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6:36-38 / 기드온의 시험
기드온의 시험 2008년 2월 3일 본문 말씀: 사사기 6:36-38 (삿 6:36)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시거든』 (삿 6:37)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삿 6:38)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취하여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장차 될 일을 인간들은 미리 자기 멋대로 짐작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기드온은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자부하고 난 뒤, 하나님께서도 자신이 일만한 환경을 마련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과 일하신다는 것은 기드온의 의견이나 희망사항을 곁들어서 구원에 나서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도리어 완전히 기드온의 능력과 생각을 도외시하시면서 일하신다는 말입니다. 사람이란 자기가 인정받는 쪽으로 행동하고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자신을 알아주지도 않고 인정해주지도 않는다면 항상 때려치울 만반의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마음 자세로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보려고 합니다. 즉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티를 내려고 합니다.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주위 사람들로부터도 인정받는 자로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을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참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는 자신의 기대치를 여지없이 붕괴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예상하던 것이 묵사발되게 하시는 바로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오로지 하나님의 자신의 공적과 공로만 남게 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인간의 공로가 일체 섞이지 않게 하십니다. 그런데 여전히 기드온은 이 점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기대하는 기적을 제안해서 하나님을 자기 편인양 확인받고 싶어합니다. 인간쪽으로 제안한 그 기적이 바로 솜뭉치에 물기가 가득 차이는 기적입니다. 우리는 이 기드온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미리 압니다. 횃불과 항아리만으로 십 만명이 넘은 군대를 쳐부순다는 사실을 미리 압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모르고 있습니다. 이 모르는 상태에서 기드온이 나름대로 하나님의 실제하심을 측정하기 위해서 제안하는 기적 같은 것은 평소에 우리 인간들이 늘 하던 습관 같은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런 기드온의 의견을 수용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의 발상은 항상 천국과 통하는 것이 지옥과 통하는 발상들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예를 들면, 영화 다이하드 Ⅱ 끝 장면에 보면, 범인들은 형사는 피해 비행기 타고 달아나버립니다. 그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결국 범인들을 놓쳐버렸다고 낙담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비행기와 지상과 뭔가 연결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휘발유였습니다. 비행기 연료통에서 흘러나온 휘발유가 활주로를 젖시면서 신나게 공중으로 막 이륙해 버렸습니다. 형사를 마지막 미소를 띠면서 라이터로 지상에 남아있는 휘발유에 점화합니다. 불길은 공중과 지상을 이어주는 휘발유 줄기를 따라 급속히 타올라 결국 공중에서 한창 날아가고 있는 비행기 연료통을 폭발시키고 범인들을 몰살 시키면서 영화를 끝을 맺습니다. 지금 천국과 이 지상을 이어주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십자가 정신으로 주입되는 좁은길 가기입니다. 즉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는 삶입니다. 이것은 인력으로 될 일이 아닙니다. 반창고는 한꺼번에 떼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이 자신의 반창고를 떼면 자신의 아품을 고려해서 살살 뗍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을 결코 ‘자기 부인’이 아닙니다. 인간이 자기 부인이 되려면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죄악을 품고 있는가가 낱낱이 드러내는 사태와 병행해서 일어납니다. 기드온은 솜뭉치를 가지고 하나님의 현존과 자신에게 사명맡기심을 점검하려 합니다. 새벽 습기가 솜뭉치만 있고 그 옆에 있는 땅을 젖시지 않는 기적이 일어나면 과연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한 증거로 알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이 기대하는 대로 되니, 그다음에는 반대 상황을 기드온이 하나님께 요구합니다. 새벽 습기가 땅에만 촉촉이 젖고 솜뭉치는 바짝 말라있는 기적을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기적도 들어주었습니다. 바로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인간들이 제안한 기적은 실은 하나님을 가지고 논 겁니다. 즉 인간들은 하나님마저 자기 사고방식에서 활동하기를 원합니다. 자기가 이해되는 범위 안에서만 하나님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하나님로 변질되는 지름길입니다. 기드온은 두 가지 연속 기적으로 인해 하나님이 자기 말을 잘 듣는 그런 분으로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세는 결코 천국까지 이어지는 고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자체적은 공적과 업적으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새언약인 예수님의 피와 살의 능력으로만 구원됩니다. 이 사실과 인간이 스스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본성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를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만 하면 그것으로 자기 부인을 대신한 행동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십자가는 그냥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지금, 인간을 찾아드는 각가지 사건과 사태를 통해서 그 본질을 적용시킵니다. 그 방식이 바로 인간들의 눈에는 불가능과 불가능의 연속으로 비치는 겁니다. 사람들은 불가능한 일을 만나면 그냥 뒤돌아 서버립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능한 일만 신나게 추진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습성 속에서는 결코 인간은 ‘자기 부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냥 뒤돌아가버리면 자신이 죄인임이 드러나는 기회를 잃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기어이 기드온을 하나님의 구원작업에 참여시키되 절대로 기드온이 원하는 식으로는 구원이 되지 않게 하십니다. 기드온은 일단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임무를 맡겼음을 분명히 믿고 자신이 군사들을 모읍니다. 32000명을 모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섭섭하게도 ‘너무 많다’는 이유로서 많은 자들을 돌려보내었습니다. 무려 22000명이 집으로 돌아갑니다. 10000명만 남았습니다. 기드온의 입장에서 보면, 큰 낭패입니다. 하지만 그 10000명도 많다면서 300명만 달랑 남게 하십니다. 이제 기드온 입장에서 그 군사로서는 더 이상 어떻게 작전을 짜낼 수가 전혀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성도를 좁은 길로 인도하시는 방식입니다. 자력할 수 있는 바가 몽땅 끊어진 그 순간을 하나님은 즐기십니다. 그리고 인간은 절망에 빠집니다. 바로 하나님의 좁은길 인도는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연속적으로 말입니다. 기도합시다. 『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하나님을 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우리를 부리고 사용하도록 내맡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사사기-2007/17강-삿6장36-37(기드온의시험)-jdg080203.mp3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사사기-2007/17강-삿6장36-37(기드온의시험)-jdg080203.wmv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사사기-2007/17강-삿6장36-37(기드온의시험)-jdg080203.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