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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7 대구강의 1 - 지옥의 하나님 16자유게시판[신학]

07 대구강의 1 - 지옥의 하나님 16

이름 : 구득영(IP:203.223.97.201)

07 대구강의 1 - 지옥의 하나님 16

07,03,05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언약과 진공마왕 !!

오늘은 교재 59페이지 '언약과의 의'에 대해서 강의를 하겠는데,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보자면, 이 언약이라는 것은 마치 하수구 구멍과도 같아서, 그 주변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들을 한꺼번에 다 모아서 집어넣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약을 통과하면서 반대방향으로는 또 다른 사건들을 유발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언약을 안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모호한 것을 남겨두지 않는다는 것인데, 즉 이렇게 A 라는 사건과 B 라는 사건이 따로 따로 존재하도록 허용하지 않고, 결국은 모두가 한 구멍 속으로 다 빠져 들어간다는 말이다.

띠리리 리리리, 잠간만요, 제 핸드폰에 처음으로 전화가 왔지 싶은데, "아빠 - 오야, 그래", 진주에게 전화가 왔는데, 누가 길을 좀 가르쳐주면 좋겠는데...

여기 A 라는 사건과 B 라는 사건이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까, 이렇게 신구약 성경이 있는데, 성경에 A 라는 사건과 B 라는 사건과 C 라는 사건이 있지만, 이것이 언약으로 가면 따로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한 곳으로 모일 수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성경자체가 약속이고 언약이니 말이다.

◈ 성경은 과연 다양한가?

흔히 성경신학자들이 자기개념으로 이해를 해서, 성경에는 물론 언약도 있지만 다른 것들도 있다고 하는데, 그러나 주제들이 여러 가지가 독립적으로 있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언약의 특성상, 즉 성경자체가 언약이니 말이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이 율법을 주었다면 그 율법을 준 사건이 홀로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흡수통합이 될 사건으로서 율법사건이라면, 율법 따로, 언약 따로, 그리고 예수님 따로, 그렇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에서 사도바울이 율법을 가지고 예수님과 연관시키는 그런 방식을 취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기존의 학자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하나로 모은 것이 자신이 없으니까, 괜히 하나로 모으려고 하다가 망신을 당하느니, 차라리 "성경에는 언약이 전부가 아니고, 이런 주제, 저런 주제도 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놓고는, 그러한 주장을 하는 자기가 무엇이 잘못되었느냐는 것이다. 자기는 성경에 있는 그대로만 했다고 우긴다는 말이다.

◈ 성경을 언약으로 보는 매카니즘 !!

그러니 우리가 해야될 작업은 무엇인고 하니, A 라는 사건과 B 라는 사건과 C 라는 무관해 보이는 사건을, 그것들이 무관한 것이 아니라 하나임을, 이 전체를 어떻게 언약으로 '좌악' 끌어당기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그냥 당기면 안 되고, 그 매카니즘, 즉 과정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당겨야 하는가? 성경구절 하나를 가지고서 그냥 당겨버리면 되느냐는 것이다. 지난 시간에도 했지만, 벌써 작년의 일인데, 언약은 주의 이름이 벌리는 사건인데, 그러니 이 언약이 어떤 일을 만들어낼 때는 무엇을 겨냥하는고 하니, 인간의 이름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겨냥해서 공격한다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이것을 두고, 여호와를 인하여 다른 신을 공격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여기에서 성경을 잠시 보겠는데, 신명기 8장을 보도록 하자.

(신 8: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신 8: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정녕히 멸망할 것이라

◈ 언약을 근거로 멸망을 !!

여호와 하나님 말고 다른 신을 섬기면 멸망을 당할 것인데, 그 멸망을 당하는 근거가 무엇인고 하니 '언약' 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에 준해서 오직 여호와의 이름만 전세계에 남기고자 해서, 다른 신을 섬기는 것에 대해서, 이 다른 신은 반드시 인간이 만든 것으로, 즉 인간의 이름과 그 영광이 관련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겉으로 보면 신과 신의 싸움이지만, 결국은 따지고 보면 하나님과 인간의 싸움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일하신다는 것과, 보이는 인간들끼리 단합해서 일을 하는 것과의 대결이라는 것이다.

◈ 나의 욕망으로 가득 찬 하루일과 !!

그러니 이것이 신앙생활을 10년, 20년을 해도 매일 아침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숙제라는 말이다. 20년 동안을 목사로서 살아도, 아침에 일어나면 그 하루계획을 자기가 알아서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 소망과 욕망으로 말이다.

이렇게 되면 무엇을 잊어버리는고 하니까, 하나님의 일하심이 매일같이 우리에게 실감나게 주어지면 참으로 고맙겠는데, 하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기에, 그래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매일같이 손에 잡히지 않으니까, 그 빈자리를 누가 채워야 하는고 하니, 자기 계획과 소망과 희망으로 자기 자신이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를 한 20년 정도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주님이 손을 잡고 "야, 다음에는 이것을 해라" 라고 되어야만 하는데,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다시 맹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뭐하면서 하루를 채우지" 라고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언약을 공부하고 안다고 해놓고, 하나님은 자기 이름과 자기 계획만 남기고, 우리의 이름과 계획들은 모두 박살낸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막상 아침에 눈을 뜨면 다가오는 것은 자기의 소망과 욕망, 그리고 자기 계획뿐이라는 것이다.

그럴 때 다시 성경에 비추어보면, 자기 스케줄이 과연 어디서 나와서 그 내용을 채우느냐는 것이다. 이것을 신약에서는 '자기 의' 라고 하는데, 자기가 그만큼 훌륭하고 가치가 있음을 증명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스케줄을 짜게 된다는 것이다. 즉 "주여, 저는 못난 놈입니다. 당뇨병에 걸려서 죽게 하옵소서" 라고 자기 스케줄을 만드는 인간은 없다는 것이다. 자기는 아직 더 살아야 하는데, 괜찮은 목사이기 때문에 말이다. 그냥 그것으로 하루일과를 다 보낸다는 것이다.

◈ 아들을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 !!

그러니 성도에게 있어서 하루종일 일을 해도,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일로 가득 차 있는 그 일과를, 즉 자기 의를 위한 자기 일을 보이지 않는 분이 일일이 다 때려부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요한복음 6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 6: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요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여기 40절에 보면, 아들을 믿는 것이 바로 아버지의 뜻, 즉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자기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그분이 때려부수고 있는 방식으로 자기 곁에 있음을 믿고 느끼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일을 하시는데. "너를 믿지 말고, 나를 믿어라" 라는 식이라는 것이다.

◈ 어이 이스라엘, 이리와 봐 !!

지금 이 이야기가 교재 59페이지에 나오는데, 계속해서 이스라엘 전체에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제가 설명을 했으니 여러분이 구약을 이해할 때 많은 도움이 되지 싶은데, 하나님의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어이 이스라엘, 너희들이 하고 싶은 것을 내나봐. 내가 모두 박살내어줄 테니까" 라고 말이다.

이렇게 때려부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고, 그런데 그것을 알면서도 매일같이 쏟아내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현실에 대한 대처방법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기 위해서 오늘 무엇을 해야하는지, 그런 것을 끊임없이 끄집어내고, 하지만 주님은 계속해서 부수면서, "너의 계획이 없어도 내가 살린다. 십자가의 공로이고 은혜이지, 니가 애쓰고 돈 벌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이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살아보려고 노력을 하고, 또 그것을 때려부수는 주님과 마주치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주의 일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두 가지를 합치면, 그것이 곧 언약에서 나오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언약으로 쏟아져서 언약으로 다시 배출된다는 것이다.

◈ 하나님은 과연 외과치프인가?

그런데 방금 제가 설명한 것 말고, 기존의 성경신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에 순종해서 하고, 그것이 잘 안 될 때는 반성하고 다시 한다" 라고 되어버리면, 하나님의 일이 결국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일을 하고 미흡한 것은 하나님이 체크해주셔서, 즉 "요건 좀 고쳐라" 라는 식으로 하나님의 일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모든 것을 전적으로 다 때려부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렇게 가치 있는 인간에게 선지자를 보내서 "참으로 수고가 많다. 그런데 요거는 조금 부족하네. 좀 더 노력을 해라" 라고 해서, 그렇게 해서 부족하면 채워주고, 또 부족하면 또 채워주고, 그렇게 해서 발전과 발전을 거듭하는 식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이런 식으로 봐버리면, 신약에서 교회법을, 이것을 지난 토요일에 강의했는데 교회법과 행정법을 말이다. 그런 것을 자동적으로 다 긍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부족한 인간이니까 때가 되면 모자라는 부분을 주님이 수정해주실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은 다 해야하는데, 최선을 다해서 말이다" 라고 하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다 긍정하는 쪽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런 교회는 주의 이름이 인간의 이름을 부수는 식이 아니라, 인간의 이름을 긍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의 이름으로 하시는 '여호와' 라는 신과 인간의 이름으로 만든 우상, 즉 교회가 되는데, 이 둘이 서로 결탁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 '여호와'란 이름의 우상 !!

지금 제가 하는 이야기가 오늘 한국교회를 꼬집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구약성경에 다 나와있다는 것이다. 에스겔이나 예레미야, 이사야 등의 모든 구약의 선지자들과 왕이 선지학교를 만들어서 생도를 배출했다는 것은, 결국은 이스라엘이란 이름의 우상 집단체를 만들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중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없애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것은 내가 원하는 이스라엘이 아니야. 그것은 니들이 스스로 긍정해서 하는 짓이야" 라고 하시는데, 결국은 이렇게 이스라엘 체제를 만들어놓으니까, 결국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우상을 숭배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해서 또 다시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교재 59페이지부터 이런 관점으로 보면 되는데, 즉 주의 이름이 인간의 이름을 때려부수는, 그런 관점 말이다. 그리고 주의 이름으로 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여전히 인간의 이름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뭔가를 축적하는 낌새를 계속해서 보여주는 것이 또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양쪽 면을 구약성경을 통해서 모두 다 발견할 수 있는데, 그럴 때 구약성경이 제대로 해석이 된다는 것이다.

◈ 구약을 보는 두 가지 관점 !!

ⓛ 주의 이름이 인간의 이름을 때려부순다 !!
② 그러나 인간은 주의 이름으로 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자기 이름을 긍정하고 축적한다 !!

여기서 교재 59페이지를 보자.

** 과연 이러한 초월적 능력은 오직 이스라엘이 받은 언약에 있음을 누가 기꺼이 믿을 수 있겠는가? 기생라합이 그 대열에 합류한다. 어떻게 구원받았을까? 여호수아 2장 9절에서 11절을 보자.

(수 2:9)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수 2: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수 2: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 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여기 기생라합이 증거하는 여호와는 어떤 여호와인고 하니, 때려부수는 여호와라는 것이다. 여기 2장에 나오는 두 왕인 시흔과 옥을 전멸시키는 하나님 말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작업이 어떠한 식으로 벌이는지, 즉 어떻게 전쟁을 벌리시는지 좀더 자세히 보려면, 신명기 20장을 보자.

(신 20:2) 너희가 싸울 곳에 가까이 가거든 제사장은 백성에게 나아가서 고하여
(신 20:3)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가 오늘날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인하여 놀라지 말라
(신 20:4)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대적을 치고 너희를 구원하시는 자니라 할 것이며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에게 고하라고 하시는데, 이것을 나중에 거짓 선지자들이 딱 그대로 써먹는다는 것이다.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인하여 놀라지 말라" 라고 말이다. 이런 것이 참 재미있는(?) 부분인데, 그리고 하나님의 전쟁하는 방법이 그 이후에 계속해서 나오고 말이다.

(신 20:5) 유사들은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새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치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낙성식을 행할까 하노라
(신 20:6)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 과실을 먹을까 하노라
(신 20:7) 여자와 약혼하고 그를 취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를 취할까 하노라 하고
(신 20:8) 유사들은 오히려 또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에 겁내는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떨어질까 하노라 하여

◈ 누가 의식주(衣食住) 문제를 !!

새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치 못한 자,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 여자와 약혼하고 그를 취하지 못한 자, 그리고 두려워서 마음에 겁내는 자, 이런 자들은 여호와의 전쟁에 참여시키지 말고 모두 다 집으로 돌려보내라는 것이다. 아마도 요즘 군대에 가고 안 가는 기준이 이런 것이라면, 다들 집을 짓고, 포도원을 만들고, 일찍 약혼을 하고, 그야말로 난리가 날 것인데 말이다.

왜 그런고 하니까, 이 여호와 전쟁은 인간의 능력을 의지하는 전쟁이 아니라, 지금 함께 계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대로 실행에 옮기는 전쟁이기에, 즉 주의 이름으로 하는 전쟁에 자기 이름에 관심이 있는 자가 끼어 들면, 그 사람 자체가 주의 일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마치 기드온의 경우처럼, 지금 눈앞에 적들은 그야말로 수만 명이 넘는데 자기들은 겨우 300명이고,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냐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자기가 죽게 되면, 낙성식도 못하고, 포도원 수확도 못하고, 그리고 약혼식도 못하게 되고 말이다.

이런 식으로 자기 이름으로 하는, 즉 자기 가치에 가치를 두는 것에 마음을 두고, 거기서 떠나지 못한 사람은 주의 이름으로 하는 전쟁에 처음부터 참여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아니, 자기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 무슨 주의 일을 하느냐는 것이다.

◈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

저는 이런 대목을 생각하면서, 고린도후서 2장의 부분과 관련이 되면서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너희들은 복음을 전할 때 영생을 받을 자에게는 구원의 향기가 되고, 망하는 자에게는 악취가 된다" 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리고 그 뒤에 나오는 부분, 즉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이 신명기 3장 4절, 5절, 6절, 7절과 그 얼마나 매치가 잘 되는지, 너무나도 잘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고후 2:15)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고후 2: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과 자기 생존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아예 처음부터 주의 일에는 그 근처에도 얼씬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누가 주의 일은 하는가? 아무도 할 사람이 없는데, 그런데 신약에 가면 성령께서 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제가 조금 전에 강의한 것이 또다시 나오는데, 그렇게 아무도 할 사람이 없는데, 위의 신명기 20장의 성경구절을 가지고, "나는 믿음이 좋기 때문에, 결혼식이나 집 짓는 일이나 포도원에는 관심이 없고, 그대로 밀고 나간다" 라는 인간은 없다는 말이다. "주여, 제가 주의 일을 할 테니 약혼자와 결혼하게 해주시고, 새 집을 잘 짓게 해주시고, 포도원도 잘 되게 해주세요" 라는 생각이 들지, 그런 것을 모두 포기하고 오로지 주의 일만 하겠다는 인간은 없다는 것이다.

◈ 언약의 능력으로 영적전쟁에 !!

이렇게 없으니까 우리 이름을, 즉 우리 가치를 주의 이름으로 공격하면서, 이렇게 강제로 치면서 까지 우리를 주의 영적전쟁에 집어넣는 일을 매일같이 주님이 하신다는 것이다. 아까 한 강의를 또 하면,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무엇을 생각하는가? 자기 보금자리를 생각하고, 자기 애인을 생각하고, 포도원을 생각하고, 그리고 군면제(?)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신명기 20장에 나오는 그것 말고는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각자의 직업이 다 있는데 말이다. 모두가 다 그러한데, 그런데 주의 이름이 임하고 주의 신이 임하면,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해서, 그 사람을 악마와의 영적전쟁에 집어넣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언약에서 나온 능력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신명기 20장 8절을 다시 보자.

(신 20:8) 유사들은 오히려 또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에 겁내는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떨어질까 하노라 하여

'기드온' 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것이 300명인데, 300명만 있어도 충분하니 나머지는 다 집으로 돌려보내라는 것이다. 요즘 '300'이라는 영화도 있는데, 그 300명은 페르시아 100만 대군에 맞서는 그야말로 최고의 스파르타 300용사이지만, 그러나 기드온의 300용사는 말만 용사이지 항아리와 횃불을 들고서 무슨 전쟁을 하느냐는 것이다. 계속해서 10절 말씀을 보자.

(신 20:10)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할 때에 그 성에 먼저 평화를 선언하라

◈ '평화를 선언하다' 라는 의미는?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이렇게 성에 평화를 선언한다는 것은 이미 그 성을 접수했다는 것이다. 이런 것도 여호와의 전쟁에 있어서 잘 이해해놓으면 좋은데, 평화를 선언한다는 것은 은나팔을 부는 것인데, 이스라엘이 언제 은나팔을 불었는가? 여리고 성을 공격할 때 바로 이 은나팔을 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은나팔을 분다는 것은 이미 접수완료 된 상황인데, 물론 그 성 안에 있는 백성들은 자기들의 성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이스라엘에게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의 이름으로 인간의 이름을 치려고 만반의 준비를 했기 때문에, 그들의 제 아무리 성을 튼튼히 만들고 붙들고 있어도 그 주의 이름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홍해조차도 가로막을 수 없었고 말이다. 주의 이름으로 하시는 일을 구 누구도 막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할을 평화를 선포하기만 하면 되는데, 그런데 그러한 일이 겁이 나서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저씨, 죄송하지만 조금만 비켜주세요" 라고 해놓고는, 그리고는 겁이 나서 '엉엉' 울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냥 "어이, 비켜라. 이것은 너희들의 것이 아니야" 라고 하면 되는데 말이다.

그런데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 스스로가 믿음이 없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여호와 전쟁을 하는데요. 그러니 조금만 비켜주시면 참 좋을 텐데. 안 그러면 큰일나요" 라고 하는데, 아니 그렇게 해서 비켜줄 놈들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적들이 "너희들, 뭐야" 라고 하니 도망가버린다는 것이다.

정작 본인들부터 믿음이 없으니 점령은 하되 같이 패배를 당해버린다는 것이다. 홉니와 비느하스의 경우도 언약궤를 앞장세워서 전쟁을 하는데, 그 여호와 이름인 언약궤는 가는 곳마다 승리를 하는데, 정작 자기들은 죽어버리고 말이다.

◈ 영적전쟁은 리필 금지 !!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 영적전쟁을 이런 방식으로 진행하시는데,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힘으로 이길 수 있는 영적전쟁은 하나도 없고 말이다. 하나님은 매일같이 영적전쟁을 해도, 지난번의 것을 또 다시 써먹는, 그런 영적전쟁을 우리에게 허락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아무리 전도를 많이 하고 설교를 제대로 했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에는 역시 "천부여, 손들고 옵니다" 라고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께 먼저 항복하고, 주께서 나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마음을 비워야만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임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신명기 20장을 다시 보자.

(신 20:10)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할 때에 그 성에 먼저 평화를 선언하라
(신 20:11) 그 성읍이 만일 평화하기로 회답하고 너를 향하여 성문을 열거든 그 온 거민으로 네게 공을 바치고 너를 섬기게 할 것이요
(신 20:12) 만일 너와 평화하기를 싫어하고 너를 대적하여 싸우려 하거든 너는 그 성읍을 에워쌀 것이며
(신 20:1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붙이시거든 너는 칼날로 그 속의 남자를 다 쳐죽이고

먼저 평화를 선언하는데, 그것을 거부하면 성읍을 에워싸는데, 그러며 하나님께서 붙이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언약으로 벌이시는 여호와 전쟁인데, 이것을 순서대로 다시 정리해보면, 정리한다는 것은 중요하다는 의미이고 말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은 언약을 앞장세우시고, 언약을 통해서 주의 이름이 전쟁을 하는데, 언약에서 나온 언약을 무엇을 겨냥하는고 하니, 인간의 이름을 겨냥해서 이것을 때려부수는데, 이런 인간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 우상이고 말이다. 그러니 겉으로는 신과 신의 싸움이지만, 그 내막은 주의 이름과 인간의 이름과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신을 섬기면 저주를 받으니 말이다.

이렇게 주의 이름으로 할 때 누구를 보내는고 하니, 언약에서 나온 언약백성을 보내는데, 그러면 적을 공격하기 전에 무슨 관계부터 정립되어야 하는고 하니, 주의 이름과 언약백성과의 관계가 먼저 정립되어야 하는데, 여기에서는 언약백성조차도 자기 능력과 자기 가치, 이렇게 자기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은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런 일을 하면 자기에게 얼마나 유리한지, 자기 생존에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 그러한 자기의 추가적인 가치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은 집에 가라는 것이다. 그런 사고방식으로는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 언약백성의 특징 - 어린아이와 젖먹이 !!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보다는 주님 앞에서 죽겠다고 하는 사람만 보내는데, 그때 어떻게 하는고 하니, 겉으로 보이기는 '인간대 인간'의 마주침으로 보이겠지만 말이다. 여기에 이렇게 주의 이름이 있는데, 그런데 저쪽은 반드시 인간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이다. 그것이 시편 8편에 나오는데, 여기서는 언약백성을 어린아이와 젖먹이로 보는데, 사실상 주의 이름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시 8:2)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자기들끼리 누가 더 높은가를 서로 '키 재기' 할 때,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내세우는데,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 라는 것이다. 이 세상 권력자들은 자기 자질을 이야기하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나는 약하다" 라고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죽기 위해서 오셨는데, 즉 자기 자신을 대속물로 내어놓기 위해서 오셨다는 말이다.

(마 18: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마 18:2)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마 18: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다시 말해서, 이러한 예수님의 죽음의 능력이, 펄펄 살아있다고 하는 인간의 능력과 자질을 공격하는 양산으로 벌어지는 전쟁이 바로 언약이 벌리는 전쟁이란 것이다. 인간의 이름이 아닌 주의 이름으로 벌리는 전쟁 말이다.

◈ 죽음이 역사에 등장하면, 드디어 생명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

제가 그것을 어제 오후예배시간에 말하기를, "죽음이 역사에 등장하면, 비로소 역사는 죽음 안에 있는 생명의 능력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라고 말이다. 말이 멋있지요?(ㅋㅋ) 그러니 그 죽음 속의 생명에 마주치면서 깨어져야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더 큰 세력이 오게 됨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주의 이름으로 때려부숨으로서, 언약백성 자신이 매일같이 주의 이름 앞에 부셔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언약 안에서는 오직 주의 이름만 높여진다는 것이다. 모든 다른 이름은 주의 이름에 무릎을 꿇고 말이다.

이것은 제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이렇게 하신다는 것인데 성경에는 이것 외에 다른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신학자들은 이런 것도 모르고, "성경은 언약만 주제가 아니라 천국이나 율법, 그리고 땅의 개념 같은 다른 주제도 있는데 말이다" 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 소리를 하는고 하니, 그들은 인간의 가능성을 부추기고, 결단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약은 그런 가능성을 완전히 짓밟아놓으니 말이다.

다시 교재 59페이지를 보자.

** 즉 무서운 하나님의 전쟁을 미리 파악하여 자신의 조상신과 민족을 배반함으로 구원받은 것이다. 자신해서 민족적인 배타성을 이스라엘의 언약성에 비추어서 갖추었다. 참 하나님의 언약성은 그것에 기준한 의의 거룩성 여부에 따라 참 신이 전쟁을 한창 벌이고 있음을 기생 라합은 믿은 것이다.

참으로 놀랍게도 기생 라합이 여리고 성에 쳐박혀(?) 있으면서도 이런 사실을 알았다는 것인데, 계속해서 교재 60페이지를 보자.

기생 라합뿐만 아니라 모압여인 룻도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이스라엘 본국의 백성과 그들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잘 보아왔다. 여호와 하나님은 비록 자기 백성이라도 언약을 위배하면 가차없이 조치를 취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기생 라합과 이방여인 룻 !!

이것이 참 중요한 대목인데,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있다고 해서 자기가 다룰 수 있는 분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 인간 이름을 부수는 방식으로 함께 계시는 것이지, 우리가 흥정할 수 있는 그런 하나님으로서 함께 계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을 기생 라합도 알았고, 이방여인 룻도 알았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남편이 죽은 팔자가 사나운 여자들인데, 그런데 룻의 경우에 남편이 죽고 얻은 것이 바로 시어머니 나오미가 알고 있었던 언약의 하나님인데, 그래서 그 언약을 따라서 다윗이 태어나고 말이다.

이것을 제가 이야기는 쉽게 하지만, 그러나 평소에 항상 우리는 아침에 눈만 뜨면 "제가 어제 교회에 갔으니 오늘 무엇을 해줄 겁니까?" 라고 반대급부를 은근히 노린다는 것이다. 이런 천성이 그야말로 언제나 변함이 없는데, 물론 이것도 나쁘지만 사실 더 나쁜 것은 "지난주에 교회에 안 나갔으니, 아마 벌받을 것이다" 라는 것인데, 그런 태도가 참으로 큰 문제라는 것이다.

아직도 자기에게 무엇이 유리하고 불리한지를 따지고, 그러한 자기 중심센터를 왜 염두에 두느냐는 것이다. 아니, 자기가 이렇게 죽어져 가는 마당에 무엇이 유리하고 불리하냐는 것이다. 다만 자기를 통해서 언약이 완성된다는 것에 대해서 언제나 감사해야 하는데, 그러므로 그분이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는, 그렇게 그분의 쫄다구가 되었다는 기쁨, 주님의 쫄다구라는 환희와 감격, 그것에 대해서 고맙게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 선지자가 평소에도 신앙생활을 했는가?

우리가 구약의 선지자들을 보면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는데, 잘된 놈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선지자를 연구하면서 제일 난처한 점은, "선지자가 과연 평소에도 신앙생활을 했는가?" 라는 것인데, 평소에도 선지자가 분명히 말을 많이 했을 터인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다 말씀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호와 가라사대" 라고 할 때, 그 '가라사대' 라고 할 때는 말씀이 나오지만, 하지만 나머지 기간에는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사실상 여기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한데, 모든 인간은 죄인이니 선지자도 '지(?)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자기 생각을 말이다. "지난번에 그런 계시를 받았으니, 이번에는 나를 좀 띄워주시려나?" 라는 죄인 된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가도 "여호와 가라사대" 라고 하면, "아이쿠, 제가 잘못했습니다"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 요나, 삼손, 거지 나사로 !!

그 대표적인 인물이 선지자 '요나' 인데, 선지자 노릇을 자기가 많이 했다는 것이다. 니느웨 성이 멸망하는 것은 자기가 안 가도 다 알아서 망하는데, 굳이 왜 자기가 가야 하느냐는 것이다. 자기만 그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 되고 말이다. 하나님께서 "가서, 전해" 라고 하는데, 이렇게 자기만 알면 된다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탄다는 것이다. 정반대인데, 니느웨는 지금의 이라크의 바그다드이고, 다시스는 스페인 쪽이고 말이다.

그러니 정반대로 그렇게 '빠이빠이' 하고 간다는 것이다. 자기 혼자 알고 구원을 받으면 되고 말이다. 전하기는 미쳤다고 전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도망치고 전하는 과정을 통해서 요나는 하나님이 자기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는데, 자기를 하나의 대속물로 사용한다는 것을 말이다. 예수님의 대속물이 되심을 미리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요나는 "아하, 내가 바로 박넝쿨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잠깐 피었다가 그만 시들어져야하는 그런 박넝쿨 말이다. 이것을 통해서 다른 백성들이 주의 일이 무엇임을 깨닫는 것인데, 그것이 어떻게 인력으로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또 대표적인 사람이 삼손인데, 자기의 여자 밝힘증을 인해서, 그렇게 여자를 위해서 힘을 사용하다가, 하지만 결국 죽을 때는 나실인의 기능을 모두 다 한다는 것이다. 이 삼손이 죽을 때 그냥 곱게 죽는 것이 아니라, 자기 눈알을 다 빼임을 당하고 죽는데, 그렇다면 삼손은 지옥으로 갔는가? 그렇게 보면 안 되고, 하나님께서 삼손을 써먹을 대로 다 써먹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태어날 때부터 삼손은 자기 DNA에 선천적인 여자 밝힘증이 있는데,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써먹을 대로 다 써먹는데, 하지만 그러게 하고 빈껍데기만이 남아도 삼손은 그야말로 남는 장사라는 것이다. 그것은 신약의 거지 나사로도 마찬가지인데, 철저히 주의 이름만 남긴다는 것이다.

보소, 여기 물 좀 주소 ...

그런데 이것을 놀랍게도 기생라합과 룻이 알았는데, 여기서 교재 60페이지를 계속해서 보자.

** 이 언약의 끝자락에는 언약의 완성자가 계시다. 그분은 예수님이시다. 이 분의 의로 말미암아서 마지막 때에 구원과 저주가 판가름된다는 소식이 바로 '복음', 즉 '기쁜 소식'이다. … 거기에 비해서 세상의 국가는 우두머리가 된다.

◈ 캇시러의 '국가와 신화' !!

여기 '세상의 국가' 라는 나오는데, 이것을 모르면 설교가 안 되는데, 여기에 대해서 좀 설명을 해보면, 세상국가의 실체와 본질에 대해서 괜찮은 책이 19세기말 신칸트학파인 '캇시러(Ernst Cassier)' 라는 학자가 쓴 국가의 상징주의와 신화에 대해서 쓴 '국가의 신화' 인데, 이것이 마키아벨리의 '구주론'과 플라톤의 '국가론'을 상징적으로 봐서 신화적 용어로 재해석해서, 20세기초에 국가가 지닌 허구성에 대해서 제대로 밝힌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고, 조금만 집중하면 된다는 것이다.

요즘 이 캇시러의 신화론을 굉장히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데, 우리가 지난번에 공부한 '제국' 이라는 책이 그것을 전제로 할 정도로 말이다. 이 캇시러의 주장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국가는 없는데, 너와 나의 상상력이 모여서 국가가 이루어진다" 라는 것이다. 이렇게 국가가 허구라고 하면 국가를 이루는 법체계가 허구가 되고, 이 법이 허구라면 변호사나 판사, 검사가 다 허구라는 것이다.

◈ 캇시르 - 인간은 한번도 신화의 세계를 벗어난 적이 없다 !!

이것을 다시 한번 더 말하자면, 이 캇시러만큼 국가를 정확하게 본 사람이 없는데, 물론 '제국' 만큼 그렇게 상세하지는 않는데, 전체윤곽을 잡아주는데는 이 캇시러의 책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구주론'과 플라톤의 '국가론'에 입각해서, 그것을 비판하면서 말이다. 이런 캇시러의 주장이 무엇인고 하니, "인간은 한번도 신화의 세계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라는 것인데, 제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말이다.

'주몽' 이라는 드라마를 봐도 사실 국가가 신화인데, 다물(多勿)군으로 아무리 고구려를 만들어도 사실 고구려라는 국가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고구려민이 있고, 왕 주몽이 있고, 마누라 소서노는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러나 고구려라는 국가는 결코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이 빼앗으면 빼앗기는 허구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허구를 놓고서, 그런 허구를 누가 가지느냐에 따라서, 즉 사람은 이 허구의 권위에 목을 맨다는 것이다. 얼마나 이상한지, 사람은 이렇게 허상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어떤 코미디 코너에 보니 아주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들의 대화를 한번 들어보자.

* 신 랑 : 여보, 돈 좀 줘.
* 마누라 : 돈 없는데요.
* 신 랑 : 당신, 전화하는 것을 들어보니 3000만원이 있다며.
* 마누라 : 그건, 게임머니인데요.
* 신 랑 : ? ? ?

◈ 게임머니가 없이 무슨 재미로 !!

이 게임머니를 가지고 포커 한 판에 수십억씩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요즘 부동산에 가면 장사가 안 되어서 업자들이 매일 이런 포커나 고스톱을 치는데, 그 판돈이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물론 게임머니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런 게임머니가 없으면 그 사람들이 시간을 보낼 때가 없다는 것이다. 그냥 보내면 재미가 없고 말이다.

이렇게 인간은 허구를 찾는데 목을 매고, 그 허구를 제대로 찾지 못하면 자살을 하고 말이다. 그러니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도대체 어떠하겠는가? 그야말로 참으로 기가 찬다는 것이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뭐라고 했는가?

* 빌라도 : 내 나라는 여기에 있는데, 니 나라는 어디 있노?
* 예수님 : 내 나라는 니게 속한 것이 아니고, 내 나라는 따로 있다.
* 빌라도 : 니가 유대인의 왕이 맞나?
* 예수님 : 그래, 맞다.

도대체 예수님 빌라도 둘 사이에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국가라는 것이 허구라는 말인데, 로마서 13장에 보면, "내가 이 세상의 권세자들에게 공연히 칼을 준 것이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사자이다" 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로마서 13장을 캇시러의 국가론에 결부시키면, 로마서 13장이 멋드러지게 해석이 된다는 것이다.

(롬 13:4)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캇시러 이전의 중세를 비롯한 모든 신학자들이 주장한 것이 무엇인고 하니, 현재 있는 국가를 실제의 국가로 볼 때, 로마서 13장에 나오듯이 공연히 칼을 가진 것이 아니고 선한 자에게 상을 주고 악한 자에게 벌을 주기 위해서 칼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국가의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말이다. 지금도 로마서 13장의 모든 주석들이 다 그렇고 말이다.

◈ 요한계시록, 그리고 로마서와 다니엘서에서 말하는 국가는?

그런데 이런 해석이 사실 요한계시록 12장에 의하면 어긋나는데, 요한계시록의 국가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의 허구적 국가라는 것이다. 이것은 구약의 다니엘서와는 다른데, 다니엘서의 경우는 모든 국가를 하나의 금신상 밑에 있는 발가락에 지나지 않고 말이다. 그러니 요한계시록에 말하는 국가는 로마서 13장과도 모순이 된다는 것이다.

로마서 13장에 의하면, 이 세상의 권세자들은 허구라는 국가를 빙자해서, 그것으로 타인을 압박하고 핍박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마치 천사적인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권력자들은 천사가 아닌데, 다만 천사적인 기능만 한다는 것이다. 본인도 모르게 말이다.

◈ 요한계시록에서 천사가 개입하는 이유는?

이러한 이야기를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로마서처럼 권력자가 한다고 하지 않고 천사가 나서서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이 어려운 점인데, 요한계시록 1장을 보면 예수님과 사도요한 사이에 누군가가 개입을 하는데, 바로 천사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요한이 천사에게 전하니 천사가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감추어졌던 실체가 마치 공존하는 것처럼, 즉 사도요한과 천사가 같은 인물로 같은 시대에 공존하는 것으로 말이다.

물론 요한계시록 외의 다른 성경에서는 천사 부분이 빠져버리고 인간과 다루는데,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피는 인간을 위한 것이지 천사를 위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요한계시록 말고 나머지는 인간의 죄를 드러내기 위해서 인간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천사는 가끔식 등장하는데, 사도행전을 봐도 천사는 사도바울에게 옥문을 열어주고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는, 그런 메신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만 하고 빠지지 직접 나서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와보면, 이미 사태가 끝난 상황에서 천사가 중간매개체로 등장해서 사도요한에게 계시를 전한 것처럼, 로마서 13장의 권세자나 특정한 인간들이 일을 하는데, 그런데 그런 인간들이 구원받을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는데, 마치 바벨론의 고레스왕이 신자도 아니고 자기는 마르둑 신을 믿으면서도 이사야에서는 그를 누구로 보는고 하니, 그를 메시야로 여긴다는 것이다.

◈ 로마서 13장의 권세자들 - 이 세상이 허구임을 !!

물론 정작 본인은 메시야고 뭐고 관심도 없는데, 즉 일은 시키되 본인은 불신자이면서도 그렇게 하는 일은 천사의 역할이라고, 그렇게 성경이 해석을 덧입혀 버린다는 것이다. 그것이 요한계시록에 깔려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허구를 허구인 줄 모르고 매달리는 인간들에게 천사가 동원되어서, 그것은 허구라고 알려주기 위해서 동원된 권세자들이 바로 로마서 13장에 나오는 그 권세자들이라는 것이다.

◈ 막스베버, 그리고 더 똑똑한 캇시러 !!

이렇게 한 국가의 옮고 그름이 캇시러의 국가의 신화론에 의하면, 책제목이 '국가의 신화' 인데, 정말 굉장히 좋은 책이란 것이다. 이전에도 여러 번 했지만 다시 한번 더 하고자 하는데, 왜냐하면 국가에 대한 개념이 정립이 되어야 진도를 나가니 말이다.

먼저 막스베버가 국가에 뭐라고 했는지 살펴보면, 이 사람도 상당히 뛰어난 양반인데, 그는 "개인적인 도덕을 위해서 국가가 있어야 한다" 라고 주장했는데, 이 사람은 칼빈주의적인 영향이 굉장히 강한데, '자본주의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 라는 책도 있고 말이다. 즉 국가라고 하는 것은 보조의 역할이지 국가를 위해서 인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캇시러는 주장하기를,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되면 캇시러가 더 똑똑하다는 말인데, 이렇게 개인이 자기의 도덕을 위해서 국가가 있어야 된다고 말은 하면서도, 즉 개인의 도덕을 포기하면서까지 국가의 권력에 접근하려는 것이 바로 인간이고 각 개인인 것을 왜 놓치느냐는 것이다.

◈ 장준혁의 보여주는 허상 !!

예를 들어서, 외과의사의 할 일은 무엇인고 하니까, 환자의 병을 고치는 것인데, 그런데 왜 병원에서 권력을 쥐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환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라고 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고 도덕인데, 바로 이것이 막스베버의 주장이고 맞는 말인데, 그런데 의사는 그것이 아니라, "환자님, 당신은 제가 수술에 뛰어난 실력이 있는 외과의사임을 입증해주고 훈련자에 불과합니다" 라는 것이다.

그러니 외과의사에게는 그 환자의 완쾌가 문제가 아니라, 즉 자기의 방향은 도덕이 가리키는 방향이 아니라,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바로 신화이고 허상이라는 말이다. 인간은 이러한 허상이 없이는 살지 못하고 말이다.

◈ 봉사하기 위해서 사시는 분은 예수님뿐 !!

이 세상에서 봉사하기 위해서 사는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는 없는데, 즉 대속물로 주려고 오신 분은 예수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과 함께 다니는 12제자가 무엇을 원하는가? 예수님을 빙자해서 하늘에서 누가 높은지 서로 경쟁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천국은 무엇인가? 허구이고 허상이라는 것이다. 천국은 예수님의 죽음 안에 있는 것인데, 그런데도 그들은 자기 안에 이미 천국이 있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제자들은 천국관을 새롭게 다시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 구약성경 - 인간과 주의 이름이 만든 이스라엘의 충돌현장 !!

그러니 이스라엘의 경우에, 인간이 만든 이스라엘과 실제로 그 안에서 하나님의 주의 이름이 만들고 일하시는 메시야의 나라와 어떻게 갈등을 일으키고 충돌을 일으키는지, 그런 면면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구약성경이란 것이다. 이렇게 국가라는 것은 허구인데, 즉 없는데 "너도 만들고 나도 만들어서", 그렇게 만들어서 서로 차지한다는 것이다.

다빈치의 '모나리자' 라는 그림이 어느 정도의 가격이겠는가? 500억? 그야말로 값을 매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모나리자를 집안에 걸어놓으면 무슨 가치가 있는가? 오히려 관리하는데 돈이 더 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매자가 생기면 500억의 가치가 된다는 말이다. 그림을 산 사람은 1000억을 받고 팔든지 하겠지만 말이다.

◈ 허구인데 왜 그렇게 집착하는가?

이렇게 아무 것도 없는데, 열심히 땅을 파고 일한 것보다 훨씬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이 펀드매니저의 세계라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없는 허구인데 말이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 이라는 동화처럼, 임금님에게 벌거벗었다고 한 그 아이만 빼고는 다 허구라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함부로 했다가는 귀향을 가든지 무덤에 들어가야 하니,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 아주 부드럽고 질 좋은 최고급 옷입니다" 라고 말이다.

그래서 지지난 주일 예배시간이지 싶은데, 그때 이런 설교를 했는데, 그때 무엇이라고 했는고 하니까, "인간이 생각하는 신은 '뻥'하고 뚫린 구멍이다" 라고 말이다. 그러니 결핍이고, 사실은 결핍 정도가 아니라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 어느 엔지니어의 개죽음 !!

이것은 실제 있었던 이야기인데, 어떤 동네에 가니 사람들이 폐가를 미신처럼 섬기고 있으니, 한 엔지니어가 우연히 그 마을에 왔다가 그 집에 들어가서 보고는, 마을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하기를, "당신들은 겁이 나서 못 들어갔지만 나는 가봤는데, 소파 2개가 있고 거미줄만 있더라" 라고 했다가, 마을사람들에게 맞아죽었다는 것이다. 자기들이 타부시하는 곳에 왜 갔느냐고 말이다. 그놈이 그 곳을 공격(?)하는 바람에 자기들은 기댈 곳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대로 남겨놓아야 하는데 말이다.

사실 현대인들에게 교회나 하나님도 그러한데, 타부시하는 곳이고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성전의 누락사상인가? ㅋㅋ) 주님은 오로지 십자가 사건으로 나타났지, 인간들의 상상력으로 만든 그런 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 말씀을 믿는 이스라엘 자체도 허구 !!

그것은 이스라엘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아까 신명기 20장에 나온 것처럼, 우리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함께 있기 때문에 지켜줄 것이라고 하는 그 허구성, 하지만 자기들에게는 허구성이 아니라 분명하게 신명기 20장에 나와있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성경말씀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백성들은 그 성경말씀을 믿고 말이다. 그런데 성경말씀을 전하는 제사장이나 그 말씀을 믿는 백성들이나 모두 다같이 허구적인 이스라엘 속에서 멸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경해석을 백 날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데, 조직신학을 아무리해도 소용이 없고 말이다. 서로가 만든 허구를 믿고 있으니까, 그 허구를 주고받고 주고받고 하다가 하나의 친목단체를 만들고, 역시나 허구인 교회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이름을 때려부수어야만 하는데, "그러니까 너는 죄인이지" 라고 하면, "예, 저는 망해도 쌉니다" 라고 말이다. 그런 십자가의 피가 실제로 다가와야 하는데, "아, 그분의 피가 전부이지, 내가 중요한 것이 아니구나" 라고 말이다. 그래서 피를 증거하는 하수인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예수님의 피를 믿고 구원을 받겠다" 라고 하는 것 자체가 자기에 대한 허상이고, 헛된 구원욕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교재 61페이지 '왕을 구한 이스라엘'을 보자.

어제도 한 설교내용이지만, 이 세상의 모든 나라는 백성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백성 중에서 허구의 대상인 왕을 뽑는데, 이런 것을 알려면 신화에 대해서 공부해야 하는데, 서점에도 엄청난 양의 책들이 나와있고 말이다. 아무튼 신의 대리자로 백성들이 왕을 뽑는데, 사무엘상 8장에도 나오는데, 백성들이 왕을 구한다는 것이다.

◈ 도살장에 끌려가는 왕의 신세 !!

그런데 이 왕이 그만한 능력이 없으면 죽임을 당하는데, 공식적으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신녀들이 가서 "왕이여, 그동안 수고했습니다. 당신 한 사람이 죽어서 나라가 살아야 하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죽여버린다는 것이다. 그 친척들 중에서 또 차기 왕을 뽑는데, 그렇게 해서는 십일조를 비롯해서 온갖 좋은 것들을 다 바치고 말이다. 그때 만약에 조카가 왕에 뽑혔다면, 그 일가친척들은 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왕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같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왕이 반항하면 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 당시는 이 세상보다는 내세가 더욱 중요한데, 이 세상은 그야말로 일장춘몽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과학시대이고 자본주의시대이기 때문에 이 속세가 그렇게 강조가 되지, 그 당시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때는 영생이 중요하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집트의 신화의 경우에도, 왕이 아닌 신이 중요하기 때문에, 왕이 신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으면, 즉 희생물이 되지 않으면 그 왕은 저주를 받아 지옥으로 간다는 것이다. 본심은 그렇지 않더라도 신을 생각하면 억지로라도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온 나라가 10년 동안 내내 풍년이 들 수는 없는데, 그렇게 흉년이 들면 그때는 왕의 목을 날려버렸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선거로 갈아치우지만 말이다. 그 얼마나 불쌍한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옛날에 왕이란 것은, 도살할 돼지에게 좋은 사료를 주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 세상 나라의 특징 - 백성들이 왕을 뽑는다 !!

이렇게 백성들이 왕을 뽑으니, 당연히 왕은 백성들이 알고 있는 것에 따라서 백성들은 춤을 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교에도 그대로 나오는데, '경국대전'에도 나오고 말이다. 이것은 조선시대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여기에 대해서 반항하는 왕이 연산군과 같은 경우인데, 그러니 그런 자는 당연히 오래 가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 가족들도 함께 죽여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말이다. 물론 세자의 모친 같은 경우는 신이 나는데, 남편이 죽지 자기가 죽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자기는 그냥 권세만을 누리면 되니 말이다. (?)

◈ 이스라엘의 특징 - 왕이 백성들을 고른다 !!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은 그것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계셔서 그분이 축복하시는데, 다른 말로 하면 능력인데, 즉 언약의 능력에 따라서 자기 백성을 하나 둘 골라잡는데,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를 말이다. 그렇게 그 언약의 능력이 잡아당겨서 이스라엘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기존의 이 세상 나라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세상 나라는 인간들이 왕을 선택해서 만드는 나라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란 나라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까, 왕이 직접 나서서 자기 백성들을 골라내는데, 그런데 지금 문제가 무엇인고 하니까, 언약으로 고르는데, 그런데 이것이 기존의 인간성과 다르기에 그들이 통곡을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사기 2장 1절 이하를 한번 보자.

(삿 2:1)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가로되 내가 너희로 애굽에서 나오게 하고 인도하여 너희 열조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끌어 왔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에게 세운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삿 2:2)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리함은 어찜이뇨
(삿 2: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삿 2:4)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삿 2:5) 그러므로 그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니라 무리가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 이스라엘이 왜 통곡했는가?

이 부분은 박영선 목사님의 설교집에 잘 나와있는데, ('구원, 그 즉각성과 점진성' 인가?) 하나님께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않겠다고 하니까, 그들이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곡해버린다는 것이다. (물론 요즘에 박영선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 저절로 통곡이 나오지만 말이다.) 사사기 1장 20절 이하를 계속해서 보자.

(삿 2:20)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 열조와 세운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은즉
(삿 2:21)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둔 열국을 다시는 그들의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삿 2:22) 이는 이스라엘이 그 열조의 지킨 것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로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이 사사기 2장의 근거는 여호수아서 제일 마지막 대목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여호수아 24장에 보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앞에 두고 과거 이야기를 한바탕 하는데, 그 설교의 주제가 무엇인고 하니, "너희들, 지금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라고 3번을 당부한다는 것이다.

* 여호수아 : 너희들, 말씀을 지키지 않을 것이지?
* 백 성 들 : 아닙니다. 지키겠습니다.
* 여호수아 : 너희들, 말씀을 지키지 않을 것이지?
* 백 성 들 : 아닙니다. 지키겠습니다.
* 여호수아 : 너희들,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언약을 버릴 것이지?
* 백 성 들 : 아닙니다. 결코 버리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백 날을 다짐하고 다짐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데, 그것은 인간을 구원하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여호와를 위한 인간이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하나님께서 언약을 주셨다는 것은 주도권을 인간에게 빼앗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기존의 세상 나라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그 주도권이 인간에게 있으니 말이다.

◈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이스라엘 !!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울보처럼 울 것이 아니라, 언약을 위해서라면 에스더의 경우처럼 "죽으면 죽으라라" 라고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놈이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아무도 그런 놈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년도 없고 말이다. 일단 살려면 자기 위주이지,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타인인데, 즉 '타자(他者)' 라는 것이다. 즉자(卽自)가 아닌, 즉 자기가 아닌 다른 '남'이란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이스라엘이 삐걱거리기 시작하는데, 교재 61페이지를 보자.

(삿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 진짜 왕과 가짜 왕의 충돌 !!

이 사사기 21장 21절을 보면, 마치 이스라엘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즉 자기 마음대로 한 원인이 마치 왕이 없었기 때문인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상 처음 12지파가 가나안에 왔을 때는 왕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왕이 필요하지 않은 나라에서 백성들이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행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스라엘은 왕이 없어서 필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미 왕이 있기 때문에 필요하지 않다는 것인데, 그런데도 백성들이 자기 마음대로 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왕이라고 해도 역시나 그렇게 할 것인데,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인간들의 왕을 구하는 것이고 말이다.

이렇게 인간들이 왕을 구한다는 것은 무엇의 연장선인고 하니, 백성들이 자기 마음대로 하는 그러한 연장선에서, 진짜 살아계신 '여호와' 라는 왕과 인간들이 세운 왕들이 서로 충돌한다는 것을 예견하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사기 21장 21절이란 말이다.

◈ 이 세상 왕은 제한 된 왕일 수밖에 !!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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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