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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8대구강의01-주님의전쟁3자유게시판-

08대구강의01-주님의전쟁3

이름 : 구득영(IP:203.223.97.201)

08 대구강의 1 - 지옥의 하나님 25 - 주님의 전쟁3

08,02,11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오잉, 웬 분류작업 !!

오늘은 91페이지 '정치적 제안' 이라는 것부터 하겠습니다. 이 성경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예언서인데, 이 성경이라는 예언서를 보게 되면, 이 '예언서' 라고 하는 것에서 무엇이 눈에 띄는고 하니 '분류작업' 이더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너희들은 몽땅 복을 받는다" 라는 예언서가 아니라, 지옥과 천국으로 나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예언이 멀리까지 예언이 되는데, 그 먼 마지막 지점에 가보니까 두 쪽으로 나누어지더라는 것이다. 즉 한 쪽은 천국이고 한 쪽은 지옥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예언이 마지막에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진다고 하면, 그 중간 중간에 무슨 작용이 있어야 하는고 하니, 이 예언이 한번씩 떨어질 때마다 분류작업이 이루어져 한다는 것이다.

◈ 그러나 분류작업을 싫어하는 인간들 !!

그런데 이런 분류작업을 인간들은 굉장히 싫어하는데, 다 같은 인간들인데 말이다. 이렇게 같은 인간으로 출발해서 누구는 천국에 가고 누구는 지옥으로 간다고 하는 것이, 그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느냐는 것이다. 같은 총신을 나왔는데, 누구는 천당에 누구는 지옥이라면 얼마나 열을 받겠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분류작업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인데, 정작 자기는 그렇게 분류작업을 하면서도, 남이 그런 작업을 그렇게 기분이 나쁘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나는 키가 큰 여자를 좋아한다" 라고 하면, 그것도 분명히 분류작업인데, 그런데 키가 작은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해서, "당신은 왜 내가 좋아하는 키가 큰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가?" 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자기 중심의 분류작업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 자꾸만 계시를 발산하는 인간 !!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나' 라는 인간은, 이것을 아직 현대철학에서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데, 자꾸 성경만 예언한다고 하지 말고, '나' 라는 인간이 자꾸만 계시를 발산하고 방출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예언을 하는데, 물론 이것을 아주 종교적인 표현이지만, 사실은 기대감, 포부, 미래예측 등인데, 이것이 바로 밑이 빠진 인간의 욕망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런 욕망은 현재사항에서의 몸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미래에다 희망을 거는, 그것이 하나의 자기가 발산하는 순간에 예언이 되고 자기 나름대로의 계시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것도 자기 중심의 예언이고, 하나의 계시라는 말이다.

이런 자기 중심의 계시가 따로 있는데, 성경에서 이렇게 예언을 하니 그것이 기분 나쁘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 자신이 매일같이 방출하고 있는 예언이 있는데, 성경이 무엇인데 그렇게 예언을 또 하느냐는 말이다. 자기의 허락도 받지 않고 말이다.

◈ 시건방진 선지자 !!

우리가 '지옥의 하나님'을 공부하면서 선지자에 대해서 거론을 했는데, 이 선지자와 비선지자, 즉 선지자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차이점이 무엇인고 하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기 위주로 예언을 발산하고 계시를 발산하면서, 자기의 기대와 포부를 이야기하는데, 즉 "그렇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하는 희망을 말이다.

그런데 이 선지자는 어떠한가? 건방지게도(?)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만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선지자는 자기가 알아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움직인다는 말이다.

이것은 선지자가 완전하다는 말이 아니라, 선지자가 비록 모자라고 아이큐가 뒤떨어지고 성깔이 더러워도, 희한하게도 하나님의 예언과 지시는, 비록 그 선지자가 못난 존재라고 해도 그 예언이 희미하지도 않고 예민(?)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모세인데, 이 모세는 결코 완전한 인물이 아닌데, 오히려 그는 하나님의 지시를 회피하려고 했는데, 자기는 말주변도 없고 용기도 없고 해서 바로왕에게 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해서 일을 시켰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이고, 이삭과 야곱도 그렇고 말이다. 자기 욕심대로 축복을 주려고 하다가 걸려서 반대로 주었다는 것이다.

◈ 못난이들의 선명한 예언 !!

그러니 이들 모두가 우리와 같은 못난 인간인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성경은 그렇지 않더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 세상에서는 못난 인간이 예언을 하면 못난 예언(?)이 되는데, 그러나 성경에서는 지지리도 못난 인간이 예언을 해도 그 예언이 손상을 입는다든지 애매하지도, 모호하지도 않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참으로 신기하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그 철딱서니 없음을 다 받아주는데, 그러면서도 정작 시킬 것은 다 시키고 제대로 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이 예언을 다 이루면 너의 의로움이 아니라 나의 맹세 때문에 그러하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이사야에도 나오지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성취됨이 없이 돌아온 적이 없다는 것이다.

(신 18:22)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
(사 55: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그러니 무엇이 무엇을 이기는고 하니, 우리들의 어설프고 못남을 하나님의 말씀이 이기는데, 즉 "너희들의 육체는 풀에 불과하기 때문에, 너희들이 아무리 못났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예언에 너희들의 못남 때문에 훼손되고 방해되는 일은 없다" 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우리에게 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냐는 것이다.

◈ 자책감도 마귀의 유혹 !!

목사들이 자기가 설교를 좀 잘못했다고 해서 스스로 "아, 쪽팔려. 내가 단어를 엉터리로 보고, 본문을 오해했네. 엉터리로 설교를 했네" 라고 할 필요가 없는데, 자기가 그렇게 말씀을 엉터리로 왜곡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이 차질이 있을 수는 결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 바로 마귀의 시험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겠는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을 아는 자들이 사도들인데,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고 말이다. 그래서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이나, 그리고 오늘날 성도들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아무튼 그 예언의 마지막 지점이 천국과 지옥으로 분류가 되는데, 그렇게 분류가 되는데 이미 중간 중간에 그 분류작업이 그 시대만큼 뭔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진화론 도식이나 핵융합 때의 중성자가 갈라지는 그런 지도와 같고 말이다.

◈ 예언 - 해체되고 분절되는 !!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이렇게 중성자가 깨어져서 A와 B가 입자가 바뀐다면, 처음에는 가깝다가 또 깨어지면 B와 C와 D와 E로 되면서 점점 더 멀어진다는 것이다. 가지치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해서 원자폭탄이 만들어졌는데, '뻥' 하고 터지면서 모든 것이 다 해체되고 말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언이 한 고비를 넘길 때마다, 이것을 철학에서는 '분절' 이라고 하는데, 끊어지고 이어지고 말이다. 분열되고 접촉되고 말이다. 그렇게 되는 것을 다 합쳐서 분절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자기 마음대로이기에 우연성에서 나오는데, 뚝뚝 갈라진다는 것이다.

◈ 베르그송 - 미리 정해진 것은 없다 !!

이것을 글로 한번 표현해보자면, "무엇이든지 미리 정해진 것은 없다" 라는 것인데, 이 한마디가 바로 베르그송의 철학이라는 것이다. 별 다른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미리 정해진 것은 없다는 말이다. 이것이 결코 절망이 아닌데, 뭔가 희망이 보이는, 그리고 기쁨이 몰려오지를 않는가? 그런데 정해져버리면 하나의 동일성이 되고 우상이 되고, 나중에는 폭력으로까지 이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들뢰즈가 이런 철학의 영향을 받아서, 그도 이러한 미리 정해진 것이 없다고 주장을 하는데, 그런데 이렇게 미리 정해진 것은 없지만, 이미 갖추어진 조건이 이것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이것을 무엇이라고 하는고 하니, '생성'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생성' 이란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이미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는데, 하지만 아주 건방진 인간들이 "아, 이것이 전부이다. 이것이 맞다" 라고 꼭 집어서 주장한다면, 그것은 대자연을 너무 얕잡아 본 것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저 사람은 때려죽여도 천당에 갔다" 라고 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분류작업을 너무 얕잡아 본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니 "저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천국에 갔다", "저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지옥에 갔다" 라고 단정적으로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 이미 구원의 기준이 !!

그래서 성경에서 사도바울이 뭐라고 했는고 하니,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 라고 했지, "아무개 아무개는 저주를 받는다" 라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분류원칙에 의해서 천국과 지옥으로 분류가 된다는 말이다. (조금 거시기 한데??)

그래서 사도바울의 관심사는 무엇인고 하니, "인간, 너는 어떠 어떠하다" 라는 것이 아니라, 그 기준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기준만큼은 예언대로 딱 정해져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만약에 어떤 사람이 어떻게 되던지 간에, 그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면 그것은 창세 전에 이미 예정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황당함 !!

그런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보면 조금은 우습기도 하고 참으로 기가 찬데, 얼마나 많은 신학자들을 동원해서 만들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인용한 그 수많은 성경구절들 중에서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 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이미 영국에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만 골라서, 즉 "이러한 기준에 맞추면 구원이 되니 안심하소서"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제일 처음에 나오는,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라고 하는 것, 그것만 알면 구원이 된다는 말이다. 바로 그렇게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만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것이지 결단코 사람이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십자가 복음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들어가 버리면, 그 모든 조항들을 부정해버린다는 것이다. 완전히 찬물을 끼얹어버리는 것이고, 찢어버리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 나처럼 해봐라, 이렇게 !!

왜 그런고 하니, 아까 사람에게는 예언이 발산된다고 했는데, 그것은 곧 자기 중심의 행함을 말하는데, 즉 자기가 행하기 때문에 "나처럼 행하면 구원을 받는다" 라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는데, 이렇게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는 것과, 사도바울이 이야기한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 라고, 즉 지옥에 간다는 하는 것이 서로가 같은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미 천국에 가고 지옥으로 가는 것은 십자가의 복음으로서 확정이 되어있다는 말이다. 이 십자가의 예수 말고 다른 예수는 없다는 것인데, 그래서 사도바울 자기는 십자가만 자랑하지 다른 것은 결코 자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도바울의 말처럼 십자가 복음으로서 모든 것이 분류작업이 된다는 것은, 기존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은 아예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 사도바울, 당신은 통뼈인가?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하기를, "사도바울 당신은 인간이 아닌가? 당신은 통뼈인가? 아니, 당신만 주의 종이고, 우리는 아닌가?"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라고 주장하면서, 니가 말한 복음만 옳다고 하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오히려 저주를 받는다고, 그렇게 함부로 말을 하는가? 남들은 전혀 배려도 하지 않는가?" 라고 말이다.

여기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뭐라고 대답하는고 하니,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라고 하면서, 남들이 하는 말은 전혀 맞지가 않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서로 모순이 되지 않는가?" 라는 주장에 대해서 말이다. "내가 받은 계시는 사람에게서, 즉 인간전체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라고 하는 순간부터, 즉 자기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계시를 직접 받았다고 하는 그 순간부터 "나는 지금부터 내 속에 계시는 성령이 시키는 데로 계시를 전할 것이다" 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 행동이 완전하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계시에 관해서, 복음에 관해서는 주님이 시키는 데로만 하겠다는 것이다.

◈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

그러니 이것은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게 구약 선지자들의 특징인데, "우리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같은 인간들끼리의 보편성으로 잘 의논하면 서로 동의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라는 것을 거부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무엇인고 하니까, "나는 망하는 자에게는 망하게 하고, 구원받을 자에게 구원받을 일을 한다" 라는 것인데, 도대체 자기처럼 할 자가 누가 있느냐는 것이다. 완전히 똥배짱(?)인데, 오늘날 복음을 아는 사람들은 이것을 무서워하는데, 똥배짱이 나오면 사회에서 소외되니 말이다. "그래, 당신 잘났다" 라고 배척해버리면, 자기를 알아주지 않고 인정해주지 않는 어떻게 외칠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사도바울이나 스데반 집사는 말하기를, "주님이 알아주시잖아" 라고 한다는 것이다. "내가 다메섹에 올라갈 때 번개가 치고 했는데, 그래서 니는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라" 라고 하면서, 그렇게 주님께서 알아주었다는 말이다.

◈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는 똥배짱 !!

제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결론을 내면 이러한데, 주님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사람들은 더 이상 사람들을 의식할 이유도 없고, 그럴 필요성조차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님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것이 없다고 하면, 계속해서 사람들을 의식하고 그들로부터 소외를 당하지 않으려고, 자기의 옷매무새를 사람들에게 맞추려고 애를 쓴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사람들을 좋게 한다면 더 이상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라고 했는데, 우리는 그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본인이 받은 것이 없으면 사람들의 구미에 맞추어야 하고, 주님에게 받은 것이 있으면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뭐라고 하든지 그것은 자기 관심밖에 있다는 말이다. 자기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는 자기가 알고 말이다.

(갈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 서론은 이제 그만 하고 !!

이제 서론은 그만하고, 우리 교재 91페이지를 시작하겠는데, 그렇다면 이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예언을 해서 마지막으로 천국과 지옥으로 분류작업을 하는데, 아까도 말했지만 그 중간 중간에 분류작업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분류작업의 중간 중간에 침투되는 기준은 무엇인고 하니, 우리가 십자가를 향해서 달려간다는 것은 아는 것인데, 그러면 그 십자가 이전 중간에 개입되는 것이 무엇이기에 또 다시 분류가 되는지, 마치 핵분열을 하듯이 말이다.

◈ 십자가 사건 이전의 정사와 권세 !!

십자가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고 하니 정사와 권세가 있었는데, 이것이 골로새서 2장에 나오는데, 15절인가에 보면 나오는데, 이 십자가가 정사와 권세를 극복했다는 것이다. 정사는 정치이고, 권세는 정치적인 힘을 의미하고 말이다.

(골 2: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골 2:15)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예언한 것이 있는데, "나를 이방인의 손에 넘기우리라" 라는 것이 말이다. 제자들을 보고서 하시는 말씀이, "얘들아, 나는 곱게 가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은 나를 이방인들의 손에 넘겨주겠고, 그래서 나는 고난을 받아서 죽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라는 것을 미리 예언했다는 것이다.

(막 10: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막 10: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 예수님이 왜 이방인의 손에 넘겨지는가?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어져야만 하는가? 유대인들이 나쁜 놈이라면, 유대인들 손에 넘겨져서 죽어서 그들을 작살내든지 하지 말이다. 그런데 왜 이방인들에게 넘어가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도대체 정사와 권세와 무슨 관련이 있느냐는 말이다.

◈ 십자가는, 이 세상의 모든 정사와 권세를 초토화시켜 !!

사도바울은 십자가를 해석할 때 이 세상의 모든 정사와 권세를 초토화시키는 것으로 보았는데, "너희들은 저리가" 라고 하면서, 전혀 다른 차원으로 도약하고 상승해서 날아가 버리는데 말이다. 이렇게 다른 영역에 도착한 것을 십자가로 보는데, 저쪽은 아직 정사와 권세에 놓여있고 말이다. 하지만 십자가의 세계에게는 더 이상 정사와 권세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그것들과는 전혀 무관한 다른 세계를 이야기하는데 말이다.

◈ 난데없이 이방인이 왜 끼어 드는가?

십자가를 그렇게 정사와 권세로 해석하는 근거가 바로, 예수님이 이방인의 손에 넘겨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만히 있는 이방인이 왜 끼어 드는가? 유대인들이 자기 손으로 하면 되는데, 왜 이방인의 손에 넘겨지느냐는 것이다. 사도신경에도 나오듯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이 바로 예언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예언 속에, 왜 이렇게 이방인의 손에 넘겨지고 살해를 당하는 것이 들어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유대인들에게 묻는 식으로, 왜 그렇게 스토리가 짜여져 있느냐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하셨느냐는 것이다. 그것이 곧 예언인데, 그러니 도대체 어떤 분류작업을 위하여 그런 테마가 그 안에 들어갔어야 했느냐는 것이다.

이 대목이 어렵기 때문에 좀 쉽게 하기 위해서 요나서를 보겠는데, 요나서 4장을 찾아보자.

(욘 4:1)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욘 4:2)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욘 4:3)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욘 4: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하시니라

여기 2절에 보면 요나가 말하기를,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라고 하는데, 이것이 맞는 말인가? 틀린 말인가? 분명히 맞다는 것이다. 역시 요나가 선지자다운데, 요즘 말로 하자면 신학박사(?) 답다는 말이다.

◈ 요나의 성냄에 대해서 !!

그런데 여기 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는고 하니,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라는 것인데, 이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요나 자기가 깨달은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이라면, 그렇다면 감사해야 하는데, 그런데 자기는 죽는 것이 더 낫다고 하면서 왜 화를 내느냐는 것이다.

요나가 왜 이렇게 성을 내는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화를 왜 내는가? 왜 격분하는가? 이것은 바로 하나님과 같은 영역에 속한 것이 아니라, 다른 영역에 있으면서 그 다른 영역의 하나님을 평가하고 해석하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 예수님은 스카이콩콩 매니아 !!

예를 들어서, 같은 달에 있으면서 달이 이러 이러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에 서서 달을 보고 관찰하면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달에 머무는 십자가가 아니라, 직접 지구에 와서 이 지구를 온통 다 돌아다니면서 콩콩거리는데, 마치 스카이콩콩을 타고 돌아다니듯이 구멍을 마구 뚫어놓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달로 훌쩍 가버리는 십자가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알고 하나님 은혜를 알고 하나님의 자비를 안다고, 그렇게 백 날을 안다고 이야기해도, 하지만 이렇게 자기가 속해져 있는 영역이 십자가에 의해서 박살이 나고 구멍이 뻥뻥 난 것을 요나가 참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런 것인데, "하나님, 당신이 뭔데 내 영역에서 내가 살아가는 재미를 묵사발을 만드는가?" 라는 말이다. 즉 "예, 하나님 참 잘했습니다. 은혜롭고, 자비롭고,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차라리 나를 죽이소" 라고 말이다.

◈ 요나는 패역한 이스라엘의 대변자적 선지자 !!

바로 이러한 요나의 심리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습인데, 즉 요나가 다시스로 내뺐다는 것이, 단순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차원이 아니라, 지금 요나는 패역한 그 당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대변자로서의 선지자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여호와를 모를 리가 있는가? 아침저녁으로 제사를 드리는데 말이다. 하지만 백 날을 알아봐야 자기 영역을 고수하는 것이고,

이것을 다시 적어보면, 요나의 입장은 자기 영역을 고수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이런 자기 영역을 고수하는 요나가 지금 대표자가 되어있는 그런 이스라엘을 화가 나도록 만드는데, 즉 분노하도록 만드는데 이 십자가가 스카이콩콩처럼 '뽕' '뽕' 구멍를 내면서, 그런 역할을 감당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예수님이 수로보니게 여인에게처럼 "너는 개다" 라고 말하는 것이 일종의 구멍(?)인데, 자기를 개라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런데 그런 구멍나는 소리에 대해서, '맞습니다' 라고 기뻐하는 자가 누구냐는 것이다. "저는 주님에게 당해도 당연합니다" 라고 수용할 자가 말이다.

◈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가 다 정사와 권세에 예속 !!

여기에서 이 십자가가 기존의 유대인들에게서부터 먼저 소송이 걸려서 시작이 되는데, 이것이 이방인에게까지 확대가 되어서, 결국은 십자가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가 다 같은 자기 영역, 즉 자기들의 정치력과 힘에 의해서, 즉 정사와 권세에 예속되어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이 십자가는 십자가만의 자기 세계를 따로 장만해서 떠나버린다는 것이다.

◈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늙어간다 !!

다시 말해서, 율법이 없는 이방인조차도 그들이 백지상태가 아니라 이미 그들을 점령한 힘이 있다는 것이다. 제가 이것을 어제오전에 설교하기를 '죽음의 세계' 라고 표현을 했는데, 예를 들어서, 아이의 경우에 그 아이는 작년하고 올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것을 두고서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늙어간다" 라고 설교를 했는데, 딸 아이 같은 경우에는 19세 정도가 되면 한참 예쁠 때인데, 그런데 몇 년이 지나면 부모가 시집을 가라고 닦달을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누가 뭐라고 해도 그 아이는 늙어가니 말이다. 이렇게 '늙어간다' 라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뜯어간다' 라고 할 수 있는데, 즉 죽음의 세력이 뜯어 간다는 것이다.

◈ 아, 뉴질랜드에 가고 싶어 !!

누군가가 말하기를, 뉴질랜드에 가면 참 경치가 좋다고 하는데, 그런데 그런 뉴질랜드의 경치를 바라보는 자기 자신은 늙어 가는데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뉴질랜드에는 환경이 좋아서 아름다운 꽃이 피지만, 하지만 자기 얼굴에는 죽음의 꽃이 피는데 어떻게 하느냐는 말이다.

요즘에는 사우나 같은 곳에 가면, 발에 무좀이나 피부병이 있는 사람들이 어항 같은 곳에다 가만히 발을 담그고 있으면, 그것을 뜯어먹어서 피부병을 낫게 해주는 물고기가 있어서 인기가 제법 좋다고 하는데, 물론 엉터리일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말이다.

이와 같이 자기가 죄를 짓고 나쁜 일을 의도적으로 꾸미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가만히 있어도 죽음의 세력이 와르르 달려와서 자기를 뜯어가고, 즉 해체해버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체해버리면 몸이 불편하고, 그렇게 되면 정신도 오락가락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오락가락하면 화딱질이 나고, 그렇게 되면 남에게 분풀이를 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죽음의 세계는 마치 피부병이 나면 그렇게 몰려들어서 그 부위를 뜯어먹는 고기처럼, 그것을 '무슨 피쉬' 이라고 하는데, 지금 보이지 않는 죽음의 세력이, 즉 정사와 권세가, 이것이 사도바울에 의하면 악마의 세상 신이 되는데, 그것이 와락 달려들어서 자기를 마구 뜯어먹는다는 것이다.

◈ 마구 뜯어 먹히고 계속 먹혀야 !!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대처하기를, 그렇게 뜯어 먹히라고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사도바울의 십자가 해석이 독특한데, 남들은 자기를 왜 죽이느냐고 난리인데, 그러나 사도바울은 자기는 죽고 싶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많이 좀 와서 제대로 다 뜯어먹으라는 것이다. 옛날의 냄새나는 옷은 벗어버리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싶다는 말이다. 자기는 소원은 죽는 것이니 말이다.

사도바울의 이런 이야기가 개인적으로 자연을 노래하고 인생이 무엇인지, 그런 것을 숙고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십자가라는 하나의 예언에 의해서만 해석이 되고 도출이 되어야, 그렇게 해야만 십자가가 제대로 정립이 된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십자가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산에 가서 도를 닦아서 "아하, 인생이란 허무하구나" 라고, 자기가 그렇게 깨달아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하나님께서 분류작업을 하시는데, 바로 그러한 십자가의 원리원칙을 준수하면서, 그것을 십자가의 힘으로 배출작업을 하고 있으니, 우리는 저들에게 마구 뜯어 먹히면서 나올 것은 오직 십자가밖에 없다는 것이다.

◈ 십자가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

그렇다면 제가 이렇게 십자가에서 정사와 권세를 이야기하고 이방인을 언급한 것은, 그 취지가 무엇인고 하니, 이 십자가는 단순히 우리가 구원받는 차원이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것을 다 대체할 만한 새 하늘과 새 땅이 거기에 다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십자가라고 하는 것이, "목사님, 무엇을 믿으면 구원이 됩니까? 십자가를 믿을까요, 다른 것을 믿을까요?" 라는 것이 아니라, 즉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에 무엇을 더 추가해서 십자가를 알면 되겠다" 라는 것이 아니라, 이 십자가는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대체해도 괜찮을 만한 새로운 정사와 새로운 권세가 십자가 안에 이미 다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는 기존의 정사와 권세를 새로운 정사와 권세로 바꿔치기를 하는, 그런데 그것을 우리보고 그렇게 바꾸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도록 하는 힘이 바로 이 십자가에게 나오는 능력이고 힘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평소에 이런 십자가의 힘을 너무나도 과소평가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 내 마음속의 십자가 ??

우리가 이 십자가에다 아무리 무엇을 추가하려고 해도, 그것이 서로 질적으로 다르기에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그런데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서로 섞여도 무방한 가구처럼 생각한 적이 없었느냐는 말이다. 십자가가 밀고 들어오면 기존의 것들은 다 깨어지고 부수어지고 박살이 나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십자가가 들어올 수 있는 자리를 하나 따로 마련하면 되는 줄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 마음속에 십자가의 자리를 하나 마련해놓고, 자기는 딴 짓을 해도 되는 것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그것이 과연 사도바울에게 통하겠는가? 사도바울은 그렇게 보지 않고, 정사와 권세를 이미 다 벗어버렸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골로새서 2장에서 말하기를, 그 어떤 법이든지 철학이든지 간에 십자가를 아는 자에게는 더 이상 올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식일이나 절기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골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골 2: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골 2: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 십자가 고유의 능력으로 !!

그러니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라는 것 등의 율법이 십자가의 새로운 힘과 섞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사도바울이 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아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알면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즉 십자가 고유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 또 다른 개념의 정사와 권세 !!

이러한 십자가 고유의 능력 흔히들 사랑의 능력이라고 하는데, 그러나 이게 기존의 정사와 권세와는 다른 개념이기 때문에, 사실 이런 말을 하기가 참으로 주저되는데 말이다. 아무튼 제가 여기서 정사와 권세의 내용에 대해서는 다 이야기를 하지 않겠는데, 그것은 이미 철학과 신학의 허상을 이야기할 때 했고 말이다.

그것을 이야기하려면 자본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해야하고, 그리고 정사와 권세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즉 힘은 법에서 나오는데, 인간은 왜 법은 만들어야 하고, 그리고 인간은 왜 법이 없이는 살지 못하는지를 말이다. 그런 것을 다 하려면 주제가 너무 넓어지니까 곤란하다는 말이다. (그래도 할 것은 좀 하고 지나갔으면 좋겠는데, 부탁해요!)

◈ 드디어 본론으로, 사단의 정치적 제안 !!

이제 우리 교재 91페이지의 '정치적 제안'을 살펴보자.

** 사탄은 정치적 지도자 상으로서의 메시아 상도 제안했다. 권세와 영광을 아울러 누리고 있는 메시아이다. 사탄의 세상에는 권력과 거기에 맞는 영광스러움이 없으면 정치력과 지도력을 상실한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미리 언질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메시아 노릇을 제대로 하여 현재 권세를 장악하고 있는 사탄 자신에게 굴복하라고 한다. 그래야 한 인간으로서 이 땅에서 안정성을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들은 자기 영광을 위해서 정치력이 동원된다는 것인데, 여기에서 요한계시록 2장을 보면,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계 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그리고 요한계시록 3장에도 보면 나오는데, 지금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데, 요즘은 정신이 어디로 자꾸 도망을 가서 큰일인데, 아무튼 3장에도 나오는데, 믿습니까? 서로 다 같은 이야기인데, 여기 3장 9절에 보면 있다는 것이다.

(계 3: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그런데 교회에서 목사가 사단을 이야기하게 되면, 교인들은 꼭 누군가를 지적해서 이야기해 달라고 하는데, 즉 "누가 사단입니까? 좀 나오라고 하세요. 그래서 그 사람만 제거하면 되지 않습니까?" 라고 말이다. 그런 인식이 있는데, 하지만 어떤 특정인이 악마를 대체할 수 있는가? '적그리스도' 라고 하면 몰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 악마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모든 인간을 다 조정하고 하는데, 그런데 어떻게 어떤 특정 인물을 지적해서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특별히 머리에 뿔이 달리고 괴물과 같이 흉측하게 생긴 것도 아닌데 말이다.

◈ 악마는, 정사와 권세를 가지고 !!

지금 예수님이 광야에서 만난 것은 악마 그 자체인데, 그런데 그 악마가 악마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를 가지고서, 즉 이 세상에서 정치적 권력을 덧입고 나왔다면, 결국은 악마의 모임에 소속된 사람은 어떤 것을 앞장세운다고 하는 것을 교회는 안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에서는 어떤 특정인을 지칭해서, "저 사람이 악마가 맞습니까?" 라고 질문하면 곤란하고, 악마가 활동할 때는 이러 이러한 양상으로 할동하고, 그래서 자기의 정체를 드러낸다고 하는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교회는, 악마가 어떠해야 함을 염두에 두어야 !!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서 이미 교회를 말하면서 악마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악마가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교회다운 것이지, "아이쿠, 무섭게 악마 같은 것은 생각하지 맙시다" 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교회라고 하면, "아하, 이런 이런 방식으로 악마가 일을 하는구나" 라고 하는 것이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데, 즉 그런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과 부합이 된다는 것이다. 교회라고 한다면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땅은 땅만의 원리가 따로 있다. 그 원리는 악마와 예수님이 대면하면서 밝혀졌다.

◈ 땅은 땅만의 원리가 따로 있다 !!

여기에 "땅은 땅만의 원리가 따로 있다" 라고 문장은 간단하게 되어있는데, 여기에 대해서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제국', 또는 '혁명의 시간'과 같은 책들을 보고 정리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사실 네그리의 '혁명의 시간'은 너무 어려워서, 나름대로 정리는 할 수 있어도 여기에서 강의를 하기에는 힘들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땅만의 원리가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알아야만 하는데, 사실 여기에 대해서는 우리가 철학을 통해서 그동안 많이 해온 것이지만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악마는 예수님에게 무엇을 제공하는 대신, 무엇을 포기하도록 원했다. 즉 땅의 권세를 제공하겠다는 제의와 함께 아버지의 뜻을 포기하도록 한 것이다. 악마가 제안하는 취지는 "땅은 이미 하늘과 결별했다. 땅은 땅대로 존속해야 될 전혀 다른 세계이다" 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마저 이제는 이 땅의 사람이 되었기에 이 땅의 임금에게 고개를 숙이고 땅의 말을 들어야 비로소 '산다'는 것이다.

◈ 예수, 너도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산다' 라고 하는 새로운 개념이 예수님이게 강요되는데, 즉 "예수 너도 살아야 하지 않는가?" 라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아담의 속성을 입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렇게 산다고 하는 것이 제일 급선무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아버지 뜻은 여기에 들어올 수 없는데, 왜냐하면 살기 위해서 아버지의 뜻을 포기해야 하기에 말이다.

◈ 하지만 성도는 이미 살았던 사람 !!

예가 좀 그렇지만, 주일성수를 위해서 회사를 그만 둘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숙직도 하지 않고 수요일 저녁에 교회에 가면 시말서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제가 그렇게 해서 시말서를 썼는데, 우리는 은근히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좀 해주기를 기대하지만, 그러나 그런 일은 없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앞으로 살아야 할 사람이 아니라, 이미 살았던 자들이기에 더 봐주고 말고 할 게 없다는 것이다.

구약의 다니엘의 세 친구는 앞으로 살아야 할 사람이기에 주께서 불 속에서도 함께 하셨지만, 그러나 이미 신약의 성도의 경우에는 죽은 것이 산 것이 되기 때문에, 그런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이상 스데반 집사처럼 돌에 맞아 죽든지, 아무튼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거기에 무엇을 더 보태 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집에 TV를 새로 마련했다면 기존 TV가 나오든지 말든지 그냥 바꾸면 되지, 있던 TV가 고장났다고 군지렁거릴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아니, 어디가 고장났지, 왜 안 나오지? 기도라도 해야 되나?" 라고 하면서 고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철저하게 땅의 사람이 되어야 함으로 하늘은 그만 잊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악마의 제안을 거부했다. 예수님은 자꾸만 하늘과 연결시켜서 자신을 드러낸다.

◈ 악마 - 하늘은 그만 잊어라 !!

그러니 악마가 이야기하는 '산다' 라는 의미가 무엇인고 하니까, 철저히 하늘의 것은 잊으라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러한 악마의 제안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자기를 하늘과 연결시켜, 하늘의 유일한 통로로서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천국은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은 바로 너희들 안에 있는 내가 천국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하늘나라를 쳐다보는 사람에게, 그 하늘나라가 그만 이 땅에 뚝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장차 올 천국에도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세례요한은 "회개라,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했는데,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천국이 너희 안에 왔다" 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태복음 마지막에 보면 뭐라고 했는가?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는 이미 내 백성이다" 라는 것이다. (어디??) 그래서 12제자는 "이것이 천국이다" 라는 사실만 증거할 뿐인데, 물론 그 당시엔 11제자이지만, 아무튼 천국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이미 왔음을 증거했다는 말이다.

◈ 예수님의 '산다' - 나와 함께 !!

그렇다면 듣는 사람이 질문하기를, "어떻게 천국에 들어가는가?" 라고 하면, 우리 제자들의 말을 듣는 사람은 곧 예수님의 말을 듣는 것이고, 즉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서 영접하는 자에게는 주님이 그와 더불어서 살아간다" 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산다' 라는 의미이고, 천국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목사님, 좀 알기 쉽게 해주세요" 라는 말들을 종종 듣는데, 그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이미 온 천국에 들어가야 되고, 그 천국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영접해야 그분의 백성이 된다는 것인데, 그러니 이것은 사실 쉽고 어려운 차원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을 알기 쉽게 해달라는 것은, 지금 자기는 밖에 있는데, 어떻게 좀 쉽게 해서 안으로 들어오게 해달라고 하는 것인데, 그러니 그것은 진짜 곤란하다는 것이다. 단지 이런 획기적임이, 이것을 '전복' 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그 사람을 확 덮쳐버릴 때만 가능하고 말이다.

◈ 예수님이, 사단을 이 세상의 권력자로 인정 !!

아무튼 이 정치적 제안에서 예수님이 인정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사단을 이 세상의 권세자로서 인정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정사와 권세를 잡은 자는 인간이 아니라, 다름 아닌 악마라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인들과 이방인의 지도자인 본디오 빌라도를 악마의 앞잡이로 보고, 그런 악의 앞잡이로 등장하는 것은 정사와 권세자들의 모양새를 띠고서, 그들은 이 땅의 세계를 위해서 충성과 봉사를 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러한 자들로부터 미움과 핍박을 받는 가운데서 천국이 이 땅에 스며드는데, 바로 그런 방식으로 천국이 이루어지고 말이다.

◈ 몰트만의 정치적 종말론인가?

이렇게 되면 몰트만이 말한 바와 같이 정치적 종말론이 되는데, 하지만 몰트만의 문제점이 무엇인고 하니, 정치적 종말론이라고 할 때 그 정치가 구분이 되는데, 즉 여기서 여기까지는 정치이고, 그 다음부터 여기까지는 경제이고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말씀의 예언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몰트만은 자기가 사회철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여기서 여기까지는 정치영역이고, 또 여기서 여기까지는 경제영역이고, 그리고 여기서 여기까지는 종교영역이라고 그렇게 구분을 했는데,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 겹치게 하셨는데, 정치적으로 봐도 되고, 경제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봐도 되는데, 그렇게 이 세상은 악마가 만들어내는 다양성이라는 것이다.

◈ 마트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의 두려움 !!

예를 들어서, 마트에서 일하는 한 아주머니가 자기 아이가 다니는 학원 선생님이 와서 물건을 그냥 두 개를 서비스 차원에서 빼주고 계산을 했다면, 그리고 그 두 개는 분실한 것처럼 해서 주인을 속였다는 것이다. 선생님에게 자기 아이를 좀 잘 봐달라고 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것을 정치적이나 경제적으로 본다면 아주 개인적이고 사소한 것인데, 본인도 그렇게 알고 했는데, 국가를 전복하려든지 북한을 찬양한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냥 학원 선생님에게 잘 보이려고 말이다. 이것을 정치, 경제, 이렇게 따로 따로 나누어보면 작고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주님의 사랑 안에 있으면 두려움이 없어 !!

그러나 이것이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어떠한고 하니, 세상 전체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그 아줌마가 왜 그렇게 했는고 하니, '산다' 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러했는데, 그런데 요한일서 4장에 보면 뭐라고 했는가? 주님의 사랑 안에 있으면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니 그 아줌마의 문제는 절도죄의 차원이 아니라, 자기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그 아줌마를 평생동안 감싸고 왔는데, 자기가 정체를 모르는 두려움, 밑에서 밀고 올라오는 두려움이 말이다.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면서 즐겁게 놀면서도 밑에서 올라오는 두려움을, 개콘을 보고서 깔깔 넘어가면서도 밑에서 밀치고 올라오는 두려움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 천 목사님, 호주가 좋지요?

천 목사님이 이번에 호주를 갔다오셨는데, 물론 저는 가보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호주나 우리나 살아가는 모습이 비슷하지 않던가요? 아무 이유도 목적도 없이 그냥 살아가는 것인데, 아침에 일어나서 회사로 출근하고, 또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고 말이다. 이렇게 살아가면서 날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치고 올라오는데, 호주나 미국이나 다 마찬가지인데, 이민을 간다고 해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두려움이 있는 곳에 심판이 있다고 하는데,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전체로 다 주시려고 한다는 것이다.

지금 제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이것이 그냥 작은 문제라고 하면 그 부분만 치료하면 되는데, 하지만 아무리 목사라고 해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생긴다고 하면, 그래서 아예 50년을 살던 100년을 살던 인생전체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즉 십자가의 깊이와 넓이로서 왕창 감싸 안아 버린다는 것이다. 마치 정사와 권세를 감쌌듯이 말이다. 그래서 여기에 정치, 경제, 사회, 그 어떤 문제가 일어나도 두려움이 없는 성도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작전이고 말이다.

◈ 바꿔, 바꿔, 다 바꿔 !!

그러니 우리의 체질을, 우리의 영역 자체를 완전히 바꾸어버리는 것인데, 두려움과 공포로 둘러싸여져 있는 영역을 주님의 용서와 사랑으로 말이다. 용서해주고, 또 용서해주는데,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은혜를 주시고, 사랑을 주시고, 자비를 베푸시고, 또 용서를 하시고, 아예 죄를 묻지도 않는데, 우리가 정치를 하든, 경제를 하든, 무엇을 하든지 간에 말이다.

그것을 다 포함을 해서 한꺼번에 주시는 것이 예수님의 작전인데, 그러니 언제나 악마와 부딪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악마는 더욱 더 우리를 유혹을 하는데 "예수를 믿지 마라. 실패한다. 반드시 죽는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사단의 기존전략이 바로 이런 두려움인데, 그것을 계속해서 써먹는다는 것이다. "예수를 믿지 마라. 이 세상에서 소외된다. 예수를 믿고 쫓겨나면 어떻게 살래? 미리 정해진 것은 없다. 모두가 다 하기 나름이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따지고 보면 베르그송의 주장도 이런 것인데, 그 안에는 두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모든 철학의 밑바탕에는 이렇게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있는데, 물론 그 이유는 모르고 말이다. 들뢰는 그것을 욕망이라고 하는데, 그 욕망이 왜 두려움을 주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불교도 그렇고 말이다.

◈ 아, 남대문은 불타고 있는가?

제가 어제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혼이 났는데, 밤 10시부터 말이다. 왜냐하면, 남대문이 불에 탔는데, 그야말로 400년 동안의 사람들의 마음속의 우상인데 말이다. 그것이 조선의 역사와 전통의 상징물로 남아있었는데, 웬 미친놈이 하나 올라가서 휘발유를 부었는지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그야말로 '밤새 안녕' 이라고, 하룻 밤사이에 와르르 무너졌다는 것이다.

소방관이 흰 연기가 날 때부터 헤매기 시작한 것부터 해서, 다 타서 무너질 때까지를 생생하게 지켜보았는데, 그렇게 무너질 때 인간에게 뭔가 '뻥' 하고 뚫려있다고 하는 것인데, 그래서 살아가는 보람이 즐거움이 완전히 날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그런 일들이 벌어져야 그분이 값없이 주는 생명수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런 남대문이 불타버리니, 그 뒤에 놓여있는 진짜 스크린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평소에는 마귀가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걸쳐놓은 것들이 그 값없는 생명수를 가로막고 있었는데, 그리고 인간들이 그것을 붙잡고 있었는데, 그런데 하나님이 불태워버리니, 스데반 집사처럼 자기가 돌에 맞아서 죽으니 비로소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가 불에 탈 때도 롯의 아내는 뒤돌아볼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 자기의 낭만과 모든 추억들이 다 들어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뒤돌아보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남대문이 불에 타도 뒤돌아보지 말고 잠만 쿨쿨자면 되는데, 물론 저는 설교 때문에 잠을 자지 않고서 다 지켜보아야 했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원래 불로 심판을 받아서 다 없어져야 할 것이니 말이다.

◈ 인간의 꿈과 희망을 짓밟은 사도가 어떻게 !!

그러니 그런 것에 미련을 다 끊고서 주님의 약속만 붙들고 살아가면 되는데, 그것이 곧 베드로후서의 이야기이고 말이다. 그러니 베드로 사도는 맞아죽어도 당연하다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인간의 꿈과 희망을 다 짓밟고서 어떻게 살아남기를 바라겠는가?

사도 베드로는, 그런 것은 불로서 다 태워지니 거기에 희망을 걸지 말고 새 하늘과 새 땅만을 바라보라고 한다는 것이다. 아마 우리교회에서 사도 베드로가 와서 설교를 했다면 무사히 돌아가지 못했지 싶은데 말이다. 그러니 성경을 본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아무튼 사단은 예수님을 회유하는데 실패했는데, 오히려 예수님이 사단을 나무라는데, "니도 나처럼 하나님만 섬겨라" 라고 말이다. 그러니 최종적인 것이 "하나님인가? 나인가" 라는 것인데, '나'에게서 나온 것이 계시인지, 아니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계시이냐는 것이다.

◈ 종교 전문가들과 벌인 주의 전쟁 !!

바로 그 계시에 대해서 우리 교재 93페이지에 보면 나오는데, 그것이 곧 '종교 전문가들과 벌인 주의 전쟁' 이라는 것이다. 이제 교재를 보자.

** [종교 전문가들과 벌인 주의 전쟁] - 이처럼 사탄은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 자기 세계의 붕괴를 미리 감지하게 된다. 곧 자신들의 종말이 이미 왔음을 안다. 여기서 마태복음 8장 29절을 보자.

(마 8:29) 이에 저희가 소리 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 우리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여기서 마귀가 무슨 말을 하는가?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라고 하는데, 정말로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하늘은 하늘이고 땅은 땅이듯이 말이다. 왜 하늘에 계신 분이 하늘에 그냥 게시지 왜 땅에 내려왔느냐는 것이다. 그냥 땅에 있는 자기들끼리 좀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말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오셨습니까?" 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마귀는 참 솔직한데, 이렇게 이야기하는 목사가 있던가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기존의 교회에서 설교를 하면, "너는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이다. 입을 다물라" 라고 욕을 듣는데 말이다. 하지만 마귀는 이렇게 솔직히 예수님에게 이야기를 다 하는데, 고수들끼리 깨놓고 하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마귀가 하는 말이 "당신은 당신이고 나는 나인데, 그런데 왜 이렇게 와서 저를 괴롭게 합니까? 마지막 때라고 해서 왔습니까? 물론 마지막 때에 제가 와장창 작살나는 줄은 알지만, 하지만 아직은 그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라고 말이다.

◈ 예수님 - 말씀에 응하게 함이러라 !!

그러니 십자가로 분류작업을 하기 이전에 이미 예수님이 움직일 때마다 펄럭 펄럭 계시가 나오는데, 그렇게 계시가, 즉 예언이 나올 때마다 "내가 온 것은 예언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왔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러함이다. 말씀에 응하게 함이다" 라는 것이다. 자꾸만 그런 말들을 갖다 부치는데, 그것이 바로 분류작업이라는 것이다.

◈ 파도처럼 밀려오는 두려움에 !!

우리 교재 '지옥의 하나님' 뒷부분에 보면 실제로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적어놓은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두려움' 인데, 그냥 두려움이 아니라 알 수 없는, 해결이 되지 않는 두려움이라는 것이다. 자기는 해결을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에 또 다시 파도처럼 밀려오는 두려움 말이다. 믿음으로 극복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에 또 밀려오고 말이다.

그러니 이것은 그 사태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그 사태를 보고 두려워하는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일깨워주기 위한 하나님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밀려오는 파도가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 기드온 전쟁 - 믿음 없는 '나' 자신과의 전쟁 !!

어제 오후시간에 기드온의 전쟁에 대해서 설교를 했는데, 그때 적들이 미디안 군사들인데, 이때 스코어가 '4500:1'로 싸워야 하는데, 그런데 놀랍게도 기드온이 이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드온이 이겼다고 해서 대단하고 여기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사실은 처음부터 그 미디안 군사들을 쓰레기로 여기고, 허수아비로 여겼어야 할 민족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저쪽에서 밀려오는 파도에 겁을 집어먹고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막상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께서 나타나니까, '4500:1'이 문제가 아니라, '4500000:1'이 되어도 전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허수아비이니 말이다. '휙' 하면 모두가 다 넘어간다는 것이다. 아니, 칼도 한번 휘두르지 않고 자기들끼리 다 싸워서 넘어가고 쓰러졌다는 것이다.

◈ 하나님의 전쟁구조 - 하나님 의와 인간 의의 싸움 !!

하나님의 전쟁구조가 어떠한고 하니까, 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의와의 싸움인데, 인간의 의는 더럽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 앞에서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인데, 이런 안목이, 즉 이런 믿음이 이스라엘에게는 없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자기 의로서 다가오는 사태를 극복해보려고, 그래서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아둥바둥 애를 썼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얼마나 한심스럽겠는가? 그래서 "에라이 이 이스라엘아, 아직도 나의 의를 모르고 너희들의 의로 대체하려고 하는가? 비켜라, 비켜. 내가 한다. 너희들은 그냥 횃불과 항아리와 나팔만 들고 폼만 잡아라" 라고 한다는 말이다.

◈ 그림자에 놀라는 인간들 !!

그렇게 하니, 평소에 그렇게 이스라엘을 겁주고 두렵게 만들던 그 실체들이 나중에 보면 다 허상으로 바뀌게 되는데, 물론 처음부터 허상이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아, 그들은 그림자였구나. 우리가 그림자를 보고 놀랐구나" 라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전쟁에서 이기고 나서 말이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은 "실제하는 하나님의 십자가 의는 모르고, 즉 십자가의 의는 바라보지 않고 사람이 주는 정사와 권세에 의지해서, 언제나 그렇게 겁을 집어먹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구나" 라고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바로 그런 것을 깨닫게 하는 전쟁이 '기드온 전쟁' 이라는 말이다.

◈ 빨간 우체통보다 못한 내 인생 !!

그래서 제가 오후설교시간에 예를 들기를, 하나님의 전쟁구조는 빨간 우체통과 같다고 했는데, 무슨 말인고 하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빨간 우체통은 항상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그대로 빨간 우체통으로 말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떠한가?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분다고 짜증을 내고, 비가 오면 지가 온다고 짜증을 내고 말이다. 하지만 빨간 우체통은 어떠한가? "비가 오면, 비가 오는 갑다" 라고 하고, "눈이 오면, 눈이 오는 갑다" 라고 하는데 말이다.

이렇게 언제나 하나님의 의가 인간의 의를 이기는 구조인데,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농부의 경우에, 조금만 돼지 값이 내려가도 난리를 치고, 또 소 값이 올라가면 좋아서 난리이고 말이다.

그리고 목사는 교인이 몇 명이 더 늘어나면, "야, 복음을 전했더니만 이렇게 되었구나" 라고 하면서 입이 째지고 말이다. 교인이 좀 줄어들면, "아, 목회를 도저히 못해먹겠다" 라고 하고 말이다. 그러니 빨간 우체통이 아니라, 전부가 다 자기의 축적된 의로서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휘둘러서 잡아보려고 말이다. 그 얼마나 부질없는 짓들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 사단도 하는 이야기를 침묵하는 목사들 !!

교재 93페이지에 보면 사단이 나오는데, 아까도 말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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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