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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80307b 울산강의-창세기 31장자유게시판창세기

20080307b 울산강의-창세기 31장

이름 : 한윤범(IP:59.6.189.246)

20080307b 울산강의-창세기 31장

(강의:이근호 목사)

창세기 31장 24절 다같이 읽어 봅시다. 시작,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가라사대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 따지지 말란 말이죠. 왜냐하면 이건 인간의 차원에서 야곱을 하나님께서 인간의 차원에서 따지지 않고 일방적으로 야곱에게 뒤집어씌우는 거예요.

야곱에 씌워서 그 어깨에 하나님의 속성을 짊어지고 가는 것이 야곱의 특성이고, 반면에 라반은 니는 죄인 타고난 니 마음대로 가라. 특별히 야곱한테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는 하나님이 선택했다는 그것이 담겨있는 그러한 길을 가야 될 사람이에요. 이미 분류가 노는 동네가 영역이 달라요. 층이 다르다고. 사는 동네가 달라요.

네가 지난 수요일 날 그런 설교했거든요. 예수님께서 천국, 지옥을 설명하면서 참 재미있는 것은 천국은 이렇고, 지옥은 이렇다고 설명 안 해요. 왜냐하면 모두들 다 지옥 안 가고 천국 가고 싶어서. 근데 예수님 방법은 뭐냐? 천국이 이렇다, 지옥이 이렇다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천국 가는 길은 이렇고, 지옥 가는 길을 제시해버립니다. 길을 딱 제시해버리니까 다들 천국 가고 싶어 하면서도 막상 길을 보니까 길 끝에 천국 달려 있고, 길 끝에 지옥 달려 있잖아요.

길 빼놓고 천당, 지옥은 되게 좋아하면서도 천국에서 내려온 길, 아, 싫어하네. 지옥에서 내려온 길, 아,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거짓 선지자가 등장하는 겁니다.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 찾는 자가 많은 쪽으로 가는 길이 그게 멸망의 길이고, 찾는 이가 적은 쪽이 바로 천국 가는 길이다. 사람이라 하는 것은 본성상 편하기 위해서 사는 것 아닙니까? 편하다고 하는 것은 과거에 기억된 대로 뭘 유지하면서? 동질성을 유지하면서 사는 거예요.

지난 시간에 한 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차근차근 쉽게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지난 시간을 정리하면, 아까 하나님의 율법이 주어져서 우린 죄인 맞습니다. 하기 이전에 죄를 따지기 이전에 너, 죄인이야. 법에 봐. 따지기 이전에 뭐부터 먼저 주어지느냐 하면, 하나님의 선택한 법이 먼저 주어지고 난 뒤에 그 주어진 사람에 한해서 율법을 줘서 아, 그러니까 나는 내가 뭘 행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창세전에 선택이 우선권이 있구나.

근데 선택했다는 것 때문에 자동적으로 구원받는가? 선택 자체를 이루신 분이 내가 아니고, 예수님이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버려요. 선택하신 사람에 대해서. 이걸 슬기롭고 지혜로운 자에게 다 숨기시고, 어린아이에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옳소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이 진리를 알 자가 없다고 돼있거든요. 마태복음 11장에서.

그러니까 이제는 뭐냐 하면, 책임을 누가 지느냐 하면, 법을 지키고 책임을 예수님이 져버리고 그 대신 책임을 져서 책임 있게 너를 구원했다는 겁니다. 법을 주고 너 안 지키면, 예수 믿어라. 이거 아니라니까요. 갈라디아서 설명하면서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들 굉장히 많거든요. 제가 참 괴로워요. 율법 해보고 안 되면 예수 믿어라. 이거는 누가 살아 있어요? 여전히 자기가 살아있는 거예요. 자기를 위한 예수에요. 세상에 그런 예수는 없습니다.

자아라는 것은 늘 깨어져야 됩니다. 늘 깨어지기 위해서 십자가라는 것이 반복적으로 작용해서 깨어지는데. 깨어지고 만들어지고, 깨어지고 또 만들어지지. 왜? 우리에게는 기억이 있고, 기억은 뭘 유지한다? 동질성. 왜냐하면 동질성이 있어야 자아가 된다고. 어이, 돈 좀 빌려줘. 언제 갚을 건데? 내일 갚아줄게. 누가? 내가 갚아줄게. 오늘 돈 빌리는 내가 내일 또 있을 테니까 내일 내가 갚아줄게. 이렇게 동질성 있을 때 어제와 오늘이 연결되는 그걸 뭐라고? 자아라 하는 거예요. 이제 자아 아시겠지요.

자아라는 것을 딱 깨어보면 그 안에 동질성이 있는 거예요. 근데 동질성은 누구 마음대로 동질성이에요? 지가 지 마음대로 정했어. 여러분, 잘 이해 안 되십니까? 지가 지 마음대로 정하는 것.

여러분, 드라마 보시다보면 전 거의 안 봅니다만, 드라마 보시다보면 이유 없이 어떤 탤런트 나오면 꺼버리는 드라마 있잖아요. 저거 좀 안 나왔으면 좋겠다. 왜 그 탤런트가 밉습니까? 누구 마음대로 입니까? 내 마음대로에요. 이유 없어요. 이건 내 마음대로에요. 저건 내 타입이 아니라. 누구 마음대로? 내 마음대로에요. 왜? 나라는 동질성은 손대지 말아라. 니는 왜 그 사람이 뭐가 나쁜데? 어허, 묻지 말라고. 왜? 나는 내 동질성은 내가 정했기 때문에. 하나님 아니라 예수가 와도 손대지 마라. 나는 나니까. 나~나~나~나. 나는 나니까.

결국 남는 게 이것밖에 안 남아요. 예수 십 년 믿고 이십 년 믿고 남는 게 뭐냐? 나는 나다. 이것밖에 안 남아요. 장로 되서 삐지고 교회 안 나오고. 전부다 뭡니까? 장로 되면 믿음 좋을 줄 알았지요? 결국은 장로 되고 목사가 되도 남는 건 뭡니까? 나는 나다 말이죠. 왜 나한테 그렇게 했느냐 묻지를 마라. 나는 나기 때문에. 그걸 가지고 동질성이다.

옛날 어린애들은 초등학교 애들은 그게 좀 희박했어요. 옛날 초등학교 없었지, 국민학교 때 애들 말 잘 들었습니다. 저 친구하고 놀지마. 예, 안 놀겠어요. 내일 일찍 와. 예, 일찍 오겠습니다. 동질성, 자아성이 형성 안 되었으니까. 요새는 다섯 살만 되도 동질성, 꽉 잡고 있습니다. 안 되는 이유를 대라. 이미 형성돼있어요. 동질성이 형성돼있다고.

동질성이 형성돼있으면 뭐가 생기는지 알아요? 그게 유명한 선택, 선별. 사람이 동질성이 형성될 경우에 그 다음에 선택합니다. 선택해서 자기 마음에 취향에 맞는 것만 고르고, 나머진 거부해버려요. 그래서 나온 게 자유의지가 발현됐잖아요. 전부다 자아에서 나온 거라고요.

그러니까 예수 믿는 것도 내가 알아서 믿고, 내가 믿기 싫으면 안 믿는다는 거예요. 교회 나오는 것도 내가 알아서 교회 나오고, 내가 나가기 싫으면 안 나간다는 겁니다. 보통 사람들이 그 사람은 교회 안 가는 것을 교회 나오기 싫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안 보내주셔서 그런 거예요.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야곱입니다. 그런데 지가 싫어서 안 간다는 사람이 라반입니다. 왜? 외부에서 자아를 깨는 요소가 없기 때문에.

오늘 강의한 것 잊어버리고 하나만 생각해봅시다. 여러분, 선택했다는 게 뭡니까? 선택했으면 선택된 속성이 담기기 위해서 거기에 합당한 그릇이 만들어지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만들어졌으면 선택된 자가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그 안에는 뭐가 들어있겠습니까? 자기 선택이 들어있는 게 아니고, 창세전부터 선택하신 하나님의 선택의 그 사람의 선택보다 더 강하겠지요.

내 선택보다 주님의 선택이 강하다. 내가 교회 나온 것도 내가 나오고 싶어서 나온 게 아니고 주님의 선택으로 나왔다. 라는 말을 할 수 있어야 그 사람이 선택된 사람이 아니냐 이 말입니다. 내 말은. 맞잖아요. 그 말이 나와야 된다니까. 내가 나오고 싶으면 나오고, 내가 안 나오면 안 나오는 거지. 그러면 창세전에 선택은 뭐예요?

하나님이 예수님이 아무리 선택해도 그 선택에 대해서 내 선택이 더 강해서 주님이 날 선택했지만 난 당신 버릴 거요. 하고 내 선택이 강렬해버리면 그 강렬한 선택은 어디서 나온다 했습니까? 선택은 나의 동질성, 자아에서 나오지요. 그 자아라는 것이 허구인데 아직도 주님의 선택보다 주님의 실체보다도 자아의 허구를 믿는다는 것은 그거는 비생산적 아닙니까?

다시 해봅시다. 로마서 5장에 아담은 무엇의 표상이라? 오실 그리스도의 표상이잖아요. 그러면 실체가 누굽니까? 예수님만이 실체에요. 모든 아담은 뭡니까? 실체를 보여주는 표상이라니까. ‘표상’이라는 말이 실체는 아니다 이 말이죠.

표상의 임무가 있어요. 표상의 임무는 실체와 무관한 게 아니고, 실체가 이런 분입니다. 라고 드러내는 것이 그게 표상이죠. 표상의 임무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두 종류밖에 없지요. 하나는 뭐냐 하면, 지옥 가기 위해 만들어진 사람, 에서 같은 사람. 또 한 사람은 뭡니까? 구원받기로 작정된 사람. 그러니까 야곱이든 에서든 둘 다 누구의 표상이다? 그리스도의 두 가지 속성, 하나는 긍휼의 그릇과 하나는 저주의 그릇이 되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그런 속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두 종류밖에 생기지 않았다고.

이 두 종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그 사람이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그 사람도 어떤 성령이 와서 그걸 깨닫게 하기 전까지는 그 사람 역시 우리하고 똑같이 동질성이에요. 예수 백날 믿어도 내가 믿기 싫으면 안 믿는 거지. 라고 자기 선택성이 있다고. 자기 선택성이 하나님의 계시보다 더 우세하다, 더 세다 이 말이죠.

그런데 야곱 같은 경우에 품삯을 한 푼도 못 받았어요. 밥만 먹고 산 거지 뭐. 라반이 이용한 거예요. 그래서 누가 악해요? 라반이 악한 겁니다. 악한데 그걸 누가 알았습니까? 하나님이 눈치 챘잖아요. 눈치 챈 게 아니라 다 보여 계셨죠. 다 보고 계셔서 야곱이 노동한 품삯보다 더 많이 가져가게 만들었어요. 왜냐? 그렇게 해야 라반은 버림 받은 놈이라는 것을 야곱을 마주침을 통해서 라반은 버렸고, 야곱은 선택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라반이 애써 버림받았다 그런 건 아니지만 라반이 이런 나쁜 짓을 했다는 것을 이 31장에 나오니까 라반이 이런 나쁜 짓을 했다는 것을 누가 아신다? 하나님이 다 아셔서 라반은 악하고 야곱은 성실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렇게 예상치도 못한 판정을 내린 겁니다. 그런데 그 판정에 누가 동의했습니까? 재미있는 것은 누가 동의했어요? 라반이 동의했어요. 왜냐하면 라반의 축적된 기억에 의해면 아롱진 것, 점 있는 것, 얼룩무늬 있는 이거는 숫자가 적고, 허한 비실비실한 불량품 양이라는 것을 익히 인간의 자아의 기억 속에 들어있단 말이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했습니까? 인간의 자아 속에 뭐가 들어있는가를 아시고 역으로 그걸 꺾어서 야곱에게 재산이 더 많이 가져가도록 한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굉장히 어렵던 것은 뭐냐? 라반이 어려운 게 아니고, 그런 품삯을 정한 라반이 어려운 게 아니고, 누가 어렵겠어요? 야곱이 어려운 거예요.

왜? 야곱도 역시 자기 자아가 있지 않습니까? 너무 억울하잖아요. 만약에 이런 아롱진 것 몇 마리 안 되면 지는 이십 년 동안 헛수고 한 것이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믿음 줘서 지키는 대로 하라 시키는 대로 했다고요. 지키는 대로 했더니만 하나님이 간섭하셔서 인간들의 상식에 어긋나는 많은 재산이 축적이 되고 부자가 됐다 이 말이죠.

그럴 때 야곱은 뭘 느끼겠습니까? 나 부자 되었다는 걸 느끼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선택했구나. 라는 것을 느끼지 않겠느냐. 그러니까 제가 평소에 하는 말이 뭡니까? 하나님의 복이 뭐냐? 하나님의 복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창세전부터 선택했다는 걸 순간순간 깨닫는 것, 그게 복입니다. 나는 내 자아의 소속이 아니고, 내 소속은 하나님께 있다는 거예요.

언젠가 제가 설교하면서 이런 대목을 들었는데 드라마에 이런 대목이 나와요. 아침드라마나 주말드라마나 ‘여자가 밉다’든지 ‘그래도 좋아’ 라든지 하여튼 그런 드라마의 내용들 하이라이트가 뭐냐 하면, 꼭 출생의 비밀이 있어요. 그렇잖아요. ‘겨울동화’도 마찬가지고요. 사실은 너희들이 배다른 남매였다. 이러고 끝나지 않습니까? 서로 사랑하는데 결혼할 수 없는 뭐 있는데.

만약에 여러분의 부모님이 돌아가면서 임종 시에 여러분 보고 애야, 무릎 가까이 오너라. 아버지가 마지막 할 말이 있다. 아버지, 뭡니까? 유산이라도 남겨 줄줄 알고 뭡니까 좋아라하는데. 너에겐 출생의 비밀이 있다. 아니, 이제 와서. 그동안 내 입 다물고 있었는데 이제야 말한다. 사실은, 사실은 너희 아버지가? 누구십니까? 네 아버지가 하나님이다. 하고 죽는 거예요.

에이, 시시하게. 이러잖아요. 그런데 마태복음 16장에 나온다고. 네가 나 된 것은 네 혈육이 아니고, 하늘의 네 아버지이다. 출생의 비밀이 뭡니까? 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출생의 비밀이네. 그 대목이에요. 야곱의 이 대목이. 이걸 진지하게 들어야 돼요. 우리가 아버지가 하나님이라는 것, 이게 요한복음 1장에 나옵니다. 사람이 하나님 자녀가 되는 것은 혈육으로 육으로 난 것도 아니고, 사람의 뜻으로 난 것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난 자라야 하나님 자녀가 되는 겁니다.

성경이 메마른 문자로 돼있다고 무시하지 마세요. 그걸 무지할만한 문자가 실제화 되어서 현실화 되어서 다가오게 하시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진짜 우리 아버지는 하나님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가 아니고, 진짜 아버지는 지금도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에요.

그래서 기도할 때 이렇게 하잖아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을 영화롭게 하시고. 아들 값 해 달라고. 아버지가 하늘에 있으니깐 내 영광 말고, 내 자아, 동질성 말고 아버지의 속성이 나한테 현재 어떻게 밀려왔는가? 그 밀려온 속성을 증거하자 이 말이죠. 그게 창세전에 예정된 우리가 선택되어서 그때부터 우리 속에는 아버지가 찢었는데 싸맸고, 모든 죄를 용서했다는 속성이 가득 넘치는 그런 제2의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그게 바로 복이다 이 말이죠. 야곱에게 주신 복이란 말이죠.

지난 시간에 바꿔치기 했죠. 정낙원 목사님 글 아주 잘 썼습니다. 계시 받은 야곱이 그 야곱인 줄 알았어요. 하나님의 야곱은 따로 있는데 현재 육체의 야곱이 야곱인 줄 알았지요. 그 야곱 아니었습니다. 진짜 하나님 계시는 이스라엘이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야곱이라는 인간을 죽이고 이스라엘로 거듭 태어나게 하고, 그 이스라엘 이름 속에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가 하실 일을 담았지요.

그래서 로마서 아담은 오실 자의 오실 그리스도의 표상이다. 아담에 속한 모든 인간은 오실 그리스도의 표상이다. 실체는 그리스도밖에 없고, 우리는 그분을 증거하는 안개 같은 증거물에 해당됩니다. 변하지 않는 진리에요. 변할 수 없는 진리에요.

우리는 여유만만 해야 돼요. 세상사는 것을. 정말 여유만만 해야 됩니다.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택정한 사람은 합력하여 뭘 이루지요? 선을 이뤄요. 하나님의 뜻을 이룹니다. 우리의 소망을 이루는 게 아니에요. 합력하여 이미 아신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 자를 영화롭다 하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지 내 뜻을 이루기 위해서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것은 아담의 속성으로써 내가 좋아하는 것, 타입이 내 마음에 맞는 것을 골라서 그걸 뭉쳐서 동질화 만들어서 그걸 기억의 장소에 저장고에 넣어놨다가 그 다음에 기억 중에 자기 타입에 맞는 것, 동질성에 맞는 것은 선택하고 안 그러면 버리고. 교회에 좀 문제 있으면 안 나오고, 교회 문제 좋다하면 나오고. 그게 우리의 자아성이잖아요. 왜 교회에 요새 안 보이십니까? 내 마음대로다. 내가 없는데 죽어야 될 난데 자꾸 내 마음대로래.

주께서는 돌려보다 버리시고, 떨쳐 미십니다. 미는데도 왔을 때는 지 마음대로라고 말을 하지 않고, 주의 창세전에 뜻에 의해서 왔습니다. 라는 말을 할 때까지 계속 떠미는 거예요. 그런 하나님께서 불러서 왔다는 생각을 안 들 때까지는 주께선 계속 그 교회를 나갈 수밖에 없는 사건을, 사건을 자꾸 일으킵니다. 그래야 나라는 것이 하나의 허구에 허망한 것이 나라고 생각한 것이 내가 인위적으로 끌어 모아 쓰레기더미 같은

그러니까 사람이 끌어 모으는 이유가 뭐라 했습니까? 상당히 반복하는 것은 여러분 돌아서면 다 잊어버리기 때문에. 나를 뭐로 보기 때문에? 나를 개별적인 실체로 봅니다. 뭐는 아니다? 누구누구를 증거하는 표상은 나 되기 싫다는 거예요. 나는 내가 최종적인 가치고, 최종적인 의미는 나한테 두고 싶지, 내가 누구누구 똘마니, 누구누구의 종, 누구누구를 위해 존재한다. 아~ 나 그거 듣기 싫다는 거예요. 나는 살아도 나를 위해서 천당 가도 나를 위해서 천당 가고. 오직 나만 좋으면 다 끝나는 거고, 나만 행복하면 그만이고, 나만 유리하면 그만이에요.

우리 모두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평소의 습관이 그래요. 왜 습관이 그러느냐 하면, 용광로에 있는 이 동질성이 그런 것만 골라서 나한테 유리한 것만 창고에 가득 모아놓으니까 그 다음에 누가 와서 이야기하면, 저 사람이 나한테 도움 될 사람이냐 쓸데없는 소리나 하고 우리가 선택하지요. 그게 우리의 버릇입니다. 하나님께 선택 받은 사람은 그걸 그냥 두질 않지요.

그런 선택을 하게 되면, 우린 라반처럼 그래, 당신은 아롱진 것, 점 있는 것, 얼룩덜룩 한 것 당신이 다 하고, 보니까 바보 아니야. 숫자 얼만 되지 않는 것, 부실한 것 다 당신이 하소. 나머진 다 내 것 된다. 우리의 선택은 라반의 선택일 수밖에 없어요. 기껏 해봐야. 왜? 내가 평소에 알고 있는 인간의 방법 이외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 은혜라 했습니다. 이거는 내가 되고 싶어 된 게 아니라는 거예요. 내 의사에 반해서 내가 원했던 길이 이 길이 아니라 이 말이죠.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길이 여러분이 원했던 길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원하지 않는 길을 가기를 원해요. 왜? 내가 원한 길은 나를 증거하기 때문에. 나 잘났다를 증거하기 때문에 거기로 가면 넓은 길이에요. 멸망의 길이에요. 내가 원하지 않는 길, 그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그럼 그 길이 어디 있느냐? 여러분, 몰라도 돼요. 여러분들이 상상하지 마세요. 가만있어 봐라. 내가 원하는 길은 지금 재벌 2세를 만나서 결혼하는 건데, 그럼 내가 원하지 않는 길은 뭐냐? 절뚝발이에다 얼굴도 못 생기고, 미녀에 야수에 나오는 야수 같은 인간, 정신박약아에다 그런 인간, 그것도 주의 뜻이면 제가 결혼하겠습니다.

이것은 지가 또 뭡니까? 내 속에 선과 악 중에서 지가 뭘 만들어요? 임의로 뭘 조작해요? 아마 이러면 테레사 수녀처럼 살면 선 아니겠나? 그거 박살나야 됩니다. 절대로 그런 트릭을 쓰지 마세요. 이번 일만 잘되면 몽골의 선교사 하겠습니다. 절대로 쓸데없는 트릭을 쓰지 마세요. 정말로 하나님 뜻을 믿으신다면 성질대로 살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있는 성질, 없는 성질 다 내서 살아주시기 바랍니다.

정말 하나님이 나를 그리스도의 표상인 것을 믿으신다면, 표상이 주체 노릇하지 마세요. 사람은 뭐가 있다? 이것부터 먼저 해야겠다. 사람은 선과 악이 있어서 어떻게 인간을 자기를 존재에 유리한 쪽으로 한다. 사람은 선하면 복 받아서 오래 유지하고, 그러니까 존재의 확대지요. 제가 뭐라 했습니까? 존재라 하는 것은 외부에서 오면 무조건 내 것 만들어서 그 다음에 그걸 저장해서 크게 확대시켜서 발산하고 그걸 내 것으로 계속 굳혀나가는 거죠.

그러니까 선하면 복 받아서 잘 되고, 악하면 벌 받아서 못 됐다. 못 됐다는 말이 뭐예요? 내 것이 줄어들었다 이 말 아닙니까? 참 오늘 장황하다. 사람이 실패라는 게 뭐예요? 내 것 줄어들면 실패에요. 현재 기름값 올라갈 때 성공한 사람이 누굽니까? 대한석유공사 아닙니까? 성공했잖아요. 왜? 기름값 올라서 폭리 많이 남겼지요. 기름값 요만큼 올랐는데 기름값 확 올라 버렸잖아요. 천칠백 원인가 올라가잖아요.

그러니까 기름값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누가 떼돈 법니까? 석유공사 떼돈 벌고, 그 다음에 공사 주식 산 사람 떼돈 벌지요.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석유값 오른 것은 그 사람한텐 뭡니까? 아파트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닙니까? 아파트 넓힌다는 뭐다? 자아의 영역이 그렇게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자기한테 성공 아닙니까, 성공.

사람이 이건 고함지를 문제가 아닌데. 성경에서 성공, 실패하고 사람들이 평소에 성경을 들여다보는 나의 성공, 실패와 달라요. 내 성공, 실패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내 영역이, 내 영향력이 줄어들면 실패고, 내 영향력이 확대되면 성공이에요. 어린이집 애들 한 오십 명 오면 실패고, 한 천 명 오면 대성공 아닙니까? 그것뿐이에요.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주님의 성공은 뭡니까? 예상치도 못한 창세전에 예정되었기 때문에 네 것은 네 것이 아니고, 너는 표상이라는 것, 주님의 표상인 것을 어느 날 박카스 사 먹듯이 화~하게 온 몸에 퍼질 때 나는 안개에 불과하며, 안개를 이 덩치로 만드는 것은 주님의 선과 주님의 속성을 증거하기 위해서 지금 이 덩치까지 이끌어왔다는 것을 느낄 때 환하게 세~하게 느낄 때 그게 한 2초 가는가 몰라. 하여튼 세하게 느낄 때 그게 성공입니다. 그 틈새시장을 놓치지 마세요. 그걸 놓치지 말라고요.

환하게 느낄 때 그때 뭐가 우리가 행복한가 하면, 지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부대낌이 의미가 없어요. 조금 우는 것, 좋아서 까부는 것 그게 구름 밑에서 일어나는 이불 같은 구름 위는 편안한데 밑에는 번개치고 우박 떨어지고 요란스러워. 근데 비행기 타고 구름 위로 지나가면 우박이 오던 별 의미 없잖아요.

이미 우리가 주님의 영역에 예수그리스도 영역에 주님의 소유가 되고 주님의 표상이 됐으면 지상에서 일어나는 이런 것들은 그런 것 때문에 시달리고 괴로워할 필요 없어요. 사람이 괴롭다는 게 뭡니까? 거기에 자아가 돌출되어서 맞서 싸우려 하니까 그게 괴로운 거예요. 왜? 자아의 특징이 뭡니까? 내 영역을 안 지우려고 하고 내 영역을 크려고 하는데 세상이 만만치 않잖아요. 저쪽 상대방도 크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둘이 붙다보니까 초조해지고 불안해지고 이렇다 이 말이죠.

야곱이 부자 된 것은, 야곱이 부자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하심, 하나님이 지킨 법이 야곱에게 일방적으로 선물로 줬기 때문에 부자 된 겁니다. 누가 부자냐 하면, 야곱이 부자가 아니고, 예수님이 부자였지요. 예수님이 부자 되게 한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이 부자 되게 한 방법은 야곱이 생각했던 자기 방식이 아니고, 다른 방식을 동원해서 부자 되게 했기 때문에 야곱은 더 이상 자기가 부자라는 소리하면 안 돼요. 야곱이 중요한 것은 나는 주님의 것이다.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말이죠.

신명기 8장 봅시다. 잠이 좀 오시니까 같이 읽어봅시다. 8장 12절, 시작.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면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성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왜 하나님 잊어버립니까? 자기 자아가 만만치 않게 확정되었는데 자기 동질성이 유지되었는데 미쳤다고 하나님 찾습니까? 자기 것이 있잖아요.

거기 17절 봅시다. 같이 읽어봅시다. 시작.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18절,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렇게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하나님 관심은 언약 밖에 없어요. 네가 부자 된다고 관심이 없다고. 그런데 우리의 관심은 자아가 형성돼있기 때문에 관심은 뭐냐? 내 영역이 확장되면 그게 우리의 복이라고 보는 거예요. 복 받았는데 뭐하려고 하나님 믿습니까? 복 받았는데.

부자 될 때 하나님 더 믿자. 안 됩니다. 제 말 어렵지요. 잘 들어보세요. 부자 됐으니까 이제부터 신명기 8장 이 말씀 생각해서 하나님 더 잘 믿자. 이거는 안 됩니다. 우리 힘으로 안 돼요. 제 강의 잘 들으셔야 돼요. 부자 되었으니까 이제부터 하나님 믿어야 되는데 안 그러면 다 뺏겨. 이렇게 믿는 것은 관심사가 하나님 언약에 관심 있는 게 아니고, 뭐가 관심 있어요? 빼앗기면 안 된다는 것. 내가 믿음 좋아서 오랜만에 성공했는데 이걸 믿음 개판 되서 잃어버리면 난 실패자 된다. 또 관심사가 누굽니까? 자기 자신에 관심을 갖고 있는 거예요. 이러시면 안 된다 이 말입니다.

부자 되었으니까 하나님 잘 섬기고 헌금하라 하는 주로 누구의 멘트냐 하면, 부흥사들 멘트 아닙니까? 부자 되고 돈도 안 내고 말이야. 돈 벌어서 부자 됐는데 한번 봐라. 다 잃을 거다. 후회할 거다. 아예 저주를 퍼부어. 그렇게 주장하는 그 목사의 관심사가 하나님의 언약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고, 교인들은 돈푼 있는데 교회 꼬라지 보니까 엉망진창이니까 나는 교회 헌금 가지고 밥 먹고 사는데 너희들은 씨(진짜 씨~) 맛있는 거 먹고, 고기 먹고 나는 ( ) 먹나. 왜 ‘나’라는 자아를 안 알아주느냐? 그것 때문에 나온 거예요. 갑자기 흥분되네.

자꾸 교인들이 말을 끝까지 들어야지 자꾸 이런 강의를 들으면 아, 조심해야 돼. 돈 잘 벌 때 조심해야 돼. 헌금, 자꾸 이런 쪽으로 가면 안 된다 이 말입니다. 부자 되었는데 부자 된 것이 나님의 은혜다. 이걸 아는 것은 부자 된 본인의 능력이 아닙니다. 창세전에 하나님에 예정된 자에게 주의 사건이 터져야, 십자가 사건이 터져야 아는 거예요. 목사 강요한다고 아는 게 아닙니다. 그냥 성질대로 부자 되거든 골프나 치세요. 헌금하지 말고. 자기 성질대로 하란 말이죠.

진짜 하나님 구원받았으면 아, 이게 아니구나. 주님의 은혜로 알아야지 지가 그동안 벌어놓은 재산 날아갈까 봐 그게 겁나서 갖다 안기는 것은 그거는 하나님께 뇌물 주는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여전히 누굴 사랑해서? 자기의 동질성 사랑해서 그 짓 하는 거예요. 아이고, 오랜만에 좋은 말 했네.

그러면 우린 목사님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할까가 아니라 우리는 실체가 아니고 표상이라는 것, 그 하나만 기억하면 돼요. 우리는 뭐가 아니다? 내가 날 겨냥할 이유가 없어요. 나는 하나의 표상이에요. 아담의 표상이다. 말씀에 의하면 표상에 불과합니다. 하나의 증거물이에요. 주님이 살아계심을 증거물이란 말이에요. 그리고 실체는 우리를 가지고 노는 분 따로 있습니다. 주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양쪽에 야곱에게 나타나고, 라반에게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했듯이 하나님께서 에서한테 저주하고 야곱을 축복했습니다. 야곱은 착각했어요. 주여, 내가 다시 와서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아직도 야곱은 자기중심이에요. 봅시다. 그게 몇 절이냐 하면, 창세기 31장 봅시다. 31장 13절,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맹세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나님께 이런 지시가 내려왔지요. ‘돌아가라’ 이건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율법이 오기 전에 십계명을 받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그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는 어떻게 다뤘는가? 피곤하시죠. 조금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어떻게 다뤘는가 뭐를 법을 지키라고 말을 하지 않아요. 그냥 강제로 이주시키고 합니다. 이주시키고 가는 곳이 야곱이 원하는 장소가 아니고, 하나님이, 나는 이런 식으로 내 백성을 이런 식으로 일을 하겠다. 하는 식으로 지점으로 야곱을 데려갑니다.

왜 이점이 중요하냐 하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제자들은 이걸 오해했습니다. 아, 나 좋으라고 이렇게 하는데,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려가신 것은 그 어떤 제자라고 예수님의 능력이 아니면, 어떤 제자라도 한 명도 구원받지 못하는 걸 알려주는 지점까지 제자들 데리고 결국 제자들과 예수님이 헤어집니다. 야, 내가 예수님 제자 됐다고 구원받는 게 아니구나. 그걸 깨닫게 하는 거예요.

이 말은 뭐냐? 제자들이 찢어졌지요. 헤어지고 난 뒤에 비로소 다시 찾아갈 때는 손에 못자국과 배에 창 자국을 보여주면서 다가가죠. 봐라. 왜 못을 박힌 줄 아느냐? 너희들이 갈 수 없는 하늘나라 처소에 나 혼자 가서 다시 너희들 위해서 이미 자리를 다 마련해놓고 다시 너희를 데려오기 위해서 이 못 자국 가지고 다시 나타난 거예요.

그래서 구원은 뭐냐? 말씀대로 됩니다. 찢어져놓고 데려오는 것도 주께서 우리를 데려가서 가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울산에서 사업하고 울산에서 직장하다 보니까 그걸 잊어버려요. 잊어버리고 우리는 뭘 하느냐? 우리는 과거에 모인 것이 뭐라 했습니까? 두 자로? 기억이죠. 과거에 기억된 것에 여기서 뭐가 되느냐 하면, 동질성 있죠. 동질성을 더욱 뭐하기 위해서? 이야기해주세요. 확대하기 위해서. 현재 있는 같은 질, 동질을 유지하면서 같은 질의 속성을 많이 유지한 거예요. 돈을 좀 벌었으니까 같은 돈을 더 벌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양장점 하십니까? 이젠 큰 양장점이에요. 만약 양장점 하다가 때려치우고 이발소한다면 여기는 기도할 수밖에 없어요. 주여, 질이 다릅니다. 이건 내가 못 배운 겁니다. 뭔가 직업 바꿀 때 기도 많이 하지요. 왜냐하면 안 해 봤던 걸 하기 때문에. 자아가 바뀐다. 자아가 바뀔 때 우리는 위기를 느끼는 거예요.

사업하다가 목사 될 때 기도 많이 해요. 주여,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았지만 주의 종이 되어서 아골 골짜기 따라가겠습니다. 이렇게 기도 많이 하잖아요. 왜 기도 많이 합니까? 지금까지 누적된 질하고 다른 질을 하기 때문에 겁이 나는 거예요. 거기 가서 어떻게 나라는 동질의 목사라는 이름의 동질을 어떻게 구축할 것이냐? 걱정된다 이 말이죠.

이거는 목사 된 사람도 그렇지만 일반 사람들도 직종 바뀔 때 그리고 한국에 살다가 미국에 이민 갈 때 기도 많이 합니다. 완전히 사회가 다르니까. 그동안 한국이라는 문화와 정보가 들어와서 자아를 기억을 했는데, 이제는 그 기억가지고 호주나 캐나다 가면 써먹을 수가 없어요. 그쪽 문화에 바꿔야 되니까. 지금 있는 걸 다 부셔야 되니까. 그래서 한국에 있을 때는 내가 파출부를 어떻게 하느냐? 아이고, 내가 세탁소를 어떻게 하느냐? 내가 마트에 어떻게 근무하느냐? 이렇게 하다가 캐나다나 그런데 가면 세탁소고 뭐고 주여, 시켜만 주이소. 다 하잖아요. 왜? 새로운 자아를 만들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누굴 위한 겁니까? 나라는 자아 만들기 위해 하는 거고, 주님께서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주께서 우릴 인도하는 그 장소는 야곱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거저주시는 대신 다 네 죄를 씻었다는 그걸 알려주는 그 지점에다가 우리를 그때그때마다 순간순간 데려갑니다. 그게 여기서 몇 킬로입니까? 몇 미터 떨어졌어요? 아니에요. 순간순간이에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퍼뜩퍼뜩 생각나게 하는 겁니다. 왜? 주님과 함께 있기 때문에. 멀리 있지 않아요. 주님 멀리 있지 않잖아요. 순간순간 깨닫게 한다니까.

아, 내가 쓸데없는 것 가지고 초조했구나. 내가 초조할 이유가 없는데 내가 마치 주체인 양, 내가 마치 실체인 양 여기다보니까 초조했는데 나는 실체도 아니고 주체도 아니고 뭐라고요? 표상이죠. 누구누구를 보여줘야 될 하나의 표상에 불과한데 똘마니인데 하나의 주님의 그림자인데 안갠데, 그림자가 자기 걱정하는 것 봤습니까? 참새도 걱정 안 하는데 내가 왜 걱정해요. 들풀도 걱정 안 하잖아요.

이거 하나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너무 피곤해하셔서 내가 말을 못하겠는데 하나만 하겠습니다. 내일, 마태복음에 나오지요. 내일 아궁에 들어갈 들풀도 내일 들어가죠. 내일 아궁에 들어갈 들풀도 오늘 주께서 입히시리라. 아니, 내일 들어갈 건데 오늘 입히지 말지, 오늘 충실히 입히고 내일 입힌 채로 아궁 속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하듯이 결국 풀은 누구의 표상입니까? 하나님을 보여주는 표상인 것처럼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그러니까 너희들은 네가 실체라 여기지 말고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고 그 나라 그 의를 구하라. 이제 그 말씀 이해되십니까?

그 나라, 그 의를 구하면 성공합니까? 그런 의미 아니라니까요. 성공, 실패를 논할 주체가 없어야 돼요. 우리는 편안하게 비행기 타고 구름 위로 태풍 치든 뭐하든 관계없지, 훌쩍 위로 구름 위로 편안하게 양탄자 속에 있으면서 세상 나가서 실컷 주님의 종노릇이나 하자. 하는 직업을 통해서 너희 놈들아, 너희는 걱정 되지. 걱정 되는 것 보니까 너희들 자아 때문에 걱정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그런 것 때문에 걱정 안 한다. 아예 걱정 자체가 없다. 사랑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없고 두려움이 없나니. 바라기는 여러분이 표상이라는 이 마음이 2초겠지만 여러분, 3초로 늘여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야곱과 라반에게 주의 계시가 떨어졌습니다. 새삼스럽게 착하라는 말이 아니고, 너는 주의 손에 의해서 이끌림을 받아야 될 나의 표상인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저희들도 똑같은 입장이오니 쓸데없는 것 때문에 초조하고 불안에 떨었던 그것을 우리가 반성하고 회개하고 이제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그 묘미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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