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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71207b 울산강의-창세기 26, 27장자유게시판창세기

20071207b 울산강의-창세기 26, 27장

이름 : 한윤범(IP:59.6.189.181)

20071207b 울산강의-창세기 26, 27장

(강의:이근호 목사)

둘째 시간 시작하겠습니다.

“어린 자가 큰 자를 섬기리라” 아, 얼마나 정상적이에요. 맞지요, 그죠? 어린 자가 큰 자를 섬기리라. 참, 정상적이죠. 그런데 약속은 뭡니까?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이렇게 해버리니까 사람들이 지금 섬기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될지, 큰 자 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될지 상당히 난처하게 됐어요.

큰 자 되는 건 좋아하는데 이 큰 자는 오히려 어린 자를 섬겨야 되니까 뭐하고 싶어요? 여러분, 큰 자 하고 싶습니까, 어린 자 하고 싶습니까? 어린 자 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어린 자 된다는 것은 큰 자한테 눌리잖아요. 어리기 때문에.

이 말은 복잡하게 안 할게요. 쉽게 할게요. 예수님이 큰 자로 왔잖아요. 예수님보다 큰 자가 어디 있습니까? 하늘나라 영광을 버리시고. 근데 그 큰 자가 이 땅에서 어떻게 됐어요? 죽기까지 복종하셔 섬겼으니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지금 그걸 앞당겨 보여주는 겁니다. 세상에 천하에 예수님이 쓰레기보다 못한 우리 오히려 우리를 섬겨서 구원해내신다는 그것을 벌써 수천 년 전에 이천 년 전에 리브가의 뱃속에서 아기 낳는 사건을 통해서 표현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말을 하려면 예수님이 우리를 오히려 내가 온 것은 내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고, 오히려 내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너희를 섬기기 위해서 그냥 말로만 립씽크만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생명, 목숨까지 바쳐서 사모님을 위해서, 집사님을 위해서 그냥 내줬다. 그러니 너희들은 세상의 권세자를 본받지 말고 나를 본받아라. 이래 되었다 이 말이에요.

그런 이야기할 때 제일 먼저 우리에게 와 닿는 게 뭐냐 하면, 아니 하나님, 일을 정상적으로 하세요, 정상적으로. 우리가 뭔데 비정상적으로 하십니까? 예수 떴다. 야, 주님이다. 섬기면 되지, 왜 주님께서는 떴다 이래 오는 게 아니고, 귀싸대기 맞고 매 맞고 왜 이렇게 처참한 우리가 제일 꼴 보기 싫어하는 처참한 모습으로 와서 왜 그런 식으로 몰래 와서 몰래 구원하시는 겁니까? 좀 일을 정상적으로 하세요. 거지꼴로 오지 말고.

우리가 뭐가 부족해서 뭐가 못나서 왜 그렇게 합니까? 라고 이야기할 건데. 예, 우린 못났습니다. 우리가 지금 모든 걸 거꾸로 이해하고 있으니까 주께서 우릴 구원하기 위해서 거꾸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요. 정상적으로 하면 지옥 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도 생각하는 게 모든 게 거꾸로기 때문에 거꾸로 뒤집어야 돼요. 뒤집어서 일해야 돼요. 이래 하시는 분으로 왔다 이 말이죠. 그 뒤집음 때문에 우리가 성경해석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말이죠.

자기 긍정, 하면 된다는 자기 긍정. 이 자기긍정 가지고 성경해석 백 날 모르고, 자기부정, 나는 죽어 마땅하다. 이런 자기 부정의 입장에서 성경을 봐야 성경이 보이게 돼있어요. 자기긍정으로 해서 되질 않는다 이 말이죠. 그런데 여기 자기긍정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게 또 인간이죠.

여기 자기긍정으로 나선 사람이 네 사람 나와요. 네 사람 누굽니까? 이야기해보세요. 이삭, 또 한 사람 리브가, 또 한 사람, 에서, 야곱. 이 네 사람이 우리를 대신해서 자기긍정으로 나서서 다 깨집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거예요. 다만 하나님의 약속이 개입되면 야, 이건 나의 긍정으로 될 일이 아니구나. 이걸 깨닫게 하죠. 나는 하면 된다. 나는 하게 돼있다. 이런 것 가지고는 되는 일이 없음을 깨닫게 하죠.

그래서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임한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 이름을 믿음으로 구원받게 돼있어요. 다시는 나를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나를 안 믿겠습니다. 주님만 믿겠습니다. 하는 식으로 구원받게 돼있다 이 말이죠. 지금도 그 사건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지요.

그러면 오늘날의 싸움은 마귀하고 싸움이라 했는데 그 마귀하고 싸움이 줄 창 이뤄지는 현장은 바로 우리 속입니다. 목사도 마찬가지고, 집사도 마찬가지고 늘 우리 속에서 싸움이 일어나요. 목사는 설교하면서 오늘도 교인들을 감동시켜야 될 건데. 그래서 한번 온 교인이 두 번 다시 오도록 만들어야 건데 이러한 자기의 포부를 담고 하지요.

그러면 하나님이 묻지요. 와서 뭐하느냐? 그렇게 해서 감동받아서 교인들이 오게 되면 넌 뭘 얻어지느냐? 주여, 저는 승리자가 되는 겁니다. 글쎄, 그게 문제라니까. 큰 자가 되고, 섬김을 받으려 하는 자고, 승리자가 되고자 하는 싸움 했다 하면 승리자가 되고 했다 하면 승리자가 되고 이게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던 포부였습니다.

사람들이 자살하는 이유가 뭡니까? 승리자가 될 공산이 없기 때문에 자기가 실패할 것이 두려워서 먼저 자기가 자기를 죽였잖아요. 실패자 될까봐. 승리자 못 될까봐. 그런데 그걸 아셔야 돼요. 우린 태어날 때부터 이미 실패자에요. 새삼스럽게 실패하고 자시고 말 것도 없어요. 처음부터 우린 실패하고 혹시 구원 받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처음부터 우린 실패자에요. 남하고 비교하니까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데.

그래서 제가 이야기할 것은 이 네 명이 실패한 이유가, 그 사람이 진리, 선과 악은 누구하고 비교해서 그런 겁니까? 서로가 서로한테 비교한 거예요. 수능시험 치는데 네 명이 서로 컨닝하는 거예요. 애는 400점 만점에 보통 50점 나오는 아이고, 40점 나오고, 400점 만점에 20점 나오고. 백 날 봐야 한 30점 밖에 안 나오는데 컨닝하면 뭐 합니까? 400점 만점에 390점 되는 서울대 법대 그런 애 걸 봐야 되는데 백 날 봐야 30점 밖에 안 나오는데. 안 되잖아요.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왜 매일같이 울고불고 낙담하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왜 그런 것을 매일같이 합니까? 똑같은 인간들만 쳐다보고 그 사람과 비교했기 때문에 그래요.

사람이 참 얼마나 어리석은지 남보다 좀 늦게 승진했다고 해도 일단 세월 가서 그 직급에 이르면 똑같아요. 제가 한 말이 아니고, 어떤 서울대 의대 나온 사람이 아는 교인이 있어서 그리 이야기하는데. 자기가 서울대 치대 나와서 치과 원장 할 때 서른 살 좀 넘어서 할 때 자기는 일찍 출세했다고 여겼던 겁니다. 왜? 사람들이 초반에 원장님, 원장님 해주니까. 그런데 사십 대도 원장님이고, 오십 대도 원장님이고 발전성이 없어. 자기는 분명히 빨랐다고 생각했는데 똑같아요. 특히 교사들. 아이고, 선생님, 선생님 하는데 삼십 대도 선생님, 사십 대도 선생님, 오십 대도 선생님. 진짜 교장, 교감 안 되면 맨 날 선생님 밖에 안 돼요. 남하고 비교하는데서 자신의 잘못된 게 드러나죠.

그 뒤에 창세기 26장부터 창세기 마지막까지 있던 모든 일은 결국은 뭡니까? 남하고 비교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계시를 엉터리로 읽는 거예요. 전부다. 모든 사람이 다. 요셉도 마찬가지고, 야곱도 마찬가지고, 리브가도 마찬가지고, 이삭도 마찬가지고, 야곱의 열두 아들 전부다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뜻을 읽어낼 능력이 없으니까 기껏해야 눈에 보이는 사람하고 상대해서 나는 이루었다, 나는 하나님 뜻을 이루었다. 맨 날 자기 착각에 빠지면서 창세는 끝이 나는 겁니다. 참, 하나님 뜻하고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예수님도 이런 이야기했어요. 제자들 가운데서 서로 자기가 높다고 천국 가면 자기가 높은 자리 앉는다고 싸우니까 어린아이 하나 데려와서 앞에 세우면서 하시는 말씀이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 같은 심성이 아니면 천국은 글렀다고 생각해라. 왜 어린아이를 세웠을까요? 어린아이는 경쟁대상이 아니잖아요. 모든 사람이 다 무시하잖아요. 모든 어른들은 모든 어린아이를 다 무시하잖아요.

그러니까 어린아이를 어른들 앞에 세웠다는 말은 어른들이 아무리 날고뛰어도 어린아이 같은 심성을 가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가질 수가 없어요. 왜? 좀 아니까. 좀 한다고 나대니까. 다시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나는 못합니다로 돌아갈 수 없어요. 결국 인간의 힘으로 천국은 들어갈 수 없는 겁니다. 그걸 이야기하는 거예요. 인간의 힘으로 안 되고, 바로 어린아이를 세우는 예수님 능력으로 심성이 어린아이처럼 만들어질 때 그때 그 사람이 천국백성이 되는 것이지, 자력으로 스스로 자기를 어린아이 될 수는 없는 겁니다.

이제부터 약속을 풀이해봅시다. 약속을 다시 한번 읽어봅니다. 23절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민족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 중에서부터 나누리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심기리라”

무슨 암호 같지요.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자, 이 해석을 두고 드디어 쌍둥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이 쌍둥이 에서와 야곱 사이는 형제일 수가 없고 언젠가는 이게 나누리라. 갈라져야 되겠죠. 갈라지는데 좋게 갈라질 수 없지요. 왜냐하면, 둘이 싸우는 중이니까. 누가 승자인지, 패자인지 들통 나는 순간에 영원히 빠이빠이하게 돼있는 갈라서게 돼있는 형제로 태어나는 겁니다.

그런데 그냥 태어나는 게 아니고, 두 민족은 한쪽은 강하겠고, 한쪽은 두 민족은 이쪽보다 강하겠고. 강한 민족 따로 있고 약한 민족 따로 있겠죠. 그럼 누가 강한 민족이 되느냐? 미리 한번 봅시다. 창세기 27장 29절. 잠도 오는데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제가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이래 돼있지요.

여기서 뭐냐? 한쪽이 복 받으면 다른 쪽이 복 받으면 참 좋겠는데 그게 아니라 한쪽이 복 받았다는 말은 한쪽은 필히 저주받게 돼있다는 말입니다. 그 저주가 39절에 나옵니다.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이건 모든 축복은 축복받은 자에 완전히 몰아주기 하는 식으로 몰표가 다 가버리고, 저쪽에는 전혀 축복이라는 것은 남아있지 않고 몽땅 다 가는 그런 식으로 하나님께서 축복과 저주는 구분하는 겁니다. 결국은 이 약속을 준 것은 뭐냐 하면, 이 세상에는 두 민족이 등장하는데 한 민족은 영원토록 뭐 받고? 축복 받아야 되고, 한 민족은 영원토록 저주받아야 되는 민족이 그 두 개가 합쳐서 구성해서 약속이라는 것을 이룬다 이 말이죠. 약속.

그러니까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것은 떨어졌다 하면 한쪽은 중립되는 게 아니고, 떨어지면 도 아니면 모에요. 축복 아니면 저주, 저주 하나면 축복이지, 어중간 중립지대가 없어요.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뭘 받을지어다? 저주를 받을지어다.

제가 어제 심방 가서 이야기했어요. 주를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받거든. 참 내가 미워서 이런 소리 하는 게 아니고, 내 말이 아니고 성경에 있단 말이죠. 있으니까 심방 가서 이 이야기밖에 못하겠네.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받는다. 심방 가서 딴소리 할 게 없었어요. 그렇습니다. 하면 복이고, 기분 나쁘다 하면 저주고. 야, 목사님 생각이 우째 저하고 똑같습니까? 하면 복이고, 들어보니 기분 되게 나쁘네. 그럼 날 주님 사랑 안한다 이 말이죠. 목사님 보시기에. 이런 식으로 튕겨나가면 이상한 사람이고.

중립지역에 모아놓고 한쪽은 저주를 쪼아대고 한쪽은 축복을 쪼아대는 게 아니라 축복된 그 순간부터 남아있는 자체가 저주가 되고, 축복을 끄집어내면 나머진 자동적으로 저주가 된다 이 말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약속의 올 때 모든 약속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온 천하를 얻고도 네 목숨 잃으면 소용이 있으리요 유익이 있으리요 말씀처럼 이 세상에 구출되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없어요. 왜냐? 구출 안 되면 저주기 때문에 구출됐다는 이 사실, 구원됐다는 이 사실 그것만 챙겨도 이 세상에서 건강 잃고, 재산 잃고, 자식 잃고 다 날려도 손해 안 본 장삽니다. 남는 장사에요. 괜찮은 장사한 거예요. 진짜 복 받은 겁니다.

문제는 이 사실을 네 명 어느 누구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축복을 받아 놓고 야곱은 몰랐습니다. 왜 몰랐느냐 하면, 야곱이 이런 축복을 받을 때 야곱은 오해했어요. 이 축복을 누가 이룬다? 자기가 이루는 줄 알았습니다. 아, 이게 큰 또 오해에요.

창세기 27장 29절 다시 한번 봅시다.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여기 ‘만민’이라 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고, ‘너’라 하는 것은 누굴 말합니까? 축복 받고 있는 야곱을 말하지요. 야곱 맞지요. “야곱을 섬기고 열국이/많은 나라가 네게 굴복하리니” ‘너’가 누구죠? 야곱이죠.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이게 이야기 이상하죠. 네 형한테 주가 되고 이게 아니고, 형제들. ‘형제들’이니까 한 명 있다는 말입니까, 한 명 이상이라는 말입니까? 한 명 이상이죠. 그런데 분명히 지금 야곱의 형은 형제는 몇 사람입니까? 한 사람 밖에 없어요. 야곱 아니면 에서,에서 아니면 야곱. 이것 밖에 없는데 여기 보면 ‘형제들’이라고 돼있다고. 그것도 이상하고. “어미의 아들들” 허허, 참. 어미라 하면 리브간데 리브가의 아들이 달랑 두 명 밖에 없어요. 야곱 빼놓고 하나 밖에 없다고. 그런데 여기는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고” 근데 축복을 누구보고 합니까? 지금 아버지가 야곱보고 한다고. 네가, 네가, 네가 하면서 야곱보고 이런 축복을 한다 이 말이죠. 야곱은 이 내용이 약속을 자기가 이룬 줄 알았어요.

창세기 28장 봅시다. 창세기 28장 12절에 보니까 야곱이 잠자고 있는데 거기에 뭐가 떴습니까? 꿈이죠. 꿈에 사다리가 펼쳐지고 사다리 위에 분주하게 뭔가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누굽니까? 천사들이었어요.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그 위에서 갑자기 음성이 들렸지요. 그 음성이 내용이 뭐냐 하면,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이래 돼있지요. 약속의 하나님이 약속을 이룬다 이 말이죠.

15절에 “네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가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했거든요. 이거 누가 이룹니까? 하나님 쪽에서 일층이 아니고 이층에서 이루지요. 그런데 야곱은 이걸 마치 자기가 자기를 성실하게 지켜서 준수, 지켜내는 것처럼 그렇게 오해를 한 겁니다.

그렇다면 이 야곱은 하나님의 일에 돌출부분이죠. 잘려야 되겠습니까, 안 잘려야 되겠습니까? 잘려야죠. 그 잘리는 부분이 뭐냐? 얍복강 가에서 환도뼈를 와장창 얻어맞는 거예요. 얻어맞아서 인간적인 남성의 힘이 완전히 빠지고 그때부터 야곱은 죽기 살기로 완전히 절름발이처럼 지팡이 쥐고 돌아다니는 거예요. 김대중이처럼. 완전히 자기 힘으로 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아까 이야기했던 봤던 창세기 27장 축복도 자기 힘으로 안 됩니다. 특히 자기는 뭐냐? 자기가 사랑했던 아들, 누구에요? 요셉은 야곱에 있어서 어떤 자냐 하면, 요셉은 이미 야곱에게는 더 이상 없는 자에요. 죽은 자다 이 말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야곱이 몰랐을 때 형들이 와락 달려들어서 요셉을 애굽으로 팔아넘겨 놓고 뭐라고 거짓말했습니까? 아이고, 짐승이 와서 동생을 요셉을 그만 죽였어요. 보세요. 동생이 입던 옷 보세요. 옷에 피가 묻었잖아요. 아이고, 동생을 우리가 지키려고 했는데 동생이 죽고 말았습니다. 아이고, 아버지여, 동생이 이미 고인 돼버렸는데 없는 양 하시고 그냥 위로받으세요. 이랬단 말이죠.

그 이야기 정보가 야곱에게 안 들어왔기 때문에 야곱에게는 이미 어떻게 돼요? 야곱에게는 이미 요셉은 죽은 자가 되지요.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이 약속을 이루는데 있어서 야곱은 복은 약속은 자기가 받아놓고 약속을 이루는 데는 하등 자기가 한 게 없고, 되레 그는 뭐냐?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요셉이 유일한 약속을 꿈의 계시를 받은 요셉마저 짐승에 의해서 죽어버렸잖아요. 그러니까 완전히 뭐가 끊어졌습니까? 더 이상 하나님의 약속은 실현불가능하다. 라는 것을 아주 굳게굳게 믿었던 겁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께서 우릴 다루시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매일 절망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 하고 싶어도 떨어져버려요. 계속 하나님께서 우릴 배제해버려요. 절에 다니다가 교회 다녔는데 그때부터 집안에 우환이 오고, 사업 하는 족족 다 망하고, 치킨집 하면 치킨집해서 망하고, 그 다음 노래방 하면 노래방 다 떨어 먹고, 그 다음 포장마차 하면 깡패들 와서 다 뜯어가고. 뭘 하는 것조차 되는 일 없이 다 안 되게 만들어요. 거기에다가 애 교통사고 나서 병원에 입원해 있고, 마누라 도망하고. 되는 일이 없어. 몸은 실실 아파가고.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설교시간에 은혜가 안 되고 잠은 오고, 교회 딴 교회 가고 싶고.

그래서 저는 이걸 생각해요. 교인들이 언제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으려고 하는 시점이냐? 그걸 연구하고 있어요. 하나님도 연구하실 거예요. 저 인간은 언제쯤 되서 다시는 내 하나님 믿는가 봐라. 언제 다리 끊을꼬? 그 끊는 시점, 말씀으로 사는 게 아니라 돈으로 산다는 확실한 그 시점 있잖아요. 더 이상 하나님 말씀 필요 없는 그 시점.

그 일은 뭐냐? 사람이 일이 안 되면 일이 되는 쪽으로 몸을 옮기게 돼있어요. 그래서 자기 하는 방식은 일이 잘될 때 이쪽의 하나님은 빠이빠이입니다. 자기 하는 일이 잘될 때 드디어 하나님하고는 결별 상태, 헤어지는 순간이에요. 참 잘될 때. 그런데 그 잘된다는 말이 뭐냐 하면, 이런 게 잘된다는 그런 기대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딱 맞아떨어지니까 잘됐다는 말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성도 같으면 구원받은 게 잘됐다. 이러면 다른 잘됨이 거기 파고 들어갈 여지가 없는데 구원받는 건 기본이고, 딴 게 잘돼야 될 건데. 이래 생각하니까 그 잘되는 게 너무 잘 되거든요. 그러니까 구원받아놨는데 뭐 하려고 교회 다니노? 잠시 빠이빠이하지 뭐.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말이죠. 그게 결별 시점에 온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잘돼가더라도 아니야, 이건 아니야. 사람은 이렇게 사는 게 아니야. 라고 돌아오게 하는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 그 사람은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 이건 아니야. 예수님은 이렇게 안 살았어. 사도바울은 이렇게 안 갔어. 스데반 집사 이렇게 살지 않았어. 다시 성경으로 관심이 돌아오지요.

그러니까 성경의 세계하고 성경 바깥의 세계, 이 세상이죠. 바깥의 세계에서 항상 우리는 갈등하면서 항상 몸부림치면서 이쪽이냐, 저쪽이냐? 성경을 끊어버려? 성경 안 봐? 난 이쪽이 더 좋아. 나오더라도 하나님의 성령은 다시 어느 날 성경의 세계로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되고, 성경말씀은 이런데 내가 뭔가 내 잘되는 거 가지고 이게 잘되는 줄 알고 선택했구나. 아이구. 내가 이게 짐승이지 사는 게 아니다. 다시 성경 속으로 오다가 또 잘됐지 싶으면 다시 바깥으로 나가다가. 왔다갔다, 왔다갔다 하면서 찬바람 부는데 다 왔다갔다 하는데 설교는 안 하고. 이렇게 되는 거예요.

사람은 떡으로 살질 않고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뭐로 산다? 하나님 말씀으로 산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야곱이 결코 이 사람이 욕심 없는 사람이라든지 훌륭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하고 똑같아요. 성정이 똑같다고 하잖아요. 우리와 똑같이 자기 위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지게 되면, 우리 같으면 야곱과 똑같은 짓을 하게 됩니다.

그 짓이 어떤 짓인지 창세기 25장을 한번 봅시다. 둘이 싸우는데 싸우는 목적이 누가 더 강자가 되느냐? 하나님 뜻은 강자 될 사람은 따로 있다는데 야곱과 에서와 리브가, 이삭은 누가 강자가 될 것이냐에 관심이 있어요. 많이 어렵습니까? 하나님은 이미 누가 강자가 누구냐를 정해놨는데, 이쪽에 인간들은 안 정해놨다고 생각하고 내가 열심히 따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따내야 승리자가 돼야 비로소 강자가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중에 하나 방법이 뭐냐? 큰 자, 강자라고 여겼던 꼬셔가고 하는 거예요. 꼬실 때 형이 평소에 뭘 좋아하느냐를 알아놓고, 두 번째, 그 형이 너무너무 좋아하는 것을 딴 거는 거들떠보지도 못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거기에 흠뻑 빠지게 하는 그 순간이 뭐냐를 포착하는 겁니다. 하나는 뭐냐? 팥죽을 좋아한다. 그럼 언제 가장 극대화로 팥죽을 좋아할 때가 언제냐? 배고파 할 때다. 그렇다면 형이 헉헉거릴 때 팥죽 주면 형의 장자권은 내 것이 된다. 라고 생각한 겁니다.

야곱이 왜 이런 생각을 합니까? 왜 형의 장자권을 축복권을 뺏으려고 합니까? 분명히 축복은 형한테 올 것이 뻔하기 때문에 왜 축복권을 뺏으려고 합니까? 우리 같으면 그리 안 하겠어요. 나는 동생, 영원한 동생, 축복은 형한테 가기 마련, 내가 백 날 애쓴다고 축복을 받아낼 수가 있겠어. 아니야. 나는 그냥 형한테 빌어먹고 살아야지. 우리가 이런 마음도 가질 수 있는데 왜 뺏으려고 했어요?

그게 뭐냐? 형과 야곱 사이는 어떤 사이다? 아까 약속은 어떤 사입니까? 지금 아직까지 모든 게 결정되지 않은 사이다. 이런 상태로 온 거예요.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잘만 하면 뺏을 수 있다는 진행형이다 싸움이다 말이죠. 그러니까 아직까지 전쟁 안 끝났어. 형, 안 끝났어. 누가 이기나 보자. 누가 축복을 받아내나 보다. 싸우는 도중에 있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뭐냐? 미완료죠. 야곱의 마음속에 뭐가 있다? 미완료가 있는 거예요. 그게 우리 마음 아닙니까? 이게 문제점 아닙니까? 거기 나사로가 미완료입니까? 아이, 참 나는 언제 거지되고 부자 될 건가. 이러지 않았어요. 자기가 거지가 되던 개가 와서 핥던지 간에 어떤 상태다? 완료된 상태거든요. 완료된 상태기 때문에 몸이 아파도 거지가 되도 별 개의치 않았던 거예요. 하지만 야곱은 뭡니까? 미완료에요.

사람이 미완료란 말은, 이거는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는 뜻이에요. 이게 인간의 치명적인 인간들의 약점입니다. 다 이루었다 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백 날 이야기해도 미완료에요. 자꾸 우리는 자신을 미완료로 보고 있다 이 말이죠.

사도바울은 이랬습니다. 사도바울은 어느 정도로 완료냐 하면, 내 겉은 후패해도 속은 날로 새롭도다. 얼마나 완료된 사람이에요. 얼마나 완료되었으면 껍데기가 후패해도 별로 그건 중요한 문제 아니다. 이래 본 거예요. 굉장히 완료된 사람이에요. 정말 이런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좋겠노? 내가.

자기의 구원에 대해서 이미 완료된 끝난 상태라고 교회 오게 되면 목사의 입장에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목사는 그 사람을 마음대로 이용해도 괜찮아요. 왜? 싱긋이 웃으면서 목사님 백 날 해보세요. 나 구원받았는데. 이렇게 받아줄 겁니다.

그런데 미완료라고 여긴 교인보고 집사님, 교회 좀 늦게 오셨지요. 막 삐져서 교회 안 나온다니까. 지금 구원받기 위해서 완료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최선을 다하는데 마침 오다보니까 차가 밀려서 못 왔는데 목사님, 섭섭하게. 이래 나온다 하니까. 진짜 완료된 사람은 무슨 소리해도 아까 했잖아요. 싱긋이 웃으면서 싸우자고. 싱긋이 웃습니다.

제가 한 유명한 말 있지요. 진짜 구원받은 사람은 이혼해도 교회 나온다고. 이중에 이혼해보세요. 교회 나올 사람 있는가? 만약에 이혼했다. 교회 나왔다. 밥 먹을 때 뒤에서 뭐라 하겠어요? ( 속닥속닥 ) 성질 더러우니 할 수밖에 없지. 온갖 소리 들어올 텐데. 싱긋이 웃으면서 했습니다. 참, 이래 나올 사람 누가 있겠어요? 어이구, 이러며 딴 데 가죠. 장로 투표 안 나오면 교회 안 나오고, 권사 투표 떨어지면 교회 안 나오고. 이게 야곱이에요.

하나님의 약속의 진수를 모르고 자기가 뭔가 미완료된 내가 자력으로 그 완성을 따내야 되는 것처럼 곡해하고 오해하는 인간, 본인도 힘들어요. 그런데 같이 여기 야곱과 더불어 득세를 하면서 착각하고 있는 사람 주위에 세 사람 있어요. 이삭과 리브가, 에서. 모두다 야곱과 동일하게 전부다 미완료된 그런 것에서 가족끼리 투쟁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26장에 드디어 이삭이 나오는데. 이삭이 복을 받았어요. 12절에 보면,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이 말은 뭐냐? 이 이야기는 현재 야곱에게 주어질 그 복의 혜택에 대해서 이삭에게 먼저 맛보기로 보여준 겁니다. 아버지가 삼성그룹 회장이다. 이병철. 그러니까 이병철이 삼성그룹 회장이니까 그 아들 누굽니까? 이건희. 이건희도 삼성그룹 하잖아요. 아버지가 삼성재벌인데 아들이 망할 리가 있습니까? 그 아들, 손자 누굽니까? 이재용. 그 사람도 지금 상무 아닙니까?

그러니 이게 어떻다는 거냐? 하나님께 아브라함 복은 대대로 누구 계통을? 이삭을 통해서 이렇게 주어졌다. 봐라. 그러니까 이삭은 아브라함의 약속이 이삭 그대로 주어진다. 그런데 이삭 다음에 이삭 같이 복 받은 사람은 누구냐? 하고 시합에 나선 거예요. 그러니까 야곱과 에서는 불똥이 튀지요. 특히 누구냐? 자기 마누라 리브가도 여기서 만만치 않습니다. 백배, 천배 복을 받는 이 복을 내가 미쳤다고 누구한테 뺏깁니까? 그 싸움이 시작된 거예요. 그 복이 아무것도 안 해도 주어지는 복이거든요.

그러니까 저나 여러분들이나 이걸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해도 얻었다 하는 걸 기뻐해야 됩니다. 이걸 우리가 미완으로 생각해서 억지로 따내려고 하면 이거 다 헛짓하고, 그럴수록 주님께서 우리를 약속에서 배제해 버립니다. 배제해 놓고 주께서 하신 걸 우리에게 주신 겁니다. 그 이야기에요.

그리고 그 동네에서 이삭은 바로 아브라함처럼 복 받은 사람, 선지자로써 인정을 받습니다. 그 이야기가 26장 쭉 나옵니다. 어느 누구도 이삭을 함부로 건들 수 없다. 그게 약속으로 굳혀지고, 27장에 들어가면 이삭이 나이 많아서 눈이 어두워서 이제 죽을 때가 됐거든요. 죽을 때가 됐으니까 내가 받은 엄청난 축복권을 대물림을 해야 되는데 대물림 할 때 누구한테 가는가? 당연히 맏이한테 가겠지요. 맏이한테 주려고 이삭이 축복을 합니다.

하는데 이삭이 4절에 보면 축복할 때 그냥 축복하면 안 돼요. 기분 좋은 상태에서 축복해야 되니까 4절에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이거 누구한테 이야기했습니까? 에서한테 이야기했죠. 이미 찍었지요. 이미 이거는 짜고 친 고스톱이에요. 이미 다 확정된 거예요.

자, 이삭이 왜 에서가 축복받을 사람 맞다. 분명히 믿었던 이유가 뭡니까? 참, 이게 재밌어요. 왜냐하면 큰 아들이 누굴 기뻐하길 때문에. 축복하는 자기를 기쁘게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아까 처음에 강의할 때 솔로몬의 기도 가운데 뭐가 빠졌다고 했습니까? 솔로문의 기도에서는 내 원수가 망하게 하는 기도가 솔로몬에게 포함이 안 됐다고 했지요. 이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혜로 그래 된 거예요.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자기 입장에서 기도하기 때문에 자기가 억울한 것, 분통터지는 것, 자기가 참 치사하게 당했던 것 이걸 잊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기도하면서 그게 분노가 되어서 터져 나옵니다. 터져 나오니까 결국은 그걸 누구한테 하소연하지요. 하나님께 하소연하고 사람에게 하소연하게 되면, 그게 자기의 들어있는 본심을 그대로 이야기해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이삭 이야기해 봅시다. 이삭은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서 복을 내린다. 이래 되잖아요. 하나님이 이삭 본인을 통해서 복을 다음 대에 물린다. 라는 것을 알 때 자신이 하나님의 복을 전할 때 기쁘게 내 마음을 흡족케 하는 그것이 하나님도 흡족케 할 것이라고 이렇게 생각한 거예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거 아니에요.

그런데 나중에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부끄럽게 만들죠. 왜냐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에서한테 안 가고, 자기가 원치 않는 누구한테 갑니까? 야곱에게 복이 돌아가는데 그 복이 돌아가는 이유가 누가 봐도 누가 누굴 속인 거예요? 야곱이 누굴 속여요? 아버지를 속였잖아요. 야곱이 아버질 속인 것을 이삭은 어떻게 보느냐 하면, 하나님이 나의 잘못된 결정을 고치기 위해서 나를 속이게 했다. 라는 식으로 이삭이 해석하게 됩니다. 이거 보통 믿음 아닙니다. 다시 하나님께서 나를 깨지게 했다. 와장창 깨지게.

지금 우리가 창세기를 안 읽었다고 하고 창세기가 없다고 생각하고 창세기를 기록하면 이렇게 됩니다. 어린 자는 큰 자를 섬기고 큰 자는 늘 큰 자가 되리라. 아버지 이삭은 큰 자, 에서에게 마음껏 기뻐하기 위해서 별미를 하라 했더니만 에서가 아주 순종해서 곧장 가서 별미를 만들어서 아버지에게 바쳤더니만 이삭은 에서에게 많은 축복을 했고, 동생한테는 저주를 했다. 그 다음 넘어가고.

지금 이야기가 이렇게 돼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에서는 천국 가고, 못된 야곱은 지옥 갔다. 이야기가 그렇게 돼야 돼요. 그렇게 돼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고, 사람들에게 박수 칠만한 게 되는데, 하나님은 자꾸 이 이야기가 꼬이게 만들어요. 늘 꼬이게 만듭니다. 헷갈리게 만들어요. 제가 여러분 헷갈리게 만드는 게 아니고, 성경자체가 헷갈리게 만들어요.

생각해보세요. 이게 어려운데. 야곱이 이삭을 속였잖아요. 맞죠? 그러면 여러분 어떻게 하겠습니까? 나중에 보니까 그게 형이 아니고 동생이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이 못된 야곱아, 니가 속인다고 너한테 복 줄줄 아느냐? 나는 네 형, 에서를 좋아한다. 자, 내 한 약속 무효다. 치우고 어, 형 어디갔어? 그래, 니가 오너라. 이 나쁜 놈 야곱은 저주 받아라. 그리고 착한 형은 니는 배나 복 받아라. 이렇게 하는 것이 인간적인 상당히 순리죠. 그렇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고 분명히 속인 줄 알면서도 야곱에게 축복이 갔다는 이 말은 이삭은 하나님의 개입을 충분하게 수용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은 내 뜻과 어긋나게 약속을 이룬다는 것을 이삭이 그걸 수용한 겁니다.

여러분도 수용해야 돼요. 여러분들이 예상하지 않는 방식으로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구원한다는 것을 수용해야 합니다. 왜? 우리는 넓은 길을 좋아하니까 우린 좁은 길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우린 태생이 넓은 길을 좋아하고 편한 길을 좋아하고 많은 사람이 찾는 길을 좋아하지 외롭게, 외롭게, 외롭게 살아가는 것 우린 제일 싫어하는 거예요.

이번에 참, [하나님의 창조]가 나왔죠. 우리교회 한 것 받아보셨지요. 거기에 열 가지의 불신자들이 갖고 있는 거기 보면 뭐가 나오던가요? 사람들은 뭘 싫어한다 돼있던가요? 사람들은 3번, 4번 보면 나오죠. 뭘 싫어해요? 외로운 걸 싫어하죠. 외로운 걸 싫어하고 이왕 사는 것 정 있게 사는 것, 그게 행복이고 그 정 있게 사는 그것이 나의 미래가 되고 나의 종교가 되겠지요.

거기에 뭐가 없습니까? 십자가가 없지요. 야곱의 이런 이야기도 없지요. 그냥 신께선 자비로운 분이고, 빌면 복주고. 얼마나 간편합니까? 하나님이 나를 칠 필요도 없지요. 왜냐하면 하나님께 잘하겠다고 빌면 그만이니까. 하나님, 저 아시지요. 얼마나 순수한지. 순수한대로 복 주세요. 그러면 아무 문제없다 이 말이죠.

그런데 그 순수함을 하나님께서 박살내버린다 이 말이죠. 너의 순수함을 가지고 나는 일하지 않는다. 너는 순수하다 봤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이삭은 자기 생각만 한 거예요. 자기 욕심만. 내 입맛에 맞는 별미를 만들어라. 라는 조건을 자기가 축복한다고 자기가 걸어버린 거예요. 자기 축복한다는 조건 하에. 그게 일을 통해서 이삭도 아니구나. 하나님이 직접 하는구나. 알지요.

자, 여기서 에서를 불러다가 별미 만들어서 그 에서하고 아버지만 아는 정보를 일러주고, 에서가 나가고 난 뒤에 그 정보를 누가 알았느냐 하면, 엄마가 알았지요. 엄마가 알아서 아들한테 이야기해서 엄마하고 아들 야곱하고 둘이 결탁이 돼서 속이잖아요. 목소리도 속이고 여기 털, 마치 야곱이 에서처럼 위장해서 들어가서 아버지에게 축복을 받아냅니다.

받아낼 때 여기서 어떻게 해석하나 보세요. 큰 자, 작은 자 있지요. 그 다음에 강자, 약자죠. 강자, 약자 그 중간에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에서나 리브가 엄마의 생각은 뭐냐? 일단 큰 자 되면 두 번 다시 작은 자는 없다 이 말이에요. 무조건 큰 자가 복 받으니까. 무조건 강자가 되면 더 이상 약자가 되는 법은 없다 이 말이에요. 이 큰 자 되는 것을 먼저 선점해서 챙기면 되는 걸로 보는 거예요. 이 큰 자가 잡아당겨준다고 보는 거예요.

그래서 그 생각대로 이 엄마하고 야곱은 협잡해서 아버지의 축복을 받아냈습니다. 축복줄 때 아버지 이삭은 누군 줄 알았습니까? 누가 뭐래도 에서줄 알고 축복을 줬습니다. 줬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게 야곱이죠. 이것은 뭐냐? 이삭이 생각하기를 하나님의 약속은 이삭, 내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갈 자에게 영생 줄 자에게 가게 돼있다.

근데 가게 되는데 그 가도록 하는 심부름꾼으로 누가 하느냐 하면, 이삭 자기가 사용되었고, 그 과정 속에서 이삭은 자기 생각이 완전히 평소의 생각이 바뀌어져야 된다는 겁니다. 이것을 이삭은 알게 된 겁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는 뭘 알아야 되느냐 하면 구원받은 사람의 특징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주신 것은 감사한데 그 와중에서 내가 생각한 구원이 아니라 나는 그 도중에서 나는 내 식대로 하면 구원이 나한테 올 수 없는 그런 나쁜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방식으로 구원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내가 원하는 식이라면 절대로 구원이 나한테 주어지지 않을 정도로 나는 죄인 중에 괴수가 된다는 것을 깨닫는 식으로 구원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하나님께 십자가 구원받았다 해놓고 구원받았으니까 그 뒤에 뭘 생각합니까? 수십억의 재산 갖고, 애들은 성적 전교 1등하고, 전교 1등하면 안 되지 전국 1등하고, 그 다음에 시집, 장가가서는 아들, 딸 잘 낳고. 그리고 내가 다니는 교회는 크게 부흥 되고. 이것이 예수 믿기에다가 옆에 줄줄이 딸려오면서 있습니다. 내 아내도 구원받고, 절에 다니는 엄마도 구원받고, 내 아들도 구원받고 그게 옆에 쭉 딸려 나오지요. 내 구원되었으니까 이런 게 딸려 나오지요.

그런데 바로 그러한 생각을 갖는 그것으로 인하여 사실은 무엇이 가려지느냐 하면, 하나님 말씀이 가려진다는 겁니다. 뭐냐 하면, 우리가 이 땅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음에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리라. 먹는 것, 입는 걸로 족하게 여기라는 그 말씀이 나의 이 부풀은 버블, 풍선 같은 이 꿈 때문에 먹는 것, 입는 걸로 족한 기회를 스스로 그걸 배제해버렸다 이 말이에요.

뭔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내가 그런 상상을 하잖아요. 예수 믿고 예수 믿어놨고 나머진 이 세상에서 복 받고 사는 것만 남아있다. 라고 하는 그런 복을 생각하는 그 순간에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이 내 상상력에 밀려서 내 입에서 고백이 되질 않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사람은 다 풀이고 세상 영광은 풀의 꽃 같으니 다 떨어진다. 그런 이야기가 언제나 한번 해본 적 있느냐 이 말이죠. 그건 몸이 아플 때 해봤죠. 뭔가 일이 잘 안 될 때 펀드 넣어놨는데 펀드가 내려갈 때 그때 한번 생각해봤죠. 아이고, 세상만사. 그때나 해봤지 일이 잘 될 때는 주여, 잘되는군요. 더, 더, 더, 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자체가 하나님 말씀을 증거해야 될 텐데 아까 이야기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나와야 될 텐데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나오는 게 아니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로 가득 집어넣고 뭐, 구원받았는데 이쯤은 봐주겠지. 하는 식으로 가득하게 짊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가시면서 그걸 껍데기를 하나하나 젖히고 벗겨내는 식으로 탁탁 우리를 낙심하고 실망케 하는 방식으로 일을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상상력에 가려졌던 진솔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서 다시금 나오게 하는 겁니다.

그게 뭐냐 하면, 나는 바로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이제 이삭은 이걸 느꼈어요. 아하, 하나님은 내 뜻대로 안 해주는구나. 내 뜻대로는 안 해주되 일층 뜻은 안 이뤄져도 이층 뜻은 이뤄지는 거예요. 내 뜻은 안 이뤄지되 하나님 뜻은 이뤄지는 거예요.

그런데 아직도 누가 모르느냐? 에서도 모르고, 야곱도 모르고, 리브가도 몰라요. 에서는 야곱을 때려죽이려 했습니다. 이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 피곤한데 조금만하고 마치겠습니다. 여기 27장 42절에 “맏아들 에서의 이 말이 리브가에 들리매 이에 보내어 작은 아들 야곱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 형 에서가 너를 죽여 그 한을 풀려하나니” 이래 돼있지요. 집안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에서는 이걸 뭐로 보는가? 이층의 일이 아니고, 아래층에서 우리들끼리 할 수 있는 일로 보는 겁니다. 에서가 독이 올랐어요. 아버지는 알아요. 아버지는 알고 세 사람은 몰라요. 그래서 리브가하고 야곱은 도망칩니다.

도망쳐서 나중에 창세기 32장에 얍복강 가에서 누가 압니까? 비로소 두 번째 누가 압니까? 야곱이 알아요. 야, 나는 하나님하고 원수였구나. 내가 형하고 싸운 게 아니고, 사실은 내 성질대로 누구하고 싸운다? 하나님 붙들고 하나님하고 싸우는 그 성질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구나. 내 성질 유지하고 있다가 누구하고 싸운다? 하나님하고 싸우는 거예요.

나는 맞아 죽어도 싼 거예요. 잘못됐다고 빌지요. 용서해달라고 빌고, 살려달라고 빌지요. 축복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고 자식 열두 명 다 때려치우고 살려달라고 빕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비로소 야곱에게 축복을 하니까 야곱이 살았어요. 두 번째 누가 알아요? 이삭 알고 두 번째로 야곱이 알아요.

세 번째 누가 압니까? 에서가 알아요. 왜? 그 동생이 와서 그냥 절하는 게 아니라 ‘내 주여’ 라고 하면서 절을 합니다. 그 과정 보면 네 번째 엄마도 알았을 거예요. 결국은 하나님만이 예수님만이 의인이고, 나머지 모든 인간들은 다 죄인에 불과하며, 근데 죄인이기 때문에 화투 패지요. 죄인에 불과하지만 결국은 죄인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심으로써 은혜 받은 자만 구원을 받는 약속대로 축복을 받고 구원을 받는 그것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입니다.

피곤하신데 꾸벅꾸벅 조시면서 여러분, 들으신다고 애썼습니다. 바라기는 여러분들이 나는 죄인이라고 늘 생각하고 죄인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그냥 안 살아도 될 인생을 하나님께서 보너스로 추가의 하루하루를 오늘 죽어도 그만이지만 아무 탈 없지만 하루하루 하나님께서 추가적으로 계속 보너스 주시듯이 하루하루 인생을 주시면서 하나님 주신 그 은혜를 고마워하라고 주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음에는 27장부터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실 때 어떤 누가 예수님을 좋아할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십자가지고 가는 예수님을 따라간 사람 아무도 없었습니다. 제자들도 다 도망치고 말았고 베드로도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저주했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셔서 용서하시고 구원의 능력 주셔서 죄인이 공짜로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희들도 같은 입장입니다. 거저주신 이 영생을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길 수 있는 저희들 마음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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