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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80530b 울산강의-창세기 35장자유게시판창세기

20080530b 울산강의-창세기 35장

이름 : 한윤범(IP:59.6.189.254)

20080530b 울산강의-창세기 35장

(강의:이근호 목사)

제단이야기 먼저 해봅시다. 천천히 볼게요. 제단 위에 누가 죽느냐? 장차 메시아가 여기 죽습니다. 물론 이게 이스라엘이 되면, 이스라엘이 돼야 뭐가 오느냐? 모세율법이 와요. 모세율법 속에 뭐가 들어옵니까? 제사법이 들어가요. 이게 지금 오늘 본문에서는 뭐냐? ‘허리’라는 걸로 다 뭉쳐놨다고. 미드필드, 허리.

지금 내 허리부분은 뭐가 있는지 자기가 허리인 줄 몰라요. 허리는 자기가 몸통인 줄 아는데 나중에 허리인 줄 알 때는 뭘 아느냐 하면, 아, 내 위에 머리 있고 내 밑에 발 있구나. 이걸 알 때는 허리를 알지만 자기가 허리인 줄 모르는 사람은 지가 혼자 까불 때는 내가 왜 허리야. 내가 몸통이고 내가 몸통이지 이래 한다 말이죠.

허리라 말을 했을 때는 이건 뭐냐? 너는 전체가 아니고 일부란 뜻이에요. 그리고 허리 특징이 뭐냐? 장차올 모든 정보가 함축된 것, 주름이 져서 쟁여 있는 딱 눌려 있는 거예요. 눌려 있는 게 펴면 거기에 온갖 장래의 시간과 공간이 와르르 쏟아져요. 그런데 이게 누적돼있다 말이죠.

누적돼있는 것이 이스라엘이 될 때 이스라엘이 돼야 율법이 주어지고, 이거 설명하기 어려워요. 율법은 항상 국가적인 개념이 있을 때만 주어집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율법이 없어요. 그때는 법이 있어요. 그 법은 뭐냐? 쟁여져 있는 잠복돼있는 법이죠. 율법이, 참 이거 어려운데.

모세가 뭘 받았습니까? 십계명, 율법을 받았지요. 그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율법 없었습니까? 율례가 있었지요. 제단 쌓아라, 그게 율례에요. 그게 뭐냐? 여기에 뭉쳐져 있다니까. 정보가 함축돼있어요. 이걸 펴면 뭐가 돼요? 펴면 율법이 돼버린다고. 왜? 율법은 국가적인 체제가 되지 않으면 율법이 주어지질 않습니다. 그건 조금 있다 설명하고요.

이스라엘이 되게 되면 이스라엘 율법이 오게 되면, 여기에 뭐가 있느냐? 제사법. 제사법은 무슨 법? 제단. 이 제사법에 누가 올라가느냐 하면, 하나님이 올라간다 하니까 번쩍번쩍 천사가 올라가는 게 아니고, 여기는 죄 있는 모습, 죄 있는 모습이니까 어린양이죠. 어린양이 죽잖아요. 어린양이 왜 올라갑니까? 흠 없는 어린양이 올라가는 이유는 죄 때문에 올라가요. 그렇다면 제단을 쌓아라, 이 말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뭐로 바꿔야 돼요? 이스라엘로 바꾸려면 그냥 바꿔지는 것이 아니고, 죄 문제가 해결이 돼야 바꿔지는 겁니다.

목사님, 죄 문제 해결은 용서하면 안 됩니까? 죄 문제 해결이 그냥 용서하면 될 문제가 아니에요. 그건 우리 인간들 편의상 생각이고. 치열한 죄냐, 아니냐 그 치열한 다툼이 벌어져야 돼요. 그 다툼의 역사가 이스라엘의 이천년 역사입니다. 어린양이 실체가 되기 위해서 어린양이 짊어졌던 함축된 죄가 어떤 죄냐가 폭로가 돼야 그래야 예수님의 십자가 피가 어린양을 대신한다는 것을 아는 겁니다.

그 죄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하나님 믿는 것, 이것도 죄가 돼요. 하나님 믿는 게 왜 죄인 줄 알아요? 자기가 하나님 믿을 자격이 못 되는 걸 모르고. 그리고 이스라엘 잘 되기, 기도하기, 금식하기 전부다 죄가 되는 겁니다. 성전에서 제사하기 이게 왜 죄가 되느냐 하면,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걸 다 해보거든요. 여호와 이름으로 전쟁하는 것 전부다 죄가 돼요. 왜냐하면 다 해보는데 다 해봐도 다 뭐가 돼요? 실패죠. 이거하기 위해서 뭐가 등장했는가? 줄줄이 뭐가 와야 돼요? 왕이 등장해야 되죠.

정리합시다. 제단에 올라갈 메시아가 줄줄이 왕 중에서 진짜 어느 왕이 그 제단에 올라갈만한 왕이냐? 그걸 이야기하기 위해서 줄줄이 왕들이 나타나서 줄줄이 왕들이 무슨 짓을 하느냐 하면, 이거는 죄 아니겠지, 이러면 죄 아니겠지, 이러면 영광되겠지. 모든 종교적인 율법을 지키는 모든 실험을 다 해보는 거예요. 줄줄이. 다 해봤는데 그게 전부다 뭐로 등장한다? 그걸 도리어 하나님의 원수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그런 행위로 등장했고.

그 열왕, 줄줄이 왕 끝에, 왕 끝에 진짜 최후의 왕, 원래 킹 오브 킹 오브 킹이라해요. 왕 중 왕 중 왕이라 해야 되는데 보통 그걸 줄여서 왕 중 왕이다. 왕 중의 왕이 누구냐? 볼품없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십니다. 다 해봤지. 너희 해보니 되든가? 어디 성전도 해보고, 십일조도 해보고, 제사장제도도 해보고, 안식일 지켜보고 다 해봤지? 되데? 안 됩니다. 안 되잖아요. 이유가 뭔 줄 알아요? 이유가? 간단합니다. 예수님이 안 했기 때문에 안 되게 돼있어요. 이유는 간단해요. 네가 내가 아니거든. 멋진 이유 아닙니까?

인간은 의인이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에요. 야곱이 와서 제단을 세우고 이 모든 짓거리가 무슨 짓거리냐 하면, 니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니는 아담에 속한 죄인이다. 결국은 복음이란 뭐냐 하면, 예수님만 모시기, 예수님만 전부 이게 복음이에요. 예수 믿고 구원받기 이건 아니에요. 예수님이 전부인 줄 아는 사람만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이 주신 믿음과 소망과 사랑 덕분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알아서 주님이 전부죠. 구원받고 싶어 환장해서 구원받는 게 아니에요. 그런 것은 이미 누가 했습니까? 줄줄이 나왔던 열한 해봤어요. 다 해봤다고.

그러니까 야곱이 세겜에서 벧엘 내려갈 때 벧엘을 뭐라 했습니까? 아까 잊어버렸지요. 소용돌이치는 뭐다? 공간적인 하나의 장소. 하나의 최후로 남아있는 오직 하나의 진리죠. 나는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다. 그 하나의 진리를 앞당겨 보여주기 위해서 야곱으로 하여금 벧엘을 떠나서 벧엘로 되돌아오는 회오리바람이 치게 하는데 그 벧엘로 가서 뭘 합니까? 제단을 쌓지요.

제단을 쌓는 그 당사자가 허리에서 뭐가 나온다? 이름이 바뀌면서 뭐가 나와요? 이스라엘로 바뀌면 줄줄이 뭐가 나와요? 숱한 왕들이 나오는데 왕들 한 짓거리가 뭡니까?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의로움과 잘남,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종교적인 거룩한 것 다 한번씩 해보게 합니다. 그런데 그 왕들이 누굴 죽입니까? 선지자를 죽이는 하나님의 원수로 자기의 본색을 드러내지요.

그걸 모르고 본문을 보면 뭐만 생각나느냐 하면, 야곱 좋겠다. 이름 바꿔서 지 구원받고. 난 언제 이름 바꿔주나. 하나님 저 이름 언제 바꿔줍니까? 이근호 이름 싫습니다. 이름 바꿔주소. 지 구원만 생각하는데. 야곱의 이름이 바뀌는 것은 야곱을 위함이 아니고, 야곱이 문제가 아니고, 야곱은 뒷전이고 뭐가? 사명. 장차오실 메시아의 사명이 하나의 야곱까지 스파이더맨이 되죠. 쫘아악.

공중에서 스파이던맨에서 뭐가 나오지요? 중요한 문제입니다. 거미줄. 거미줄 나오는데 이 거미줄에 먼저 닿은 사람이 누구다? 야곱이고 아브라함이고 이삭이고 노아다 이 말이죠. 그 거미줄 들여다본 것이 히브리서 11장, 노아는 뭘 해서? 방주를 통해서. 아브라함은 뭘 해서? 아브라함은 자식을 바침으로. 모세는 어떻게? 애굽 공주의 아들이지만 그걸 포기하고 고난 받기를. 또 포로 잡혀가서 뭘 했습니까? 바벨론 포로 잡혀가서는 톱으로 켜는 것과 돌에 맞는 것과 광야에 유리하는 것.

이게 전부다 스파이더 맨에서 나오는 뭡니까? 하나의 거미줄. 스파이던맨이 누굽니까? 예수님. 예수님이라는 거미줄이. 거미줄로 묶이고. 하나의 거미줄에 의해서 전부다 꽁꽁 묶긴 거예요. 스파이더맨은 자기가 고함치고. 조금 더 참아. 나도 다했어. 유격훈련 다 받았어. 조금 더 참아. 나중에 오게 되면 나중에 죽게 되면 박수 쳐주고. 잘했다. 아벨을 무슨 일 했습니까? 제사 드리고 형한테 맞아 죽고. 잘했어, 잘했어. 잘 맞아 죽었어.

창세기 35장에서 시간과 공간과 인격체 이 세 개가 모여서 장차오실 메시아와 연결되는 연결고리가 어떤 식으로 잠재돼있는 쌓여있는 응축돼있는 게 들어있는가를 미리 보여주는 겁니다. 목사님, 질문하는데 야곱은 알았느냐? 야곱은 몰라요. 야곱은 아는 범위에 항상 계시를 준 범위 안에서만 야곱은 알아요.

우리는 그 스파이던맨에 나오는 거미줄이 야곱에게 준 계시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유사하게 닮았느냐를 추적하면 되거든요. 그게 뭐냐? 그게 그 뒤에 나옵니다. 라헬이 죽습니다. 그 대목이 나와요. 오늘 본문 몇 절입니까? 16절. 허리 이야기 한번 더하고 가겠습니다. 라헬이야기 좀 있다 하고요.

히브리서 7장 봅시다. 히브리서 7장 10절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 됐습니다. 거기 허리 나오지요. 율법을 설명하는데 허리를 빼버리면 율법의 원천이 설명이 안 됩니다. 아브라함의 허리통에 누가 들어있었다? 레위가 들어있어요. 근데 아브라함 때 레위 살았습니까, 안 살았습니까? 태어나지 않았어요. 아브라함아 알았어요, 몰랐어요? 아브라함 몰랐어요.

지금 아브라함이 알았느냐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어떻게 다루느냐 중요하거든요. 아브람이란 사람을 아브라함 만들 때에 근본적으로 뭐냐 하면, 이거에요. 자선입니다. 유대교는 자선이라 하는데 한 마디로 말해서 한 자로 뭐라 합니까? 뭐예요? 항상 하나님의 의라 하는 것은 자선을 통해서 의가 주어진다가 아니고, 하나님의 자선, 그냥 베풀어주는 게 의에요. 참 이거 중요한 개념입니다. 츠데카 개념인데.

의를 베푸는 게 아니고 의를 자선하는 게 아니고, 자선하심 자체가 적선하심 자체가 뭐다? 하나님의 의다 이 말이죠. 할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적선을 받아서 그 관계를 뭐다? 의.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스파이더맨에서 뭐 나왔다? 거미줄 나갔다. 이게 뭐다? 그 관계성을 가지고 의라 해요. 봐라 거미줄 나한테 있잖아. 거미줄이에요. 하나님의 거미줄, 자선인데.

문제는 아브라함도 몰랐는데 아브라함의 허리통 안에 뭐가 들어있다? 레위 지파가 있다는 이야기를 이 히브리서, 신약성경이 이야기한다 말이죠. 이게 아브라함도 몰랐던 거죠. 알았는지 몰랐는지 나중엔 알겠지만. 아마 아브라함은 지금 쯤 알았을 거예요.

그렇다면 레위인들에게 뭐가 주어졌습니까? 레위인이란 자체가 율법 아닙니까? 율법이 이들에게 주어졌잖아요. 레위인들이 뭐 하느냐 하면, 제사와 관련되니까. 그러면 율법이란 말이 나오니까 율법과 관련돼있어요. 그럼 아브라함 안에 뭐가 있다? 율법이 있다는 말은 율법의 원천이 뭐다? 율법의 원천은 레위인들이 연구해서 될 문제가 아니고 허리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어디에서? 머리에서 또 다른 머리, 아브라함에게 축복했던 그 머리, 그게 누굽니까? 아브라함을 축복한 사람이 누구지요? 멜기세덱.

멜기세덱의 특징이 뭐냐 하면,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뭐와 같다? 하나님의 아들 같이 영원히 존속하잖아요. 그러면 영원히 존속하신 분이 자선, 의를 베풀어줬을 때에 이 말은 뭐냐? 영원히 존속하는 이 속성인데 이 성품을 공짜로 누구에게? 아브라함에게 내려준 거예요. 아브라함은 엄매, 신나게. 자기한테 준 걸로 오해한 거예요. 고맙습니데이. 물론 보내줬어요. 나는 이제 의인이다. 자기한테 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할 때는 아브라함에게 준 것이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준 거예요.

그 자손으로 내려가는 중간과정에 누가 있다? 레위인들이 있었던 겁니다. 머리가 아브라함이라면 머리통이, 허리가 레위고, 발밑에 뭐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계시고. 그게 갈라디아서 3장에 나오지요. 근데 아브라함 자손이 몇 명입니까? 거기에? 달랑 한 명이에요. 그럼 다른 사람은 사람 취급을 한다, 안 한다? 아까 했잖아요. 사람 취급 안 한다고.

야곱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야곱에게 스파이던맨, 거미줄이 중요한 거지 야곱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야곱이 구원받았다면 야곱에게 뭐가? 하나님의 자선, 의죠. 그럼 야곱이 받았던 하나님의 의는 어디서 온 겁니까? 야곱이 기도해서 얻은 겁니까, 어디서 온 겁니까? 머리가 아브라함이라면 갈빗대 정도 아니겠어요. 그럼 허리통은 뭡니까? 야곱의 아들, 레위가 되죠.

이게 바로 율법이란 것은 결국 율법은 지키라고 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거저 주신 것이 이처럼 어떤 덕분이 네가 거저 왔는지 아느냐? 그거는 율법은 내가 이거 지키면 복 받는다가 아니라 허리 말고 허리 밑에 발밑에 누가 밟히느냐 보자 말이죠. 그럼 율법대로 사셨다가 죽으신 분이 누굽니까? 예수님 아닙니까? 그럼 예수님의 희생, 피가 거꾸로 올라가서 레위인도 살리고 누구도 살리고? 아브라함도 살리고. 그래서 아브라함과 몸통까지 전부다 이걸 가지고 한 몸, 그리스도의 몸이 돼요. 엄청난 거예요. 감당도 못할 엄청나게 돼버렸어요.

성경은 지키라고 준 게 아니고, 준 거 잘 지키느냐? 공짜로 준 거 잘 지키느냐 이 말입니다. 우리에게 받은 게 뭐라 했습니까? 아비도 없고 영원한 생명. 영원한 생명이 나오죠. 히브리서 몇 장에 나옵니까? 여기 있네요. 3절에 나오지요. 생명의 뭐랍니까? 생명의 뭐가 없다? 히브리서 7장 3절에 생명의 끝이 없다.

처음에 인간이 에덴동산에 쫓겨났잖아요. 쫓겨났으면 끝난 이야기입니다. 쫓겨났으면 이제는 더 이상 에덴동산이고 탐내고 욕심내면 안 돼요. 어디 욕심을 내. 그래서 아담이 선악과 따먹고 실수했다 싶었던 모양이라. 생명나무 욕심내니까 생명나무 못 따먹도록 쫓아내버렸어요. 그러니까 이건 욕심낸다고 따먹힐 생명나무가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누굴 구원하는가? 그것은 누구 소관입니까? 하나님의 긍휼하신 자선이죠. 하나님의 자선을 누구한테 주느냐 거기에 따라서 달린 거죠. 여권 있다고 미국 가는 게 아니고 뭘 받아야 돼요? 비자를 받아야 돼요. 비자를 누가 주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 자선에 관한 문제다 말이죠. 그럼 우리가 의인됐다는 말은 우리 여권에 뭐가 찍혔다? 비자가 찍혔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선이 찍혔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자선이 오기까지 우리가 한 게 뭐 있습니까? 없지요. 그냥 한 게 없다 하지 말고 이렇게 이야기 하자. 한 게 없다 하지 말고 우리는 다 양 같아서 제 갈 길로 갔거늘 우리 대신 누가 얻어맞았다. 이런 이야기하자 이 말이죠. 나 한 것도 없이 얻어맞았다 하면 지 자랑밖에 안된다고요. 지 자랑밖에 안 되니까 그래 이야기하지 말고, 나 아무것도 한 것도 없이 구원받았다 하지 말고, 내 대신 그분이 채찍에 맞았고, 내 대신 그분이 욕을 당했다고 이야기해줘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단 말이죠.

나 공짜로 먹었거든. 나 어느 냉면집에 가니 공짜로 주더라. 아, 맛있데이. 이래 나오면 안 되고. 나중에 보니까 그 공짜가 공짜가 아니더라. 값을 치루고 준 거더라. 무슨 값이고? 세상에 피 값을 줬다. 그런 얘기를 해줘야 그게 사명이다 말이죠. 그걸 야곱은 모르지요. 아직까지 그걸 모른단 말이죠. 모르지만 자기 식구 가운데 하나의 사건이 터져요.

그 식구가 누굽니까? 그렇게 사랑했던 아내가 죽습니다. 아내가 죽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딱 두 가지 있어요. 하나는 생식이고, 하나는 죽는 거예요. 그 외에는 사람은 아무것도 못합니다. 성경에서 인정하는 것은 두 가지밖에 없어요. 새끼 낳아 사는 것하고 죽는 것하고. 그 두 가지 외에 아무것도 하나님 인정하지 않습니다. 뭐 문명을 세운다, 뭘 한다, 성전을 세운다 그거 다 부셔집니다. 소용없습니다.

사람이 생식을 해야 될 이유가 라헬이 애 낳으면서 너무 슬퍼했는데 왜냐하면 생식을 하는 이유가 자기가 자식을 낳은 게 아니고 죽음을 낳은 거예요. 죽을 자식을 낳은 겁니다. 사람이 제가 아까 이야기했지만 사람이 성경을 볼 때 사람이 제일 마음 편하게 사는 게 뭐냐? 나는 이미 죽은 놈이다. 죽었다는 보너스가 즐겁다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보든지 세상을 살게 되면 그렇게 편해요. 나는 죽은 자다.

예를 들면 사모님이 앞에 가는데 나는 사모님 모르고 생면부지의 사람이라 생각하고 툭 받쳤어요. 받쳤을 때 아저씨가 어디 남 치며 가느냐? 이래 나올 때 우리가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번, 시비를 건다. 이번, 무시하고 그냥 가버린다. 삼번, 사과한다. 몇 번입니까?

뭐가 지혜냐 하면, 성경대로 하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인정한 게 뭡니까? 생식이고 죽음 아닙니까? 두 가지는 사실 죽음으로 합쳐지니까 죽음 하나밖에 없잖아요. 그러면 사모님은 오십 년 후에 어디 가 있겠어요? 죽어버렸겠지요. 그러면 나도 오십 년 후에 어디 가 있습니까? 죽었지요. 죽은 두 먼지가 만난 거예요. 그럼 어이 하나? 미안하다 하면 돼요. 그게 지혜라니까. 자기는 살고 상대방은 죽었다고 시비, 한번 갈궈 볼까 나오는 거예요.

모든 인간이 지가 죽었다고 생각하면 유령이라 생각한다면 문제 될 게 없다니까요. 기름값이 올라가도 문제될 거 없고, 문제될 게 없어요. 살다 죽으면 그만이니까. 이걸 또 자식한테 하지 마. 부모가 무책임하다고 장가도 안 가고 죽인다고 달려들 테니까. 아이들은 그래요. 아이들은 성인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 뭉쳐지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 사람은 태어나면서 자라나기 때문에 성인이라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이해를 해줘야 되는데. 성인이 되면 자기가 항상 죽는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마치 육각형 벌집이에요. 벌집이 얇은 막이 있는데 가다가 언제 구멍 빠질지 모르더라 이거는. 언제 죽을 줄 모른다니까. 그걸 안심을 할 게 아니고, 이미 죽은 유령처럼 살면 된다 이 말이죠. 언제 빠져도 죽는다는 자체가 보너스니까 우리에게. 사도바울이 그랬잖아요. 죽는 날 있다고 좋아서. 지가 죽는다고 좋아서.

이게 생식이라는 것은, 인간이 자식 낳아봤자 하나님이 어떻게 사용해서 시효, 기능 떨어지면 하나님이 그냥 제거하는 거예요. 좀 냉정하게 말하면 사람은 일회용 소모품이에요. 하나는 진노의 그릇이고, 하나는 긍휼의 그릇이에요. 소모품으로 만든 거기 때문에 소모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생식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생식을 하는데 생식하는 방법이 뭐냐? 이게 바로 연애고 사랑입니다.

남자, 여자가 서로 연애하는 게 나쁩니까, 좋습니까? 하는데 마광수 교수가 그런 이야기했지요. 사랑에는 불륜이 없다고. 사랑하는데 그게 뭐 죄가 되느냐? 이 말이 맞는 게 사랑하는 것은 짝짓기로써 하나님이 유일하게 인정하는 거예요. 짝짓기 해야 생식이 되니까. 제가 아브라함 이야기하는 겁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항상 이 생식문제, 그러니까 자식을 어떻게 낳을 것이냐 그 문제 가지고 한다고.

이건 제가 이렇게 예를 드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예를 드는 거예요. 하나님은 인간성을 거론하기 위해서는 태어난 자식을 가지고 따져서 그 자식을 배태한 부모들의 속성을 따지는 방법입니다. 그 방법이 아브라함 방식이에요. 그러니까 라헬이 죽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라헬은 그냥 죽는 게 아니에요. 뭘 낳기 위해서? 베냐민을 낳기 위해서. 베냐민 이름이 뭐냐? 이름이 뭐라 돼있어요? 창세기 한번 보죠. 베냐민 뜻이 뭐지요? 베노니라 했지만 이름이 바뀌지요. 아버지로써. ‘오른손의 아들’이라고요.

라헬은 자기 남편을 여전히 야곱으로 보고 있어요. 보통 여자가 남편하고 살 때는 남자를 하늘같이 섬기지만 육 개월 못 넘기고 그 다음부터 에라이, 인간아. 대번에 인간으로 바뀌잖아요. 이게 어디 술 처먹고. 에라, 인간아. 인간으로 바뀐다고요. 그걸 좋은 말로 정 들었다 이래 이야기합니다.

라헬은 아직도 이 남편을 자기의 짝짓기의 대상으로 보는 겁니다. 제가 지난 시간에 했지요. 라헬과 레아는 야곱을 뭐로 봅니까? 사내로 봐요. 사내란 말은 뭔 뜻이에요. 짝짓기를 위한 대상이죠. 짝짓기 하는 이유는 아까 뭐라 했습니까? 생식. 이건 내 새끼다 말이죠. 내 새끼를 낳기 위해서 하나의 기계처럼 사용하는 거예요. 이게 창세기 19장에 보면 나오지요. 롯의 두 딸이 아버지를 뭐로 봅니까? 자식 낳는 생식기계로 보는 겁니다.

이걸 탓하면 안 돼요. 왜냐하면 여자나 남자나 하나님이 인정한 유일한 근본은 사랑이기 때문에. 그래 어떤 경우라도 어떤 심각한 것도 사랑이야기, 연애이야기 들어가면 스트레스가 풀립니다. 드라마가 모두 무슨 이야기입니까? 드라마가 국가경영 이야기 안 합니다. 결국 연애하는 이야기 아닙니까? 왜냐하면 가장 인간의 원초적이니까. 평소에는 이런 걸 안 드러냈다가 답답했는데 드라마를 통해서 확 속이 풀리는 거예요.

아이고, 나 저 남자였으면 DNA가 좋은 새끼 낳을 건데. 아이고, 나 저 여자였으면 내 새끼는 예뻤을 텐데. 항상 요새 생물학자들 말하기를 우수한 질 좋은 DNA를 생산하기 위해서 계속하는 거예요.

라헬과 레아는 누가 저 남자를 차지해서 저 남자의 아기를 낳는가? 그러니까 오른손의 아들이 아닙니다. 누구 아들? 지 새끼에요. 야곱의 아들이에요. 그런데 야곱의 아들을 낳는데 세상에 야곱의 아들 낳는데 성공했어요. 성공했는데 누가 죽습니까? 지가 죽어버렸는데. 지가 죽는데 무슨 영화를 봅니까. 그래서 우는 거예요. 아 낳고 난 뒤에 뭐라고 부릅니까? 베노니가 뭐예요? ‘슬픔의 아들’ 아닙니까?

보통 애 낳을 때 기쁘잖아요. 왜? 자기 목적을 달성해서 기쁜데 세상에 애 낳고 슬픈 이유가 뭡니까? 아이고, 니는 에미도 없이 얼마나 설움 받겠노. 실제로 에미 없어 설움 많이 받았거든요. 얼마나 설움 받겠노. 라고 생각하는 그 수준이 무슨 수준이냐 하면, 이스라엘 수준이 아니고, 야곱을 자기 애 낳아주는 사내로 보는 야곱의 수준으로 그냥 그대로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자식은 엄마 없는 자식을 낳으니까 이름 지을 때는 그 애의 운명을 내다보고 짓습니다. 아이고, 니는 지지리도 슬픈 운명을 살아야 되겠구나. 해서 이름을 슬픔의 아들. 아들이란 말을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아들이라 하는 것은 아빠가 슬픔이고 그는 아들이라. 이런 뜻이 아니고, 슬픔의 아들이라 하는 것은 슬픔이란 운명을 지고 살아가야 될 그러한 존재, 이런 뜻에 슬픔의 아들이에요.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이 하나님의 그 아들이란 뜻이 아니고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그런 게 어렵지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니까 유대인들이 뭐라 합니까? 대번 니가 하나님이가, 이래 묻잖아요. 그 동네에 사는 식구다. 하늘나라에 사는 식구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한다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뭐라 합니까? 하나님 자기 아들 만든다 할 때 이스라엘이 얼마나 자부심이 대단했습니까? 몽땅 망했는데. 아버지 있으면 뭐 합니까? 몽땅 망했는데. 그러면서도 내가 온 것은 잃어버린 양을 위해서 왔다. 참된 이스라엘을 끄집어내거든요.

어쨌든 여기서 라헬이 죽습니다. 죽는데 이제 야곱은 야곱이 아니고, 누굽니까? 이스라엘이죠. 이스라엘 관점에서 볼 때 자기 아내는 죽었어야 해요.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뀌고 난 뒤에 태어난 처음이자 마지막 아들이 누구냐? 베냐민이에요. 그렇다면 이스라엘 된 의미, 이스라엘이 보여준 함축된 모든 속성을 누가 다 대신해서 보여줍니까? 이 베냐민을 가지고 다 보여줄 수 있다. 베냐민을 통해서.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뀌는 이유가 아아, 내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은 앞으로 내 운명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할 수 있는 증거가 뭐냐? 이거다. 베냐민이에요.

결국은 야곱의 흔적들이 하나둘 씩 사라집니다. 증거가 뭐냐? 자, 야곱 때에 열한 자식을 낳았잖아요. 열한 자식을 낳게 되는 그 배후의 배경이 뭐냐 하면, 누구하고, 누구하고 싸웠습니까? 라헬과 누구하고 싸웠어요? 레아가 싸우면서 열한 아들이 나왔거든요. 그렇다면 야곱의 시절이 끝나버리면 레아와 경쟁할 상대가 없지요. 애는 더 이상 없는 거예요. 라헬과 레아가 서로 저 사내, 야곱이라는 사내를 누가 독차지 하느냐? 누가 내 새끼를 ( ) 극히 야곱적인 레아도 그렇고, 라헬도 그렇고 남편만 야곱이 아니고, 남편의 두 마누라도 전부다 뭡니까? 극히 야곱적이에요. 자식도 마찬가지로 야곱적입니다.

이걸 전체를 하나님께서 뭘 바꿉니까? 이스라엘로 바꾸려는 거예요. 이스라엘로 바꾸기 위해서 누가 죽어야 되는 기라. 누굴 죽입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 때 제물 받을 때 뭘 바칩니까? 양 바칩니까, 염소 바칩니까, 누굴 바칩니까? 세상에 가장 사랑하는 자를 바치잖아요. 야곱이 레아를 한 것은 이거는 덤이었습니다. 여자 보고 덤이라 하면 안 되지만. 이건 덤으로 끼워준 거예요. 진짜 원했던 라헬을 얻기 위해서 지체 없이 덤으로 끼워준 여자가 레아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식을 이용하기 때문에.

야곱은 레아를 얻을 때만 자기가 야곱으로써 완성이 된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자식은 뭐냐? 레아의 자식 아닙니다. 누구 자식이냐? 자기 라헬의 자식을 얻고 싶었어요. 라헬의 자식이 누구밖에 없습니까? 요셉과 베냐민. 그래서 그 뒤에 나오는 모든 야곱의 남은 사건은 계통이 요셉과 베냐민 쪽과 나머지 모든 쪽이 나누고, 희생자로써 요셉과 베냐민이 희생되고 이쪽은 가해자가 되면서 놀라운 사실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고 구원을 해준다는 거예요.

이게 뭐냐?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자선에 담긴 깊은 내막입니다. 줄게. 그냥 주시는 게 아닙니다. 그냥 주는 게 아니고 뭐냐 하면, 너 같은 인간에게 내 피 줄게. 이 말입니다. 그걸 가지고 뭐냐? 골로새서 1장에 십자가 피로 하나님과 너희들과 화목케 했다는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우리가 화목을 요청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죽인 것은 자진해서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민 거예요. 봐줄게, 봐줄게. 너한테 용서해줄게. 그게 사도바울은 뭐냐? 그게 바로 복음이다.

그것도 모르고 유대인들은 허리통에 들어있는 율법 지킨다고. 허리통 위에 멜기세덱이 있는 걸 모르고, 허리통 밑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있는 걸 모르고, 중간에 있는 허리통 있잖아요. 십계명 이거. 이거 지키면 구원받는 줄 알았어요. 안식일 지키고 이거 하면 구원받는 줄 알았다고. 그거는 허리통이라니까. 그냥 흘러내려가는 거예요.

율법이라는 것은 뭐냐? 하나는 제사법이 있고, 하나는 뭡니까? 완벽한 사회법 있잖아요. 십계명 같은 게 있잖아요. 결국 제사법 왜 필요하냐 이 말이죠. 한번 지켜봐라 지켜지는가. 어린양이 죽지 아니하면 너희들은 구원받지 못한다. 그게 율법 아닙니까? 율법이 제사법과 다 합쳐서 뭐냐 하면, 내가 너희를 사랑했단다하는 사랑이죠. 결국 구약이나 신약이나 사랑이 나오는데.

그것 좀 이야기 더 해봅시다. 야곱의 시절을 청산하고 이젠 야곱 시절은 끝나고, 이스라엘 시대로 바뀌면서 이제는 이스라엘에게는 사명이 부여돼요. 어떤 사명이냐 하면, 그 허리에게 계속해서 왕이 등장해야 되는데 거기는 야곱의 허리에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허리에서 이게 나오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허리에서 나온 첫 번째 아들의 이름이 뭐냐? 그게 바로 오른손의 아들. 어째서 야곱이 이름을 이래 지었느냐? 그게 참 궁금하죠. 그 이야기해봅시다.

야곱 층에서 베냐민 이름이 두 가지에요. 하나는 뭐냐 하면, ‘베노니’죠. 베노니는 뭐냐 하면, 이거는 슬픔의 아들, 앞으로 네 운명은 뭐로 된다? 슬픔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 다음에 그러니까 아빠가 뭐라 했습니까? 읽어봅시다. 18절, “그가 죽기에 임하여 그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은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 아비가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이래 돼있지요. 베노니라 하는 것은 슬픔의 아들이고, 베냐민이라 하는 것은 오른손의 아들이에요.

왜 야곱이 이름을 오른손의 아들로 만들었느냐 하는 겁니다. 야곱은 자기가 이제부터 이스라엘 길로 들어서야 되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뭘 알았느냐 하면, 벧엘로 떠났던 그가 다시 벧엘로 돌아와서 일어난 첫 번째 사건이 라헬이 죽고 베냐민 아들이 태어난 겁니다. 그러면 여기 벧엘입니다. 이 벧엘을 떠날 때 야곱이 뭘 받았습니까? 사다리 위에서 뭘 받았지요? 천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지요.

계시를 받았을 때 그는 잠깐 오해했습니다. 계시에서 뭐라 하냐 하면, 아버지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 너에게 이루기까지 떠나지 아니했다 했거든요. 너의 뜻이 이루기까지란 말은 뭐냐? 이걸 가지고 야곱은 자기가 다시 온다고 했어요. 이 자리에. 이 벧엘을 가지고 그때 뭐라 했느냐? 하나님이 나타나는 하늘에 뚫려있는 하늘의 문. 하늘의 문이 있는 유일한 장소로 다시 돌아오게 하신다는 걸 믿었어요.

지금 창세기 35장에서 다시 돌아왔잖아요. 다시 돌아오면서 자기한테는 뭐가 됐습니까? 야곱으로 갔다가 뭐로 돌아와요? 이스라엘로 돌아와요. 이스라엘로 돌아오면서 하나님의 뜻이 단순히 공간적인 이동을 뜻하는 게 아니고, 모든 자기 가족의 변화가 일어나는 걸 봤어요. 그런데 그 변화를 야곱은 하나님의 자기 뜻을 이루기위해서 나를 사용했던 하나님의 자기 뜻의 내용으로써의 변화로 본 거예요.

쉽게 말해서 아내가 죽고 죽은 아내에서 새로운 아이를 낳는 것을 그 아들을 더 이상 내 아들로 보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그럼 누구 아들로? 나로 하여금 다시 벧엘로 돌아오게 하신 그 하나님의 아들로 나는 기념으로 그 이름을 그렇게 간주하겠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베냐민을 볼 때마다 뭘 생각하겠어요? 사다리에서 내려왔던 그 계시대로 거봐. 내가 돌아왔잖아. 나는 그냥 돌아올 줄 대충 알았는데 과연 돌아왔구나. 돌아오면서 뭘 느꼈습니까? 돌아오면서 느낀 게 아니고 변화를 주면서 돌아오죠.

그전까지는 열두 자식이 누구의 자식이냐? 라헬의 자식이었고, 레아의 자식이었고 그리고 그 말은 뭐냐? 야곱의 자식이었는데 이제는 야곱의 자식이 아니고, 이름을 누구 걸로? 자기 자식이 아니고 누구 자식이다? 오른손의 아들, 하나님의 자식으로. 오른손이라 한 게 적당하죠. 하나님의 오른손,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그렇게 간주를 해버린 거예요.

그렇다면 오른손이란 의미가 뭐냐? 제가 언젠가 우리교회 장로님이 이런 질문했어요. 목사님, 하나님의 오른편이라 하는데 왜 왼편이라 안 하고 오른편이라 합니까? 이래 이야기해요. 연세가 팔십이 되신 분인데. 하나님의 왜 오른편이라 하십니까? 제가 답변하기를 하나님의 오른편은 하나님이 일하는 장소입니다. 그게 뭔 뜻입니까? 하나님의 왼쪽은 하나님의 본체를 이야기하고, 오른쪽은 그 본체에서 나오는 일을 행사하는 장소입니다. 여러분, 이해되시겠습니까?

보통 팔이 두 개 있지만 오른쪽으로 일하잖아요. 하나님이 만약에 인간적인 모습이라면 하나님이 왼쪽으로 일하는 부분은 어디에요? 오른쪽으로 해서 일을 한다 말이에요. 하나님께서. 그러니까 하나님의 오른쪽으로 했다는 말은 하나님의 나간 뜻이 오른쪽에 계신 분에 의해서 다 완전히 완수되어서 오른편에 앉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루어서 올라왔다 이 말입니다.

시편 110편에 보면 이렇게 이야기하죠. 주께서 내 주에게 원수를 물리치고 오른편에 앉히는 거예요. 하나님의 오른편에 있다는 말은 하나님의 일을 실제로 하는 그쪽인데 그걸 가지고 뭐라 하느냐? 하나님의 이름이라 합니다. 진짜 어렵지요. 하나님이 따로 있고, 하나님의 이름 따로 있어요.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분이고, 하나님 이름은 지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받아서 일을 하시는 분이에요.

그 하나님의 이름을 한 자로 줄이면 뭐냐? 그걸 가지고 ‘주’라 하고, 예수님을 뭐라 합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 다시 말해서 이 하나님의 뜻대로 다 지상에서 이루었던 그분이 바로 그분이다 이 말이죠. 그래서 그 하나님 이름 따라 오지 아니하면 하늘나라 갈 수 없어요. 그게 스파이던맨 그건데. 오 분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피곤하시죠. 저는 안 피곤한데 여러분 피곤하시죠.

폭포가 이중폭포, 삼중폭포 이래 있습니다. 폭포가 있는데 산이 있는데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려고 길을 가는데 산은 말합니다. 나에게 올라가려면 이 폭포를 타고 올라가라. 그래 이야기해요. 그러니까 폭포만 타고 올라가는 게 뭐냐? 다른 이름으로 구원받을 이름을 준 적이 없고 오직 예수 이름만 구원받는다는 이 말은 하나님의 하신 비단결, 폭포가 비단결 같잖아요. 하나님의 비단결, 샤워 물줄기를 타야 되는 거예요. 왜? 이게 기능이거든요.

죄인이 뭐로 바뀐다? 의인으로. 야곱으로 뭐로 바뀐다? 이스라엘로. 바뀌는 기능 이걸 타야 되잖아요. 이 타는 기능이 무슨?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뭘 지고? 자기 십자가 지고 따라오너라. 십자가 지게 하셨거든 그것이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있다는 그런 뜻입니다. 지금 폭포 한 중간쯤 탔어요. 날마다 여러분들 부인케 하거든 그러한 계시를 받거든 여러분들은 지금 폭포를 올라가고 있는 중이에요. 사도바울이 말합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 함도 아니고, 내가 십자가에 죽어서 부활에 이루려함이라. 다른 길은 없어요.

그러면 목사님, 우리가 순교할까요, 칼 가지고 찌를까요, 자살할까요, 십자가 길 하면 어디 고생할까요, 태국 가서 선교사하고 이럴까요? 그게 아니고 십자가 길은 뭐냐 하면, 몇 십 번 이야기해도 사람들 못 알아듣습니다. 오늘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현재 갖고 있는 이것이 내 것이 아니고 주의 것인 줄 알면 그게 십자가 길이에요.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시간과 공간, 내가 가진 모든 것, 이것이 내 것이 아니고 주님의 일 하라고 주님 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바로 십자가 길 가고 있는 거예요.

염색했습니까? 염색한 머리카락 그것 주 것입니다. 염색을 내가 했기 때문에 까만 것은 주님 건데 내가 염색했기 때문에 내 거다. 이러지 마시고, 염색을 했든 볶았든 뽀글뽀글 했든 우에든 간에 그것조차도 주의 것이라고 믿으면 그게 십자가 길이라니까. 쉽잖아요. 안경 끼셨습니까? 주님 주신 안경이라 생각하면 그게 십자가 길이에요. 십자가 길이 뭐냐? 고생길이 아니고 자기를 부인하는 길입니다.

어떤 목사는 말하기를 순종하라, 순종하라. 왜 순종 안 하느냐? 하는데 예수, 복음 믿어도 소용없다. 순종하라 하는데 저는 그게 아니다. 예수 믿고 이제 순종해야지. 그게 아니고 순종이라 하는 것은 반드시 자기를 부인하면 그게 순종이에요. 나는 예수 믿었으니까 순종해야지. 이게 아니고 자기를 부인하면 그 현장이 순종의 길이에요. 왜? 길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그 길이 바로 순종의 길이기 때문에 그래요. 순종하는 게 아니고 순종의 길로 가면 순종의 길이 되는 거예요.

바로 자기 부인은 뭐냐? 자기 마누라가 부인이 아니고, 자기 부인은 나에게 야곱은 없다. 다만 야곱은 없고 뭐만 남아있다? 이스라엘만 남아있는 거예요. 이스라엘 속에 뭐가 들어있다? 자선. 자선이 한 자로 뭐라 합니까? 하나님의 ‘의’. 그러니까 공짜로 너를 용서했잖아. 라는 그 덩어리 채가 저와 여러분 전부입니다. 여러분 자신입니다. 안경, 옷 이게 전부다 하나님 자선 덩어리, 하나님 것, 하나님의 소유, 값을 준 소유다. 이걸 인정하는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거예요. 내 것 아니다 하는 것이 자기 부인 아닙니까? 세상에.

내 것 아니니까 내 책이 없다는 게 아니라 내 것 아니기 때문에 주께서 계속 간섭하신다고요. 자식은 내 것 아니에요. 그리곤 우린 계속 간섭하지요. 공부하라고, 놀지 말라고. 주께서 시켜서 내가 자식한테 하는 거예요. 아빠 마음 아니다. 내 마음 아니다. 주님 마음이다. 공부해라. 학원 갔다 왔나? 아빠 마음 아니고 주님 마음이야. 이게 자기 부인이에요. 이렇게 착각하는 게 아니고 자기 부인이에요.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뭐냐 하면, 자기 들여다보다가 자기 생각 안 하는 것 이것보다 어려운 게 없어요. 그런데 어려운 것을 불가능한 일을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게 하십니다. 이런 사건들을 통해서 아하, 내 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순간순간 터져 나옵니다. 사람이 자기 게 아닐 때는 고민과 근심과 걱정도 다 날아가 버려요.

이 슬픔의 아들이 드디어 야곱한테는 슬픔의 아들이지만 이스라엘에게는 나로 하여금 벧엘로 돌아오게 하신 그 하나님이 낳은 자식, 그게 바로 베냐민, 하나님의 아들이라. 그래서 여러분들이 만약에 이것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잘못 생각하면 마지막 이것 주의해서하는 건데.

오늘 목사님, 강의 잘 들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내 자식이 슬픔의 아들이 아니고, 이제는 기쁨의 아들 해야지. 기쁨의 아들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기쁨의 아들 되면 이 아들 누구 소유에요? 내 소유가 되잖아요. 슬픔의 반대가 기쁨이지만 성경에서는 슬픔 반대는 뭐냐? 내 게 아닌 게 되는 거예요.

아아, 걱정돼서 처음에 한 것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성도 생활하는 게 뭐냐 하면, 나는 잘했는가, 못했는가? 아이고, 나쁜 짓 했구나. 착한 일 해야지. 나쁜 짓 했는데 이제는 착한 일 해야지, 그게 성도가 아니고, 나쁜 짓 해나? 할 수 없지 뭐. 이게 성도라니까. 왜냐하면 나쁘고 좋고 내 질이 내 가치가 얼마나 우수하냐? 이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관심을 뚝 끊는 것이 자기를 부인하는 거예요. 신경 쓰지 마세요. 더 이상. 내가 질이 우수한지, 훌륭한지. 조금만 착했으면 좋을 건데. 그러지 마세요.

그러지 말고 아이고, 나는 참 나쁜 짓만 주의 것이구나. 이래 생각하고 항상 주님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 인생을 주도하려고 건방떨게 그렇게 말아요. 주도하게 되면 여러분 슬픔이란 자식 없습니다. 큰일 납니다. 그렇지 않아요? 라헬이 지 자식인 줄 알고 낳고 난 뒤에 아이고, 네 운명도 참 더럽구나. 애비도 없이 에미도 없이 네가 죽었구나. 아이고, 슬픔의 자식아. 지가 지 자식인 줄 알고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거는 오산이고.

야곱 말이 맞아요. 여보, 걱정하지 마라. 하나님이 키운다. 애 이름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렇게 하면서 이스라엘 된 티를 냅니다. 앞으로 이스라엘에게서 야곱과 그리고 요셉과 라헬의 이미 죽은 그 어미의 두 자식이 앞으로 야곱의 운명을 어떻게 장식해서 에서를 저주케 하고 야곱을 축복케 하는지 나머지 열두 자식 몽땅 다 축복을 받는 그런 민족이 되게 하는지 그거는 다음 시간에 하나님 뜻이 있으면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접어버리면 내 인생 내가 알아서 살고 내가 선택해서 살고 내 하고 싶은 것은 내 노력여하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처럼 그렇게 느껴집니다. 실제로 우리는 스물네 시간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마다 우리 뜻대로 안 되고 우리 마음먹은 대로 안 될 때 그때마다 그 틈새를 통해서 우리가 걱정 안 해도 되는 주님의 자기 부인하라고 거저주신 하나님의 용서가 귀한 줄 알고 그렇게 그런 사건 일으킨 줄 알고 저희들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주님의 것인 것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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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31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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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