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51: 4- 8 (놀라지 말라)
사 51: 4- 8 (놀라지 말라)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41)
본문 : 이사야 51장 4- 8절
제목 : 놀라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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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8-04-23 20:50
놀라지 말라
2008년 4월 23일 본문 말씀: 이사야 51:4-8
(사 51:4)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발할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사 51:5) 『내 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사 51:6)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 거한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사 51:7)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사 51:8) 『그들은 옷 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 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하나님은 쉬지 않고 계속 일해 오셨고 또 일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들만 일하고 마치 하나님은 손놓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오해가 생기는 이유가, 인간이 하는 모든 일들은 순전히 자신의 욕심에서 비롯된 일을 벌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습니다.
배에 물이 차는 복수가 심하면 나중에 터져버리듯이 아무리 교회 다니고 하나님을 섬겨도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욕망과 야심이 눈이 멀어 주를 섬기면 나중에 믿음에 파선해 버립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항상 예언의 말씀을 먼저 던져놓고 그 던져진 예언의 말씀을 성취해 나가는 식으로 일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식대로 하면 하나님에게서 율법이 나옵니다. 이 율법은 두 가지 일을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는 심판이고 이 심판의 기능을 통해 하나님의 의(義)를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 밖에 못합니다. 다른 일은 일체 못하십니다. 왜냐하면 다른 일을 예언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라면 이 율법의 일을 반가워하며 즐거워해야 합니다. 인생의 최고 행복이란 이처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확실히 알게 될 때입니다. 남김없이 알게 될 때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서 율법대로 의를 세우시면서 심판을 감행한다는 이 점을 반갑게 맞이해 버립시다. 그리고 그 일 속에 푹 잠수해 버립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규정하는 괴로운 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자신에 대해서 신경 쓰기 때문입니다. 자기 말고는 달리 최종적으로 달리 신경 쓸 것이 없기에 인간은 피곤에 지치면서까지 불행으로부터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하나님이 벌리시는 법대로 심판의 풀 장에 잠수했다고 보면, 위에서 법대로 심판, 옆에도 법대로 심판, 아래에도 법대로 심판을 맹렬히 하시는 그 확실한 점에 대해서 우리는 마음껏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주인인 무중력 상태에서 우주 유영을 하듯이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벌리시는 일에 그냥 맡겨버려야 합니다. 괜히 우리 자신이 나서서 의를 행한다고 하는 순간, 우리는 벌떼까지 덤벼드는 악마의 공격들 집중 얻어맞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양보나 타협이나 실수가 없이 철저하십니다. 완벽합니다.
이런 점을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또 하나, 하나님의 율법의 완성은 자기 백성들에게 하나님 자신의 의를 선물로 그저 주시는 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율법에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되 목숨을 다하여, 정성을 다하여, 몸을 다하여,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율법에 준해서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서 자신이 이룩한 하나님의 의와 거룩을 우리의 것으로 선물을 주시는 일을 완성해 버렸습니다. 바로 이러한 완성 안에도 우리는 풀 장에 잠수하듯이 푹 잠겨야 하는 겁니다. 이렇듯 예수님이 이루어내신 상황 안에서 성도는 더 이상 자기 규정이나 자기 규명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옛날 옛날 어느 마을에 복음을 사랑하기를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얼마 못가서 그가 운영하는 사업체가 사기를 당해서 부도가 났습니다. 그래도 그는 복음을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라는 경우가 이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 경우에는 성립하는 겁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옛날 옛날 어느 마을에 복음을 사랑하기를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 아내는 가출하고 자식은 사고쳐서 교도소에 수감되고 자신은 산 개간하다가 넘어져 반신불구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은 여전히 복음을 사랑하기를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했습니다’는 경우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자 여기서 여러분에게 숙제를 내어드리겠습니다. “어느 마을에 복음을 사랑하기를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자가 있었는데 …”라는 문장 뒤에 나오는 문장은 여러분이 상상해서 만들어 보세요. 인간이 견디기 힘든 그 어떤 참혹하고 비참한 상황이라도 좋으니 집어넣어 보세요. 그래놓고서도 앞에 있는 문장, 즉 “복음을 사랑하기를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것”에 본인이 해당되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놀라지 말라’고 당부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는 두 가지 점에서 놀랄 수밖에 없는 현상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하루살이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하루살이’라면 ‘하루살이’ 맞습니다. 누가 뭐래도 인간은 하루살이입니다. 이 하루살이 밖에 안되는 인간이 감히 하나님이 벌리시는 일, 즉 예언을 던져놓고 그 예언대로 일하시는 일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또 놀라운 일이 있는데 그것은 같은 하루살이 밖에 안 되는 우리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로움을 우리에게 무상으로 주셨다는 사실이 놀라운 일입니다. 따라서 성도의 입장에서 보면. 하루살이같은 인간들의 견해나 활동에 대해서 전혀 놀라지 말아야 하는 겁니다. 그들의 번창과 그들의 회식 도중에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에 놀라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 주심과 심판과 저주와 의를 모르는 자들입니다. 비록 자기들은 90평생의 수난과 드라마같은 변화에 감동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그리고 심판의 율법의 입장에서 보면 하루살이의 순간적인 하루살이 인생에 불과합니다. 의미없습니다.
성도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성도는 두 다리를 가지고 있다는 표현은 성도의 특징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성도는 코가 하나 라든지, 성도는 하루 세 끼를 챙겨먹는다든지 하는 것도 성도의 특색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진정한 성도의 특징은, 아무 것도 행한 것도 없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신 어린양의 희생 덕분에 하나님의 의가 주어져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자신을 스스로 규정하려 하지 마세요. 지옥으로 가는 자들은 그냥 고요하게 가지를 않고 반(反)-천국 운동을 벌리면서 갑니다. 하루살이를 늘리려고 합니다. 인간의 행함에 의미를 두려고 합니다. 우리는 그런 하루살이 말을 의식하지 맙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마귀의 활동도 하나님의 법대로 되어짐을 믿고, 그 와중에서도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용서함을 믿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