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6:7-10 / 구원의 정신
사사기 6:7-10 / 구원의 정신
이름 : 우리교회(IP:219.249.86.111)
구원의 정신
2008년 1월 27일
본문 말씀: 사사기 6:7-10
(삿 6:7)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은고로』
(삿 6: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
(삿 6:9) 『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 내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삿 6:10)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 너희의 거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
우리 인간은 노예입니다. 죄에 대해서 노예입니다. 자력으로 그 죄에서 벗어나 구원될 수 없습니다. 구원 문제에 있어 우리가 무능력하다는 말은 얼마나 기쁜 말씀인지 이루 다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나를 구원하는데 있어 내가 보탬이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구원 문제는 전적으로 하나님 소관이지 나의 소관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을 무척이나 듣기 싫어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소위 구원에 열심내고 있다고 우기는 자들은 자기 구원에 있어 자신이 행동이 큰 힘이 된다고 여깁니다. 이런 사람은 쉴새없이 불안이 찾아듭니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가치가 폭락되는 경우가 오는 것을 본인의 자존심이 용납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 힘으로 구원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아직 구원에 대해서 모른다는 증거입니다. 구원에는 원리가 있습니다. 그 원리가 바로 출애굽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부로 자기 백성을 애굽 나라에 노예로 살고 하시고 일부로 거기서 끄집어 내어주십니다. 이것은 인간 구원이 하나님의 일의 목적이 아니라 그 와중에서 하나님이 과연 이런 분이시구나 에 관심 갖기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나서시는데 그 구원 작업이 우선적으로 ‘구원자’라고 이름 붙인 기드온에게 먼저 실시가 됩니다. 기드온은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전체 사고방식을 대변해줍니다. 기드온은 극도로 미디안 군대를 의식합니다. 그들의 눈치를 보여 삽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미디안 군대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압제해서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식으로도 자신들은 노예에 불과하다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찾아온 그 순간에도 기드온은 미약한 이스라엘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줍니다. 밀을 타작하는데 있어 그 타작 소리가 밖으로 새나갈까 싶어 포도주틀에서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겁을 잔뜩 집어먹은 채 공포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 ‘큰 용사여’라는 호칭으로 다가오십니다.
이것은 기드온이 위대하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 계획을 가지고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당황스러워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이토록 힘든 지경에 놓인 것이 다 하나님께서 신경을 그만큼 안 써주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기드온이 이렇게 하나님에게 따지는 것은, 자신은 하나님께서 기대할만한 그런 ‘큰 용사’가 아니니까 자기를 구원자로 삼지 말아달라는 의중이 담겨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구원자 될만한 자를 뽑아세워야지 자신은 아니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하나님에게 대해서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처럼 자신의 처지의 비참함을 생각하고 그 탓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이런 태도는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갖고 있던 일반적인 생각을 반영해주고 있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으로부터 획기적인 구원의 능력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구원의 능력을 기드온을 통해서 하겠다고 나서십니다. 이것은 바로 기드온 혼자서 하나님의 일을 다 맡긴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심’의 의의를 살리는 식으로 기드온에 찾아오셨다는 겁니다.
이제부터 기드온에게 일어나고 벌어지는 모든 일은 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에 나타나는 현상들이기에 구원의 모든 공로에 대해 기드온은 일체 자기 몫을 챙길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할 때, 꼭 그 결과에 대해서 자기가 얻을 수 있는 대가를 미리 생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것은, 그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그 공로성을 새롭게 알아라 고 동참시킨 것이지 자기 영광의 몫을 자신이 챙길 수 있다는 노림수를 달성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즉 하나님 좋아라고 하나님께서 그 인간에게 찾아온 것이지 그 사람 좋아라고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기드온은 과연 참된 하나님이 자기에게 찾아오신 것이 맞는지 시험해 봅니다. 제단을 쌓고 제물을 바친 후, 천사가 찾아와서 그 제물에서 불이 일어나게 합니다. 놀라버린 기드온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을 만난 것에 대해서 겁을 냅니다. 하지만 하나님에서 있어 그런 허약한 기드온을 통해서 도리어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을 드높이려고 하십니다.
첫 번째 과제가 주어집니다. 대낮에 마을 한복판에 있는 바알의 제단을 뒤덮고 거기다가 여호와를 위하여 제사를 드려라는 겁니다. 기드온은 겁이 나서 대낮에 그 사명을 수행하지 못하고 밤중에 몰래 그 일을 했습니다. 여전히 기드온은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라는 의식보다 사태를 자기 유리한 쪽으로 바꿀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여전히 자아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그 일을 맡긴 것은 기드온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 당시 세상을 보는 관점’을 기드온도 함께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기드온은 여전히 ‘자기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봅니다. 그러기에 자기 명예와 자기에게 찾아오는 남들의 비난이 겁나서 밤중에 몰래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을 수행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영화 감독 앞에서 배우가 부끄럽다고 자기 마음대로 장면의 내용을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감독은 영화 장면만 생각하는데 배우는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싫어서 감독의 지시를 거부하는 겁니다. 이것은 그만큼 배우가 감독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하고 여전히 자기 관점을 굳게 붙들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알 제단을 뒤엎도록 하신 것은 그 시대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시비걸고 싶어서 그런 일을 시킨 것입니다. 종교를 뒤엎는다는 것은 단순히 물건을 손괴하는 뜻 정도가 아니라 그 시대 정신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지는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나 그 사회가 평소에 생각하던 궁극적인 모든 것은 결국 그 시대의 종교 안으로 집중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뒤엎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과 그 당시 사람의 뜻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기드온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가 나서서 수습을 합니다. 바알이 참으로 살아있는 신이라면 자기 제단의 파괴에 대해서 그 살아있는 신이 직접 나서서 처리할 문제라는 겁니다. 죽은 신에게 복종하는 자들,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그들을 무섭게 하는 걸까요?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을 보는 우리 관점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사사기-2007/16강-삿6장7-10(구원의정신)-jdg080127.hwp
관리자(IP:220.♡.176.169)
09-09-29 19:43
16강-삿6장7-10(구원의정신)-jdg080127
구원의 정신
2008년 1월 27일
본문 말씀: 사사기 6:7-10
(삿 6:7)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은고로』
(삿 6: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
(삿 6:9) 『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 내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삿 6:10)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 너희의 거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
우리 인간은 노예입니다. 죄에 대해서 노예입니다. 자력으로 그 죄에서 벗어나 구원될 수 없습니다. 구원 문제에 있어 우리가 무능력하다는 말은 얼마나 기쁜 말씀인지 이루 다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나를 구원하는데 있어 내가 보탬이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구원 문제는 전적으로 하나님 소관이지 나의 소관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을 무척이나 듣기 싫어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소위 구원에 열심내고 있다고 우기는 자들은 자기 구원에 있어 자신이 행동이 큰 힘이 된다고 여깁니다. 이런 사람은 쉴새없이 불안이 찾아듭니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가치가 폭락되는 경우가 오는 것을 본인의 자존심이 용납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 힘으로 구원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아직 구원에 대해서 모른다는 증거입니다. 구원에는 원리가 있습니다. 그 원리가 바로 출애굽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부로 자기 백성을 애굽 나라에 노예로 살고 하시고 일부로 거기서 끄집어 내어주십니다. 이것은 인간 구원이 하나님의 일의 목적이 아니라 그 와중에서 하나님이 과연 이런 분이시구나 에 관심 갖기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나서시는데 그 구원 작업이 우선적으로 ‘구원자’라고 이름 붙인 기드온에게 먼저 실시가 됩니다. 기드온은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전체 사고방식을 대변해줍니다. 기드온은 극도로 미디안 군대를 의식합니다. 그들의 눈치를 보여 삽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미디안 군대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압제해서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식으로도 자신들은 노예에 불과하다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찾아온 그 순간에도 기드온은 미약한 이스라엘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줍니다. 밀을 타작하는데 있어 그 타작 소리가 밖으로 새나갈까 싶어 포도주틀에서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겁을 잔뜩 집어먹은 채 공포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 ‘큰 용사여’라는 호칭으로 다가오십니다.
이것은 기드온이 위대하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 계획을 가지고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당황스러워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이토록 힘든 지경에 놓인 것이 다 하나님께서 신경을 그만큼 안 써주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기드온이 이렇게 하나님에게 따지는 것은, 자신은 하나님께서 기대할만한 그런 ‘큰 용사’가 아니니까 자기를 구원자로 삼지 말아달라는 의중이 담겨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구원자 될만한 자를 뽑아세워야지 자신은 아니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하나님에게 대해서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처럼 자신의 처지의 비참함을 생각하고 그 탓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이런 태도는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갖고 있던 일반적인 생각을 반영해주고 있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으로부터 획기적인 구원의 능력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구원의 능력을 기드온을 통해서 하겠다고 나서십니다. 이것은 바로 기드온 혼자서 하나님의 일을 다 맡긴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심’의 의의를 살리는 식으로 기드온에 찾아오셨다는 겁니다.
이제부터 기드온에게 일어나고 벌어지는 모든 일은 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에 나타나는 현상들이기에 구원의 모든 공로에 대해 기드온은 일체 자기 몫을 챙길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할 때, 꼭 그 결과에 대해서 자기가 얻을 수 있는 대가를 미리 생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것은, 그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그 공로성을 새롭게 알아라 고 동참시킨 것이지 자기 영광의 몫을 자신이 챙길 수 있다는 노림수를 달성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즉 하나님 좋아라고 하나님께서 그 인간에게 찾아온 것이지 그 사람 좋아라고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기드온은 과연 참된 하나님이 자기에게 찾아오신 것이 맞는지 시험해 봅니다. 제단을 쌓고 제물을 바친 후, 천사가 찾아와서 그 제물에서 불이 일어나게 합니다. 놀라버린 기드온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을 만난 것에 대해서 겁을 냅니다. 하지만 하나님에서 있어 그런 허약한 기드온을 통해서 도리어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을 드높이려고 하십니다.
첫 번째 과제가 주어집니다. 대낮에 마을 한복판에 있는 바알의 제단을 뒤덮고 거기다가 여호와를 위하여 제사를 드려라는 겁니다. 기드온은 겁이 나서 대낮에 그 사명을 수행하지 못하고 밤중에 몰래 그 일을 했습니다. 여전히 기드온은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라는 의식보다 사태를 자기 유리한 쪽으로 바꿀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여전히 자아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그 일을 맡긴 것은 기드온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 당시 세상을 보는 관점’을 기드온도 함께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기드온은 여전히 ‘자기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봅니다. 그러기에 자기 명예와 자기에게 찾아오는 남들의 비난이 겁나서 밤중에 몰래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을 수행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영화 감독 앞에서 배우가 부끄럽다고 자기 마음대로 장면의 내용을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감독은 영화 장면만 생각하는데 배우는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싫어서 감독의 지시를 거부하는 겁니다. 이것은 그만큼 배우가 감독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하고 여전히 자기 관점을 굳게 붙들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알 제단을 뒤엎도록 하신 것은 그 시대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시비걸고 싶어서 그런 일을 시킨 것입니다. 종교를 뒤엎는다는 것은 단순히 물건을 손괴하는 뜻 정도가 아니라 그 시대 정신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지는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나 그 사회가 평소에 생각하던 궁극적인 모든 것은 결국 그 시대의 종교 안으로 집중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뒤엎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과 그 당시 사람의 뜻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기드온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가 나서서 수습을 합니다. 바알이 참으로 살아있는 신이라면 자기 제단의 파괴에 대해서 그 살아있는 신이 직접 나서서 처리할 문제라는 겁니다. 죽은 신에게 복종하는 자들,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그들을 무섭게 하는 걸까요?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을 보는 우리 관점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사사기-2007/16강-삿6장7-10(구원의정신)-jdg080127.hwp
◁ 이전글
다음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