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4:1-4/사라진 제국들
사라진 제국들 2007년 5월 30일 본문 말씀: 이사야 34:1-4 (사 34:1) 『열국이여 너희는 나아와 들을지어다 민족들이여 귀를 기울일지어다 땅과 땅에 충만한 것, 세계와 세계에서 나는 모든 것이여 들을지어다』 (사 34:2) 『대저 여호와께서 만국을 향하여 진노하시며 그들의 만군을 향하여 분내사 그들을 진멸하시며 살륙케 하셨은즉』 (사 34:3) 『그 살륙 당한 자는 내어던진바 되며 그 사체의 악취가 솟아오르고 그 피에 산들이 녹을 것이며』 (사 34:4)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 성경을 볼 때는 성경을 쓴 선지자의 심정과 동일할 때, 그 담긴 뜻을 더 깊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들을 일반인들이 자기 기준으로 보게 되면 완전히 미친 자일 것입니다. 미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하지 못할 발언과 행동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선지자의 심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도 선지자들처럼 원없이 미쳐봐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오늘날 교회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미치기보다는 점잖고 훌륭하다는 평가를 외부로부터 듣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즉 교회 나오기 전보다 교회 나오고부터 더 나은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남들로부터 듣고 싶어합니다. 이러다보니 하나님을 위하여 살기보다는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부각시키는데 열중하게 됩니다. 선지자의 정신에서 벗어나고 멀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동시에 점점 더 세상사람화 되어갑니다. 타인들의 평판에 더욱 민감해집니다. 이렇게 되면 어느새 선지자를 향하여 나쁜 의미로 ‘미친 자’라고 세상사람들과 함께 비난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한마디로 말해서 이 세상은 하나님에 의해서 “갇혔다”라고 할 만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도망칠 수 없다’는 말이 우리들에게 기분 나쁜 이야기일까요 아니면 기분 좋은 말일까요? 저는 이것이 참으로 기분 좋은 말로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일어나도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 처지를 대변한다는 식으로 세상을 해석해야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하나님은 모든 세상 만국과 민족들을 도망치지 못하고 완벽하게 가두어 놓으신 상태로 통치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세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아내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시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는 이 세상 만국을 철저하게 유린하고 멸망시킴으로서 영광돌리시는 방법과 또 다시 방법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원하시는 자를 오로지 하나님의 공로와 의로움만으로 건져내시는 것으로 자신에게 영광이 돌리지게 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첫 번째 경우, 왜 하나님을 철저하게 이 세상을 멸망시키십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만국을 향하여 분노하시고 진노를 퍼부어신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있기에 하나님께서 진노와 분노를 도망치지 못하게 만든 상황을 통해서 퍼부어주시는 겁니까? 로마서 3:23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으매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한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세상의 형편을 보면 각자 자기 인생을 가지고 참으로 눈물겨운 노력과 투쟁을 벌리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자 나름대로 평생에 걸쳐 일가견을 이루어놓습니다. 평생토록 갖은 노고를 다기울리고, 온갖 역경을 딛고, 근사한 사업체를 이룩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사업체를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위해 가져올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사업체를 가지고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또 어떤 일은 평생토록 복음을 전파하면서 목회자로서 한 점 부끄럼없이 최선을 다해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그런 업적을 가지고 영광받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또 어떤 분은 가정주부로서 평생을 걸쳐 자식과 부모를 잘 봉양해 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받지를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국가의 경우를 봐서, 일개 국가를 운영하는 자들이 그냥 시시한 자들이 아닙니다. 참으로 천재들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엘리트들과 인재들이 국가를 책임지고 운영합니다. 젊을 때, 그들은 남들과 비교로 되지 않을 정도로 총명함과 지혜와 재능을 발휘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국가가 마치 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가 바짝 말라비틀어지는 것처럼 말라죽게 된다는 겁니다. 그들은 그들의 재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아예 하나님께서 그들의 업적을 가지고 영광을 받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이로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맹렬한 저주와 분노를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일월성신과 하늘마저 철거당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 모든 경우가 이 세상의 그 무슨 존재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릴 수 없는 체계라는 사실과 관련있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축구 경기가 보고 싶어서 이 세상에서 축구선지를 다 불러모아놓고 축구공을 그 가운데 던져주었는데 그 어느 누구도 축구를 할 줄 모르고 멀쭉하게 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피아노 연주가 듣고 싶어, 이 세상의 피아니스트라는 자들을 다 모아놓고 악보와 피아노를 보내주었지만 그들 가운데 그 어느 누구도 피아노 연주를 해내지 못하는 무능자들 뿐이다는 사실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정작 원하시는 것은 그 어느 인간도 충족시켜 내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그들이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를 당해도 쌉니다. 평소에 사람들은 자신이 평생을 투자해서 벌리는 사업이 과연 하나님께 영광이 될지를 고려해보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단지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 열심히 했다, 후회없이 매진했다, 능력껏 했다’는 것만으로 하나님에게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유일하게 영광돌리시는 예수님의 뜻에 따라 일방적으로 용서된 자들만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영광이 되시는 방도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스도 빼놓고서는 도무지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것이 성립되지 않게 하신 겁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누가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에서 제외된 자들입니까? 바로 예수님 그분이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를 퍼부을 자격자임을 수용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심판주이시면서 동시에 구원자이심을 받아들이는 자만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자입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오직 예수님의 공로만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리가 되었던 창녀가 되었든 그런 것을 문제삼지 않고, “오늘밤에 낙원에 있으리라”는 혜택이 마련되어 있는 겁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자신의 가치를 먼저 생각하지 말고, 예수님이 아니면 도무지 하나님의 영광이 안됨을 먼저 인식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