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마 10:40-42 (하나님의 상償)
Re..마 10:40-42 (하나님의 상償)
이름 : 이근호(IP:)
하나님의 상
2003년 9월 14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10:40-42
10: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10: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단어들, 즉 '선지자', '의인', '제자'라는 자들은 오늘날 돈의 시대에는 하등 중요시되지 않는 단어입니다. "선지자 없이는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는 가정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만큼 이 시대에 와서는 천대받는 단어들입니다. 그런 것 몰라도 얼마든지 살아갈 자신이 만만하다는 것이 인간들의 상식입니다.
그러나 39절에 보시면 오히려 이런 인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천대받는 대상임이 드러납니다. "자기 목숨을 얻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라고 천명하고 나서십니다. 자,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 목숨을 얻고자해서 자기 목숨을 잃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과연 이 사람은 자기 목숨을 얻을까요 잃을까요?
즉 39절의 말씀은 인간은 단독적으로 아무리 분투 노력해도 원래 자기 목숨을 잃을 수 밖에는 신세로 태어났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하면 자기 목숨을 얻을 수 있을까요?
41절에 보면,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선지자의 상'이란, 선지자가 현재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그 세계를 말합니다.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자신의 기존 세계를 포기하게 되어 있고, 그렇게 되면 남는 것은 선지자가 속해 있는 세계의 한 일원이 된다는 말입니다. 물론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흔히 교회에서 '상'이라는 말을 하게 되면, 평소에 하나님을 멀리 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갖게 마련입니다. "하나님, 저는 욕심을 버린 사람입니다. 그저 구원만 해주시는 감지덕지로 알겠습니다. 거기에다 추가적으로 상까지 바란다는 것은 너무 욕심이겠지요. 저에게는 상 같은 것 주시지 않더라도 상관치 않겠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참으로 겸손해 보이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태만한 관계를 갖겠다는 뜻일 뿐입니다. 선지자의 상을 받지 않겠다는 것은 곧 구원에서의 탈락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상의 형식으로 제공되는 구원이란 상이 없는 사람을 천국과 무관한 타인으로 간주하기 때문이죠.
즉, 아비나 어미를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천국이란 상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보는 겁니다. 성경은 세상을 좁게 보는 것이 아니라 넓게 보게 하십니다. 자기 바깥의 세계에 어둡고 무지하기 때문에 여전히 자기 목숨을 얻고자 하는 일이 일어나고, 아비나 어미를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겁니다.
상이란 그저 있는 것을 더 채워주는 식이 아니라 자기 바깥의 세계에로의 전출입니다. 어떻게하면 이것이 가능할까요? 오늘 본문 41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즉 선지자도 못되는 자가 선지자를 영접하게 되면 선지자가 누리는 세계에 동참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선지자 된 자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선지자가 이미 된 자가 같은 선지자를 영접하면 이로서 선지자로서 참여될 세계에 합류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선지자 될 수 있는 겁니까? 그것은. '상'되시는 분께서 그 상에 참여시킬 자들에게 동행해서 일하심으로 가능합니다. 창세기 15:1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여기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 자체가 아브람의 상이요 방패라고 하십니다. 여호와는 아무나에게 상급이 되시고 방패가 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서 뽑혀 나오는 아브람과 기타 선택된 자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보통 상이라고 한다면 동네 노래자랑에 나와서 타는 남비나, 플라스틱 바구니 같은 것이요 꼬마들 운동회 할 때는, 공책 종류요, 중고등부 졸업식 할 때는 영한한 사전 정도일 것입니다. 즉 흔히 아쉬워 하면서 생겼으면 좋겠다 하는 것들이 상으로 제공됩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경우는 자기 소유용으로 상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 제공하는 상이 곧 아브람에게 있어 새로운 인생의 목표가 되는 겁니다. 폐쇄된 기준의 자기 세계에서 이 상을 앞장 세워서 빠져나오게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말 인간에게 아쉽고 필요한 것은 돈이나 재물이 아닙니다. 생명나무의 과실이요 영생입니다. 시편 133편에 보면, 여호와의 복은 영생이로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상이 되시는 분이 자기 백성을 자기 상을 받을 만한 사람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겁니다.
이 외부에서 주어지는데 어떻게 주어집니까? 선물로 주어집니다. 에베소서 4:8에 보면,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 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개선 장군입니다. 전쟁터에서 승리한 분으로 당당하게 입성합니다.
연도에 선 자기 백성들은 예수님의 승리를 축하하고 찬양합니다. 바로 이런 관계 안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공로로 얻은 것을 자기 백성에게 선물로 나누어줍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은사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신약 성도들이 이미 선지자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예수님으로부터 이미 성령을 선물로 받는 자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선지자가 직책은 참으로 중요한 직책입니다. 사도행전 3:23에 보면,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만큼 중요한 직책이기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한 자에게만 해당됩니다. 인위적인 방법으로는 선지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선지자입니까? 민수기 11:24-30절에 보면, "모세가 나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백성에게 고하고 백성의 장로 칠십인을 모아 장막에 둘러 세우매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임한 신을 칠십 장로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신이 임하신 때에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아니하였더라 그 녹명 된 자 중 엘닷이라 하는 자와 메닷이라 하는 자 두 사람이 진에 머물고 회막에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에게도 신이
임하였으므로 진에서 예언한지라 한 소년이 달려와서 모세에게 고하여 가로되 엘닷과 메닷이 진중에서 예언하더이다 하매 택한 자 중 한 사람 곧 모세를 섬기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하여 가로되 내 주 모세여 금하소서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진중으로 돌아왔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진밖에 있는 엘닷과 메닷이라는 사람까지도 성신이 임하여 예언을 하니 여호수아가 화가 나서 모세에게 이릅니다. 그러자 모세가 하는 말이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자... 과연 이 예언의 말씀이 흐지부지 될까요? 아닙니다. 사도행전 2:17-19에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말세에는 모든 성도들이 예언을 말하게 되는 선지자 시대가 됩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희망이 있다면 성도를 선지자로 인정하는데 있을 뿐입니다. 이 성도들에게서 나오는 말씀들에 귀를 기우려야 합니다. 성도들이라고 하는 오늘날의 선지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결코 그들이 세상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전하고 싶은 뜻을 그들은 전하고 있는 겁니다. 복음에 관한 이야기도 그들 입에서 나오게 되어 있고, 십자가 죄 씻음도 그들 입에서만 나옵니다. 다른 이들의 입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습니다. 전에는 물로서 세상을 심판 했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불로서 심판하시기 위하여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는 이야기도 이들 입에서만 나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대로, 이들 선지자들이 선지자의 이름으로 다른 선지자를 영접하면 곧 이들의 세계가 하늘 나라입니다. 이들만큼은 결코, 아비나 어미를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을 얻고자 자신에게 충성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예수께서 받은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성도라도 이 시대의 선지자라는 사실을 잊지맙시다. 세상에 분주함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알려준 시대의 비밀들을 천시하는 경우가 있어서는 아니됩니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가치를 세상에서 찾고자 하지 맙시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본래의 사명과 흐름을 놓치지 않게 해주옵소서. 온 성도가 다 이 마지막 때의 선지자임을 상기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