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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6 대구강의 13 - [물질과 기억]자유게시판[신학]

06 대구강의 13 - [물질과 기억]

이름 : 구득영(IP:203.223.97.201)

06 대구강의 13 -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저, 박종원 역, 아카넷(서울: 2005)

06,11,20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철학 - '나'에게서 무엇이 나오는가?

오늘은 앙리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을 하겠는데, 우리가 이러한 철학자들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과 성도가 홀로 단독자로 있는 것은, 나오는 철학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 베르그송은 기독교에 대해서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성도는 아닌데, 그래서 "내가 나를 보았을 때, 나에게 무엇이 나오는가?" 라는 것만 이야기할 뿐이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무엇을 주시고, 이렇게 주시는 것을 다 끌어다 모았을 때, "과연 그런 나에게서 무엇이 나오는가?" 라는 것이 베르그송의 철학이라는 것이다. 언제나 '나에게서' 말이다. 김석수 교수도 그렇고, 모든 철학자들이 다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칸트나 헤겔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누군가가 함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그런 것은 떼 내어버린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보면 배꼽이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그 이전에 어디에 연결이 되어있었다는 흔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아담은 배꼽이 없다고 말했는데, 아담은 엄마가 없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 배꼽이라는 것은 탯줄이 있었는데, 그것을 자르고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는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 되는데, 자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하니 말이다.

◈ 우리 모두가 '개별자' 이기에 !!

12제자가 예수님과 함께 있어도 오해했던 것은, 예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다닌다고 해서 예수님이 밥을 먹으면 자기들도 배가 부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도 자기들은 도망쳐도 되는 '개별자' 라는 것이다.

◈ 그런데 사도바울의 십자가 신학은?

그런데 사도바울은 뭐라고 하는가?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마저도 함께 십자가를 지는, 물론 자기도 십자가를 지고 말이다. 그것이 사도바울의 십자가 신학인데, 이것이 그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냐는 것이다. 자기를 자기 스스로 판단하는, 그런 철학적 사고방식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유명한 스토아 학파이든, 에피큐로스 학파이든, 그 어떤 학파를 데리고 와도 이런 사도바울의 신학을 도저히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으로도 풀지를 못하고 말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탯줄이 있으면 그 탯줄을 끊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을 한다는 것이다.

◈ 성령이 오시면 개별자는 36계 !!

여기에 이렇게 예수님이 계시고 12제자가 있다면, 예수님께서 아무리 코를 골고 주무셔도, 제자들은 자기들이 안 자면 안 자는 것이라는 말이다. 제자들이 아무리 잠을 깊이 자도, 예수님께서 게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면 기도를 하는 것이고 말이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과 제자들이 제 아무리 3년을 같이 동고동락을 해도 개별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성령이 오시면 놀랍게도 이 개별자 의식이 모두가 다 날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이 '개별자' 라는 것이 모든 것의 시발점인데, 근대에 오면 이것을 '주체' 라고 하는데, 물론 과거에도 주체사상이 있었지만 희미했던 것은, 특별히 중세에는 신이라는 것이 있었기에, 이 신을 증거하기에 급급했지 주체라는 것에는 그렇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나는 어디에 쓸모가 있는가?" 라는 쪽으로 나간 것이 중세신학이라는 말이다.

◈ 스피노자 - 어떻게 하나가 다양성이 될 수 있는가?

스토아 학파의 경우에는, 역시 신과 결합되어있다는 것은, 그리고 스피노자의 경우에는 어떻게 하나가 다양성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를 빼버리고 다양성을 연결시켜버리면, 이 안에 경쟁이 생기고 미움이 생기고 질투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스피노자의 이야기는 무엇인고 하니까, 윤리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서로 돕고서 살아야지 "니가 잘났나, 내가 잘났나" 라고 하면 지옥 같은 세상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다양성에서 출발하지 말고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서 출발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비록 다양성을 유지하더라도, 서로 도와가면서 같은 형제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피노자의 주장이고 말이다.

스피노자는 이렇게 훌륭한(?) 이야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이단시되었는데, 그래도 그가 네덜란드에 살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프랑스 같았으면 사형감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평생을 안경알을 갈면서 먹고살았는데, 후대에 와서 그의 사상이 인정을 받았지 그 당시에는 완전히 이단아 취급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스피노자는 스토아 학파와 연결이 되는데, 즉 모든 것이 다 자기 팔자소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걱정을 하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스토아 학파의 주장인데, 즉 그렇게 자기 팔자대로 살면 되는데, 왜 그렇게 '톡' 튀어나오지 못해서 안달이냐는 것이다.

◈ 라이프니츠 - 위도우즈 XP !!

라이프니츠가 바로 그러한 경우인데, 그것을 '단자' 라고 부르는데, 톡 튀어나오는 말이다. 이 단자와 단자 사이는 너무나도 개별자이기에 서로 대화가 되지 않는데, 그럴 때에는 '창문'이 있어서, 즉 신의 이름으로 연결이 된다는 것이다. 창문을 통해서 말이다. (혹시 빌게이츠가 여기서 힌트를 얻어서 윈도우즈 시리즈로 대박을?)

◈ 라이프니츠 - 예정 조화론 !!

예를 들어서, 부부사이라면 서로 남남이라고 보지 말고, 신이 주신 남편이고 아내라고 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이혼도 안하고 연결이 잘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바로 라이프니츠에 의하면 '예정조화론' 이라고 하는 것인데, 그러니 이게 다른 것이 아니고 스토아 학파에서 이미 다 나왔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이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인데?) 그러니 악이라는 것도 다 의미가 있어서 있는 것이니, 그것을 가지고서 너무 고민일랑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신약신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사도바울이 이러한 스토아 학파에게서 배웠다고 하는데, 즉 사도바울은 그 학파의 추종자라고 책들마다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세윤 교수도 요한복음 자체를 스토아 학파의 영향 아래에 있다고 보는데, 영지주의의 영향도 있고 말이다. 과연 그런가?

이러한 현상들은 바로 이 언약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인데, 하지만 그들은 주장하기를, 사도바울이 제 아무리 성령을 받았다고 자기는 말해도, 그래도 신과 인간 사이에 이렇게 스토아 학파 같은 선배들이 있는데, 그들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즉 이렇게 신이 있고 인간이 있으면 되었지, 그밖에 무엇이 더 필요하냐는 것이다.

◈ 언약 - 니가 인간이냐? 멍멍 !!

그렇다면 언약은 무엇인가? 그들은 "그것은 그냥 약속이지 뭐" 라고 하면서 슬쩍 넘어가려고 하는데, 그러나 언약은 그렇게 대충 넘어갈 게 아니라, 감추어진 비밀로서, 우리가 납득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몇 시에 녹매(?)에서 만나자" 라고 할 약속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언약은 이방민족을 개처럼 취급을 하는 것인데, 즉 "인간이 인간이냐? 개네" 라고 하는 것이 언약이라는 말이다. 즉 "나는 잃어버린 양 외에는 찾지 않는다" 라는 예수님 말씀의 뜻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은 언약밖에 모르는데, 인간은 그야말로 개 취급을 하니까 말이다. 인간의 아비는 마귀인데 무슨 신경을 쓰느냐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오직 언약에만 관심이 있고, 언약만 이루시는데, 그렇게 언약을 이루다보니까 12제자가 나오고, 또 자기 백성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언약위주이지 인간위주가 아니라는 말이다.

◈ 철학자들 - 신과 인간이 있으면, OK !!

그러나 라이프니츠나 스피노자나 스토아 학파는 뭐라고 하는가? 그들은 신과 인간만 있으면 만사가 OK 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헛점이 언제 들통이 나는고 하니, 19세기말 포이에르바하와 니체에 와서 그만 박살이 나고 만다는 것이다. "신, 하나님, 웃기고 있네?" 도대체 그러한 하나님을 누가 만들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포이에르바하는 주장하기를,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신을 만들어놓고, 그리고는 그 신이 인간을 보호한다니, 그것이 어떻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물론 인간이 자기 욕망에 따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남는 것은 인간밖에 없다는 말이다.

◈ 인간은 무엇을 먹고 살아가는가?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먹고 살아가는가? 그것은 바로 '물질' 때문에 살아가는데, 이러한 철학자가 곧 마르크스이고 말이다. 포이에르바하는 관념적이라면, 마르크스는 유물론적이라는 것이다. 물질은 인간의 노동에서 나오는데, 존로크에 의해서 말이다. 그러니 노동을 하는 인간만이 인간이라는 것인데, 그래서 놀고먹는 지주들과 자본가들을 마구 박살내려고 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마르크스의 주장이 사실 너무나도 솔직해서 탈이지, 거짓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헤겔과 같은 사람은 자기가 노동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마르크스에 의하면 끽 소리도 못하고 말이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경우에 자기 딸이 굶어죽었다고 하는데, 그만큼 생활고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레닌의 경우에도 엄청 살기가 어려웠고 말이다.

◈ 베르그송 - 유물론자이지만, 과학주의자는 아님 !!

오늘 우리가 공부하려는 베르그송도 마찬가지인데, 이 양반도 유물론자이지만 그들과 차이점이 무엇인고 하니, 비록 유물론자이지만 과학주의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베르그송이 현대에 와서 부각되는 이유가, 만약에 시대의 흐름이 과학주의가 되어버리면 철학은 접어야 하는데, "형님, 제가 졌습니다" 라고 하면서, 과학을 앞세운 심리학자들에게 말이다.

머리에 뇌파를 꼽고 단층촬영을 마구 해대는데 철학자들이 어떻게 감당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성, 사랑, 애정, 울분 등등, 이 모든 것들이 머리 속에 있는 물질이라는 것이다. '도파민' 이란 성분이 많으면 도박을 하고 말이다. 그러니 철학적으로 아무리 사랑을 외쳐도, 그것보다는 그런 물질을 만들도록 주사나 한 대 맞고 약만 먹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나날이 발달하는 과학기술 앞에 요즘 철학자들은 소피스트와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무슨 말장난도 아니고 말이다. 그들이 매일 데모하는 것이 "인문학에 관심을 어쩌고 저쩌고" 라고 한다는 것이다. 결국 자기 밥그릇이나 지키겠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 김용옥 - 나보다 잘난 놈 있으면 나와봐 !!

그래서 요즘 철학자들은 철학을 하면서도 심리학을 같이 동업을 한다는 것이다. 장사가 되니 말이다. 심리학도 그냥 심리학이 아니라 과학적인 심리학을 말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정신과 의사와 같이 임상실험도 하는데, 그런 대표적인 인물이 김용옥이고 말이다. 원광대 한의학과를 졸업하고서, 이제는 의사와 철학가, 이 두 가지를 다 들고 한번 설치겠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침 놓다가 재미가 없어서 다시 철학으로 돌아왔지만 말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다 무엇인고 하니, 우리 인간은 혼자일 때가 가장 행복하고 신이 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존재하지도 않는 신에게 왜 간섭을 받느냐는 말이다. 즉 인간해방이고 인간승리인데, 하지만 사도바울은 뭐라고 했는가? 우리가 사로잡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는데, 디모데후서 2장 26절과 베드로전서 1장 2절 말씀을 보도록 하자.

◈ 사도바울 - 그분에게 사로잡혀야 !!

(딤후 2:26)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
(벧전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 찌어다

이렇게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히게 되었을 때의 현상이 무엇인고 하니까, 그것이 베드로전서 1장에 나오는데, 그것이 참으로 이상하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렸으면 모두 이룬 것인데, 즉 예수님은 새삼스럽게 우리에게 더 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 2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이 나온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여기 이렇게 화단에 화초가 있다면, "화초야, 이제 니가 알아서 커라. 모르는 것이 있으면 나중에 묻고 말이다" 라는 것과, 날마다 물뿌리개로 직접 물을 뿌리는 것이 어떻게 같으냐는 것이다. 분명히 다른데, 그런데 여기 2절에 살펴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즉 물뿌리개로 직접 뿌린다는 말이다. 여러분은 성경을 보면서 이런 구절이 눈에 번쩍 들어오지 않는가요?

인간은 주체가 확립이 되면 예수님과 자꾸만 거래를 하려고 하는데, "예수님, 뭐 시키실 일이 있으면 말씀만 하세요" 라고 하는데,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인간은 개별자가 되고 단독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금 성도를 자기의 피 뿌리는 대상으로서 데리고 논다는 말이다. "목사님, 과연 그런 사람들이 누가 있습니까?" 라고 할지 모르겠는데, 그런 사람들이 바로 베드로전서 1장에 나오는 옛날 선지자들이라는 것이다.

(벧전 1: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 오직 그리스도께서 만든 내 인생만 !!

옛날 선지자들에게 성령이 임해서, 자기들이 잘났다는 것이 아니라 장차 오실 메시야의 피를 전하기 위해서 미리 앞당겨서 이 땅에 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기의 고난과 영광이 아니라, 장차 오실 예수님의 고난과 영광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지를 못했는데, 그야말로 불쌍한 사람들인데, 즉 '나의 인생' 이란 것이 없다는 말이다. 자기의 인생은 없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만든 '내 인생'만 있다는 것이다.

◈ 베르그송, 베르그송, 베르그송 !!

이것을 베르그송이 찾아내지를 못하는데, 앞으로 우리가 베르그송을 공부할 것인데, 제가 여기서 미리 베르그송을 말하는 것은, 그냥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고 베르그송을 접하게 되면 우리는 감탄할 수밖에 없는데, "야, 완벽해. 나는 이처럼 인간에 대해서 완벽하게 까발린 사람은 보지 못했다. 할렐루야!" 라고 할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나중에 다 공부하고 나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철학자들이 다 그러하지만, 실제로 완벽한 논리를 구사한다는 것이다.

◈ 베르그송 - 인간은 단독자 !!

과학자가 보지 못하고, 정신분석학자가 보지 못하는 것을 베르그송은 다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베르그송 앞에 정신분석학자가 나서면 한 대 맞는다는 것이다. 무식하다고 말이다. 앞으로 그런 이유들이 다 나오는데, 그 이유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인간을 '단독자'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나를 누구라고 하는가?" 라는 것에 대해서 이 베르그송보다 더 뛰어난 학자는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프로이드 이전의 무의식까지 언급하는데, 인간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과연 그러한지, 지금부터 베르그송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자는 것이다. 이 '물질과 기억' 보다도 더욱 어려운 책이 바로 이 책(?)인데, 구입하는 것을 권하고 싶지 않은데, 너무나 어려워서 말이다. 아니면 나중에 김석수 교수 강의를 듣고 나서 구입을 하든지 말이다.

◈ 아메바와 식물을 무시하지 말라 !!

그렇다면 이렇게 난해한 것을 어떻게 살펴볼 것인가? 그것은 '아메바'를 예로 들자면, 아메바가 그렇게 멍하게(?) 있어 보여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식물의 경우도 가만히 있어 보이지만, 고속 카메라로 찍어보면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있다고 하는데, 아메바는 신경이 있는데, 물론 식물은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지만 말이다. 대부분이 신경이 없는데, 그래서 때려도 아픈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좀 더 나가면, 식물도 통증을 알고, 그리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틀어주면 열매를 더 잘 맺지만, 비트가 강한 음악을 틀면 열매를 잘 맺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고 말이다. 이렇게 식물에 의식이 있다는 것인데, 사랑을 주게 되면 잘 자라고, 미움을 주면 덜 자라고 말이다. 요즘은 그런 것까지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 아메바와 인간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그렇다면 아메바와 인간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베르그송은 이런 것에서부터 출발을 하는데, 아메바는 신경이 있어서 자극을 주면 아메바는 움직이는데, 이것을 '운동기계' 라고 하는데, 용어가 좀 어려운데, 다른 말로는 '지각(知覺)'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무엇을 느낀다는 것은 신경이 있다는 것인데, 이 신경은 감각을 받아서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신경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간단한 신경이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탁' 하고 튕기면, '잇(?)' 하는데, 그 정도밖에는 못한다는 것이다.

베르그송은 진화론자이기 때문에 이러한 논리를 확신하고 밀고 나가는데, 인간과 아메바가 어느 정도 복잡하게 발달되었는가를 계산해보자는 것이다. 인간은 두 종류의 신경이 있는데, 느끼는 신경과 운동하는 신경이 분화되어있는데, 즉 건드린다고 해서 모두가 다 주먹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주먹을 날리다가도, "가만히 있어봐라. 내가 때리면 진단이 몇 주가 나오지? 이런, 그만 스톱해야지" 라고 생각해서 자제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메바는 그런 것이 아니라 건드리면 반응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자제하는 요소가 있다는 말이다.

◈ 베르그송 - 정신은 없다 ??

기존 철학자는 이것을 '정신' 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베르그송과의 차이점이 무엇인고 하니, 기존의 주장은, 인간은 물질과 정신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이, 여기 정신 좀 가져와" 라고 하면, 그것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베르그송의 주장은 무엇인고 하니까, "정신은 없다" 라는 것이다.

그 당시가 이런 것이 유행하던 시대였는데, 이렇게 정신이 없으면 물질만 남게 되는데, 이렇게 물질인 신체만 남으면 심리학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철학을 하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위기를 느끼는데, 그래서 아까도 말했지만, '인문학의 위기' 라고 말이다. 이해가 좀 되지요? 에잉, 안 된다구요?

과거에는 윤리나 양심을 연구해도 밥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었는데, 그것이 하나의 파트가 되었는데, 그런데 가면 갈수록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측정기술이 발달해버리면, 정신파트가 허황되고 추상적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사람들은 '관념론' 이라고 하는데, 이 관념론이 지금 떨어져나갈 판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믿음과 소망과 사랑도 다 함께 날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 마르크스 - 종교는 학습된 하나의 이데올로기 !!

이렇게 되면 결국 마르크스의 주장이 맞게 되는데, 즉 "종교는 학습된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믿어라, 믿어라, 믿어라" 라고 해서, "믿습니다" 라고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것은 권총을 들고 협박하면 된다는 것이다.

유물론에 의하면 사람은 하나의 세포덩어리에 불과한데, 즉 인간의 고귀한 인격과 같은 것이 우선이 아니라, 인간은 얼마나 많은 물질을 생산하느냐에 따라서 인간의 가치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신이 날아가 버리는 것이 납득이 되는, 그런 시대가 된다는 것이다.

◈ 베르그 송 - 정신도 살리고, 과학도 살리고 !!

베르그송은 바로 이런 점에 대해서 탄식을 하는데, "아니, 정신을 날려보내면 인간이 아메바와 무엇이 다른가?" 라는 것이다. 그러니 아메바가 좀 발달했다는 이유 때문에, (만약 그것이 인간이라면) 그것 때문에 아메바보다 낫다고 할 수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정신을 없애버리면, 철학이고 윤리이고 도덕이고 뭐고 모두가 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회에 누가 살아남는가? 힘세고 돈 많은, 그런 강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무슨 인간의 양심이 나오고 윤리와 도덕이 필요하겠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도 살리고 과학도 살리는, 그런 양쪽을 다 살릴 수 있는 것은 베르그송, 자신의 이론 말고는 없다는 말이다.

이렇게 그 당시 관념론을 허황된 것으로 보았는데, 철학자들에게 정신이 어디에서 나왔느냐고 하면 모른다는 것이다. 인간은 정신과 물질로 되어있다고 말하면서도, 그런데 그 정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는 말이다. 그러니 과학자들이 하는 말이, 지금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이런 과학시대에 모르면서 진리라고 우기면 되겠느냐는 것이다. 잘 모르면 나가든지 말이다.

◈ 이제는 관념론에서 심리학으로 !!

그래서 그 정신의 빈자리를 무엇으로 메우려고 하는고 하니까, '심리학'으로 대체를 하겠다는 것이다. 즉 이 심리학을 조정하면 괜찮은 정신이 나온다는 말이다. 이러한 심리효과에는 심리습성, 심리훈련, 그리고 삐아제의 심리학도 있고 말이다. 삐아제의 교육학도 여기에서 나오는데, 이것이 현대교육학의 기초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즉 사람은 교육하기에 따라서 생각 정도는, 즉 정신은 얼마든지 만들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기존의 정신을 주장하는 철학자들과는 완전히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그렇게 주장하지 않았는데, 그때는 정신은 하늘에서부터 오고 육체는 땅에서 온다고 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아니라, 인간 육체에 심리적인 효과로 자극을 주게 되면, 드디어 인간도 길들일 수가 있다는 말이다.

◈ 인간도 길들이기 나름 !!

스키너 같은 경우에는, '동물행동학' 이라고 해서, 개와 원숭이에게도 말을 하면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인간도 똑같은 심리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그러한 기제(機制), 즉 동일한 심리학적 메카니즘을, 과정과 절차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인간도 다루려고 하면 다룰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산주의가 인간교육에 나섰는데, 삼층교육대도 그렇고 말이다. 즉 조져버리면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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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행동학 [動物行動學, ethology] - 동물의 본능이나 습성, 일반 행동의 특성이나 의미, 진화 등을 비교·분석하여 연구하는 생물학의 한 분야이다. 그냥 행동학이라고도 하는데, 이 행동학은 20세기 이전에는 오늘날의 생태학과 같은 뜻을 가졌는데, 20세기가 되자 일반적으로 행동의 비교연구를 뜻하게 되었다. 이런 뜻에서의 선구자는 C.O.위트먼, O.하인로드, K.로렌츠, N.틴베르겐, W.H.소프 등이다.

※ 기제 [機制] -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의 작용이나 원리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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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중에 프로이드가 그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즉 인간은 고쳐진 척 한다는 것이다. 윤리나 양심적으로 사는 척 하지만,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덩어리는 무의식이라는 것이다. 무의식은 어떤 식으로든 인간의 힘으로 고쳐질 수 없는데, 그것이 리비도, 즉 성욕은 인간의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약에 한쪽에서 누르면 다른 쪽에서 튀어나오는데, 그래서 사태가 오히려 더욱 악화된다는 말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 까발리는 것이 낫지 말이다. 점잖은 척 하는 것이 훨씬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두 가지 사건이 곧 세계1,2차 대전인데, 그것으로 인해서 인간의 무의식이 인간의 의식인 윤리와 도덕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이 폭로되었다는 것이다. 히틀러라는 미친놈에 의해서 저질러진 일이지만, 그러나 그를 따르는 놈들도 역시 미친놈들이 아니냐는 것이다. 김일성을 미쳤다고 하지만, 그를 따르는 놈들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런 것은 무의식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로이드가 나타나서 이렇게 무의식으로서 나름대로 설명하고 이야기한다고 해서, 과연 이런 정신의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전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무의식' 이라는 새로운 정신학문이 등장해서 무엇을 했는고 하니, 역시 정신이라고 하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을 추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 물질과 기계 - 과학주의의 허점을 말하다 !!

그러니 베르그송의 입장에서는, 정신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옛날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과학을 하는 사람들이 베르그송에게, "당신이 지금 정신을 설명할 수 있는가? 그것은 다 시도해봤지만 실패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심리학에게 백기를 들고 나오너라. 그러면 형님들이 잘해줄게"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베르그송이 화가 나서 하는 말이, "너희 과학주의자들은 과학이외는 이야기가 안 되는 줄 알지만, 내가 그 과학의 허점을 말하겠다" 라고 해서 나온 책이 바로 '물질과 기계' 라는 책이라는 말이다.

이 책의 집필동기만 이야기하는데도 이렇게 이야기가 긴데, 그러면 과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가? "그래, 한번 들어보자. 틀리기만 해봐라. 가만두는가 보자" 라고 하는데, 베르그송은 여기서 인간의 신체라고 하는 것, 즉 인간의 물질과 신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인간의 세포 덩어리와 인간의 신체는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아메바와 인간의 신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어떻게 다른고 하니, 아메바는 외부에서 오는 자극에 대해서 반응하고 운동만 할뿐인데, 즉 자체적인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신체는 외부에서 자극이 왔을 때, 거기에 대한 반응을 그냥 내뱉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선택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선택이라는 것은, 정보는 많은데 결과는 몇 개 몇 개만 추려서 나온다는 말이다. 그렇게 선택할 수 있는 그 역량, 그것이 어디 있는고 하니 신체가 함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라고 물으면, 그것은 바로 '기억'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 베르그송 - 순수기억(무의식)은 같지만, 의식은 다르다 !!

이 베르그송에게 정신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정신은 '기억', 혹은 '순수기억' 이라고 하고 말이다. 이런 기억들 가운데에는 물질에 해당되는 것이 있고, 물질에 해당되는 것이 있는데, 이렇게 둘로 나누어지는데, 그것은 인간의 지각(知覺)에, 즉 인간의 신체의 느낌에 포함되는 기억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운동기제에서의 기억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고 인간의 지각에 머물지 않는 기억이 있는데, 이것을 순수기억이라고 하고, 다른 말로는 '무의식'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베르그송이 말이다.

◈ 병원 잔디밭에서의 추억담 !!

지금까지 조금 어렵게 말을 했는데, 이것을 예를 들면 아마 이해가 번쩍하고 들지 싶은데, 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쉽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것이 중요하니 좀 집중을 하시고, 여러분이 만약에 병원에 입원을 했다면 참 쓸쓸하고 외롭다는 것이다. 남들은 건강한데 자기는 아프니 말이다. 그때 그 병원의 잔디밭에서 자기 신세를 한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이제 병원을 퇴원하고 나서 세월이 수 십 년이 흐르고 난 뒤에, 그 잔디밭에 다시 왔다고 하면,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그 잔디밭이 아니라는 것이다. 잔디가 새로 돋아났으니 말이다. 그때 과연 무슨 생각이 나겠는가? "아, 그때 참 몸이 너무 아파서 괴로웠지. 자살도 생각하고 말이다. 왜 나에게 그런 병이 나서, 하나님도 너무 하시지" 라고 하면서 과거를 회상하는데, 그런데 뒤에서 병원 경비원이 "어이 아저씨, 그 잔디밭에서 나와요" 라고 한다는 것이다.

분명히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과 동일한 잔디밭인데,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거기에 가도 "이 잔디가 조금 있으면 누렇게 변하겠네" 라고 하는데, 이것은 바로 단지 '나'만이 남들이 전혀 생각하지 않는, 즉 선택하지 못하는 그때 그 시절의 기억을 본인이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병원 경비원의 경우에는 그 잔디를 밟아서 성가시게 하는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 경비원에게는 '나'와 같은 과거의 그런 병에 걸린 아픔에 대한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경비원에게 한 소리 듣고 잔디밭에서 나오는데, 그런데 그때 옆에서 다른 한 아줌마가 한숨을 쉬면서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 아줌마는 자기 나름대로의 과거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아메바에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이 아메바가 과연 자기만의 기억을 선택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식물도 그렇고 말이다. 아메바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데, 운동감각밖에 없기에 말이다.

◈ 찜질방에서 같은 그림을 봐도 - 달라, 달라 !!

그런데 인간은 참으로 희한하게도, 똑같은 찜질방에 12시간은 같이 앉아서 똑같은 경험을 해도 기억하는 것이 모두가 다 다르다는 것이다. 제가 천 목사님하고 같이 찜질방에 가서 그렇게 해도 말이다. 이것을 '순수기억' 이라고 하는데, 베르그송이 말하기를, 사람이란 어떤 경험을 다같이 동일하게 하면 그 경험은 다같이 잊혀지지 않는데, 그것이 무의식 속에, 즉 순수기억 속에 모두들 들어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의식되는 것은 각자가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같은 찜질방에 가서 같은 그림을 보는데, 한 사람은 "음, 한 5만원 정도 하겠네" 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아, 내 고향에 가고싶어" 라고, 어릴 때 자기 고향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즉 그림을 보았다는 순수기억은 동일한데, 이러한 순수기억에서 지금 '이미지 기억'으로, 여기서 이미지 기억이 제일 중요한데, 이것들은 다 베르그송이 사용하는 용어들인데, 이렇게 이미지 기억으로 따로 남기는 것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사람마다 왜 다른가? 그것을 규명해야 되는데, 똑같이 보았으면 똑같이 느껴야 하는데 말이다. 찜질방에 같이 간 사람이 신체적 조건도 같다고 하면 말이다. 키 170에 60키로로 말이다. 지금 유물론자들은 문제가 그것인데, 그들은 똑같은 신체를 가지고 있으면 똑같은 정신이 나와야 된다는 것이다. (과거에 TV에서 많이 보았는데,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라고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베르그송은 "웃기고 있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심리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고민이 무엇인고 하니, 동일한 자극을 주면 동일한 결과가 나와야만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베르그송은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자기 철학을 아무 미련도 없이 접고 심리학을 새로 공부하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같이 잔디를 밟고 있어도, 동일한 사우나에서 동일한 그림을 보아도 왜 서로 같지 아니하냐는 것이다. 전국에 있는 심리학자들과 과학자들을 다 모아놓고 왜 다른지 설명을 해달라고 해도 설명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심리학자들은 정신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존재한다" 라는 것만 인정을 한다는 것이다.

◈ 베르그송 - 기억은 뇌에 예속이 되지 않는다 !!

그래서 베르그송이 전국의 심리학자들에게 질문하기를, "왜 동일한 경험을 해도 기억하는 것은 모두 다릅니까? 주저하지 말고 좀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라고 말이다. 그러면 그쪽에서 하는 말이, "인간에게는 뇌가 있는데, 그것이 경험을 하게 되면 뇌에 쌓이게 되는데, 이것을 '편재' 라고 하는데, 이쪽에 쌓이면 이쪽 것이 나오고 저쪽에 쌓이면 저쪽 것이 나온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베르그송이 웃으면서 하는 말이, "그러면 교통사고가 나서 뇌를 다치면 모두가 기억이 나지 않겠네"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들은 정신은 인정하지 않고 뇌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물론 기억이 나지 않지" 라고 한다면, 베르그송은 "에라이, 이 못난 인간들아. 어디서 감히 그런 못된 거짓말을 시부리노" 라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뇌를 다쳐서 상했는데도, 그런데 기억은 남아있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데, 그것은 바로 기억은 뇌에 예속이 되지 않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오히려 기억이 뇌를 이용할 뿐이지 결코 예속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놀랍게도 말이다. 그러니 이런 현상들이 과학적으로 규명이 되지 않는데, 그래서 지금도 과학적 정신분석(?)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기억이란 것이 유령과도 같이 말이다.

◈ 과학자들 - 망각(妄覺)이 미워 !!

여기서 '망각(妄覺)' 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것을 쉽게 설명하면, 과학적으로 망각이 되면 뇌가 그렇게 그 부분이 죽는다는 것인데, 그래서 일단 그렇게 망각이 되면 그 부분만큼은 계속해서 망각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데 어떤 계기가 발생되면 이 망각된 것이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그 잊혀진 기억이 말이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과학적으로 이것이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데, 이 망각이라는 것은 단순히 잊혀진 수준이 아니라, 그 기능이 죽었다는 것이다. 일단 이렇게 죽었으니, 그것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니, 죽은 뇌가 어떻게 다시 살아나느냐는 말이다. (뇌를 다쳐서 일부분이 죽게 되면, 그 죽은 부분만큼은 다시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뇌는 다시 회복이 되어도 말이다.)

그런데 만약 기억이 뇌를 이용한다면, 뇌가 그 기능만이 죽은 것이지, 그것이 결코 기억은 죽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뇌가 다시 원상회복이 되면 붕 떠있던 기억이 다시 침투해서 망각되었던 것이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그 대표작인 것이 '기절'인데, 한 대 얻어맞고 뇌 기능이 정지되는 현상인데, 이렇게 뇌의 기능이 정지되면 있는 기억도 날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마치 컴퓨터가 고장이 나면 저장된 것이 날아가듯이 말이다. (아니, 컴퓨터가 그 정도라니...)

◈ 정보보다 기계가 우선 !!

이것이 바로 오늘날 과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의 이론인데, 즉 정보가 우선이 아니라 컴퓨터라는 기계가 먼저라는 것이다. 정보는 그 기계가 만들어낸 결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보아서 말이다. 예를 들어서, 여기에 휴대폰이 있는데, 이것을 발로 밟아서 뭉개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안에 들어있는 정보가 모두 날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심지어 TV도 고장이 나면, 그 안에 입력된 채널이 다 지워져서 다시 입력을 해야되듯이 말이다.

최복기 간사님은 여기에 동의가 안 되는 것 같은데, 아닌가? 기계가 우선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과학자들은 그렇게 설명하지 않으면 관념론으로 바뀔까 싶어서 전전긍긍하는데, 그래서 인간의 뇌를 다루어서 인간들이 원하는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즉 나쁜 기억은 제거하고 좋은 기억만 남기지 않으면, 과학들에게 그렇게 돈을 대주고 연구를 시킨다든지, 비싼 값을 치르고 치료를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 의사 선생님, 어떻게 하면 나쁜 기억을 지울 수 있습니까?
* 예, 이렇게 저렇게 하시면 됩니다.
* 의사 선생님, 저의 도박중독을 좀 치료해주세요.
* 예, 이렇게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 의사 선생님, 저의 알콜중독을 좀 치료해주세요.
* 예, 저렇게 저렇게 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해야 과학자이고 의사이지,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병원개업은 왜 했느냐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결과물을 내어놓아야 한다는 말이다. 약을 한 알 먹으니 도박증세도 사라지고 술도 끊어야만 과학이라는 것이다. DNA구조를 바꾸든지 해서 말이다.

황우석 교수가 주장한 것이 무엇이었는가? 기계가 우선이고 정보는 나중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칩만 바꾸어버리면 새로운 정보가 나오는데, 골치 아프게 철학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로는 인간이 그렇지 않더라는 것이다.

이제 베르그송의 글을 보겠는데, 앞의 것은 생략하고 교재 2페이지부터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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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정념적(감정적) 감각이란 신체의 일부가 직면한 위험을 중추에 알리는 행동에 대한 권유이며, 또 다른 의미로는 운동 기능을 상실한 신체의 부분들에 아직도 남아 있는, 운동을 향한 무익한 노력이다. 이처럼 유기체에다 주변의 변양들을 전달하는 동일한 인상이 유기체로 하여금 그것들에 적응하도록 결정하거나 준비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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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말하는 감정적 감각은, 운동이 아니라 신체에 복속된 것으로서, 운동을 향한 무익한 노력이라는 것이다. 즉 쓸데없는 노력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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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 척추동물들에 있어서, 특히 척수에 자리 잡고 있는 반사운동신경작용과 뇌의 개입을 요구하는 의지적 활동 사이의 구별은 뇌 활동의 특별함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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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바가 아닌 고등척수동물에서는, 반사운동신경작용과 의지적 활동이 서로 구별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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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활동에서 분명히 선택 기능이 작동한다. 자극대로 다 반응하는 것이 선별적으로 반응을 나타낸다. 뇌는 일종의 중앙전화국과 같아서 연락을 보내거나 연락을 기다리는 기능을 한다. 즉 뇌는 받아들인 운동과 관련해서는 분석기관이고, 행사된 운동과의 관계에서는 선택 기관이다. 그러나 뇌는 그 어떤 경우에도 기억이나 이미지를 축적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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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뇌가 이렇게 축적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심리학과의 차이점인데, 즉 베르그송은 이렇게 축적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과학자들의 주장은 뇌가 기억을 축적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축적하지 않는가? 그것은 뇌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사실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닌데, 이 베르그송이 설명하는 내용도 물론 어렵지만, 그런데 제가 지금 이 베르그송 자체를 설명하려고 하니까 더욱 더 어렵다는 것이다. - 매우 디프컬트 !

◈ 베르그송 - 기계와 신체는 다르다 !!

베르그송에 의하면, 자기가 기계라고 했을 때, 이렇게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다가왔을 때에, 기계가 내뱉고 있는 여러 가지, 즉 기억이라든지 하는 것은, 인간이 기계라면 그 기계 속에 있는 정보가 기억으로 나온다고 보는 것이 심리학이고 과학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베르그송은 그것이 아니라, 기계는 뭔가 외부에서 기억이 왔을 때 그것에 반응해서 어떤 것은 추리고, 즉 없앨 것은 없애고 어떤 것은 나타내는 것뿐이지, 자기가 모든 기억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과학자들은, "그렇다면 그 기계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라고 하면, 베르그송은 "그것이 신체에 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또 과학자들은 "그러니 신체가 곧 기계가 아닌가?" 라고 하면, 그러나 베르그송은 "기계와 신체는 다르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인간신체의 특징은 무엇인고 하니, 무엇인가 창조한다는 것인데, 기계적으로 받은 것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뭔가 기억에 의해서 창조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참으로 기발한 생각인데, 그러니 베르그송에게 있어서 외부에 있는 자연이 더 중요한데, 즉 자연과 교류가 된다는 것이다. 자연이 왔을 때, 인간의 뇌는 이것을 자연으로 보지 않고, "아하, 또 기억이 왔구먼" 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우리 신체가 말이다. "아하, 이것은 전에 내가 몰랐는데 새롭게 기억이 나는구먼" 라고 해서, 그래서 반응하는 것뿐이지, "원래 그 기억은 내 속에 있었던 거야" 라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 베르그송 - 대자연이 다양하듯, 인간도 다양 !!

그러니 베르그송은 제발 인간을 기계처럼 다루지를 말고, 그 사람의 고유한 창조성을 인정해주자는 말이다. 그러니 "너는 저 사람과 똑같이 되어야 돼" 라고, "저 사람은 저렇게 하는데, 왜 너는 저렇게 하지 못하지" 라고 요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사람은 고유의 창조성(?) 있고, 그것을 '대자연의 지속' 이라고 하는데, 즉 대자연의 산물이 각각 개별자인데, 어떻게 "너는 나처럼 되고, 나는 너처럼 되자" 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왜 대자연의 변화를 무시하느냐는 말이다.

이렇게 대자연은 하나의 괴물과 같고, 커다란 공룡 같아서 우리가 거기에 복속이 되어있는 입장인데, 어떻게 심리학자는 "나는 최고이다" 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대자연의 교류를 모두 끊어버리고 말이다. "나는 누구일까?" 라고 해서,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기계를 갖다대고 해서 "아, 나는 이런 인간이구나" 라고, 자기를 알았다고 하지만, 그러나 다음에 또 다른 사건을 만나면 어떻게 변할지 누가 아느냐는 것이다. 이전에는 "나는 이런 인간이다" 라고 주장하다가, 새로운 사건을 만나게 되면, "아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어" 라고, 또 다시 변명하고 변절할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베르그송에 의하면 말이다.

◈ 성경말씀을 지켜야 !! - 어, 말씀을 볼 때마다 다른데 ??

제가 크로스빌리지에도 글을 올렸지만, 누군가가 질문하기를, 하나님께서 명령을 주셨으니까 새로운 피조물이라면 그 명령에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부산에 있는 분인데,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했으니, 그러니까 그 성경말씀에 따라서 바르게 사는 것이 맞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뭐라고 답변했는고 하니, 스물 다섯에 읽어본 그 성경말씀과 나이 마흔에 읽은 그 본문말씀이, 그 사람이 동일한 사람이라고 하면 그 말씀에 대한 해석도 모두 똑같아야만 하는데,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다르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환갑잔치에 가면 또 다른 소리를 할 것이 분명하다는 말이다. - 에헤 디이여어 !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상아(?)씨는 이것을 알고서, "아하, 내가 나를 규정할 때는 날마다 달라지는 것을 알아야 되는구나" 라고 했는데, 온전한 것은 주님이 가지고 계시는데, 자꾸만 자기가 온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온전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주님이 보시기에 전혀 온전치 못한 죄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최고이지 자꾸만 자기 집착에 빠지면 안 된다는 말이다.

◈ 베르그송 - 인간보다 대자연이 우선 !!

지금 이 베르그송 비록 복음은 모르지만 무엇을 아는고 하니, 대자연이 스스로 움직이면서, 즉 진화하면서 그 안에 보잘것없는 우리 인간 개인을 상대로 해서, 대자연은 인간보다도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도구로서 우리 인간을 사용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자연이 우선이지 인간이 우선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자기밖에 모르는 주체사상을 이미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서 대자연을 지배하고 한 손에 가지고 놀려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주제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너무 교만하고 오만하다는 것이다. 베르그송에 의하면 말이다.

베르그송이 이런 이야기를 하니 후배 철학자들이 만세를 부른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은 아무리 분석하고 측정을 해도, 딱딱 끊어서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은 또 저기까지 하고, 아무리 그렇게 해도 부분만 이야기하지 어떻게 전체를 아느냐는 것이다. 지금까지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어왔으며, 전 세계 우주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아느냐는 것이다.

그러면 과학자들은 조금씩 조금씩 알아 가면 된다고 하는데, 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알아서, 그것을 합쳐보아도 자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자기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기껏해야 자기가 아는 우주밖에 없는데, 그것이 어떻게 대자연을 보는 안목이냐는 것이다.

◈ 내 밥그릇 돌리도 !!

사실 이것은 따지고 보면 밥그릇 싸움인데, "철학과를 폐지할 것인가, 말 것인가?" 라고 하는 말이다. 이렇게 과학을 우습게 여기지 않으면 철학자라고 할 수가 없는데, 과학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과학을 최고라고 해서는 철학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면 당장 과학자들이 불러서 하는 말이, "어이, 당신이 신고 있는 신발은 누가 만들었지? 입고 있는 옷은? 그 숨쉬는 방한복은 누가 발명한 것이지?"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 과학자들이 아니라면 석유에서 섬유가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런 것이 유기화학의 덕분인데, 그런데 그런 옷을 입고 다니면서 어떻게 과학을 함부로 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학이나, 인류학이나, 고고학이나, 이런 모든 것들이 어디에서 나와야 하는고 하니, 모두가 과학에서 나와야 당연한데, 그런데 왜 철학자들은 그러한 엄연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이것이 과학자들의 주장이고,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철학자들은, "에라이,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들아" 라고 반격을 한다는 것이다.

진도를 좀더 나가보면, 여기서 계속해서 교재 2페이지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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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들이 지각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각이 대상들 안에 있다. 그때 지각은 어떤 선택에게 불과하다. 지각은 아무 것도 신체 안에서 창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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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대상은 대자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칸트의 경우에는 아무리 대상이 있어도 지각은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했는데, 이것을 베르그송이 거부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대자연의 지속 속의 한 일부인데, 일부가 어떻게 전체를 아느냐고 건방을 떨 수 있느냐는 말이다.

강의를 막 시작하려고 할 때 조 장로님이 베르그송의 '생(生)철학'을 언급했는데, 베르그송에 의하면 '생명' 이란 것은 인간보다 더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인간이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는데, 그러나 이제는 생명에 의해서 인간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에게서 생명을 규명할 것이 아니라, 대자연에서 인간을 규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과학과 철학의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밥그릇 싸움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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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지각이 하는 역할이란 이미지들 전체로부터 신체가 어떤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는 것들을 모두 제거하고, 그 자체로 보존된 각각의 이미지로부터 내가 나의 신체라고 부르는 이미지의 욕구들과 무관한 모든 것을 제거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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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마담, 커피 한 잔 !!

다른 말로 하면 '선택' 인데, "이것은 제거하자" 라고 말이다. 예를 들어 똑같이 흘러간 팝송을 들어도, 어느 다방에서 허름한 한복을 입은 마담이 타주는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들어야 하는데, 물론 옆에 데리고 간 아들놈은 담배냄새가 싫다고 하면서 나가자고 졸라도,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분위기에서 음악을 들어야,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젊은 사람은 그런 축적된 순수기억이 없기 때문에, 구닥다리 한복을 입은 다방마담이고 뭐고 보기 싫고 제거하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거기에서 뽑아내고 싶은 것들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왜 뽑아내는가? 그것은 "너의 신체와 나의 신체가 다르다" 라는 것이다. 그러면 왜 아버지와 아들의 신체가 다른가? 그것은 아버지는 대우주가 만든 지속이 공들여서 만든 신체이고, 이 아들은 신출내기(?) 신체라는 것이다. 이해가 되나요?

◈ 이봐 닥터 김, 이제 퇴근하나?

예를 들어서,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 물론 나이를 참고는 하지만, 그 사람의 실제나이보다는 그 사람 몸 속의 세포가 어떻게 제대로 움직이는지를, 즉 신체의 기능만을 중점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진단이 나오면, 적절한 약물을 투입해서, 그 신체의 세포기능이 제대로 기능을 하도록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 의사가 그렇게 진료를 마치고 퇴근을 하는데, 이제 나이가 갓 서른이 넘은 의사가 마흔이 넘은 의사에게 하는 말이, "어이, 닥터 김" 이라고 하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당연히 나쁘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사실은 기분이 나빠하면 안 되는데, 왜냐하면 같은 의사이니 말이다.

그런데 만약에 베르그송이 그 마흔이 넘은 의사를 불러서 하는 말이, "당신은 기분이 왜 그리 나쁜가? 그 이유를 설명해봐라" 라고 한다면, 사상실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의사는 하는 말이, "어디, 쫄다구가 선배에게 말을 놓고 말이다" 라고 하겠지만, 그러나 우리 몸 속 어느 세포에 쫄다구가 있고 선배가 들어 있느냐는 것이다. 베르그송에 의하면 말이다.

그것은 바로, 이 고참의사의 대자연의 세월이 주는 기억들 속에 무엇이 있는고 하니, "나는 선배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라는 것이 들어있는데, 그런데 서른 살이 넘은 의사는 모른다는 것이다. 신참이기 때문에 말이다. 오히려 자기는 현대의학이 주는 최신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폼을 잡고 싶지, 선배를 잘 섬기고 하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사실 신참 의사는 기분 나쁘게 하려고 부른 것이 아닌데, 그런데 듣는 고참 의사는 "말을 그 따위로 밖에 못하나" 라고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의사들의 세계가, 특히 레지던트 시절이 엄청 규율이 엄격한데, 물론 사람의 생명을 다루기에 그렇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선배들이 아직 군대에 갔다오지 않아서 어설프게 군대 흉내를 낸다고 더 군기가 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배운 의학기술 속에는 군기를 잡으라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물론 없지만, 그래도 기술은 기술대로 배우고 신체는 과학기술이 아닌, 뭔가 보이지 않는 지속성, 즉 세월이 주는 압박, 권위의식 등이 지배할 때, 그렇다면 이 과학기술만으로 인간을 분석할 수 있는가? 아니라면 세월의 압박 등도 고려해서 살펴야 하는가? 어느 것이 맞는가? 그것은 과학적으로 증명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증명이 된다고 우기니, 얼마나 베르그송이 화를 내는지 말이다.

지금까지는 제가 든 예이고, 베르그송은 무슨 예를 들었는지 교재 3페이지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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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같은 시를 마음속으로 여러 번 반복하면서 매번 조금씩 진보를 이루며 마침내 나의 기억 속에 그 전체가 완전히 조직화되었을 때 학습이 성사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습관적 기억이다. 그러나 내가 시를 읽을 때마다 나타나는 늬앙스는 반복할 때마다 고유의 개별성을 따로 띠게 된다. 그리고 그 의식은 기억된다. 이것이 이미지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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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국화 옆에서'의 깊은 뜻을 아는가?

이렇게 마음속으로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을 학습이라고 하는데, 이 학습기억은 신체에 남는데, 예를 들어서,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라는 유명한 시가 있는데,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라고 하는데, 이것을 학생들이 모두 외운다는 것이다. 못 외우면 손바닥을 맞으니 말이다. 어떻게 외우는가? 반복함으로 외운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시의 참뜻을 알려고 하면 나이가 좀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중년이 되어서 시 맛을 느끼는 것을 '이미지 기억' 이라고 하고, 그리고 자기 뇌 속에 남는 것을 가지고 습관적 기억이라고, 즉 '습성기억'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별로 남지도 않지만 말이다.

그래서 베르그송이 하는 말이, 아이들을 반복해서 기억을 시키면, 마치 개들을 훈련시키듯이 말이다. 물론 이런 것을 베르그송도 어느 정도 인정을 하는데, 나쁜 짓을 하지 말라고 아무리 말을 해서는 안 되고, 그럴 때는 매로 때리면 되는데, 매를 맞으면 손바닥이 아프다고 하는 인간의 운동기능이 가지고 있는 것인데, 그것이 기억이 되는데, 그래서 아이가 나쁜 짓을 하지 않게 되는데, 엄마에게 맞지 않으려고 말이다.

◈ 정신 - 어떤 사건을 맞이하면 비로소 기억이 !!

베르그송이 이러한 것을 인정하기는 하는데, 어머니가 그렇게 하는 이유와 깊은 의미를 알기까지는, 즉 어머니의 그런 사랑을 알기까지는 세월이 흘러가야 되는데, 물론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고, 어떤 사건이 닥쳤을 때, 즉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을 때, 그렇게 되면 "아하, 그때 어머니께서 지갑에서 돈을 훔치지 말라고 했는데" 라고 하면서 슬피 우는데, 즉 이제야 그것이 기억이 난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을 그 사람만의 '정신'으로 보는데, 이것이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 이라는 책의 핵심이라는 말이다. 왜 그 사람에게만 기억이 나야 하는가? 그것이 과학적으로는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그것은 두뇌 속에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인데, 두뇌 속에 똑같은 것이 들어있는 것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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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에 대한 기억은 신체의 운동능력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미지 기억을 결코 반복할 수가 없는 '내 삶의 한 순간의 사건'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뇌 속에 보존되지 않으며, 단지 현실적 상황의 호출에 의해 습관 - 기억 체제에 삽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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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그송 - 이미지 기억은 결코 반복할 수 없다 !!

여기에서 베르그송은 이미지 기억은 결코 반복할 수 없다고 하는데, 이 말이 얼마나 기똥찬지 말이다. 찬송가 405장이 무엇인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인데, 그것을 10년 전에 동산기도원에서 부르면서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동일하게 반복이 되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그렇게 10년 전에 은혜 받은 것을 두고 '정념', 즉 '이모션' 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이것이 두뇌에 박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두뇌 속에 들어있다면 똑같은 것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데 때려죽여도 그것이 반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산기도원에 아무리 가서 405장을 불러도 동일한 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그 옆에 있는 404장이 더 은혜가 된다는 것이다. -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

이것을 베르그송은 말하기를, 어떤 이미지 기억이라는 것은 신체가 자동적으로, 즉 기계적으로 내뱉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지는 특수한 사건에 부딪칠 때, 그것도 부딪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부딪칠 때 자기도 스스로 뭔가 알 수 없는 다른 창조의 능력에 의해서, 그것을 '대자연의 지속' 이라고 하는데, 성경적으로 말하면 은혜이고 말이다.

◈ 정신이 번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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