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 1- 2 / 붙이시매 전쟁
사사기 1: 1- 2 / 붙이시매 전쟁
이름 : 우리교회(IP:125.190.2.61)
붙이시매 전쟁
2007년 10월 14일
본문 말씀: 사사기 1:1-2
(삿 1: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삿 1: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 하시니라』
일반교인들을 상대로 성경을 전할 때, 창세기부터 할 경우에도 몰라도 성경 덥석 중간부분부터 들어갈 때는 전체적인 윤곽 잡는 것이 급선무가 됩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흘러내려가는 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중간에 끼어들기 하는 식으로 강해를 시작하게 되면 처음부터 이 지점까지의 이야기를 줄거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창세기부터 이야기는 뭉쳐서 전달되기 마련입니다. 마치 지붕 위에서 눈을 굴리면 처마 끝에서 눈이 크게 뭉쳐져서 밑으로 뚝 떨어지는 것처럼 누적된 의미들이 이곳 사사기까지 밀려들기 마련입니다. 사사기 직전까지 밀려들어 그 눈덩이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기본 원동력에 대해서 제가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의미의 분화입니다. 갈라짐입니다. 예를 들면, ‘땅’이라고 했을 때, 땅의 개념이 둘로 갈라집니다. ‘하늘’을 두고서도 이 ‘하늘’ 개념이 둘로 갈라집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각각 두 조각으로 갈라집니다. 둘로 갈라질 수밖에 없는 개념을 우리들이 평소에 하나로 짐작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고발당할 이유입니다.
사사기는 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땅이란 모래가 있고 자갈이 깔려있는 보통 땅입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에서는 그 땅 말고, ‘약속의 땅’이라는 개념 하나를 더 들고 나옵니다. 그리고 이 ‘약속의 땅’을 모르는 자는 약속대로 저주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약속의 땅은 어떠한 땅입니까? 약속의 땅이란 약속의 백성이 그곳에 들어와서 하나님으로부터 주고 받고 하는 땅이 약속의 땅입니다. 그러니까 약속의 백성이 그곳에 들어오지 아니하면 약속의 땅은 성립될 수 없는 겁니다. 신약 때의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의 백성이 들어가야 발생되는 것이 천국입니다.
즉 주님을 섬기는 자들이 있어야 온전한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약속의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약속된 백성이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약속의 땅의 면면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그들에게 주어지고 그들 백성들은 그 약속에 대해서 반응을 나타냅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약속의 땅은 점차 그 본질을 드러내게 됩니다.
사사기가 오기 전까지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 만들기에 열중하신 겁니다. 그리고 그 만들어진 백성을 데리시고 어떤 일정 구획의 땅에 들어서서 살게 되는데 거기서 비로소 피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고, 그 약속이 피어날 때 그 땅을 ‘약속의 땅’이라고 하는 겁니다. 만약에 이 약속된 바의 내용을 모르게 되면, 신약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든지, 약속에 대해서 대단히 오해하게 됩니다.
일반 평신도들은 교회를 오면서 자신의 욕구를 달성하는데 있어 모자라는 부분을 하나님이 대신 채워주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나오는 축복이라든지, 은혜라든지, 약속이라는 말들이 나오면, 평소에 자신이 얻고자 하는 바로 그것을 축복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끌어들여서 기존의 인간들이 전혀 알지 못하고, 생소하기 짝이 없는 약속을 안겨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있어 소위 약속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 사람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들이 모진 고생을 하면서 꿈에 그리던 축복의 땅이랍시고 들어왔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그들의 평소의 욕구는 전혀 먹혀들 수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사사기 2:4에 보니,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곧 백성들이 기대했던 그 축복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백성들은 나름대로 은근히 고대한 바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단호하게 거절하시고 그 대신 하나님께서 기대했던 바를 강제로 백성들에게 안겨주는 형식으로 축복주시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왔다는 것은 곧 그동안 인간 세상에서 알지 못하는 낯선 내용의 하나님의 뜻이 제공된다는 겁니다. 이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평소의 인간들의 기대하는 바와 다르기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울면서 대항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뜻이란 바로 ‘전쟁’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이방 민족과 전쟁을 붙이겠다는 겁니다. 이 세상 사람들 중에서 전쟁하는 것을 늘 좋아하는 자들이 어디있겠습니까! 가끔은 전쟁을 하기를 원하겠지만 속히 평화의 시대가 오기를 원하기 마련입니다. 그네를 타고 하늘 높이 나는 것도 재미나지만 그만큼 불안정한 위치를 갖는 것입니다.
어서 속히 땅 가까이 안정된 위치로 내려오기를 원하지요. 이처럼 사람들이란 남들과 싸운다는 것이 힘든 인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전쟁을 하되 도저히 인간적인 능력으로 승리할 수 없는 전쟁 속으로 자기 백성들을 밀어넣습니다. 그러니 약속의 백성들은 질려버립니다.
사람이란 자기가 원치 않는 일이 주어지면 반발부터 하게 마련입니다. 이 반항심이 하나님께서 도달되면 거기에 합당한 벌칙 조항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실시됩니다. 이런 ‘주고 받기’가 곧 하나님의 약속의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즉 인간들이 원치 않는 일을 시켜서 그들이 심하게 반발하게 되면, 그 반발을 근거로 삼아 자기 백성에게 징벌이 주어지고, 그 징벌로 인해 백성들은 자기 속내를 다 드러내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면, 적들을 물리친 공로가 순전히 하나님께서만 돌아가고 결코 인간의 공로 돌아가는 법이 없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 속에는 인간들의 반발심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들은 순전히 자기 위주입니다. 자기 몸하나 편하면 그것을 축복이라고 간주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상황으로 그들을 몰아갑니다.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불평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변 사람들과 종교를 서로 무시하고 친하고 사이좋게 정답게 지내는 그것 뿐입니다. 얼마나 소박하고 순수한 소망들입니까!
즉 전쟁해서 긴장 속에 사느니 차라리 아에 전쟁이 없는 상태가 되면 좋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강제로 그들을 전쟁터에 집어넣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성도의 입장입니다.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원치 않는 전도를 하나님에 의해서 하게 하십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하늘의 땅이 땅에서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사사기-2007/01강-삿1장1-2(붙이시매전쟁)-jdg071014.hwp
관리자(IP:220.♡.176.169)
09-09-29 21:49
01강-삿1장1-2(붙이시매전쟁)-jdg071014
붙이시매 전쟁
2007년 10월 14일
본문 말씀: 사사기 1:1-2
(삿 1: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삿 1: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 하시니라』
일반교인들을 상대로 성경을 전할 때, 창세기부터 할 경우에도 몰라도 성경 덥석 중간부분부터 들어갈 때는 전체적인 윤곽 잡는 것이 급선무가 됩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흘러내려가는 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중간에 끼어들기 하는 식으로 강해를 시작하게 되면 처음부터 이 지점까지의 이야기를 줄거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창세기부터 이야기는 뭉쳐서 전달되기 마련입니다. 마치 지붕 위에서 눈을 굴리면 처마 끝에서 눈이 크게 뭉쳐져서 밑으로 뚝 떨어지는 것처럼 누적된 의미들이 이곳 사사기까지 밀려들기 마련입니다. 사사기 직전까지 밀려들어 그 눈덩이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기본 원동력에 대해서 제가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의미의 분화입니다. 갈라짐입니다. 예를 들면, ‘땅’이라고 했을 때, 땅의 개념이 둘로 갈라집니다. ‘하늘’을 두고서도 이 ‘하늘’ 개념이 둘로 갈라집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각각 두 조각으로 갈라집니다. 둘로 갈라질 수밖에 없는 개념을 우리들이 평소에 하나로 짐작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고발당할 이유입니다.
사사기는 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땅이란 모래가 있고 자갈이 깔려있는 보통 땅입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에서는 그 땅 말고, ‘약속의 땅’이라는 개념 하나를 더 들고 나옵니다. 그리고 이 ‘약속의 땅’을 모르는 자는 약속대로 저주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약속의 땅은 어떠한 땅입니까? 약속의 땅이란 약속의 백성이 그곳에 들어와서 하나님으로부터 주고 받고 하는 땅이 약속의 땅입니다. 그러니까 약속의 백성이 그곳에 들어오지 아니하면 약속의 땅은 성립될 수 없는 겁니다. 신약 때의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의 백성이 들어가야 발생되는 것이 천국입니다.
즉 주님을 섬기는 자들이 있어야 온전한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약속의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약속된 백성이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약속의 땅의 면면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그들에게 주어지고 그들 백성들은 그 약속에 대해서 반응을 나타냅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약속의 땅은 점차 그 본질을 드러내게 됩니다.
사사기가 오기 전까지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 만들기에 열중하신 겁니다. 그리고 그 만들어진 백성을 데리시고 어떤 일정 구획의 땅에 들어서서 살게 되는데 거기서 비로소 피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고, 그 약속이 피어날 때 그 땅을 ‘약속의 땅’이라고 하는 겁니다. 만약에 이 약속된 바의 내용을 모르게 되면, 신약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든지, 약속에 대해서 대단히 오해하게 됩니다.
일반 평신도들은 교회를 오면서 자신의 욕구를 달성하는데 있어 모자라는 부분을 하나님이 대신 채워주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나오는 축복이라든지, 은혜라든지, 약속이라는 말들이 나오면, 평소에 자신이 얻고자 하는 바로 그것을 축복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끌어들여서 기존의 인간들이 전혀 알지 못하고, 생소하기 짝이 없는 약속을 안겨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있어 소위 약속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 사람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들이 모진 고생을 하면서 꿈에 그리던 축복의 땅이랍시고 들어왔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그들의 평소의 욕구는 전혀 먹혀들 수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사사기 2:4에 보니,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곧 백성들이 기대했던 그 축복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백성들은 나름대로 은근히 고대한 바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단호하게 거절하시고 그 대신 하나님께서 기대했던 바를 강제로 백성들에게 안겨주는 형식으로 축복주시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왔다는 것은 곧 그동안 인간 세상에서 알지 못하는 낯선 내용의 하나님의 뜻이 제공된다는 겁니다. 이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평소의 인간들의 기대하는 바와 다르기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울면서 대항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뜻이란 바로 ‘전쟁’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이방 민족과 전쟁을 붙이겠다는 겁니다. 이 세상 사람들 중에서 전쟁하는 것을 늘 좋아하는 자들이 어디있겠습니까! 가끔은 전쟁을 하기를 원하겠지만 속히 평화의 시대가 오기를 원하기 마련입니다. 그네를 타고 하늘 높이 나는 것도 재미나지만 그만큼 불안정한 위치를 갖는 것입니다.
어서 속히 땅 가까이 안정된 위치로 내려오기를 원하지요. 이처럼 사람들이란 남들과 싸운다는 것이 힘든 인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전쟁을 하되 도저히 인간적인 능력으로 승리할 수 없는 전쟁 속으로 자기 백성들을 밀어넣습니다. 그러니 약속의 백성들은 질려버립니다.
사람이란 자기가 원치 않는 일이 주어지면 반발부터 하게 마련입니다. 이 반항심이 하나님께서 도달되면 거기에 합당한 벌칙 조항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실시됩니다. 이런 ‘주고 받기’가 곧 하나님의 약속의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즉 인간들이 원치 않는 일을 시켜서 그들이 심하게 반발하게 되면, 그 반발을 근거로 삼아 자기 백성에게 징벌이 주어지고, 그 징벌로 인해 백성들은 자기 속내를 다 드러내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면, 적들을 물리친 공로가 순전히 하나님께서만 돌아가고 결코 인간의 공로 돌아가는 법이 없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 속에는 인간들의 반발심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들은 순전히 자기 위주입니다. 자기 몸하나 편하면 그것을 축복이라고 간주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상황으로 그들을 몰아갑니다.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불평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변 사람들과 종교를 서로 무시하고 친하고 사이좋게 정답게 지내는 그것 뿐입니다. 얼마나 소박하고 순수한 소망들입니까!
즉 전쟁해서 긴장 속에 사느니 차라리 아에 전쟁이 없는 상태가 되면 좋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강제로 그들을 전쟁터에 집어넣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성도의 입장입니다.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원치 않는 전도를 하나님에 의해서 하게 하십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하늘의 땅이 땅에서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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