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14: 5- 9 (수수께끼)
삿 14: 5- 9 (수수께끼)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41)
본문 : 사사기 14장 5- 9절
제목 : 수 수 께 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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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8-04-20 22:34
수수께끼
2008년 4월 20일 본문 말씀: 사사기 14:5-9
(삿 14:5) 『삼손이 그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서 딤나의 포도원에 이른즉 어린 사자가 그를 맞아 소리 지르는지라』
(삿 14:6) 『삼손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어 손에 아무 것도 없어도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음 같이 찢었으나 그는 그 행한 일을 부모에게도 고하지 아니하였고』
(삿 14:7) 『그가 내려가서 그 여자와 말하며 그를 기뻐하였더라』
(삿 14:8) 『얼마 후에 삼손이 그 여자를 취하려고 다시 가더니 돌이켜 그 사자의 주검을 본즉 사자의 몸에 벌떼와 꿀이 있는지라』
(삿 14:9) 『손으로 그 꿀을 취하여 행하며 먹고 그 부모에게 이르러 그들에게 그것을 드려서 먹게 하였으나 그 꿀을 사자의 몸에서 취하였다고는 고하지 아니하였더라』
삼손은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나섰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블레셋이라는 나라의 압제를 받고 있습니다. 여기서 구원이란 당연히 삼손이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블레셋보다 더 세다는 것을 보여주면 됩니다. 삼손이 블레셋 여자와 사귀는 것도 배후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이스라엘을 건져내기 위한 조치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방식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들이 납득될 수 없는 비밀을 앞장 세워서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삼손도 이 점을 사용했습니다. 그 비밀의 중심에는 자기 자신이 개입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비밀이란, 그 비밀을 제시한 쪽에서 비밀을 받는 쪽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말해주는 겁니다.
수수께끼란 비밀이 담겨 있는 문장을 말합니다. 수수께끼를 제공하는 쪽이 수수께끼를 받아 풀어야 하는 쪽보다 우월합니다. 만약에 수수께끼를 쉽게 풀어버린다면 도리어 직위는 연전됩니다. 수수께끼를 낸 쪽이 수수께끼를 푼 쪽보다 열등하게 됩니다. 삼손을 통해서 어떤 구원의 비밀이 블레셋 나라에 주어졌을까요?
삼손은 하나님의 신을 만나, 길에서 사자 새끼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여 마치 닭 백숙의 살점찢듯이 가볍게 사자 새끼를 찢어버립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을 그 사자의 시체를 보니 그 안에서 벌이 왕왕그렸고, 꿀이 많았습니다. 삼손은 그 꿀을 퍼다가 자기 부모에게 드렸습니다.
그리고 난 뒤 그는 여자 친구를 통해서 처음으로 블레셋과 직접 만나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그는 평소의 전략대로 이번 기회에 블레셋을 칠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가 사용한 방법은 수수께끼를 내어서 적으로 하여금 당황스럽게 만들고 더나아가서 적이 이스라엘의 힘 밑에 있음을 보이려고 했습니다.
그가 낸 수수께끼는 이것입니다. “먹는 것에는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것에서 단 것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 내용이 성사되는 경우를 밝혀보라는 겁니다. 강함과 단 것을 어떻게 연결시키고 또한 이 연결에다 먹는 것에서 먹는 것이 나옴을 또 어떻게 연결시키겠습니까. 우리도 이 문장에 맞는 경우를 생각해보세요. 아무리 해도 이 수수께끼를 풀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수수께끼가 성립되는 데 동원된 그 당사자가 아닌 이상 생겨날 수 없는 현상입니다.
즉 삼손은 단지 신기한 일을 목격자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관여한 사건을 가지고 수수께끼로 만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기계적으로 구원되는 방식을 사람에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관여한 그 방식으로만 사람을 구원하시는 겁니다.
따라서 그 사건을 유발하는데 참여되지 못한 모든 인간들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벌리시는 구원의 방식을 인정할 리가 없습니다. 쉽게 말해서 십자가의 피를 믿고 구원된다는 이 비밀을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3:15-17에 보면,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 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나 오늘날 성도들에게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수 없는 방식으로 벌어지는 구원의 방식을 너희들만큼 알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제자들이라고 해서 어떻게 십자가 복음을 알겠습니까? 그들이 일반 사람들보다 더 머리가 명석한 것이 아닌데도 어떻게 그들은 복음을 믿습니까? 그것은 십자가 복음을 달성하는데 있어 주인공이 되신 그 예수님의 영이 그들에게 임하게 하셔서 알게 하는 겁니다.
이처럼 삼손이 사자를 잡은 것은 삼손 본인의 수완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신이 벌리신 일입니다. 삼손은 이 수수께끼의 함정에 블레셋 사람들이 꼼짝없이 말려들었다고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수수께끼를 푸는 그 한가운데 자기 자신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삼손의 과오입니다.
하나님은 비록 삼손을 앞장 세워서 일을 하시지만 참으로 이스라엘 구원하는 자는 삼손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삼손은 본인의 능력으로 능히 블레셋 사람들을 처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삼손의 위신을 꺾게 만들어버립니다. 나실인으로서 자신의 구원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다고 여기지만 삼손의 그저 하나님의 도구가 될 뿐입니다.
이 세상의 하나님의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십니다. 주의 종들은 그저 쓰임받을 뿐입니다. 따라서 복음으로 쓰임 받지 않는 자는 주의 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 때 복음으로 쓰임받은 자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그 후에도 주의 종이라고 말 할수 없습니다. 그때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직접 썼어야 합니다.
블레셋은 삼손의 여자에게 협박해서 기어이 수수께끼를 알아 채고 맙니다. 삼손의 여자는 울면서 삼손을 독촉했습니다. 나중에 삼손은 그 수수께끼의 비밀을 블레셋에게 알려주고 맙니다. 이로서 수수께끼를 풀어버린 블레셋이 이스라엘보다 여전히 우세입니다. 삼손의 계략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삼손은 실토합니다.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으며 무엇이 꿀보다 달겠느냐고 말입니다. 이미 노출된 수수께끼는 수수께끼로서 그 어떤 위력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수수께끼는 날아가버린 것입니다. 무능한 수수께끼는 곧 무능한 이스라엘을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인간 자신의 능력으로 다른 인간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발상은 하나님 앞에서 용납될 수 없습니다.
단순히 비책을 알고 있다고 해서 구원의 능력이 자동적으로 쏟아져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종은 자신의 자질이나 능력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누이좋고 매부좋은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로 부름받은 자는 자신들의 위신이나 품위는 단지 소모품으로 쓰여짐을 감사해야 합니다. 자신이 하나 죽어 남이 살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의 종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복음보다 자신이 위신을 더 귀하게 생각하지 않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