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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광주 강의(08. 7. 25) 2강 녹취록자유게시판사도행전

광주 강의(08. 7. 25) 2강 녹취록

이름 : 서경수(IP:116.37.101.23)

광주 강의(08. 7. 25) 39-2

지난 시간에 한 것을 한번 정리해 보면, 사람은 원래 자기 것이 없고 원래의 구조가 있고, 그 구조에 적응해서 살아남으려는 것이 인간이지 내 방식대로 내 원하는 대로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걸 누가 아시는가? 하나님이 아세요. 인간이 까불고 설치지만 세상 흘러가는 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쟝 보드리아르(프랑스 사회학자)가 이런 이야기했어요. “이 세상에는 모든 것이 상품화 되어있다.” 하나의 예를 들면, 엄마, 여자 국회의원, 여 교사는 하는 일이 다 다르지만 TV 드라마나 세상에서 볼 때는 반드시 예쁜 엄마, 예쁜 국회의원, 예쁜 선생님이 인기가 있어요. 성을 상품화 하는 시대지요. 다른 말로 하면 매력적인 것이 상품이 되는 시대라는 것을 보드리아르는 오늘날의 구조로 보는 거예요.

상품화라는 것이 뭐냐 하면, 사고파는 거예요. 무슨 뜻이냐 하면 반드시 여기에 ‘예쁘다. 좋다.’를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금액으로 평가합니다. 얼마짜리냐? “인간을 어떻게 돈으로 평가하느냐?” 라고 말들은 하지만, 막상 금액이 매겨지고 하면 거기에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드리아르의 이런 주장이 상당히 의미 상장한 것이, 분명히 여성으로 보지 말고 그냥 엄마로, 혹은 국회의원으로 또는 약사로 그 사람의 하는 일을 통해서 그 사람의 가치를 보는 것이 정당한데, 여기에서 ‘예쁘다’는 요소를 뽑아내면 예쁜 것이 상품화 되어서 돈이 여기에 몰립니다. 그냥 약사를 하면 밥 먹고 살지만, 만약 약사가 노래를 잘 불러서 히트를 치면 큰 돈 버는 가수가 되는 거예요. 주현미가 그런 경우인데, 그냥 약사만 했으면 큰 돈은 못 벌겠지요.

이 구조를 사람들이 처음에는 거부하지만 잠시 후면 선호하게 돼요. 이런 사람은 이미 구조화 되었어요. 또 이 구조화가 자기의 생활 습관과 정신 상태를 형성하고 말았어요. 교회 오는 것도 교제를 위해서 오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이러한 세태를 부수고 하나님께서 바른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감독자를 세우는 겁니다.

자, 옛날 제사장과 감독자의 차이점이 뭐냐? 감독은 자기가 일 안 하고, 제사장은 자기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제사장은 자기가 일을 해야 되고, 감독은 일은 안 하고 감독만 하면 돼요.

그럼 뭘 감독하는가?

사도행전 20장 28절을 찾아보겠습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여기에 감독자 되는데 누가 감독자 되게 합니까? 성령이 되게 하지요. 이게 제일 관건입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한다는 의미를 알기 위해서 사도행전 5장을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나오는데, 부동산을 팔아서 목돈이 생겼는데 그것을 사도 앞에 헌금이라고 내 놓았어요. 그럴 때 베드로가 뭐라고 합니까? 3절에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라고 하지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땅값 얼마를 감추고 일부를 가지고 와서 전부인 것처럼 하는데, 이것이 누구를 속이는 것인가 하면,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속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초대교회는 진짜 교회 맞지요. 가짜 교회는 사람만 있으면 교회인데, 초대교회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에 계셔서, 사람 속이는 것은 문제가 아니고 ‘성령을 속이느냐, 안 속이느냐?’로 사단이 틈탔느냐, 아니냐를 결정했단 말이지요. 얼마나 무서운 동네입니다.

그 당시 예배당이 컸습니까? 예배당 짓는데 수십억 들었습니까? 예배당이 얼마짜리냐가 문제가 아니에요. 성령이 있어서 사단에 들린 사람을 가려낼 수 있는 교회, 그것이 초대교회입니다. 사람과 상대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직접 상대하는 교회. 보통 무서운 교회가 아니지요?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교회를 하나의 친목 단체로 생각한 모양이에요. 요즘 교회처럼. 목사도 목사 구실을 못하고 성도도 성도 구실을 못하는 교회. 그래서 모두가 제 마음대로 행동해요. 교회가 사도행전 5장도 모르고 성경 안본지는 오래 되었고.

사람들이 교회 나오는 이유는 처음에는 복 받기 위해서 나왔는데, 나중에는 사랑받기 위해서 나와요. ‘교회 왜 나오는가?’ 그 이유를 알려면 그 사람이 어떨 때 삐치느냐를 보면 알아요. 미움 받으면 삐쳐요. “난 너하고 안 논다.” 이렇게 되거든요. 이런 사람은 처음 교회 올 때부터 교제의 장으로 본 거예요. 결국 사람만 봤지 성령이라든지 사단의 역사는 아예 안중에도 없어요.

노아 방주에 탄 사람은 달랑 한 식구, 8명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 교회는 8명 이상 되잖아요. 그 사람들이 생각한 것은, 너무 적다든지 자리가 너무 비었다든지 그런 것을 걱정한 것이 아니고, ‘과연 방주가 무사히 새 하늘과 새 땅을 볼 수 있느냐?’ 그것이 관건이잖아요.

교회라는 것이 뭐냐 하면, ‘과연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주님이 원하는 사람으로 주께서 만들어 내고 계시는가?’ 그게 관건이에요. 다른 사람한테 사랑받기 위해서 오면 안 되고, 성경 말씀대로 집사는 집사, 감독은 감독. 성경 말씀대로 나를 그렇게 만들어 내시는 것을 통해서 정말 주님이 살아 계시는구나 하는 것을 느낄 때, 그게 바로 내가 이미 천국에 와 있는 거예요.

이것이 신약의 교회인데, 구약에는 강제로 실시했어요. 그래서 제사 제도가 무너져야 되는 거예요. 이제 이해되십니까?

신약 시대의 감독이라는 것은, 감독은 분명 사람 맞습니다. 하지만 감독 앞에는 누가 있습니까? 성령님이 계세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감독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누가 중요하다? 성령님이 주도권을 가지고 계세요. 이게 신약 시대의 특징입니다. 신약 시대의 감독 위치는 성령이 시키는 대로 그냥 감독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피를 계속 봐야 돼요. 문설주의 피를 안 보면 그냥 넘어가지를 않으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녹음기를 보고 구원 한다고 하면 내가 녹음기를 소파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러면 항상 관심이 어디에 가 있겠습니까? 화장실에 가도, 방에 가도 항상 녹음기를 생각 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이걸 감독하는 것이 감독자에요.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않고 용서해서 그냥 넘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피 아닙니까. 그 피를 우리 각자가 다 내 놓았습니다. 그런데 바쁘게 보건소 일 하다보면 잊어버릴 수 있단 말이지요. 또 ‘내가 열심히 잘 하면 복 받을 거야.’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러다가 주일 설교를 들으면 “아, 맞아. 문설주에 피를 바르니까 하나님이 그 피를 보고 넘어갔지.” 그 안에 있는 내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그런 것은 안 따집니다. 밖에서 피를 보고 넘어갔어요. 안에 들어와서 상태를 본 것이 아니에요.

출애굽기에 죽음의 사자가 찾아와서 ‘여기 몇 명 있습니까?’ 그런 것 조사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그냥 밖에서 피가 발린 것을 보면, 그 안에 누가 있든지, 그 사람이 대머리든지 상관없이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러니까 신약 시대에는 뭘 감독해야 돼요? 각자의 마음속에 주님이 피보고 넘어간다는 생각을 잊지 말도록, 그걸 놓치지 말도록 설교하고 가르치는 일을 감독자가 합니다. 그러면 감독자 지는 별거냐? 지는 자기 생각 안 합니까? 하지요. 그러니까 특별히 감독의 직분이 감독자를 만드는데 성령께서 직분자로 하여금 그 직분을 감당케 한단 말이지요.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술에 인박이면 안 되고,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구타하면 안 되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피와 연관시켜서 그렇게 되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모든 감독과 집사의 행실이 피와 연관 되는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구약의 제사장 제도를 보는 겁니다. 하여튼 구약의 제사장과 신약의 감독은 다릅니다.

감독은 이미 이루어진 것을 감독하는 거고, 제사장은 감독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뭘 해야 돼요. 자기가 빠지면 일이 안 돼. 감독이 빠지면 다름 사람을 집어넣으면 그만이에요. 내가 감독될 필요는 없어요. 다른 사람이 하면 됩니다. 감독자 없는 교회는 없어요. 다 있는데 내가 꼭 될 필요는 없단 말이지요.

그런데 제사장은 혈통에 의해서 됩니다. 세습제예요. 본인의 신체로 하는 겁니다. 하기 싫어도 안 할 수 없어요. 반드시 해야 합니다. 완전히 강제적입니다. 제사장은 다 같은 집안이에요. 아버지가 제사장이면 아들도 제사장이에요.

레위 가문 전체가 제사 제도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자, 이것은 뭘 의미하는가? 제사장이 혈통으로 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 제사장 같은 사람만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혈통적 근거로써 구원해 내는데,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겁니다. 아들이라는 말은 아버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혈통적인 아들 사이를 구축하겠다. 그리고 그것만 구원이 되고 나머지는 구원이 안 된다.’

지금까지 한 것을 정리해 보면, 하나님이 선택한 나라, 집단 빼놓고는 구원이 없다.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 제사장입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은 왜 혈통이냐? 아버지가 선택 받았으니까 아들은 자동적으로 선택 받는 거예요.

제사장의 특징이 뭐냐 하면, 아버지로 인하여 내가 제사장이 되는 거예요. 아버지가 이스라엘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이스라엘 사람 되는 거예요. 이 전체가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 민족만을 따로 구원하고 나머지는 저주한다는 강한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어쩔 수 없습니다. “너 왜 성이 김씨니?” 이건 어쩔 수 없어요. 아버지가 김씨니까. 이것이 구약 제사장의 특징입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신약의 감독과 연결되는 것이 아니고,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벧전2:9) 신약은 구원받은 성도 전체가 제사장입니다. 교회가 어떻게 구원 받았습니까? 어쩔 수가 없는 거예요. 우리 아버지가 “너는 내 아들이다.” 라고 하니까 아들이 된 거예요. 간단하지요. “네 아버지는 누군데?” “하나님”.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구원 되어야 한다는 것을 구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예요.

그런데 이 사실을 모르게 되면, 사람들은 교회가 있으니까, ‘내가 구원 받기 위해서는 교회 가야지.’ 마치 자기가 선택해서 교회를 가서 기독교란 종교를 가져서 구원 되는 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종교 취미생활이고 교회가 교제의 장으로 보는 겁니다. 구약의 제사장 제도에 의하면 이런 사고방식은 용납이 안 됩니다.

교회 오는 것을 동창회 참석하는 것처럼, 꼭 갈 필요는 없고 재미있을 것 같으면 가고, 별 도움 안 될 것 같으면 안 가고. 마치 사교단체 회원 가입한 것 같아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교회 올 때 그런 마음으로 와요.

가을에 우리교회 어떤 집사님이 건의를 해서 중고등학생들 세례 받도록 하자는 건의가 있었어요. 저는 좋다고 했습니다. 세례를 안 하겠다는 것도 우습고, 강제로 세례를 하겠다는 것도 우스운데 교인들이 원한다면 세례 하는 것도 좋잖아요. 예배 시간이 11시인데, 12시로 하자고 하면 12시에 하면 되지요.

그런데 “세례를 받도록 합시다.” 라고 했을 때, 그 세례 받는 주 대상은 중고등학생이거든요. 그런데 이 건의를 학생들이 하는 것이 아니고 엄마들이 건의를 하는 거예요. 이건 무슨 뜻인가 하면 ‘목사님께서 우리아이 세례만 주면 제가 책임지고 신앙생활 잘 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나중에 교회와 멀어져도 세례 받은 세례 교인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서 다시 교회로 돌아올 수 있는데, 세례조차 안 받았으면 교인이라고 인정도 안 할 것이고 ---’

뭔가 세례교인이란 것이 하나의 도장처럼 빼도 박도 못하고 도장처럼 꽉 찍어주는 운명의 낙인처럼 그렇게 강제로 하기 위한 조치인지, 진짜 믿음 좋아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부모가 건의를 했어요.

자, 부모 뜻이 그렇잖아요. 좋아요. 그러면 학생들 뜻도 그렇습니까? ‘우리 어머니가 세례 받으라고 하니까 나도 세례 받고 싶다.’ 왜? ‘부모의 지시가 있었고, 나는 부모의 자식이거든요.’ 이렇게 되면 좋겠는데, ‘다른 것은 내가 부모의 뜻을 따르겠지만 교회 가라고 하는 것은 안 따르렵니다.’ 이렇게 되면 부모의 말을 어기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한테는 아버지가 없는 거예요.

밥해주고 돈 주고 빨래해주는 부모님밖에 없지 진짜 아버지가 없는 거예요. 이런 신앙은 없습니다. 자기가 알아서 구원 받는 신앙도 없고, 반드시 신앙은 아버지가 “너는 내 아들이야. 그래서 빼도 박도 못하고 영원히 천당에서 함께 살아야 돼.” 라는 그 아들, 딸 외에는 다른 신앙인은 없습니다. 이게 이스라엘 방식입니다.

주께서 골라야 돼요. 그래서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보면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것이 바로 선택론입니다. 아버지가 이미 나를 아들로 간주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 하나가 뭐냐? 제사장은 빼도 박도 못하게 어쩔 수 없이 한번 제사장 되었으면 그 가문은 대대로 제사장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하는 일은 피를 내고 재물을 잡는 일을 해야만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제사장입니다.

감독은 아니죠. 감독은 자기가 일하는 것이 아니고 감독을 해야 되고, 제사장은 자기가 제사 지내야 구원 받는 거예요. 그런데 히브리서 7장 11절을 보면,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라고 했어요.

레위 집안은 담당이 뭐다? 제사 담당. 제사 담당하라고 레위 지파를 세웠는데, ‘만약 그것이 진짜 그래서 구원되고 그래서 백성이 되는 거라면 또 다른 집안 유다 집안 멜기세덱을 세울 필요가 있었겠는가?’ 하고 묻는 거예요. 이 말은 ‘레위 집안 세운 것은 가라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장난쳤어요. 우리 하나님이 장난을 쳤어요. 실컷 제사 지내라고 해 놓고, “욕봤다. 그런데 그건 가짜거든.” 이렇게 나와요. 그러면 왜 이렇게 하실까요? 진짜는 인간이 뭘 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전에 열심히 인간이 하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 “열심히 했나?”

백 성: “열심히 했습니다.”

하나님: “많이 했나?”

백 성: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온전하지 못하거든”

백 성: “온전하지 못한 것 왜 시킵니까?”

하나님: “온전하지 못한 것 말고 온전한 것은 따로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했다.”

로마서 3장 21절을 봅시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노선이 두 개입니다. 하나님이 시켰어요. 율법을 지키며 살아라. 십계명도 주고 제사 제도도 주시고 해서 그렇게 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거 아니거든” 율법 외에 한 노선이 있어요. 이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요. 이 노선은 예수님 홀로 하셔서 저쪽 노선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노선이 온전치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백날 뭘 해도 내 행한 것으로 절대 구원이 안 된다.” 이것을 확실히 해 놓고, “지올 갈 거지?” “예, 지옥 갑니다.” “진짜 지옥 가는 거 맞지?” “맞습니다.” 저는 이것을 이번에 발간할 책에 이렇게 섰습니다. ‘하나님의 무시’ 라고. 하나님께 무시를 당해야 돼요. 모욕을 받아야 하고, 굴욕을 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어느 정도 굴욕을 당해야 하는가 하면, 설교하고 내려오는데 “(손가락으로 목사 얼굴을 밀면서)네가 목사야?” 이런 식으로 모욕을 당해야 합니다. 이 정도로 굴욕 당해야 해요. 텐트 쳐놓고 FTA반대 집회하는 곳에 찾아가서 “이런 것 하는 것이 주의 뜻입니까?” 라고 하니까 “너 어느 교단의 목사야?” 하면서 굴욕 당했지요. 축복 받은 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무시당해야 됩니다. “하나님, 내 인생 왜 이렇게 꼬이게 하십니까?” “더 꼬아 볼까?” 무시당해야 됩니다. “왜 내가 몸이 아픕니까?” “더 아프게 해 줄까?” 철저하게 모독당하고 굴욕적으로 무시를 당해야 됩니다. 왜? 이 노선에서 내가 할 것은 처음부터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 ‘율법 외에 한 의’와 네가 한 일을 한 번 비교해 보라는 겁니다. 네가 한 짓과 예수님이 하신 일과 한 번 비교해 보란 말이지요. 어느 노선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 로마서 3장에 보니까 ‘율법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의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나님께서 어떤 분을 준비하사 이분께서 피를 흘렸는데, 하나님께서 그 피를 보시고 저쪽에 있는 피 발린 인간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다.’

피 흘려 죽으신 분이 누구냐? 바로 아들이에요. 우리는 뭐냐? 아들 아니고 양자입니다. 양자의 자격으로 아들 덕분에 우리가 구원 받는 겁니다. 이것을 감독하는 것이 감독자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뭘 합니까? 쓸데없는 짓을 열심히 하는 겁니다. 그 쓸데없는 짓을 누가 시켰습니까? 하나님이 시켰어요. ‘너는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해야만 한다.’ 이게 히브리서 7장에 보면, 제사를 담당하는 레위 지파가 열심히 제사를 드려야 됩니다. 왜? 그래야 구원 받으니까. 그런데 그것이 성경에 보니까 온전하다, 온전치 못하다? 온전치 못한 거예요.

못된 시어머니가 며느리 길 드린다고 “예야, 밥맛이 없다. 된장찌개 끓여라.” “어머님, 된장찌개 했습니다.” “치워라. 맛없다.” “잡채 해라.” “잡채 했습니다. 잡수시지요.” “이게 고무줄이야 뭐야? 갔다 버려라. 나는 미역국 먹고 싶다.” “어머님, 미역국 끓여 왔습니다.” “이게 뭐야? 짜서 못 먹겠다.” 오는 족족 다 거절할 때 철저하게 시어머니께 무시당하지요. 그래서 더 이상 못살겠다고 보따리 챙겨서 “어머니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작별 인사를 할 때, “여기 주문한 음식 들여와라.” 그 때 각종 요리들이 쫙 들어오면서 “먹어라. 이것은 네가 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한 것이다.”

철저하게 우리 인생이 망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기독교의 허상]에서 “목회자는 목회에 망해야 구원 받는다.”고 섰어요. 목회자가 목회 성공하면 그 사람은 자기가 가치 있는 인간인줄 착각하기 때문에 큰일 납니다. 목회에 망해야 됩니다. 저는 지금 계속 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이 망해야 돼요. 여기 우리 어여쁜 딸들 인생이 망하기 바랍니다. 망해야 구원 받습니다. 망해야 하나님의 그저 주는 사랑으로 구원 받는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 내가 잘나서 구원 받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이제 제사장의 역할을 알겠지요?

쓸데없는 짓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 제사장입니다. 감독은 이미 다 해 놓은 것을 느긋한 마음으로 감독하는 일. 확연한 차이가 있지요. 감독하는 것이니까 자기가 일하는 것은 아니지요.

본문으로 돌아와서 3장 2-3절 봅시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이것은 바로 성령께서 감독자를 이런 식으로 만들어 나가시면서 감독케 하는 겁니다. 왜 그러냐 하면, 정작 감독이 해야 될 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 중요한 일이 세상적인 것으로 비방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겁니다.

자,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이런 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을까요? ‘술 끊은 사람.’ 아니죠. ‘절제 잘 하는 사람.’ 아니죠. ‘잘 가르치는 사람.’ 아니지요. ‘구타하지 않는 사람.’ 아닙니다. 한꺼번에 다 지킵니다. 정신을 오직 복음에만 팔면 세상적인 것에 대해서 관심이 없지요. 24시간 복음만 생각하는 사람이 남을 구타할 생각이 나겠습니까? 24시간 복음만 생각한다면 돈을 사랑하겠습니까? 안 하지요.

자, 그렇다면 이것이 그렇지 않고, 이것을 억지로 해 보려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게 바로 6절에 나오는데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마귀가 하나님께 정죄를 당했는데, 마귀가 정죄당한 이유가 뭐냐? 교만해서 그렇다는 거예요. 마귀가 무식한 것이 아닙니다. 마귀는 똑똑해요. 그런데 뭐가 문제입니까? 교만이지요. 교만이란 말이 무슨 뜻입니까? 관심이 자기한테 있는 거예요. 감독자는 누구한테 관심이 있습니까?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있는 반면에 마귀는 자기에게 관심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마귀 들린 인간은 전부다 관심이 누구에게 있는가 하면, 자기 자신의 자존심에 있어요. 자존심이 있으면 교만해 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결국 게임이고 경쟁이기 때문에.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자꾸 예수님 자신에게 관심을 두도록 했잖아요. “예수야, 너 배고프지? 예수야, 너 위대한 사람 되고 싶지? 예수야, 네가 온 세상을 갖고 싶지?” 자꾸 ‘너의 소유, 너의 능력, 너의 재주’ 거기다 관심을 두는데, 예수님은 관심을 어디에 둡니까?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말씀으로 산다.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관심사가 하나님께 있고 그분의 말씀을 생각했지 ‘내가 얼마나 가졌느냐?’ 그런 생각 한 적이 없단 말이지요.

화평교회가 마귀 들렸다고 생각한다면 ‘화평교회 교인수가 얼마며, 헌금이 얼마며’ 이렇게 되면 이건 진짜 마귀 들린 겁니다. 그런데 생각해 봅시다. 세상에 어떤 하나님이 숫자보고 천당 보내고 합니까.

이번에 나올 [피]라는 책에 보면 이런 것이 있습니다. ‘끝이 고통스러우면 전부다 고통스럽다.’ 어떤 뜻인가 하면, 끝을 우대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젊은 시절 잘났고, 잘 먹고 잘 살아도 어느 한 순간에 아프다면 과거에 잘 나간 것이 자신의 아픈 것을 경감하지 못합니다. 아픈 것은 아픈 것입니다. 마지막 때 아프다면 과거가 아무리 멋있고 화려해도 지금 아프면 다 아픈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지우개로 자꾸 과거를 지워 나가요. ‘나는 이런 일 했다.’고 돌아서면 벌써 다 지워졌어요. 하나님은 자꾸 죽음이란 지우개로 지우기 때문에 현재 달랑 남아있는 것은 현재가 어떠한가 하는 것만 남아있지 과거는 아무 소용없어요. 지금 내가 아프면 전부 다 아픈 거예요.

마귀는 계속해서 관심을 우리 자신에게 두도록 해요. 우리 자아가 있으면 경쟁에 나서요. 그러니까 여기에 마귀가 와서 “네가 승리해야지. 남에게 패하면 되겠니?” 이렇게 자꾸 유혹을 하니까 자연적으로 교만해 질 수밖에 없지요. 교만한 자는 감독자가 될 수 없습니다. 교만한 자가 감독이 되면 뭘 감독합니까? 자기의 목사직을 감독하지요. “나는 목사다. 어디 감히 나에게 대들어? 목사의 권위를 무시하면 안 돼.”

‘주님은 이렇습니다. 주께서 피 흘리셨습니다.’ 이런 말해야 되는데, 만날 자기만 쳐다보는 거예요.

[피]의 내용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희생의 피가 우리 마음 판에 적시면 우리는 다만 고개를 숙일 뿐이다.” 마치 욥처럼 ‘내 손으로 입을 막을 뿐입니다. 내가 뭘 하나님께 따지고 요구할 것이 있습니까? 다만 입을 막고 조용히 있겠습니다.’ 라고. 욥이 초반에 ‘왜 내가 고난 받아야 합니까?’ 하고 자기에게 관심을 갖다가 나중에 진짜 하나님이 폭풍가운데 나타나니까 더 이상 자기 생각은 못하게 됩니다.

‘똑똑하다. 잘한다.’ 이런 것이 소용없습니다. 주님의 피를 보지 않고 다른 것을 쳐다보면 그것이 다 교만입니다.

6절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라고 했는데, 처음 교회 온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 교회에서 경쟁을 하려고 합니다. ‘내가 신앙이 어느 정도 될까?’ 이런 식으로. 우리의 모델은 목사가 아니고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마귀의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고 합니다. 교회는 주님 쳐다보는 것이지 내 사랑 받기 위해서 교회 오는 것이 아닙니다.

8절에 보면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목사님, 감독과 집사 중 누가 경건빨이 셉니까?” ‘감독은 수준이 더 높아야 되고, 경건의 수준이 완벽에 가까워야 하지만 집사는 그 정도 안 돼도 되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감독이나 집사나 어떤 인간도 이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하나님이 원하는 교회는 이런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을 감독을 통해서 집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교회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이런 식으로 이끄신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런 수준이 안 되니까 집사 사표 내겠습니다.’ 이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되게 하십니다. 본인이 안 하고 싶어도 되게 하는 겁니다. 엄마 안 하고 싶어도 어린 아기가 울면 엄마는 애를 달래야 합니다. 달랠 때 엄마는 망가져요. 체면이고 뭐고 다 망가져요. 그야말로 여자에서 아줌마로 변해요. 자기 딴에는 아무리 고상한척 해도 아기가 울면 성질도 부렸다가 달랬다가 위협도 하고 이게 아줌마 기질이잖아요. 이런 게 다 나오게 마련입니다.

인생이란 것은 망가지기 마련입니다. 서서히 엷어진다는 말을 하는데, 인생이란 것은 자기가 지키고 싶어도 감사하게도 성령께서 나에게 미련을 버리게 만듭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관심 두게 만듭니다. 누가? 성령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감독, 집사의 특징을 보게 되면 ‘한 달 수입이 얼마다.’ 그런 것은 안 나오지요. 그러니까 성령과 우리의 관심사는 다르지요. 우리의 관심사는 늘 돈에 있습니다. 그래서 집사를 하면서도 ‘집사 되면 장사 잘 될까? 집사 하면 취직 잘 될까?’ 이런 생각합니다.

목사로서 교회에 봉사하면서 교인들의 밑바닥을 다 보게 됩니다. 정말 마이크에 대고 큰 소리로 묻고 싶어요. “그동안 교회 왜 나왔습니까?” 라고. 그 사람이 말 못하는 것을 제가 대신 하지요. “외로워서 사랑받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내가 이렇게 힘들고, 어렵게 살고, 마음고생 하는데 위로해 달라고 온 거예요.

‘그러면 위로 좀 해 주면 안 됩니까?’ 관심사가 온통 자기한테 있는 것을, 그런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희생하신 그분에게 관심을 돌리는 것이 교회의 목적입니다. 예수님을 쳐다보기 위해서 왔는데, 올 때마다 자기 쳐다보고, 남들도 자기 쳐다보기를 원하고, 자기가 화내는 것은 다 받아주기 원하면서 남이 성질부리면 삐쳐서 교회 안 나오고.

돈 없어서 부끄럽다고 교회 안 나오면, 여기 8절에서 집사에게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라는 것과, 3절에서 장로에게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다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집사를 세웠을 때 본인도 마찬가지고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고, ‘자,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께서 저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지 한 번 보자.’ 안 되면 그만 둬야 하고, 다른 사람을 시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집사 직분은 있어야 하고 그 직분은 이사람 저사람 해 보는 거지요. 교회가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한번 집사 되면 영원히 집사 하면 곤란하단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기준을 정해놓은 것은 바로 어떤 인간도 자기 자력으로 이 기준에 도달할 수 없고, 이 교회에 성령님이 살아 계셔서 이렇게 인도하시는 것을 한 번 보란 말이지요. ‘아하, 내 인생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영적 구조에 의해서 되는구나.’ 하는 것을 보란 말이지요.

자, 그러면 원래 집사가 할 일이 뭔가 하면, 봉사입니다. 이것은 사도행전에 나오지요. 원래 집사의 일은 봉사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감독은 복음을 감독하는 것이고 집사는 봉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여기에 ‘단정해야 되고 깨끗한 양심을 가져야 하고’ 라고 했지요. 봉사를 해야 하니까.

11절에 여자 집사를 봅시다.

“여자들이 이와 같이 단정하고”

단정한 것은 어떤 것이 단정한 것입니까? 치마가 무릎위에 몇 센티 올라가면 단정한 것입니까? 봉사라는 것은 봉사를 하게 하신 분 쪽으로 방향을 틀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상대적입니다. 단정하다는 것은 이쪽(봉사 받는 쪽) 보다는 단정한 거예요. 봉사자가 봉사를 할 때 다른 사람이 보기에, 저 사람은 우리보다 더 단정한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봉사. 이런 봉사를 위해서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그렇게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에서 기준은 상대적으로 이쪽 방향이 아니라 저쪽, 거룩한 하나님 방향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식으로 봉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봉사하는 사람이 봉사 받는 사람보다 더 설치고 하면 봉사가 안 돼요. 이쪽에 있는 사람에게 ‘그 방향은 바른 방향이 아닙니다.’ 라는 식으로 봉사하려면, 자기는 ‘저쪽으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그 정도 수준의 단정함이란 말이지요.

목사가 매일 자기 아내를 구타하면서 “여러분, 예수 믿으세요.” 라고 하면, ‘저쪽 세계는 구타해도 되는구나.’ 라고 오해 할 수 있단 말이지요.

정리를 해 보면, 집사라는 자리는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내는 자리라는 겁니다. 이정도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만들어 내는 자리에 내가 뽑힌 거예요. 마치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처럼.

11절을 봅시다.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참소는 입이 가벼워서 남의 비밀을 속에 두지를 못해요. 이렇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저것은 봉사자의 자세가 아닌데’ 라는 느낌을 주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말이 많더라도, 전에는 2만 마디 했는데 집사가 된 후에는 1만 미디로 줄이고, 저쪽에서 1만 마디 할 때 5천 마디로 줄이고, 꼭 할 말만 하고.

그 다음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일관성 있게 쭉 해 나가는 사람.

12절에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다스린다는 것은 모범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담력을 얻는다는 것은 예수에 대해서는 남들 앞에 큰소리 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15절에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다른 말로 하면 아들입니다. 우리가 왜 성도 되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보고 ‘너는 내 아들이다.’고 했으니까 어쩔 수 없이 된 거예요.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가족이 가족답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가족답게 사는 것, 그것은 아버지께서 그렇게 말씀대로 살게 해 주신다는 이러한 관계에 이미 놓여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을 혈육을 보고 강제로 구원해 주신 것처럼, 오늘날 성령께서 저희들에게 십자가 피를 알고 용서를 알게 하셔서 이미 가족 되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늘 의식하면서 자기를 생각하지 말고 예수님을 생각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08. 8. 1. 10:51 녹취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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