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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7대구강의06-"차라투스트라는이렇게말했다"(니체)를읽고자유게시판[신학]

07대구강의06-'차라투스트라는이렇게말했다'(니체)를읽고

이름 : 구득영(IP:203.223.97.201)

07 대구강의 6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저, 정동호 역, 책세상(서울: 2005)

07,05,21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니체, 기독교 진리자체를 시비걸다 !!

제가 "오랜만에 교회에 왔다" 라고 표현한 것은, 그래도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면, 이런 교회당 구조가, 즉 강대상도 있고 의자도 이렇게 적당하게 있어야 신앙이 부쩍부쩍 자란다는, 그러한 추억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보수하는 책임은 물론 목회자에게 있고 말이다. (무슨 교회이지? 녹매교회인가? ㅋㅋ)

오늘 강의할 내용은 '철학과 신학의 허상' 가운데서, 니체가 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 라는 것인데, 책제목이 아주 유식해 보이는데, 뭘 모르는 사람의 기를 팍 죽이는 듯한 말이다. 여기서 먼저 교재를 한번 보자.

** '차라투스트라'라는 인물은 고대 페르시아의 예언자로서 영어로는 '조로아스터'라고도 불리운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가 기독교 세력권에 의해서 이단사상으로 분류되었다는 점에서, 저자 자신을 차라리 기독교 세력으로부터 이단사상의 주동자로 불리우기를 자청해서 '차라투스트라'를 자신의 대변인으로 세우고 싶었을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차라투스트라' 라는 인물은 영어로는 '조로아스터' 라고도 불리우는데, 이 사람을 흔히 이단이라고 하는데, 굳이 이단이라고 하지 않아도 다른 종교나 종파라고 보면 되는데, 그러면 니체가 왜 이 인물을 들고 나오는가? 니체는 그 당시의 기독교에 대해서 불만이 가득한데, 마치 요즘의 도올 김용옥처럼 말이다.

◈ 말씀의 봉사자로서 니체를 제대로 공박해야 !!

그러면 이 니체가 기독교를 제대로 모르고 샘통이 나서 불만이 가득한 것이 아니라, 만약에 그럴 것 같으면 이 책을 볼 가치가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라는 책은 이미 기독교에서 무엇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다 알고, 그렇게 니체가 기독교의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그런데 그것이 그냥 피상적인(?) 기독교가 아니라 기독교 진리자체의 문제점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진리 자체를 말이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무엇을 알아야 하는고 하니까, 이렇게 목사가 있고 교인들이 있다면, 목사는 말씀에 봉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교인들의 주님의 성령과 관련이 되어있는데, 그러면 어떻게 봉사해야 하는고 하니, 교인들 앞에 성경책이 있는데, 이 성경책에 인간으로서 질문할 수 있는 모든 질문들이 다 보장된다는 것이다.

◈ 교인들의 엄청난 질문공세에 !!

"선악과를 왜 따먹게 했는가?", "그럴 것 같으면 차라리 심지나 말지", "그러면 따먹었는데 왜 당장 죽지 않고 900살이나 사는가?" 라는 등등, 온갖 질문들이 다 쏟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설교자로서 여기에 대해서 답변을 다 해야될 사전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가 더 궁금합니다" 라고 하면서 넘어가려고 하지 말고 말이다. 그냥 "나는 예수 믿고 천당 가겠다" 라고 한다면 말씀의 봉사자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니체가 그 당시 성직자들에 대해서 공격하는데, 그것은 요즘처럼 성직자들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시비거는 것이 아니라, 성직자들이 주장하는 그 진리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왜 진리대로 살지 않는가?" 라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주장하는 진리자체가 문제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 니체의 질문이 바로 내 질문 !!

그런데 니체가 시비를 거는 이런 것들이, 평소에 교회당에 나와서 얌전하게 예배를 드리는 교인들의 잠재된 의식 속에 있는 질문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 평소에 묻고 싶은 것들이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왜 니체의 이 책을 공부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교인들이 성경책을 통해서 묻고 싶은 모든 질문들을 이 두꺼운 책을 통해서 물을 수도 있는데, 그러면 거기에 대해서 목사는 답변할 책임이 있는데, 그런데 목사가 되어서 "그런 질문은 처음이네요" 라고 하면 곤란하다는 말이다. "당신은 미처 몰랐지만, 제가 공부한 바로는 그것은 니체 사상입니다" 라고 해야지 말이다. 그렇게 답변할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 설교자의 자세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것은 이단입니다. 제가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습니다" 라고 한다면, 만약에 그 자리에 니체가 앉아있다면 뭐라고 하겠는가? "그것 봐. 저 목사는 아무 것도 모르잖아. 내가 그렇게 심사숙고해서 말해도 답변을 못하니, 우리끼리 모여서 우리의 사상을 공유하세" 라고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목사가 되어서 "이것이 진리이다" 라고, 그렇게 진리를 외친다고 하면서, 그런 니체의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지 못하면, 그 목사가 말하는 진리는 포괄적인 것이 아니라 너무나 단편적인데, 자기 것만 달랑 챙기는 말이다. 일방적으로 자기 주장만을 전개하면서도 진리라고 우기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독교를 정면으로 들이받는, 즉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라는 종류의 책들을 제대로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전문적으로 파고들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말이다.

◈ 자기 자신도 미처 몰랐던 질문들이 !!

사실 사람들은 자기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질문을, 즉 어떤 질문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똑똑한 니체가 대신해서 질문을 해주면, "아하, 맞네. 내가 궁금했던 것이 바로 그것인데, 내가 물어본다는 것이 그만 깜박 잊어버렸네. 니체를 보니 이제 생각이 나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목사는 "그렇다면 성경은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떤 답변을 해줄까?" 라고 하면서 깊이의 진보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같이 공부를 하면서, 우리 자신도 미처 몰랐던, 즉 느낌은 드는데 윤곽이 잡히지 않아서 질문하지 못했던 궁금증을, 니체는 이런 책을 통해서 낱낱이 끄집어내어서 기독교를 향해서 하나하나 모두 다 공격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노? 자신 있으면 답변해봐라" 라고 한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가 하려는 공부가 그런 의의가 있다는 것이다.

◈ 아담의 속성으로 인한 질문들 !!

다시 정리해보면, 모든 인간은 공통된 아담의 속성을 지녔기 때문에, 그런데 아담의 속성이 남아있는 정도가 아니라, 이것을 니체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니체의 질문이 바로 우리가 알든지 모르든지 간에 우리에게 잠재되어있는 질문인데, 사실 잠재된 정도가 아니라 그대로 들어있는데, 니체가 이렇게 용감하게 눈치를 보지 않고 질문을 마구 해대고 있으니, 그런 질문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답변을 할 것이지 알아보자는 것이다.

◈ 니체의 공격은, '예수'로부터 출발 !!

그런데 문제가 무엇인고 하니, 즉 니체가 지적하는 문제점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고 하니, '예수'부터 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아니고 말이다. 니체는 일부러 예수님이 아닌 '예수' 라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같은 의미로 사용하지만 말이다.

예수자체는 분명히 인간인데, 성경에 보면 예수 스스로가 자기가 인간이라고 주장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닌데, 본인이 그렇게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를 인간이라고 보지를 않고, 하늘에서 내려온 신으로 보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김용옥과 대담을 했다는 유대교 윤리학자와 비슷한 의견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예수 본인이 인간으로 보았는데, 그런데 그 예수를 따른다고 하면서도 그 예수의 말도 듣지 않고 예수를 신격화시켰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후대의 예수 제자들이 정치적 술수를 사용해서, 예수를 그렇게 신격화시킴으로서 자기들의 존재 의의가 생길 수 있다는 노림수 때문에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 예수는 왜 굳이 "나는 인간이다" 라고 했는가?

그래서 니체는 주장하기를, 이 부분이 오늘 강의에서 제일 중요한데, 이렇게 예수가 자신을 인간으로 볼 때는, 즉 예수가 그렇게 자기가 인간이라고 할 때는 무엇을 염두에 두었는고 하니까, 흔히 우리가 말하는 인간과 예수가 자기를 인간이라고 하는 그 인간과 서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인데, 바로 그것을 암시해주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인간으로서 다가왔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이 인간으로 다가온다" 라는 것이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데, 인간이니까 인간인데 말이다. 아무튼지 예수는 자기가 신격화될 것을 우려해서, 왜냐하면 모든 종교는 후대의 추종자들에 의해서 신으로 받들어지니 말이다. 예수는 그런 것을 미리 사전에 차단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가 그렇게 자기가 인간이라고 강조하는 중요한 이유가, "나만이 예수가 아니고, 너희들도 나처럼 가장 진솔한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다" 라는 것을 암시하고 자극하기 위해서,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자기가 인간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니체는 예수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자들아, 예수님이 우리를 보고 '너도 나처럼 예수가 될 수 있다' 라고 한 그 취지를 받들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예수의 말씀 가운데 우리 인간 속에서 예수처럼 동일한, 그런 이상적인 인간이 될 수 있는가?" 라고 하는, 그것을 한번 뽑아내어 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뽑아내는 목적이 바로, 예수가 완벽한 인간임이 드러난 것처럼 우리들도 역시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첫째, 우리도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 !!

다시 정리하면, 첫 번째가 "우리도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 라는 것인데, 이것이 나중에 가면 '초인(超人)' 이라는 개념으로 등장하는데, 그것은 복잡하고 어려운 용어이니, 여기서는 그냥 완전한 인간으로 보자는 것이다. 이것이 니체가 첫째로 바라보는 인간을 바라보는 예수와의 연관성이라는 것이다.

◈ 둘째, 예수는 참고사항으로만 해라 !!

둘째가 무엇인고 하니까, 이것이 좀 어려운데, 그러면 예수의 말을 순종하면 예수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고, 여기 '우리' 라고 하는 것이 예수 이전에 수많은 인간들이 있었는데, 예수는 그런 인간들 중에 한 사람에 불과한데, 따라서 전에부터 내려온 인간이라는 부류 속에서 우리 인간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라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까, "예수를 본받자, 따르자" 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참고사항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이전에 석가모니도 있었고 공자도 있었는데, 그 공자하고 우리하고 같은 부류의 인간인데, 그러면 그런 석가모니나 공자와 우리와의 공통점을 찾아내면, 그것이 바로 예수가 우리에게 우리 스스로 찾으라고 했던 그것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 그런데 왜 '차라투스트라' 인가?

그런데 니체는 그것을 석가모니나 공자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이 책제목대로 '차라투스트라' 에게서, 즉 '조로아스터' 에게서 찾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라고 하는 독특한(?) 책제목을 붙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의도적으로 차라투스트라인고 하니, 석가모니나 공자는 예수교로부터 이단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도 되고 다른 유명한 사람들도 되는데, 그런데 왜 하필이면 초대교회로부터 이단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이 차라투스트라를 끄집어내는가? 그것은 바로 그렇게 말미암아서 니체가 어떤 점을 노리는고 하니, "너희들이 그렇게 이단이라고 했던 그가 실제로는 예수와 똑같은 사상을 가지고 있었음을 왜 모르는가?" 라는 것이다. 그 당시 유럽전역에 퍼져있는 기독교 골통들을 향해서 그렇게 니체가 공격한다는 말이다.

◈ 실례지만, 어떻게 교회에 오셨는지?

이것이 니체의 이야기인데,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교회에 교인이 한 사람 왔는데, 이 사람은 그렇게 무식한 사람은 아니고, 물론 무식해도 마찬가지이지만, 고위 공무원을 했는지 모르지만 절에도 찔끔 나가고 교회에 찔끔 나가던 사람인데, 아무튼 평소에 신에 대해서 좀 관심이 있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렇게 왔다는 것이다.

이 사람이 목사의 설교를 다 듣고 나서 하는 말이, 물론 그가 예수를 믿자는 것을 거부하지는 않지만, 교양을 높이는 차원에서 목사의 설교를 분석하고 나름대로의 얻을 것을 찾아보고 나서, "아하, 불교나 기독교나 모두 배울 것은 있구나" 라고 한다는 것이다.

* 목사님, 불교나 기독교나 모두 배울 것은 있군요.
* 당신에게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지요?
* 예, 저는 교회에 온 목적이 이상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서 입니다.
* 그 이상적인 인간이 뭐지요?
* 저는 공직에 있어서 거기까지는 생각을 안 해보았습니다.
* ? ? ?

니체는 바로 철학적으로 이상적인 인간을 이미 구축했는데, 자기는 이미 이렇게 이상적인 인간상을 구축해놓고서 그 다음에 예수 이야기도 듣고 다른 유명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똑같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구태여 기독교를 주장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 이제는 종교에서 벗어난 자유인이 !!

그래서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를 내세워서, 그는 예수의 산상설교를 좋아했는데, 예수의 이 산상설교와 차라투스트라의 이야기가 전혀 차이가 없음을 주장함으로서, "세상 모든 사람들아, 기독교라는 이름의 이데올로기와 지배구조에서 벗어나서 자유인이 되자" 라고 외치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 21세기에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서 예수에게 굴복을 당해서 나오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교양을 높이기 위해서, 즉 자기의 정신적인 자유를 마음껏 구가하기 위해서 나온다는 것이다. 목사가 예수 이야기를 백날 해도 듣는 사람들이 "저것은 도움이 되겠다" 라고 해버리면, 결국 알곡이 아닌 가라지만 잔뜩 키운다는 것이다. 물론 복음은 아니고 말이다.

이렇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 어버이날에 효도가 어쩌고 하면서 기존 교양을 전해버리면 가라지만 자꾸 키우게 되는데, 그러나 가리지가 아무리 많아도 알곡이 되는 법이 없는데, 물론 가라지가 많으면 교회당을 증축하고 교육관을 짓고, 또 주차장을 넓일 수는 있지만 말이다. 계속 가라지만 온다는 말이다.

그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물으면 모르지만, 그러나 무엇은 아는고 하니, "예수는 훌륭한 분이다" 라는 것은 말이다. 그러니 굳이 니체가 기독교를 공격하지 않아도 오늘 21세기는 모든 교회들이 다 그렇다는 말이다. 니체사상에 다 동조되어간다는 것이다.

◈ 21세기에는 자동적으로 니체교회에 등록이 !!

올바른 인간되기, 훌륭한 사람되기, 인간답게 살기 등등, 이런 것들은 완전히 그야말로 니체가 주장한 그대로의 '니체교회(?)' 라는 것이다. 니체가 그 당시 교회를 굉장히 공격했지만, 사실은 가만히 놔두어도 그런 니체식의 교회가 되는데 말이다. 가라지가 말이다. 그러니 괜히 헛힘만 썼다는 것이다.

십자가 마을 사이트에 보면, '김인찬' 이란 분이 주장하기는 것이, "한국교회는 개혁되어야 한다" 라는 것인데, 그러나 가만히 두어도 교회는 개혁이 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복음을 전하면 그 가운데서 알곡이 나오게 되어있지, 한국교회를 개혁하자는 목적을 가지고 외쳐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교회는 아무리 개혁해도 복음은 나오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니체가 겁도 없이 그렇게 거대한 세력인 기존 교회를 향해서,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라는 것이 아니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라고 도전을 내밀었는데, "에라이, 이 가짜들아" 라고 하면서 말이다. 사실은 가짜가 아니라, "이 무식한 놈들아" 라고 외친 그 내용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그 취지를 알았으니, 이제는 그 내용을 한번 살펴보자는 말이다. 그런데 막상 이 책을 보면 그렇게 은혜로울 수가 없는데, 제가 미리 이렇게 20여분동안 초칠(?)을 해도 말이다. "이런 세상에, 니체만큼 복음 아는 사람도 없네" 라고 말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교재를 살펴보자.

** 그러면 니체가 환희와 정열을 가지고 전파하고자 했던 그 참다운 세계관이란 어떤 것인가? 기존의 기독교에서는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는 식으로 대중들을 가르쳐 왔다는 것이다.

◈ 니체 당시의 교회 분위기 - 신칸트주의 !!

여기서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 라는 것은 칸트의 주장인데, 참고로 이야기하면, 19세기 이후에 모든 유럽의 교회는 신칸트주의로 흘러가게 되는데, 여기서 신칸트주의에 대해서 잠시 설명을 하고 니체의 공격내용에 대해서 살펴보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칸트주의를 모르면 니체가 왜 그런 공격을 하는지 모르기에 말이다.

종교개혁 때의 루터와 칼빈의 사상이 나중에 (독일의) 경건주의에 들어와서 결합이 되는데, 청교도와 개혁주의 사상도 나누어질 것 같지만 나중에는 섞여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혼합이 된 채 그 시대에 맞게 각기 다른 형태로 튀어나와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들여다보면 루터와 칼빈의 사상이 다 들어있다는 말이다.

루터는 어디에 이용되는고 하니,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라고 하는데, 십자가는 쏙 빠져버리고 말이다. 구원론에 의한, 즉 행함이 아닌 오직 믿음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칼빈은 어디에 이용되는고 하니까, 일단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 뭔가 행함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그 믿는 행위가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믿음+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 신칸트주의의 기초 - 경건의 합리화 !!

이러한 두 가지를 결합을 시켜서, 각 나라와 각 지역의 사정에 따라서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형태로서 각기 다른 교파(?)들이 발전을 하는데, 이 신칸트주의가 어디서 나오는고 하니, 그 기초가 곧 경건을 합리화시킬 때 나온다는 것이다.

방금 '믿음+행위' 라고 말했는데, 이 행위가 바로 경건한 행위인데, 이것을 중구난방으로 이야기하지 말고, 그것을 합리화시켜서 교인들에게 딱딱 들어맞는 규칙을 제공해야, 즉 "이럴 때는 경건이고, 저럴 때는 경건이 아닙니다" 라고 말이다. 이것이 경건이지 아닌지 그 기준점을 제시해서 합리화시킬 때 사용이 되는데, 그런데 그 합리화가 바로 '법'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신칸트주의는 바로 '법 만들기'와 관련이 있는데, 이렇게 법이 되면 "반드시 뭔가 해야한다" 라는 것이 나온다는 말이다.

◈ 다시 정리하자면 !!

다시 정리하자면, 루터와 칼빈의 사상이 혼합되면서 각 지역마다 특색 있는 교파들이 나왔는데, 루터에게서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라는 것을 따왔고, 칼빈에게서는 "믿는 자라면 믿는 행색을 해라" 라는 것인데, 즉 믿음과 그 다음에 행위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 행위가 바로 경건한 행위인데, 그런데 목사는 그것이 경건한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위해서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 만들기와 관련된 것이 신칸트주의이고 말이다.

◈ MUST DO IT !!

이 신칸트주의에서 말하는 법의 기초는 바로 산상설교인데, 이 산상설교를 토대로 삼아서 여기에서 나온 세칙들을, 즉 법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당시의 교회들은 교재에도 있듯이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 라는 것이다. 이렇게 마땅히 하지 않으면 당연히 믿음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말이다. 그러니 행함을 통해서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데, 그 행함이 바로 마땅히 해야 한다는 신칸트주의인데, 이것을 도덕적인 경건을 통해서 가능하고, 그 도덕적 경건은 산상설교에 기초해있다는 것이다.

◈ 산상설교를 공격하라 !!

그렇다면 니체가 공격을 한다면 어디를 하겠는가? 믿음, 행위, 경건, 법, 산상설교, 이렇게 놓여있다면 말이다. 여러분이 니체가 생각하고 한번 골라보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산상설교' 인데, 왜냐하면 믿음과 행위 같은 것이 교회에서 나왔다면, 이 교회는 예수의 말씀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 예수의 말씀이 신칸트주의에서 주장하는 데로, 교회에서 "마땅히 이렇게 해야한다" 라고 하는 그 기초가 바로 산상설교라는 것이다.

이 산상설교에 대해서 니체가 집착하는 이유가, 제가 20분 동안이나 전제로 깔아놓은 것이 무엇인고 하니, "예수만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인데, 그런데 이 산상설교를 예수가 주장했는데, 그런데 이것을 예수만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차라투스트라도 산상설교와 같은 취지로 이야기한 것이 증명이 된다면, 지금까지 교회에 한 모든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는 것이다.

◈ 초인(超人), 그대는 진정한 자유부인 !!

니체가 이렇게 무너뜨리는 목적이 무엇인고 하니, 이렇게 그것들이 무너지면 인간이 예수에게, 심지어 차라투스트라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즉 인간은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그야말로 자유인이 되는데, 이 자유인을 두 글자로 '초인(超人)'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얽매이지를 않는 말이다. 이제 이야기의 주제가 명확해졌는데, 니체가 어디를 치는가? 사실은 치는 것이 아니라, "산상설교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하는가?" 라는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하지만 초인(차라투스트라가 제시하는 새 인간상)은 '나는 하고자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하고자 한다'는 식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능력이 과연 인간에게 있을까?

◈ 신칸트주의와 니체의 차이점은?

신칸트주의는 "나는 반드시 해야만 한다" 라는 것이었는데, 그런데 니체가 말하는 초인의 경우에는 "나는 하고자 한다" 라는 것이란 말이다. 신칸트주의에서 법은 인간 바깥에 있는데, 이 바깥에 있는 법이 우선이고 인간은 거기에 복종해야 하는데, 그런데 이제는 "내가 한다" 라고 하면 법을 누가 만드는가? '내'가 법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니 니체가 주장하려는 것은, "니가 바로 예수인데 왜 예수의 말을 듣는가?" 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예수를 믿지 말고, 예수를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당신이 바로 예수이니 말이다. 그것이 바로 차라투스트라가 모든 인간에게 설파한 내용인 것이다. 부처의 경우에도, 길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버리라는 것이다. (이런 점이 니체가 불교와 비슷한 점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것은 예수의 가르침과 틀리는 것이 아닌가? 천만의 말씀인데, 예수의 가르침이 바로 이것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가 원한 것은, 예수인 자기를 믿는 것이 아니라, "너도 나처럼 될 수 있다" 라고 하는, 바로 그것이란 말이다.

◈ 니체주의자, 여기 여기 다 모여라 !!

오늘날 교인들이 교회에 교양적인 목적으로 나오기에 사실 니체의 이런 주장이 더 먹혀든다는 것이다. 그러니 목사들이 니체를 모른다고 해도, 교인들의 입맛에 맞추다보면 모두가 아무튼 니체주의자(?)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복음을 모르니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니체는 말한다. '어린아이를 보라. 그들은 그냥 놀지 않는가!'라고 말이다. 즉 순진무구하게 스스로 자기 놀이를 시작하고, 긍정하면서 창조하는 어린아이들이 참으로 초인에 합당한 품성이라고 보고 있다.

◈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

니체가 여기서 어린아이를 말하는데,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가 아닌가?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는가? 마태복음에 나오는데, 제자들이 자기들끼리 누가 더 높으냐고 할 때,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앞에 내세운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마 18: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마 18: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마 18: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런데 니체에 의하면, 이 어린아이들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신칸트주의의 법이나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법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법 자체를 몰라도 되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일부러 "나는 법을 지키지 않을 거야", 혹은 "법아 나오너라. 나랑 한바탕 붙어보자" 라고 하면서 까부는 게 아니라, 어린아이는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 자체가 법을 구태여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 곧 예수가 말한 산상설교의 기본정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께만 범죄했다" 라는 이야기만 듣고 나면, 그 다음에 당장 튀어나오는 소리가 "그러면 사람에게는 무슨 짓을 해도 되겠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니체가 원하는 것인데, 그러니 지금 니체가 제자가 많다는 것이다. 니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말고 다른 유명한 책이 있는데, 그 책제목이 '극히 인간답게 (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 라는 것인데, 혹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라고도 번역이 되어있는데, 얼마나 니체의 사상을 함축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초인' 이라고 해서 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초인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독일어로 '위버맨(uberman, overman)' 이라고 하는데, 지극히 인간답게 말이다.

◈ 꼴리는 대로 살자 !!

이런 사람을 굳이 구체적으로 집어서 이야기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김지하', 그리고 남한산성과 칼의 노래를 쓴 '김훈' 정도이고 말이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인간다운지 말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모든 말들은 소설로서 다 쓰고, 정작 자기는 그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서 말이다. 담배도 마음대로 피우면서, "담배를 끊어야 한다" 라는 것도 일종의 법이라면 법인데 말이다.

아무튼 그런 법과 굴레에서 다 벗어나서 자기가 '꼴리는 대로(?)'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김용옥 교수에 의하면 이 '꼴림'도 엄청난 철학적 의미가 있는데) 아무튼 인간이 그렇게 자기가 꼴리는 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니체가 주장한 것으로, 인간이니 당연히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니 말이다.

◈ 김 집사님, 왜 교회에 나오시죠?

그렇다면 오늘날 교인들도 내색은 하지 않지만, 교회에 나오는 목적도 바로 이런 자유를 신이 보장한 자유로 여기고서 그것을 보장받기 위해서, 즉 신에게 허락을 받아서 자기 마음대로 그런 자유를 구가하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미리 이야기합니다만, 니체는 어린아이가 어린아이가 되기 위해서는, 사실 이미 이 정도의 책을 보는 사람들은 다 어른이니 말이다. 그런 어른이 어린아이가 될 수 없으니, 그러니 강한 반발이 있어야만 어린아이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린아이를 어른으로 만들었던 것이 무엇인가?

◈ 어린아이를 어른으로 만든 것은 누구인가?

그것이 바로 '기독교' 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이 기독교에는 "반드시 무엇을 해야만 한다" 라는 것이 있는데, 그래서 이러한 것을 인간에서 빼내어야 하는데, 이렇게 빼버린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고 하니, "저것은 법이니 해야 돼. 이것은 안 해도 돼" 라고 따진다는 말이다. 이렇게 따지는 것이 바로 '이성' 인데, 그러니 이성적인 그런 습관을 강제로 짓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니체의 이런 말을 듣고서 말이다.

그런데 무조건 짓밟고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한쪽은 억누르고 있으면서 다른 한쪽은 폭발을 시켜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의 '감정' 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의지' 라고 하는데, 모두가 같은 의미로 보면 되고 말이다. 자기 속에 그동안 억눌렸던 그 감정을, 여기 감정과 의지를 합쳐서 '욕망' 이라고 하는데, 욕망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의지로 분출을 해야하니 말이다.

이렇게 억눌린 욕망을 분출해야 하는데, 그래서 여기 니체에게서 프로이드가 나온다는 것이다. 프로이드는 인간을 의식과 무의식(비의식)으로 보았는데, 혹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전의식'을 넣어서 3층으로 보기도 하고 말이다.

◈ 예술 - 기독교로부터의 탈출 !!

니체의 이러한 욕망 위주의 철학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그동안 기독교 중심의 법으로 통치했던 이데올로기에 완전히 질식한 정도로 그런 굴레에 빠져 있다가, 그것을 과감하게 차버리고 벗어나기 위해서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욕망은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튀어나오는가? 그것은 바로 '예술'의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이 예술로서 말이다.

◈ 드디어 '개념미술'이 등장 !!

요즘 그림 한 장에 300억, 혹은 600억이라고 하는데, '소더비' 경매시장에서 잘 팔리는 중국과 영국의 신세대 작가들의 설치작품들을 보면, 사실 예술인지 장난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작품 값이 수백 억이라는 말이다. 그러한 미술경향을 '개념미술' 이라고 하는데, 개념만 있으면, 즉 개념만 독특하면 돈이 된다는 것이다.

◈ 이제는 욕망이 돈이 되는 시대 !!

저기 과천에 있는 국립미술관에 가보면, 대부분이 개념미술을 설치하고 있는데, 있는 사실을 그대로 그려서는 돈이 안 되고 개념미술을 해야 되는데, 즉 뭔가 느끼고 풍기는 것이 있을 때 비로소 돈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개념을 끄집어내려면 이미 합리화되어있는 체계 가운데서 하면 안 되고, 남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욕망의 어두운 심연에서 자기가 독특하게 개발해서 끄집어낼 때, 그렇게 해야 인기 있는 예술가가 되고 돈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제는 "누가 더 기발한 욕망을 끄집어내는가?" 라는 것인데, 그 원조가 곧 니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욕망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인간의 이성을 공격하면서 나온다는 것이다. 프로이드가 이것을 증명했는데, 인간은 이성이 우선이 아니라 감정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이성은 나오는 감정을 "제발 좀 참아도" 라고 뒤치닥거리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야, 여기서는 오줌을 누면 안 된다니까. 니가 미쳤나? 정신 좀 차려" 라고 하고 이성이 감정에게 말이다. 그리고 술을 한 잔 하고 나면, "야, 여기서 자면 안 돼. 이 전보대가 니 마누라인 줄 아나. 왜 그것을 끌어안고 자노"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인간을 다 버려놓은 것이 바로 기독교 !!

그런데 그것을 "내가 술을 먹고 이렇게 자는 것도 예술이다" 라고 하면 예술이 된다는 것이다. 욕망의 모습이니 말이다. 그것을 '해프닝', 혹은 '포퍼먼스' 라고 하는데, 이러한 것들의 원조가 바로 니체인데, "이제는 어린아이와 같은 나를 건드리지 마라" 라는 것이다. 인간의 이러한 순수함을 윤리와 도덕이 다 버려놓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윤리와 도덕의 최고수준에 있는 것이 기독교인데, 그런데 기독교는 예수의 말씀을 기독교 교리화시켜서, 정작 예수는 이런 예수가 아닌데 기독교를 전통과 관습을 하나의 세력화를 시키려고 하니까, 예수를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다른 예수 만들어서, 그렇게 해서 기득권자들이 자기 권력을 남발하는 것을 정당화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목사와 신부를 온 나라에 깔아놓고서는, 그렇게 해서 전 국민을 그 법의 울타리 안에 넣어놓음으로서 눌리려고 하는, 그렇게 해서 자기들만의 자유를 누리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했던 모든 자기들의 궁전이 와르르 무너지고, 어느 것 하나의 어린아이 같은 인간의 순수한 마음을 건드릴 그 어떤 신이나 종교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것을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다시 어린아이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 예술 - 인간의 순수함을 찾아서 !!

그래서 이 니체의 철학에 심취해있는 사람은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온 것은 다 버리고 다시금 자기를 돌아보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이 '순수함' 이라는 것은 예술로만 나오지 그 어떤 윤리나 도덕, 그리고 법과 같은 기준으로는 그러한 순수함이 파악도 안 되고, 포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법에서부터, 그러니 끊임없이 법이 있으면 또 도망치고, 그런데 도망을 치다가 멈추면 또 법이 생기고 말이다. 그래서 또 도망치고, 또 도망치고 말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도망과 도망을 거듭하고 거듭하면서 새로운 자유를 추구하고 구가하는 것이, 그것이 곧 현대의 예술이고, 니체주의자들의 모습이고,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것이다. 해체주의의 사고방식이기도 하고 말이다.

◈ 내가 뭘 잘못했는데요?

오늘날 초등학교에서 여선생이 아이를 때리고 그것을 학생들이 휴대폰으로 찍는 것도 그러한데, 이성을 공격함으로서 자기의 순수함을 지키려는 반발인데, 그것을 옛날에는 나쁘다고 하면서 양심으로 자제했는데, 지금은 온 나라전체가 그런 것을 양성화를 시켜놓았기 때문에, 그것이 버릇이 되고 급기야 국가적 습관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오토바이를 타고 삐리 삐리 하면서 돌아다니다가 경찰에게 붙잡히면 반항하고 말이다. 그래서 경찰들이 하는 말이 "요즘 젊은 아이들의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기준조차 없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사실 자기들도 그런 말을 할 입장은 아닌데도 말이다. 70대 노인이 학생들이 담배를 핀다고 야단을 친다고 해서 마구 때려서 거의 다 죽게 만들고 말이다.

◈ 원조교제는 무슨, 내가 곧 어린아이인데 ??

아무튼 그렇게 해놓고서도 자기가 한 행동이 옳은 것이 아닌 것인지 구별이 안 된다는 것이다. 원조교제도 그렇고 말이다. 아무튼 그런 행동들이 왜 잘못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나라전체의 분위기가 윤리와 도덕을 나쁜 것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이제 다시 교재를 보자.

** 니체는 말한다. '어린아이를 보라. 그들은 그냥 놀지 않는가!'라고 말이다. 즉 순진무구하게 스스로 자기 놀이를 시작하고, 긍정하면서 창조하는 어린아이들이 참으로 초인에 합당한 품성이라고 보고 있다.

◈ 초인은 즉흥적이다 !!

여기에 '자기 놀이' 라는 말이 나오는데, 어린아이들은 놀이를 할 때 기존 법칙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즉흥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여기 이 '즉흥적' 이라는 말이 참으로 중요한데, 초인은 초인에게 얽매이지 않고 '즉흥'에 매이는데, 들뢰즈도 이런 니체주의라고 볼 수 있고 말이다.

◈ 들뢰즈 - 욕망이 인간을 데리고 !!

들뢰즈는 사람이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사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욕망이 그때그때 만들어낸 것이 자아라는 것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다른데, 즉 "한푼 줍쇼" 라고 할 때 자아와 "어허, 잘먹었다" 라고 하는 배부를 때의 자아가 다르다는 것이다. 욕망이 자기를 즉흥적으로 창출하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면 자기는 욕망이 만들어낸 예술작품이 되고, 자기 행위는 예술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니체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예술이다" 라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예술을 한다는 것은, 작품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이고 말이다.

◈ 아무튼 어린아이들이 초인에 합당한 품성 !!

아무튼 니체는 이렇게 "순진무구하게 스스로 자기 놀이를 시작하고, 긍정하면서 창조하는 어린아이들이 참으로 초인에 합당한 품성이다" 라고 보았는데, 이것을 기준점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놀이는 헌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모여서 "우리 이제 무슨 놀이를 할까?" 라고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소꿉놀이를 하니 말이다.

이것을 표준적으로 했을 때, 이것보다 어른들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은, 그것은 곧 기성세대가 나쁘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냥 나쁘다고 해버리면 안 되고, 그 나쁜 이유를 찾아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기성세대로 하여금 어린아이처럼 돌아가지 못하게 만드는지 말이다.

◈ 초인이여, 법을 모조리 때려부수어야 !!

그것은 바로 '법' 인데, 그러니 그 법을 모조리 끄집어내어서 일일이 다 때려부수는 창조행위가 '초인', 즉 '차라투스트라'가 해야만 될 크나큰 중대한 사명이라는 것이다. 니체는 지금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는 말이다. 법이란 법은 다 끄집어내서 모조리 때려부수는데, 그 기준의 순진한 어린아이의 감정이고 말이다. (불편한 자기 몸을 이끌고서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따라서 저자가 소개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인 초인이라는 것은 '어린아이 같이 놀기'인데, 이 순진무구한 창조성을 질식하듯이 통제하고 징벌하는 자들을 방치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 초인은 '놀기'를 좋아해 !!

니체가 말하는 초인은 '놀기' 인데, 어떤 사람은 이것을 제대로 찾아내지를 못해서 초인은 신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러나 니체는 신이 되는 것에도 관심이 없고, 그냥 '놀기' 라는 것이다. 이런 것이 상당히 어려운데, 좀 더 신경을 써서 이것을 해보면, 이 세상은 모든 것이 행위가 우선이지 '내'가 우선이 아니라는 것이다.

◈ "내가 간다" 라는 의미는?

어제 오후 설교시간에도 이런 이야기를 했지만, "내가 배가 고프다" 라고 했을 때,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 "배가 고픈데 나중에 보니 그것이 나더라" 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배고픔이 먼저 오고 '나'는 그 배고픔에 종속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사실 이 '내가' 라는 것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니체는 말하기를, 문법에는 '내가' 라는 것을, 즉 주체를 집어넣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냥 행위만, 즉 동사만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간다', '배고프다' 라고 말이다. 그런데 "누가 가는가?" 라고 물으면, 그때야 비로소 "내가 간다" 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가는데 보니까 그것이 곧 '나' 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서 "내가 간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가 글을 쓴다" 라고 할 때도, 글을 적고 있는데 보니까 그것이 곧 '나' 이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데, 다시 말해서, 인간은 먼저 행동하도록 되어있지, 생각하고 난 뒤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니체를 추종하는 철학자들의 경우에 이 니체에 대해서 반박이 안 되는데, 이 니체가 분명 파격적이고 과격한 것은 사실인데, 그런 것에 대해서 문제가 있으면 반박을 해야 추종자이고 제자들다운 것인데, 그런데 그것이 안 된다는 것이다. 너무 똑똑하니 말이다. 오죽했으면 미치기까지 했겠느냐는 것이다.

◈ 인간은, 신과 질료의 결합이다 !!

니체는 주장하기를, 기존의 것을 모르면 몰라도, 기존의 것을 다 알고 나서 그것을 다 때려부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들이 법제화, 즉 법으로 모두 만들어져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니체는 말하기를, "인간은 무엇인가? 신과 질료의 결합이다" 라고 했는데, 하지만 이것은 놀랍게도 이것이 창세기 2장의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데 그런 것이 아니라, 이렇게 니체가 "인간은 신과 물질이 결합된 것이다" 라고 주장을 할 때는, "인간은 고귀하다" 라는 차원의 기독교 사상이 아니라, 이렇게 인간이 신과 재료로서 만들어졌다면, 그러면 무엇이 없는가? 누가 빠졌는가? 인간이 그만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없는데, 그런데 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의식하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니체의 주장이라는 말이다.

지금 당신 속에는 신이 있는데, 왜 매일같이 "나는 아프다" 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즉 "내 속에 내가 없는데, 왜 나를 집어넣는가?" 라는 것이다. 이것이 반박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지금 유 목사님은 없는데, 유 목사님은 없고 신이 있는데, 그리고 죽으면 흙이 되니, 신과 흙이 결합되어있다는 것이다.

◈ 인간이 없는데, 왜 자기를 의식하는가?

그렇다면 인간은, 자기가 없는데 왜 자기를 의식하게 되는가? 결국 이렇게 자기를 의식한다는 것은 그 본질이 어린아이와 같은 것이 아니라, 자기가 속해있는 사회가 타인의 지배와 타인의 말을 듣기 위해서 '나' 라는 자아로서 정립을 해야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항상 자기를 의식하고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266번' 라고 하면 '예' 라고 대답을 하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가 부르면 말이다. 그런데 불러도 대답이 없으면 265번이 쿡 찌른다는 것이다. 대답을 하라고 말이다. 그때 "나는 내가 아닌데" 라고 하면 안 되고, 265번과 267번 사이게 있으면 266번이라는 것이다. 즉 "사회가 나를 나로 만들었다" 라는 것이다.

◈ 니 이름은 이근호 !!

라캉이 여기에 대해서 아주 강조를 하는데, '나' 라는 것이 없는데, 즉 욕망적으로 보면 '나'가 없는데,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기 다르니 말이다. 여기 '나'는 무엇이든지 즉흥적인데, 물론 모든 인간이 다 그렇고 말이다. 그런데 사회가 "너는 이름을 이렇게 해" 라고 하면, 즉 "니 이름은 이근호이다" 라고 정해놓아 버리면, 그 다음부터 '이근호' 라고 부르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본인이 정한 것이 아니고, 부모님이 정했는데 말이다.

◈ 신의 굴레마저도 벗어버리자 !!

니체는 주장하기를, 그러니 이제 그런 엄마와 아버지의 굴레를 벗어버리자는 것이다. 엄마와 아버지를 자꾸 의지하니까 그것이 이어져서 누구를 의지하는고 하니, 신을 의지한다는 것이다. 신은 아버지이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을 '어머니'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하나님 어머니(?)' 라고 말이다.) 그래서 엄마와 아버지를 끊어버리면 신도 우리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 예수를 왜곡하지 마라 !!

여기에서 니체가 주장하기를, 예수는 그러한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체제를 붕괴시키기 위해서 왔다는 것이다. 모두 다 때려부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목사와 신부들은 그렇게 따로 만들어서 사람들을 못살게 구느냐는 것이다.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을 모두 자기 수하로 만들어서 놀아나도록, 왜 그렇게 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니체가 분노를 일으켰는데, 그 분노가 얼마나 심했으면 미치기까지 했느냐는 것이다. "더러워서 이 세상을 못살겠다. 에라이 죽자" 라고 말이다.

이렇게 인간은 신과 물질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인간 속에 있는 신이라는 욕망은 신이 되게 하는데, 즉 자유인이 되게 말이다. 그런데 이것을 가로막는 것이 인간들이 만든 '사회' 라는 것인데, 그 '사회' 라는 집단이 인간으로 하여금 신이 되는 것을 가로막았는데, 그래서 제발 거기에 얽매이지 말고 인간이니 인간답게 살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 진정한 자아로 돌아가자 !!

그러니 그 다음에 나오는 니체의 책들을 보면 인간답게 사는 내용들에 관한 것인데, 참된 인간으로서, 즉 자기의 진짜 자아로 돌아가자고 하는데, 그 돌아가는 과정이 어디까지 갔는고 하니까, 프로이드, 베르그송, 그리고 들뢰즈까지 나가면 결국은 '욕망' 만이 남는다는 것이다. 분자의 욕망, 혹은 세포의 욕망이 말이다.

그래서 요즘 그래도 글을 꽤나 쓴다는 사람들의 글들을 살펴보면, '너는 어쩌고' 라고 하지 않고, '너의 세포가 어쩌고' 라고 표현한다는 것이다. 신문에 나오는 만평이나 주로 작가들의 글에도 보면 말이다. "나는 그렇지 않은데, 내 세포가 그렇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다 니체에게서 나왔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이제부터 저자의 주장을 대충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목소리 다발로 묶어진다. 신이란 사람이 만들어낸 사람의 작품에 불과하며 망상에 불과하다(p48). 그러니 신의 음성을 들을 생각 말고 대지(大地)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 대지의 음성을 듣자 !!

여기 보면 '대지의 음성' 이라고 나오는데,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니체가 얼마나 많이 공부했는지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대지의 음성' 이라고 하니까 근래에 많이 듣던 말인데, 황석영이 말했는가? 박경리의 토지도 그렇고, 또 혼불을 지은 사람하고, 물론 펄벅의 대지도 그러하고 말이다. 이런 사람들이 공통된 주장이 "민중이 곧 신이다" 라는 것이다. 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민중이라면 함석헌인데, '씨알' 이라고 말이다.

◈ 바알종교와 대지의 음성 !!

구약성경에 의하면 이것이 곧 '바알종교' 인데, 이 바알종교의 특징은 '산당(山堂)'에 있는데, 구약의 열왕기나 역대기를 보면, 이 산당을 폐지하지 않아서 하나님이 항상 염려(?)한다는 것이다. 이 산당은 위에서 내려오는 신이 아니라,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절터이고 신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상에서 볼록 볼록 융기된 것이란 말이다. 그 당시에 산마다 이 산당이 있었는데, 아세라 신도 그렇고 전부가 대지의 신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와서 그것을 우상숭배라고 해서 마구 다 쳐버렸는데,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전 유럽의 기독교가 되어버렸으니, 니체는 다시 대지의 종교로, 즉 바알종교로 되돌아갈 것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 김용옥, 여자란 무엇인가?

이 바알종교의 유명한 책이 김용옥의 '여자란 무엇인가?' 라는 것인데, 이 책은 여자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땅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땅이 중요하지 하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떤 별난 엄마가 자기 딸이 이 책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자랑하다가 도올에게 무안을 당한 적도 있었다는데, 아무튼 제가 그 책도 서평을 해놓았으니 시간이 되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원래 인류의 신이란 하나가 아니라 다수였다. 이는 곧 신은 인간이 창조해낸 산물임을 증거한다.

다신교가 일신교로 묶어질 때는 거기에는 반드시 정치적인 개입이 수반되는데, 즉 여러 종족들이 한 부족국가에 얽매일 때는 말이다. 그리고 부족국가에서 하나의 국가가 될 때는, 그렇게 될 때는 기존의 종교는 이단시되어야 하고, 하나의 종교로 신들이 통합되어야 하는데, 하나의 신으로 말이다.

◈ 다신교가 일신교로 - 주몽의 고구려 !!

그것이 바로 국가인데, 주몽의 고구려도 그렇고 말이다. 어느 신이 더 기적적이며, 실질적인 실적을 내어놓느냐는 것이다. 그런 실적을 내는 신을 내세운 자가 왕이 되고 그 가문이 왕의 가문이 된다는 것이다. 주몽이 세운 고구려의 경우에, 주몽이 실적을 내어놓는데 그것이 한나라를 추방시킨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주몽이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주몽이 믿는 신이 주몽을 도왔기 때문에 한나라의 신을 추방시켰다는 말이다. 그래서 주몽에 의해서 세워지는 고구려는 주몽이 믿는 신에 의해서 세워지는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생긴 나라에 미신이 있다든지 다른 신들이 있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국가적 차원에서 척결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재수 옴 붙으면' 안 되니 말이다. 그것은 처음에 건국했던 신에 의해서 축복이 유지되려면 기존의 신은 배척을 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다신교에서 일신교로 결합이 된다는 말이다.

프로이드가 바로 구약에서의 모세와 이스라엘을 이러한 방식으로 해석을 하는데, 자기의 '종교의 기원' 이라는 책에서 말이다. 이것도 제가 서평을 해놓았는데, 아마 다들 시간이 없어서 못 읽어봤지 싶은데, 그래도 심심하면 한번 읽어보시고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인간의 신체는 신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대지(大地)에서 왔다. 따라서 그 대지의 음성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자신을 대지가 요구하는 다른 신체로 해석하여 비인간처럼 살아가는 셈이 된다.

땅에서 엠보싱처럼 볼록 튀어나온 것이 인간이라면, 인간은 그렇게 튀어나왔다고 할지라도 계속해서 자기를 튀어나오게 하는 그 대지의 말에 순응해야, 그렇게 해야 만이 인간은 그 대지와 더불어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된다는 것이다. 인위적이지 않고, 톡 튀지 않고 말이다.

** 대지는 우리 신체가 뿜어내는 창조성을 반기도록 되어있다.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말아야한다. 우리의 창조성을 짓누르는 모든 세력에 반발해야 한다.

환경운동가들이 이런 소리를 들으면 좋아하지 싶은데, 지금 이 대지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인데, 대지에는 그렇게 계절의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대지 위에 사는 우리들은 어디에 따라야 하는가?

◈ 스스로 자연과 하나가 되어야 !!

기존의 주장이라면 계절에 따라서 옷을 바꿔서 입으면 되는데, 그러니 니체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인간 따로, 대지 따로' 노는 것이기에 말이다. 그러니 자기가 알아서 겨울이 되고, 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환경에 적응하는 차원이 아니라, 자진해서 환경에 합류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차이점을 아시겠지요?

"에이, 추운 겨울이네. 옷을 두껍게 입어야지" 라고 털털거리면서 적응을 하면 안 되고, "내가 어떻게 겨울이 되지" 라고 하면서, 자기가 알아서 스스로 겨울이 되고 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알아서 여름이 되고 말이다. 그렇게 동조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 죽음도 역시 자연스러운 것 !!

그런데 인간은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자꾸 자연과 비교해서 싸우려고 했지, 이런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자연과 함께 흡수되려고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의 신체가 늙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는데, 여기서 니체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이렇게 자연과 함께 움직이다가 늙어서 죽게 되면 신체는 죽음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바알종교인데, 여기서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죽음으로서 자연스럽게 돌아가면 되니까, 즉 죽는 것도 자연의 이치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죽을 때가 되면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의 장기를 달고 억지로 살려고 하지 말고 말이다.)

그러니 니체의 주장대로 하자면, 아픈 것도 은혜이니 범사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가 원했던 바인데, 그러니 간섭하지 말고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스스로 알아서 되니 말이다. 그런데 왜 목사가 자꾸만 간섭하면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된다" 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그렇다면 신을 앞장세우면서 우리의 창조성을 짓누르는 자들이 그동안 우리들에게 강요한 특수한 개념들이 있었다. 그것이 '피'요 '죄'라는 그런 개념들이었다. 인간 세상에는 '어리석거나 바보'같은 자는 있을 지라도 '악하다거나 죄인인' 자는 없다. 즉 각자의 인간 속에는 각자의 신이 속에서 춤을 추고 있기에, 그 신은 그 자신에게 악하거나 죄를 짓는 신은 될 수 없지 아니한가!

니체는 주장하기를, 어리석거나 바보일 수는 있지만, 악하다거나 죄인은 없다는 것이다. 아니, 노래가 좋아서 노래를 부르고, 그림이 좋아서 그림을 그리는데 그것이 왜 악하냐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살면 되지 말이다. 그리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한다고 박달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 니체의 설교가 얼마나 은혜로운가?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하든지 관여하지 말고 그대로 두라는 것이다. 관여할 입장도 못되면서 말이다.

** 그럼에도 기독교 사제들은 많은 사람을 악하거나 죄인이라고 몰아붙이기 위해서 그들에게 신 앞에서 고개를 숙이게 했다.

이렇게 되면 자기가 주장하는 그 신이 아니라, 목사가 이야기하는 신에 포함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신에 포함되지 않으면 이단이 되고 말이다. 결국 이렇게 되면 목사에게 복종하라는 말인데, 목사가 가르치는 신을 신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 목사에게 대들면 전부가 다 이단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강제로라도 그 목사의 신에게 복종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자기의 창조성을 스스로 짓밟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 이들은 자진해서 도덕군자로서 행세하지만, 거기서 오는 부자연스러움에 화를 내면서 외부로부터 보상받기를 원한다.

여기서 외부로부터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 곧 기독교에서 말하는, "죽으면 천국에 간다" 라는 것인데, 니체는 단언하기를 그런 천국은 없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천국인데, 그 천국을 목사가 짓밟아놓고서는 또 다른 가짜 천국을 이야기하니까, 니체가 열을 받아서 "이 망할 놈의 사기꾼들아"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냥 가만히 두면 여기가 바로 천국인데, 그런데도 천국에 보내준다고 깝죽거리니까, 그것들이 다 가짜 천국이란 말이다.

** 그들은 명령하기를 좋아하지만, 실은 명령은 순종보다도 더 어렵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명령하는 자는 순종하는 자 모두의 짐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니체가 주장하기를, "니는 목사가 되어서 제대로 순종하나? 지는 순종하기를 싫어하면서 남들에게는 순종하라고 하는 이 나쁜 놈들아!"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당시 사람들이 뽕 간다는 것이다. 너무나 시원하고 은혜로우니 말이다.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모두 다 해주니까 말이다. 무릎을 치면서 동조를 한다는 것이다.

** 소위 교양으로 칭칭 감은 자들은, 마치 알몸을 빈약한 깃털로 감추고 날아다니는 새와 같다. 치장했다고 해서 뼈만 남아 있는 속이 보이지 않겠는가. 그들이 신앙이 외치지만 신앙이란 사물의 그림을 믿는 것에 불과하다.

이 표현이 얼마나 멋있는지, 한진영씨의 글 솜씨 못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예수사회'에 한진영씨의 '십자가' 라는 글이 실렸는데, 얼마나 좋은지 말이다. 여기에 있는 니체의 글도 거기에 못지 않는데, "마치 알몸을 빈약한 깃털로 감추고 날아다니는 새와 같다" 라는 표현은 제가 적은 게 아니라, 니체가 쓴 글이라는 말이다. 빈약한 깃털이니 몸뚱아리가 다 보이는데, 그런데 자기는 교양이라고 하면서 다 감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왜 이렇게 신앙을 그림을 믿는 것에 불과하다고 하는고 하니, 신앙은 육체에서 나오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육체만 있다면 신앙은 있으나 마나한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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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31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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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