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48:17-19 (슬프다)
사 48:17-19 (슬프다)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41)
본문 : 이사야 48장 17-19절
제목 : 슬 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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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8-03-05 20:53
슬프다
2008년 3월 5일 본문 말씀: 이사야 48:17-19
(사 48:17)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이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사 48:18)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사 48:19) 『네 자손이 모래 같았겠고 네 몸의 소생이 모래 알갱이 같아서 그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과연 계시느냐 여부와 그 분의 일관된 뜻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하나님과 연관된 나라,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대우와 취급을 받고 있느냐를 보면 압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와는 달리 특별히 하나님의 소유된 나라로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자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했습니다.
나중에는 자기 하나님을 버리고 이웃 나라 강대국의 종교를 수입하다가 섬겼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상 여호와 하나님 보다는 이웃 나라가 훨씬 더 입맛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입장을 고려하는 태도가 아니라 자기 입장을 고려해서 신을 골라 섬기는 식이었습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일관성은 어떻게 나타날까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처음 생겨난 것은 출애굽이었습니다. 애굽에서 히브리 민족이 대규모로 탈출 성공한 사례가 곧 이스라엘이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 출애굽 정신을 통해서만 수립되고 유지됩니다.
이스라엘은 두 개의 출애굽을 갖게 됩니다. 하나는 애굽에서 처음 나왔을 때의 출애굽이요 두 번째는, 바벨론 제국에 잡혀 가서 다시 약속의 땅으로 되돌아오는 출애굽입니다. 제 2의 출애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출애굽 정신이 바로 하나님의 일관된 마음입니다. 춧번째 출애굽 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발라서 죽음의 사자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홍해 바다마저 갈라져 길어 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받아주었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코 자신네들이 가진 것이나 가진 능력을 신뢰하고 의지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네들과 함께 계신다는 그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지자들을 통해서 전달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들이 약속의 땅에서 안정 기조에 들어가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그런 식의 삶을 싫어했습니다. 그 대신 주변에 있는 나라들이 사는 삶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더 호감이 하고 매력있게 보였던 것입니다. 줄곧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믿고 사는 생활이 지겨웠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출애굽 정신을 상실할 때 가만 보고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출애굽 정신이란 인간 자신의 가진 재물이나 노력이나 행함의 힘으로 목숨이 부지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대한 순종에 의해서 생존이 가능한 생활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생활을 거부하고 기피한 것은 이제 나름대로 자기 가진 재산이 생겼고, 좀 살만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8장에서 하나님은 이런 우려점을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집 짓고 재물이 늘어나면 자기 손으로 벌었다고 여기고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귀찮게 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만약 그랬다가는 이방 나라처럼 멸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이 말씀대로 이스라엘은 초라한 행색을 하면서 바벨론으로 포로잡혀 갑니다. 처음 애굽에서 나올 때는 남자만 50만명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 2의 출애굽을 하면서 1차적으로 스룹바벨을 따라 나온 자가 5000명이요 두 번째 에스라를 따라 나온 자들이 기껏 2000명이었습니다. 그만큼 그들은 명맥만 유지한 셈이 되었습니다.
말씀과 하나님의 약속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만큼 적다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남은 자만 돌아온다’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가진 것이 있으면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게 되고 짐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일관성에 비추어볼 때 멸망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과 지옥을 설명하시면서 지옥과 천국의 존재를 논하시는 것이 아니라 거기로 통하는 길을 가지고 설명하셨습니다. 즉 지옥으로 통하는 길은 넓고 찾는 이가 많은 반면에, 천국으로 통하는 길은 길이 협소하고 험해서 찾는 이가 적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천국과 지옥을 생각할 때는 그 세계와 연결된 길까지 포함시켜서 믿어야 합니다.
사람이란 본성상 자기 편한대로 살고 싶어합니다. 힘들게는 살고 싶어하지를 않습니다. 인생을 여유롭게 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여유롭다고 여기면 하나님의 약속이나 말씀 같은 것은 뒷전으로 쉽게 밀려버립니다. 천덕거리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아무리 천국으로 통하는 길과 지옥으로 통하는 길을 명백하게 밝혀도 선뜻 좁은길로 발 옮겨놓을 생각을 그 누가 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마지막 때는 ‘남은 자’만 돌아오는 식으로 구원된다는 겁니다. 그것도 행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남겨진 자만 데리려 오시겠답니다. 어떻게 그것을 가능케 합니까? 마태복음 11:25-27에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특이하게도 알아듣는 자들이 발생한다는 겁니다. 그런 자는 주님께서 사전에 이 세상에 박아놓은 남은 자들입니다. 이들만이 좁은 길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좁은 길이란 참으로 인간의 힘으로 가지 힘들 길입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인도하지 아니하면 아무도 들어설 수 없는 길입니다.
빼앗기고 억울하게 당하기만 하더라도 오로지 ‘그저 주시는 은혜’의 소중함과 고귀함을 더욱더 감사하는 자만이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의 거저 주심의 은혜를 가로 막는 자는 사실은 우리 자신들입니다. 우리 자신들은 자신을 너무나도 사랑합니다. 요한복음 12:25에 보면, 자기 자신을 미워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사랑하면, 주님의 ‘거주 주심’의 은혜가 자꾸만 흐려지고 가려지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자는 자신을 철거하는 자입니다. 자신을 제켜버리면 어느새 그 뒤편에 주님의 어린양의 피가 ‘거저 주심의 은혜로 다가와 있음을 압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나의 것이 따로 없게 하옵소서 모두 주님의 것임을 늘 새삼스럽게 통감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