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11-a 서울강의녹취 : 에베소서 제 15강
20080711-a 서울강의녹취 : 에베소서 제 15강
이름 : 오용익(IP:59.3.201.241)
에베소서 제 15강 (이 근호목사, 2008년 7월 11일-a, 서울의존교회)
지난 시간에 에베소서 2장을 강의했는데 사도바울이 어려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령안에서 너희가 성전이 되어간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에베소서 2:21,22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성전이란 건물인데 사람이 건물을 지을 때는 벽돌, 돌, 나무등의 재료를 가지고 땅을 다지고 기둥을 세우고 벽을 세우고 그 안에 칸을 나누어서 방을 만들고 그렇게 해서 집이 되어 갑니다. 사람은 그렇게 집을 짓게 되는데 하나님이 계시는 집은 어떤 집일까요? 사람이 사는 집과 하나님의 집의 차이점이 뭘까요?
사람이 사는 집은 목숨이 부지되면 됩니다. 하나님의 집은 죄가 없고 거룩이 있고, 의가 있고 영생, 하나님의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있어야 하나님의 집이 됩니다. 여러분이 생각해 보세요. 죄는 없고 하나님의 사랑과 의와 거룩과 영생이 있는 그런 집을 여러분이 지어보실래요? 어떻게 지으면 이런 집이 됩니까?
사람 사는 집은 이런 것이 필요 없습니다. 자기 몸만 보전할 수 있으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어떤 집에 할아버지가 살다가 돌아가셨다고 하면 그 집은 주인이 없기에 없어져야 되겠지요. 사람 사는 집은 사람 죽으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는 집에는 아픈 것도 없고 죄도 없고 죽는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 사는 집에만 들어가면 영원히 살고 사랑이 넘치고 용서가 있고 거룩한데 대체 어떤 장치가 되어 있는 집이기에 그런 것이 가능합니까? 내가 죄를 지었는데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 보니까 갑자기 내가 의인이 되고 영광스럽게 되고 천사처럼 되는 겁니다. 이 집 나가면 그만 다시 죄인 되고 죽어 가는데 그 집에만 들어가면 하나님의 영생이 있고 거룩이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집을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뭔가 그 집에는 비밀이 있고 장치가 있는데 그것을 에베소서 3장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어떤 비밀스런 장치가 있기에 하나님의 집에 사는 사람들은 영원히 죽지도 않고 사랑을 영원토록 받으면서 살게 되는 겁니다. 지난 금요일에 대구 병원으로 어떤 분을 전도하러 갔습니다.
그분의 연세가 지금 67세가 되었는데 지금껏 사는 동안 술로 살았어요. 세가지 병, 췌장암, 폐렴, 당뇨병이 한꺼번에 걸려서 6개월밖에 못산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마지막 가는 그 분의 길에 제가 불려갔습니다. “할아버지! 제가 마지막 가시는 길에 드리는 말씀이니 잘 들어 보세요. 두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한사람은 부자고 한 사람은 거지였습니다. 할아버지, 지금 제 이야기가 잘 들립니까?”
이때부터 할아버지는 울기 시작합니다. 그 할아버지가 울기 시작한 이유는 제가 전하는 복음이 감동스러워서가 아니고 ‘자기 신세가 얼마나 처량하고 비참하게 되었으면 목사가 다 와서 저럴까’라는 자기 처량함으로 인해서 우는 것 같이 여겨졌습니다. 울든 말든 복음을 전해야 되니 복음을 계속 전했습니다.
“할아버지, 마지막입니다. 두 사람이 죽었는데 한 사람은 거지인데 천국에 가고 한 사람은 부자인데 지옥에 갔습니다. 그런데 지옥에는 물이 한 방울도 나지 않습니다. 한방울도 안나는 지옥에 간 부자가 천국 가 있는 사람보고 물좀 달라고 하니까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 하는 말이 ‘천국 간 사람은 절대로 천국 밖으로 못 벗어나고 지옥 간 사람은 절대로 지옥 밖으로 벗어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 마지막인데 어떻게 하실겁니까?”
그런데 할아버지가 다시 울기 시작했어요. ‘처음에 울기 시작한 것은 자기 설움에 겨워서 우는 울음인데 이번 울음은 무슨 의미일까?’ 제가 왜 우느냐고 다그친 것은 아니고 계속 복음을 전했습니다. “할아버지,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지금까지의 세상 사신 것은 잊어버리시고 앞으로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 회수를 하는데 천국으로 회수할거냐, 지옥으로 회수할거냐만 남아 있습니다. 어떻게 할 겁니까?”
그렇게 물으면서 그것은 할아버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그 복음을 전하는 나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이 목사! 너는 어디로 갈 거야?” 여러분이나 저나 천국에 가고 싶거든요. 가고 싶은데 그 천국이 어떻게 만들어지는데 거기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 거기에 들어간 사람은 왜 영원히 살 수 있는지를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됩니다.
어린이라고 해서 반드시 오래 산다는 보장은 없고 또 어린이라고 해서 영원히 산다는 것은 아예 없습니다. 결국 죽게 되어 있고 또 어린이라고 해도 어른보다 먼저 죽는 수도 많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이것을 가르쳐 줍니까? 안 가르쳐 주지요. 그러면 그 선생님은 나중에 죽어서 어디로 갈지 모르죠. 그 모르는 것을 가지고 성경에서 비밀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그것을 내가 특별히 너희에게 알려줄게’라고 합니다. 알려주는데 여기서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자신 만만하게 이야기 할 수밖에 없는 그 이유를 너희에게 이야기 해 줄게’라는 것이 에베소서 3장 1절부터 12절까지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천국 있습니다. 지옥 있습니다’라는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말할 거예요. “네가 가봤나? 가보지도 않고 왜 그렇게 거짓말을 하는거야?” 이렇게 나올 수가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그럴 줄 알고 ‘너희들이 알고 있는 천국은 말짱 다 거짓말이고 이 사도인 내가 알고 있는 천국이 진짜 천국이고 내가 알고 있는 지옥이 진짜 지옥이고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다’라고 이야기를 해 줍니다.
지금까지 강의를 여러 번 했지만 다 중요했지만 오늘도 참 중요한 날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여러분을 다 환자로 눕혀놓고 링겔 꽂아놓고 아까 말한 그 할아버지에게 복음 전했던 그 상황같이 그 심정으로 전하고 싶은 거예요. 여러분이 그런 마음가짐으로 들어야 됩니다. 앞으로 살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그런 심정으로 들어야 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비밀은 아무나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 비밀은 에베소서 3장에 보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만 알고 있는 비밀입니다. 그런데 그 비밀을 여러분에게 알려 줬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특별히 대우했다는 증거라는 말입니다.
사도바울의 말이 ‘이 비밀은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이천국가는 비밀을 여러분들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비밀을 상호공유 할 자격을 줬다’는 거예요. 비밀은 아무한테나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고 친한 사이끼리 이야기는 거잖아요. 비밀을 공유한다는 것은 그만큼 친하다는 뜻입니다.
비밀을 공유한다는 것은 “내가 네 인생 책임질게”라는 것을 전제 할 경우에만 “이것은 비밀이야. 너만 알고 있어.” 오늘 간식은 떡입니까? 뭡니까? 모르죠? 이게 비밀입니다. 오늘 간식은 수박이랍니다. 그 비밀의 가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것은 비밀의 가치가 없어요. 왜냐하면 수박을 먹는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진짜 비밀은 어떤 요소가 있어야 되느냐 하면, ‘나는 비밀 알았다. 너는 택함 받았다’ 이렇게 연결되어야 그것이 비밀 값을 하는 겁니다. 비밀을 알았다는 것은 아무나 비밀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비밀을 알도록 하는 그만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비밀스럽게 이야기하는데 그 말은 ‘너는 이미 택한 백성이야. 그러니까 너에게만 비밀이 이해되도록 비밀이 주어질거야’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다시 정리해 봅시다. 집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는 집과 사람이 사는 집의 차이점은 사람이 사는 집은 사람이 죽고 나면 그 집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좋은 집을 짓고 거기에 가구를 들여놓고 호화인테리어를 해도 내가 죽으면 그 집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중국에서 지진 났을 때 여학생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제가 그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봤는데 안경이 딱 보였습니다. 지진 난 현장 쓰레기더미에서 안경이 하나 버려진 채 놓여 있을 때 그 안경주인 어디 갔습니까? 이미 죽었습니다. 그러면 그 안경은 소용없습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는 ‘네몸이 네 집보다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하나님 제 집 좋지요?”
“인간들아! 네 집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네 몸, 네가 구원받을 인간인지 지옥 갈 인간인지 그게 더 중요하다.”
사람들이 자꾸 껍데기를 자랑합니다. ‘나는 한 달 수입이 천만원이고 우리 교회는 숫자가 천명 모인다.’ 그런것은 다 껍데기입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그 온천하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마 16:26) 다니엘의 세친구가 집에 있다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어디로 이동합니다.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갑니다(단 3장).
포항제철에 가면 철 녹이는 엄청나게 커다란 그릇이 있는데 그것을 용광로라 합니다. 그 용광로에 들어갑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펄펄 끓는 용광로 속에 들어가니까 어디가 집입니까? 용광로 속이 집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세 사람이 들어가고 나니까 불속에서도 그들이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살았습니다.
그 세 사람이 슈퍼맨이나 울트라맨입니까? 보통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도 안 죽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성경에서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자들아! 너희는 안 죽을 수 있는거야. 마치 다니엘의 세친구가 불속에 들어가서도 안 죽은 것처럼 너희도 안 죽을 수 있는거야’라는 겁니다.
그러면 다니엘의 세친구가 안 죽을 수 있었던 이유? 1) 평소에 운동을 많이 했다. 2) 들어가기 전에 물을 많이 뿌렸다. 3) 들어가서 기도를 많이 했다. 4) 거기에 누가 있었다. 몇 번입니까? 거기에 누가 있었습니까? 네 번째 분, 하나님의 아들이 계셨습니다. 죽어도 안 죽는 분과 함께 있으면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고 하나님이 사는 집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책임지고 자기 집에 온 사람 안 죽이겠다는 겁니다. 책임지고 죄 없게 해주시고 사랑하게 해주시고 의롭게 해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로마서 10장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그래서 다니엘의 세 친구가 그 용광로 집에서 계속 살았습니까? 도로 용광로 밖으로 나왔습니까? 세 사람이 용광로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세사람은 용광로 들어가기 전에도 살았고 용광로 안 불속에서도 살았고 그 용광로 밖에 나와서도 살았습니다. 이제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 겁나는 것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겁나는 게 없습니다. 남들이 죽었다고 한 그 자리에서도 살았기에. 그림으로 그려볼게요. 이것이 용광로인데 여기에 세 사람이 들어갔는데 한분 더 계셔서 네 분이 여기 있었는데 여기서 살았는데 여기서 바깥을 보니 그 바깥이 죽음의 나라입니다. 진짜 나라는 여기 예수님과 함께 있는 나라가 영생의 나라가 되는 겁니다.
이걸 두 글자로 뭐라고 한다? 이게 비밀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해서 구원받는 것도 아니고 내가 착한 일을 해서 구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영생 얻느냐 마느냐’의 차이입니다. 천국에 누가 계십니까? 예수님. 그러니까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영생을 얻지요. 아주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지옥에는 누가 없습니까? 예수님. 예수님이 없기에 지옥에는 물이 한 방울도 없습니다. 다시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영생 얻고 천국에 가는 것은 우리 노력이 아닙니다. 우리가 열심히 살아서도 아니고 우리가 열심히 교회 나와서도 아니고 신학공부해서도 아니고 성경공부해도 아닙니다.
‘내 옆에 누구 있다.’ 옆에 정도가 아니고 ‘내 안에 너 있고 네 안에 나 있다’(요 14:20, 요 17:22) 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참 어려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천국은 있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네 안에 예수 있고 예수 안에 네가 있으면 너는 하나님의 성전 안에 있는 사람이 되어서 영생 얻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내안에 뭐가 있습니까? 내 안에는 몸의 기관들밖에 없는데 뭐가 있다는 겁니까? 제가 그런 말을 했는데 오이는 어디를 잘라도 오이입니다. 수박이든 가지든 뭐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같은 경우에 평소에 자기 곁에 누가 있다는 것을 자기들만 알고 남들은 몰랐는데 그 세 사람이 가는 곳에 주님도 함께 있었습니다.
다니엘의 세친구가 불속에서 나왔어도 그들은 누구와 함께 살아가게 됩니까? 예수님과 함께 살아간 겁니다. “글쎄 목사님! 그것은 알겠는데 어떻게 해야 주님이 내 안에 들어옵니까? 어떻게 해야 나 혼자 밖에 없는 인생이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고 예수님 안에 내가 있는 영생 얻는 인생이 됩니까?”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비밀입니다.
제가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이 그렇게 합니다. 왜 비밀입니까? 당신의 능력으로 안 되니까 그것이 비밀입니다. 이렇게 하면 된다는 어떤 방법이 없습니다. 방법이 없이 그냥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 비밀입니다. 방법이 없다는 것이 여러분에게 절망적으로 들릴 텐데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3장에서 그다지 절망적으로 이야기를 안 합니다.
에베소서 3: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 다음에 뭡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라고 되어 있지요.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게 정답입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성전이 되어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는 좀 어려웠는데 지금부터는 좀 쉽게 어떻게 해서 우리가 예수 안에 있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겠습니다.
옛날에 사울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하나님의 비밀은 모르고 ‘예수 안’도 모르고 자기밖에 몰랐습니다. 자기를 갈고 닦고 자기를 순수하게 유지하고 고운 맘 착한 맘 정직한 맘을 키워내면서 ‘하나님, 제가 이정도 하니까 괜찮지요? 이정도 하면 충만하게 천당 갈 만하죠?’ 하면서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 바르게 사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 귀에 무슨 소리가 들렸냐 하면 ‘예수님께서 우리가 못하는 일을 예수께서 대신 다 해줌으로 말미암아 그 덕분으로 우리는 천국 간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는 못하는데 우리가 못하는 일을 대신 해 줌으로 말미암아 그 혜택을 우리가 입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려 왔습니다.
학교에서 어려운 숙제를 내줬는데 형이 대신 해 주면 기분 좋아요, 안 좋아요? 만일 그보다 더 어려운 시험인 대학시험을 누군가 대신 치러준다면 기분 진짜 좋을 거예요. 여러분이 천국 못 가는데 누군가 대신 천국에 넣어준다면 기분 좋겠지요? 그러면 그 천국 대신 넣어주는 그분과 여러분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나 주님 알거든요?” 그랬는데 주님은 “나는 너 모른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것은 보통 위태로운 것이 아닙니다. 길에서 아빠 비슷한 사람을 만났는데 “아빠!” 하니까 “네가 누구냐? 나는 너를 모른다.” 평소에 301호가 자기 집이니까 301호를 열고 들어가서 “엄마, 밥줘!” 하니까 어떤 낯선 아주머니가 “얘야! 너는 누구냐? 나는 너 같은 아들을 둔적이 없다.” 그날 밤 그 아이는 어디서 자야 합니까?
보통 문제 아닙니다. 그것을 에베소서 3장 9절에서는 ‘예정하심’이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3: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예정해 놓은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찾지 않더라도 예수님이 찾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찾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찾지를 못하고 믿지를 못합니다. 왜? 그것은 비밀스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감추어진 하나님입니다.(사 45:15) 어려운 것이 계속 나오니 정리하고 갑시다.
301호가 자기 집 인줄 알고 거기에 들어갔던 어떤 초등학교 여학생이 “얘, 너는 누구니?”라고 하면서 어떤 아주머니한테 쫓겨나 버렸어요. 그 애는 그날부로 집도 없는 애가 되어 버렸어요. 그런데 어떤 남학생이 “엄마!” 하니까 “오, 그래 너는 내 아들이야” 합니다. 어떤 남학생은 그 301호에 들어가서 살더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집은 누가 짓습니까? 하나님이 짓습니다. 301호 그 집은 하나님이 짓는데 그 집의 특징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의와 용서와 사랑이 넘치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집 문을 노크하고 두드린다고 해서 그 집에 들어가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도통 너를 모른다’고 하면 그만입니다. 301호 그 집, 천국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숨어 있어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이 그 집에 들어갈 사람을 기어이 찾아옵니다. “누구세요?” “나는 네 아버지 하나님이다.” “저는요?” “너는 내 아들이지. 여기서 이러지 말고 우리 천국가자” 하고 아버지 쪽에서 우리 손잡고 이끌고 잡아 당겨서 이미 다 준비해 놓은 그 천국, 그 성전에 집어넣는 방법이 그 방법인데 이 방법을 두 글자로 ‘복음’이라고 합니다.
이게 감동들이 안 되시는 모양인데 아직 살날이 창창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디모데후서를 봅시다.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여러분이 지금 세 가지 병에 걸려 있고 침대에 누워 있으며 내일 죽는다고 해 봅시다. 마지막 때에 목사를 보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처음부터 너는 착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너는 내 자식이다.’는 말입니다. 이미 예정해 놓은 내 자식이기에 마지막 때에 나타난 겁니다.
그 할아버지가 구원받았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 할아버지의 장래일은 저는 모릅니다. 예를 드는 겁니다. 그때 그 환자가 하는 말이 “주여, 제가 죄인입니다.” 창세전에 예정되었다고 의인입니까? 아니죠. 창세전에 예정된 자가 뭐다? 죄인인데 그 죄인을 위해서 대신 누구를 보내서 ‘너는 예정된 자야’라고 예정된 자를 위해서 대신 피를 흘리시고 깨끗하게 하셔서 구원하는 겁니다.
디모데전서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미쁘다’는 말은 믿음직스럽다는 말입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그리스도 예수께서” 무엇을 구원하십니까? ‘죄인’을 구원하죠. 이것을 가지고 어떤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이 아니고 예정된 사람만 구원하는데 예정된 사람이 훌륭하다? 아니요. 예정된 사람인 자기 백성은 죄인입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을 구원하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그 다음에 무엇을 얻는다고 되어 있습니까?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모델하우스입니다. 아파트는 모델하우스 지어놓고 그대로 짓는 것이 모델하우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 땅에 살면서 죄인 되고 그 죄인된 것을 그 사람의 행함이 아니고 주님께서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서 대신 값을 다 치르시고 그래서 건져내는 이 복음의 방법으로 사람 집에 살던 사람을 하나님의 집에 집어넣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다니엘의 세 친구는 어떻게 불속에서 살아남았습니까?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심이 불타야 될 그 사람들마저 영생을 얻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다니엘의 세친구가 훌륭하냐고 묻지 마시고 ‘그 옆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셨기에 불속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이 되었는가’를 보고 그 비밀에 대해서 감탄해야 됩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목사님, 그 이야기가 그럴싸하기는 한데 예수님이라는 분이 어떻게 해서 죄인을 용서해주고 어떻게 건지는 겁니까?”라고 묻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제가 이렇게 답변합니다. 비밀입니다. 그 비밀도 설명해야죠. 사울이라는 사람이 다메섹에서 내려가는데 그 이야기가 사도행전 9장에 나옵니다.
사도행전 9: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하늘에서 무엇이 내려왔습니까? 빛. 빛이 와서 사울일행을 둘러 싸버렸습니다. 진짜입니까? 진짜입니다. 하나님의 빛이 심심풀이로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빛이 임해버리면 그 순간 사울은 무엇만 생각하느냐 하면 ‘내가 키가 얼마이며 몸무게가 얼마이며 뱃살이 얼마나 많이 나왔는지, 한 달 수입, 남자냐 여자냐, 가족은 몇이고 아버지는 누구고’라는 세상적인 것들이 일체 다 없어지고 ‘어, 빛이다’만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제가 왜 이렇게 설명하느냐 하면, 여러분이 성령의 빛을 받게 되면 ‘나는 한 달 수입 얼마이고 학교 어디까지 나왔고 교인 몇 명이고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그런 것이 깡그리 그 순간 다 없어지고, 다 잊어버리고 ‘예정하신 뜻으로 내려온 빛이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지목하면서 내려오는 하나님의 빛이야’에 몽땅 쏠리게 됩니다.
중동의 원유 값이 얼마인지, 내가 학교 가는지 숙제하는지 다 잊어버리고 심지어 미장원에서 여자들이 파마한다고 머리 감고 있는데 감고 있는 채로 성령을 받아 버리면 자기가 몇시간 후에 파마를 풀어야 되는지도 잊어버리고 ‘어, 빛이다’, 이렇게 됩니다.
빛 앞에서 내가 어떤 존재며 나는 얼마나 성실하며 나는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런 것은 다 무시당하고 오직 보이는 것은 ‘빛이다’라는 것만 보입니다. “그러면 목사님, 우리도 사도바울처럼 뭐가 빛이 비쳐야 되지 않습니까?” 꼭 사도바울처럼 빛이 실제로 임해서 눈이 소경이 되어야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장님 되어야 구원됩니까? 장님 되고 싶습니까?
장님 되어버린 것은 사도에게 있었지만 그 사도와 똑같은 효과가 우리에게도 일어납니다. 성령이 오게 되면 ‘지금 내가 통장에 돈이 얼마나 남아 있으며, 애가 시험 치는데 잘 쳤는지’ 그런 것은 다 날아가 버립니다.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주님은 구세주고. 하나님아버지의 예정대로 나를 구원하셨군요. 예수님이 나 대신 죽으신 구세주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내가 예수 믿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것을 제가 인정하겠습니다.”
이런 순간이 오게 되면 사도바울에게 임했던 그 빛의 사건이나 오늘날 우리가 성령 받고 나서 ‘주여, 주님께서 저를 구원한 것 맞습니다. 제가 죄인입니다’라는 그 고백이 똑같은 체험이며 똑같은 결과를 낳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 보면 빛에 대해서 나옵니다. 마리아가 아기 낳고 있을 그 즈음 그 근처 들판에 목동들이 있었습니다.
목동들이 양을 치고 있을때에 그곳에 하나님의 빛이 임해서 그 둘레를 조명이 비치는 것처럼 만들었습니다. 그때 목동이 내일 시장에 양팔아 넘길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목동들은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양이 지금 도망을 가는지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때 천사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누가복음 2:10-13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천사들이 부른 노래의 가사가 뭡니까? “하늘에서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그러고서 목동이 어디로 갔습니까? 양 치러 갔습니까? 그들이 베들레헴에 가서 아기를 만나봤지요? 만약에 양 주인이 그걸 봤다면 그것은 목동의 근무지 이탈이고 근무태만입니다.
“이 인간들아! 양을 치라 했더니 양은 안치고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할 때 그 목동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빛이다!”
“미쳤나?”
“미쳤다! 나는 봤다. 천사의 예언을 들었다. ‘하늘에서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정신 차려라. 너희들은 양이나 치고 월급이나 받으면 되지. 정신 좀 차려라.”
이것이 바로 창세전에 예정된 자에게 주님께서 확실하게 먼저 찾아와서 건져내는 방법이 이 방법입니다. 빛이라는 겁니다. 베드로전서에 보면 그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온다?(벧전 1:19) 우리 마음속에 샛별이 떠오르게 되면 우리마음은 그동안 내가 구축해 놓은, 키가 얼마니, 지위가 어떠니, 미장원에서 파마가 잘나왔니, 이런 모든 생각이 휴지조각보다 더 사소하고 하찮은 것으로 다 사라집니다.
“나는 봤다. 나는 알았네!”
“뭘?”
“창세전에 알려주기로 예정된 사람에게만 알려주는 그 비밀을. 나는 알았네. ‘주여 저는 죄인 맞습니다’.” 옆에서 보고 있다가,
“너같이 착실한 인간이 뭐가 죄인이야? 뭐가 죄인지 이야기 해봐.”
“이유 없이 죄인입니다.”
그래야 로마서 3장이 맞습니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죄인 되게 해서 이제는 율법이 아니라 율법외의 한 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라’는 성경의 모든 말씀이 사도바울과 사도베드로가 이야기했던 그 모든 것이 다 이해가 됩니다. ‘이것이구나!’ 우리가 지키는 것이 아니고 이미 지켜진 채로 예언의 말씀이 갑자기 덮어 씌워지는 겁니다.
그 모든 말씀이 우리 마음의 빛으로 와버리면 우리는 성경말씀대로 완성되고 성취된 것을 골라잡기 바빠요. 이것도 성취, 이것도 성취, 모든 것이 이미 완료된 상태입니다. 모든 것이 공짜로 그냥 들어오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문자로 보는 것이 아니고 영으로 읽으라’는 말이 그 말입니다.
빛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고 난 뒤에 40일 동안 무엇을 먹었습니까? 통조림을 먹었습니까, 생수를 마셨습니까? 뭘 먹었습니까? 1) 칡넝쿨 2) 통조림 3) 라면 4)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몇 번입니까? 아무것도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는데 모세가 산에서 내려올 때는 온 산 전체가 무엇으로 뒤덮였습니까?
빛으로 뒤덮였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눈이 부셨습니다. 마치 태양이 산 위에서 성큼 성큼 내려오는 것 같았겠지요. 눈이 부셔서 ‘저게 사람인지 태양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습니다. 백성들이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모세가 수건을 가지고 자기 광채 나는 얼굴을 가리웁니다. “나다! 알아보겠나?” “어디 다녀오셨습니까?” 빛의 나라에 다녀오니 그렇게 된 겁니다.
성경은 우리들이 모르는 감추어진 비밀을 오직 예정된 자에게만 알려주는 책이 성경책입니다. 그런데 그 비밀을 전달하는 중간에 예수님의 십자가 피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보고도 ‘그냥 정치범 하나가 까불다가 죽었구먼’ 하는 사람은 여전히 어리석은 것이고‘저 피가 창세전에 예정된 사람의 모든 죄를 대신 용서하기 위해서, 복주기 위해서, 영생주기 위해서 그분이 혼자 고생했던 십자가라고 이해되는 것, 그것이 바로 구원의 능력입니다.
헌금, 십일조, 주일성수, 봉사, 찬양대, 교사, 목사, 집사, 장로, 남자, 여자, 결혼했다, 안했다, 이혼했다, 안했다, 그런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창세전에 예정된 것은 십자가인데 자기신세타령 할 일 있습니까? 다시 이야기합니다. 목자가 빛 앞에서 ‘이거 양 내다 팔면 얼마 받을런지’ 그런 것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양이냐 도망가든 죽든 자기는 어디로 달려갑니까? 예수님 보러 달려갔습니다. 그 아기 예수가 하나님의 약속된 그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분을 죽이셨습니다. 그분이 죽어야 합니다. 죽는 그것이 약속된 비밀입니다. 그분이 죽어야 우리가 삽니다. 그분이 죽어야 우리가 살고 그 죽었던 분을 살려내고 죽어 마땅한 우리도 살려내고 그래서 하나님의 집에서 함께 영원히 사는 겁니다.
이것이 창세전에 예정된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전달되는지 다음시간에 계속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