이게 무슨 내용인고 하니, 하와가 아이를 잉태하게 되는데, 그 아이가 생명이기 때문에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데, 그 별이 곧 악마인데, 그 악마는 다른 것은 노리지 않고 아들과 여자만 노리는데, 그래서 이 악마가 이 여자와 아이를 죽이기 위해서 달려들었지만, 그런데 놓치고 말았고, 그 여자와 아들은 하늘로 승천하고 난 뒤에는 하늘에서 싸움은 도저히 안 되니까, 그 악마가 그만 화가 나서 이 땅에 있는 예수를 믿고 예수의 증거를 가진 남은 자들과 싸움을 한판 벌린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야기가 바로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오는 내용인데, 이것은 마치 미국영화 '터미네이터' 같지 않은가? 저는 아무리 보아도 그 영화가 요한계시록을 가져다가 표절한 것 같은데 말이다. 사실 요한계시록을 표절한 것들이 한 두 개가 아니지만 말이다.
◈ 마리아는 왜 처녀의 몸으로 !!
우리가 알다시피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예수님을 낳게 되는데, 그렇다면 왜 남편과의 성적인 관계로서 자연스럽게 태어나지를 않고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야만 하는가? 이 세상의 법칙으로는 제 아무리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도 모두가 다 남자의 후손인데, 그런데 아담이 받은 약속에는 남자가 아닌 여자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남자의 후손은 안 되는고 하니, 아담은 말 그대로 흙, 즉 죽음이기에 생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반드시 약속대로 '여자의 후손'이어야 하기 때문에, 마리아는 남편이 필요하지 않는 동정녀의 몸, 즉 단일성인 여자의 몸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아기 예수님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악마는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헤롯을 동원해서 베들레헴에 살고 있는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을 모두 다 죽여버렸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융단폭격을 해버렸는데,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요셉에게 천사가 미리 나타나서 가르쳐줌으로 거기에서 빠져 나왔다는 말이다. 동방박사들도 그렇게 해서 피신을 했고 말이다. 그것이 바로 마태복음만이 아닌 요한계시록 12장의 내용이라는 말이다.
◈ 악마의 활동 -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만은 NO !!
그러니 이 세상의 구조가 겉으로 보기에는 돈을 버는데 바쁜 것 같지만, 그러나 진짜 영적인(?) 구조는 무엇인고 하니, "아직도 예수 믿나?" 라는 것을 지목하고 추격하는, 악마의 추격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악마는 어떻게 해서라도 예수를 믿지 못하도록 하는데, 즉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돈에 빠지게 하고, 교회를 좋아하는 사람은 교회에 빠지게 하고, 물론 목사는 목회에 빠지게 하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간에 여자의 후손인 예수만은 못 믿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자기 기도, 전도, 간증 등과 같은 것을 믿도록 했으면 했지, 즉 그렇게 해서 자기 것에 매달리도록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