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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산 7월 11일 강의 고후 8장 12절강의고린도후서

안산 7월 11일 강의 고후 8장 12절

이름 : 우리교회(IP:124.59.85.92)

080711 고후 8장 12절

우리교회(IP:124.♡.85.92)

08-07-12 11:42

관리자(IP:220.♡.41.203)

10-11-12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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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IP:220.♡.41.203)

10-11-12 13:52

안산080711고후8장12절

2010-11-12 01:20:57 녹취 : 박온정

고린도후서8장12절에 보면,『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누가 받는다는 말입니까? 누가 할 마음은 받고 할 마음 없는 것은 안 받는다, 사도바울이 받는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말입니까? 예, 하나님께 그렇게 받는다, 돼있죠? 성경을 본다는 것은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을 보고 있는데 방금 읽었던 대목 같은 경우 보면 사람이 마주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마주보고 있는 느낌.

성경책이 문자로 돼있지만 이게 지금 하나님께서 음성으로 이야기한다고 해보세요. ‘내가 너희들 바칠 마음 있으면 받고 바칠 마음 없으면 안 받을게’ 라고 얘기하신다고 할 때, 그 내용도 내용이지만 계시다는 것 이게 얼마나 섬뜩한 이야기입니까.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하고 우리하고 아는 사이가 되었다는 거...(주여!) 이거는 섬뜩할 정도로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한 마디로 겁내지 마라, 이거죠. ‘겁내지 마라’ 세상의 가정사에, 교회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너희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그 상황을 일부러 일으켰고, 그 상황을 뻔히 알기 때문에 겁내지 마라, 겁내지 말고 성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그걸 분별하면 어떠한 사태가 일어나도 너는 살 수 있다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런 겁니다.

성경의 목적이 우리가 사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사람답게 버틸 수 있느니라 하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지레 겁을 먹거든요. 겁을 먹고 세상이 좀 흔들리면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관계를 알아서 끊으려고 해요. 하나님은 별로 안 중요하고 도움이 안 되고 보탬이 안 된다고 보는 겁니다.

어째서 이런 사태가 일어나는가, 그걸 설명 드리고 오늘 본문 설명해 드릴게요. 우리가 성경을 볼 때에 옛날 신앙인은 그렇지 않았는데 요새 들어와서 좀 심한 거 같아요. 이런 잘못된 것이. 성경을 문자로만 본다고요. 문자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마라’ 하면 안 하면 되고, ‘하라’ 하면 하면 된다. 문자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하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구름이 있는데 먹구름이 몰려온다 합시다. 먹구름이 올 때 머리가 좀 모자라는 사람 같으면 “저기 먹구름 오네? 먹구름 구경 좀 해볼까?” 이렇게 나올 겁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먹구름 오면 뭘 준비 하냐면 우산을 준비하겠죠. 먹구름이 오는데 왜 우산을 왜 준비합니까? 그거는 먹구름이 그냥 구름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뭘 품고 있죠? 뭘 품고 있냐면 소낙비를 품고 있다 말이죠.

성경말씀이라는 게 뭐냐면, 하나님의 세계가 접근하는 거예요. 우리는 자꾸만 문자로만 생각하는 거예요. 사람이 살아가면, 끈끈한 관계성이 있습니다. 애도 있고, 남편도 있고, 친구도 있고 교회도 있고 아는 사람도 있고 시댁도 있고, 관계가 있다 이 말이죠.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걸 자기 힘으로 깨질 못해요. 붙어진 관계를 깨지를 못합니다. 부모자식 간을 어떻게 떼겠습니까. 부부간도 이혼하기 전까지는 못 떼잖아요. 떨어지지를 않지요.

노아 당시에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했는데, 그거 다 누구 좋아라고 하는 겁니까? 자기하고 자기 가족 먹어 살아야 될 것 아닙니까. 자기 식구들 먹고 살아야 될 거 아닙니까. 관계가 끊어지지 않아요. 자기관계를 자기세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방주가 필요합니까? 안 필요하죠. 방주가 왜 필요합니까. 방주가 필요치 않죠.

먹구름이 오기 전에 우산 필요합니까? 안 필요하죠. 먹구름이 몰려오니까 먹구름 오는 걸 대비해서 지금은 안 필요하지만 우산을 준비해야 되듯이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뭘 준비했나, 방주를 준비했다고요. 그런데 그 방주라는 것은 자기 밥 먹고사는 데는 상관있다? 없다? 전혀 상관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 교회가고 말씀 볼 때 뭘 챙깁니까.

이 말씀이 현재 내가 형성하고 있는 내 관계, 내 식구들, 식솔들 생존하는데 이걸 보존하는데 이걸 어려운 말로 자기보존이라 하는데, 자기를 보존하고 자기식구들 먹여 살리려고 하는데 여기에 말씀이 필요하지 싶어가지고 교회 나오고 성경말씀보고 한다고요. 이거 보면 복 받을 줄 알고, 이거 보면 행운이 찾아올 줄 알고. “아이고 착하구나, 대견하다 내가 복 줄게”

현재 자기에게 있는 관계가 더욱 더 돈독해지고 집안이 화목하고 웃음이 넘쳐나고 돈이 넘쳐흐르고 사회 나가서 남이 인정해주는 자기 평소에 기대했던 소망 때문에 성경말씀 보거든요. 그게 제가 말하는 건 오해다 말입니다. 성경말씀은 하나의 먹구름 같아가지고 지금 자기관계에 필요한 성경말씀은 없어요! 없다니까요 그게.

노아가 방주 만들 때 시집가고 장가가고 하는 자들에게는 노아방주가 전혀 소용없듯이 성경은 뭐냐 하면, 성경은 성경 안에 어떤 세계가 있는데 그 세계관은 뭐냐, 내가 만들어내려는 세계관하고 전혀 상관이 없어요. 그게 뭐냐, 여러분 아시다시피 하나님 나라와 관련이 있어요. 이게 참 빤한 이야기인데 하도 사람들이 빤한 이야기를 자기에게 챙기니까 제가 이렇게 다짐을 합니다.

성경이 온다는 것은 성경문자만 온다는 것이 아니라 성경 안에 뭔가 품고 있어요. 아까 먹구름이 뭘 품고 있다? 소낙비! 성경은 뭘 품고 있습니까? 하나님나라! 성경이 품고 있는 것은 하나님나라예요. 무슨 나라가 아니다? 내나라 아니에요. 고린도전서7장에 보면 뭡니까, 아내 있는 자는 없는 자같이 하고, 재산 있는 자는 다 쓰지 못하는 것같이 생각하고 재산을 굴리든지 네 맘대로 하라 이 말입니다.

아내가 있더라도 아내 없는 자같이 하고, 아내 붙든다고 구원받는 게 아니다 이 말이죠.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이상하게 들으면 사람들은 기분 나빠해요. 마치 자식 없다고 지옥 가는 게 아니다, 그 말은 맞는데 가만 들으면 들은 엄마 기분 나쁘죠. 낳은 걸 어쩌란 말입니까, 키워야지. 키우려면 돈 필요하고 돈 필요하면 하나님께 기도해서 복을 따내야 돈을 잘 벌건데 어쩌란 말이냐! 이래 나온다 말이죠.

그런데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말씀 속에는 우리가 미처 경험하지도 못하고 생각지도 못한 낯선 것들이 먹구름이 담고 있는 소낙비처럼 양껏 우리에게 찾아오게 됩니다. 그게 성경에 나오는 게 뭐냐 하면 지혜, 영생, 의, 사랑, 은혜,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신부, 그리스도의 천국의 생명의 면류관, 영원히 하나님께 찬양한 거, 경배한 것 이런 것들이란 말이죠.

그런데 방금 한 찬양한 것, 경배한 것 실제 우리생활에 도움 됩니까? 안 되지요. 안 되지요! 찬양해서 굶어죽을 일 있습니까? 힘도 없어 찬양도 못하면 어쩌라고. 안 되잖아요. 안 된다니까. 제가 지금까지 강의한 것이 뭐냐 하면, 왜 사람들이 성경을 안 보느냐, 그거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왜 성경을 안 보느냐!

처음에는 이 성경의 내용을 모르고, 아! 성경이란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뜻을 보고 실천하면 복 오겠지. 자기 맘대로 생각한 겁니다. 자기 맘대로 생각해가지고 한번 이렇게 성경대로 말씀대로 교회 열심히 나오고 해보니 무슨 효과 있던가요? 없지요. 여러분 없지요? 효과 없는 짓을 왜 합니까? 한의원의 보약도 한 첩 두 첩 먹어보고 효과 있으면 더 지어먹는데 효과 없으면 지어 먹겠습니까 안 지어먹겠습니까. 아니죠. 빠이빠이죠.

그처럼 교회도 다녀봐 가지고 수입도 늘어나고 아이들 공부도 잘하고 애도 튼튼하고, 남편 돈 잘 벌어오면 그건 교회계속 나갈 맛이 나죠. 교회에서 교우들이 찬양합니다. 우리 현제님 이사 가는데도 도와주고 여러 가지 사회정보 어두울 때 많이 조언해주고 전문가들, 의사 있어서 병원 갈 때 할인도 해주고 (딱, 저 다니던 교회네요) 이모저모 도움을 많이 줄 것 같으면 정을 봐서라도 그저 교제의 정을 봐서라도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말씀만 가르치는데 왜 가는데? 갈 이유가 없잖아요!

사도바울의 가르침 고린도후서8장을 펼칩니다. 제가 내용 그대로 한다 합시다. 사도바울의 편지내용 그대로 했다. 제가 목사님들 앞에서 “여러분 고린도후서8장은 이렇습니다. 이거 그대로 전하세요.” 했다 말이죠. 이 강의를 듣고 목사님들이 나가가지고 목회를 고린도후서 그대로 했습니다. 교인 오겠습니까, 안 오겠습니까? 안 오지요? 안 왔을 때, 사람들이 성경에 관한 주님의 탓을 해야 될 텐데 성경대로 이야기한 내 탓으로 돌릴 경향이 많다 이 말이죠.

그건 뭐냐 하면‘목회성공 안 해주는 예수는 나는 재미없다.’ 이거지요. 이거 칠판에 크게 씁니다. 주제가 뭐냐 하면, ‘무엇이 낙이냐’ 이 말이죠. 사도바울은 무엇이 낙이었을까요? 제가 이야기할게요. 하나님이 사람처럼 현재 내 이야기를 듣고 사람에게 이야기 하듯이 하나님께서 얘기할 때 하나님이 뭐라 하냐면「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자는 받았을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리라 (고후8:12)」그런 말씀처럼 주고받고 하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다는 그게 사는 낙이었습니다.

제 말 틀립니까? 틀리다고 생각해요? 사도바울이 사는 낙이 뭐라고? 주님과 함께 교제하는 게 낙이었습니다. 제 말 틀렸습니까? 안 틀렸지요? 틀릴 이유가 없지요. 그래서 제가 목사님들 사도바울처럼 사시기 바랍니다, 했을 때 욕은 내가 얻어먹어요. 이유는 단 한 가지. ‘목회가 안 되더라’입니다. 첨부터 다시 할게요. 사도바울의 낙이 뭐냐 하면, 예수님과 교제하고 말씀 주고받는 게 낙이었습니다. 따라서 ‘목사님들이여! 주님과 교제하는 걸 낙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했는데 울분이 날아옵니다. 그러면 그분들의 낙이 뭘까요? 그분들이 사는 보람이 뭘까요? ‘목회성공’이죠. 목회성공입니다.

그 사람들 거짓말하죠? ‘복음전파’이러죠? 아닙니다. 내가 내 교회에 사라들 많이 모여서 여유만만하게 노후대책이 되는 거예요. 왜 목사부터 말씀을 안 보려고 하는 이유를 알겠죠? 사는 낙이 누구하고는 다르다? 사도바울하고는 달라요. 사도행전 19장 한번 봅시다. 19장15절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제가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예수님은 천하 유명하시니까 제쳐두시고 거기 뒤에 뭐라 했어요? 누구를 안다했어요? 바울을 안다했지요? 이거 섬뜩한 말 아닙니까? 지금 악한 영이 누구를 알아 모시냐 하면, 사도바울을 알아 모셔요. 사도바울이 뭘 어쨌기에 알아 모십니까? 사도바울의 낙이 뭐라 했습니까? 주님과 함께 교제하고 주님 안에 사는 거죠. 사도바울이 주님과 함께 사는 거 맞지? 그지? 보세요 얘도(욱이) 알잖아요.

사도바울이 주님과 함께 산다고요. 그게 사도바울의 즐거움이었고 행복이었고 인생의 기쁨이었습니다. 그런 사도바울이 뭘 썼습니까? 지금 읽어본 고린도후서8장을 썼지요? 그걸 우리가 공부하고 있지요? 그러면 우리 마음가짐을 어떻게 해야 이 성경을 해석할 수가 있을까요? 누구와 동일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돼요? 사도바울과 동일한 마음가짐 될 때 우리가 여기서 은혜 받은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를 누가 알아본다? 마귀가 알아보는 거예요. 마귀가.

지금 우리 사는 것이 주위 사람들에게 나를 알아달라고 난리치면서 살잖아요. 사람들이 알아줘도 소용 없슴다. 누가 알아줘야 되요? 영적인 존재. 악마한테 유명인사가 돼야 되요. 악마한테 찍혀야 돼. 예? 전목사님…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고 전목사도 안다. 이래야 되요. 정경애도 알고…현재 오늘날 교회가 어느 정도냐 하면, 사도바울도 옛날 사람 지나간 전설이고 성경 전체도 전설이고 다 쓰잘데기 없는 일이고,

그저 모여가지고 정보교환하고 외로운 사람 서로 위로해주고 정 없는 사람 정붙여주고 사랑해주고 헌금 받아서 착한일 했다고 죽어서 좋은 나라 가겠다는 그게 교회입니다.(맞아요, 맞아요 일주일에 한번 모이는 동호회예요) 이거(성경) 이거 공부 않습니다. 사람들이 싫어해요. 왜냐, 이걸 해보니까 사람들이 싫어해요. 이 안에 있는 바울을 싫어하고 이 안에 있는 다윗을 싫어하고 이 안에 있는 방주 만드는 노아를 싫어해요.

노아도 싫어하고 다니엘도 싫어하고 예레미야도 싫어하면 마귀가 볼 때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아는데 ‘너 어디서 온 뼈다귀야?’ 이게 어디서 천당 가는 척 하고 있나! 내가 너 아는데? 너 지옥 가는 거 아는데? 예수는 천국 가는 거 맞아. 사도바울도 천국 가는 거 맞는데 너는 어디 가짜가 천당 간다고 우기는 거야? 이 말입니다.

사도바울도 공부 않고 거부하면서 말이죠. 그들이 사도바울의 말을 왜 거절합니까? 이유는 하나밖에 없어요. 자기들 밥 먹고 사는데, 돈 버는데 도움이 된다? 안 된다?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거예요. 성경이 밥 먹고 사는데 도움 안돼요. 돈 생기는 거와 상관이 없음! 보세요. 얼마나 심각한 지경입니까?

사도바울의 입장에서 사도바울은 교인 수 적다고 낙담하고 낙심하고 ‘교인 수 별로 없는데 나 죽어버릴까’ 사도바울이 이런 생각을 가질 여유가 없었어요. 바빴어요. 뭐하기 바빴습니까? 내 밑에 쫄따구 몇 명이냐, 그 숫자 세는데 거기까지 정신이 안 돌아간다니까요 지금. 내 팬이 몇 명이며 내 추종자가 몇 명이냐, 그거 신경쓸 여유가 없다니까요. 여유가.

사도바울이 ‘한 달 수입이 얼마나 되십니까?’ 그걸 살필 마음이 없어요. 사도바울은 ‘죽는 게’ 소원이었어요. 사도바울은 죽는 게 소원이라면 이미 사도바울의 낙은 따로 있습니다. 그게 뭐냐, 예수님과 함께 교제하는 그 재미. 이거는 온 마귀 다 동원해도 심지어 사도에게 가시를 주고 사도를 고난에 빠트리고 굶기도 하고 매 맞기도 하고 강도의 위협과 도적의 위협과 온갖 도전을 해도 사도바울에게서는 무슨 기쁨을 뺏지 못했다? 복음 전하는, 죽는 분이 부활했다고 하는 그 기쁨을 빼앗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서 유명하다? 마귀나라에서 ‘사도바울은 진짜 종 맞다’ 그러니까 너는 어디서 가짜가 와가지고 주의 종 흉내를 내고 있느냐! 마귀가 알아요 마귀가. 이게, 날씨가 더워서 답답한 게 아니에요. 예. 중동산 두바이유가 140달러 돌파해서 답답한 게 아닙니다. 뭐가 답답하냐면 낙이 없어서 답답해요. 낙이 없어서. 사는 낙을 몰라요.

목숨 바쳐도 좋을 만큼 낙이 없어요. 목숨 유지한다고 끙끙거리지 이 목숨마저 아낌없이 바칠 수 있는 그런 거대한 기쁨. 소멸되지 않는 영원한 행복, 그게 없어요. 자 그러면, 오늘 8장9장 이야기가 헌금이야기거든요? 헌금이야기 하기 전에 먼저 볼게 뭐냐면 궁금한 게 사도바울은 어떻게 해서 이런 보람, 이런 큰 복을 받았느냐, 그게 여러분 아시다시피 사도행전에 나오죠? 사도행전에 나온 말씀 가운데서 9장3절을 제가 주목해보려고 해요.

지금 무슨 이야기냐면 사도바울이 이러이러한 예수님과 사귀는 것을 낙으로 삼고 살게 된 그 변화가 어떻게 생겼느냐 그걸 이야기하면서 사도행전9장3절을 주목하는 이유가 어디 있었느냐면,『행9: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빛이 저를 둘러 비춰주죠? 아 여기 칠판 있으면 그림 그리면 참 좋은데 …

여기에 빛이 두루 비쳤습니다. 그 빛은 사도바울의 내면에서 나오는, 정신통일에서 나오는 빛입니까? 외부에서 나오는 빛이에요? 외부에서 나오는 빛이에요. 그 외부에서 비추는 빛에 인하여 사울이 장님이 되고 말았습니다. 실제상황입니다. 실제상황. 소문이 아니고 실제 빛이 비추어서 눈이 멀었잖아요. 그러면 여러분 성경 누가복음에서 빛이 두루 비춰서 놀랐던 경우가 또 있었죠? 누가복음2장에 기억 안 납니까?

아기예수님이 베들레헴에 갔을 때 그때 들판 지경에서 양을 치는 목동이 있었는데 갑자기 누가 나타납니까? 천사가 나타날 때 빛이 두루 비추는지라. 그들이 서로 놀라 엎드릴 때에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놀라지 마라 자손의 자손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느니라 」네가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면 정답이 될 것이다, 하고 하늘에서 찬양소리가 들리지요?

천사의 찬양 가사가 뭡니까. 천사의 찬양 가사가.『하늘에서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의 평화로다 눅2:14』목동이 그 빛 속에서 자기 한 달 수입을 계산하겠습니까? 두루 비추일 때 엎드려 양을 팔면 얼마 나온다는 이윤을 계산하겠습니까? 않겠지요? 내가 5년 뒤에 어디 가서 직장 뭐 잡을까, 생각하겠습니까? 않겠지요. 그 목자들은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이 어디로 달려갔습니까. 베들레헴 구유로 찾아 달려갔지요?

그래서 누굴 만났습니까. 아기예수를 만났지요. 경배했지요. 자, 목동에게 일어났던 상황이 사도행전9장에 와서 누구한테 그대로 일어납니까? 사울이란 사람에게 그대로 일어나지요. 빛이 둘러 비춘다 말입니다. 목동에게는 실제적인 이야기는 없지만 바울은 장님이 되고 말았습니다. 장님이 되어 눈을 못 떠 옆 사람이 손을 잡아줬지요?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냐면 목동이 하나님의 천사와 만나 해야 될 그 기능과 사울이 예수님 만나고 세상에 나가서 해야될 일이 같을까요? 다를까요? 다르죠.

목동은 뭐만 하면 됩니까. 아기예수가 태어났다는 것을 동네 이야기하고 떠들었지요. 목동은 양을 치던 사람이고 사울은 뭐하던 사람이냐면 예수쟁이는 다 잡아 가두고 죽였어요. 자기 손으로 죽인 건 아니라도 죽이라고 넘겨줬잖아요. 일종의 형사반장 짓을 했으니까. 자기 손에서 넘겨준 사람이 많지요. 그들의 죄목이 뭐였습니까.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사울이란 사람이 해야 될 일이 뭐냐, 그들은 예수를 믿는 자를 죽였는데 이유가 뭐냐, 예수를 믿는 것은 헛것이고 소용없는 짓이고 할 필요도 없는 거고 해도 소용없는 거라는 것을 확신하면서 그들을 잡아 죽였던 사울이 그 사울이 이제는 뭐합니까. 그 반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헛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과거 인물도 아니고 지금도 살아계시고 죄 많은 자기를 구원하듯이 죄 많은 사람을 살려내고 있는 분이다. 그것을 증거 하라고 사울에게 빛이 왔지요. -그럼 우리 정경애 씨는 빛이 왔습니까?-

“그러면 목사님, 길을 가다가 하늘에서 외부에서 빛이 와가지고 장님 돼가지고 엎어지고 이런 자만 구원 받습니까?” 성경에 보면 구원받는 방법이 빛이 임하거든 하나님이 비춘지를 알고 엎어지고 자빠져라. 이렇게 되가지고 구원받는 게 아니고 뭐라고 돼있냐 하면,「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했죠. 그런데 주 예수가 어떤 분이냐 하는 것은, 이제부터 잘 들어보세요. 나 바울이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 했죠.

그러면 현재 빛이 우리한테 내 비치지 않았지만 빛을 받은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이 진짜로 믿는다면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믿도록 성령이 역사하도록 일한다는 거예요. 자기 백성에게만 그게 믿어지도록 역사한다는 거예요. 믿어지도록. 그게 외부의 빛이 아니고 내부의 성령의 빛이다 말입니다. 그걸 에베소서 같은 경우에는 ‘빛을 비추는 자여 일어나라 죽은 자여 깨어 일어나라’「네가 깨어있으라」이런 뜻이거든요.

깨어있다는 것이 꿈속에서 예수님을 본 게 깨어있다는 게 아니고, 뭐가 믿어지냐 하며는 사도바울이 전하는 복음 외에 전하면 지옥 간다는 것이 이상하게 믿어지는 거예요. 그걸 반대로 해봐요. 사도바울이 말한 복음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 믿어진다는 겁니다.

자, 그러면 물어볼게요. 사람이 왜 살까요? 사람은 뭣 땜에 살까요? 제가 아까 이야기했습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자기에 속해있는 관계성 때문에 산다했죠? 엄마 같으면 자식 때문에 살고. 그렇잖아요. 처음에 아기 없으면 남편과도 살지만 애기 놓고 나면 자식이 더 비중이 크잖아요. 남편보다 자식은 끊을 수 없으니까. 자식 때문에 살다가 자식 시집장가 보내고 나면 누구 때문에 삽니까?

결국 나 때문에 살아요. 나는 내가 좋아서 사는 거예요. 그럼 낙이 뭡니까. 나는 내가 좋은 게 끝이라. 결국 나는 누굴 믿느냐 하면 마지막으로 나를 믿어요. 그랬던 자가.(빛이 없던 자가)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 했으니까. 나를 자꾸 사수하고 나를 지키려하면 피곤합니다. 왜냐면 내가 되고 싶은 내가 따로 있기 때문에. 그게 나를 힘들게 해요.

내가 되고 싶은 나. 강남의 유명한 디자이너들 역삼동, 압구정 쫙 있잖아요. 거기 안 가보면 그만인데 일단 구경 쓰윽 해보면 자기 동네 양품점 가기 싫은 거예요. 자기 집에 걸린 옷 꼬라지 보니까 사는 게 서글퍼. ‘아이고 이래 사느니 죽는 게 낫지 티 하나 입고 이게 무슨 짓인지’ 내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똑 같은 인간인데 어찌 사나…이래 되잖아요.

그러니까 사람이 자기한테 기대를 많이 걸면요, 기대를 많이 하게 되면 점점 더 자기한테 집착이 가요. 내가 계획한대로 되기 위해서 무모한 짓을 해요. 무리한 짓을 한다고. 정상이 아닌, 그냥 돌아버리죠. 돌아버려. 평소에 퇴근해오는 남편한테 잘해주다가 오후 두시쯤 가만히 생각하니 속에서 부아가 나는 거예요. ‘내가 이래 살라고 시집왔나…퇴근 하거든 한번 보자(붙자ㅋㅋ) 내 속에 불난 것 다 이야기 할 거야.’

그래, 푹 처져가지고 물에 젖은 오징어처럼 푹 처진 남편보고 바람 잡듯이(?) 투다닥 해버렸다 이 말이죠. 그럴 때 남편 하는 말이, ‘오늘 왜이래?’ ‘이래요 저래요 간에 내 마음에 응어리진 게 있다. 이래 사는 거 못살겠다. 그때 그런 경우에 남편이 뭐라 하겠습니까. ‘미안하다, 내가 못나서 그런데 우짜란 말이고 이왕 저질러버렸는데 어쩌자고.…이런 이야기 하죠.

행복하십니까? 그게 행복하지 않죠. 왜 행복하지 않느냐면 사는 보람이 자식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고 내가 기대했던 기대치가 사는 보람이라…바비인형처럼. 기대했던 거...공주처럼. 내가 만든 빛이 따로 있어요. 내가 믿는 라이트 내가 믿는 영광스러움은 따로 있다 말이지요. 그걸 잊을 수가 없어. 그걸 잊을 수가 없으니까 내가 생각했던 그 나의 모습과 현실, 꼬락서니를 비교해보니까 격차가 너무 나니까! 좌절감을 느끼고 우울증까지 걸리죠. ‘차라리 죽는 게 낫지 하면서 차라리 너하고 삼층에서 뛰어내리자,’ 이런 생각 든다고요. 달리는 차에 박아버리고, 보험 들어놓고. 보험 들어놓으면 살아있는 사람 좋은 일시키는 거 아닌가, 혼자 계산하면서...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사도바울이 항상 생각하는 것이 뭐냐면, 우리가 혼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혼자라고 생각하는 사람. 혼자라고 생각하니까 온종일 자기생각, 자기만 쳐다보는 거예요. 그것처럼 가련하고 불쌍한 인간이 또 있느냐 이 말이죠. 성경은, 외부에서 퍼부은 사랑이 있다는 거예요. 사랑! 그 사랑은 끊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심지어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어떤 어려움이라 할지라도 외부에서 준 사랑이 있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그러니까 사도바울에게 ‘사랑이 있다는 증거 대봐라’ 증거 대봐라하니까 사도바울이 하는 말이 십자가가 보이는데 십자가가 어떤 십자가인지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어떤 짓을 해도 내가 사랑해주마! 하는 그 확증이 바로 십자가라는 겁니다.(로마서5:35)

그리스도의 화목제물로 모든 사랑을 쾅! 꽝! 꽝! 끝냈다 이 말입니다. 자, 지금까지 한 내용 정리해봅시다. 지금 사람들은 끈끈한 뭐가 있다? 담넝쿨처럼 깰 수 없는 관계성에 묶여 있어요.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 벌여놓고 손을 못 뗍니다. 심지어 구멍가게 하면서 때려치우고 성경공부 할 수 없어요. 왜? 그것도 하나의 관계라. 이 관계에 의하다보니까 성경말씀을 볼 때에 이 관계를 크게 키우는 것들만 듣고자 하는 거예요. 교회 와서 복 받자는…

그런데 이 관계는 누구 좋아라하는 관계입니까. 주님 좋아라하는 게 아니죠. 누굽니까. 내가 주인공이죠. 나 좋아라고 이 끈끈한 걸 못 떼고 있는 거예요. 그게 뭐라 했습니까. 노아당시에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팔고 할 때에 사람들 관심사가 뭐밖에 없었다? 자기 자신이 즐기는 것. 그때 옆에서 뚝딱 뚝딱 노아라는 할아버지가 뭘 만들고 있었다 말입니다. 뭘 만들었냐, 방주잖아요.

그 방주는 관계성, 뗄 수 없는 나의 관계성 키우는데 필요합니까? 전혀 필요 없지요. 그런데 이 미친 영감아! 왜 그걸 만드느냐 이 말이죠. 노아가 말하길, 나는 하나님께 들었다 이 말이죠. 벌써 노아가 하나님과 관계있지요?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과 뭐했다? 동행했다. 동행... 하나님과 동행했지요? 하나님과 동행한 게 낙이었지요.

그러니까 남이 듣지도 못하는 걸 믿었지요. 남이 알지도 못하는 일을 하고 있지요. 옆사람들 얼마나 미워죽겠습니까. 그게 유다서에 나와요. 유다서에 의하면 노아와 에녹이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게 아니에요.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람들한테 들어먹히지를 않았어요. -꼭 안산 사람들 같애..ㅋ-

전부다 어딜 가느냐 하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지 목숨 연명하는데 온 시간을 다 퍼 넣었어요. 방주라 하는 것은 먹구름은 뭘 퍼 나른다? 소나기 오기 전에 뭘 준비해야 되요? 우산 준비하듯이 방주는 뭐냐, 장차 올 홍수에 대비해서 하나님께서 미리 던져주시는 우산이라. 그리고 노아에게 주어지는 모든 말씀은 바로 그 방주 만들기 위한 말씀이었습니다.

그게 노아로서는 남들이 모르는 노하우였어요. 인생 노하우. 낙이었죠. 보람이었습니다. 자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 8장 9장 겸해서 봅시다. 내용은 별 어려운 거 아니니까. 헌금이야기입니다. 헌금이야기인데 아까 말한 그 원리대로 해봅시다. 여러분 답변해 보세요. 저 혼자 하면 재미없으니까.

자, 사람들은 어디에 묶여있다?「자기 관계성」자, 그러면 사람들은 왜 헌금을 하지요? 자기 묶여있는 관계들, 처자, 자식, 사업체나 교회, 목회 여기에 도움 되라고 헌금 하겠지요? 헌금하면 뭘 받는다? 보너스 받으니까. 헌금해 보너스 받으면 나에게 축복 오게 돼있지 헌금 않는 사람에겐 안 오잖아요. 사람들이 그리 생각하잖아요. 성경은 그게 아닌데!

헌금하는 노림수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지금. 헌금을 하는 이유가 인간은 뭘 못 뗀다? 자기관계성을 못 떼요, 스파이더처럼 빌붙어서. 이게 칡넝쿨이라 떼지를 못해요. 어떻게 자기자식을 버립니까. 못 뗀다고요 이건. 어떻게 자기 하는 사업체를 그만둘 수 있어요. 안되죠. 못 떼니까 이런 것을 위해 헌금을 하잖아요. 헌금이야기가 8장 9장입니다. 헌금 했습니다. 누구 좋아라고? 헌금 한 나 좋아라고!

내가 헌금했는데 복이 다른 사람에게 가면 우린 화나죠. 기도 내가 했는데 응답 저쪽에서 받으면 화나죠. 내가 기도했다 하면 그 효과는 누가 받아야 돼? 무조건 내가 받아야 돼. 헌금 내가 했다. 복은 누가 받아야 돼? 헌금 않은 사람 말고 내가 받아야 돼. 그런 반대급부. 돈 놓고 돈 먹기.ㅋㅋ 그거 없이 무슨 헌금을 합니까. 그거 없이. 미쳤다고 헌금합니까?

그런데 8.9장에서 하는 말이 그거예요. 사도바울이.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기쁘거든 드려라 이 말입니다. 다시 12절 읽어봅시다.『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이 말이 어려워요! 예? 여러분 이 말이 쉽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무척 어려워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이게 지금 말이 됩니까?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나는 겨울에 선풍기 안 튼다. 왜? 겨울이니까! 이게 말 됩니까? 난 여름에 선풍기 튼다. 왜? 여름이니까! 이게 말 돼요 안돼요? 안되잖아요. 왜 라는 말이 필요 없잖아요. 그런데 여기 보세요.「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말 돼요? 안 돼요? 일단 말 안되죠?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다니, 말 하나마나,ㅋㅋ ‘너 내게 헌금 안했나?’ ‘안했습니다.’ ‘그래 안 받을게’ 이게 무슨 말이에요 이게. 예?

이 말은 무슨 말이냐면 헌금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네가 헌금하면서 누가 기쁨 때문에 드린다고 하느냐 이 말입니다. 돈 주고 돈 먹기 하는 게 아니고 이야기하면서 헌금 하라는 얘기예요. 이야기하면서. ‘주님, 제가 헌금 쪼금밖에 없습니다. 이거라도 받으시렵니까?’ 받고 안 받고 가 문제 아니고, 그렇게 이야기를 건넨다는 것. 그게 바로 아까 사도바울이 말하는 ‘사는 보람’ 이게 뭐냐, 교제예요 교제.

헌금할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헌금하는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거예요. ‘주님, 제가 이건 할 마음이 있네요.’ 그냥 돈만 덜렁 건네지 말고 주님께 묻는 식으로 하란 말이지요. ‘주님, 제가 오천 원 밖에 안 되네요.’ 라는 말이라도 건네라 이 말이지요. 그리고 헌금이 중요한 게 아니고 뭐가 중요하니까? 내가 말을 건네는 분이 실제로 부활하셔서 살아 계시다는 것이 나의 최후의 보람이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예...

말을 하면서 헌금하라는 말이에요. 말을 하면서. 그런데 사람들은 헌금하면서 누굴 의식합니까? 주님 의식한 게 아니고, ‘목사님 또 뭐라 할까?’ ‘에이 돈 오천 원짜리 헌금하나?’ 남들을 의식해요 남들을. 남들을 의식해서 사람들이 아예 헌금을 않죠. 이근호 목사님은 헌금 않더라도 구원받는다고 얘기 했으니까. 8,9장에서 돈 액수가 문제가 아니고 지금 네가 누구한테 바치냐? 이 말이죠.

바치는 사람이 진짜 있는지 알고 하는 거냐 이 말입니다. 그게 세상 이기는 보람이고 낙이라는 겁니다. 그래야 마귀도 알아주는 성도다 이 말입니다. 9장6절 봅시다.『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둔다는 이 말은 적게 헌금하면 행운이 조금 오고 많이 하면 많이 온다는 말이 아니고, 적은 자는 헌금 적게 하라는 말 하나님께서 하셨고, 많은 자는 헌금 많이 하라고 하나님께서 하셨다 그 말입니다.

그렇게 헌금한 것이 내가 한 게 아니라 누가 있다? 보이지 않지만 누가 계시다? 주님이 엄연히 계시다는 것을 네가 좀 믿어줘! 이 말입니다. 그게 사는 보람이다 이 말입니다. 헌금 많이 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적게 하든 많이 하던 누가 그렇게 시키더냐, 그걸 잊을 수가 없다! 라는 투로 사시라 이 말이죠. 처음 사도바울이 사울이었을 때 영 마음으로 헌금했던 에수쟁이들 잡아 죽이겠다, 그렇게 잡아 죽이려던 사람이 지금은 반대가 되어서 항상 예수님과 교제하는 그것이 진정한 생명이다 이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이런 생명이 없이, 생명이 있는 사람들은 마치 노아방주는 소낙비 오기 전의 우산과 같은 거예요. 생명이 없으면 오늘밤에라도 만약 재림하시면 다 지옥 갑니다. 그게 바로 기름 준비하는 다섯 처녀와 준비 않는 다섯 처녀 그 이야기예요. 몰라요. 언제 올지 몰라요. 때와 시는 너희가 알지 못 하느니라, 그 대목이 주제예요. 때와 시는 너희가 모른다. 그러면 누가 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이 아시거든요. 때와 시를 주관하시는 분이 계심을 의식하며 사는 이것이 성도의 사는 재미요, 보람이요, 기쁨이요, 남들이 모르는 비밀을 간직한 자라는 거예요. 말씀을 우리가 볼 때 행운을 의식하지 말고, 행운이 문제가 아니고 ‘야, 참 내가 누구 덕으로 살아가는구나!’ 그걸 잊으면 안돼요. 잊으면 안 된다고요. 자, 그다음에 8장7절 봅시다. 7절하기 전에 『14절 :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뭐냐 하면, 헌금 받는 자나 헌금 하는 자나 다 같이 예수님 뜻을 알게 되는 거예요.

아, 예수님은 헌금 액수를 보는 게 아니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을 원하는구나, 그걸 알아라 이 말입니다. 그게 바로 8장 끝에까지 나와요. 그중에 동역자들 소개하면서 이 헌금을 어려운 형제들에게 쓰는 겁니다. 하지만 이건 누가 했다? 사도가 한 게 아니고 주님께서 그렇게 여러분들 마음을 감동 감화 시켰습니다.

주님이 그런 마음을 주셨다는 것, 주님이 있다는 그 보람으로, 즐거움으로 살아야 성도답습니다. 이 말이에요. 자, 조금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9장7절 봅시다.:『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즐겨내신 자를 사랑한다. ’는 말은요, 즐겨내지 않은 자를 미워한다는 말이 아니고, 사랑한 사람은 이렇게 즐겁게 내게 되어 있다 이런 뜻이에요.

항상 모든 마음을 누가 주관하고 있다? 내가 주관한 게 아니고 보이지 않는 예수님이 우리 마음을 주관하고 있습니다.(아멘) 그게 바로 사도바울이 다메섹에서 만났던 그분이에요. 그리고 목자가 양치다가 만난 천사의 나라에 계신 그 분이에요. 12절 읽어봅시다.『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뭐가 넘쳤다? 돈이 넘친 게 아니고 감사가 넘쳤다 감사가.

받는 사람도 감사하고 드리는 사람도 감사하고. 왜? 자기 힘으로 드리는 게 아니고 주께서 살아계셔서 나로 하여금 헌금케 하셨으니 헌금을 통해서 주님이 살아있다는 것을 이렇게 느낀다. 내 주머니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게 아까운 게 아니라, 주님께서 헌금을 즐겁게 하도록 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이 든든합니다. 행복합니다. 내 인생 나 혼자 사는 게 아니었군요. 우리가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우리는 우리 혼자 있는 게 아닙니다.(아멘)

12절:『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복음을 안다는 것은 뭐가 나올 때 복음을 안다는 것입니다. 두 자로. ‘감사’ 감사죠. 헌금을 적게 하나 많이 하나 즐겁게 헌금할 수 있을 정도로 감사가 넘칠 때 그게 복음을 아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라고 하면서 9장을 마감합니다.

그래서 13절, 14절에 보면 『또 저희가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의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를 인하여 너희를 사모하느니라』이거 한 마디 하고 마치겠습니다. 성도는 요, 신앙생활하기 상당히 외로워요. 특히 안산 같은 경우 말도 못하죠. 외롭죠. 그래도 복음을 아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점. 왠지 서로서로에게 감사해야지. 나 혼자 믿는 것이 아니고 같이 믿어주니까 고맙고…그걸 바로 ‘형제애’라고 하는 거예요.

이렇게 보니까 성도라는 것은 서로 쳐다보는 것이 아니고 누굴 쳐다보고? 주님을 통해서 형제를 보는 거예요. 저번 주님께 감사했던데 형제분은 어떻게 돈도 안 되고 행운도 안 찾아오는 예수님을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어찌 믿게 됐습니까? 제가 보니 신기합니다. 그래서 네 교회 내 교회 없어요. 전부 다 누구교회다? 예수님의 교회. 예수님 안에서 한 형제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연보를 하는 거예요. 얼굴도 못 본 사람한테. 연보를 하게 하셨죠. 누가 하게 하셨죠? 예수님이 하게 하셨고, 전 세계에 교회는 하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건 어떤 사람이냐. 사도바울처럼 예수님과 함께 사귀는 것을 인생의 마지막 낙으로 여기는 사람. 그거는 마귀가 뭐라 한다? <마귀가 알아주는 성도> 그것이 바로 주님의 형제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도바울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예수는 장난이고 취미고 오락이고 쉬엄쉬엄 하는 그런 놀이지만, 사도바울에게는 마지막 낙이었습니다. 행복이었습니다. 운명이었습니다. 모든 생명이었습니다. 저희들도 사도바울처럼 예수님이 주신 십자가의 피가 우리의 남아있는 우리 여생이 되고, 마지막 생명이자 운명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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