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2: 1- 5 / 보김
보김 2007년 11월 18일 본문 말씀: 사사기 2:1-5 (삿 2:1)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가로되 내가 너희로 애굽에서 나오게 하고 인도하여 너희 열조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끌어 왔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에게 세운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삿 2:2)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리함은 어찜이뇨』 (삿 2: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삿 2:4)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삿 2:5) 『그러므로 그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니라 무리가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보통 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하시면, 하나님 백성을 즐겁고 기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웁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기에 그들이 원통해서 우는 겁니까?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게 되면 우리들은 우리들 마음대로 살아갈 수 없는 입장인 것을 알게 됩니다. 즉 하나님은 내 원대로 내 뜻대로 해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원대로, 하나님이 뜻대로 우리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바로 이 점을 알게 된 그 자체가 참된 하나님과 교류하고 있는 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늘 우리 인생의 굽이굽이에서 눈물이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나가시는 그 하나님이 바로 정말로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자, 즉 천사는 인간들의 사정을 감안해 주지 않습니다. 융통성이란 손톱 만큼도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서 받은 뜻 그대로를 전합니다. 흔히 이런 자들이 우리 사회에 끼어든다면 모두들 다 싫어합니다.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 위인이라고 백안시합니다. 그만큼 이 사회에서는 진실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예의없음과 통합니다. 사람들이 뭘 좋아하고 무슨 소리를 듣기를 원하는지는 사전에 감안해서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이 나오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 품위있는 시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진리를 안다고 해서 진리만을 외치는 것이 이 사회에서 반칙을 범하는 선수와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점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회는 우리 인간들 끼리 좋아라 하면서 산다고 해서 결코 좋은 사회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개입한 사회라면 더구나 용납될 수 없습니다.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다수가 원하는 바라는 점이 곧 진리일 수가 없습니다. 진리는 하늘 나라에서 이미 결정난 사항입니다. 열왕기 22장에 보면, 미가야 선지자가 거기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미가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다루십니다. 이 미가야 선지자는 마치 천사와 같습니다. 융통성이라는 그에게 없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과연 진실이냐 하는 점 뿐입니다. 여기에 비해서 다른 선지자 400명은 진실보다 생존이 우선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살아 남고 보자’가 진실이요 진리입니다. 죽으면 안된다는 것이 그들의 삶이 원칙입니다. 하늘에 있는 악마가 이 점을 놓칠 리가 없지요. 왕이 전쟁에 출정하는데 있어 과연 승리하고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놓고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가 격돌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400명이요 하늘의 천상회의에 참석한 참 선지자는 오직 한 명입니다. 하지만 숫자의 다수가 진리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그들끼리 진리라고 하여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자신의 뜻 외에는 양보하는 것이 없으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실질적으로 어떻게 일하시느냐 중요하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느냐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진리에 목숨 걸지 않으면 세월을 보내며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의 지연일 뿐입니다. 미가야는 왕이 이번 전쟁에서 죽을 것이라는 것을 조롱하듯이 말합니다. 하늘의 천상회의의 내용을 알려줍니다. 악마가 거짓말을 하는 영을 400명 선지자의 마음에 보내어 그들이 한결같은 거짓의 의견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미가야는 혼자 반대합니다. 뺨을 얻어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과연 왕은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진실된 입장과 같은 자세로 천사가 진실을 말해버리니 모든 자들이 울어버립니다. 이것은 평소에 인간들이 얼마나 비진실적인 것을 더 좋아하며 살고 있느냐가 들통나 버린 것입니다. 평소에 바로 이런 자세로 살았기에 그들은 아예 하나님의 언약에 관심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이로서 우리 성도는 이 세상에서 대해서 항상 진실만을 말해야 합니다. 그들을 돕고 위로한답시고 비진리를 이야기해버리면 그들은 울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즉 하나님이 개입을 가로막는 격이 됩니다. 그렇다면 천사가 와서 무슨 진실을 말했습니까? 그것은 이 땅이 결코 이스라엘 백성들의 안일만을 위한 땅이 아니라는 겁니다. 다른 목적이 있는 땅이라는 겁니다. 그 다른 목적이라는 것이 바로 하나님 본래 의도한 뜻이 구현되어야만 하는 곳이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비언약적인 요소가 없기를 바랬습니다. 이 땅은 평범한 땅이 아닙니다. 약속의 땅입니다. 약속의 땅이란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어야 될 땅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무얼까요? 창세기 15장에 보면 그것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에 살지 말아야 될 10 족속이 먼저 터 잡고 살고 있다고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 족속은 추방당하고 그 땅을 이브라함의 족속이 접수한다고 했습니다. 이 언약을 성취되기 위해서는 먼저 10족속이 추방될 수밖에 없는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죄가 충분히 관영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죄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을 만큼 숙성되어야 비로소 아브라함 족속으로 하여금 징벌케 하고 그 땅을 대신 차지할 수 있는 정당성이 확보된다고 말입니다. 아브라함 자손은 애굽에 4대를 보낼 만큼의 기간동안 대기 상태에 놓여있다가 드디어 때가 되면 그들의 죄를 향하여 공격합니다. 그 죄라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겁니다. 다른 신은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로움이나 거룩함이 나올 수 없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 만큼은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는 혜택을 베풀었습니다. 이점이 다른 우상과의 차이점입니다. 하나님의 거룩과 의로움은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하신 용서하심에 의해서 주어집니다. 바로 이점을 제대로 알고 이 은혜만을 높이는 곳이 약속의 땅이요 오늘날 천국입니다. 그런데 그 천국에 만약에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내비치지 못하고 있는 다른 우상이 남아 있다면 이것은 저주와 징벌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에서 다른 민족과 약조를 하여 다른 신을 섬기는 여지를 남기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뜻대로 해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의 공로로 영생을 얻는 것보다 더 귀하고 더 좋아하는 바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수시로 울어야만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오류를 친히 치셔서 늘 우리로 하여금 방향을 주님의 공로에만 돌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사사기-2007/06강-삿2장1-5(보김)-jdg071118.mp3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사사기-2007/06강-삿2장1-5(보김)-jdg071118.wmv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사사기-2007/06강-삿2장1-5(보김)-jdg071118.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