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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이사야 37:26-29/앗수르의 수모강의이사야

앗수르의 수모 2007년 7월 18일 본문 말씀: 이사야 37:26-29 (사 37:26) 『네가 어찌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들은 내가 태초부터 행한 바요 상고부터 정한 바로서 이제 내가 미루어 네가 견고한 성읍들을 헐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노라』 (사 37:27) 『그러므로 그 주민들이 힘이 약하여 놀라며 수치를 당하여 들의 풀 같이, 푸른 나물 같이, 지붕의 풀 같이, 자라지 못한 곡초 같이 되었느니라』 (사 37:28) 『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나를 거슬러 분노함을 내가 아노라』 (사 37:29) 『네가 나를 거슬러 분노함과 네 오만함이 내 귀에 들렸으므로 내가 갈고리로 네 코를 꿰며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돌아가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앗수르 왕의 오만함은 감히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는 일까지 차용해서 자신이 하는 일을 정당화하는데 이릅니다. 즉 유다 나라 사람들에게 외치기를, 자신들이 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공격하는 것은 유다 나라 사람들이 믿는 그들의 하나님인 여호와의 뜻에 따라 실시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이것은 유다 나라 사람의 신앙심의 뿌리까지 공격하는 전략 방식입니다. 완전히 전의를 잃게 만들겠다는 의도입니다. 유다 나라 사람들은 행여 마지막 기대고 싶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까지 앗수르 자신들이 미리 읽고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자기네 앗수르에게 굴복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길 참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조치를 취했습니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앗수르 왕이 미처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그 뜻이란 바로 앗수르 왕을 마치 밭가는 소나 부리는 말처럼 부려서 강제로 본국으로 소환시키겠다는 겁니다. 여기에 갈고리가 등장하고 재갈이 등장합니다. 갈고리나 재갈이란 강제 조치를 취하는 도구입니다. 본인이 안 가고 싶어서 필히 귀환해야만 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뜻까지 앗수르 왕을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큰 소리 친 겁니다. 유다 나라 백성들 앞에서 “여호와의 뜻을 행하려 왔다, 어서 성물을 활짝 열어라”고 소리친 겁니다. 사람이란 실패가 없으면 자기와 함께 계신 하나님의 현존을 느낄 수가 없게 되어있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성공했다고 여기는 시간동안 오로지 자신의 자질과 능력과 품위를 믿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으로 자신을 버텨보려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자기 백성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하여금 위기와 실패를 겪게 하십니다. 이럴 때 비로소 성도는 이미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있음을 압니다. 이렇게 되면 적들이 자기를 향해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과 함께 계신 하나님을 겨냥해서 공격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즉 ‘나의 적’이 아니라 ‘주님의 적’으로 그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겁니다. 사람들은 인생을 살면서 항상 소스라치게 놀라는 준비를 하면서 수시로 정기들면서 살아갑니다. 조그만 일에도 실패한 인생이 될까봐 깜짝깜짝 놀랍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이처럼 놀라고 벌벌 떨면서 인생을 살라고 십자가에서 그 귀한 피를ㄹ 흘리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적으로 간주하지 말고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의 적으로 간주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우리에게는 실패나 위기라는 것은 성립하지 않을 것입니다. 18만 5천 명의 대군은 그당시 유다 백성들에게 엄청난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군이 천사에 의해서 하루 아침에 몰살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 우리가 겁을 내어야 당연한 자를 저쪽 18만 5천명의 적군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와 함께 계신 천사와 주님을 겁내어야 합니다. 즉 우리와 함께 계신 분의 소중함을 모르고 도리어 그것보다 훨씬 미약한 적들에 대해서 겁을 내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눈이 감겨 있기 때문입니다. 주를 사랑하지도 않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왜 우리들이 겁많은 신앙생활을 하게 될까요? 그것이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버릇이 ‘나’ 위주로 살아가기 때문에 주님의 적도 ‘나의 적’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즉 사람들은 수를 세면서 자기를 일단 ‘1’로 삼고 나머지를 2, 3. 4 ... 로 봅니다. 예를 들면, “여기에 열 명 있다”는 표현은 “ 나 빼놓고 아홉명이 있다”는 뜻입니다. 일단 자기를 ‘1’로 삼고 보는 겁니다. 그 ‘1’의 자리는 그 어떤 자에게는 추호도 양보 안합니다. 항상 자기 우선 주의요 자기 위주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두 세 사람도 내 이름으로 있는 곳에 내가 함께 하리라”했습니다. 이것은 현재 우리가 열 명 있다고 쳐도 주님 보시기에 ‘10’이라는 숫자로 보시는 것이 아니라 ‘한(1) 몸’으로 보시는 겁니다. 100명이 있어도 ‘한 몸’으로 보시는 겁니다. 이것은 ‘한 몸’의 ‘1’의 자리는 우리 인간들이 차지할 몫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만이 차지할 자리라는 겁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되었든 열 사람이 되었던 오직 하나의 머리이신 예수님만 쳐다보는 그 현장에 주님도 함께 계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유념해야 될 사항은 결코 하나님은 유다 나라의 특정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일부러 앗수르를 불러들어서 겁준게 아니라는 겁니다. 앗수르는 나의 적이 아니라 혹은 특정 한 사람의 적이 아니라 ‘유다 나라’라는 한 덩치의 적이요, ‘예루살렘’의 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서 찾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하나의 몸을 만들 때는 이미 우리를 죽은 몸으로 간주하는 방식으로 실시해버립니다. 더 이상 각자의 인간들이 서로 그 ‘1’을 차지하려고 하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하나님을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아니라 오로지 ‘한 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일하시고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는 그 ‘한 몸’을 위해 죽어야 될 몸들일 뿐입니다. 우리는 한 몸의 지체들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서로 만나면 각자 자기 몸 위주로 상대를 평가할 것이 아니라 오직 한 몸 되시는 주님의 몸으로 상대를 찾아나서게 됩니다. 즉 우리 자신이 우리의 행함으로 구원되지 못하는 그런 처지에 있던 우리에게 의도적으로 주님이 찾아드셔서 구원시켜 주었다면 이런 기적이 분명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떨어질 수도 있는 겁니다. 그 사람을 찾아나서는 일은 순전히 서로의 장기를 자랑함이 아니요 서로가 해내지 못한 오직 한 몸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하기 위함입니다. 히브리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도 그들은 집단으로 나왔습니다. 구원받아놓고서 서로의 능력을 끄집어내놓고 과시했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오직 우리들과 함께 계신 분의 능력만을 찬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새롭게 등장한 한 몸입니다. 이로서 우리를 공격하는 적들은 결코 우리의 적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계신 분의 적이기에 주님께서 적당하게 처리해주십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 위주로 구원을 논하지 말고 주님으로부터 기적을 받은 또 다른 한 몸이 누군지에 관심두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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