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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80701a 부산강의 : 조지래드 [신약신학]-바울의 심리학자유게시판요한계시록

20080701a 부산강의 : 조지래드 [신약신학]-바울의 심리학

이름 : 한윤범(IP:59.6.189.226)

20080701a 부산강의 : 조지래드 [신약신학]-바울의 심리학

(강의:이근호 목사)

33과 [바울의 심리학] 심리학 하니까 상당히 거부감이 일어나지요. 제목 자체가 심리학 하니까. 우린 복음을 전해야 되는데 심리학을 알아서 내세울 것인가? 심리학을 증거하라고 우리가 주의 종이 된 건 아니잖아요. 성도가. 다른 번역도 그리 돼있습니까? [인간론] 인간론이 적당한 것 같아요. 심리학보다도.

인간론에 대해서 사실은 복음에서 인간론에 대해서 그렇게 비중을 두고 강조를 하느냐? 그 문제를 조사하기 전에 실제는 사람들이 목사님들이 설교를 할 때 또 성경공부를 하면서 이런 심리학이라든지 인간론을 가지고 복음을 설명하려는 그러한 경향이 많습니다. 납득을 시키려고 설득을 하려고 애쓰고 하는데.

설득 정도가 아니고 기본적인 원리가 개혁주의라든지 이런 원리가 뭐냐 하면, 내 구원은 내가 달성한다. 한번 적어볼게요. ‘내 구원은 내가 달성한다.’ ‘달성한다’ 이걸다른 말로 하면 ‘마무리진다’. 십자가라는 힌트를 준 것은 하나님이지만 십자가부터 마지막에 영화에 이르기까지 그 일은 내가 마무리 지운다. 하는 그러한 성향들이 교인들도 갖고 있고 목사들도 갖고 있어요. 개혁주의 자체가 이걸 부정을 안 하고 있으니까.

어느 정도로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쪽이기 때문에 내 구원은 내가 달성한다할 때 주인공이 누구냐 하면, ‘나’가 주인공이 되겠지요. ‘한다’라는 동사를 이거는 주체도 누가 되겠습니까? ‘내가’죠. 내가 나에게 뭘 가미해서 그래서 내가 원하는 내가 된다. 그거잖아요.

그러면 자기가 이래 주장하면 안 되니까 성경적이 아니라는 하나님의 계시에 위배된다는 그런 공격을 받을 테니까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이 이 주의, 내 구원은 내가 달성한다, 마무리지운다는 이 주의를 보장 받기 위해서는 여기 나하고, 성경 속에 있는 나하고 일치를 시켜야 되겠지요. 그럴 때 자기가 하는 행동은 정당화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쪽에 흔히 하는 이야기는 뭐냐 하면, 몸과 혼과 영에서 몸에서 혼으로, 혼에서 영으로 이것이 업그레이드 하는데 내 마음가짐이 결정적 역할 한다는 거예요. 여기 ‘마음’이 추가되죠. 몸과 혼과 영인데 몸의 거듭남, 혼의 거듭남, 영의 거듭남에서 영이 거듭나야 구원받으니까 여기 이런 일련의 절차를 달성하는데 있어서 마음, 누구 마음? 내 마음이 결정적인 그러한 작용을 하니까 내 마음이 좋은 마음 같으면 이것이 수월하고, 내 마음이 나쁜 마음 같으면 이 작업이 실패로 끝날 공산이 크다. 이렇게 사람들은 생각을 하는 겁니다. 사람의 행동이란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마음가짐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거야 쉽지. 성경에 나와 있는 영적 사람, 사도들이 이야기했던 성도의 마음가짐을 동일하게 일치시키면 그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도 성경에 나오는 영적 생활의 행동도 일치할 것이고. 그러면 내 구원은 내가 달성한다에 나는 성공할 수 있다, 성사시킬 수 있다. 이런 논리에 도달되겠지요.

방금 제가 이야기한 강의를 시작해서 방금까지 이야기한 것, 여기에서 벗어나는 설교 있습니까? 여기서 벗어나는 개혁주의적 강의 들어본 적 있습니까? 뭐, 종말에 대해서 논하고 뭘 논해도 그 밑바닥에는 뭐가 담겨 있느냐 하면, 결국 이거다 말이죠. 종말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시고 구름 타고 오시고 이렇게 할 때 끝나고 난 뒤에 뭐라고 질문해요? 그럼 나는 어떻게 합니까? 꼭 ‘나’가 등장하잖아요. 다른 말로 하면 그럼 내 마음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이래 되잖아요.

그러니까 종말론을 하면서 결국은 강사도 그것을 염두에 고려해서 강의 중에 뭐냐 하면,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이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꽃들을 위하여 마음가짐을 갖추어야 되고, 항상 깨어있어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구름 타고 오실 때 구름 타고 오시는 것은 예수님 몫이고, 그 다음 누구 몫은 여전히 남아 있느냐 하면, 내가 안 깨어있으면 내 구원은 실패로 끝나죠.

그러니까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든 뭘 타고 오시든 간에 요점은 뭐냐? 내 구원받는 그 결정적 역할 하는 건 뭐냐? 내가 깨어 있느냐, 그때 오실 때 주무시느냐? 아니면 깰 때 기름 준비를 갖추고 있느냐, 안 그러면 기름을 준비 못하고 있느냐? 그 문제 아닙니까? 결국 누구 문제에요? 결국 내 문제로 귀결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만 생각하니 [바울 심리학]이란 제목이 더 적당한 것 같아. [인간론] 그러면 하나님이 만든 인간론 되지만 바울 심리학은 그야말로 인간들이 성경을 100독해도 역시 관심사는 뭐냐? 나, 어떤 마음가짐 갖추면 돼요? 이런 물음, 그 물음에 대한 답변. 그 답변을 소비자가 요구하는데 진리 생산자가 거기에 화답을 해야 된다는 그런 취지에 의해서 바울 심리학이라는 이슈가 되는 제목을 들어왔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방금 제가 이야기했듯이 바울심리학이든 어떻든 간에 정말 실감나는 것은 결국 심리학 여기에 모든 초점이 모아지게 되는 것이 인간들의 종교성 같아요. 모든 것이. 앞에서 세례요한이 어떻고, 뒤에서 베드로전서 나오고, 요한계시록 나오더라도 그 한 가운데 있는 이 바울 심리학, 관심을 여기다 두는 것 같습니다.

이걸 쭉 읽어보시면 나오지만 여기 나오는 용어들, 뭐 사르크스라든지, 프뉴마, 네페쉬 여러 가지 상당히 깊이 있게 들리는 용어들, 소마, 몸, 혼, 영 이런 전체적인 것 내용에 대해서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인간을 탐색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생각 갖고 있는지 궁금하니까 바울심리학이란 이런 책장을 통해서 우리는 내용을 다 훑어봐야 되는 겁니다.

여러분 다 읽어보셨겠지만 바울이 말하는 인간론에 있어서 래드가 이걸 쓰면서 뭔가 의식한 게 있습니다. 그건 뭘 의식하느냐 하면, 이원론과 삼원론을 대결하는 그런 투로 이 전체 내용을 썼습니다. 이분설과 삼분설, 전체를 래드는 대결하는데 그 대결하는 이유는 뭐냐 하면, 바로 이분설이든 삼분설이든 조직신학적인 그러한 안목이고, 나 래드는 성경신학자기 때문에 성경이 뭐라고 하는지가 중요하지, 조직신학의 교회의 권세가 교회의 전통이 그동안 뭐라고 강요하느냐? 그 강요에 나는 기죽지 않겠다는 그런 오기 같은 게 살아있어요.

성경신학자들은 기존의 교회사에서 내려온 조직신학이라는 엄청난 파워, 권력에 굴복하지 않겠다. 나는 순수한 성경으로 돌아가서 성경 자체가 뭘 이야기하는지 그것이 성경신학을 하는 사람들이 마지막 남아있는 자존심 같은 거죠. 자존심이라 하는 것은 차이가 나야 자존심 아닙니까? 조직신학하고 똑같으면 자존심 안 생기잖아요. 너희들은 이렇게 하나, 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게 딱 자리 잡을 때 자존심 생기잖아요.

그래서 래드는 단단히 별렀습니다. 조직신학 같은 무식한 학자 한번 당해봐라. 교리만 해서 사람들 겁주던 조직신학자들아 한번 당해봐라. 성경에 정통한 나한테 당해봐라. 라는 식으로 별렀어요. 이분설, 삼분설 다시 말해서 인간을 쪼개서 보는 관점은 성경에는 사도바울에겐 그런 게 없다. 혼과 육, 영이란 용어를 표현했어도 그런 게 없고, 이것은 인간을 전체를 놓고서 전체를 다른 각도에서 보기 때문에 그런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다양성이죠.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다양성을 가지고 마치 그걸 움직이지 않는 아주 고정된 조각된 것 같은 인간을 놓고 거기다가. 하나님은 바람처럼 통풍하듯이 바람이 불듯이 인간을 두고 바람 불 듯 휘몰아 드는데 조직신학자들은 인간 하나를 강하게 꽂아놓고 그걸 내부적으로 탐색하고 분석해서 이걸 억지로 성경의 역동적이고 유동적이고 움직이고 있는 이 성경 용어를 일방적으로 오해해서 적용시켰다. 그런 투로 반박을 하지요.

이런 반박을 하면서 이분설이냐, 삼분설이냐? 삼분설은 오리겐에서 나온 헬라철학이지만 이분설은 바로 우리 어거스틴에 입장한 진짜 복음적이다. 라고 주장해왔다. 그동안 조직신학자들이 교회에서. 이분설은 정당하고 삼분설은 이방종교적이고. 그런 식으로 했는데 지금 래드는 이분설, 삼분설 다 나가라 이 말이죠. 어데 거짓말하고 있노. 이분설, 삼분설 인간을 쪼개본다는 자체가 이거는 성경적이 아니라고 강하게 래드는 반발하고 있는 겁니다.

그럼 반발하고 있으면 래드의 성경신학자에 대해서 조직신학자들이 가만있지 않거든요. 누구는 성경 모르나. 이래서 대들거다 말이죠. 네가 그렇게 하는 근거가 도대체 뭐냐? 단순히 반대를 위한 반대냐, 안 그러면 성경에서 정말 네가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을 분석해서 인간을 부분적으로 쪼개서 영의 부분, 육의 부분, 혼의 부분 그런 게 아예 없다고 네가 주장하는데 성경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는가? 그 근거가 어디냐?

이렇게 할 때 래드는 근거를 구약과 신약의 관계 속에서 이룹니다. 신약의 모든 용어들은 구약의 노선을 벗어난 적이 없다. 구약에서 인간을 어떻게 봤느냐가 그대로 구체화 된 것이 신약이기 때문에 구약에서 뭐라고 봤는가는 그걸 생각 안 하고, 신약에서 자기가 생각했던 들었던 것 하고 매치를 시키려고 억지를 부리면 그건 안 되지. 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래드의 바울 심리학은 제일 먼저 뭐부터 시작하느냐 하면, 구약에서 인간을 어떻게 봤느냐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그렇게 시작하는 이유는 바로 자기의 모든 신약의 그러한 삼분설, 이분설을 처분하고 성경 전체를 사도바울은 인간 전체의 다양한 면, 복음이 전파되고 말씀이 증거된 말씀과 인간이 만나면서 일어나는 모든 관계를 육과 영과 혼으로 이렇게 묘사했다. 라고 래드가 주장하는데 그 근거를 구약에서 찾아야 된다. 그걸 가지고 무슨 사고방식? 이걸 가지고 헬라적 사고방식에 대한 반대로 히브리적 사고방식이라는 거예요.

근데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이거에요. 내 구원은 내가 달성한다. 이러한 비복음적이고 종교적이죠. 종교적인 인간의 구원받고자 하는 자기 욕망, 이것이 히브리적 사고방식으로 완전히 해결날 수 있을까 하는 겁니다. 나는 헬라적 사고방식을 버리고 히브리적 사고방식을 택했다. 따라서 내 마음 속에는 내 구원은 내가 달성한다는 일체 없다. 이것이 완전히 그러한 의혹이 다 해소가 되겠느냐 하는 문젭니다.

그렇다면 제가 래드에 대해서 반대하고 싶은 부분이 무척 많은데 반대하고 싶은 부분이 무척 많더라도 우선 래드가 기존에 조직신학과 반대한 자기주장이 있잖아요. 그걸 전부 충실히 우리가 다 인지하고 충분히 알고 난 뒤에 그리고 난 뒤에 우리가 복음 쪽에서 십자가의 복음적으로 볼 때 래드의 문제점이 뭐냐? 이래야 순서 맞지 싶어요.

그래서 우선 첫 번째 구약에서 인간을 어떻게 봤느냐하는 겁니다. 바울 심리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첫 번째 배경 나오고, 옛날 책으로 나가니까 참고해 주세요. 바울 심리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거기 뭐라고 돼있습니까? 거기도 인간론입니까? (바울의 인간론) 심리학 떼버렸네요.

[인간에 대한 헬라와 유대의 개념 중에서 중요한 요소를 기억하고 있어야 된다. 후세에 그리스 철학에 가장 영향을 끼친 사상가 중에 하나는 플라톤이다.] 플라톤은 이원론 주장한다 했잖아요. 플라톤이 이원론을 주장했는데 중간에 보면 유대인은 뭐하고 다르냐? 그리스 인간관하고는 매우 다르다고 돼있거든요. 페이지 중간에. 유다의 인간과는 매우 다르다.

여기서 여러분 하나의 의문점이 들지 않습니까? 보세요. 유대인이 인간입니까, 인간 아닙니까? 인간이죠. 헬라인은 인간입니까, 인간 아닙니까? 인간이죠. 어떻게 같은 인간에서 서로 상충되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고, 상충되는 다른 것은 뭡니까? 다른 것은 미처 못 나온 것도 나올 수 있다는 말인데 다른 것이 나온다는 말이 아니고, 어떻게 반대가 되는 게 나올 수 있느냐 이 말이에요. 동일하게 공통점이 뭡니까? 인간이죠. 이 인간은 아담의 속성인데.

지금 사도바울은 유대인 편을 드는 것도 아니고, 헬라인 편을 드는 것도 아니잖아요. 어느 편을 듭니까? 어느 편을 드는 게 아니고 하나님 보시기에 인간이 무엇이냐? 여기에 초점이 있잖아요. 그렇다면 헬라적 사고방식, 유대적 사고방식 둘 다 누구한테 공박 당해야 되느냐 하면, 사도바울의 인간론한테 공박을 당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래드의 출발점이 뭐냐 하면, 유대는 옳고, 헬라는 틀렸다 이래 시작한다 말이죠. 약간 수상한 기미가 보이지요.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인간을 어떻게 봤는가? 여기에 육신이라 하는 것. 육신 또는 네페쉬라 돼있어요. 여기 네페쉬와 뭐가 나오느냐 하면, 바사르라 이래 돼있어요. 바사르라 해서 육체를 다루기 위해서 많이 사용되었고, 23번. 네페쉬라는 것은 영혼이라 돼있는데 이것이 플라톤처럼 ‘바사르+네페쉬=인간’ 이거는 구약에 그런 거는 없다 이 말이죠.

바사르는 뭐냐 하면, 무한한 하나님과 구별하는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덧없음. 그러니까 바사르는 몸이다. 이렇게 하지 않고 뭘 앞에 붙여야 된다는 거예요. 뭐냐 하면, ‘연약한 몸’ 또는 하나 더 붙인다면 ‘부서질 그 무엇’, ‘부셔지는 것’. 이건 자꾸 몸이라고 하니까 ‘부셔지는 몸’ 하면 사람들은 부셔지는데 관점이 없고 어디에 치우치느냐 하면, 또 몸에 관심 있으니까 아예 몸이라는 걸 빼버리고 ‘것’으로 해버리면 부셔질 것, 이게 빠사질 것, 바사르.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냐 하면, 네페쉬는 안 빠사지는 것. 전도서에 나오죠. 모든 육체는 빠사져도 신은 도로 하나님께 가지요. 이것은 둘이 결합됐다는 것이 아니고, 인간을 하나님과 견주어볼 때는 빠사져야 되고, 하나님이 창조했다는 의미에서는 절대로 안 빠사지고. 종속된다 이 말입니다.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두 가지를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지 인간의 존재를 둘로 쪼갠 건 아니다 이 말이에요. 이분설이고 삼분설이고 쪼갠 건 아니다 이 말이죠.

여기에 또 한 가지 뭐냐 하면, 루아, 영. 루아는 뭐냐 하면, 바람이죠. 권능이다. 그래서 네페쉬는 뭐고, 루아는 뭐냐? 바람이라 하는 것은 항상 하나님께서 인간을 떠나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 중에 휙휙 감아 도는 거예요.

이번에 유에스 여자 오픈에서 박인비가 32킬로의 강풍 가운데서도 드디어 4타차 선두를 했지요. 골프공 칠 때 뭐가 휙휙 돕니까? 바람이 돌지요. 그러면 다른 선수들은 자기가 예측한 대로 안 가는 거예요. 엉뚱한데 빠지는 거예요. 오초아도 엉뚱한데 빠져서 42등인가 전부다 오바 다 했는데. 박인비는 운이 좋은지 실력이 좋은지 힘이 좋은지는 모르지만 바람을 예측해서 정확하게 언더파를 유지해서 우승을 했다 이 말 아닙니까?

그렇다면 골프공이 인간이라면 그러면 32킬로 골프공은 뭡니까? 루아죠. 그런데 시속 32킬로 돌풍이 할 때 돌풍이 그때 골프 칠 때 말고 태평양에 돌풍 불 때 뉴스 나옵니까? 잘 들어보세요. 태평양 아무도 안 사는 곳 돌풍 부는 것 그게 신문에 나오느냐 말이죠. 안 나오잖아요. 그러면 32킬로 돌풍 불었다는 게 무슨 것을 계기로 해서 32킬로 돌풍 이야기가 기사에 뜹니까? 그건 유에스 오픈 골프장에서 나오잖아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루아라는 것은 인간 없어도 루아에요.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영이시다. 바람이고 기운이다. 그 장소를 누굴 가지고 묘사하느냐 말이죠. 바로 인간을 가지고 묘사한다 이 말이죠. 인간 없는데도 루아에요. 인간 없어도 개, 돼지도 하나님 기운이 있습니다. 해가 뜨고 달뜨는 것도 하나님 기운으로 떠요.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루아라는 하나님께서 바람이고 처음부터 인간에게 그 바람을 집어넣어서 모든 하나님 자신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태평양 한 가운데서 하는 게 아니고 어디서 한다? 인간을 가지고 아담을 가지고 하고, 아담 이후에 자기 택한 백성을 가지고 설명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이라 하는 것은 결국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하실 분이냐를 뭘 통해서 이야기한다? 인간 없이는 표현이 안 된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또는 네가 바람이 임의로 불 때 그걸 모르느냐? 할 때에 육으로 난 건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 할 때 그걸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혼잣말로 이야기했습니까? 누구 보고 이야기했어요? 니고데모 보고 이야기했잖아요. 그 니고데모가 무슨 역할 해야 돼요? 영과 대비되는 육의 위치에 있을 때 영은 영답게 영으로써 드러난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이라 하는 것은 하나의 하나님의 일과 기능을 보여주는 소모품이 되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당신은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 나는 하나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은혜를 잊지 못하겠습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못 알아듣고, 그럼 난 아무것도 안 해도 구원받겠네. 참. 하나님께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은혜가 지가 소유하는 걸로 챙기려 해. 여전히 자기가 내가 내 구원, 이것을 세상에 하나님 영 앞에서도 이걸 고집, 고수하고 있는 겁니다.

참 골치 아프죠. 이렇게 되면. 복음 전하는 목사들이 제일 골치 아픈 게 뭡니까? 복음을 전했는데 이 복음이 자기보다 우위에 있다는 걸 느껴야 될 텐데 복음을 지가 소유하려고 해. 복음에 소유 당해야 되는데. 지가 루아라. 지가 네페쉬고, 지가 바사르고 다 돼버려요. 그러니까 교회에서 목사들도 육과 영과 혼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거예요. 당신은 사랑받기~ 맨 날 당신은 귀한 존재입니다. 그런 식이란 말이죠. 그 소리 안 해도 지금 귀한 줄 아는데 지가 지금 귀하다고 교태부리고 있는데. 아예 복음을 가지고 빠사야 되는데.

그러니까 어떤 일이 있느냐 하면, 바사르하고 네페쉬하고 영하고 이게 인간 밖에서 주님의 기능에서 모순이 없는데 이게 인간 내부에서는 모순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순서를 정해버려요. 목사님, 저는 바사르 됐는데 네페쉬 됐고, 이젠 루아 됐습니다. 이제는 자기의 네페쉬를 이겨버리는 거예요. 십자가는 지났고요 저는 부활 남았습니다. 맨 날 이런 식이라.

내 구원은 내가 달성한다. 자기를 주목하는 것, 마귀의 역사입니다. 제가 주일날 아침에 그런 설교했습니다만 요한계시록 4장에서 24장로들이 있고 네 영들이 있고 보좌 있을 때 어디서 거기서 지 생각합니까? 난 과거에 어느 대학 나왔고, 내가 재수 세 번했고, 교도소 열두 번 왔다갔다한 그게 천국 앞에서 그 생각 왜 해요.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기껏 생각한다는 게 면류관 벗어서 속히 반납하는 것, 그 생각뿐이에요. 나는 내 몸이 더럽나, 그 생각 할 수가 없어요. 그 생각 안 하니까 세상에 어떤 휘발유 값 올라도 무서워 안 하죠. 무서움이 없죠. 자기한테 집착하면 무서움이 찾아오게 돼있습니다. 마귀의 전략은 인간의 아픈 데를 공략하는 게 마귀의 전략입니다.

사실은 인간은 아픈데 있으나마나 지가 신경 쓸 것 없는데 아프기 때문에 아프다고 한 순간 마귀는 와서 아프지? 많이 아프지? 하고 위로 하듯이 찾아오는 거예요. 아파도 그만, 안 아파도 그만. 사실 인간에게는 웃을 일도 없고, 울 일도 없고 그저 감격할 일만 있는데 사람은. 석가모니가 맨 날 생로병사라. 생로병사해서 뭐 할 건데. 태어나서 죽고 아프고 병들고 늙고 그게 뭐 했다고. 그게 전부다 루아인데. 그게 바사르는 빠사져야 돼요. 이게 안 빠사지는 게 이상해.

하나님이 자기 일 하는데 내가 왜 뒤늦게 나와 간섭합니까? 콩 내놔라, 팥 내놔라. 주여, 일 그래 하면 안 됩니다. 지가 뭔데 간섭하고 난리입니까? 삼분설이니, 이분설이니.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떤 다루느냐? 네페쉬로 다루느냐, 루아로 다루느냐, 바사르로 다루느냐? 그게 바로 하나님의 기능과 인간의 만남에서 일어나는 것이 구약에서 말하는 인간론입니다. 만남이에요, 만남.

이번 잠언, 십자가마을 주제도 ‘만남’이에요. 잠언의 주제가 만남입니다. 만남을 통해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육을 설명해주셨어요. 예수님 혼자 산 위에서 육은 육이고, 안 그랬습니다. 이미 육은 육 맞아요. 아무도 없더라도. 하지만 그걸 일러주고 찔러주는 것. 예수님이 오신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인간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그것도 인간이 아니고 자기백성에게. 맨 날 배워도

이러한 구약의 인간론이 기초가 단단해져야 비로소 신약에서 용어 때문에 생기는 오해들이 여기서 일찍 감치 해결해 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교재에 보면 루아는 부분적으로 네페쉬와 일치한다. 어디 속에서 일치할까요? 인간 내부에서 일치하겠지요. 그러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인간 바깥의 루아가 인간 내부에 들어오면 네페쉬가 될 수 있느냐? 네페쉬라고 볼 수 있느냐? 볼 수 있다는 거예요. 볼 수 있지만 인간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다만 차이를 둔다면 루아는 하나님과의 관련 속에서 인간을 가리키는 반에서 네페쉬는 평범한 생활을 영위한다는 점에서]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뭔가 다가오지 않으면 인간이라는 것이 드러나지도 않아요. 여기서 네페쉬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네페쉬라 하는 것은 바로 영혼, 구약에서 말하는 영혼, 구약입니다. 신약 용어가 아닙니다. 헬라어로 했지만 번역했을 뿐입니다. 여기 네페쉬라 하는 것은 바이탈리즘이죠. 그러니까 뭐냐 하면, 인간의 생명력이라 표현해 놨어요. 여기는 번역을 생명력이라 해서 네페쉬는 영혼.

영혼은 뭐냐 하면 육체부분 빼놓고 나머지 부분이 아니고, 인간의 바사르를 쥐고 흔드는 쥐고 살게 하는, 생명력이라 하지 말고 살게 하는, 살게 하는 힘이죠. 그렇다면 구약에서 이 네페쉬, 영혼, 이 개념만 잘 알아서 우리는 뭘 아느냐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요. 욥기에 나오잖아요. 저 말이 당당한 앞발을 휘저으면서 갈기를 휘갈기면서 달리는 저 말을 누가 달리게 하느냐 말입니다. 그게 네페쉬에요. 그런데 말은 하나님께서 네페쉬를 보여주는데 왜 인간은 말과 똑같이 하나님의 주시는 힘으로 살면서 왜 너희들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말이죠.

더 쉽게 해봅시다. 요새 살기 힘들다고 교회 잘 안 나오잖아요. 그죠? 안 나온다고요.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사는 사람이 될 수 있는 대로 자기에게 생명을 주신 생명력, 또 생명이라 하면 오해되니까 자꾸 신약 개념하고 오해하니까 그냥 생명력이라 합시다. 살게 하는 힘을 주신 사람에게 마땅히 경배와 찬양을 드려야 마땅하잖아요. 그것도 시간을 내서 먼 길 와서. 그리고 그 생명을 전하는 교회운영과 그 목사님들의 생계를 책임지면서 헌금을 하면서 해야 그게 마땅한 것 아닙니까? 당연하잖아요. 지금 누구 힘으로 사는데.

자기는 지 차 끌고 아무리 보기 싫어도 주유소를 가야 돼요. 차는. 그렇지 않아요. 이 놈의 인간들은 아주 기본적인 것. 차가 여러분 타이어로 갑니까, 휘발유로 갑니까? 씨에프에선 타이어로 간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은 휘발유로 간다고 하고. 지금 래드는 뭐냐? 휘발유로 간다는 거예요. 이게 히브리적 사고방식이고 하나님의 구약의 뜻이라는 거예요. 휘발유로 간다.

차를 가진 사람은 좋든 싫든 휘발유로 가야 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에 복음 안다 해놓고는 얼굴 석 달에 한 번, 육 개월에 한 번 얼굴 뵈고. 그동안 한번 보세요. 분명히 그 사람 살려줘요. 네페쉬가 있다고. 불신자도 속에 네페쉬 누가 줬어요? 하나님 주신 것 아니에요. 있지만 문제는 구약에서 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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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람 ➜ 자유게시판 20080701a 부산강의 : 조지래드 [신약신학]-바울의 심리학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08-07-07
646 자유게시판 08대구강의07-자본의두얼굴(김동수) [신학] 최고관리자 08-07-05
645 자유게시판 광주강의(08. 6. 27) 1강 녹취록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08-07-04
644 자유게시판 성도의 삶에 대한 빠진 내용(2) 로마서 최고관리자 08-06-30
643 자유게시판 성도의 삶에 대해 빠진 부분의 내용(1) - 최고관리자 08-06-30
642 자유게시판 20080613-b 서울강의녹취 : 에베소서 제 14강 에베소서 최고관리자 08-06-27
641 자유게시판 20080613-a 서울강의녹취 : 에베소서 제 13강 에베소서 최고관리자 08-06-27
640 자유게시판 한국교회에 대해 분노하는 어느 목사님의 설교<가져온 글> 미가 최고관리자 08-06-27
639 자유게시판 책 제본의 실수에 대하여 역대하 최고관리자 08-06-26
638 자유게시판 08대구강의06-주님의전쟁6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08-06-25
637 자유게시판 성도의 삶에 대한 질문과 답변 책이 인쇄가 잘못&#46124;는지.. - 최고관리자 08-06-25
636 자유게시판 아벨의 제사 로마서 최고관리자 08-06-21
635 자유게시판 십자가 마을 여름수련회 교재(잘린 나머지 부분) 잠언 최고관리자 08-06-20
634 자유게시판 십자가 마을 여름 수련회 교재 잠언 최고관리자 08-06-20
633 자유게시판 십자가 마을 여름 수련회 잠언 최고관리자 08-06-19
632 자유게시판 08대구강의05-칸트의"윤리"에대해서 - 최고관리자 08-06-17
631 자유게시판 광주 강의(08. 5. 23) 둘째 시간 녹취록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08-06-16
630 자유게시판 20080509-b 서울강의녹취 : 에베소서 제 12강 에베소서 최고관리자 08-06-13
629 자유게시판 20080509-a 서울강의녹취 : 에베소서 제 11강 에베소서 최고관리자 08-06-13
628 자유게시판 성경 검색 프로그램 창세기 최고관리자 08-06-13
627 자유게시판 20080603b 부산강의 : 조지래드 [신약신학]-칭의와 화해 로마서 최고관리자 08-06-10
626 자유게시판 20080603a 부산강의 : 조지래드 [신약신학]-칭의와 화해 [신학] 최고관리자 08-06-10
625 자유게시판 광주강의(08. 5. 23) 1강 디모데전서 최고관리자 08-06-09
624 자유게시판 20080530b 울산강의-창세기 35장 창세기 최고관리자 08-06-05
623 자유게시판 20080530a 울산강의-창세기 35장 창세기 최고관리자 08-06-05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