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51:17-20 (분노의 잔)
사 51:17-20 (분노의 잔)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41)
본문 : 이사야 51장 17-20절
제목 : 분노의 잔
듣기 :
, 보기 :
이근호
08-05-07 20:58
진노의 잔
2008년 5월 7일 본문 말씀: 이사야 51:17-20
(사 51:17) 『여호와의 손에서 그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 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하였도다』
(사 51:18) 『네가 낳은 모든 아들 중에 너를 인도할 자가 없고 너의 양육한 모든 아들 중에 그 손으로 너를 이끌 자도 없도다』
(사 51:19)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당하였으니 누가 너를 위하여 슬퍼하랴 곧 황폐와 멸망이요 기근과 칼이라 내가 어떻게 너를 위로하랴』
(사 51:20) 『네 아들들이 곤비하여 그물에 걸린 영양 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웠으니 그들에게 여호와의 분노와 네 하나님의 견책이 가득하였도다』
이스라엘 나라는 단순히 신을 믿는 나라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하나님에 의해서 세워졌고 하나님에 의해서 다스리지는 나라입니다. 이런 점에서 다른 나라와 다릅니다. 이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서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어 “깰지어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 세계에 두 가지 현실이 생겨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즉 눈에 보이는 사람들만 의식하여 현실이라고 규정짓는 그런 현실관이 있는 반면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는 그런 현실관이 하나 있습니다. 이사야가 유다 나라에게 “깨어라”고 당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는 그런 현실관으로 돌아오라는 말입니다.
지금 유다나라는 흠뻑 취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 나라를 통해서 부으신 분노의 술잔을 마시고 정신이 혼미해져있습니다. 사람이 술을 마시면 비틀거리는 것처럼 유다 나라는 바벨론 나라의 압제와 구박과 기근과 황폐로 인하여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뭔가 뭔지 영문도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신상에 몹시 힘든 일이 발생하면, 본성상 오로지 자기 고통에만 집중에서 헤어나오려고 애를 쓰게 마련입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적어도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 나라 백성은 그래서는 아니된다는 겁니다. 그 혼미한 정신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통이 임하면 우선 살고보자고 설쳐대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다보면 자연적으로 자기에게 닥친 일, 이외에는 신경 쓸 여유가 없게 됩니다. 즉 자기 바깥의 일에 대해서는 무심할 수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이러다보면 자기만 편하면 그만이고 자기만 행복하면 사태는 원만하게 해결된 줄로 알게 됩니다.
하지만 유다 백성은 자기 자신만의 처지만 생각해도 괜찮은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세상의 중심 나라입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어떤 식으로 다루는가 하는 점을 시범조로 미리 들이닥치게 하는 그런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요약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가 됩니다. 이 말씀에도 자기 자신의 관심사에서 떠나 바깥에 관심을 가져야 함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이나 이웃은 모두 내가 아닙니다. 따라서 나에게 몰두하는 자에게는 이런 율법의 정신은 남의 이야기가 될 뿐입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 “깰지어다”라는 말씀은 우리 자신의 생각말고 우리 바깥의 생각을 해야해야 한다는 겁니다. 생각의 폭을 넓혀야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이란 마치 세탁기 속의 세탁조같이 함께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즉 세탁기 속에 양말과 남방셔츠를 따로 넣어도 세탁할 때는 함께 돌아가면서 세탁합니다.
결코 양말이 남방셔츠보고 자기만 세탁된다고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이와마찬가지로 이 세상은 신자나 불신자나 함께 돌아갑니다. 단 신자는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바깥에 하나님께서 벌리시는 작용을 압니다. 반면에 불신자들은 순전히 자기 일 밖에 모릅니다. 자기만 잘되면 세상 좋은 것으로 보고, 자기만 못되면 세상을 나쁜 세상으로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깰지어다'라는 말은 정신 차려라는 말입니다. 즉 유다 백성은 세상 백성들과는 달리 사명이 있다는 겁니다. 사명이란 자기 내부를 위함이 아니라 자기 외부를 위함입니다. 유다 백성들만 잘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장차 세상에 일어날 일을 미리 유다 백성에게 먼저 터지게 하십니다.
이런 점에서 유다나라는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는 나라입니다. 이 택함 받은 나라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다는 말은, 앞으로 온 지구상에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심판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는 전조요 징후입니다. 신약에 와서, 예수님의 십자가에게 주어졌던 무서한 하나님의 저주는 예수님에게만 아니라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모두 하나님의 무서운 저주가 떨어진다는 미리 말해주는 시발점이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부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부활이라는 사태가 일어남을 전조가 됩니다. 마치 감나무에 첫 번 감이 열리면 나머지 감들은 2차, 3차로 연이어 열리게 마련입니다.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 것은 그들로 하여금 자기 문제가 아니라 자기 바깥의 문제의 시발점으로 자신에게 그와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임을 알리는 조치입니다. 사람이 자기 문제에만 집착하면, 자신이 착하게 되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던지 간에 자기에게만 행운이 찾아오는 것으로 곡해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성도라는 이유만으로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가 견딜기 힘들 정도로 찾아듭니다. 히브리서 11:36-38에 보면,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정신을 하나님은 요구하십니다. 정신 차려야 합니다. 도둑이란 우리 사정과 사전에 협의해서 담 넘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도 도둑같이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깨어있으라고 하십니다. 네 위주의 생각에만 몰두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예수님에게 일어난 일의 연장이요 연속이요 반복입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를 봅시다. 사도 바울이 신앙이 없어서 죽을 고생을 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사도 바울 속에는 주님이 살아계십니다. 바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남은 고난을 자기에게 채우는 일생을 보내었습니다. 왜 그래야 하느냐 하면 눈에 보이는 인간들만의 현실말고 주님께서 친히 이끄시는 현실은 십자가의 고난과 영광이라는 진리를 전달하고 알려주기 위해 배치된 현실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비록 자기를 이끌어줄 든든한 자식조차 없는 그런 지경에 놓여 있는 유다 나라라도 정신이 깨어나면 그런 상황마저 하나님의 약속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환란 속에 있어야 비로소 소망이 느껴지는 법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환란이 결국 소망을 소망답게 하는 축복인 것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