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3장 13- 19절 제목 :12제자의 할 일
막 3:13-19 (12제자의 할일)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41)
본문 : 마가복음 3장 13- 19절
제목 : 12제자의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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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8-05-18 13:33
12제자의 할 일
2008년 5월 18일 본문 말씀: 마가복음 3;13-19
(막 3: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막 3: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막 3:15)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막 3: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막 3: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막 3: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이며』
(막 3:19)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러라』
예수님께서 일부 사람을 뽑았습니다. 모세의 경우를 보면 그는 하나님과 홀로 만나고 난 뒤에 하늘 나라에 책이 있음을 알았고 그 책은 영생 얻기로 작정된 자들의 리스트였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자신이 원하는 자들을 뽑았습니다. 물론 가룟 유다는 지옥가기로 작정된 자입니다.
이처럼 12제자들의 등장은 인간의 운명이 자신이 개척해 나가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내가 예수를 믿으면 돼잖아”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믿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은 성령의 선물로 주어지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 차이점이 뭘까요?
내가 믿는 믿음에서 ‘내가 구원받는다’는 일이 나의 일이 되어버립니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간혹 내가 지쳐서 나태했다고 여기게 되면 구원도 도중 포기가 될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여기에 비해서, 성령의 선물로 주어지는 믿음이란, 구원의 일이 나의 일이 아니라 나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의 자신의 과제요 숙제입니다. 즉 구원은 내가 나에게 손을 대어서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손을 대어서 구원해내는 작업인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믿어지는 것이 바로 성령을 통해서 주어진 믿음입니다. 12제자들은 모세처럼 아주 낯선 현실을 우리들에게 보여줍니다.
사람에게 진정한 현실이란 자신의 발 밑이 멈추지 않고 부지런히 죽음 쪽으로 움직인다는데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 죽음이란 참으로 기가 찰 노릇입니다. 분명 제가 지금 여기 있습니다. 만약에 내가 죽는다면 오늘 내가 있었다는 이 사실이 아무런 힘도 되어주지 못하고 소용없는 지난 간 일이 됩니다.
사람들이 평생을 오직 자신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투자하고 헌신해도 어느 날 죽는 순간이 오게 되면 그 투자한 모든 일들이 ‘참 대단하다’고 자부할 그 생각해줄 당사자가 사라져버리는 것이 됩니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제일 심각하고 진지하게 생각해 줄 내가 사라지는 마당에 지난 날의 고생과 노고의 가치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12제자들을 뽑았다는 말은 이제 자기만 투자하면서 살던 그 노선에서 다른 노선으로 옮겨 탔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아무리 붓고 부어도 우리는 매일같이 본의 아니게 죽음쪽으로 미끌어내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 힘으로 멈출 수도 없고, 멈추겠다고 시도하는 그 순간에도 안 멈쳐지는 것이 우리네 팔자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생에 미리 마중 나중에는 것이 있습니다. 인생에는 두 가지 종류의 길이 있습니다. 자기 인생길에 십자가가 보이는 인생길이 있는 반면에 또 다른 인생길은 십자가가 보이지 않는 인생길이 있습니다. 처음에 손톱의 때처럼 작아보이던 십자가가 커다란 대문이 되어 우리를 반기고 환영하는 그런 통로 속으로 우리는 들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십자가가 없는 이들은 아무리 인생을 오래 살아도, 단지 내가 그동안 오래 이 땅에 살았다는 그 사실만 알 뿐이지 자신을 반기며 나오는 그 자도 만나지 못할 때, 그는 자신이 죽는 그 순간, 모든 지난 날이 다 허수고였음으로 동시에 날아가버리게 됩니다.
12제자들의 등장은 곧 지난날 구약에서의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와는 판이한 나라였음을 말해주는 현상입니다. 세상 나라들은 인간들이 왕이 되는 나라였음에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친히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홀로 계셨던 나라입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가 이스라엘을 건드리는 것은 곧 하나님 자체를 건드리는 것이 되었던 그런 나라였습니다.
이 말은 결코 이스라엘 백성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훌륭하고 더 뛰어나다는 말이 아닙니다. 신명기 9:5절을 보게 되면, “네가 가서 그 땅을 얻음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을 인함도 아니요 이 민족들의 악함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흠 어린양들이 제물이 되어 공중으로 재로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 덕분으로 그들은 용서와 생명을 보장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조차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사람의 왕을 그들의 우두머리로 삼을 때, 그들은 더 이상 십자가가 보이는 인생길을 가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목회자로서 매일, 매주 겪는 갈등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의 목회를 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의 목회를 할 것인가?’하는 겁니다. 사람의 목회란 사람들을 좋아라 하는 목회를 말하고 하나님의 목회란 하나님의 피로 앞장 세우는 목회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피를 앞장 세운다는 말은 곧 모든 인간은 차별 없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하고, 반면에 사람을 좋게 하는 목회라면 모든 인간들을 더 위대하고 훌륭하고 가치 있다고 부추겨주는 목회를 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차장에서 세차하는 기계 속에 들어가보세요. 차 안에 어떤 대단한 사람이 타고 있던 말던 큰 부러쉬는 허연 거품을 내뿜어면서 맹렬하게 돌아가면 차의 사발팔방을 씻어댑니다. 모든 띠끌과 먼저를 제거해내는데 분주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목회란 교회가 이런 곳임을 말해주는 장소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즉 피없이는 그 어떤 인간도 영생얻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어야 합니다.
진정한 하나님이란 ‘한 남자를 죽여버리신 하나님’입니다. 인간의 사적인 기대를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비켜가서 왠 한 남자를 죽여버렸습니다. 그 죽은 남자분으로 통해서 세상에 나타내셨습니다.
제자들은 처음에 자신들이 멀쩡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누가 더 멀쩡한가를 놓고서 시합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 앞에서 진정한 자신들의 본질을 알지 못했습니다. 물론 세상에서 멀쩡한 것이 자랑거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멀쩡한 인간이 아니라 예수님의 쓴 잔을 마시는 제자입니다. 곧 마음을 낮추는 자일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 비로소 자신이 땅의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만이 홀로 하늘로 들려올라야 될 자였습니다. 요한복음 12:32에 보면,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제자들은 구원을 받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쓴 잔을 마셔가면서 예수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비록 세상에서 버림받더라도 ‘내가 죽어 남이 산다’는 예수님의 속죄 정신으로 남은 인생을 살았던 자들입니다. 이 쓴 잔을 이제 우리가 마실 차례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흠모할 만한 것이 없이 오셔서 우리의 죄를 없애주신 예수님을 찬미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