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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사사기 3: 7-11 / 옷니엘 사사성경사사기

사사기 3: 7-11 / 옷니엘 사사

이름 : 우리교회(IP:125.190.2.61)

옷니엘 사사

2007년 12월 23일

본문 말씀: 사사기 3:7-11

(삿 3: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삿 3: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을 섬겼더니』
(삿 3: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삿 3:10)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 손에 붙이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삿 3:11) 『그 땅이 태평한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 모릅니다. 그 사람이 아마 이럴 것이라고 짐작은 하지만 그 예상은 항상 빗나가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서도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모릅니다. 오늘 본문은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인간 사회를 알기 위해서 사람들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여길 것입니다.

즉 사람만 알고 사회도 알게 되리라 여깁니다. 하지만 인간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입장에서 사회에 대해서도 역시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과연 제대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이 인간 세상은 뭐가 뭔지도 모르는채 그렇게들 살아가고 있습니다.

즉 무엇을 안다고 해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자기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대해서 전혀 아는게 없는 상황으로 진행되는 것이 진정 이 세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개인을 놓고 볼 때에, 그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 제대로 안다고 장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나에 대해서 내가 모르면 누가 안단 말인가”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지금까지 자기가 겪었던 경험과 체험들의 뭉치 속에서 정리 정돈한 것으로 자기를 대신하리라고 여기지만 막상 낯선 환경을 접하고, 낯선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동안 자신이 정립해온 자아상은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예를 들면 이러합니다. “나는 윤리적으로 이 선만큼은 아직 넘지 않았다”고 장담했다가 막상 그 선을 넘을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면 급수정에 들어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딴에 자기 수준에 만족하며 산다고 스스로 위로하지만 어떤 타인을 만나고부터는 그 타인이 갖고 있고 차고 있고 즐기고 있는 것이 유혹으로 작용하여 지금까지의 자족의 마음 상태는 여지없이 허물어지게 됩니다.

전에 만난 그 사람의 것을 언젠가를 자신도 갖고 싶어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지경까지 가게 됩니다. 이처럼 ‘나’라고 장담했던 그 틀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마는 것입니다. 내가 나에게 붙잡히지 않고 자꾸만 미끌어지고 달아납니다. 어디고 튈지 모르고 어떤 식으로 바뀔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사정은 오늘날 뿐만아니라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시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작정 이유없이 살아가는 생활의 연속이요 반복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 생활에 대해서 가별게 평가를 내리시는 분이 따로 계십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우리 사정과 나라는 인간조차 어떤 존재인지를 모르고 있는 그 순간에서도 여전히 우리를 주목하시고 평가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악한 자’라고 하십니다. 이런 평가에 대해서 우리가 반발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반발을 할만큼 우리 쪽에서 자신 있게 내세울 근거라는 것이 아예 없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우리에 대해서, 우리 사회와 이웃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뭔가 아는게 있다면 자신있게 반발하겠지만 그런 아무런 지식도 구비하지 못한 처지에서 하나님의 평가를 거부할 자격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평가를 삭제하지 말고 순순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만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악하다면 악한 줄로 알면 됩니다. 문제가 아주 쉽습니다. 하나님의 평가하심과 조치하심을 그대로 따라 가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끝에 뭐가 나오는가? ‘구원자 보내주심’이라는 하나님의 조치와 만나게 됩니다. 이것이 악한 죄인이 받게 될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만약에 사전에 ‘인간은 악함’이라는 평가를 거부한다면 무엇까지 거부하는 바가 되느냐 하면 그 악함의 사슬과 연결되어 있는 ‘구원자 보내심’ 마저 거부하는 셈이 됩니다. 악하다는 평가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주어야 ‘구원자 보내심’의 혜택도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왜 인간에 대해서 이토록 극단적인 평가 속에 몰아넣어야 하느냐 하면, 구원자 오심이 결코 인간과 하나님과의 사전 협의나 상의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악함으로 인해 절망에 빠져야 당연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절망이란, 스스로 일어설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궁지로 몰렸음을 뜻합니다. 과거의 써먹었던 온갖 종교적 방식이나 인간적인 태도 변화를 다 동원해서 그것마저 전혀 쓸모없는 순간이 바로 절망의 순간입니다.

이 절망의 순간이 되어야만 비로소 제대로 된 ‘부르짖음’이 형성됩니다. 부르짖음이란 연습이나 준비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전에 미리 예상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사전에 준비된 부르짖음이라면 그건 하나님에 대한 모욕입니다. 연기요 연출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로부터 원하는 반응은 깨끗한 절망입니다. 순수한 부르짖음입니다.

즉 부르짖음의 대가를 뭔가를 기대하는 것처럼 포기한 그런 상태에서의 부르짖음입니다. 부르짖음 자체에서 모든 절망의 절망됨을 속임없이 노출당하고 폭로당하는 사태를 말합니다. 아직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하나님께서 부르짖는 것은 하나님을 속여보겠다는 의도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사사로 등장한 옷니엘은 갈렙의 가족 중 한 사람입니다. 그의 조카입니다. 갈렙은 참으로 특이한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이들이 약속의 땅을 정탐하고 난 뒤에 당연히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홀로 절망을 긍정적으로 본 사람입니다. 즉 인간의 힘으로 안되고 인간들의 어떤 수완으로도 불가능한 상황 앞에 자신들이 놓이게 된 것을 당연한 현실로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그 갈렙은 그 절망적 현실이야말로 하나님의 ‘약속 실현’이라는 유일한 실제 바탕이 된다고 본 것입니다. 밤이 어두울수록 별 빛은 더욱 초롱초롱한 것처럼 절망의 늪이 깊으면 깊을수록 하나님의 약속 발휘의 대담성과 기적성은 더욱더 가치있게 빛나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속아 넘어가는 법도 없을뿐더러 자신의 공로와 영광을 사람들로 인해 훼손되는 법도 없습니다. 100% 순수하게 하나님께 영광이 되려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100% 절망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구원 세트에서 구원자 보내심의 의미가 우리에게 진리로 다가오고 참된 현실도 이해되는 겁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모든 일에 우리 인간이 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교만인지를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사사기-2007/11강-삿3장8-11(옷니엘사사)-jdg071223.hwp

관리자(IP:220.♡.176.169)

09-09-29 20:18

11강-삿3장8-11(옷니엘사사)-jdg071223

옷니엘 사사

2007년 12월 23일

본문 말씀: 사사기 3:7-11

(삿 3: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삿 3: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을 섬겼더니』
(삿 3: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삿 3:10)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 손에 붙이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삿 3:11) 『그 땅이 태평한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 모릅니다. 그 사람이 아마 이럴 것이라고 짐작은 하지만 그 예상은 항상 빗나가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서도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모릅니다. 오늘 본문은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인간 사회를 알기 위해서 사람들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여길 것입니다.

즉 사람만 알고 사회도 알게 되리라 여깁니다. 하지만 인간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입장에서 사회에 대해서도 역시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과연 제대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이 인간 세상은 뭐가 뭔지도 모르는채 그렇게들 살아가고 있습니다.

즉 무엇을 안다고 해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자기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대해서 전혀 아는게 없는 상황으로 진행되는 것이 진정 이 세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개인을 놓고 볼 때에, 그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 제대로 안다고 장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나에 대해서 내가 모르면 누가 안단 말인가”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지금까지 자기가 겪었던 경험과 체험들의 뭉치 속에서 정리 정돈한 것으로 자기를 대신하리라고 여기지만 막상 낯선 환경을 접하고, 낯선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동안 자신이 정립해온 자아상은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예를 들면 이러합니다. “나는 윤리적으로 이 선만큼은 아직 넘지 않았다”고 장담했다가 막상 그 선을 넘을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면 급수정에 들어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딴에 자기 수준에 만족하며 산다고 스스로 위로하지만 어떤 타인을 만나고부터는 그 타인이 갖고 있고 차고 있고 즐기고 있는 것이 유혹으로 작용하여 지금까지의 자족의 마음 상태는 여지없이 허물어지게 됩니다.

전에 만난 그 사람의 것을 언젠가를 자신도 갖고 싶어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지경까지 가게 됩니다. 이처럼 ‘나’라고 장담했던 그 틀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마는 것입니다. 내가 나에게 붙잡히지 않고 자꾸만 미끌어지고 달아납니다. 어디고 튈지 모르고 어떤 식으로 바뀔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사정은 오늘날 뿐만아니라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시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작정 이유없이 살아가는 생활의 연속이요 반복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 생활에 대해서 가별게 평가를 내리시는 분이 따로 계십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우리 사정과 나라는 인간조차 어떤 존재인지를 모르고 있는 그 순간에서도 여전히 우리를 주목하시고 평가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악한 자’라고 하십니다. 이런 평가에 대해서 우리가 반발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반발을 할만큼 우리 쪽에서 자신 있게 내세울 근거라는 것이 아예 없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우리에 대해서, 우리 사회와 이웃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뭔가 아는게 있다면 자신있게 반발하겠지만 그런 아무런 지식도 구비하지 못한 처지에서 하나님의 평가를 거부할 자격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평가를 삭제하지 말고 순순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만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악하다면 악한 줄로 알면 됩니다. 문제가 아주 쉽습니다. 하나님의 평가하심과 조치하심을 그대로 따라 가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끝에 뭐가 나오는가? ‘구원자 보내주심’이라는 하나님의 조치와 만나게 됩니다. 이것이 악한 죄인이 받게 될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만약에 사전에 ‘인간은 악함’이라는 평가를 거부한다면 무엇까지 거부하는 바가 되느냐 하면 그 악함의 사슬과 연결되어 있는 ‘구원자 보내심’ 마저 거부하는 셈이 됩니다. 악하다는 평가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주어야 ‘구원자 보내심’의 혜택도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왜 인간에 대해서 이토록 극단적인 평가 속에 몰아넣어야 하느냐 하면, 구원자 오심이 결코 인간과 하나님과의 사전 협의나 상의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악함으로 인해 절망에 빠져야 당연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절망이란, 스스로 일어설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궁지로 몰렸음을 뜻합니다. 과거의 써먹었던 온갖 종교적 방식이나 인간적인 태도 변화를 다 동원해서 그것마저 전혀 쓸모없는 순간이 바로 절망의 순간입니다.

이 절망의 순간이 되어야만 비로소 제대로 된 ‘부르짖음’이 형성됩니다. 부르짖음이란 연습이나 준비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전에 미리 예상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사전에 준비된 부르짖음이라면 그건 하나님에 대한 모욕입니다. 연기요 연출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로부터 원하는 반응은 깨끗한 절망입니다. 순수한 부르짖음입니다.

즉 부르짖음의 대가를 뭔가를 기대하는 것처럼 포기한 그런 상태에서의 부르짖음입니다. 부르짖음 자체에서 모든 절망의 절망됨을 속임없이 노출당하고 폭로당하는 사태를 말합니다. 아직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하나님께서 부르짖는 것은 하나님을 속여보겠다는 의도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사사로 등장한 옷니엘은 갈렙의 가족 중 한 사람입니다. 그의 조카입니다. 갈렙은 참으로 특이한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이들이 약속의 땅을 정탐하고 난 뒤에 당연히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홀로 절망을 긍정적으로 본 사람입니다. 즉 인간의 힘으로 안되고 인간들의 어떤 수완으로도 불가능한 상황 앞에 자신들이 놓이게 된 것을 당연한 현실로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그 갈렙은 그 절망적 현실이야말로 하나님의 ‘약속 실현’이라는 유일한 실제 바탕이 된다고 본 것입니다. 밤이 어두울수록 별 빛은 더욱 초롱초롱한 것처럼 절망의 늪이 깊으면 깊을수록 하나님의 약속 발휘의 대담성과 기적성은 더욱더 가치있게 빛나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속아 넘어가는 법도 없을뿐더러 자신의 공로와 영광을 사람들로 인해 훼손되는 법도 없습니다. 100% 순수하게 하나님께 영광이 되려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100% 절망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구원 세트에서 구원자 보내심의 의미가 우리에게 진리로 다가오고 참된 현실도 이해되는 겁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모든 일에 우리 인간이 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교만인지를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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