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0:10-14/백성의 요구
백성의 요구 2007년 3월 21일 본문 말씀: 이사야 30:10-14 (사 30:10)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사 30:11) 『너희는 정로를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 (사 30:12) 『이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이 말을 업신여기고 압박과 허망을 믿어 그것에 의뢰하니』 (사 30:13) 『이 죄악이 너희로 마치 무너지게 된 높은 담이 불쑥 나와 경각간에 홀연히 무너짐 같게 하리라 하셨은즉』 (사 30:14) 『그가 이 나라를 훼파하시되 토기장이가 그릇을 훼파함 같이 아낌이 없이 파쇄하시리니 그 조각 중에서, 아궁이에서 불을 취하거나 물웅덩이에서 물을 뜰 것도 얻지 못하리라』 참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말씀을 유다 백성들이 싫어하는 이유는, 인간들의 타고난 죄를 지적하면서 말씀이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세상 이방 신들은 인간들이 조작해낸 신이라서 인간의 죄를 지적하는 신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장려하는 신입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아시고 그 죄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어떻게 극복되느냐를 알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인간들이 근본적인 성향을 지적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참 여호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해서 백성들 앞에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 선지자들에게도 백성들은 자신이 품고 있는 죄가 감추어지지 않고 발산됩니다. 그것이 바로, 선지자들의 참된 말씀을 거부하고 배척하는 겁니다. 소위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지긋지긋하다’는 겁니다. 그들의 참을 수 없는 욕망을 만족시켜주는 그런 신을 섬기고 싶은 겁니다. 그들의 욕망은 이러합니다. 유다 나라보다 월등하게 크고 번성하고 복을 받은 나라를 본받자는 겁니다. 그 강대국들이 섬기는 신을 섬기고 싶다는 겁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오늘날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맨날 복음만 전하는 설교자에게 요청하기를, 지금 다른 대형 교회를 본받아라 는 겁니다. 그들 교회는 복음을 전하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큰 복을 받아서 교인들도 많고 헌금도 많이 들어오는데 왜 참 복음만 전하는 우리 교회는 갈수록 피폐해지느냐고 따지고 듭니다. 그런데 복음에 의하면 바로 이러한 배척이 인간들의 품고 있어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유발하는 근원적인 죄악이 되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자기가 보내신 선지자들이 당하는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저주가 얼마나 혹독하게 감행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당부하시지를, 사람들의 배척이 무섭다고해서 다른 말씀을 그들에게 전하면 그 책임을 선지자에게 묻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정도로 참 선지자들은 사람들의 반응을 의식하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더 의식하는 자들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참 선지자들의 이런 성향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그들은 비꼬듯이 말합니다. 더 이상 자신들에게 참 여호와 하나님의 정직한 진리를 말하지 말하는 겁니다. 차라리 거짓된 내용이라도 자신들의 마음에 흡족한 계시만 전하라는 겁니다. 목사들은 교인들이 이렇게 나올 때 보통 갈등을 느끼게 됩니다. 바르게 배운 대로 하는 것이 자신 생계를 도리어 위태롭게 하는 상황에서 손쉽게 복음과 진리를 배반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과연 있는지 없는지 알쏭달쏭하지만, 실제 자신을 배척하고 자신의 말씀을 싫어하는 교인들의 항의는 너무나도 확실한 현실, 그 자체이기 때문에 알쏭달쏭한 것보다 생생한 현실 쪽으로 기울고 맙니다. 바로 이런 자들이 가짜로 성령세례 받았다고 우기는 이단들입니다. 유다 나라가 참 하나님의 말씀을 배격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참 말씀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선물은, 아예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부르지도 않은 이방나라의 몫으로 돌아갑니다. 그 내용이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세례가 내려집니다. 하늘에 이미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약속대로 이방인들에게 부어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 때부터 성령 세례받은 자와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한 자의 구분이 지어집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 세례 받는 그 현장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가르치고 전합니다. 이로서 성령 세례 받은 자들의 특징은, 성경 안의 세계를 성경 밖의 세계보다 더 좋아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왜 그들이 성경 말씀을 상고하는데 열중했을까요? 그것은 성경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어떻게 처리했으며, 어떤 경로를 통해서 승천하셨으며, 그 경로 속으로 어떤 식으로 자기 백성을 합류시키는가 하는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빌립 집사님이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세례 줄 때, 그는 이사야를 시작해서, 왜 의로우신 예수님께서 일부러 채찍에 맞고 사람들에게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를 설명해주었습니다. 이와마찬가지로 성령 세례 받은 자는 더욱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업적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믿게 됩니다. 로마서 10장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천국에도 가보고, 또한 지옥에도 가보고 싶어하지만, 정작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바는, 십자가를 알려주는 사도 바울의 복음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하셨다는 겁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말씀은 성도의 마음 속에 영적 떡으로 작동을 하는 방식으로 구원의 길을 하는 겁니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성령 세례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쏟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 안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을 알고 더욱 더 믿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성령 세례를 받지 않고 교회에 출석하는 이들은, 성경 속의 세계보다 세상 속의 세계가 우선적입니다. 이러다보니 교회에 나와서는 신에게 인정받아 본디 자신이 노리는 세상에서 대단한 존재로 부각되기를 욕망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교회에서는 예배당은 곳곳에 세워놓았는데, 실제로 성령 세례 받은 자들이 몇 안되니, 성령 세례 받지도 않은 자들까지 성령 세례 받았다고 억지로 아부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되면 정말 성령 세례 받은 목회자는 성도들은 가짜들에 의해서 배척을 받고 그 교회에서 추방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마치 오늘 본문에서 유다 백성들이 참 선지자들에게 요구하는 것과 같은 과정을 밟게 되는 겁니다. 이로서 오늘날 교회는 죽이지 말아야 될 영혼은 되레 죽여버리고, 죽여야 될 영혼들은 도로 살리는 우상적인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진리란 구걸하지 않는 법입니다. 복음은 사람들의 구걸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함부로 허부되지 않습니다. 이 귀한 복음은 진짜 영생받기로 작정된 자들에게 전달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원치 않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