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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80411b 서울강의녹취 : 에베소서 제 10강자유게시판에베소서

20080411b 서울강의녹취 : 에베소서 제 10강

이름 : 오용익(IP:59.3.147.59)

에베소서 제 10강 (이 근호목사, 2008년 4월 11일 b, 서울의존교회)

언약밖에 있고 그리스도밖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없다, 그리고 소망이 없다고 사도바울이 단정을 지었습니다. 이것을 실망하거나 부정적으로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언약밖에는 하나님이 없고 언약밖에는 소망이 없다는 말은 곧 언약 안에는 하나님이 있고 언약 안에는 소망이 있다는 그런 이야기 되는 겁니다.

그 당시에 유대인들이 자기들 딴에는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다는 것으로 얼마나 으시댔는지 모릅니다. 유대인들은 오해를 했습니다. ‘말씀은 우리 육신의 힘으로, 우리의 몸으로 지킨다. 그리고 이 말씀을 지켜낸 우리에 의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있고 소망이 있다. 그런데 개 같은 이방인들아, 너희들은 율법이 없고 언약도 없고 따라서 약속이 없기에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다’고 그들은 단정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유대인을 옹호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유대인을 욕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에게 쓸데없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는 겁니다. ‘유대인들은 자기 육신의 힘으로 자기능력으로 언약을 지키니까 참 하나님도 있고 소망도 있다, 라는 그런 생각에 의해서 애매한 여러분, 이방인들이 그 동안 욕을 많이 얻어먹었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방인들은 언약도 없고 하나님도 없기에 소망이 없는 것이 맞습니다. 맞는데 여기서 사도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은 소위 소망도 있고 하나님도 있다고 여기는 너희도 똑같이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자, 그러면 유대인들이 어디서 오해를 했을까요? 자기들은 약속을 받았기에 소망도 있고 하나님도 있다고 자부를 했었는데 사도바울 보기에는 둘 다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방금 제가 이야기 한 것 가운데 유대인들의 어떤 해석이 잘못된 겁니까? 바로 여기입니다. ‘내 힘으로 언약을 지키고 약속을 지키니까 그러니까 언약이 있는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고 개 같은 너희는 지옥 간다.’ 그렇게 본 겁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 육체의 힘으로 언약을 지킬 수가 있습니까?

사도바울은 자신이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고 완벽한 사람이라고 자부했습니다. 그런 사도바울이 예수님 만나고 난 뒤에 자기가 죄인중의 괴수라고 했고, 자기가 지금까지 고상하게 알고 해왔던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그동안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향해서 ‘너희들은 못하지? 우리들은 지킨다’라고 약 올리고 으스대던 그 모든 것이 인간이 육신이 있는 이상은 둘 다 똑같은 사정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그러면 언약이 있어야 하나님이 있고 언약이 있어야 소망이 있다는 그 말은 맞잖아요. 그렇지요? 그렇다면 그것을 지켜야 될 것이 아닙니까? 방금 제가 이야기 했습니다. 못 지킨다고요. 그러면 약속이 있어도 우리는 소용이 없네요. 여기서 사도바울이 이야기합니다. 언약과 약속을 누가 지켰냐, 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에베소서 2:13에서 말씀하는 바 ‘피’입니다.

에베소서 2:12,13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리스도의 피가 인간이 지킬 수 없는 언약과 약속을 다 지킨 겁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 밑에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 둘 사이를 양쪽 다 똑같다고 박치기를 시킨 겁니다. 그렇게 해 놓고 진짜 말씀을 지킨 것은 예수님뿐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피가 그 모든 말씀을 다 지킨 것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피가 모든 말씀을 지켰다는 말은 우리 피가 아니기에 우리 외곽에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소망이 있고 우리에게 하나님이 있으려면 우리 외곽에 있는 예수님이 흘리신 피가 우리 내부의 피로 전환되어야 마땅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피가 우리를 용서해주는 사랑으로써 역사할 때, 그 사랑이란 예수님이 모든 율법을 다 이루었으니까 우리에게도 모든 율법을 이룬 것이 되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 외부에 있는 예수님의 피가 우리 내부의 용서하는 피가 되느냐? 이것이 아주 궁금할 겁니다. 로마서 8:3을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도록 십자가 밑에 깔때기를 놓겠습니다. 그러면 십자가에서 뭐가 흐릅니까? 피가 흐릅니다. 깔때기에 피가 흐릅니다.

로마서 8:3,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좆지 않고 그 영을 좆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이 죄 있는 육신의 몸으로 달렸습니다. 십자가가 뭐냐? 죄 있는 육신의 몸이 하나님 앞에 저주받고 형벌 받는 그 일이 바로 십자가의 일입니다. 십자가의 일이란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의 버림받은 사건입니다. 그것도 목숨까지 바쳐 가면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목숨까지 바쳐가기 위해서는 그 몸이 죄 없는 몸이 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죄 없는 몸을 심판하면 안 되니까. 죄 있는 육신의 몸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누구든지 이렇게 당한다는 것, 그것을 말해주는 것이 십자가의 사건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죄 있는 육신의 몸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죄가 없습니다. 죄가 없는 분인데 로마서 8:3에서는 죄 있는 육신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죄 없는 육신의 몸이 죄 있는 육신의 몸이 되었다면 그 죄가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그것은 우리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 당시 유대인들이 ‘나는 이 몸 가지고도 율법을 지키고 약속을 지키고 언약을 지켜서 나는 소망이 있고 하나님이 있다. 하나님이 알아주신다’고 나온 것 자체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뭐가 된다는 겁니까? 그 자체가 바로 ‘죄 는 놈이 무슨 하나님, 무슨 소망을 기대해?’라고 죄 있는 몸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사건이 십자가사건입니다.

제가 아까 유대인과 이방인 둘 다를 박치기 시킨다고 했습니다. 박치기를 시키는데 무엇을 가지고 시키는가? 예수님의 피를 가지고 박치기를 시킵니다. 이 말은 율법은 예수님만 지키지 결코 인간들이 지킬 수 없다는 것, 그것을 십자가에서 분명히 보여주는 겁니다. 다시 이야기해 봅시다. 율법에 대해서 유대인들은 어떻게 생각한다고 했습니까? ‘내 힘으로 지킨다.’ 그렇습니다. 이방인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다고요? ‘언약도 없고 소망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둘 다 문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왜 문제가 있다고 했습니까? 그것이 문제가 있다, 없다를 어떻게 압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는데 그 몸이 어떤 몸입니까? 죄 있는 육신의 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씀 지켜서 구원받겠다고 나서는 그 몸이 어떤 몸이라고요? 죄 있는 육신의 몸이라는 말입니다.

죄 있는 육신의 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십자가에 달려서 피를 흘리니까 아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두 사람을 박치기 시킬 때는 자신이 매달린 십자가의 죄 있는 육신의 몸을 가지고 우리에게 들이 대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피 앞에서는 할 말이 없는 거예요. 둘 다 죄 있는 육신의 몸입니다.

죄 있는 육신의 몸이 무슨 하나님이 있고 죄 있는 육신의 몸이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로마서 13:9,10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찌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여기 보면 모든 것이 사랑 안에서 다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죄 있는 육신의 몸을 대표해서 그것을 해결했다는 것 그 자체가 ‘네 몸으로 안 되고 내가 준 사랑으로 되는데 그게 뭔 줄 아느냐? 그 사랑이란 대신해서 죽인 아들의 몸, 죄 없으신 분이 죄있는 몸을 대신해서 죽었으니까 이것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겁니다.

그런 큰 사랑이 있다면 모든 율법을 이룬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 피가 있는 사람은 소망이 있고 피가 없는 사람은 소망이 없는 거예요.

에베소서 2:15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십자가의 피로 율법을 폐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성경전체를 다 찢어 버릴까요? 여러분 성경을 율법으로 보지 마시고 사랑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사랑이 나아고 십자가가 나옵니다. 성경에서 사랑이 나오고 십자가가 나온다는 말은 우리가 유대인하고 똑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하나님, 제가 지키겠습니다’라고 하면 십자가를 들이대면서 ‘네 죄를 알아라. 죄 있는 육신의 몸이 어떻게 이 말씀을 지키는가?’라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들이대시는 이유는 내가 성경말씀을 지키겠다고 율법적으로 바라보는 모든 율법적인 기능을 십자가가 다 찢어 버리고 폐해 버리는 겁니다. 없애버렸다는 겁니다. 그러면 성경말씀 전체는 뭐냐? 그것은 바로 사랑으로 보여줍니다. 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죄 많은 우리를 이렇게 사랑했구나, 사랑의 책이 되는 겁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버려요. 사랑이 사랑다우려면 덮을 죄가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가 만약에 사랑의 윗도리라면 그 사랑의 윗도리에 덮여야 될 우리는 뭐가 되어야 합니까? 제가 지금까지 이야기 했습니다. 뭡니까? 죄 있는 육신의 몸.

다시 정리합니다. 죄 있는 육신의 몸을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덮는 것, 이것이 바로 모든 율법을 폐하시고 하나님께서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똑같은 인간으로서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시는 것, 소망이 있게 하는 것, 참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드러나는 것, 그것이 사도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무나 큰 횡재입니다. 너무나 큰 사랑을 주니까 사람들이 이것을 잘 믿지를 않습니다. 제가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너무 큰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내가 전혀 말씀을 못 지키는 너무 큰 저주받은 죄인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먼저 아시는 사람에게만 그 사랑이 진정 큰 사랑으로 받아 집니다.

그렇지 않고 ‘나도 뭔가 좀 할 수 있는데, 나도 가능성이 있는데’라고 되어 버리면 그것은 본인부터가 자신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간주하지 않고, 또 예수의 피를 이용해서 구원받으려고 시도하는 그런 시도가 됩니다. 그리되면 피 앞에서 너나 나나 똑같은 것이 아니고 자기 자랑하는 유대인 행세가 되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했느니라,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했느니라’고 이렇게 십자가를 여러 번 이야기 하는 것은 제발 우리 자신이 유대인 같은 행세를 되풀이 하지는 말라는 뜻입니다.

죄 있는 육신의 몸을 가지고 자꾸 성경을 지켜서 구원받겠다고 하면 예수님의 피, 윗도리같이 덮어주는 사랑이 뭐가 됩니까? 그러니까 덮어준 사랑이 고마운 줄 알면 푹 덮여서 나 그 안에서 죄 있는 육신의 몸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자만이 진정 사도바울처럼 십자가만 증거하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돌아서면 다시 그 사랑의 윗도리 밑에서 그냥 있으면 될 텐데 그 안에서 또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죄 있는 육신의 몸이 얼마나 자기 위주인지 자기 생각을 하니까 갑자기 사랑의 윗도리를 다 잊어버리고 또 향상된 나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이 십자가 피가 믿어진다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의 큰 축복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이란 항상 우리에게 불가능성으로 남아 있어야지 내가 가능한 믿음으로 남아 있으면 안 됩니다. 항상 가능한 것은 뭐냐? 육신의 몸에서 죄만 나온다는 그것만이 가능합니다. 그것을 덮어주는 사랑이 믿어진다는 것은 믿음의 선물인 주님의 공로이지 우리의 가능성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피로 인하여 진정한 사랑에 들어가게 되는데 보통 관계라는 것은 내가 먼저 있고 그리고 내가 그 관계를 넓혀가는 것으로 그렇게 이해를 많이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에베소서를 보게 되면 이방인이든 헬라인이든 그들의 관계를 일체 인정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제 삼의 관계, 예수님의 십자가 피 앞에서 ‘너희들은 이 십자가 피와 어떤 관계에 놓여져 있는가’ 하는 그런 관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것이 에베소서 2:15의 내용입니다.

에베소서 2:15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여기에 보면 둘을 용납하지 않고 하나만을 용납하는데 그 둘 중의 어느 것도 모으는 식으로 하나가 아니라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닌 제 삼의 한 사람을 지으십니다. 그 내용이 16절에 이어집니다.

에베소서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여기에 십자가 피가 들어갑니다. 십자가 피로 인하여 새롭게 만들어진 한 몸이 등장합니다. 그렇게 해서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고, 우리가 착한 사람이라서 남을 용납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도 착하기에 날 용납하는 것이 아니라, 너 나 할 것 없이 너 나의 관계는 없어지고 예수님의 십자가가 등장해서 그 십자가와 어떤 관계를 맺었느냐, 하는 식으로 새로운 인간이 등장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 안으로 세상 모든 관계를 다 집어넣어서 자기위주의 세상관, 자기위주의 몸을 주장하는데 마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공중의 새 봐라. 창고 짓느냐, 길쌈하느냐.’ 새가 무슨 자아가 있어서 창고를 짓습니까? 새는 하나님이 창고를 지으십니다.

그 관계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새, 새와 하나님, 그 관계에서 새가 언제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했습니까? 기르시는 대로 길러지는 겁니다. 들풀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그냥 기르시니까 길러지는 거예요. 그 들풀과 참새와 우리 인간과의 차이를 보세요. 참새와 들풀은 완전히 하나님께 의존적이지만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고 독단적으로 나왔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인간을 제대로 된 인간으로 삼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그 나라와 의와 연관되어 있는 관계, 참새라는 것이 주께서 기르시는 것을 보여주는 용도라고 본다면, 또 들풀은 하나님께서 귀하게 입히시는 것을 보여준다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 나라와 의를 보여주는 그 관계 때문에 새롭게 맺어진 인간, 그 인간 아니면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는 에베소서에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써만 그 관계가 정립이 됩니다. 그동안의 모든 인간관계, 얽히고설킨 관계, 나 중심에서 너를 보고 너 중심에서 나를 보는 너 나의 관계는 다 없어지는 겁니다. 없어지고 위에서 내려오는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말미암아 그 십자가 앞에서 모든 인간은 죄인으로서 죽은 인간이 됩니다.

그것은 죽은 인간이기 때문에 죽은 인간끼리 관계를 맺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인간은 죽으면 그만이 아니냐 하지만, 새로운 관계 예수님의 나라와 십자가의를 보여주는, 증거하는 새로운 관계에 들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십자가 중심의 새로운 인간이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상관없이 살아지게 되는 겁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유대인들은 그저 언약, 약속, 율법 있고 그 율법대로 하면 하나님이 있고 소망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것이 잘못입니다. 이방인들은 아예 약속이고 언약이고 간에 아예 없습니다. 없으니까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습니다. 이 둘 다 육신에 속했다는 것, 죄 있는 육체의 몸, 육신의 몸을 가지고 하나님의 법을 지켜보려고 하는 그 자체가 잘못된 겁니다.

왜 잘못되었는가? 자기 육체를 가지고 무슨 말씀을 지키려면 전부 다 어디에 집약되는가 하면, 자아 속에 다 집어넣게 되고 자기 잘남을 증거 하는 성경 지키기, 말씀 지키기가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예언한 모습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둘 다를 죽은 죄 있는 육신의 몸으로 간주해서 죽여 버리고 새로운 하나님의 피로 말미암아 새로운 관계의 정립에 나서는데 그 새로운 관계의 정립에 의해서 등장해야 될 몸이 바로 십자가의 의를 보여주는 성도가 등장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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