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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소요리문답공부6 (20030112)자유게시판-

소요리문답공부6 (20030112)

이름 : 오용익(IP:59.3.201.241)

소요리문답공부 제 6강 (이 근호목사, 2003년 1월 12일, 우리교회)

제 10 과, 생명의 언약

제 12문, 사람이 창조함을 받은 본 지위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저를 향하여 섭리하시는 중 무슨 특별한 작정을 하셨습니까?

답)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완전히 순복하는 것을 조건으로 삼아 생명의 언약을 맺고 선악을 분별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것은 사망의 벌로서 금했습니다.

여기서 묻는 것이 대체 무슨 뜻인지 상당히 혼동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작정을 하셨습니까’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특별히’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일을 두 가지 종류로 따로 따로 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특별히’라는 말을 쓸 수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것도 있고 일반적인 것과는 전혀 다른 무엇을 이야기 할 때 그것을 ‘특별히’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특별한 일을 했다는 것은 그러면 그 나머지 이것은 특별하지 않다는 뜻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일 가운데 특별한 것, 안특별한 것 이렇게 구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구분하면 안 되고, 하나님의 일의 특별하심은 무엇과 구별되느냐 하면 ‘지상에서 인간들이 일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특별하다’고 할 때 특별하다는 말을 사용해야 된다, 이 말입니다.

사람과 하나님과 비교해서 ‘특별하다. 특별하지 않다’를 사용해야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 가운데서 어떤 것은 특별하고 어떤 것은 특별하지 않다’고 해버리면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다른 일은 다 이해 하겠는데 그중에서 특별한 일, 그것은 잘 이해가 안 되네’라는 식으로 하나님의 일을 자기 멋대로 ‘이해되고 안 되고’를 골라잡을 수가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자체가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지적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향하여 무슨 특별한 일을 하셨는가’고 묻는데 제가 보기는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이 다 특별합니다. 이런 질문을 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간 것이 기적입니까? 예수님께서 해와 달을 만드신 것이 기적입니까?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기적입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특별한 일이 뭐냐고 묻는 것은 위와 같이 마찬가지의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해와 달을 만드신 것은 기본이고 예수님이 물 위를 걷는 것은 특별히 보너스로 주는 기적이다’라고 생각하시면 그것은 무례한 답이 됩니다.

적어도 신앙이 깊어지면 어느 정도까지 감사해야 되느냐 하면 꼭 내가 물 위를 안 걷더라도 심지어 내가 물위를 가다가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주께서 구원하심은 이것과 상관없는데서 오는 즐거움과 기쁨입니다. 이것이 기쁨입니다. ‘베드로가 물위를 걸었다.’ 물위를 걸었을 때는 은혜고 베드로가 물에 빠지면 지옥 갑니까?

그게 아니고 물위를 걷게 하신 것이나 물위를 걷다가 물에 빠지나 누구로 말미암아 주어진 기적이냐 하는 겁니다. ‘내가 물위를 걸으면 기적이고 물에 빠지면 기적이 아니다’가 아니라 ‘나는 지금 누구와 연관된 삶이다’는 관계자체가 기적이어야 됩니다. 만약에 병 걸려서 열 번 기도했는데 열 번 다 나았다면 열한 번째도 기도하면 병이 나아야 됩니다.

‘그런데 열한 번째는 기도했는데도 병이 낫지 않더라. 하나님이 날 버리신 모양이다.’ 구론 식으로 병 나은 것을 하나님의 자비로 보고 안 나으면 하나님의 저주로 보는 그런 인식 자체가 훨씬 저주스러워요. 기도해서 병 나은 경험이 있다는 것 자체가 더 원망스러워요. 차라리 그런 경험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고의 변화, 마음의 변화, 인식의 변화 그러한 변화가 진정한 기적입니다. 그러면 이 질문을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의 그 중심은 무엇입니까?’ 질문이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이 특별한데 그 특별한 일, 혹은 섭리는 어떤 중심되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 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일의 중심, 핵심이 뭡니까?’ 그것은 바로 생명의 언약입니다. 오늘 아침에 제가 존경하는 어느 목사님에게서 이런 메일이 왔습니다. ‘우리교회에서 소요리문답을 공부하고 있던데 교재가 뭡니까?’ 그래서 ‘시중에 가면 제일 얇고 값도 싼 것으로 구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소요리문답』이 어떤 점에서 허점이 있는가’를 처음강의 때 이야기한 적 있지요? 이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가 만들어질 17세기 당시 영국의 상황의 한계가 뭔지를 함께 짚어보자고 했습니다. 답변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답)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완전히 순복하는 것을 조건으로 삼아 생명의 언약을 맺고 선악을 분별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것은 사망의 벌로서 금했습니다.’

세상에 답변을 이렇게 길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이것을 한자 한자 외운 사람 빼놓고는 아무도 없을 거예요. 만약에 예수님께서 심판대에서 묻기를, 안식교에서는 하늘나라 심판대에서 면접이 있다는 식으로 가르치잖아요, 조사심판이 있다는 식으로 이단성을 드러내고 있는데, 만약에 심판대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작정이 뭡니까’라고 물으신다면 이 면접에서 떨어지면 참 곤란한일 아닙니까?

‘아, 그때 오십 몇 쪽엔가 있었는데, 그게 뭐라 뭐라 무지 길게 공부하기는 했는데 그게 뭐더라?’ 이것을 어떻게 다 외웁니까?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생명의 언약’이라는 말 자체가 일단 어폐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언약자체가 이미 생명이니까. 여기서 생명의 언약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선악과를 따먹으면 너는 죽고 선악과 안 따먹고 신경 안 쓰면 산다’는 것인데 이것도 정답이라고 해주기가 곤란합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왜 이것이 정답이 될 수 없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엄마가 독약을 식탁에 놓아두면서 ‘얘야, 이것은 독약이다. 이것을 먹으면 네가 죽는다’라고 이야기 했다고 칩시다. 엄마가 그런 이야기를 할 때 아이가 잘못 듣고 오해를 해서 ‘엄마, 이걸 먹으면 영생 얻는 거야’라고 했습니다.

“아니야, 안 죽는다는 이야기지. 영생을 얻는 것은 아니야.”

“엄마, 이 독약 안 먹으면 나중에 대통령 되는 거야?”

그것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안 죽는 언약이지 생명의 언약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창 2:16). ‘다른 것은 몰라도 생명나무의 열매는 반드시 먹어줘야 네가 영생을 얻는다’가 되어야 그것이 생명의 언약이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생명을 주려면 아예 선악과를 심지 말아야 되고 혹시 선악과를 심어 놓았더라도 적극적으로 이중 삼중으로 철조망을 쳐서 접근불가를 만들어 놓고 그저 어쨌든지 한가운데 생명나무의 과실은 가을철에 밤송이 떨어지듯이 두두두둑, 떨어져서 주워 먹게 하면서 선악과는 저 귀퉁이에 두어서 아예 사람들 눈에 잘 띄지도 않도록 하는 것이 자비로운 하나님의 사랑의 실시 혹은 실행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선악과를 가운데 두어서 일부러 먹도록 유도한 것이 할 것이 뭐 있습니까? 아이스크림 무지 좋아하는 아이한테 ‘이거 아이스크림인데 너 이거 먹으면 살찌거든!’이라고 하는 것, 가만히 공부 잘하고 있는 아이한테 아이스크림을 들고 가서는 ‘이거 먹으면 살쪄서 먹으면 안 되거든!’ 하는 것은 먹으라는 소리하고 똑같은 겁니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생명나무도 언약이 아니고 선악과도 언약이 아니고, 장차오실 예수님이 언약인데 선악과와 생명나무는 장차 오실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 분으로 오셨는가? 즉 죽은 자를 살리고 우리에게 영생 주시는 분이다’라는 것을 모형으로 그림자로 소개하기 위해서 에덴동산에 미리 있었던 겁니다.

생명의 언약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내 살과 내 피가 곧 생명’입니다.

요한복음 6:51-57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다 하시니라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여기 소요리문답서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완전히 순복하는 조건으로 삼아…’라는 이 말도 어폐가 있지 않습니까? 선악과 안 따먹고 생명나무 안 따먹으면 영생 얻습니까? 선악과를 안 따먹는 것을 순복으로 보지만 생명나무 안 따먹으면 어떻게 됩니까? 영생 못 얻는 겁니다. 그러니까 생명나무와 선악과를 가지고 이런 억지를 부리지 말라는 말이죠.

생명나무와 선악과를 가지고 인간의 영생에 관한 모든 것을 다 해석하고 설명하려 드는 것은 억지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억지를 집어넣어 놓았는가? 그것은 그 당시에 ‘교회에서 하는 말은 무조건 순복, 순종하는 그것이 살길이다’라는 식으로 가르쳤지, ‘예수를 믿음으로 영생얻는다’는 것을 치워버리고 ‘교회가 시키는 대로 무조건 따라 오너라’는 식으로 강조하다 보니 성경에서 그런 구미에 맞는 것들을 자꾸 발췌해 낸 여파입니다.

교회에서 성경에 아마추어인 평신도들이 제일 주의해야 하는 함정이 뭐냐 하면, 성경의 어떤 한 대목을 강조함으로 말미암아 강조점이 두 개 세 개 막 같이 등장한다는 것, 이것은 신앙생활 포기하라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것도 해야 되고 저것도 해야 되고. 보통 송구영신 예배 때 그런 것을 하잖아요. 함에다 손을 넣어서 나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뽑는 것.

처음에 그런 것을 보면서 ‘저렇게 유치한 것을 누가 따라 하겠는가?’ 했습니다. 사람들이 거기에 재미를 붙여서 확산이 되었습니다. 돈 받고 점쳐주는 겁니다. 나오는 것 마다 다 좋은 소리죠. 점집에 가면 돈 받고 사주팔자, 관상, 별자리 점 같은 것 다 봐주잖아요. 또 다방에 가면 동전 넣고 잡아당기면 땅콩도 나오면서 운세가 적힌 종이 뽑는 것 있는데 그것과 뭐가 다릅니까?

그렇게 하는 교회 당회장도 문제입니다만 그 교회 부교역자는 뭐하고 있는 겁니까? 제가 그 교회 부교역자 같으면 ‘이제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 드리겠습니다’하고 그거 다 부숴버리겠어요. ‘생명의 언약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믿는 것조차 선물로 줘야 된다는 것을 미리 앞당겨서 보여 주기 위해서 미리 앞당겨서 생명나무와 선악과를 두게 한 것’을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순복, 순종’ 이런 식으로 해 버리면 두 가지를 해야 됩니다. 하나는, 예수 믿는 것은 은혜로 믿고, 그 다음에 믿고 난 뒤에는 순복을 보태줘야 되고 그게 빠지면 지옥으로 빠져버리는 해괴망측한 다른 종교, 비복음적인 것이 되어 버립니다.

‘은혜 받아 놓고는 순복 안 해서 지옥 간다’는 이야기도 있고, ‘은혜 받아놓고 순종 안하면 상급이 없는 천국을 가게 되는데 심지어 팬티바람으로 천당 간다든지 남들은 다 금 면류관 쓰고 가는데 저 혼자 개털모자 쓰고 천당 간다’는 소리까지 나왔어요. ‘순복’이란 이름이 참 많았습니다. 특히 여자애들 착하고 말 잘 들으라는 뜻으로 많이 지어줬던 이름입니다.

왜 이런 신앙고백서나 요리문답에 순복이라는 내용을 집어넣는가 하면, 여기에 안식일을 집어넣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청교도신앙인데 청교도의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믿는 것으로는 모자라고 뭔가 남에게 내 보일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것들이 있어야 사람들 보기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진짜 믿는구나’하는 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거죠.

하나님을 의식하고 예수님을 의식하는 그것은 뒷전이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잘 믿는구나’라는 칭찬과 격려를 아울러 받으면서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이런 장치들을 마련한 것입니다. 본인이 예수 믿으면 믿지 왜 남들의 시선을 의식합니까? 그 이유는 교회가 곧 사회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유교공동체이기 때문에 조상만 잘 섬기면 한 가족으로 인정을 받지만 당시 서양사회는 청교도적인 것이 아니면 마귀 자식이 들어 왔다고 과감하게 쫓아냅니다. 시집에 가서 마귀며느리라는 소리를 안 들으려면 믿는 척이라도 해야 되고 믿는 시늉이라도 해야 되는데 믿는 시늉이라는 것은 시아버지 시어머니 보기에 그들의 신앙으로 점검하고 측정해봐서 ‘음, 믿는구나’라는 인정을 받아야 되는 겁니다.

그렇게 보니 안식일을 잘 지킬 때, ‘그래. 하나님의 축복으로 훌륭한 믿음의 며느리가 들어 왔구나’라고 되는 거예요. 그러니 그게 무슨 신앙입니까? 그것은 연극하는 것이고 연기피우는 거죠. 마음속에 뱀이 열 마리 들어 있든 스무 마리 들어있든 관계없이 그것을 살짝 억누르면서.

그래서 연기력이 서툰 사람은 칭찬 못 받고 연기력, 종교성이 뛰어난 사람은 칭찬을 늘어지게 받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만약 아버지가 교회 장로인데 ‘나는 신앙 좋은 자식에게 유산을 물려주겠다’고 한다면 자식들과 며느리들은 바빠집니다. 평소에 가지도 않던 교회를 가고 하지도 않던 십일조를 하고, 장로자리도 돈 주고 사고, 주일학교 교사한다, 성가대를 한다, 난리 법석을 떱니다.

그렇게 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원인제공을 청교도라 불리우는 당시의 교회가 제공했다는 이러한 난점을 이제는 컷!, 그런 것에서 떠나서 진짜 하나님 보시기에 좋으면 족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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