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3:20-30 (예수님이 받은 오해)
막 3:20-30 (예수님이 받은 오해)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41)
본문 : 마가복음 3장 20- 30절
제목 : 예수님이 받은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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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8-05-25 13:36
예수님이 받은 오해
2008년 5월 25일 본문 말씀: 마가복음 3:20-30
(막 3:20)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막 3:21)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막 3: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저가 바알세불을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막 3:23) 『예수께서 저희를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단이 어찌 사단을 쫓아낼 수 있느냐』
(막 3:24)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막 3:25)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막 3:26) 『만일 사단이 자기를 거스려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이에 망하느니라』
(막 3:27)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늑탈치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막 3: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막 3:29)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
(막 3:30) 『이는 저희가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결국 예수님이 피흘리고 돌아가신 것을 우리가 잘 압니다. 우리 손톱에 피가 나면 우리는 누가 뭐래도 우리에게는 분명한 현실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피를 흘렸다는 것이 누가 뭐래도 예수님에게는 분명한 현실입니다. 마르다, 마리아 자매의 오빠인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에만 무덤을 찾아왔습니다.
보통 사람은 이미 죽은 자에게는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 법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산 자가 아니라 이미 죽은 자에게도 말을 걸렀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고 말입니다. 나사로가 나왔습니다. 이 현실은 피로 말미암아 세워진 현실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말씀과 예언을 이 예수님의 피에다 다 쏟아부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 예수님의 피 흘린 현실로서 우리들이 사는 이 현실을 덮어버리려고 하십니다.
십자가의 길이란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구유에서 천하게 태어나실 때부터 성인이 되셔서 십자가에 매달릴 때까지 온갖 수모라는 수모는 다 당하셨고 자신의 인생 속에 담기게 하셨습니다. 바로 그 수모와 고난이 쌓여서 십자가 죽으심이란 사태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 사건에만 주목하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사시면서 당하신 모든 수모도 다 십자가 죽으심과 관련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빠트려버리는 과오를 범하기 일 수입니다. 예수님의 피라는 현실이 우리가 죄를 지었다는 현실을 완전하게 처리해 내는 이유를 알려면 우리도 십자가 이전부터 예수님께서 어떤 수모를 받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미친 자라고 했습니다. 귀신들렸다는 말이 그 말입니다. 예수님이 보는 현실관과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세상을 보는 시선이 서로 달랐습니다. 히브리서 4:1-3에 보면, 약속의 땅이 아직 남아 있는데 그곳에 가지 못할 자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믿음에 화합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약속의 땅을 주도적으로 앞장 서서 인도하시는 분이 계신데 그 분의 세상 시선과 동일한 세상 시선을 갖지 못하면 믿음에 일치하지 않다는 판정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약속의 땅은 물건너 간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라는 평판을 받은 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다른 관점에서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 관점이 무엇일까요?
한 가지 예가 28절에 나옵니다.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입니다. 즉 인간이 이 세상에서 그 어떠한 죄를 지어도, 심지어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를 지어도 용서함을 받는다는 겁니다. 이것은 오늘날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사람들의 세상관을 대해서 모독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방종을 미워하고 혼란과 무질서와 방탕과 타락을 저주합니다. 따라서 죄와 죄 아닌 것을 구분해서 철저하게 교육해서 죄가 되는 것을 척결하는데 혼신을 노력을 다 해왔습니다. 만약에 예수님과 같은 발언을 하게 되면, 이 사회에 방종을 용인하고 죄를 자극시켜서 유포시키는 원인 제공이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귀신들린 자라고 할만하지요.
모든 죄를 용서한다면 이제부터 무슨 짓거리든 다 해도 다 용서받는다는 논리로 가게 됩니다. 사회 안정과 거룩한 공동체를 염원하는 일반인들의 견해하고는 너무나 상관없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더욱더 분노하는 발언이 곧이 나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용서받지 못하고 그래서 영원한 지옥에 들어간다는 겁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혼란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죄를 용서한다고 하실 때, 그 ‘모든’ 안에 ‘성령의 일을 모독하는 것도 포함이 되어야 진정한 ’모든 죄 용서‘가 성립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고 성령 훼방죄를 따로 떼놓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성령님의 일은 인간보고 새삼스럽게 짐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도리어 인간을 무상으로 건져내기 위해 무상으로 용서를 주시는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즉 에베소서 1:17-18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가 나옵니다.
우리의 눈을 밝히는 것은 우리 소관이 아니라 성령님의 소관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눈을 밝히게 되면 이 때부터는 예수님이 세상을 보는 동일한 시선을 갖게 됩니다. 그 시선의 주된 내용이 오늘 본문 27절에 나옵니다.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늑탈치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여기서 세간이란 집의 가구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세상관이란 이 세상을 세 가지 요소로 결정짓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요, 다른 하나는 악마요, 다른 하나는 인간입니다. 예수님은 담장을 넘어오는 도둑이요, 악마는 집 주인이요, 인간은 그 집 주인 집에 있는 가구입니다. 가구의 특징은 꼼짝달싹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가구가 스스로 움직여서 주인으로부터 해방되어 담장너머로 갈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좀 먹어 썩어도 그 자리에 썩어야 하고 지진이 일어나서 무너져도 그 자리에 폭삭 무너져야 합니다. 도둑이 오기 전에 누가 자신을 집 주인집에서 건져낼 자가 없는 겁니다.
바로 이런 식으로 세상 구조를 볼 수 있는 눈이 성령을 받아야 비로소 생기는 현상이며 이것이 바로 약속의 땅에 들어갈 인도자의 믿음과 화합되는 믿음입니다. 하지만 성령받지 않는 자들에게 격분을 유발할 소지가 있는 발언을 예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천국이란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을 흔들어 깨어버리고 성령 활동 중심의 세계로 바라보게 하는 힘으로 나타납니다.
사람은 구원에 있어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요 주역도 아닙니다. 만물의 찌끼 같은 존재입니다. 음식쓰레기 속에 뭐가 있는지를 물을 부어 흔들어보면 알 듯이 천국은 우리는 늘 흔들어내시는 그 능력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천국을 교회로 굳히게 하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교회를 해체해서 천국의 활동으로만 구원이 되게 하십니다.
자신이 마귀에게 묶여 있는 신세였으면 자기 행위로 구원받겠다는 바로 그것이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성령의 활동을 모독하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눈을 예수님의 눈으로 바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