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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이사야 42:18-22/귀머거리들강의이사야

귀머거리들 2007년 10월 31일 본문 말씀: 이사야 42:18-22 (사 42:18) 『너희 귀머거리들아 들으라 너희 소경들아 밝히 보라』 (사 42:19) 『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 같이 귀머거리겠느냐 누가 나와 친한 자 같이 소경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 같이 소경이겠느냐』 (사 42:20)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 (사 42:21) 『여호와께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인하여 기쁨으로 그 교훈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려 하셨으나』 (사 42:22) 『이 백성이 도적 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다 굴 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도다 노략을 당하되 구할 자가 없고 탈취를 당하되 도로 주라 할 자가 없도다』 우리가 남의 자식을 보고 귀머거리니 소경이니 하면서 속으로 놀리는 경우는 있지만 제 자식을 보고 귀머거리니 소경이니 하면서 남들에게 들으라고 하는 경우는 별로 드물 것입니다. 그것은 자진해서 남의 웃음거리가 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이런 시도를 하십니다. 소위 자칭해서 하나님의 종이라는 자, 하나님이 보낸 자 보다 더 심한 소경이나 귀머거리가 또 있겠느냐 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진해서 자기 백성들을 비난하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다른 민족들보다 더욱 많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왔다는 점을 감안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기껏 반능을 살펴보면 마치 귀머거리나 소경과 다를 바 없다는 겁니다. 들어도 들어도 이해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보이지 않는 자들, 이들이 하나님께서 지목한 최고 수준의 장애자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비난을 자기 백성을 겨냥해서 하신 것은 곧 여전히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겠다는 뜻도 됩니다. 마치 인간 사회에서도 제 자식에 대한 실망감이 너무 커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 앞에서 제 자식의 허물을 쉽게 털어놓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만큼 아직도 제 자식에 대해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는 뜻을 드러내기도 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그토록 빈번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면서도 하나님 보시기에 소경이나 귀머거리라는 평가밖에 못받는 걸까요? 그것은 인간들이 말씀을 대하거나 사건이나 사물을 대할 때에는 반드시 ‘문제의 틀’을 가지고 대하게 마련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자기 나름대로 형성해 놓고 있는 인식의 틀이 있습니다. 평소의 관심사가 가득히 그 안에 들어있게 마련입니다. TV에 어떤 여자가 등장하면 평소에 옷차림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의 말보다 옷 입은 센스에 대해서 주목해서 그것을 그 사람의 인간성이 이러하다는 데 까지 확대시켜 나가버립니다. 또 평소에 지식에 관심을 두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 여자의 용어를 사용하는 언어 순발력에 집중에서 그 여자의 가치를 논하게 됩니다. 이러한 ‘인식의 틀’, ‘문제의 틀’의 내막에는 ‘소유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소유성 경향이란 “지금 나는 이만큼 갖고 있다. 그리고 이 소유된 것을 앞으로 계속 늘어가게 하고야 말겠다”라는 의지로 충만해져 있는 것을 말합니다. 지식을 소유했다고 여기는 사람이 자신의 소유된 지식의 분량을 더욱 늘이려고 하고, 돈 소유에 관심 있는 자는 그 돈을 자기 것이라고 여기고 그 돈의 증가로 말미암아 자신의 가치도 같이 증가 한다고 믿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소유성 경향에다 하나님의 많은 말씀을 대했다고 해보세요. 그 신의 말씀을 통해서 자기의 소유성을 증가시켜고 할 것이 뻔한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터이니 이것저것 내 소유된 것을 더욱 더 증가되게 하옵소서”하고 간절히 기도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 말씀의 본 뜻은 그 사람 속에 침투되지 않게 되고 도리어 추방당하게 됩니다. 단지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현재 자기 소유한 것이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려고 합니다. 지식이든, 금력이든, 명예든 당연히 자신이 가질만 해서 가졌다는 겁니다. 바로 인간들은 이런 소유성으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 확실한 예가 사도행전 3:6에 나옵니다.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가 앉아있습니다. 그 앉은뱅이는 자신의 장애 있는 신체를 돈버는 조건으로 부각시켰습니다. 돈을 소유는 것이 자기에게 지극히 당연하며, 그 당연한 것을 위해 앉은뱅이라는 신체조건을 사용하는 것도 너무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은 돈을 소유하고 싶다는 겁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장기를 발휘해서라도 그것을 갖는 것이 옳다는 겁니다. 이런 문제의 틀을 갖고 누구나 할 것없이 동일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앞을 지나가든 베드로와 요한은, 비정하게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다”는 겁니다. 즉 앉은뱅이가 달라고 요구하는 그 소유성의 내용물은 현재 사도에게는 없다는 겁니다. 이런 발언은 그 앉은뱅이보고 죽으라고 하는 소리와 같습니다. 자기 소유된 것이 없이 무슨 힘으로 살겠습니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곧 이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어라”라고 했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은 실은 사도들이 소유할 수 있는 소유용이 아닙니다. 도리어 반대입니다. 나사렛 예수님에 의해서 사도들이 붙잡힌 바 되고 사용되어진 바 될 뿐입니다. 이런 발언은 그 앉은뱅이가 스스로 구성해놓은 인식의 틀을 전혀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즉 네가 원하는대로 구성하는 그런 인간성을 하나님은 거부한다는 말입니다. 자신에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겼던 구걸행위는 그 소유성 경향으로 인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게 됩니다. 즉 내가 나를 살리는 방식은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소경이나 귀머거리같은 태도입니다. 사도들의 주장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앉은뱅이를 낫게 하는 능력이나 비법들을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들은 그저 주님이 제공하시는 그 능력을 소개하는 중간매체일 뿐입니다. 일종의 물질들을 통과시켜 흘려내려가게 하는 파이프이죠. 사도 바울의 손수건으로 죽은 자를 살릴 때, 사전에 사도 바울이 자기 손수건을 어디다 활용할까를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국립과학 수사과에 의뢰해서 그 손수건을 아무리 분석해도 거기에서는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이 검출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의 허락도 없이 사도 바울의 손수건을 사용하셔서 나타날 일일 뿐입니다. 눈에 안 보이는 예수님의 일하심을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 눈에 보이는 식으로 증거하는 것이 사도들의 행위였던 것입니다. 능력의 출처를 묻는다면 그것은 눈에 보이는 사람을 지목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말씀은 몽땅 예수님이 하신 일, 곧 예수님의 죽으심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그 죽음의 능력에서 살리심의 능력이 제공되어지는 겁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을 아는 자가 소경이 아니요 눈을 뜨고 귀가 열린 자입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심은 그 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이 시대에도 여전히 충만하게 적용되는 일입니다. 하늘의 뜻이 성도를 통해서 이 땅에 이루어집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소유된 자임을 잊지 말고 따로 ‘나의 것’을 소유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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