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리문답공부1 (20021208)
소요리문답공부1 (20021208)
이름 : 오용익(IP:59.3.201.241)
소요리문답공부 1 (이 근호목사, 2002년 12월 8일, 우리교회)
소요리 문답이라는 이 내용은 전체 신앙의 구조에 대해서 정리해 놓은 것입니다. 이 내용들은 중요한 것들로 연결이 되기 때문에 다시 정리할 수 있도록 녹음하고 인터넷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6장 원죄에 대해서 할 차례인데 그동안 공부한 1장부터 5장까지가 녹음이 되지 않은 것을 감안해서 그것부터 먼저 정리하겠습니다.
제 1과,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
제 1문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답)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해놓고는 거기서 더 나갑니다. 그걸로 끝이면 되는데 참 이상스럽게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하나님이 나에게 뭘 해주는가’를 꼭 따집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 최종 목적이 아니고 최종목적은 하나님께 영광돌림으로써 나에게 돌아오는 반대급부, 여기에 최종목적을 둡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이 하나님덕분으로 잘 되는 자기 자신이 나의 목적이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 혹은 신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부르짖는 종교가 한 두개가 아닙니다.
브라만이나 도교, 유대교, 기독교나 이슬람등 동양종교이든 서양종교까지 모두 다 신의 영광을 빙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와서 신앙한다는 것이 그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는 본색과 행세를 그대로 거쳐서 우리가 행동하고 살아갑니다. ‘내가 하나님께 이렇게 영광을 돌리는데 하나님은 나한테 해준 것이 뭐가 있습니까?’
이렇게 되어 버리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의 목적이 아니고 결국 내가 나의 목적이 되어 버리는데 그러한 잘못을 매우 조심해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눈치 채시고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먼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6:21-24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좆을 것이니라.”
‘남이 내게 지운 십자가 말고, 남이 나를 괴롭히고 애먹이고 핍박한 것 말고 내가 스스로 나에게 지우는, 같은 말로 나를 스스로 부인하고 내가 스스로 나를 때리고 나를 죽이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 다음에 나를 따라오너라’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데서, 예수님을 통해서만, 내 이름으로는 안되고 예수님을 통해서만 영광이 되는 겁니다.
제 2과. 성경
제 2문, 하나님께서 무슨 규칙을 우리에게 주사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할 것을 지시하셨습니까?
답)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우리가 그를 즐거워하고 영화롭게 할 것을 지시하는 유일한 규칙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할 때 제가 이런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성경이 되었다’면 성경책만 있으면 우리에게 자동으로 은혜가 되고 구원이 되느냐? 그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되게 했던 것은 문자가 아니고 성령입니다.
따라서 성경이 성경되게 했던 그 영, 성령께서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같이 역사해 줄때 우리는 성경을 볼 때 문자로 보지 않고 성령의 저자가 하나님인 것을 파악하는 교류가 이루어지는 가운데서 성경을 받아들이게 되는 겁니다. 그냥 성경을 신문 읽듯이 국어책 읽듯이 줄줄 읽는다고 해서 그것이 살아 있는 책이 되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영적으로 감동감화 시켜 줄때만 그렇게 되는 겁니다.
제 3과, 성경의 제일 요긴한 교훈
제 3문, 성경이 제일 요긴하게 교훈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답) 성경이 제일 요긴하게 교훈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어떻게 믿을것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입니다.
‘성경의 중심되는 교훈이 뭡니까?’라고 묻는데 중심되는 교훈은 요한복음 5장 39절에 있는 말씀처럼 ‘예수님이 중심’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하는 겁니다.
요한복음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
성경을 보면서 ‘창조론이 맞나, 진화론이 맞나?’ 그런 것을 물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중심이지 창조가 맞는가, 진화가 맞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책을 들여다보면서 ‘남북통일은 언제 되지? sofa는 개정을 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그런 것은 성경책에다 묻는 것이 아닙니다.
중들, 신부들 데모하고 있는데 또 할 일 없는 인간들 일거리 생겼다는 그런 생각밖에 안 듭니다. 왜 데모하는 겁니까? 6.25전쟁 때 미군전사자가 3만 3천명입니다. 미군주둔으로 인해서 우리국방예산절감과 사회복지예산이 늘어나는 것은 생각 안합니까? 미국이 자국의 이익만을 위한다고 하는데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왜 자꾸 자기 잘못은 감추면서 핑계를 남에게 돌리려고 합니까?
오죽하면 제가 그런 소리를 다 했습니까? ‘그럴 거면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들, 유학간 사람들 한국으로 다 들어오라고 하라’고요. 그 사람들은 직장 다 어쩌고 사업체 다 어떻게 할 겁니까? 교민들이 돈 벌어서 한국으로 부쳐주기도 하고 한국 사람들은 그분들 통해서 유학 가잖아요. 왜 받은 것은 생각 안하고 만 날 손해 본 것만 이야기합니까?
성경의 중심은, 소위 복음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성경 빙자하고 하나님의 뜻 빙자해서 데모 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데모 안 해도 지금도 은혜 주시고 구원하십니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성경가지고 자기 개인문제 해결하려 드는 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면 안 됩니다. 수능 앞두고 기도를 열심히 한다든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진리를 모르는 상태에서 기도를 열심히 한들 그 기도에서 진리가 나오겠습니까? 자신의 야망, 욕심만 나오지요. 진리에 관심도 없으면서 기도해 봤지 자기 탐욕만 계속해서 드러내는데 그런 기도 천 날 만날 해도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제 4과, 하나님
제 4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답) 하나님은 신이신데 그의 존재하심과 지혜와 권능과 거룩하심과 공의와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무한하시며 무궁하시며 불변하십니다.
제 5과, 삼위일체
제 5문, 하나님 한분 외에 또 다른 하나님이 있습니까?
답) 한 분 뿐이시니 참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제 6문, 하나님의 신격에 몇 위가 계십니까?
답) 하나님의 신격에 삼위가 계시는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십니다. 이 삼위는 한 하나님이시며 본질도 같으시고 권능과 영광은 동등하십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라 했는데 삼위일체는 성경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한분이시고 삼위로 계신다는 것은 성경에 있습니다. 그러나 삼위일체라는 것을 가지고 따로 모은다는 것은 사실 억지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을 문자 속에 다 집어 넣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삼위일체가 제시하는 것은 예수님 중심이다’는 그것을 놓치면 안됩니다.
삼위일체 믿어서 천당 갈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주 예수’를 믿어야 천당 갑니다(행 16:31). 삼위일체란 예수님을 드러내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느냐를 통해서 한꺼번에 아는 것이지 삼위일체 따로 믿어야 되고 성부 따로 성자 따로 믿어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삼위일체 자체가 예수님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제 6과, 예정론
제 7문, 하나님의 예정이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의 예정은 그 뜻대로 하신 영원한 경륜인데 이로 말미암아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무릇 되어가는 일을 미리 작정하신 것입니다.
‘예정론’ 할 때 상당히 어렵다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이 사실입니다. 어려운 이유, 틀리게 되는 이유가 예정론을 자신의 구원과 관련시키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을 예정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리스도 몸이 되도록 예정했다.’ 이것만 알면 예정론은 어렵지 않습니다. 나 하나 보고 예정한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신들이 그리스도 몸의 한 지체가 되기 위해서,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 몸 자체를 예정하신 겁니다.
예정은 어디까지인가? 예정은 구약성경뿐만 아니고 인류의 모든 발걸음과 머리카락 하나까지, 참새 한 마리 떨어지는 것 이 세상 모든 인류의 일거수일투족 전부 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본래의 만물의 하나님의 형상인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걸음과 모든 계획을 다 집약시킨 겁니다.
그것이 골로새서와 에베소서에 나옵니다. 창세전부터 모든 것을 계획했습니다. 누구 안에서? 예수 안에서 그렇게 예정되도록 했습니다.
에베소서 1:3-6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에베소서 1장 4절에 나오는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사 예정하신 것’이 뭐냐? 10절에 보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통일’이라는 말을 우리가 또 오해합니다. ‘통일’이라는 용어가 나오니까 남북한이 갈라졌다가 다시 합치는 것을 통일인줄 아는데, 성경에서 통일이라는 것은 분열된 것을 합한다는 뜻에서 통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모든 초점이 어디에 있을까’를 뽑아내는 데서 ‘통일’입니다.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항하여 지향되어 있다는 뜻에서 통일입니다. 통일이라고 할 때 우리민족이 남북한이 갈라진 상황에서 살다 보니까 깨어진 것을 합치는 개념으로 이해하려고 드는데 그것은 연합이고 통합은 될 수 있는데 성경의 통일은 그 통일이 아닙니다.
인간들은 자기밖에 생각 안하잖아요. 그런데 자기밖에 생각 안하는 그것들이 나중에 보면 사실은 본인들 위주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가 만유의 구세주인것을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모든 짜임새가 그렇게 짜여져 있다는 말입니다.
좀 더 쉽게 예를 들자면 여자들이 수를 놓잖아요. 어릴 적에 어머니가 수놓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처음에는 그게 무슨 그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 이게 무슨 그림이에요?” 나중에 보면 물가에서 노는 왜가리 그림이 나옵니다. 그처럼 우리 개인은 하나의 모자이크 하나의 수놓는 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이 모이고 뭉쳐서 그리스도를 지향하게 됩니다. 그것을 교회라고 합니다. 우리가 평소 생각하는 교회와 많이 다르지요?
제 7과, 창조
제 8문, 하나님께서 그 예정을 어떻게 이루십니까?
답) 하나님께서 그 예정을 이루시는 것은 창조와 섭리하시는 일로 하십니다.
제 9문 창조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답) 창조하신 일은 하나님께서 엿새동안 아무 것도 없는 중에서 그 권능의 말씀으로써 만물을 지으신 일인데 다 매우 선합니다.
‘예정’과 ‘예지’가 다릅니다. ‘예지’라는 것은 ‘하나님은 계획만 잡아 놓고 그 나머지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맡겨놓는다’는 것을 ‘예지’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미리 아시기는 해도 관여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정하사’(엡 1:5)라고 해서 계획만 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에 관여하사 일이 그렇게 되도록 조치를 그렇게 하시는 것이 ‘예정’입니다.
‘예지’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목표만 잡아 놓고 ‘열심히 해봐라. 너의 자유의지가 있으니 그것을 가지고 노력하면 알아서 구원된다’고 나가는데 그것은 올바른 생각이 아닙니다. 제 9문에서 ‘창조하신 일’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이것은 창세기 1장을 두고 이야기 하겠지요? ‘6 일동안 모든 세상을 홀로 창조했다.’
여기서 뭘 로 창조했느냐가 문제입니다. 창조한 것은 다 압니다. 왜냐하면 눈에 다 보이니까. 만물을 무엇으로 창조했느냐가 문제입니다. 에너지로? 힘으로? 빛으로? 과연 무엇으로 창조했는가? 성경에 보면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고 예수님이 마리아의 오빠 나사로를 살려냅니다.
살릴 그때에 무엇으로 살렸습니까? 돌멩이를 던졌나요? 연고 발랐습니까? 무엇으로 했습니까? 말씀으로 부르니까 된 겁니다. 말씀으로 홍해가 갈라지고 말씀으로 요단강이 물러가고 말씀으로 빛이 있었고 말씀으로 아담이 있었고 말씀으로 여자가 있었고 말씀으로 모든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흙이지만 하나님의 생생하게 살아 있는 말씀으로 없는데서 있게 하고 죽은데서 살리는 겁니다.
베드로전서 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라.”
히브리서 1:10-12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그 말씀을 우리가 지금 감히 들여다보고 있는 겁니다.
* 인용하는 소요리 문답서는 「소교리문답강해」, G.I. 윌리암슨 지음, 최덕성 역, 개혁주의 신행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