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7:8-11/나 뿐이다
나 뿐이다 2008년 2월 13일 본문 말씀: 이사야 47:8-11 (사 47:8)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사 47:9) 『한 날에 홀연히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이 두 일이 네게 임할 것이라 네가 무수한 사술과 많은 진언을 베풀지라도 이 일이 전히 네게 임하리라』 (사 47:10) 『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니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였으므로』 (사 47:11) 『재앙이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그 근본을 알지 못할 것이며 손해가 네게 이르리라 그러나 이를 물리칠 능이 없을 것이며 파멸이 홀연히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헤아리지 못할 것이니라』 인간은 누구나 나름대로 계시를 내뿜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내뿜는 계시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궁극적으로 나 뿐이다”라는 계시입니다. “다른 이는 없다. 오로지 나만 최종적으로 남아야 옳은 일이다”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흔히 세상 생활에 분주하다보면 정신없이 하루 생활이 돌아갑니다. 하지만 이 정신없이 바쁜 시간들 속에도 엄연히 생생하게 살아나는 정신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는 오직 나에게만 충성한다’ 정신입니다. 이 정신은 일부로 생각해보려고 해서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평소의 일상 생활 전부를 장악하는 사상입니다. 오로지 자신만 최종 섬기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 인간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 나름대로 계시를 외부로 방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인간만 계시를 내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계시를 내뿜어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입니다. 성경은 다음의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즉 인간들이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말씀해줍니다. 또 한 가지는 이런 인간에 대해서 하나님은 단호하게 그것을 정죄하고 나무라고 고발하는 식으로 자신의 계시를 따로 내려주신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거론되는 자들은 자신의 근본을 모릅니다. 사람은 근본없이 살아가는 것이 버릇이 되었고 익숙해져 있습니다. 여기에 비해 하나님은 인간의 근본을 알려주시려 합니다. 그냥 알려주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형편을 나무라고 징책하시면서 알려주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자는 다름 아닌 ‘바벨론 제국’입니다. 이들은 한 때 하나님의 백성들인 유다 사람들은 통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마저 자기 지배 하에 있다고 여기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참 우습게 보게 되는 것이 뻔합니다. 그런데 바벨론 제국의 이러한 습성은 실은 온 인류의 타고난 습성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이는 없다. 나는 나 뿐이다’라는 말은 결코 바벨론 백성들만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모든 인류가 내는 한 목소리입니다. 단지 바벨론 제국은 한 때 여호와 하나님이 만드신 나라마저 삼켰다는 이유도 교만의 극을 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바벨론 제곡이 어째서 전 세계인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다니엘 4장에 보면, 바벨론 제국의 통수권자가 꿈을 꾸게 됩니다. 그 꿈의 내용은 마치 옛날 에덴동산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이 지구 정중앙에 한 큰 나무가 심겨져 있는 꿈입니다. 너무나도 번성해서 모든 동식물과 사람들이 그 나무 밑은 혜택을 입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하늘에서 한 순찰자가 내려와서는 졸지에 그 멋진 동산을 황폐하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리고 바벨론 제국의 통수권자를 짐승으로 취급하여 짐승과 더불어 7년을 보내게 해버린답니다. 바로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이 잊고 지내던 근본 실정에 대해서 알려주십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고 반석 위에 지은 집은 홍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E께서 우리 인간의 단단한 기초가 무엇인지를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에덴동산의 죄가 기초가 되어서 그 위에 온 인류가 피어난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리 많은 은혜를 받았다 할지라도 계속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은 “아무 것도 내 위에는 없다. 나는 나다”라는 고백 뿐입니다. 바로 이러한 교만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제국을 황폐하고 휩쓸고 말겠다는 계시를 꿈을 통해서 느부갓네살 왕에게 전달해준 것입니다. 이 꿈의 해석자는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말합니다. 왕이 대제국의 왕됨은 오직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이 있어 그러했다는 겁니다. 달리 말해서 왕 자신이 “나는 나 밖에 없다. 나 뿐이다”라는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위대하지 결코 왕이 위대하지가 않다는 겁니다. 요한계시록 18:7에 보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대목이 그대로 성취 차원에서 종말에 시행될 내용이라고 나와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처참하게 당해야 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신의 영역에 도달했다는 점을 자꾸만 현실화하고자 시도하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는 두 그루의 중요한 나무가 있었습니다. 한 나무는 생명나무요 다른 한 나무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이 두 종류의 나무는 에덴동산의 주인공은 결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는 점을 알리는 기능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을 따먹지 말라”라는 그 명령이야말로 인간들이 타넘을 수 없는 경계선 구실을 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 선악과 나무 과실을 따 먹으면 에덴동산을 지탱하는 그 의의가 일시에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에덴동산은 일종의 상상의 세계처럼 추억 속으로만 사라질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는 이 사건을 영원토록 잊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계시 속에는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기 하면서 신의 영역마저 정복하려 했다는 그 정신을 결코 빼놓지 않습니다. 끝까지 이 사건을 두고 갈구십니다. 바로 이 계시가 인류상 최고 정점에 앉아있는 느부갓네살왕에게 꿈의 계시로서 통고해 온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왕이 이런 계시를 받았다는 것은 느부갓네살왕이 전 인류의 피뢰침 역할을 한다는 말입니다. 번개가 제일 먼저 도달되어서 그 강한 전류가 피뢰침을 따라 땅 속까지 퍼지는 것처럼, 왕이 받은 하나님의 계시는 곧 오늘날 우리 한사람 한사람에게 전부 적용될 계시입니다. 인간이 죄 짓고 난 뒤 모두가 무가치한 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무가치한 인간이 새삼스럽게 가치를 찾아 나선다는 것은 잘못된 판단입니다. 우리가 설사 대제국의 왕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가치성은 오로지 왕이 되게 하신 하나님에게 있지 우리에게는 없는 겁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는 복음의 훼방자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이런 무가치한 인간을 구원하신다면 그것은 순전히 홀로 가치있는 예수님의 공로 덕분입니다. 결코 우리가 가치있는 인간이라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정신이 계속 살아있어야 복음입니다. 우리는 참 복음과 더불어 가짜 복음, 가짜 영도 아울러 알아야 합니다. 가짜 복음이란 새삼스럽게 업적과 실적을 통해 자신의 가치성을 들고 나오는 수작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구원하지 않으셔도 상관없을 우리를 주님의 자비를 구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정신이 계속 유지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를 통해서 주님의 공로만 드러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