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는 어린 양의 피가 보여야지요"
"성도는 어린 양의 피가 보여야지요"
이름 : 이미아(IP:121.53.82.156)
보이지 않았다. 어린 양의 피가
껍데기에 불과한 내 육을 채우기 위해서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생각이나 했었을까?)
어린 양의 피만을 시인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 받은 사실에만 -선민의식에 사로잡혔던 이스라엘처럼- 눈이 뻘개져 있었다.
마치 잠을 자지 못해서 매일 충혈된 눈처럼.....
(어린 양의 피만을 시인한다는 것은 나를 내세울 수 없고 내가 없어진다는 것인데...왜 예수님은 없어지고 내가 남는 걸까?)
어린 양의 피보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용서해 주신다는 그 사실에
내가 어떤 일을 당해도 나는 위로 받을 자격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그 일에 우선 순위를 두고 살았다.
우선 순위를 따질 수 없음에도. 이미 어린 양의 피의 실체이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아니시라면 만물은 모두 저주 아래
갇혀 있기에....무엇이 먼저라는 사실을 따질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끝없이 바꿔치기 한다.
자기가 있어야 남이 있다 라는 그 본질상 진노의 자녀의 생각이 내가 예수를 믿어야 예수님이 존재하시고
내가 잘해야 예수님이 용서해 주시고 내가 그 무엇을 해야 예수님이 나를 알아 주신다는 것으로 바꿔치기 하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바꿔치기 하는데 비상하다(시작은 어린 양의 피인것 같았는데 끝은 자기가 남았다)
어린 양의 피 때문에 살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내가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서 이것이 되고 싶고 저것이 되고 싶고 이것도 가지고 싶고 저것도 가지고 싶다.
이 세상의 무엇을 보고 느끼고 들어도 어린 양의 피이어야 하는데
욕망이 쏠린다.
어린 양의 피가 보이는 자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겨울 잎이 다 떨어진 나무를 가리키면서
"어떤 시상이 떠 오릅니까?" 라고 묻길래
시인은 사물을 보면서 시상이 떠 오르겠지만
성도는 어린양의 피가 보여야지요. 라는 말을 했습니다.
창세기 8장 말씀처럼
죄인이 살아가는 것은
모두가 정결한 짐승의 희생 때문입니다.
인간이 살 가치가 있어서 살리는 것이 아니라
정결한 짐승의 희생때문에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으니
오늘도 태양이 뜨고 겨울이 오고 이 모두가 그분의 보혈 때문이니
겨울 앙상한 나무를 보면서도 어린양의 피가 감사함으로 느껴져야겠지요.
겨울 수련회도
시편의 말씀들도
모두가
그분의 피 흘리심이 만들어낸 그분의 사랑 결정체입니다"
"성도는 어린 양의 피가 보여야지요"라고 말씀해 주시는 예수님의 증거자가 있기에 행복하다.
그 분이 목사님이시라면 더욱 행복하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어린 양의 피 때문이다.
어린 양의 실체이신 예수님만이 우리를 대신하여 피 흘려 죽으셨기 때문이다.
다른 이름을 대속하여 택한 백성들에게 주신 일이 없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4:12).
우인숙(IP:61.♡.235.145)
07-12-27 08:52
아멘~~~ 특심한 자기 열심과 선한 실천과 자유의지로 피가 발린게 아니라 성도는 뜬금없이 강제로 피범벅이 되아버려서 자기는 없고 이래도 저래도 피만 보여지게 되는 신세가 되 버린 존재~~요번 수련회 시편 강해가 무척 기대 됩니다..몸이 아픈건 아니고 직장일로 참여를 못합니다..자매님 생각하면서 지난 성탄 휴일에는 보잘것 없는 솜씨로 선물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오 목사님 편으로 보낼께요..
이미아(IP:121.♡.82.156)
07-12-27 11:15
아프시지 않으셔서 감사하고 직장일이시라니 감사하고 받을 수조차 없는 자에게 선물을 주신다니 감사하고..
어린 양의 피 때문에 이루어지는 모든 일에 감사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