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이사야 38:9-14/히스기야의 중보자강의이사야

히스기야의 중보자 2007년 8월 8일 본문 말씀: 이사야 38:9-14 (사 38:9) 『유다 왕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그의 병이 나을 때에 기록한 글이 이러하니라』 (사 38:10) 『내가 말하기를 나의 중년에 스올의 문에 들어가고 나의 여생을 빼앗기게 되리라 하였도다』 (사 38:11)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리니 산자의 땅에서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겠고 내가 세상 거민 중에서 한 사람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사 38:12) 『나의 거처는 목자의 장막을 걷음 같이 나를 떠나 옮겨졌고 직공이 배를 걷어 말음 같이 내가 내 생명을 말았도다 주께서 나의 틀에서 끊으시리니 조석간에 나를 끝내시리라』 (사 38:13) 『내가 아침까지 견디었사오나 주께서 사자 같이 나의 모든 뼈를 꺾으시오니 조석간에 나를 끝내시리라』 (사 38:14) 『나는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내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 사람이 기도할 때는 더 이상 사람에게 기댈 것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웃이나 친구나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더 이상 기대하고 싶지 않을 때, 자신의 목숨과 자신의 가진 모든 것과 지식까지 신에게 바치면서 기도하게 됩니다. 따라서 기도란 일종의 세상과의 단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포기하고, 세상을 등지고, 세상을 잊고, 오로지 신 앞에 자신의 몸까지 포함에서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을 제물로 바치면서 신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참된 기도처럼 여겨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마저 참된 기도가 아니라고 한다면 더 이상 인간으로서 시도할 수 있는 기도는 전혀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히스기야의 기도는 자신의 전부를 바치는 그런 인간에서부터 시도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침입을 고백하고 증거하는 기도입니다. 예상 밖으로 아직 노년이 아닌 히스기야에게 죽음이 찾아든다는 이야기는 히스기야가 접하게 됩니다. 이것은 히스기야를 당황스럽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찾아듬은 항상 우리 인간을 당황스럽게 만드는데 그것은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의 기대를 비켜나가시는 방식으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이 예상한대로 하나님은 일하시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장차 오실 예수님에게만 관심이 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즉 오늘 본문에 나오는 히스기야의 기도는 히스기야를 증거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증거하는 용도로서 자리잡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을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한 책입니다. 오늘 대목도 예외가 아닙니다. 히스기야에 인생에 예수님의 기도가 침투하게 되면 히스기야의 인생은 히스기야를 증거하자는 인생이 아니라 예수님을 미리 증거하는 인생이 됩니다. 그의 기도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 인간들이 미리 예상 할 수 있는 기도가 아닙니다. 만약 우리 인간들이 예수님의 기도를 미리 예상할 수 있다면 예수님을 배척하지도 않을 것이요 예수님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죄인으로 드러나지도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죄인으로 드러난다는 것은 우리들이 아무리 거룩한 기도의 틀을 마련해서 하나님에게 올린다 할지라도 주님의 기도하고는 확실하게 어긋나게 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기도 안에는 예수님의 운명이 담겨 있습니다. 이 운명은 인간들의 소망이 집결된 내용들이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뜻이 집결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히스기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히스기야를 조기에 죽이는 겁니다. 히스기야 당사자의 뜻과는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것은 히스기야를 고려함이 아니라 히스기야를 가지고 장차 오실 메시야를 증거하기 위한 용도로 쓰기 위함입니다. 쉬운 예를 든다면, 히스기야의 기도는 강 건너 편, 하늘 나라에게 합당하기 위하여 각양 선하고 거룩하고 고생하고 의로운 재료들을 총집결 시키는 그런 기도라면, 그런 고상한 뜻과는 상관없이 히스기야를 당황하게 만드는 내용을 가지고 하나님은 히스기야를 찾아듭니다. 이것은 히스기야의 운명의 주도권이 결코 히스기에게는 없다는 것을 천명하신 사태입니다. 저쪽 강 건너편 하늘 나라에서 누군가 직접 강을 건너와서 히스기야에게 찾아든 겁니다. 이렇게 되면 히스기야는 예상 밖의 운명을 접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장차 오실 메시야의 운명입니다. 이 운명으로 인하여 히스기야는 자신과 예수님 사이에 평소에 단절 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단절되어 있기에 히스기야의 모든 것이 죄가 되지 않을 수 밖에 없는 처지였던 것입니다. 이런 죄를 지으면서 히스기야는 더 살아야만 한다는 본심을 드러내게 됩니다. 더 살아야 하는 이유는, 자기 쪽에서 저쪽 강 건너 세계와 연결되리라는 소망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직접 찾아오시니, 자신의 입장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자신은 하늘나라와 단절이었던 것입니다. 자기가 무슨 시도를 하고 무슨 기도를 해도 하늘 나라까지 연결될 수 없는 몸부림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자신을 조기 죽이시는 조치가 취해진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늘나라에게 누군가 자기에게 건너온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중보자입니다. 중보자는 인간의 요구에 하나님이 부응하는 식으로 방문하시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일방적 뜻에 의해 찾고 싶은 자기 백성에게 찾아가는 식이 됩니다. 이렇게 중보자의 방문을 받는 자는, 자신의 그동안 모든 것이 죄의 한계 안에서 진행된 세월임을 알게 됩니다. 즉 자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이나 행동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여전히 죽음의 영역 안에서 죽을 이유만 더욱 더 만들어낸 결과만 낳게 한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조기 죽음은 히스기야로 하여금 죄에 대해서 하나님의 안목을 가지게 했습니다. 즉 그동안 살아있는 모두가 죄였다는 겁니다. 죄는 죽음과 통하기에 하나님은 죽음을 통해서 죄의 죄됨을 알리려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놀랍게도 죽은 자기를 다시 살려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것은 ‘죄 문제 해결’로 이해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죄가 하나님의 등 뒤로 던져 아예 없애버렸다는 겁니다. 이로 인해 성도란 ‘사느냐 죽느냐’로 세상을 보는 자가 아니라 ‘죄냐 의냐’라는 관점에서 세상을 다시 보게 된 자입니다. 야곱이 그러한 자였습니다. 호세아 12:2-4에 보면, 야곱의 지난 행세가 모두 죄악된 것임을 야곱은 몰랐습니다. 그저 본인은 축복받은 자로서 자신이 획득한 복을 끝까지 사수하는 것이 자기가 살 길임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셔서, 그런 인식이 바로 죄라는 것을 ‘씨름’이라는 실제적 부딪침으로 알게 하셨습니다. 야곱은 용서를 구합니다. 즉 자신이 죄인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베소서 4:7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죄와 하나님의 의라는 관점에서 세상을 다시 보고 있는 겁니다. 이는 곧 그가 그리스도로 인하여 쓰임받는 자라는 증거가 됩니다. 그리스도가 침투한 사람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복음을 이용하여 자신을 계속 살릴 궁리를 찾지 말고, 계속해서 피로 인한 죄사함 만을 증거하는 여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96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6,267 강의 이사야 40:27-31/독수리 신앙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2-23
6,266 강의 이사야 40:18-24/우상의 정체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2-23
6,265 강의 이사야 40:12-17/최종 지혜자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2-23
6,264 강의 이사야 40:6-11/아름다운 소식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2-23
6,263 강의 이사야 40:1-5/외치는 자의 소리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2-23
6,262 강의 이사야 39:1-6/신앙적 경솔함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2-23
열람 ➜ 강의 이사야 38:9-14/히스기야의 중보자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2-23
6,260 강의 이사야 38:1-8/죽게 된 히스기야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2-23
6,259 강의 이사야 37:30-35/다윗을 위하여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2-23
6,258 강의 이사야 37:26-29/앗수르의 수모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2-23
6,257 강의 이사야 37:14-20/히스기야의 기도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2-23
6,256 강의 이사야 37:1-4/하나님의 처리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2-23
6,255 강의 이사야 36:21-22/잠잠하라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2-23
6,254 강의 이사야 36:1-7/산헤립의 공격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2-23
6,253 강의 이사야 35:1-4 /하나님의 아름다움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2-23
6,252 강의 이사야 34:16-17/여호와의 책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2-23
6,251 강의 이사야 34:1-4/사라진 제국들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2-23
6,250 강의 이사야 33:20-24/영원한 예루살렘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2-23
6,249 강의 이사야 33:10-16/삼키는 불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2-23
6,248 강의 이사야 33:1-3/주의 일어나심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2-23
6,247 강의 이사야 32:9-15/환란과 기쁨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2-23
6,246 강의 이사야 32:1-4/공의로 통치하는 왕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2-23
6,245 강의 이사야 31:1-3/사람과 육체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2-23
6,244 강의 이사야 30:30-33/혁혁한 진노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2-23
6,243 강의 이사야 30:19-21/환란의 떡과 고생의 물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2-23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