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2:11-15 / 여호와를 버리고
사사기 2:11-15 / 여호와를 버리고
이름 : 우리교회(IP:125.190.2.61)
여호와를 버리고
2007년 12월 2일
본문 말씀: 사사기 2:11-15
(삿 2:11)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삿 2:12)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 곧 그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아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삿 2:13)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삿 2:1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붙여 그들로 노략을 당케 하시며 또 사방 모든 대적의 손에 파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치 못하였으며』
(삿 2:15)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매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인간들은 이유도 모르는채, 영문도 모르는채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신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그렇게 살아갈 뿐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은 그냥 성경에서 말하는 신 그 분과 같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명확하게 구분합니다.
참 하나님의 등장은 택한 백성들이 죄를 지었을 때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도 역시 평범한 인간일 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기 편한대로 믿고 편한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이들이 믿는 신이 참된 신이냐 아니냐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라 그들을 떠나지 않고 계시는 하나님의 관심사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스스로 알지 못하는 자신들의 위치를 알려줍니다. 무심코 아무런 생각없이 자기 삶에 열중하면서 생각하는 신은 참된 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우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들이 자신의 신이 우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경우는, 자신이 하는 일로 인하여 갈수록 살기가 빡빡해질 때입니다.
그럴 때나 인간은 자신이 살아가는 전반적인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따라서 인간들의 이러한 평소 생활은 정해진 틀과 순서에 의해 짜여지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백성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그 틀과 순서를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1. 악을 행한다.
2. 여호와를 잊어버린다
3. 다른 신을 섬긴다
4.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
5. 적들이 달려들게 된다
6.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7. 하나님께서 나서서 구원하신다
이 틀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나서시는 시점은 인간의 죄악과 교만 속에서 인간 스스로 도저히 헤어날 수 있는 처지가 아님을 명확히 해졌을 때입니다. 즉 오늘 말씀은 인간 스스로 힘으로 해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애초부터 인간에게는 자신의 구원문제에서 배제되어 있는 형편인 것을 알아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서시는 경우는 하나님과 인간이 좋은 관계를 이룰 때가 아닌 것입니다. 참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로 인해 고난받는 방식으로 등장하십니다.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등장을 모르고 그저 자기 편한대로 안일하게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자기 몸이 자연스럽게 끌리는 곳에서 신을 찾고 구합니다.
몸이 불편하면 신을 가까이 하려고 하고,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으면 곧장 하나님을 잊어버려도 무방한 그런 하나님을 참 신으로 섬기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알신과 아스다롯 신도 그런 종류의 신입니다. 사람들이 편하게 생각하면 당연히 연상되는 ‘좋으신 신’이 곧 바알이요 아스다롯 신입니다.
자신의 몸의 안일과 관련된 신은 ‘이유 있는 신’입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인간들이 알고자 해도 모르게 되는 있는 신입니다. ‘이유 없이 일하시는 신’입니다. 구약 욥기에 보면, 욥은 이유도 모르고 영문도 모르는채 심한 고난 속에 지내게 됩니다. 상당한 억울한 느낌을 가졌습니다.
이것처럼 인간의 몸이 자연스럽게 요청하는 그런 신과는 전혀 다른, 예상 못하는 식으로 다가오는 신이 바로 참 하나님이십니다. 평소에는 당연하게 이런 신을 거절하고 배척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몸의 편함과 이익과 전혀 무관한 신이기 때문에 소용없는 신이라고 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자기 백성들이 난데없이 자신에게 고난이 찾아들면 그제사 자신이 생각한 현실말고 다른 현실이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우리들의 머리 위를 장악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참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사정을 봐주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계획한 바가 있는 그 약속을 성취해나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3:15에 보면, 하나님의 약속이 나옵니다. 그 약속은 천지가 개벽하는 일이 있더라도 변동없는 약속입니다. 그 약속에 의하면 뱀의 후손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침을 물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발꿈침을 무는 순간을 노려서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로 인해 생명의 세계가 달성되는 것입니다.
이 약속에 준해서, 여자의 후손을 미리 앞당겨 보여주어야 될 사명을 지닌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뱀의 후손에 해당되는 자들이 이유없이 수난과 고난을 가하게 됩니다. 평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설마 하나님의 그 약속이 아직도 유효하게 자신의 세계 속에서 적용되리라고는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없게 됩니다.
사람이란 자기 몸과 관련된 사항이 아니면 신경쓰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대해서 언급할 때에도 하나님의 약속보다는 자신의 몸의 안일이 우선이 되는 겁니다. 자기 중심의 하나님을 신봉하게 됩니다. 바알과 아스다롯 신이란 부부의 신입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하는 자들을 위한 신입니다.
정착민에게는 지속적인 풍요가 시급한 문제입니다. 풍요로운 추수를 얻고자 한다면 제 때에 비가 와야 합니다. 이 바를 뿌려주기 위해 폭풍을 몰고 오는 신이 바로 바알신입니다. 이 신에게 여자 신이 따로 있는데 이 둘 사이의 성적 관계에 의해서 자식이 많이 생산된다고 보았습니다.
다산의 신입니다. 이로서 사람들은 자신의 아쉬운 점과 필요한 점에서 출발하여 적절한 신을 골라 섬기게 됩니다. 하지만 참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는 인간의 죄를 출발점으로 해서 하나님의 약속과 대비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에 의한 약속 성취가 아니라 결코 자신의 자리에서 구출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나 오늘날 성도는 우리 자신의 자리에서 우리가 구출될 필요성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저 남들 살아가는 것 흉내내면서 자기 몸의 안일만 고려한다면 틀림없이 이미 가짜 신을 섬기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몸과 마음 고생보다 주님의 몸과 마음 고생을 하신 이유를 먼저 염두에 두고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사사기-2007/08강-삿2장11-15(여호와를버리고)-jdg071202.hwp
관리자(IP:220.♡.176.169)
09-09-29 21:16
08강-삿2장11-15(여호와를버리고)-jdg071202
여호와를 버리고
2007년 12월 2일
본문 말씀: 사사기 2:11-15
(삿 2:11)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삿 2:12)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 곧 그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아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삿 2:13)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삿 2:1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붙여 그들로 노략을 당케 하시며 또 사방 모든 대적의 손에 파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치 못하였으며』
(삿 2:15)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매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인간들은 이유도 모르는채, 영문도 모르는채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신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그렇게 살아갈 뿐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은 그냥 성경에서 말하는 신 그 분과 같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명확하게 구분합니다.
참 하나님의 등장은 택한 백성들이 죄를 지었을 때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도 역시 평범한 인간일 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기 편한대로 믿고 편한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이들이 믿는 신이 참된 신이냐 아니냐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라 그들을 떠나지 않고 계시는 하나님의 관심사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스스로 알지 못하는 자신들의 위치를 알려줍니다. 무심코 아무런 생각없이 자기 삶에 열중하면서 생각하는 신은 참된 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우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들이 자신의 신이 우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경우는, 자신이 하는 일로 인하여 갈수록 살기가 빡빡해질 때입니다.
그럴 때나 인간은 자신이 살아가는 전반적인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따라서 인간들의 이러한 평소 생활은 정해진 틀과 순서에 의해 짜여지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백성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그 틀과 순서를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1. 악을 행한다.
2. 여호와를 잊어버린다
3. 다른 신을 섬긴다
4.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
5. 적들이 달려들게 된다
6.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7. 하나님께서 나서서 구원하신다
이 틀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나서시는 시점은 인간의 죄악과 교만 속에서 인간 스스로 도저히 헤어날 수 있는 처지가 아님을 명확히 해졌을 때입니다. 즉 오늘 말씀은 인간 스스로 힘으로 해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애초부터 인간에게는 자신의 구원문제에서 배제되어 있는 형편인 것을 알아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서시는 경우는 하나님과 인간이 좋은 관계를 이룰 때가 아닌 것입니다. 참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로 인해 고난받는 방식으로 등장하십니다.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등장을 모르고 그저 자기 편한대로 안일하게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자기 몸이 자연스럽게 끌리는 곳에서 신을 찾고 구합니다.
몸이 불편하면 신을 가까이 하려고 하고,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으면 곧장 하나님을 잊어버려도 무방한 그런 하나님을 참 신으로 섬기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알신과 아스다롯 신도 그런 종류의 신입니다. 사람들이 편하게 생각하면 당연히 연상되는 ‘좋으신 신’이 곧 바알이요 아스다롯 신입니다.
자신의 몸의 안일과 관련된 신은 ‘이유 있는 신’입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인간들이 알고자 해도 모르게 되는 있는 신입니다. ‘이유 없이 일하시는 신’입니다. 구약 욥기에 보면, 욥은 이유도 모르고 영문도 모르는채 심한 고난 속에 지내게 됩니다. 상당한 억울한 느낌을 가졌습니다.
이것처럼 인간의 몸이 자연스럽게 요청하는 그런 신과는 전혀 다른, 예상 못하는 식으로 다가오는 신이 바로 참 하나님이십니다. 평소에는 당연하게 이런 신을 거절하고 배척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몸의 편함과 이익과 전혀 무관한 신이기 때문에 소용없는 신이라고 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자기 백성들이 난데없이 자신에게 고난이 찾아들면 그제사 자신이 생각한 현실말고 다른 현실이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우리들의 머리 위를 장악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참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사정을 봐주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계획한 바가 있는 그 약속을 성취해나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3:15에 보면, 하나님의 약속이 나옵니다. 그 약속은 천지가 개벽하는 일이 있더라도 변동없는 약속입니다. 그 약속에 의하면 뱀의 후손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침을 물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발꿈침을 무는 순간을 노려서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로 인해 생명의 세계가 달성되는 것입니다.
이 약속에 준해서, 여자의 후손을 미리 앞당겨 보여주어야 될 사명을 지닌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뱀의 후손에 해당되는 자들이 이유없이 수난과 고난을 가하게 됩니다. 평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설마 하나님의 그 약속이 아직도 유효하게 자신의 세계 속에서 적용되리라고는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없게 됩니다.
사람이란 자기 몸과 관련된 사항이 아니면 신경쓰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대해서 언급할 때에도 하나님의 약속보다는 자신의 몸의 안일이 우선이 되는 겁니다. 자기 중심의 하나님을 신봉하게 됩니다. 바알과 아스다롯 신이란 부부의 신입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하는 자들을 위한 신입니다.
정착민에게는 지속적인 풍요가 시급한 문제입니다. 풍요로운 추수를 얻고자 한다면 제 때에 비가 와야 합니다. 이 바를 뿌려주기 위해 폭풍을 몰고 오는 신이 바로 바알신입니다. 이 신에게 여자 신이 따로 있는데 이 둘 사이의 성적 관계에 의해서 자식이 많이 생산된다고 보았습니다.
다산의 신입니다. 이로서 사람들은 자신의 아쉬운 점과 필요한 점에서 출발하여 적절한 신을 골라 섬기게 됩니다. 하지만 참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는 인간의 죄를 출발점으로 해서 하나님의 약속과 대비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에 의한 약속 성취가 아니라 결코 자신의 자리에서 구출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나 오늘날 성도는 우리 자신의 자리에서 우리가 구출될 필요성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저 남들 살아가는 것 흉내내면서 자기 몸의 안일만 고려한다면 틀림없이 이미 가짜 신을 섬기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몸과 마음 고생보다 주님의 몸과 마음 고생을 하신 이유를 먼저 염두에 두고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사사기-2007/08강-삿2장11-15(여호와를버리고)-jdg071202.hwp
◁ 이전글
다음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