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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80704b 울산강의-창세기 36장자유게시판창세기

20080704b 울산강의-창세기 36장

이름 : 한윤범(IP:59.6.189.226)

20080704b 울산강의-창세기 36장

(강의:이근호 목사)

시작하겠습니다.

미움이라는 것을 모르면 사랑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사랑받았습니다’ 말을 하기 전에 하나님께 미움이 뭐냐, 하나님이 뭘 미워하시느냐 알아야 돼요. 하나님께서 미워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여기 에서 집단, 나중에 에서가 여기에 24절엔 광야에서 온천 발견하는 이야기 나오고, 31절에 보면 왕이 나오거든요. 에서가 나중에 에돔의 왕이 되는데. 이 사람이 왕국이 되고 왕이 되고 하는 이 자체가 뭐냐 하면, 신이 됩니다. 절대 신의 영역이 돼요. 주인공이 누구냐 하면,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전체 아까 이야기한 무가치한 겁니다. 생명이 아니라 죽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하늘나라가 있어요. 생명이 있는데 뭐가 버티고 있느냐 하면, 우리 마음에든지 우리 생각 속에 뭐냐 하면, 에돔 같은 이런 요소가 우리 속에 버티고 있습니다. 여기 주인공이 누구냐? 내가 주인공이거든요. 내가 제일 중요해요. 하나님이고 뭐고 나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없다 이 말입니다. 이게 버티고 있으니까 내 중심의 사랑이 나오고, 내 중심의 미움이 나오는 겁니다.

내가 날 사랑하다보니까 하늘나라에 대해서 미워하게 돼있고, 만약에 나에게 미움 받는 사람 있다면 그분이 바로 하나님께 사랑받는 사람이고. 내 자체가 하나님 생각하고 정반대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 하는 것은 내 뜻하고 정반대로 나가요. 그래서 사랑이란 것도 사람은 누굴 사랑하느냐 하면, 어떤 사람이 날 좋아하면 그 사람을 사랑하게 돼있습니다.

아까 우리가 에스겔 봤지요. 죽을 영혼을 살리고, 살릴 영혼을 죽이는 것. 왜 그렇게 합니까? 자기 마음에 들거든요. 자기 마음에 들기 때문에 아이고, 집사님, 집사님. 집사님은 천당 갈 겁니다. 이러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안 드는 건 김 집사님은 지옥 갈 거다. 라고 전부다 기준이 누구냐 하면, 자기 자신이 기준이 되는 겁니다.

그럼 목사님은요? 난 당연히 천당 가지. 이러거든요. 당연히 천당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진짜 천국 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날 사랑해서 구원받는다. 이런 고백이 나와야 돼요. 더 쉽게 말해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와야 돼요. 그것도 어떤 행동과 관계없이. 어떤 개차반 같은 행동을 해도 관계없이 계속해서 사랑받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 와야 돼요.

그 느낌의 근거가 있는데 그 근거가 뭐냐? 십자가에요. 십자가를 아는 사람은 무조건 사랑 받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십자가가 머무는 곳은 다 사랑받게 돼있어요. 하나님이 이 안경을 사랑한다면 이 시계를 사랑한다면 내가 이 시계를 삼켜버리면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삼킨 이 시계를 사랑해서 따라올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이 내놓은 증거가 있는 곳은 무조건 사랑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 증거가 놓인 곳이 에서 쪽이 아니고, 야곱 집안이라는 점에서 야곱 집안은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에서 집안은 그런 사랑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그것은 영원히 진노, 하나님의 미움을 받게 돼있습니다.

이런 이야기하면서도 어떤 사람은 이야기하겠지요. 전에 화요일 때 그런 이야기했지요. 식당에서 그런 이야기했지요. 제가 이런 이야기하면서도 스스로 자기한테 물어봐요. 어이, 이근호, 너 구라치지. 니, 그렇게 자신만만한 증거 있나? 라고 누가 물으면 또 내가 스스로 물으면 저는 뭘 보느냐 하면, 십자가를 봅니다.

십자가가 뭐냐? 책에도 그런 제목 나왔는데. 십자가가 뭐냐 하면, 이겁니다. 이거 할 때 감격스러워요. 그 남자를 죽였다. 그 남자 또는 한 남자. 십자가가 뭐냐 하면, 하나님의 뜻인데 그게 뭐냐 하면, 너 나와. 죽인 사건이 십자가에요. 복을 준 사건이 아니고, 하나님 믿는 사람 나와. 복 줄게. 이게 상이 아니라 진짜 하나님은 어떤 특정 남자를 이름이 예수라 하던가? 특정 남자를 죽여 버렸어요. 그리고 죽인 그 남자를 실제로 사흘 만에 살려냈습니다. 그 외에 하나님 뜻은 없습니다.

몇 학년이지요? 고등학교 1학년이죠. 고일 학기말 시험 치지요. 그것도 하나의 사건이지요. 하나님 뜻입니까? 내가 고일인데 시험쳤다. 분명히 사건 맞지요. 일이 일어났잖아요. 근데 그게 하나님 뜻입니까? 시험 치면 구원받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 뜻이 뭐냐 하면, 이번에 애가 공부를 잘했거든요. 이게 뜻이 아니고 애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족 중심도 아니고 엉뚱한 어떤 예수란 남자를 죽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은 너에게서 찾지 말고 그에게서 찾아라 이 말이죠.

야곱에게 있어서 누가 죽느냐 하면, 요셉이 죽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왜 죽느냐 하면, 하나님의 꿈을 꾼 사람이에요. 하나님의 꿈꾼 사람이 하나님 뜻에 의해서 죽을 뻔하지요. 사실 죽은 거와 마찬가지에요. 죽을 뻔하고 팔려가고 심지어 좋은 이야기해도 지는 옥에 갇히고. 그게 뭐냐? 하나님 뜻입니다. 다른 뜻은 없어요. 한국교회가 수 만 개, 수십 만 개 되더라도 그게 뜻이 아니고 교회가 올라가도 뜻이 아니고 몇 명 모이는 게 뜻이 아니고 뜻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남자를 죽였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어디서 찾아야 되느냐 하면, 어떤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부터 솔솔솔 뽑아내면 돼요. 뽑아내서 창세기 36장도 연결시키고, 창세기 37장과 결시키면 그게 바로 성경 바른 해석입니다.

그럼 이번 시간에 그 예수님의 죽으심과 36장, 37장과 무슨 관계에 있는지 그걸 이제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게 쉽게 하기 위해서 그림으로. 동그라미 세 개입니다. 동그라미 세 개 그리겠습니다. 제일 바깥의 동그라미가 천국입니다. 이 천국이 하나님께서 누굴 죽였다? 답변해 보세요. 한 남자를 죽였지요. 1번 천국이고, 2번 세상이고, 3번이 세상 중에 있는 한 사건, 십자가 사건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계신 분이 어디로 가느냐 하면, 십자가 죽은 곳으로 들어가 버렸단 말이죠.

들어오니까 십자가에서 퍼져나갑니다. 퍼져나가니까 지금 2번 봐요. 2번 세상 사람들은 왜 삽니까? 살려고 살지요. 왜 사느냐 묻지를 마세요. 왜? 살아 있으니까 사는 거예요. 자기 딸이나 아들 보고 니 왜 사느냐고 물으면, 엄마 왜 그럽니까? 살아있으니까 사는 거죠. 이건 제가 보고 있는 게 생물학 철학에 관한 건데 DNA이야기 쭉 나와요. 이게 뭐냐 하면, 생식이에요. 인간은 자꾸 계속 자식을 번성하고 살려고 하는 거예요.

여기 2번 세계, 인간세계는 계속 이유도 없이 목적도 없이 살아 있는 것으로 계속 사는 거예요. 그래서 2번 세계에서는 사는 것은 축복이요, 사는 것은 다행스런 것이요, 사는 것은 땡 잡은 거예요. 그런데 진짜 천국에서는 2번 세계 안에 뭘 집어넣습니까? 3번을 집어넣었다고요. 3번은 뭐냐? 이게 사는 게 아니고 죽음이라니까. 다 살고자 하는데 웬 죽음이 벌어집니까? 이거는 밉상이란 말이죠. 그러면서도 예수님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2번이 아니고, 어디로 간다? 1번으로 천국 가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은 2번을 안 거치고 1번->3번->1번으로 가는 거예요. 그런데 2번에 속한 인간세계는 뭐냐? 2번->1번. 2번에서 살라고, 살라고 애쓰다 돌파해보니까 1번 천국 가 있더라. 계속 사는 걸로 1번 가는 거예요. 이게 인간들의 가짜고, 진짜는 1번->3번->1번입니다. 현재 우리 인간들은 2번에서 1번 바로 올라가는 거예요. 이거 누가 했느냐 하면, 바리새인들이 율법 가지고 한 거에요. 성경 가지고. 이걸 종교라 하지요.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이래서 구원받으려 하고 성경공부하고.

그럼 이 목사, 당신은 그러면 교회 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하나님 뜻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럼 당신은 뭐가 하나님 뜻입니까? 3번입니다. 3번이 뭡니까? 십자가가 뜻입니다. 그럼 헌금 하는 것 하나님 뜻 아닙니까? 뜻 아닙니다. 뭐가 옵니까? 3번입니다. 그럼 봉사하는 건? 봉사하는 것 뜻 아닙니다. 3번입니다.

저는 이 교회 올 때마다 저 합기도 뜯어내버렸으면 좋겠어. 누가 봉사해서. 내가 교인 같으면 뜯어내는데. 목사 할 일 없으니까. 그럼 저 합기도 간판 뜯어내는 게 주의 일입니까? 아닙니다. 저거 뜯어내고 구원 못 받습니다. 왜? 뜯어내서 교회 교인수 좀 많아지면 내가 사니까. 하여튼 무조건 내가 사는 쪽으로 가면 이거는 2번에서 바로 1번 가려고 하는 거예요. 2번에서 3번 갔다가 1번 가야 될 텐데 우리는 3번으로 갈 용기가 없어. 갈 맘도 없고. 우리는 이왕 이렇게 사는 것 바로 2번에서 1번으로 가는 게 우리 목표라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목사 말 듣고, 시키는 대로 하고, 교회 다니고 또 목사 말 안 들으면 저주받는다고 해서 반성한다고 난리고 회개한다고 난리고. 기어이 1번 가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사울이라는 사람이 바울 되기 전다 다 해봤어요. 그 사람은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입니다.

사울이라는 사람의 사고방식이 어떤가, 제가 예를 들게요. 요새 우리 동네 음식쓰레기 하는데 옛날에는 노란 통 커다란 통해서 여러 집에서 한꺼번에 버렸거든요. 이게 법이 바뀌어서 각자 집 앞에 조그마한 쓰레기통을 줘서 토큰을 집어넣었어요. 화, 목, 일 이 삼 일 날 저녁 8시부터 딱 내놓으면 울산은 안 그러지요. 내놓으면 토큰 끄집어내고 그 집 음식만 차가 와서 가져갑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 하면, 쓰레기가 많은 집하고 적은 집하고 똑같은 돈을 내기 때문에 불공평해서 쓰레기 많은 집은 통을 큰 것 사서 토큰 비싼 것 하고, 적은 집은 적은대로 하라고 한 거예요. 토큰 한 개에 사십 만원입니다. 작은 것.

문제는 그렇게 동사무소에서 지침이 왔는데 뭐가 안 왔는냐 하면, 그 쓰레기통을 화, 목, 일 낼 때에 집 앞에 몇 미터 앞에 내느냐 그건 지침이 없는 거예요. 그냥 집 앞에 내놓아라 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삼십 센티 내는 사람, 어떤 사람 일 미터 내는 사람 있지요. 그것 상관없이 가져가잖아요.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러면 안 돼요. 안식일을 지키라 했으면 안식일에 하나님이 안 가르쳐준 것은 뭐로 보충한다? 인간의 종교성과 인간의 지혜를 끄집어내서 그냥 안식일을 지키라만 돼있고 나머지 법은 없으니까 나머지 법은 누가 채우느냐 하면, 인간의 모든 자기 이성을 동원해서 그걸 채우는 겁니다.

쉬운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교회 처음 나온 초자인데 조그마한 성경책을 품어있으니까 그렇게 사업도 잘 되고 일이 잘 풀린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 사람은 성경책을 몸에서 떼질 못해. 항상 안 주머니에 성경책을 집어넣어야 돼. 왜? 이거 집어넣고 난 뒤에 일이 안 풀린 적이 없다는 거예요. 바이어를 만나도 잘 되고, 운전을 해도 안 걸리고 모든 게 잘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일종의 부적이죠. 부적이든 말든 간에 잘 되는데 우야노.

그래서 만약에 그 사람을 우리가 만났을 때 저 성도님, 기독교 복음은 그게 아니거든요. 성경책 쪽지 복음 넣는다고 해서 복음이 아니고, 성도가 받는 복이란 그 복이 아닙니다. 하고 이렇게 세칙을 이야기해주면 그 사람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겠습니까? 나는 누가 뭐래도 성경책 좋습니다. 한다 이 말이죠. 성경책 꼽고 하다가 어느 날 차 박았다. 예를 들어서 차를 박았다. 그럼 그 다음부터 빼버린다고. 성경책 꼽다가 효과가 없으니까 빼버리는 거예요.

이게 우리가 어떤 초자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신앙생활 십년, 이십년 해도 그런 터부시 하는 것, 그런 징크스 같은 것을 누구나 갖고 있습니다. 그걸 아주 세칙화시켜서 목사들은 뭐냐 하면,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갖고 있는 그런 법칙에다 이 법칙을 좀 추가시키면 아마 복을 더 받을 걸요. 하고 이렇게 시범을 보이고 할 때 교인들은 그걸 아주 좋아한다 이 말이죠.

예배드릴 때 열한 시 예배지만 열 시 반에 와서 그 다음부터 그 사람이 복을 받아서 그렇게 잘 됐습니다. 하면 전부다 열시 반에 다 오는 거예요. 기도할 때 온 정성을 다했고, 예배에 정성을 다했더니만 온 가족이 서울대학 가고 했다하면 다 한다 이 말이죠.

그런 세칙 문제, 그런 세칙을 어느 정도로 세칙을 더 세분화시키고 세분화시킨 걸 어떻게 다 지키느냐에 따라서 보너스가 마일리지가 쌓이고 보너스가 높아진다는 것이 누구 사고방식? 사울, 사도바울 되기 전에 사울적 사고방식이었습니다. 이건 뭐냐 하면, 바로 2번에서 어디 간다? 2번에서 1번 가는 거예요. 이게 은연중에 우리한테 있다니까. 복음을 안다고 치면서도 계속 있어요.

2번에서 1번 가는 게 뭐가 나쁘냐 하면, 2번에서 1번 천국 가려고 하면 할수록 3번이 미워져. 십자가가 이게 꼴사나워. 싫어. 이제 나도 많이 먹었다. 많이 들었다. 나보고 그만 하라 이럽니다.

방금 제가 이런 이야기가 한국교회 심각한 문제에요. 은연중에 내가 신이거든요. 남 손해 봐도 괜찮아요. 그러나 나 손해 보면 안 돼. 나 손해 보면 참지를 못해. 참을 수 없어, 내 손해 보는 거. 하나님 믿고 나 손해 보는 것 있을 수 없어요. 오기와 자존심이 보통이 아니에요. 1번으로 가기 싫은 거예요. 1번, 나 안다. 맨 날 안데. 실제는 뭐냐? 2번에서 1번 가기에 자기 나름대로의 법칙, 세칙을 꽉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것을 2번에서 1번 가는 이 노선을 2번에서 3번 쪽으로 가는 이 개입을 바로 하나님의 약속의 능력으로 이걸 드디어 해댑니다. 그러니까 이게 다른 사람은 조졌다 하지만 사실은 이게 뭐냐? 사랑입니다. 그것이 시편 105편에 나오니까 한번 봅시다.

시편 105편 17절,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이게 뭐냐 하면, 19절이 더 중요해요.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1번, 2번, 3번 어느 쪽입니까? 3번이에요. 우리는 십자가고, 야곱 당시는 요셉이었습니다. 요셉이 뭐했다고요? 손에 뭐가 있고? 종으로 팔렸고, 몸은 쇠사슬에 매였고, 그 다음에 발에는 착고에 차였고. 무슨 이런 난리입니까? 무슨 수모가 이런 수모가 다 있어요.

그런데 이게 뭐냐 하면, 이게 3번이에요. 2번에서 1번 가는 게 말씀이 아니고, 3번이 말씀이에요. 그 당시 요셉이 남보다 앞서서 종으로 팔리고 이런 죽음의 직전 수모까지 가고 이렇게 하는 것은 바로 장차오실 우리 구세주가 똑같은 수모를 당하면서 사람에게 밉상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이런 고생과 노고를 아끼지 아니했다 이 말입니다.

이게 바로 시편이 창세기 36장, 37장, 38장, 39장을 해석하는 이 원리가 시편에 이렇게 나와 있네요. 그러니까 거기에 유명한 말씀, 기존 큰 교회 기둥에 써진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 이게 큰 교회 기둥에 써진 이유는 아시겠지요. 목사한테 대들면 저주받는다. 그거 하기 위해서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여기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 했잖아요. 왜냐하면 그들은 몇 번입니까? 3번의 길을 가기 때문에 3번의 길을 가는 사람의 그 뜻을 모르고 그렇게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관심사가 네 자신에 두지 말고, 나 말고 날 위해 고생하신 분에게 관심을 두라 이 말이죠.

하나님 뜻이 뭐라고요? 하나님께서 누굴 죽였다? 한 남자를 죽였어요. 그 남자가 창세기 36장에서 요셉이 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누가? 저와 여러분들이 이 역할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하고 있어요. 목사님, 저 착고 없는데요. 수갑 안 채웠는데요. 전에 음주운전해서 한번 걸렸는가 몰라도 별거 없는데. 전 종으로 안 팔렸는데요.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수모를 당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7절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다같이 읽어봅시다. 시작.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저희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니라” 아하, 이거 보세요. 이 세상 나라가 온통 복음을 미워하는 세상 속에 우리를 복음을 아는 사람들이 머물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언제까지입니까? 기한이 언제가지에요?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말씀대로 고생하는 거예요, 우리가. 마음 고생하는 거예요. 말씀대로.

우리는 이 복음이 없다는 것 때문에 아주 답답해하고 세상 다 더럽다 하지만 성경만 바라보면 우리 주님은 여유만만해요. 어이, 참아라. 다 말씀이 응할 때까지다. 세상 더럽지? 그게 지가 더러워서 더러운 게 아니고 다 말씀에 응하게 함이라.

그림을 다시 그리겠습니다. 여기서 그림 드시면 촛불집회가 나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3번 중심입니다. 3번 중심이 가만있는 것이 아니고 회전을 해요. 획획 돌아버리면 2번도 3번에 의해서 도는데 어떤 식으로 도느냐 하면, 3번이 가만있으면 3번 자체가 십자가 자체가 아무 능력이 없으면 2번은 모두 점잖은 사람이에요. 훌륭한 사람이에요.

특히 목사님들 알아요. 목사님들 보통 노회 가보면 그 많은 장로님과 목사님들이 노회에 오거든요. 집사는 못 옵니다. 사람들 한 교회에서 장로 쯤 되면 그렇게 막 되먹은 사람들 아닙니다. 다 그 지역에서 유지 소리 듣고, 행동이라든지 배운 거라든지 세상에 다 뭔가 여유만만하고 인품이 돼있고, 어데 아무리 교회가 엉망이라도 막 되먹은 사람 장로 뽑겠습니까? 그것도 투표하는데.

아주 성격도 온화하고 사리가 밝고 행동할 때 경솔하지 않고 한 번 생각해서 결정하는 그런 장로도 그렇고 특히 목사들은 그리고 남들이 눈이 있잖아요. 여기 배지 달아놓고 망나니 짓 하겠습니까? 십자가 배지 있는데 그래도 유니폼 입고 함부로 행동하겠습니까? 다 점잖은 사람이에요. 단 노회에 복음이 안 접할 때 다 점잖아요. 다 점잖아요.

그런데 그 노회에 누가 와서 복음적인 발언을 한다든지 우리가 목사가 십자가를 본받아야 되지. 이래 나온다면 그쪽 장로, 목사 입에서 욕이 튀어나옵니다. 그리고 그 목사 매장돼버립니다. 예배당이 성전이 아니고 우리 몸이 성전입니다. 라는 소리만 해도 매장감이에요.

십자가가 움직이면 그 점잖은 사람들이 이게 악마로 본색이 드러냅니다. 이게 촛불집회에요. 하나님 뜻은 십자가에 있는데 이놈의 정의실천사제단이라든지 하여튼 이런 놈들은 뭐냐 하면, 가난한 자들의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부자의 하나님이 아니고 강단의 하나님이 아니고 가난한 자의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그걸 위해서 우리는 선지자 노릇을 하겠다는 겁니다.

이 복음이 있는 곳에는 항상 복음과 상관없는 반대되는 것이 자기 본색을 드러내게 돼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그림을 왜 그리느냐 하면, 바로 우리 자신이 지금 고난 안 받는다. 목사님 아무리 좋은 소리해도 난 밥이나 먹고 살랍니다. 하루 종일 그것밖에 생각 안 합니다. 하더라도 말씀이 복음 아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을 그냥 두지 않아요.

한번 정리해 봅시다. 하나님이 우릴 사랑합니다. 그 사랑이 뭐라고요? 3번이죠. 그 3번이 우릴 움직입니다. 그러면 나는 예수 믿으세요. 라고 지하철에 고함 안 지르는데 다른 사람이 평소에 내 사고방식을 어떻게 봤는지 모르겠는데 뭔가 만만하게 보지 못하는 다른 사고방식이나 관심사가 엉뚱한 세계에요. 1번이에요. 3번이니까 1번 아닙니까? 다른 사람은 밥 먹고 사는 게 전부에요.

3번에 해당되는 사람, 주님의 사랑이 내 속에 작열하는 사람은, 밥 먹고 사는 것보다도 사람이 사는 목적이 있어야 되는데 역시 하나님의 사랑 아니겠어. 평소에 지가 교회봉사도 안 하고 교회에서 농땡이 부리면서도 가끔은 뭐냐 하면, 내가 밥 먹고 사는 것이 전부다 아니라는 것을 행동이나 말씨 가운데 부지중에 남한테 들키게 돼있어요. 지는 안 들키려고 애를 썼지요. 들키면 회에서 쫓겨나니까. 근데 부지중에 드러나게 돼있다니까.

그게 뭐냐? 하나님의 말씀이 와서 그래요. 쉽게 말해서 요셉이에요. 요셉해서 우리가 얻어맞고 수갑차이고 이게 요셉이 아니고 주님께서 요셉되게 하신다니까. 여러분, 요셉 되세요. 구원받습니다. 이게 아니고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세상 사람과 다른데 눈 돌리도록 뭔가 다른 것에 정신 팔도록 그렇게 말씀에 응하도록 조치를 하신다 이 말입니다.

우리는 가만있는데 밥 먹고 사는데 열중하는데 열중하는 그 순간에 툭툭 차고 들어와서 3번이다, 3번. 네 의로움 아니야, 착함 아니야. 3번이야. 너는 돈밖에 모르는 걸 내 알아. 알지만 너는 3번을 알아. 너는 3번을 알아. 네 자신도 알지만 3번을 알아. 3번에서 1번 바로 가는 거예요. 왜냐? 하나님의 사랑이 거기에 십자가에 있으면요. 이 동그라미 세 개 잊지 말아야 돼요.

그런데 창세기 36장에 보면 이 동그라미가 없어요. 3번이 없다니까. 3번이 없으니까 뭐도 없습니까? 1번도 없어요. 그러니까 36장의 에서의 족보는 뭐냐? 하나님은 비록 미워한다, 미워한다 하지만 믿지도 않을 거고. 미워하긴 언놈이 미워해. 믿지도 않을 거고 다만 그 사람 전체가 뭐냐? 살고보자. 오직 살고보자니까 사는 것이 생명이고, 죽으면 뭡니까? 죽음이죠.

그런데 3번을 뭡니까? 죽었다가 부활했기 때문에 죽는 것이 사는 것이고, 사는 것은 죽는 것이다. 이것이 3번을 통해서 1번과 연결돼요. 2번만 있으면 살아보자, 살아보자 이것밖에 없어요. 죽으면 죽지, 혹 떼면 그만이지. 죽는 게 겁나나. 죽음은 폭발이에요. 죽는다는 것은 자아가 산산조각 나는 다이아몬드가 다 부서지는 거예요.

그래서 죽는 게 겁나는 게 아니고, 죽음 속에서 죽음이란 덫에서 뭔가 사람은 싸우는 대상이 있어야 될 텐데 죽음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인간으로 하여금 계속 싸워야 될 대상이 된다는 게 이게 두려움이에요. 무서움이에요.

여러분들이 사람 얼굴에 코 있고 눈 있잖아요. 그런데 만약에 갑자기 황사 마스크 쓰고 모자 써보세요. 놀랍니다. 밋밋하니까. 낯설잖아요. 사람은 죽음에 대해서 낯설기 때문에 항상 죽음을 무서워하게 돼있어요. 죽음이 겁나는 게 아니고, 죽음이 주는 무서움 때문에 겁이 나는 거예요. 그걸 피하기 위해서 계속 도망치듯이 도망쳐 보는 겁니다. 낭떠러지 가면 무섭지요. 그래서 낭떠러지에서 멀리 떨어지잖아요. 죽음을 잊어버리니까.

그러나 죽음을 아무리 잊어도 사람에게 유일한 현실이 있다면 내가 죽는 거다. 내가 죽는 것은 이건 예외도 없이 다 죽습니다. 유일한 현실이에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살아보자, 살아보자 해서 오십 년, 팔십 년 해도 죽는 순간에는 다 무효가 돼요. 살아보려고 애쓰던 것이 무효가 됩니다.

문제는 죽음 자체를 뛰어넘는 자가 선지자인데 죽음에 매달려 간다는 자체가 이게 패배자에요. 죽음을 뛰어넘어야 될 텐데 너는 이 땅에서 이미 죽었고, 너의 생명은 하늘에 있다. 이래 돼야 될 텐데 그게 아니고, 죽음에 질질 끌려가는 식으로 아무리 잘 먹고 잘 살아도 그 사람은 2번밖에 되질 않아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3번, 실제로 죽음이 끝이 아니고, 죽음 다음에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생명을 3번을 줌으로 말미암아 3번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보는 사람들이 누굴 본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해서 1번 가게 하는 겁니다.

그 다음에 3번 봅니까? 안 봅니다.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게 바로 창세기 37장 요셉이야기입니다. 사람은 자기 살고자 자기가 미워하는 것을 죽일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의 본성이죠. 그래서 요셉의 형제들은 자기 본성대로 행동합니다. 그러니까 요셉이 미우니까 죽이려 했고 죽이기 아까우니까 팔아먹었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도 내 본성을 숨길 수 없습니다. 나는 나한테 도움 준 사람은 고맙고, 나한테 피해준 사람은 나의 원수가 돼요.

그러니까 우리는 요셉의 형제와 똑같은 거예요. 똑같은데 우리 힘으로는 이 3번을 안 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능력이 오게 되면 십자가 오게 되면 그 십자가가 값을 한다고. 제 값을 한다고. 우리로 하여금 2번이 위태로운 지경으로 우리를 몰아넣습니다. 그러니까 살고자 하는데 잘 안 살아진다든지 또는 자기의 자존심이 망가지는 경우를 당했을 때는 여기서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실망을 느끼게 하는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죠.

예를 들면 사울이라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려 할 때에 주님이 나타나셔서 그때 주님이 사울보고 뭐라고 한 줄 알아요? 네가 날 죽이려고 그렇게 애쓴다마는 네만 괴로운 짓을 하는구나. 그러니까 사울은 자기가 자기를 스스로 괴롭게 하는 짓이 바로 기껏 내가 하는 짓이라는 게 나를 더 힘들게 하는 짓밖에 안 했다 하는 것을 알게 돼요.

정리해봅시다. 우리가 살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누가 힘듭니까? 내가 힘들어요. 왜냐하면 나의 과거 계획보다 더 잘 살아야 내 욕망이 만족하는데 그게 그 욕망을 만족하려고 애쓰다보니까 점점 더 노력해야 되고 점점 더 힘드니까 계속해서 힘든 거예요. 그리고 그 힘든 게 어디서 멈출지 몰라요. 죽음에서 멈추겠지.

자기가 자기 자신을 믿고 기대를 해보지만 결국은 인간은 그게 헛짓이고 실망밖에 안 된다 이 말이죠. 나 말고 다른데 눈 돌리도록 주께서 그렇게 조치를 하는 겁니다. 나 말고. 교회 와서 봉사한다. 처음에는 즐거워요. 봉사한다고 누가 질투했다. 그 다음 봉사하기 싫어요. 사람들이 교회 와서 헌금 좀 하면 사람들이 기대를 해요. 기대하면 내가 좋습니다. 그 다음부터 많이 했음에도 날 안 알아준다. 그 다음부터 헌금이고 교회도 안 나옵니다. 이게 뭐냐? 자기한테 실망한 거예요.

그래서 이런 말이 있어요. 제일 나쁜 것을 기대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 기대한다는 자체가 바로 죄가 되는 거예요. 뭐든지 기대한다는 게 죄가 됩니다. 내일 뭐하지? 이거 죄입니다. 왜? 실망만 할 뿐이니까. 아예 기대를 안 하면 감사가 나오는데 기대하게 되면 에게. 이거가. 내가 잔뜩 기대했는데. 자기 아들 장가보내면서 우리 아들은 적어도 아들 인물에 이 정도 색시 이렇게 될 것이다. 막상 선 보면 에게 그거가. 기대가 있는 곳에 죄가 있습니다. 기대를 하니까 내 자존심이 상한 거예요.

메시아, 복 주시는 분. 만나보세요. 십자가. 에게 십자가가. 모든 내 기대와 내 희망이 십자가 앞에서 와장창 좌절을 일으킬 때 그분 십자가 만난 것 맞습니다. 십자가 만날 때 그런 경험해야 돼요. 내 기대한 것, 내 소망한 것, 내 은근히 바랐던 것 철저하게 다 망가지고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어데 피 보려고 내가 이 흉측한 것 보려고 예수 믿는 것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런 기대가 다 촛불 초 녹듯이 다 녹아질 때 그때 나도 나라는 절대자도 같이 녹아질 때 그때 커튼이 젖혀지면서 거기에 죽음 안에 생명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거예요. 나 때문에 내 자존심 때문에 생명이 가려진 겁니다.

그래서 저는 말합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죽여야 했어요. 잘했습니다. 요셉을 미워하고, 잘했어요. 저것들이 미워하고 쫓아내고 팔아먹은 요셉이 결국은 마지막에 다시 국무총리로 돌아올 때 그때 그 사람은 요셉 앞에 고개를 못 들고 엎드려야 했지요. 바로 그런 방식 외에, 3번 방식 외에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 준 적이 없습니다.

목회자가 목회하면서 힘든 것, 목회자가 힘든 것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교인이 없어서 힘들고, 설교 어려워서 힘들고, 애 먹여서 아닙니다. 진짜 힘든 것은 내가 목회는 이 정도 돼야 된다. 우리 교회는 이 정도 교회 돼야 되고, 이 정도 헌금 나와야 되고, 나는 이 정도 설교해야 된다고 기대한 것, 이 기대가 나를 힘들게 해요. 범사에 감사한 것이 아니고 이 기대가 나를 힘들게 합니다. 나쁜 걸 기대한 게 아닙니다. 음란비디오 보고, 뭘 하고 그런 걸 기대해서 죄가 아니라 그냥 기대했다는 자체가 죄가 돼요. 3번이 있는데 뭘 기대해요. 자꾸 2번 행세하려고 기대한 거예요.

2번은 에서 족보입니다. 야곱의 족보도 2번 더하기 3번입니다. 그게 차이점이에요. 에서는 2번만 들어있고 야곱의 족보는 2번 더하기 3번 이게 섞여있고. 자, 그게 섞여있는 것이 어떻게 3번이 우세가 되고, 어떻게 2번이 꼴아 박는지 그 자세한 것은 우리가 다음 시간에 합시다. 오늘 피곤해 하시니까 일찍 마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는데 누가 너를 꾀더냐? 라고 외쳤던 사도의 본심이 그 의미가 우리는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나쁜 짓을 해서 죄인이 아니라 뭔가 자꾸 기대하고 딴 것을 소망한다는 자체가 십자가로부터 멀어지는 마음이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뜻이 딴 데 있는 것이 아니고 한 남자가 죽었다는 그 현장이 우리를 살리기 위한 대신 죽으심이란 것을 다시 파악해서 이미 하나님 뜻을 알았사오니 아무런 걱정 없이 여유만만하게 하나님 말씀이 응할 때까지 참고 기다리면서 천국 갈 날 소망할 수 있는 저희들 삼아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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