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2: 7-10 (찬양의 내용)
삼상 2: 7-10 (찬양의 내용)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50)
본문 : 사무엘상 2장 7-10절
제목 : 찬양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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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8-08-03 16:00
찬양의 내용
2008년 8월 3일 본문 말씀: 사무엘상 2:7-11
삼상 2:1)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삼상 2:2)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삼상 2:3)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삼상 2:4)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삼상 2:5)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삼상 2: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삼상 2: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삼상 2: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삼상 2:9) 『그가 그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으로 흑암 중에서 잠잠케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삼상 2: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 우뢰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삼상 2:11)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
교회는 인간의 힘으로 다니지 못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야말로 불가능한 교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이곳에 나오고 있다는 것이 지배적인 생각으로 가득찬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나처럼 하면 된다”를 선전하는 교회가 되면 안됩니다. 도리어 “당신이 아무리 나처럼 해도 구원되지 못합니다”를 말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공로만 계속 돌아다니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한나의 찬양도 그 불가능성 중의 하나입니다. 한나가 연구해서 가사를 적은 것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터져 나온 겁니다’ 말릴 수가 없습니다. 본인이 멈출 수도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께서 그녀를 쓰신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26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로잡힌 바 됨”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가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명령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감탄사로 영접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라는 것을 그냥 명령으로 들으면 열심히 사랑하려고 할 것이지만 감탄사로 받게 되면, “나에게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시는 분이 실제로 계실 줄이야…!”라는 변화를 동반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감격 속에서 그 사람은 자신의 사적인 모든 것을 부정하게 됩니다.
구원이란 이처럼 하나님과 거래나 흥정이나 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력의 침투로 이루어집니다. 마치 주사 바늘이 꽂혀 들어오는 것처럼 그 바늘구멍을 통해서 하나님에 관한 사항들이 그 사람의 운명 속으로 밀려들어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사업이 그 사람의 본인 사명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한나의 찬양도 하나님의 사업에 관한 겁니다. 그런데 한나의 찬양과 앞과 뒤는 ‘하나님의 원수’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집니다. 평소에 사람들은 누구와 원수 맺는 것을 부담스러워합니다. 그 어떤 사람하고도 친하게 지내고 싶어합니다. 왜냐하면 어느 시, 어떤 경우에 나에게 도움이 될지 모를 일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소위 사회성이 있다는 말은 내가 남을 무시하지 않을 때, 언젠가는 그 분도 나를 우대해 줄 것이라는 반대급부를 고려한 처세술이 됩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남과 싸우지 않고 원수 만들지 않으려 합니다. 친하게 지내려합니다. 그런데 오늘 찬양의 내용에 ‘원수’가 나옵니다.
이는 한나의 사적인 원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를 아는데 있어 한나가 이제 안목을 갖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될 수 있는 대로 남하고 원수가 되지 않으려고 하지만 결국 인간은 사적인 원수가 있게 마련입니다. 어떤 경우인가요? 그것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때입니다.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릴 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게 되면 사적인 원수는 무시되고 ‘하나님의 원수’가 부각이 됩니다. 사적인 원수에게 속시원하게 복수를 못해서 늘 찜찜하던 마음 자체가 이제는 확연히 달라지는 겁니다. 더 이상 ‘사적인 원수’를 가질 권리나 이유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날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원수를 사랑하라’의 취지입니다. 개인적인 원수는 이제 더 이상 따질 겨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원수’를 알게 된 것에 대해서 이제 성도는 하나님과 한편입니다. 하나님께 구원을 받았다는 말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하나님의 기능이 자기 속에서 작동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원수가 과연 어떤 기능으로 작동합니까? 창세기 3;15에 보면,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계열과 악마의 계열이 이 세상에서 공존하고 있는데 서로 상하고 상합니다. 좋게좋게 이야기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특히 하나님 계열에 속한 사람은 상처를 입어야 합니다. 희생을 당해야 합니다. 억울함을 맛보아야 합니다. 그런 경험 속에서만 하나님의 약속은 정상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런 하나님의 약속의 세계 속에 사적인 복수심이 가동되면 안됩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원수일까요?
교회 목회를 방해하는 것?, 교회 나가지 못하도록 시어른이 핍박하는 것? 예수 믿다가 사기 당하는 것?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열심히 신앙생활해서 그것으로 구원받겠다는 것?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원수된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일이란 완전히 인간을 배제하고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홀로 행하신 일로 성취된 성과를 우리 성도에게 그저 주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예수님의 공로를 가리우고 그 앞에다 자신의 공로를 등장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우리 구원받은 자는 한 순간도 하나님의 공로를 가릴 권한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공로를 대체할 자격도 없습니다. 자기만을 쳐다보면서 행하는 ‘자기 부인’이 아니라 예수님의 공로 앞에서의 ‘자기 부인입니다.’
마치 새벽에 폭설이 내린 경우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마을에 펜션이 열 채가 있다면, 지난 밤에 열 집 모두에게 각기 다른 사정들이나 사건들이 일어났다고 칩시다. 어떤 집은 밤새 부부싸움을 했고, 어떤 집은 가족끼리 오순도순 오락회를 하면서 행복하게 보내고, 어떤 집은 혼자서 술만 퍼마셨다고 칩시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에 각기 자기 집 문을 나가보니 하늘에 하얀 폭설이 내려서 대지를 닦아 말갛게 내었습니다.
각자 집안에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를 하얀 눈은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은채 온통 하얀 세상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 공로를 잊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원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의 안목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경은 참으로 위험스러운 책일 수도 있습니다. 사적으로 재정적 피해를 입은 사람이 법원에 나가서 판결을 받을 때 기대하는 것은 금전적인 보상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판사가 선언하기를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한가”라고 나온다면 기가 막힐 것입니다. 그 판사를 악하다고 욕할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6:7에서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사도의 전달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왜 우리가 사기를 당해도 ‘차라리 속는 것이 낫다’는 식이어야 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원수를 우리 힘이 아니라 예수님의 공로로 미리 처리해주신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각양 교만을 부서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이라는 이름의 쥐를 우리 내부에 보내셔서 각양 교만한 것을 다 부수게 하십니다. 이럴 때 우리는 찬양하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모든 것이 없더라도 찬양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