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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이사야 40:18-24/우상의 정체강의이사야

우상의 정체 2007년 9월 12일 본문 말씀: 이사야 40:18-24 (사 40:18)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 (사 40:19) 『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위하여 은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사 40:20) 『궁핍하여 이런 것을 드리지 못하는 자는 썩지 않는 나무를 택하고 공교한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서 흔들리지 않도록 세우느니라』 (사 40:21)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사 40:22)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 거할 천막 같이 베푸셨고』 (사 40:23)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사 40:24) 『그들은 겨우 심기웠고 겨우 뿌리웠고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의 부심을 받고 말라 회리바람에 불려가는 초개 같도다』 이사야 선지자가 사람들의 우상 섬기는 것에 대해서 시비걸고 나섭니다. 그런데 가만히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남이 무엇을 섬기든지 이사야 본인하고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남이 뭐라든지 자기는 참 하나님 믿고 천국가면 그만 아닌가요? 만약 우리 옆집에 우상 섬기는 이웃이 이사왔을 때, 우리가 달려들어서 그 사람의 신앙을 문제 삼을 필요가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우상섬기지 말라는 것은, 그렇게 당부하는 자들이 남의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 자기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자신들의 ‘우상 만들기’ 행태를 제대로 지적받지 아니하면, 진정 우리가 참 하나님을 섬기는지 의심스러울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참 하나님은 우리가 만든 우상을 밀치고 등장하시기 때문입니다. 십계명 제 1계명에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볼 때, 그 ‘다른 신’이 어떤 신을 말하는지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참 하나님은 항상 ‘다른 신’을 비난 하시면서 등장합니다. 그 말은 곧 우리가 평소에 끊임없이 우상을 만들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뜻도 됩니다. 참 하나님이라고 알고 섬겼는데 막상 우상에 대한 공격을 당해보면 우리 자신들도 함께 공격받을 짓들을 하고 있는 겁니다. 과연 우리가 어떻게 해서 우상을 만들게 될까요?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상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를 나무랍니다. 좀 산다는 자들은 금으로 만들고 못 사는 자들은 단단한 나무를 깍아서 우상을 만듭니다. 왜 하나님은 이 우상 만들기를 배격하시는 겁니까? 그것은 창조에 대해서는 순전히 하나님의 소관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인간이 뭔가를 만들게 되면 그 만들어진 것 속에는 하나님의 것이 담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든 인간의 영광이 담기게 됩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인간이 또다시 뭔가를 만들어서 그것을 신이라고 지칭하면 원래 인간을 만드신 분의 가치가 훼손되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자꾸만 뭔가를 만들어서 신을 대체하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만든 이 세상은 쉴새없이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만드신 대 자연은 한 순간에도 머무름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계절이 그러하고 하늘의 구름이나 바람도 그러합니다. 그리고 매일 같이 일어나는 사건들도 그러합니다. 이런 와중에서 인간들은 이 변화를 그때그때마다 수용하며 따라가기에 허겁지겁 힘들게 느껴집니다. 참새나 들풀과는 달리 왜 인간만큼은 헉헉거립니까? 그것은 인간들이 이미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 성격 자체가 독자적인 자기만의 절대 세계를 추구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들어가는 변화에 힘들어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상을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는 겁니까? 그 변화를 오로지 붙잡고 스톱시켜서 자기에게 즐거운 세계이기를 원합니다. 예를 들면, 지난 주 교인들이 50명 왔는데, 이번 주에 10명만 왔다면 예배 참석한 10명은 기가 푹 죽어있을 것입니다. 50명이 되었든 10명이 되었든 다 하나님이 주신 변화인데 왜 그 변화에 감사할 줄 모르고 풀이 죽어있습니까? 그것은 50명이 와야지만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반면에 10명이 오면 목사로서 존재 가치를 훼손된다고 생각한 겁니다. 좀 더 심도있게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들이 선악과를 따먹은 후, 매사를 볼 때에 선과 악, 악과 선 이 두 개의 가치를 부여할 구분지을 영역을 형성합니다. 예를 들면, ‘화상 입은 자’와 ‘화상 입지 않는 자’를 구분합니다. 빨간 옷 입은 자와 검은 색 입은 자를 구분합니다. 빨리 걷는 자와 천천히 걷는 자, 개고기 먹는 자와 먹지 않는 자를 구분합니다. 쉴새없이 구분합니다. 이러한 구분 지어놓고서는 어느 쪽으로 선한 것으로 보느냐 하면 그렇게 구분지은 본인의 선호도에 많이 당기는 영역이라고 일방적으로 정해 버립니다. 예를 들면, “나는 개고기 먹는 사람보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가족같은 개를 잡아먹냐”라고 흥분합니다. 분명 이 사람은 개고기를 안 먹는 사람이고 본인이 개고기를 안먹기 때문에 자신의 결정은 선하고 의롭다고 일방적으로 간주하고 있게 됩니다. 이처럼 인간의 만든 체계나 영역은 모두 본인의 의로움과 잘남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구축됩니다. 이것은 쉴새없이 들이닥치는 하나님이 일으키는 변화를 모독하는 처사입니다. 예를 들면, 디모데전서 6:8에 보면, “먹는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마 어제 이 때쯤에 심하게 배고파본 자만이 감사할 것입니다. 하지만 50년 간 실컷 풍족하게 살아온 사람에게는 결코 그것으로 만족하지를 못합니다. 도리어 자신의 가치됨을 더 큰 사치품 속에 뒹굴 때 만족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이 우상입니다. 우상이란 자신의 의로움을 보충할 보조물로서 만든 자의 가치를 높이게 위해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우상은 만든 주인이 곁에 있을 때만 우상 노릇합니다. 하지만 참다운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 속에 계셔서 늘 동행하십니다. 무엇이 우상이고 무엇이 우상 아닌 참된 하나님입니까? 오늘 본문 2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하늘을 친히 만든 것을 거론하시면서 우상을 배격하십니다. 이것은 인간들이 구태여 보충물을 필요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즉 하늘이 부족해서 우리 인간들이 요청했기에 하늘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그 하늘 아래는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이 친히 만드신 그것으로 인해 대단히 만족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신약 시대에 와서 참으로 우상 아닌 것은 ‘나는 주님만 있다는 만족해’입니다. 과연 인간이 되어서 어떻게 예수만으로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누가복음 24:15에 보면 ‘동행’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참새가 하나님이 친히 만드신 창공 속을 마음껏 자유롭게 나는 것처럼 우리 성도는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 안에서 마음대로 살면 됩니다. 끝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구분을 지읍시다. “누구든지 예수없는 자는 인간도 아니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아무리 고관대작으로 살더라도 그 사람 속에 예수님이 안 계시면 하나님보시기에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는 안목을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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