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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01-교회의본질(강의정리)자유게시판레위기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01-교회의본질(강의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201)

04 칠곡강의 [뒤에서 본 한국교회] 01 - 교회의 본질

04,04,04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성경 따로, 한국교회 따로 !!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공부하려는 교재가 '뒤에서 본 한국교회' 인데, 이것이 처음에는 '성경과 한국교회' 라는 것이다. 제가 왜 그런 '성경과 한국교회' 라는 제목을 지었는고 하니, 이 책을 보면, '창세기와 한국교회', '출애굽기와 한국교회', '레위기와 한국교회' 등등으로 해서 성경 66권을 다 나누어놓았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나누었는고 하니, 이쪽에 성경이 있고 저쪽에 한국교회가 있다면, "성경의 뜻은 이것인데, 그런데 현재 한국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은 이것이다" 라고 하는, 즉 과연 지금 한국교회에서 주장하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것과 틀림이 없는지 한번 비교해보라는, 그런 취지에서 책을 썼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하기를, "나는 성경에서 뭐라고 하는지는 관심이 없다. 단지 그냥 교회만 내 마음에 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라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진정 성경말씀과 달라도 좋다는 말입니까?" 라고 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문제는 그 다음인데, 과연 그렇게 하고도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이 다니는 교회가 성경말씀과 제대로 합치되어서 구원을 받고, 혹은 그렇게 되지 않아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아예 성경자체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 당신은, 말씀자체에 관심이 있습니까?

지금 제가 하는 말이 좀 어려운가요?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교회는 성경하고 대충 맞아요. 그러니 저에게 그런 소리는 더 이상은 하지 말고 그냥 가소" 라고 하는데, 그런데 제가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신 교회가 성경하고 대충 맞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이 성경자체에 관심이 있습니까?" 라는 것을 묻고 싶다는 말이다.

이제 그 차이점을 알았지 싶은데, 교회가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성경자체에 관심이 없는데 과연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흔히들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을 받는다" 라는 것만 알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하지만 문제는 한국교회에서 이야기하는 십자가와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십자가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가 다르기 때문에, 정말로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믿는다고 하면, 그렇다면 왜 십자가인지, 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그러한 것이 궁금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래서 그 십자가를 한국교회가 아닌 성경에서 찾는 게 지극히 당연하고 정상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 여보, 이게 무슨 냄새이지?

예를 들어서, 집에 퇴근을 해서 갔는데 맛있는 냄새가 난다면 부엌에 들어가서 무슨 음식을 했는지, 닭조림을 했는지 무엇을 했는지 살펴보는 것이 정상적인데, 그런데 그러한 맛있는 음식냄새가 나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면, 그런 사람이 어떻게 와이프가 해준 음식을 굉장히 좋아하고 그 음식에 관심이 있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성경에서 천국의 냄새가 피어나고 예수님의 사랑이 피어난다면, 그 냄새를 피우는 곳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정작 성경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구원만 챙기면 된다고 하는 것은 좀 수상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 '뒤에서 본 한국교회' 라는 책의 취지는?

그러니 이 책을 쓴 취지가 얼른 보면 한국교회를 비판하기 위한 것 같지만,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라 너무나 사람들이 성경말씀에 무관심하니까, 성경에 이러한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아주 간단하게 성경 66권의 내용을 간추려놓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하고 현재 한국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이 과연 같은지, 목사에게 묻지 말고 본인이 판단하라는 것이다. 자기는 그런 한국교회의 목사설교를 늘 들으니 말이다. 그렇게 해서 어린아이의 신앙이 아니라 주님과 직접 교통하는 자유로움을, 정말이지 그런 자유가 있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적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항상 성경말씀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말이다. 그리고 더 궁금한 것이 있다면, 지금 자기가 다니고 있는 교회와 비교를 해보면서, "아니, 우리교회는 왜 이 모양이지?" 라고 하지 말고, 원래 교회는 그러니까, 말씀대로 완전한 교회는 이 땅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를 개혁하려고 하지 말고, 교회는 아무리 개혁을 하려고 해도 되지 않으니 말이다. "아하, 교회는 원래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라고 하면서, 본인이라도 성경말씀을 제대로 알고, 그 진리로 인해 기뻐하고, 그렇게 해서 천국에 가면 된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교회라는 것도 다 먹고살려고 하는 것인데, 그러니 남의 학원에 들어가서 제대로 가르치는지 못 가르치는지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다. "니는 니고, 나는 나고" 말이다. 다만 성경자체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으면서, 교회에 다니는 것이 재미있다고 해서, 과연 그런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 도대체 목회란 무엇인가?

이제 우리 교재인 '뒤에서 본 한국교회' 11페이지를 보겠는데, 이 교재를 일일이 다 하지는 않고 붕붕 뛰어서 하겠는데, 11페이지는 무슨 내용인고 하니, "도대체 목회란 무엇인가?" 라는 것인데, 자기들은 물론 양을 기른다고 하는데, 하지만 과연 무엇을 가지고 기르느냐는 것이다.

** [1. 교회의 본질과 시대적 위치] - 신학이 어떻게 목회현장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물론 저는 이 목회란 말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데, 아무튼 굳이 목회를 해야 한다고 하면 성경만 가지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예배와 설교와 기도, 그리고 심방 등도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오로지 성경만을 가지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 천주교에 대해서 !!

이것은 상식적인 것인데, 목회를 성경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전통으로, 즉 교회의 권위와 제도를 가지고 하는 종교가 바로 '천주교' 인데, 그런데 우리는 소위 개신교에 소속이 되어있는데, 개신교가 바로 천주교에서 갈라져서 나왔다는 것이다. 1517년에 말이다.

지금부터 천주교에 대해서 설명을 할 텐데, 이 천주교가 무슨 문제가 있는지 스스로 판단을 해보라는 것이다. 제가 지금부터 잠시 신부가 되어서 천주교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설명을 하겠는데, 여러분은 각자가 마음속으로 반박을 한번 해보라는 것이다.

아무튼 제가 지금부터 신부인데, 우리는 지금 이 땅에 있고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는데,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누구를 보내는고 하니,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땅에 고작 33년밖에 계시지를 않았는데, 그 이후에는 자기 일을 제자들에게 맡겼는데, 그 제자들의 무리를 두고 '성직자'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성직자 - 우리는 대리자 !!

그러면 지금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이 지상에는 계시지 않으니, 우리 인간들이 구원을 받는 방법은 이 성직자 계열을 쫓아서, 예수님의 뜻도 배우고 예수님이 남기신 제도와 조직 속에 들어가야만 하늘나라에 갈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신부가 주장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 질문 - 중간에 성직자와 예수님이 같은 동급으로 여기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이야기하지를 않는데, 지금 예수님이 이 지상에 계시지 않고 지금 하늘에 계시는데, 그러니 지상에 있는 자들과 하늘에 계신 분이 동급은 아니라는 말이다. 다만 자기들은 '대리자' 라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자기들을 거쳐서 올라가야 한다는 것입니까?

물론 그렇지요. 대리자인 자기들을 거쳐서 하늘나라로 올라가야 한다는 말이다. 눈에 보이는 대리자인 성직자가 이 땅에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들의 주장하는 그 취지를 알아야만 하는데, 예수님은 지금 하늘에 계시는데, 그렇게 하늘에 계시는 분이 사람을 건지는데 어떻게 대리자도 없이 건지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대리자를 보내서 건지니까, 물론 죽어서 지옥에 가고 싶은 사람은 오지 말고, 아무튼지 천당에 가고 싶은 사람은, 그 천당에 관해서는 예수님이 모든 것을 다 쥐고 있으니 그 성직자를 만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고 하니, 교회로 오라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에 가면서 사찰집사나 장로를 만나려고 가는 것도 아니고 신부를 만나러 간다는 말이다. 물론 사찰집사가 돈까스 배달을 시키면 사찰을 만나야하겠지만 말이다.

◈ 성직자가 베푸는 성만찬을 먹어야 !!

천주교에서 성직자는 무엇을 하는고 하니, 그들은 반드시 예배시간에 성만찬을 하는데, 잘 아시다시피 예수님의 피는 포도주를 사용하고 살은 납작하고 딱딱한 비스켓을 이용하는데, 그런데 이 성만찬을 베풀고 집례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장로인가, 사모인가, 사찰인가? 그것이 바로 성직자인 '신부(神父)' 라는 것이다.

◈ 1517년 루터 - 그게 아니야 !!

그러니 신부들이 베푸는 이 살과 떡을 먹지 못한다면 구원을 받지 못하는데, 여기에 대해서 1517년에 루터가 그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여기서 무엇이 빠졌다고 했는고 하니, 루터는 말하기를, "구원을 성령님이 우리 속에 들어오실 때, 그때 성직자가 없이 가능하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성직자가 필요 없다는 말이다. 즉 예수님은 성직자가 아니라 성령임을 통해서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것이 개신교인데, 이것이 바로 천주교와 개신교의 차이점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천주교는 눈에 보이는 성직자나 신부를 통하지 않으면 천국으로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반해서 개신교의 경우에는 성직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눈에 보이는 사람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직접 예수님의 영이 임하게 되면 예수님이 구세주임을 고백하게 되고, 그것을 수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수용한 현상자체가 바로 성령님이 오신 결과이기 때문에 그런 놀라운 고백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직자가 아닌 성령님으로 말미암아서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이제야 성도가 되었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이제 코드가 맞은 것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과거부터 선택이 되었는데 이제야 드러나는 것입니까?

물론 이미 창세 전에 선택이 되었는데, 그래서 이제 성도임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제야 바뀌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 제가 방금 말한 개신교는 어떠한가? 즉 루터가 말한 성령님이 오셔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과연 한국에서의 무속신앙과 유교적인 분위기에서 천주교가 더 먹히겠는가? 아니면 개신교이겠는가?

과연 어느 쪽이 사람들에게 더욱 납득이 되고 어필을 하겠느냐는 것인데, 당연히 천주교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천주교에서 개신교로 바꾸었는데, 물론 이름만 덜렁 남겨놓고 모든 형식을 말이다. 왜냐하면, 문을 열었으면 손님이 와야 장사를 할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개신교에는 성만찬이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까?

개신교에서의 성만찬은 말씀 밑에 있는데, 성령은 말씀으로 역사하시는데 그러한 말씀 중에 하나가 성만찬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천주교에서는 말씀이 아니라 성만찬 위주인데, 그러니 이 성만찬을 집례하는 신부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부가 없으면 천주교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 질문 - 우리 개신교도 목사님이 없으면 안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제가 말한 것인데, 천주교로 바뀌었으니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집사님들끼리 모이면 교회가 아니라고 말이다. 교회의 분위기가 목사가 있고 장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가 없는 교회를 '허위교회', 혹은 '궐위교회' 라고 하는데, 즉 교회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현상은 개신교에서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풍토가 이런 현재 개신교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인데, 물론 신학교에서는 신부가 아닌 성령님인 개신교라고 가르쳐놓고는, 그런데 목회현장에 나가면 다들 천주교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외국은 어떠한가요?

사실 외국이나 우리나라나 동일한데, 순수한 개신교는 거의 없고, 물론 복음적인 사람들은 가끔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눈에 보이는 성직자를 통해서 은혜를 받는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자기가 직접 기도하면 효과가 없고, 목사가 와서 안수를 하든지 해야 자기 마음이 편안해지고 말이다.

* 질문 - 성경에 목사가 있는데 왜 굳이 빼려고 하느냐는 질문이 들어오면요?

제가 굳이 빼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구원을 받는데 반드시 목사나 신부가 있어야만 한다면 그것이 곧 천주교인데, 구원을 받는데 말이다. 목사는 봉사자이고 심부름꾼인데 말이다. 우리가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구원을 받는데, 제 말이 맞지요? 그렇다고 해서 남자나 여자가 필요 없는가?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것인데, 그래서 형제이고 자매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들 중에서 설교를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목사로 봉사하면 되고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하면 그것이 우리나라의 정서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뭔가 서열이 있어야 할머니들이 안심을 하는데, 새벽기도에 가서 기도를 하기는 해도, 그래서 목사가 심방을 와서 기도를 해주면 더 좋아하고 말이다. 그러면 좋은 목사님을 모셨다고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고 말이다.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런데 자기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스스로 "내가 혹시 이단이 아닌가?" 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걱정이 되니, "에라이 모르겠다. 그냥 같이 묻혀서 가자. 나는 또 할 일이 있는데,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쓰지 못하겠다" 라고 하는데, 일종의 자기 영혼을 방치한다고 할까, 아무튼 그렇다는 말이다. 성경말씀에 관심도 없고 말이다.

◈ 하지만 충돌이 일어나니 !!

이렇게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말하기를, "목사님의 말씀이 맞는다고 해도, 천주교가 되던 복음이 되던 간에 제가 하는 일상생활에는 별로 지장이 없는 것이 아닙니까?" 라고 할 수 있는데, 물론 그렇지만 그러나 문제는 우리 속에 성령님이 계신다면, 성령님이 인도하는 것과 기존의 교회에서 인도하는 것에는 충돌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다시 이야기하겠는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성령님의 인도로 구원을 받는데, 어떤 어르신이 우리 속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분이 "헌금은 니 형편에 따라서 해라" 라고 가르치는데, 그런데 교회에 오니 목사가 십일조를 꼭 해야 한다고 강요를 한다는 말이다. 내지 않으면 집사직분도 주지 않고 왕따를 시키겠다는 것이다.

◈ 그놈의 바람잡이들이 !!

그렇게 되면 물론 자기는 교회는 어느 교회이든지 그냥 다니고, 정작 직장생활을 열심히 해야 되는데, 그런데 이렇게 목사의 간섭이 들어오면, "야, 이렇게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교통사고라도 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또 옆에서는 바람잡이들이 마구 설치는데, "나는 십일조를 잘하니 가정이 화목하고, 축복을 10배나 받았단다" 라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찜찜하고 해서 동냥을 하는 셈치고 낸다는 것이다.

* 질문 - 제 어머니 같은 경우에는,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정작 본인이 문제가 아니라 자식들이 잘 안 될까봐 하시는데, 연금이 조금 나오는 것을 가지고 말입니다. 제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니, 어머니께서 저를 보고 이단에게 단단히 물이 들었다고 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한국교회의 정서인데, 여러분들은 다 나름대로 직장이 있기 때문에, "아, 한국교회에 그런 일도 있구나" 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제 같은 경우에는, 저는 그래도 말씀을 증거하는 사람인데, 그러니 그런 것을 그냥 지나갈 수가 없다는 말이다. 마귀들이 그렇게 설치는 것을 보면 피가 거꾸로 역류한다는 말이다. 분노가 솟아오른다는 말이다.

◈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진 것이 장난인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진 것이 장난이 아닌데, "이것이 아니면 다 죽는다" 라고 해서 졌는데, 그런데 사람들은 마치 곰이 재주를 피운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곰은 사료를 주면 되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구경거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내 피로 부족하다고 여기는 놈들은 다 지옥에 가라" 라는 것인데, 단호하게 그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만약에 예수님의 피로 천국에 가는 것이 모자란다고 하면,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 라고 하는 것이 거짓말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다 이루었다" 라고 하시고 나서 하시는 말씀이 "네가 믿느냐?" 라는 것인데,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강도는 그것을 믿었다는 말이다. "저는 강도인데요? 그것을 믿어도 되요?" 라고 하니, 예수님께서 "니가 오늘 나와 낙원에 있으리라" 라고 했다는 것이다.

◈ Passion of the Jesus Christ !!

지금 4월에 개봉한 영화 중에 'Passion of the Jesus Christ' 라는 작품이 있는데, 제가 그것을 보고 평을 십자가 마을에 올려놓았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한국영화는 시간이 아까운데 외국영화이니 볼 만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보고 우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매일같이 같이 우는 남자 !!

사실 저는 매일같이 울고 있는데, 아무튼 나이 많은 사람들은 그동안은 불교의 점쟁이들과 관련되어 있다가, 그래도 귀신을 믿는 것보다는 최고 높은 신을 믿는 것이 낫다고 해서, 그래서 교회에 나오는데, 그러니 그 행세가 절에 다니는 것과 똑같다는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하나님께 정성을 많이 기울이면 그 반대급부가 많이 주어지고, 적게 하면 적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래도 한국교회가 성경의 큰 줄기는 다 이야기하는데, 예수님의 십자가와 피를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데, 그 뒤에 이야기하는 것이 앞의 것과 모순이 된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피를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그 내용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말이다. 즉 그 보혈의 피를 찍어 바르는 화장품 정도로 생각하는데, 바르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분의 피가 무엇인지를, 그 피가 우리의 행동과 어떻게 연관이 되어있는지에 대해서 끊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분의 피는 피고, 우리의 할 일은 우리 일이고 말이다.

* 질문 - 저도 이 책을 좀 보고 했는데, 그렇게 사람들에게 침 뱉음을 당하고 찔리고 해야 될 것은 바로 우리들 자신인데, 그런데 예수님의 대신해서 그렇게 고통을 당하는 것을 완전히 별개로 생각하는데, 또한 실제로 그렇게 찔리면 아프고 말이다.

사실 육체적인 고통은 예수님보다도 더 잘 견디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나 사도바울은 그런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보면, 자기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혔다고 말하면서, 십자가에 말이다. 그러면서 아예 자기 자신의 행함에 그 어떤 의미도 두지 않는데, 왜냐하면 자기 속에 성령님이 계시기에 말이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목회 - 성경말씀을 소개하는 것 !!

이렇게 볼 때 방금 11페이지에서 말한 목회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소개하는 것을 두고서 목회라고 한다는 것이다. 심방을 한답시고 성도의 가정을 가정방문을 하듯이 돌아다니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말이다.

이제 교재 12페이지를 보자.

** 성경은 목회를 위하여 하나님이 하늘에서 던져준 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들과 함께 고통을 나눈 흔적의 기록이다.

◈ 인간과 더불어 고통을 !!

이것을 설명하기 전에 지금까지 한 것을 요약해보겠는데, 먼저 교회와 성경의 차이점을 이야기해보면, 교회는 눈에 보인다는 것이고 성경에서의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떠한 경향을 보이는고 하니, 이렇게 자기 눈에 보이는 교회를 더 선호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는 것은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을 선호하니 사람들의 호응을 따라서 제도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천주교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천주교는 성직자가 없이는 구원이 안 되는 제도인데, 그런데 개신교가 그만 이 천주교의 흉내를 내어서, 물론 돈이 되는 것만 흉내를 내었는데, 마치 목사가 없이는 구원이 안 되는 것처럼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인들은 성령이 없어도 목사의 말만 들으면 구원이 되는데, 그야말로 성령님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이제는 교회가 시키는 데로만 하면 되는, 그런 가짜 교회들을 대량으로 유포하고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 말이다.

그런데 사실상 이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과거 예수님 시절에도 그러했는데, 유대인들도 이와 똑같은데, 그래서 예수님이 어떤 식으로 고난을 받는지, 그것이 바로 조금 전에 본 교재 12페이지에 나오는데, "인간과 더불어 고통을 나눈다" 라고 말이다.

◈ 왜 불안감과 초조감이 찾아오는가?

어떻게 여러분들은 살아가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은가요?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해서 제법 먹고 살아갈 만 한가요? 하지만 제 아무리 취직을 하고 돈이 좀 있다고 해도, 불안하고 초조한 것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살면서 욕심을 내니 말이다. 아침에 눈만 뜨면 욕심을 내기 시작해서 그 욕심이 이루어진다는 기대감 때문에, 그래서 뭔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낭패를 당한다는 불안감과 초조감이 찾아오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신을 찾고 예수를 찾는 이유가, 아침에 눈을 뜨면 생기는 그 욕심, 그 욕심을 반드시 자기가 발산하고자 하는 욕심에 대한 또 욕심, 그런 욕심들이 계속해서 생기는데, 그러니 언제나 불안과 초조함과 조바심이 떠날 날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지만, 자기가 자기 손가락을 찌르는 식으로, 즉 자기가 만든 욕심이 자기의 눈을 찌르고 온 몸을 찌른다는 것이다. 자기의 욕심이 말이다. 만약에 회사의 다닌다면, "다음 달에는 반드시 승진을 해야 돼" 라고 말이다.

◈ 혹시 정몽헌을 아세요?

혹시 '정몽헌' 이라는 사람을 아세요? 자기 회사빌딩에서 뛰어내려서 자살한 현대그룹의 회장 말이다. 그 사람이 재산이 없는가? 무엇이 부족한가? 아니, 카드 빚 때문에 자살을 하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그 사람이 어디 빚 독촉을 받는 사람인가? 먹을 것이 없는가? 사람이 그렇게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극도의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이기지 못해서 뛰어내리게 되는데, 그러면 그 스트레스가 어디서 생기느냐는 말이다. 욕심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자기의 자존심이나 명예 등이 말이다.

이러한 것을 사람들이 다들 조금씩 가지고 있는데, 사실은 많이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사람들이 바로 이것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 예수님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저의 고통을 아십니까?" 라고 한다는 말이다.

◈ 하나님, 저의 고통을 아십니까?

제가 이번 주 월요일 오전에 인천에서 강의하고, 저녁에는 안산에서 강의를 했는데, 그리고 수요일에는 수요예배를 드리고, 목요일 저녁에 올라가서 금요일 오전 7시에 안산실업인회 모임에서 다시 설교를 했다는 것이다. 그 실업인회 사람들은 그때 처음 만났는데, 그들이 설교를 하기 이전에 통성으로 기도하기를, "하나님, 이렇게 경제가 어렵고 너무나 힘듭니다. 자금이 잘 돌아가도록 해주시고 어쩌고"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기도를 하고 난 뒤에 제 설교차례가 되었는데, 그래서 제가 한 첫마디가 무엇인고 하니, "자기 자신의 고통만 그렇게 신경이 쓰이고, 그런 인간들 때문에 지금도 고통을 받고 계신 주님은 안중에도 없습니까?" 라고 했다는 말이다.

아무튼 인간들이란 기도를 한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은 참 좋겠다. 천국에서 편안하게 있고, 우리는 땅에서 이렇게 고생하는데, 그러니 그냥 있지 말로 그 전능한 능력으로 우리를 좀 잘살도록 도와주소"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 하지만, 여러분이 믿고 있는 신은 가짜입니다 !!

그래서 저는 계속해서 설교하기를, "여러분이 믿고 있는 신은 가짜입니다" 라고 했는데, 교회가 가짜가 아니라, 자기가 가지고 있다는 생명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 아니라, 가짜 생명이라는 것이다. 진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은 죽지 않는 것인데, 그런데 지금 우리는 죽어가고 있으니, 그러니 가짜인데, 그런 가짜 생명을 유지하려고 하니 계속해서 욕심을 드러내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늘 불안하고 초조하니 말이다.

이렇게 가짜 하나님이고, 가짜 예수이고, 가짜 인생인데, 그렇다면 진짜는 어디 있는가? 그것은 바로 이 땅에서 사람들 속에 뛰어내려오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섞여 계시는 그분, 유명한 큰 교회 목사가 아니고, 세계적인 주의 종도 아니고, 그것은 하나님이 곧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계셨다는 것이다. 함께 거닐고, 밥도 같이 먹고, 물론 잠자리도 그렇고 말이다.

심지어 베드로와 함께 물위도 걸으셨는데, 그렇게 하시다가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가셨는데, 그분이 바로 우리 코앞에 나타난 진짜 하나님이란 것이다. 그분이 진짜 하나님이지, 다른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의 욕심으로 인해서 잉태한, 즉 인간들이 상상한 마네킹 같은 가짜 하나님이란 말이다. 그런 가짜 하나님은 유들유들하고, 마치 재벌 2세 같고 말이다.

◈ 하나님은 왜 직접 오셔야만 했는가?

우리 인간들이 상상한 하나님이 그렇게 전능하다면, 아니 낚시대로 우리를 구원하시지 왜 뛰어내려왔겠는가? 그러니 우리가 상상하는 하나님은 악마가 심어준 가짜 하나님이란 말이다. 바로 그것을 폭로하기 위해서 이 땅에 직접 오셨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이렇게 하나님이 직접 오셨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는데, 이해하지도 못했는데, 그래서 결국 인간들에 의해서 퇴출을 당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이단소리를 듣더라도 사실상 그런 것은 아무 것도 아닌데, 스데반 집사님의 경우는 돌에 맞아서 죽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가짜 신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발작을 일으키는데, 진짜 예수님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말이다. 소위 성직자의 이름으로, 장로의 이름으로 말이다. 그것이 교재 12페이지에 나오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 왜 초라하고 고통받는 모습의 하나님인가?

교재 12페이지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직접 이 땅에 오셔서 모습을 보여주셨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모습인고 하니까, 초라한 모습이고, 우리의 욕심으로 인한 비천한 모습인데, 즉 인자는 머리를 둘 곳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도 다 떠나고 홀로 쓸쓸히 십자가에 달렸는데, 포항에 가면 유명한 과메기가 바람에 날리듯이 걸렸고, 정육점에 걸려있는 고기 덩어리처럼 말이다. 그렇게 당하고 또 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그 출발점을 하늘에다 두지 말고 지상에 오신 예수님에게 두어야 하는데, 즉 그분이 달리신 그 십자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하나님이 진짜 어떤 분인지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의 능력이 바로 이 십자가에서만 나오기 때문에 말이다.

물론 헌금을 하는 것도 좋고 전도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러나 구원이 유일한 통로가 십자가라는 것을 믿게 하는 능력이 없이는, 그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십자가뿐이라는 말이다. 돈을 바친다고, 정성을 다한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십자가가 아니라면 안 된다는 것이다.

◈ 목회란 무엇인가? 십자가의 도(道)를 증거하는 것 !!

우리 교재에도 나오지만, 그렇다면 과연 목회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도(道)를 증거하는 것인데, 그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 바로 이 땅에 직접 내려오신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그 이외에 다른 하나님은 없다는 것이다.

이제 교재 13페이지를 보자.

** 그러나 이 모든 생각은 인간들이 자기 상상에 기초한 거짓 하나님관이다. 모든 인간은 예수님의 처참한 죽음을 하나님의 분노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막연하게 하나님만을 생각한다.

안산에서 어떤 분이 이런 간증을 하는데, 자기가 일하는 회사에서 기계가 멈춰서 어쩔 줄을 모를 때, 왠지 기도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기계를 붙들고 기도를 했는데, 그런데 놀랍게도 그 기계가 그만 돌아가서 그때부터는 하나님을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그러한 놀라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인간의 자질로는 말짱 도루묵 !!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베드로가 물위를 걸었는데, 만약에 우리가 물위를 걸었다면 과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마음이 생기겠는가? 이것은 기계가 돌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물위를 걸었는데, 그 정도의 체험을 하게 되면 예수님을 절대로 배반하지 않을 것 같지 않는가? 그것으로 천당은 따놓은 당상이지 않는가?

그래서 베드로도 자신만만하게 죽었으면 죽었지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는다고 장담을 했는데, 하지만 어떻게 되었는가? 3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자질이나 용기로는, 즉 인간의 스스로 변화됨, 인간 됨됨이, 의리나 용기, 그런 것들 모두가 말짱 도루묵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에게서 나온 것으로 인간은 구원받지 못하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용납하심이 아니면 말이다. 베드로를 용서해주는, 그런 용서하심이 아니라면 말이다. 바로 그러한 능력으로 말미암아 베드로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 베드로야, 니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래서 요한복음 마지막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묻는다는 것이다. 그것도 3번씩이나 말이다. 그때 베드로는 "예, 압니다" 라고 잘도 대답을 하는데, 그러면서 베드로가 "주님, 왜 이러십니까?" 라고 하는데, 그러자 주님은 "내가 너를 떠나지 않아야 니가 구원을 받는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요 21: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 21:16)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요 21:17)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여기서 누가복음 22장을 한번 살펴보자.

(눅 22: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눅 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눅 22:33) 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눅 22:34) 가라사대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 예수님의 기도에 마귀의 기도가 밀려서 !!

여기에서 베드로가 다시 마음을 돌이키게 된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베드로 자신의 의지력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한 결과라는 것이다. 즉 마귀의 기도가 누구에게 눌렸는고 하니까, 예수님의 기도에 눌려서 그렇다는 말이다. 31절에 있듯이 마귀는 마귀대로 기도하고, 그러나 32절에서 보면 예수님은 예수님대로 기도하고 말이다. 자기의 택한 백성인 베드로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다시 말해서, 마귀의 소망이 예수님의 기도에 밀려서, 그래서 베드로가 구원을 받았고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영적인 전쟁에 의해서, 주님의 전쟁에 의해서 우리가 구원되는 것이지, 우리 개인의 눈에 보이는, 목사와의 관계라든지, 집사들과의 그런 개인적인 관계에 의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보이지 않는 영적전쟁의 결과물로 구원되는 것이지 말이다.

◈ 자립심 - 마귀가 심어준 유혹거리 !!

이러한 주님의 사랑과 놀라운 은총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데, 물론 성령께서 그렇게 역사하지만 말이다. 사람은 자기를 항상 돗대로 여기려고 하는데, 왜냐하면 마귀의 유혹 때문에 인간에게는 자꾸만 자립심이 생기니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도, 예수님도, 목사도 모두 귀찮고 자기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 밥도 하나 제대로 못하면서 !!

요즘 젊은 커플들이 연애를 하면서, "나는 너 없으면 못산다" 라고 하는데, 그런데 일단 결혼을 하고 난 뒤에는 서로를 귀찮아한다는 것이다. "내가 어쩌자고 저런 인간하고 결혼을 했지? 이 바보야" 라고 한다는 것이다. 자기 선택에 대해서 후회와 회한이 마구 넘친다는 것이다. 물론 여러분은 아니겠지요?

특히 남자들이 여자에 대한 불만이 밥을 못한다는 것인데, 아침마다 콘푸라이트에 우유나 말아먹고 말이다. 그러면서 자기 엄마와 비교하는데, 그러면 이제 여자가 참다가 참다가 "왜, 갈라설까?" 라고 나오는데, 그러면 "알았다. 갈라서자" 라고 하고 말이다. 물론 여자는 또 자기 새끼를 보면서 사는데, 물론 그러다가 아이들이 크면, "아이쿠, 빨리 시집을 보내야 하는데"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인간은 자기밖에 모른다는 말이다.

사람이 노인이 되면 왜 어린아이가 되는고 하니, 자기 자식에게 동정을 받는 몸짓을 해서 자기 몸이 편해지려고 말이다. 누굴 만나도 오버액션을 하고 말이다. 그러니 그것도 인간의 욕심이라는 것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는 불편한 자기 몸 하나 더 잘 챙기려고 말이다. 그러니 노인네 차원의 재롱이라는 것이다.

◈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이 어떻게 예수님을 !!

그러므로 그렇게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고난과 용서하심을 받아드린다고 하는 것이, 그야말로 전혀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라는 말이다. 아니, 자기 밖에 모르는 인간이 어떻게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드릴 수가 있다는 말인가?

물론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하라고 하면 군중심리로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러나 산 속에서 한번 해보라는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아쉬워서 믿는 것이 아니라 택한 백성이기에 믿는 것으로서, 아쉽지 않아도 예수님을 믿는 그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모든 이야기가,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실제로 이 땅에 직접 오신 그 하나님으로부터 출발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곧 모든 진리의 시작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출발점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라는 말이다. 예수님 말이다.

◈ 과연 예수인가, 목사인가 !!

그래서 이 땅에 오신 그분이 원하시는 교회는 무엇이며, 그분이 헌금을 어떻게 하라고 했으며, 그분이 기도를 어떻게 하라고 했으며, 그렇게 모든 것이 다 예수님이지, 결단코 목사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목사는 결코 십자가를 진 적이 없고, 목회라고 하는 것도 다 자기가 먹고살려고 하는 짓에 불과하기에 말이다.

그러니 먹고살려고 하는 인간에게서 나오는 말과, 자기의 목숨까지 다 내어놓으신 분이 하는 말씀이 어떻게 같을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분명히 다르다는 말인데, 즉 "내 피를 믿으면 천당에 간다" 라는 것과, "우리교회에 와서 헌금하고 천당에 가시오" 라는 것과 어떻게 같을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미 노리고 있는 것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말이다. 이렇게 목사는 "이왕 큰 우리교회 더 크게 해주시오" 라는 것이고, 주님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니가 아직도 은혜를 아는가?" 라고 묻고 계신다는 것이다.

◈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가?

그런데 어떻게 목사가 하는 말에 동조를 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무엇이 겁이 나서 말이다. 그러니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데,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아예 제쳐놓고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자기를 무엇이라고 할 것인지, 거기에 대해서 그렇게 신경을 쓰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마귀가 주는 두려움은 다 버려야만 하는데, 남을 살릴 생각을 하지 말고 먼저 본인부터 살아야 하는데, 그러니 자기 자신부터 예수님의 십자가로부터 출발을 하라는 것이다.

◈ 인간은 자기 몸 하나 편하면 그만 !!

부모도 귀찮고 자식도 귀찮고 다 귀찮고, 자기 몸 하나 편하면 된다고 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인데, 그것이 우리 속에서 활활 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고쳐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고, 그 질병은 평생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고, 그러니 그것을 고쳐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용서하시는 분이 계시기에, 그분 안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갓난아기를 보고 서울로 가라고 하면 도저히 말도 안 되지만, 그런데 그 아이가 서울에 무사히 도착했다면, 그것은 바로 그 아이를 품에 품고 간 엄마 덕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아이가 무사히 서울로 간다는 것이다. 아이가 길을 잘 찾아서 간 것이 아니고 말이다.

이렇게 아무 것도 모르는 아기 모습이 곧 우리들의 모습인데, 다만 우리는 엄마를 엄마라고 이해는 하는데, 그렇게 우리도 주님을 진짜 주님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라는 의미이라는 것이다.

(행 16:28)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행 16: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행 16:30)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행 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이제 교재 14페이지를 보자.

** '하라' 라는 것은, 인간의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이 역사 안에서 그 지향하고 있는 바가 어디를 목표로 하고 있는지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 성경에서 '하라' 라는 두 가지 의미는?

성경말씀에서 '하라' 라는 것은 두 가지 용도가 있는데, 우리 인간은 먼저 나름대로 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하나님, 제가 이런 것을 하고 있습니다. 들어주세요" 라고 말이다. 그런데 주님의 '하라' 라는 것이 들어오면, 우리 인간의 '하라' 라는 것이 박살이 나고 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진짜 하나님의 온전한 법이 오게 되면, 우리 인간들이 지킬 수만 있는 것을 골라 담는, 그런 우리 인간들의 법이 다 깨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하나님, 제가 열심히 교회에 다닐 테니 우리 가정을 화목하게 해주옵소서" 라고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시는가? 처나 자식이나 자기보다 더 사랑하면 하늘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마 10: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마 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마 10: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이것이 바로 역설적인 표현인데, 주님의 '하라' 라는 것이 우리의 '하라', 즉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라는 것을 부수어 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티코와 20톤 덤프터럭이 서로 박은 것과도 같은데, 과연 누가 이기겠는가?

◈ 주님의 '하라'가 인간의 '하라'를 공격 !!

이렇게 성경에서 '하라' 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하라'를 묵사발을 내기 위해서 있는 것인데, 그래서 "저는 간음하지 않았으니 복 주시겠지요?" 라고 하는데, 그러면 주께서 하시는 말씀이, "정말 간음을 하지 않았나? 살인하지 않았나?" 라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니가 정말 사랑했는가?" 라고 묻는 것이라고 하신다는 말이다. 간음을 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랑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법이 옴으로 말미암아서 "어, 나는 간음도 하지 않고, 탐내지도 않았는데" 라고 하는 모든 것이 와장창 다 깨어져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이 만들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깨기 위해서 주님의 '하라' 라는 것이 나온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예를 들면, 디모데후서의 경우에 "하나님, 제가 돈을 벌어서 헌금을 하겠습니다" 라고 하면, 성경에서 뭐라고 하는고 하니까, "먹는 것과 입는 것으로 족한 줄로 알고, 돈을 사랑하지 말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늘의 '하라'가 인간의 '하라'를 깨부수어버린다는 말이다.

그러니 교인들이 성경말씀을 보지 않고 목사의 설교만 듣게 되면, 자기 나름대로의 '하라'를 만들어서 자기 정당화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을 펴게 되면, 지금까지 목사의 말을 듣고 한 자기의 모든 것들이 다 깨어지기 때문에, 바로 그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딤전 6: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딤전 6: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 질문 - 그러면 사도바울이 말하는 '선하라' 라는 것 등은 어떻게 되나요?

사도바울에 있어서 '선(善)'은 무엇인고 하니까, 그것은 곧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의(義)인데, 말이 나온 김에 여기서 로마서 4장을 한번 살펴보자.

(롬 4: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롬 4: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그러므로 믿음이 곧 선이 되는데, 비록 경건치 않고 착한 일을 하지 않아도 말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그것이 곧 선이 된다는 사실을, 그것을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믿지 않게 되고, 그러니 악이 된다는 것이다. 즉 경건을 열심히 행한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않으니 착하고 훌륭한 종교인이 되는데, 물론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교회에서는 매우 칭찬을 받는 모범적인 교인이 되는데, 하지만 지옥으로 간다는 것이다.

◈ 바리새인 - 훌륭한 지옥으로 가는 사람 !!

믿음은 없는데, 거기에 행함을 집어넣으니 대단히 사람은 좋은데, 그러나 훌륭한 지옥으로 가는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그 대표적인 자들이 바리새인들인데,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기가 바리새인들 중에서 바리새인이었다는 것이다. 자기보다도 하나님을 더 잘 믿는 놈은 나와보라고 말이다. 그러니 주님의 '하라'가 얼마나 놀라운 '하라'이냐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행함을 다 박살을 내어버리는 말이다.

◈ 두 번째 '하라'의 의미는? 목표 !!

이것이 첫 번째 '하라'이고, 그러면 두 번째 '하라'는 무엇인고 하니, '목표' 라는 것인데, 즉 "하나님이 너를 인도할 때 이 정도까지 한다" 라고 하는 말이다. 특히 입시학원에 있는 강사들은 이런 목표를 잘 정하는데, "한 달 안에 여기까지, 두 달 안에 여기까지" 라고 하면서 말이다. 물론 이러한 목표는 학원강사가 정하는데, 바로 이 학원강사가 주님이라는 것이다. 주님의 '하라'가 바로 그런 '하라' 라는 것이고 말이다.

그러니 주님의 '하라'는 누가 하는고 하니까, 예수님이 하시는데, 다른 말로 하면 성령님이 하시는데,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신다는 말이다. 그 목표가 몇 개인고 하니, 10개도, 100개도, 1000개도 아니고 오직 하나인데, '사랑' 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모든 율법을 다 이룬 것이 되는데, 그렇다면 그 사랑을 우리가 행할 수 있는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인간이 하지 못하는 것을 목표로 세워야 그것이 주님답다는 것이다. 강사가 학생을 보고 "너, 무엇을 할 줄 알지? 응, 그래. 집에 가서 해" 라고 한다면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학생은 자기가 할 줄을 모르니 학원에 와서 선생님에게 배우는데 말이다. 이와 같이, 그 모든 것이 다 되도록 그렇게 주님이 하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 '하라' 라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곧 요한복음 14장에 나오는 '포도나무비유' 인데, "나에게 붙어라. 그러면 너에게서 포도라는 열매가 나오는데, 그 열매는 니가 나에게 붙어있기 때문에 나온 열매이다" 라는 것이다.

◈ 성도는 빨뿌리 !!

예가 좀 그렇기는 하지만, 옛날에 길다란 담배파이프가 있었는데, 경상도에서는 그것을 '빨뿌리' 라고 하기도 했는데 (파이프의 센 발음?), 할배들이 들고 다니면서 등도 시원하게 긁고 말이다. 한국교회의 초창기에는 교회에 신발과 파이프를 두는 곳도 따로 있었는데, 아무튼 거기서 주님이 담배를 피우면 우리는 그 파이프와도 같다는 것이다. 즉 우리를 통해서 담배를 피운 연기가 나온다는 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사랑이 없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용하셔서 사랑을 부으니까, 우리의 행동에서 진짜 하나님의 원하시는 사랑의 열매가 맺힌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랑이 나올 때는 반드시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주님이 하셨다" 라는 것이 같이 따라서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말을 그렇게 가져다 부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이 '하라'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 '하라'는 우리의 '하라'를 공격해서 박살내는 주님의 '하라' 라는 것이고, 그리고 둘째 '하라'는 우리를 파이프로 사용을 해서, 그렇게 우리를 하나의 도구로 사용해서, 즉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파이프라인으로 해서, 그렇게 우리를 통과해서 이웃에게 전달이 된다는 것이다.

◈ 다시 정리를 하면 !!

그것이 바로 교재 14페이지 이하에 나오는 내용인데, 이제 여기서 교재 18페이지를 보겠는데, 아무튼 이번에 제가 시작하는 강의는 이렇게 붕붕 마구 뛰겠는데, 여러분들이 알든지 모르든지 간에 아무튼 진도를 나가는 맛은 좀 있어야 하니 말이다.

◈ 천주교와 개신교 !!

교재 18페이지를 하기에 앞서서 늦게 오신 분들을 위해서 다시 한번 정리하면, 먼저 개신교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이 개신교는 천주교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면 천주교는 어떤 교회라고 했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눈에 보이는 성직자가 이 땅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인들은 교회에 가서 성직자를 만나면 된다는 것이다. 골치 아프게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도 없이 말이다. 그렇게 하면 천국에 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신교는 천주교의 이러한 점에 대해서, 즉 여기에 반대해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반대를 했는가? 천주교처럼 눈에 보이는 성직자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직접적으로 성령님으로 말미암아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목사는 필요 없는가? 그것이 아니라 목사도 성령을 받은 한 형제가 되는 것이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굳이 결혼을 하지 않아도 구원이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내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아내는 한 자매이고, 서로가 다 같은 한 형제라는 것이다. 서로 서로 사랑하라고 붙여준 말이다.

이렇게 아내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것은 바보라는 것이다. 애처가나 공처가가 아니라 말이다. 그것은 분명히 바보가 맞는데, 그런데 왜 교회에서 목사에게 복종을 하느냐는 것이다. 바보가 아니라고 한다면 말이다. 아내에게 복종해서 천국에 가는 것은 바보짓인 줄 알면서, 그런데 왜 목사에게 복종하는 것이 바보 중에서 바보짓이라는 것을 모르느냐는 것이다.

* 질문 - 사실 우리 한국교회는 목사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싶은데요?

그래서 루터는 말하기를, 그것이 진짜 교회가 아니라 자기 속에 주님이 계신다면 누군가가 와서 지금 때려죽여도 자기는 구원이 된다는 것이다. 마치 십자가 한 편의 강도처럼 말이다. 그렇게 루터가 외친 것이 곧 개신교의 시작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개신교가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가? 천주교로 되돌아 가버리고 말았는데, 그것은 민중들이 그런 영적인 것은 원하지 않고, 과거에 놀던 가락대로 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말이다.

◈ 왜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셨는가?

그 다음 두 번째로 제가 말한 것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어떻게 오셨는가?" 라는 부분인데, 하나님은 직접 이 땅에 내려오셨는데, 그렇게 오셔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침 뱉음을 당하고 결국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서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Passion of the Jesus Christ' 라는 영화에 보면 아주 적나라하게 묘사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고난을 받는 그분이 진짜 하나님인데, 그러니 우리가 그분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했는가? 돈인가? 시간인가? 이 십자가의 피만 있으면 만사가 다 오케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분명히 모자람이 없는데, 그런데 왜 걱정을 하느냐는 말이다. 이 십자가의 피만 있으면 되는데, 왜 거기에다가 다른 것들을 가져다 붙이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은 자기 피만 있으면 된다고 하고, 그런데 목사들은 여기에 무엇을 더 갖다 붙이라고 요구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여기서 우리는 목사가 아니라, 과연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했는지, 바로 거기서 출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가?

◈ '하라'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

그 다음으로 세 번째 이야기한 것이 '하라' 라는 것인데, 이 '하라'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처음 것은 인간의 '하라' 인데, 즉 하나님에게 잘 보이려고 나름대로의 성실성을 다하지만, 그러나 주님의 '하라'에 의해서 박살이 난다는 것이다.

어떤 부자청년처럼, 자기는 "율법을 다 지켰고, 간음을 하지 않고 어떻고" 라고 하면서 말씀을 모두 지켰다고 하니, 주님께서 새로운 '하라'를 주시는데,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를 따르라" 라고 말이다. 그러니 그 어떤 인간도 주님의 '하라' 앞에서는 다 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의 '하라'가 무엇인고 하니까, 그것이 바로 '목표' 인데, 즉 하나님께서 원래 원하셨던 목표에 이르게 하시는데, 우리는 다만 수단에 불과하단 말이다. 마치 포도나무가 가지에 붙어 있기만 하면, 열매는 원 줄기에서 알아서 나와서 가지를 통과해서 그 가지 끝에 열매를 맺게 되는데, 예수님 자신의 열매를 말이다.

그래서 열매가 없는 것을 불살라서 버리는데, 왜냐하면 자기는 붙었다고 우기지만, 그러나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붙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님이 원하시는 그런 주님의 열매가 아니라 엉뚱한 자기 열매가 나왔으니 말이다. 이 열매를 두 글자로 '사랑'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교회성장이 아니라, 그런 것은 자기 불살라버리는 전형적인 자기 열매이고 말이다.

그런데 이 사랑은 다름이 아니라, '용서받았음' 인데, 쭉쭉 빠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우리는 흔히들 사랑을 이야기하기를, 적극적으로 자기가 무엇인가를 베풀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고 용서받았음을 아는 느낌,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물론 용서함을 안다는 것은 자기를 죄인으로 기정사실로 여기는 것인데,

◈ 사랑이란, 용서받음의 필 !!

* A : 저를 용서해주세요?
* B : 니가 죄인임을 아는가?
* A : 몰라요.
* B : 그런데 무슨 용서를, 저리 꺼져 !!
* A : 그래도?
* B : 어허, 저리 가 !!

아니, 자기가 죄인인 줄도 모르면서 무슨 용서를 알겠는가? 이렇게 죄인이기 때문에 용서가 주어지고, 따라서 그 용서함을 받았다고 하는 그 전체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흐뭇해하시는데, 즉 "니가 사랑을 아는구나" 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이제 여기서 교재 18페이지 '교회란 무엇인가?' 라는 부분을 살펴보자.

** [2. 성경과 교회] -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란 무엇인고 하니, 눈에 보이는지 않는 분을 신봉하는 무리인데, 즉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의 지시만을 따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처음에 말하기를, 앞에는 눈에 보이는 인간이 있고 뒤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 계시는데, 즉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 눈에 보이는 인간을 끌고 간다는 것이다.

◈ 교회 -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의 지시만을 !!

바로 이런 상태를 두고서 교회라고 하는데, 그러니 눈에 보이는 사람을 신봉한다면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분께서 교회의 머리이기 때문에 그러한데, 이 '머리' 라고 하는 것은 모든 명령과 지시가 거기에서 모두 쏟아진다는 것이다.

저는 이것을 두고 옥상에 있는 물탱크라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물론 그 물탱크는 눈에 보이지만, 아무튼지 그런 물탱크에서 물이 내려오는 것처럼 명령과 인도하심을 내려주신다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관계를 두고 교회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습니다" 라고 한다면 교회가 아닌데, 사이비 종교단체에 불과하지 말이다. 여호와증인이 이단이고, 안식교가 이단이고, 그리고 다락방이 이단이고 문제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즉 그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고 하니, 그들은 눈에 보이게 집단화를 시킨다는 것이다. 정명석도 그렇고 말이다.

그냥 자기 혼자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되는데, 대순진리회를 보면 숫자에 비해서 엄청난 자금이 동원되는데, 그들의 건물들을 한번 보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돈을 바치지 않으면 복을 받지 못한다고 해서 대학교 등록금이고 뭐고 다 바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계급을 주고 하는데, "니는 대령해라, 소령해라" 라고 하면서 말이다.

◈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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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8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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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