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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이사야 42:23-25/누구냐?강의이사야

누구냐? 2007년 11월 7일 본문 말씀: 이사야 42:23-25 (사 42:23) 『너희 중에 누가 이 일에 귀를 기울이겠느냐 누가 장래사를 삼가 듣겠느냐』 (사 42:24) 『야곱으로 탈취를 당케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도적에게 붙이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 백성들이 그 길로 행치 아니하며 그 율법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사 42:2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진노와 전쟁의 위력으로 이스라엘에게 베푸시매 그 사방으로 불붙듯하나 깨닫지 못하며 몸이 타나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도다』 하나님과 자기 백성과의 의사소통이 원활치 못합니다. 빈트가 잘 안맞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꾸만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인간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즉 인간들은 평소의 버릇대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거부하는 사고방식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는 인간들이 평소에 하나님께 나아갈 때 어떤 식으로 나아가느냐를 알아야 하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평소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낼 때 어떤 식으로 드러내느냐 것입니다. 첫 번째로, 인간들이 하나님께 어떤 식으로 나아갑니까? 인간들은 ‘어떻게’를 고집합니다. 즉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에게 착하고 선한 일을 행하고자 합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면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을 흡족하게 해 드릴 수가 있는 겁니까?”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이 인간적인 방식과 하나님의 인간 나타내심의 방법을 양쪽 다 볼 수 있는 좋은 예가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그 이야기를 잠시 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땅을 지나가시다가 마침 물긷는 아낙네를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말을 건네십니다. “물 좀 주세요”라고 말입니다. 그럴 때 사마리아 여인은 “어찌 당신이 나에게 물을 달라느냐” 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자 이 말을 들은 사마리아 여인의 답변에 주목해 보세요. 사마리아 여인은 궁금합니다. 그 우물이 지리적으로 어느 지점에 있으며, 어떻게 내가 그 물을 길러 낼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인간들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영원한 생수를 인간들 쪽에서 개시해서 그 생수를 얻고자 나서는 것이 인간들이 보여줄 수 있는 한계의 전부입니다. ‘누가?’가 아니라 ‘어떻게?’입니다. 사람들은 ‘어떻게’에 주목합니다. ‘어떻게’만 알면 신의 것이라도 인간들의 노력으로 그 ‘어떻게’를 실행에 옮겨서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어떻게’를 알려줄 의무가 있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그 사마리아 여인이 막상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부터는 ‘어떻게’에 관심사가 송두리째 다 사라지고 맙니다. ‘어떻게’가 아니라 ‘그 분이’ 혹은 그 ‘누구신가’에 관심을 전적으로 가져가게 됩니다. 이것은 영원한 생수는 ‘어떻게’를 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그 누구신가’만 알면 저절로 주어지는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게 된 이후, 이 여인에게 “저 생수는 어디 있는데요? 그 생수를 어떻게 길을 수 있는데요?”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도대체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뭘 어떻게 하셨기에 이런 변환이 일어난 거실까요? 여인은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것은 인간들의 ‘행함’으로 접근 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즉 ‘어떻게’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겁니다. 그 누구신가만 알면 다 아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어떻게‘는 순전히 하나님 쪽에서만 사용하는 ’어떻게‘이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이 사용할 ’어떻게‘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것을 인간에게 제공할 때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십니까? 예를 들어 ‘착한 일’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 착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소위 신의 존재를 아는 자들의 상식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착한 일을 수행하는 방법 찾기에 몰두 합니다. 방법을 알기만 알면 그 방법대로 해보려고 버려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착한 일은 전혀 생소하기 이를 데 없는 방식입니다. 그 예가 뚜렷하게 나와있는 곳이 바로 욥기입니다. 욥기에 보면 두 부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한 부류는 욥의 세 친구입니다. 이 사람들은 ‘이러 이러한 방식으로 착한 일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식으로 인간 쪽에서 시작하는 방식을 쥐고 있는 자들입니다. 욥기에 또 다른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은 욥입니다. 욥과 하나님과 관계는 욥이 착한 일을 시도해서 맺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쪽에서 난데없는 고난을 욥에게 안겨 줘버립니다. 자, 욥의 세 친구가 주장하는 ‘착한 일’하기가 참으로 착한 일입니까 아니면 욥을 통해서 고난을 안겨주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착한 일입니까? 욥과 욥의 친구들 사이에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욥에게는 욥의 고난이 결코 욥 쪽에서 시작한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즉 욥이 하나님에게 착한 일을 해드리고 싶어서 “하나님 저에게 고난을 내려주옵소서”라고 기도했던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관권은 여기 있습니다. 누가 시작했느냐 하는 겁니다. 욥의 고난은 순전히 욥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일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했기에 자기에게 일어난 엄청난 일에 대해서 자신의 공로를 내세울 건덕지가 아예 없이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착한 일의 특징은 그 안에 인간의 공로가 전혀 담겨 있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비해서 욥의 친구들은 인간들이 신을 향하여 한 각가지 방법들과 업적들이 그득합니다. 찬양도 있고 기도도 있고 계시받음도 있다고 숱하게 많습니다. 하지만 욥에게는 오로지 낯선 고난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물어야 합니다. 그 둘 중에서 어느 쪽에서 인간의 고난이 일체 담길 수 있는 쪽이냐를 말입니다. 당연히 욥 쪽이죠. 그러면 욥에게 일어난 일만이 하나님의 ‘착한 일’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착한 일은, 인간은 뭔가 신을 향하여 해드릴려는 것이 배제되어야 하는 겁니다. 고린도후서 4:8-9에 보면,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도 일체 사도 바울의 행함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원하시는 착한 일입니다. 바로 이런 식으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행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은 욥이 당했던 그 고난의 얼굴을 가지고 이 지상에 나타났습니다. 아무도 못 알아 봤습니다. 다들 도망쳤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기 행함에서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오직 성령님을 통해서만 모든 선한 일은 순전히 하나님의 몫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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