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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소요리문답공부3 (20021222)자유게시판-

소요리문답공부3 (20021222)

이름 : 오용익(IP:59.3.201.241)

소요리문답공부 제 3강 (이 근호목사, 2002년 12월 22일, 우리교회)

제 8과 인간

제10문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지었습니까?

답) 하나님이 사람을 남녀로 지으시되 자기의 형상대로 지식과 공의와 거룩함이 있게 하사 모든 생물을 지배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지었습니까?’ 라는 문제입니다. 이 질문에는 ‘어쨌든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만들었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림으로 보면 그 뜻을 쉽게 이해할 것입니다. 여기 사람이 있고 여기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었으면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속성이 담길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만드신 분이 만들 때의 그 의도가 만들어진 창조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겁니다. 제과점의 빵 만드는 사람이 케이크를 만들어 놓고는 그 케이크를 보고 묻습니다.

“케이크야, 네가 너를 만들었느냐?”

“아니요.”

“그러면 누가 만들었지?”

“아저씨가 만들었지요.”

그 케이크는 이 사람도 아니고 저 사람도 아니고 이 아저씨의 마음자세, 솜씨등이 포함되어 있게 됩니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는 말과 성경에서 말씀하는 ‘여호와께서 인간을 창조했다’는 말과 좀 달라요.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 이 말은 ‘만들어줬으니 이제는 손 떼라. 이제부터는 내가 중요하다’, 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었다’가 되어 버리면 만든 속성이 여기에 남아 있기 때문에 이점을 무시할 수 없는 겁니다. ‘만들어 놓았다.’ 그 말과 ‘이제는 하나님께 순종해야지’라는 말과 같은 말이라는 뜻입니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은 뭐냐? ‘왜 이따위 식으로 만들었는가?’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 키가 작습니까(혹은 큽니까?) 하나님이 책임지세요.’ ‘만들었다’는 데서 이렇게 나올 공산이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날 만들었다고? 그러면 하나님이 시키는대로 살아야지. 다른 별스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겠네.’ 이렇게 되도록 하나님이 나를 만드신 그 취지를 아는 겁니다.

차이점을 잘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만들었다’는 그 한마디를 가지고도 두 가지의 대조되는 사상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만들었기 때문에 나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니까 내가 스스로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나오면 제대로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었음’을 아는 사람이고 그냥 ‘하나님이 나를 만들었다’가 되면 만 날 삐지면서 ‘왜 날 이렇게 만들었어요. 물어내세요.’ 이렇게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더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얘야, 내가 너희를 낳았단다” 했을 때, 그게 똑같은 말인데 엄마의 취지를 잘 헤아리는 자식이라면 “예. 낳아주셨으니 이제는 엄마 말씀대로 살겠습니다”라고 나올 것이고 그 엄마의 말의 취지를 모르는 아이들은 “누가 이렇게 낳아 달라고 했어요? 누가 물어 봤어요? 나는 아들이고 싶은데 왜 딸로 낳으셨나요? 물어내세요!”

이것은 엄마의 취지를 전혀 이해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거꾸로 바라보는 이것이 타락이고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대로 된 인간의 품성이 아니고 마귀의 속성이 들어갔기 때문에 ‘자기를 창조했다는 그 하나님께 대하여 오히려 하나님께 분노하는 인간’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조상 아담에서 낳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처음조상인 아담과 하와 부부가 이미 무슨 문제가 생겨서 모든 인간은 그 문제를 안은 채 낳아지게 되는 겁니다. 여기에 단지(꿀단지)가 있는데 쥐부부가 들어앉아 있다 보니 새끼를 쳐서 굉장히 많이 불어났습니다. 아무리 새끼가 많이 불어나도 이 쥐들은 어디 안에서 못 벗어납니까? 이 쥐는 독안에 든 쥐입니다.

그런데 이 독안에 든 쥐새끼가 하는 말이 “나는 왜 여기서 태어났지?” “엄마 아빠가 죄를 졌단다.” “죄는 엄마 아빠가 지은 것이지 내가 지은 죄가 아니잖아. 그런데 내 성질이 왜 이모양이지?” 이렇게 나온다면 그 쥐새끼는 ‘독안에 든 쥐’ 신세임을 이해 못하는 거예요. 모든 인간은 아담과 하와 그 안 자체를 못 벗어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담과 하와의 그 죄악 된 본성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겁니다. 이것이 시편 51편 5절에 나옵니다.

시편 51:5

“내가 죄악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나의 모친이 육체를 동원해서 나를 낳았다’고 보지 않고 ‘나의 모친이 죄를 동원해서 나를 낳았다’고 보는 겁니다. ‘나의 부모는 죄를 동원해서 나를 낳았고 그 부모는 그 부모의 죄를 동원해서 낳아졌으며 결국 죽 따라가 보면 다 아담에 의해서 낳아졌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5장에 보면 아담의 후손들은 끝이 ‘죽었더라’로 끝이 납니다.

수백년씩 심지어 900년 이상씩 산 사람들이 있지만 그 전체는 죽음이라는 도가니에 담겨 있는 겁니다. 전체가 죽음 안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해야 되지요.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다. 그런데 우리는 죽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작품이 헛작품이 아닌가? 잘못만들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따지면 안 되고 ‘왜 죽게 되었을까? 아하 죄가 들어왔구나.’ 그렇다면 성경을 통해서 ‘죄란 무엇인가?’ 그것을 또 알게 되지요. 죄만 알게 되는 것은 아니지요. 죄를 알고 ‘그러면 진정한 의는 무엇인가?’ ‘죄와 진정한 의는 무엇인가’를 알 때, 이 두 가지를 알 때 그 사람은 비로소 둘째 아담,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에 의해서 만들어져서 예수님의 단지 안에 들어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단지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의 특징은 죄도 알고, 의도 알고, 예수 안에서 이 단지채로 구원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설교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개인적인 행동에 대해서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요. 개인적인 행동에 신경 쓰면 그 꼴이 뭐가 됩니까? 이 꼴(아담단지)이 됩니다.

이 단지 안에서 의라는 것은 자기 행동 잘하면 그것이 의가 되고 자기 개인의 행동 잘못하면 그것이 죄가 되어 버립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죄를 지었는데 그것은 생각안하고 태어나서 잘못한 것만 자꾸 기억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자기가 자기를 괴롭게 하고 있는 겁니다.

‘아이고, 바보같이 세 살 때 그 때 옆집 아저씨의 손을 잡고 따라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때 그 아저씨 손잡고 따라갔기 때문에 내 신세 이렇게(그 뒤로 부모와 떨어져서 고아원에 들어가게 되어서) 망쳤다’고 하거든요. 그러면 세 살 때 그 못된 아저씨 안 따라갔으면 그 사람이 영생합니까?

세 살 때 아저씨 손잡고 부산 대전 서울 찍고 목포 찍고 이렇게 돌아다녀도 역시 뭡니까? 이 세상 어디에서도 50년을 살든 70년을 살든 다 뭡니까? 맨 죽음 안에 있습니다. 이 안에서 세 살 때부터 동네방네 찍고 돌아다녀도 결국 주님께서 뜻이 있어서 17살 때 예수 믿게 해서 예수 안에 있게 했으면 세 살 때 그 아저씨 손 붙잡고 따라간 것이 뭐가 되는가? 두 글자로 그걸 ‘은혜’라고 합니다.

‘은혜’라는 것은 우리 구미댕기는 것, 우리 보기에 괜찮은 것, 그런 것들을 골라서 모아놓고는 은혜라는 포장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범사를 매개로 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일의 특징입니다.

로마서 8:30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결국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모든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 안에 다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창조의 원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 어떻게 창조했는가? 불신자들은 그냥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만 이야기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고 합니다.

인간 앞에 뭐가 들어갑니다. 그것을 점선으로 표시하겠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이 어떤 인물입니다. 불신자들은 그냥 ‘내가 왜 있지? 신이 창조했겠지’라고 합니다. 여기에 ‘창조과학회’ 에서 내놓은 것이 있는데 현재 학교에서 배운 진화론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 하면서 ‘과학으로 보는 창세기’라는 제목으로 주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학으로 창세기를 보면 창조가 나오는 것이 아니고 과학으로 보면 과학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과학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과학으로 보면 과학이 나오지 창세기가 나오지를 않습니다. 어찌되었든 학생들에게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자 하는데 저도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고 다 좋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가르치면 뭐가 빠져버리게 되느냐 하면,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막연한 것이 되어 버리고,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것을 믿으면 구원 못 받고 지옥에 가지요. 왜냐하면 그것은 다른 불신자들도 다 생각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구원받는가?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예수님의 형상대로 우리를 창조’한 거예요.

그냥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가 되어버리면 그 다음에 우리에게 남는 느낌은 ‘하나님이 창조했기에 내가 바르게 살아야지’, 이렇게 되어버립니다. 그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신이 나를 창조했다. 그러니 신의 창조물답게 바르게 살아야지’가 되어버리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본받아 창조했지? 어? 그 형상되시는 분이 예수님이구나. 아, 예수 믿으라고 창조했구나.’ 이렇게 나올 때 그것은 복음이고 기독교라는 말이죠. 그 차이점을 아시겠습니까? 오늘 차이점을 두 가지 이야기 했는데 좀 헷갈릴 겁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그냥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할 때 그 형상이란 우리 죄인들이 생각하는 그 형상이 아닙니다. 그런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가 바르게살기’, 이것 밖에 안 되거든요? ‘바르게살기’는 악마의 속임수가 되는 겁니다.

바르게살기, 해 보면 내가 점점 바르게 못산다는 것을 파악하게 되고 그리되면 그것에 대해서 변명조로 나가는 수가 많아요. ‘이것은 다 못 지켰지만 이것은 지켰다.’ 이런 식이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형상되시는 분이 따로 존재한다’는 겁니다. 형상되는 분이라는 골로새서 ·1장 16절에 보면 예수님입니다.

골로새서 1:15-17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예수님을 겨냥해서 인간을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냥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증거 하라고 인간을 만들어 놓은 겁니다. 이점이 다른 종교와 다른 유신론철학들과 전혀 다른 점입니다. 창조과학회하고도 다릅니다. 창조과학회의 결론은 이겁니다. ‘그러니까 바르게 살자.’ 그것은 복음이 아니잖아요.

‘신이 우리를 만들었기 우리는 바르게 살아야 된다.’ 이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형상대로 우리를 만들어 놓았으면 결과적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반응은 ‘우리가 어떠하기에 우리가 예수를 믿어야 될 것인가?’라고 나와야 됩니다. 이게 복음입니다. 그런면에서 하나님의 인간창조라는 것은 상당히 신기합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 ‘옛날에는 흙으로 아담을 만들었다.’ 그것은 장차 오실 분을 보여주기 위해서 흙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그림자고 모형이라고 본다면 실체는 뭐냐? 흙으로 만든 인간이 다냐? 아니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뭐냐? ‘흙에 속한 형상을 입은 것 같이 이제는 흙에 속한 것이 아니고 하늘에 속한 형상, 영광스런 예수님을 본받아서 인간을 창조했다’는 이것이 사실은 본론이었습니다. 이것이 본론이었고 옛날에 아담을 흙으로 만든 이것은 서론이었습니다. 일종의 맛보기이며 예고편이라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15:45-49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그래서 우리는 흙에 속한 형상인 예고편이 속에 들어 있고 예수님을 믿게 되면 알맹이는 예수님의 형상을 입게 됩니다. 그리되면 우리 겉 사람은 어떻게 된다? ‘후패하나 속사람은 후패하는 것과 정반대로 날로 새롭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고후 5:16-18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그러면 하나님이 보시는 인간이 뭐냐? 비록 겉으로는 후패해도 속 알맹이는 새롭게 된 이것을 하나님보시기에 본래 창조한, 하나님께서 본래 의도해서 만든 진솔한 참 모습이고 그게 진짜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말씀대로 살기’ 이렇게 해도 하나님보시기에는 그것을 의롭다고 하지 않고 심판하시는데 심지어 무덤까지 파내서 심판합니다.

요한복음 5:25-29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을 인하여는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죽은 자도 다 일으켜서 심판하는데 심판해서 잘라 버립니다. ‘너는 천국에 올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란 요한복음 5장에 있는 말씀처럼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냈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5:19-24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시되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런 취지부터 시작해서 ‘인간론, 인간은 무엇인가? 왜 예수님이 그런 말씀을 해야만 하는 것이 내 본래의 인간이냐?’ 하는 것을 우리가 파악하고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항간에 떠도는 ‘신이 인간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니까 신의 말씀대로 살자’ 이런 식으로 나가 버리면 실컷 창조과학을 증거 하는 강사 해놓고 나중에 지옥가면 거기서 창조과학 강의할 일 있습니까?

‘노아의 홍수는 있었다. 인간의 사명은 무엇인가?’ 그런 강의를 하면서 지옥에서 살 겁니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을 겨냥해서 우리를 만들어 놓았고 ‘이제는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 하는 주의 말씀이 이해될 때 그게 참 인간입니다.

로마서 14:7-9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자와 산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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