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의 제사
아벨의 제사
이름 : James J Lee(IP:71.191.110.57)
안녕하십니까? 목사님
강의를 항상 잘보고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다시 읽다가 내용이 상반된 곳이 있어서 알려드립니다.
읽는 사람들도 혼동이 있을겁니다. 메모를 했지만 어느 강의인지 찾지를 못한 것이 몇군데 있습니다. 찾는대로 알려드리지요.
새 언약 9
☞ 하나님의 선택, 192 페이지 [3. 육을 공격하시는 하나님의 선택]
⊙ 애초부터 육적으로 교제할 수 있는 그런 메시아가 아니었다. (책)
* 왜냐하면, 구약에 보면 육이라고 해놓고 인간의 선택한 육을 비켜 가는 것이다. '에서일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면 야곱으로 빠져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이라고 생각을 해서 이스마엘을 낳았는데, 그러나 이스마엘은 종에서 태어난 철저히 육적인 자녀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난데없이 이삭이 태어나는 것이다.
*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는고 하니, '하나님은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후에는 교제를 하지 않는다' 라는 것이다. 그러면 누구와 상대를 하시는가? 중간매체가 따로 있는 것이다.
* 가인의 제사도, 아벨의 제사도 받지 아니하시고, 다만 아벨의 제물만을 받는데, 이 제물이 보여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아벨의 것을 받으시면 아벨이 죽지 않고 메시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벨이 아니라 제물에 합당한 모습으로 오시는 그리스도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다.
(히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새 언약 10
☞ 하나님의 선택, 192 페이지
⊙ 죄악이 인간 세계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인간은 선과 악의 대결 구조에 예속되었다. 하나님이 처음으로 인간의 선택을 관찰한 것도 창세기 4장에 나오는 가인에게서 이다. (책)
(창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 죄와 은혜 - 그런데 가인의 경우는 반대인 것이다. 가인 속에는 죄가 있는 것이다. 롬 7장에서, 바울은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고 내 속에 거하는 죄가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죄가 예수 믿고 난 뒤에 없어졌는가? 죄가 없어지면 율법이 필요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를 믿어도 죄가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죄가 우리 속에 들어온 은혜의 왕 노릇과 대결이 항상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약 우리 속에 죄가 없다고 한다면 성령이 오실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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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예수 안에 있는 사도바울은 완전한가? 아니다. 결코 아닌 것이다. 사도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했고, 또한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했던 것이다. 결국 우리의 몸은 죽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사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 새 육체, 새 장막을 주님 부활 때에 얻게 되는 것이다.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후 4:10)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 그래서 가인 속에 죄가 있고 죄가 가인을 지배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대로 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가인의 후손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아벨은 죽었지만 아벨이 영생을 얻는 것은, 아벨의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아 주셨기 때문인 것이다.
이근호(IP:117.♡.138.43)
08-06-21 14:03
참 어려운 수고를 해주셔서 저자 입장에서 감사합니다. 범주의 팽창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끄집어낼 수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무엇과 무엇을 비교하느냐 하는 것에 따라 범주가 규명됩니다. 첫번째, 하나님께서 제사를 가지고 인간과 거래하시는가? 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나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고 제물을 받으십니다. 이것은 인간의 종교성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거절하면서도 그 안에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약속을 삽입시키는 방식을 사용하시는 겁니다.
두번째 경우, 하나님과 인간의 비교가 아니라 비약속의 자손과 약속의 자손과의 비교입니다. 이 경우에, 먼저 번에 이미 독자들은 아벨의 제사 안에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 있음을 익히 알기에 편하게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받습니다'라는 말을 할 수가 있는 겁니다. 저자가 무슨 의도로 '아벨의 제사를 받는다'는 것을 먼저번 글에서 이미 알고 있음을 전제로 한 문장입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의 범주가 발전적이면서도 동일한 규모는 아닌 것입니다. 하여튼 앞으로 그런 점 있으면 계속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James J Lee(IP:71.♡.141.154)
08-06-21 17:43
답변 감사합니다.
책이 없이 강의 녹취록만 보려니까 전체적인 것을 파악하기가 힘드는군요.
내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요. 문장 한곳만 잘라서 설명이된 것 같군요.
목사님의 답변으로 그림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