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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71204b 부산강의 : 조지 래드 [신학신약]-바울2자유게시판고린도후서

20071204b 부산강의 : 조지 래드 [신학신약]-바울2

이름 : 한윤범(IP:59.6.189.149)

20071204b 부산강의 : 조지 래드 [신학신약]-바울2

(강의:이근호 목사)

성경 한 구절 찾아봅시다. 갈라디아서 1장 15절. 302페이지, 갈라디아서 1장 15절. 14절부터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라고 돼있지요.

‘어머니의 태로부터’라고 할 때 이것은 그러면 임신 몇 개월부터 구원받았다, 택함 받았다는 말입니까? 이건 그런 뜻이 아니고, 손톱만큼도 내가 내 구원에 관여해서 구원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내 구원인데 분명히 내 구원이에요. 남의 구원이 아니고. 내가 죽어서 천당 가고 내 구원임에도 불구하고 내 책임소관이 아니다 이 말이죠.

보통 사람들은 자기에게 자기 행동을 가미하고 부여해야 그게 원인이 되어서 결과가 나한테 유리한 쪽으로 오게 돼 있잖아요.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 않습니까? 놀면 안 되잖아. 뭐 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앞에 뭐라고? ‘열심’이라고 있지요. 분명히 열심을 낼 때는 언제라고? 태중이 아니고 이미 엄마 몸에서 벗어나서는 열심, 열심을 가미했는데

그 열심이 가미한 목표가 뭐였습니까? 그건 조상 때부터 연갑자들한테 배운 그 유대교의 전승, 인간들의 지혜, 전승, 인간들의 철학, 모든 거 종교, 율법 해석 거기에 대해서는 무엇과 연결되느냐 하면, 열심이 연결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 열심에 대해서 사도바울이 누구한테 뒤지지 않았단 말이죠. 한 열심했다 이 말 아닙니까.

그런데 그 열심이 몽땅 헛짓한 거예요. 헛수고한 거예요. 소용없는 열심이었어요. 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인 열심이었단 말이죠. 그게 왜냐하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이 택정하셔서 나로 하여금 스케줄 짜는데 내가 내 스케줄 짜는 게 아니고, 이미 확정된 스케줄을 따라서 내가 그 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러니 사도바울이 사람을 좋게 할 이유가 있다, 없다? 전혀 사람을 좋게 할 수 없어요. 바로 이것을 보통 신학자들은 뭐냐? 이걸 사도바울의 사도의 권위라 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 그거 잘못되었어요. 사도의 권위라든지 다른 권위를 주장하기 위해서 이런 소리한 게 아니고, 전부다 그렇게 하는데 이 대목이 앞뒤 문맥을 봐라.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그게 아니고 생각을, 그러니까 학자들이 생각을 해야 돼요. 공부 좀 해야 된다고.

한번 보세요. 논리가. 아까 논리 해봅시다. 아까 제가 첫 시간 논리가 뭡니까? 이 세대가 어떤 세대라고요? 악한 세대지요. ‘세대’라고 이야기한 것은 이유가 뭐라고요? 인간이 이 세대를 자력으로 벗어날 수 없다 이 말 아닙니까. 그러면 그 이야기를 했으면 충분히 했으면 에베소서 1,2장에 보면 이 세상은 누가 지배하고 있습니까? 세상 신, 악마가 지배해서 하나님의 복음의 광채를 비추지 못하게, 고린도후서 4장 4절에 나오지요. 못하게 장악한다. 사도바울이 다 이야기한 거 아닙니까.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그런 이야기할 때는 내가 어떻게 구원받고 그 이야기하려고 한 게 아니고, 오는 세대도 마찬가지로 나는 뭐, 사도 같다. 이게 아니라 이게 주가 아니라 오는 세대의 성격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 세대에서 인간이 못 벗어난다고 설명한 겁니다. 논리가.

무슨 말이냐 하면, 구원받은 세대는, 구원받았으니까 새삼스럽게 열심내자. 역시 전에 세대에도 안 통하는 것처럼 오는 세대도 안 통한다 이 말이죠. 왜? 스케줄 관리하고 짜고 다하고 누가 하는 겁니까? 그거는 우리가 이쪽 세대인 것처럼 오는 세대의 주도권자에 의해서 그렇게 임의로 인도하는 겁니다. 그게 뭐냐? 세대가 시간론이 갖는 특징이거든요. 인간은 시간론을 못 이기기니까. 지배를 받으니까.

이걸 단순히 이 말씀을 사도권으로 하면 그러면 모든 인간, 성도한테는 해당이 안 되는 게 되는데 모든 성도한테 공히 오는 세대의 혜택을 입습니까, 안 입습니까? 다 똑같이 입게 돼있어요. 그래서 관심사가 뭐냐? 나 사도다, 사도 아니다가 관심사가 아니라 도대체 오는 세대의 주인공 되신 예수님은 어떤 걸 몰고 오시는가? 관심사가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가에 관심을 돌릴 수 있는 말씀이 되겠지요. 해석이 그렇게 되겠지요. 관심사가 그렇게 되는 겁니다.

설교 하실 때 항상 결론은 우리가 이걸 하자가 아니라 주님께서 이렇게 하십니다. 라고 해서 설교 마지막 끝나고 그들이 교인들이 집에 돌아갈 때 아, 주께서 이런 일을 하시는구나. 보이지 않는 분이지만 이런 일을 나한테 지금 계속해서 퍼붓고 있구나. 그걸 듬뿍 안고 그래서 집에 가도록 해줘야죠.

왜냐하면 내가 열심히 한다하면 그거 교회 문 열고 나가서 세 시간 반도 안 되서 다 날려버려요. 오래 못가요. 백만 한 번, 백만 두 번이 안 됩니다. 건전지, 약 닳아 오래 안 가요. 계속갈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내가 어떻게 하든지 간에 이렇게 하신다. 그걸 이야길 해줘야 돼요.

이 둘째 시간의 주제는 오는 세대가 어떤 현상들을 야기 시키는가? 이 래드의 말을 따라가 봅시다. 래드 오늘 이 강의 대목에서 아주 좋은 말들을 많이 해서 제가 기분이 좀 좋은데 약간 만족스럽진 않지만 기분이 좋은데. 그중에서도 특히 래드가 뭐라 하느냐 하면, 성령에 대해서 설명해요. 오는 세대에서 뭘 한다? 성령을 이야기해요.

성령을 이야기하는데 래드의 논의를 따라서 가봅시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이래 돼있지요.

여기서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할 때에 ‘율법의 행위’하고 ‘믿음’이 분명히 구분되어 있지요. 분명히 그렇지요. 그런데 구분돼 있는데 이 구분이 이해할 때는 그냥 이해하면 이게 구분이 안돼요. 왜 구분이 안 되냐 하면, 봅시다. 적어볼게요. 율법의 행위잖아요.

우리가 선입감이 있는데 선입감 없애버리기 위해서 ‘율’자를 뽑아 봅시다. 율자를 하면 뭐가 되죠? ‘법의 행위’죠. 그러니까 법의 행위니까 모든 행위에 뭐가 따른다? 법의 행위가 뭔 뜻이에요? 법을 준수하려는 목적을 가진 행위 아닙니까? 그럼 법을 지워버리면 인간의 행위 속에는 항상 그 나름대로 뭐가 있다? 어떤 목표점, 저렇게 해야지 하는 법의 준수가 있지요. 그렇지요. 이건 이해됐다고 칩시다.

그럼 믿음은 뭡니까? 이게 문제가 되는 거예요. 믿음은 행위 아닙니까? 이게 믿을 때 어떤 요 정도 돼야지. 라는 그런 목적 없어요? 다 있잖아요. 나도 열심히 믿어서 기도할 때 5초 만에 끝나지 말고 한 3분 넘겨야겠다. 그런 게 있단 말이죠. 일반교인들한테. 나도 믿음이 있어서 교회 나올 때 억지로 나오지 말고 기쁨으로 나오고 예배 마쳐도 기쁨으로 나갔으면 좋겠다. 은혜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 그게 그때는 뭡니까? 내가 믿자, 믿자, 믿자. 하지 않습니까?

믿자 끝에 뭡니까? 목표. 이걸 오스틴은 뭐냐 하면, 언어행위론이라 하는데. 믿자, 행동, 권유 모든 것이 언어가 아니라 언어 자체가 행위를 말하는 언어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언어치고 행위를 안 말하는 언어는 없다 이 말입니다. ‘믿습니까?’ 라는 말은 뭐냐 하면, 권유인 동시에 명령이 되는 거예요. 안 믿기만 해봐라, 씨. 이 뜻이다 말이죠. '믿습니다'란 말은 말만 믿는다는 뜻이 아니에요. 어떤 인간도 믿습니다 해놓고 말만 믿는다 소리 안 합니다. 믿습니다 하는 건 지금 믿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뜻이에요.

갑자기 믿습니다 하니까 옛날 생각 잠시 나네. 새부산교회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오스틴을 모르는 거예요. 용어 사용법을 몰라서 그래요. 예를 들어서 제가 여러분께 예수 믿으십니까? 라는 말은 묻는 게 아니고, 내가 확인하겠다는 그 말이 아니라 알아서 믿으세요. 란 뜻이에요. 그러면 맡기면 되는 거예요.

이리와. 내 검사 하겠어. 이런 단어는 없어. 이 세상 이런 단어는 없어요. 물 마시세요. 5초 후에 마실 수 있고, 이틀 뒤에 마실 수 있는 거예요. 알았어, 알았어. 그거는 본인한테 이미 넘어간 겁니다. 확인하면서 믿으세요. 하는 이것은 용납이 안 돼요.

믿음이 뭐냐? 행위의 연장이 되고, 일정이 되죠. 그런데 갈라디아서 2장에서 어떻게 됩니까? 갈라디아서 2장에서는 지금 이걸 래드가 설명 안 해주고 있어. 설명을 못해 주고 있어요. 래드도 잘 몰라. 이 대목에 있어서는. 율법의 행위와 뭘 구분한다? 믿음을 구분하니까 믿음은 어디에 속하면 안 됩니까? 어떤 이유라도 믿음은 어디에 속하면 안 돼요? 율법의 행위에 속하면 안 되지요. 다시 말해서 법적인 행위, 행위의 목표에 있는 그 행위에 속하면 안 되지요.

그런데 인간의 행위 가운데서 이거 안 속할 재주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죽어야 되죠. 그럴 때 나온 게 뭐냐? 바로 성령에다가 이 계열을 믿음을 어디로 하느냐 하면, 믿음을 행위 주체자가, 율법의 행위 주체자가 누굽니까? 나잖아요. 난데 믿음은 뭐로 보느냐 하면, 선물로 보는 거예요. 성령의 선물로, 믿음을. 그리고 그 선물은 줘놓고 가버리는 게 아니라 줘놓고 잡아당기는 거예요. 바다낚시 하듯이. 선물은 꽂히게 되면 잡아당기면 당기게 돼있어요.

참, 이거 어렵게 해봅시다. 여러분도 이런 거 알고 있어야 돼요. 인간의 모든 언어와 말은 단절, 끊어지는 게 아닙니다. 반드시 거기에 행위로써 연결되게 돼있어요. 예를 들어서 아, 나 조용필 보고 싶다. 조용필은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지요. 우리는 그 말로 끝났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조용필 무지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요. 내 앞에서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난 조용필 하면 쥐 박고 싶다. 싫어하는 사람 있다고요. 그런데 마음속에 뭐가 남아 있습니까? 한 사람은 조용필이 좋다, 한 사람은 싫다가 남아있지요. 이게 자기로서는 그게 끝난 줄 알았는데 끝난 게 아니고, 우연히 식당에서 조용필이 만날 때 눈동자의 동공의 열림이 달라요. 너무 보고 싶은 조용필이. 동공이 다르고, 한 쪽은 동공이 찌그러집니다. 아이고, 저 인간 또 나타났다. 저거 안즉 안 죽고 뭐하노. 이게 달라졌어요.

나훈아 좋아하는 사람과 나훈아 싫어하는 사람 있어요. 남진 팬들 나훈아 싫어해요. 나훈아 아파서 지금 활동 못해서 좋아서 입이 벌어져 있고, 나훈아 좋아하는 사람은 아이고, 아프면 안 되는데 더 무대에 서서, 안녕하십니까. 청춘을 돌리도 한번 불러야 되는데. 이래 하는 사람 있다고요.

사람이 어떤 말을 내뱉는 것은 감정이 우선이지 언어가 우선이 아니에요. 솔직한 감정이 그냥 언어로 어설프게 나온 것뿐이에요. 자기 깊은 샘들은 따로 있다고. 성령에 의해서 믿음이 주어지게 되면 그 믿음은 예, 알겠습니다. 주셨으니까 이제는 볼 일 보시고, 나는 이 믿음 가지고 내가 하겠습니다. 이런 믿음은 없어요.

성령이 주신 믿음은 반드시 모든 영광을 예수님 쪽으로 영광을 돌릴 게 우리 속에 그게 잔재 돼있어 남아 있어요. 물론 우리도 이게 남아있어서 율법의 행함도 남아있고 이것도 남아있다고요. 남아있으니까 항상 우리는 반성하고 이게 죄라는 것을 알잖아요.

그래서 성경에서 어떤 말씀이 주어지면 이거는 내가 알아서 지키겠습니다. 이렇게 탁탁 끊을 수 없는 그런 말들을 이 세상에서 사용하고 성경에서도 사용합니다. 믿는다 할 때는 뭘 믿느냐 하면, 이거 잘 들으세요. 믿는다 하는 것은 나의 행위를 일체 믿지 않는다가 항상 전제 돼있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성령께서 믿음을 선물로 줄때는 마, 이거는 아니야. 율법의 행위는 아니야. 라고 지적하면서 줬을 것입니다. 안 그러면 야, 내 믿음 선물로 줄 테니까 성경책 가지고 율법의 행위 제대로 하란 말이야. 그래 주실 거예요.

그게 아니고 갈라디아서 2장 15절에 말씀에 의하면 뭐뭐는 아니고, 뭐뭐라는 것을 하나의 선물 보따리에 담아서 그냥 왔기 때문에 항상 성령의 믿음을 받게 되면 율법의 행위는 아니야. 율법의 행위는 아니야. 이것이 언제든지 떠나지 않고 항상 생각나게 돼있어요. 율법의 행위는 아니냐. 법의 행위는 법 지키는 행위는 아니야.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될 수 없고, 나의 의가 될 수 없어. 이게 항상 잊혀지지 않게 돼있습니다.

그러면 스스로 묻는 거예요. 그럼 나는 이런 짓도 하고, 요런 짓도 하는 나는 아하, 이것은 하나님의 십자가에 나온 선물로 구원받는구나. 십자가 능력으로 구원받는구나. 이게 어떻게 잊으려야 잊을 수가 있습니까? 잊을 수가 없지요.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걸 어떻게 잊을 수가 있습니까?

그런 잊지 못하는 교인들이 한 열 명이 왔다고 합시다. 그때 목사가 설교하면서 여러분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할 때에 자다가도 아멘 합니다. 소위 자칭 믿음 있고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면서 가라로 가짜로 열 명 앉았을 때 목사가 여러분 된 것은 하나님 은혜입니다. 하면 거기서 교인들이 분통을 터뜨려요.

목사님, 그거는 기본이고 다 아는 거고요. 앞으로 뭘 어떻게 지킬까 그 이야기해달라고. 이미 그거로 뿔다구 나서 도분나서. 도분이라는 말을 오랜만에 전달한다. 도분나서 교회 문 나갈 때 다시 오는가 봐라. 이래 됩니다.

그러니까 뭘 이렇게 무슨 행동을 가미하면 그 행동이 나에게 축복 되는 쪽으로 은근히 바랐는데, 법적인 행동을 바랐는데, 은혜 된 것은 하나님 은혜입니다. 이래 나오니까 속에 원래 없기 때문에 내 속에 없는 소리 왜 하느냐 이 말입니다. 내 믿는다 하잖아. 그건 아는 거고 딴 이야기 하라니까. 그래 이야기하면 성령의 선물하고 관계없는 거죠.

그 대목은 래드는 이야기 안 했어요. 그 뒤의 이야기를 했어요. 이걸 성령을 이 사람은 뭐냐 하면, 좋은 말 했어요. [착수금]이라 했어요. 어떻게 용어가 확 와 닿지요. 이 용어 쓸 때 성경에는 뭐라 돼있습니까? ‘보증금’이라 돼있는데 보증금보다 착수금이 더 확 닿아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관심이 돈에 있으니까. 착수금을 누가 지불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착수금을 내가 마련했다면 내 행함으로 구원받아요.

그런데 그 착수금을 누가 지불했느냐 하면, 이미 착수금을 지불한 분이 이미 우리의 운명을 확정짓는 분입니다. 착수금만 삼키고 그 다음부터는 내가 알아서 하는 게 아니고, 착수금을 제공한 그분에 의해서 나머지 불입금도 그분이 마저 채우면서 나가게 돼있습니다. 이게 오는 세대의 특징입니다.

이 사람은 이걸 가지고 아주 약간은 추상적이지만 부활의 능력이다. 이렇게 하는데 부활의 능력이란 틀린 말은 아닌데 와 닿질 않아요. 성령의 착수금을 이야기했으면 그 다음부터 좀 더 나가야 되는데 이거는 성령의 착수금은 별로 안 나오고 그걸로 해놓고 다음에 부활로 넘어가 버렸어요. 그래 놓고 오는 세대의 자체는 설명을 안 해 놨어요.

그럼 제가 이 미진한 것을 메워야 되는데. 일단 이 사람의 논리를 따라가 봅시다. 이 사람이 성령 이야기 해놓고 착수금 이야기 해놓고 그 다음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가? 성령의 착수금 받은 사람을 가지고 무슨 사람이냐 하면, ‘신령한 사람’이라고 했어요. 여기 지금 바울 사상의 원천, 사도바울과 계시 그 대목입니다.

그 신령한 사람을 설명할 때 아주 너무너무 중요한 성경구절 하나 댔습니다. 아, 그거 내 박수 치고 싶어요. 정말 중요한 대목을 안 빠뜨렸다는데 대해서 내가 칭찬하고 싶은데 그 대목이 뭐냐? 우리 다같이 찾아봅시다. 고린도전서 6장 12절.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저자는 뭐냐 하면, 자유라고 본 겁니다. 어디 자유냐? 신령한 것에서 온 자유죠. 이분이 오는 세대의 특징이란 말을 사용 안 했지만 저는 그 말을 붙였습니다. 지금 다시 해봅시다. 사도바울은 이미 전에는 무슨 교였다? 유대교였죠. 그 유대교 통째로 악한 세대에 소속돼버렸죠.

근데 다메섹 사건으로 예수님 만나고 난 뒤에 무슨 교로 바꿨습니까? 기독교인으로 바꿨지요. 기독교인으로 바뀜으로써 오는 세대에 소속돼버립니다. 오는 세대에 소속돼버리면 율법의 행위는 안 돼요. 왜? 율법의 행위라 하는 것은 어디 소속돼있다? 옛날 세대에 소속돼있기 때문에 율법의 행위로써 의롭다함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럼 뭐냐? 율법의 행위라 하는 것은 내가 뭐든지 내 쪽에서 시작을 행위 주체자가 난데 내가 시작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결국 뭐냐 하면, 그럼 구원 못 받는다는 말인가? 샛문이 없어요? 하늘나라 들어가려고 하니까 들어오지 마라 하는 거예요. 그럼 옆에 작은 문이 없냐 이 말이죠.

그런데 뭐라고 합니까? 성령님께서 착수금을 주죠. 성령을 받아 버리면 그게 뭐가 되느냐? 그게 우리에게 선물이 되고 선물이 도착한 상태를 뭐라고 합니까? 두 자로 ‘믿음’이죠. 믿음이라 하는 것은 반드시 그 앞에 믿음이라 하는 뒤에 무슨 믿음, 그 뒤에 말 해봐. 그 뒤에 말해 봐. 하면 뭔 뜻입니까? 믿음하면 그 뒤에 ‘선물’이다. 또또 더 끄집어내봐. ‘성령의 선물’이다. 요래야 믿음이 짝이 맞다 말이죠. 그래야 행함이 자꾸 배제되니까. 행함 쪽에 안 가니까. 믿었다. 그 이야기해봐. 선물이야.

구원은 선물입니다. 근데 어떤 선물이냐? 버림 받은 자의 선물이에요. 이게 중요해요. 구원은 그냥 선물 주는데 우리가 환영하신 분에게서 오는 선물이 아니고, 우리가 떠밀고 우리가 싫어하고 지금도 우리는 외면하고 싶은 그 주님으로부터 우리 손으로부터 버림받은 분으로부터 오는 선물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버림받은 분을 더 이상 천시할 수 없죠. 천대할 수 없죠. 돈 때문에, 우리 자신의 스스로 먹고사는 것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천대할 수 없어요. 우린 매일같이 주님의 말씀을 얼마나 무시합니까? 이명박의 그 이야기 듣고 싶어 하지, 예수님 이야기 안 듣고 싶잖아요. 그러면서도 선물은 선물대로 꼬박 다 받았잖아요. 버림받은 자한테.

그래서 믿음이라 할 때는 나 믿는다, 믿는다. 믿음에는 세 가지가 있다. 뭐냐? 지적인 믿음이 있고, 감정적인 믿음, 그 따위 소리 하지 말고. 그런 것은 종교고. 종교는 뭐라 했습니까? 내가 주체가 되서 내가 소유하는 게 종교잖아요. 종교가 아니고 뭐냐 하면, 복음은 항상 주체자가 저쪽의 선물이고, 그 선물은 성령이 되는 겁니다.

성령이 와서 선물을 받게 되면 뭘 배태한다 할 때 이 저자는 뭐냐 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았으니까 그 다음에 뭐냐? ‘신령한 자’로 가버려요. 그래서 제가 여기서 약간 의아해 했죠. 야, 래드, 래드 위험하다, 위험하다. 왜 위험하냐 하면, 성령을 받은 자를 신령한 자로 봐버리면, 사도바울 서신에서 문제가 야기됩니다. 어떤 문제냐 하면, 내가 위험하다 했는데 예상대로 그 위험 쪽으로 가버렸어요.

뭐냐 하면, 신령한 사람이 있고, 어린애 같은 사람이 있고, 육적인 사람이 있고, 육의 사람이 있고. 갑자기 교회에서 뭐가 생겨버렸어요? 계급이 발생 돼버렸어요. 계급이 발생되면서 이 사람은 그만 여기서는 처리 불가, 난 모르겠다. 나자빠져버려요. 난 사도바울이 이야기한대로 했을 뿐이지, 그러면 어린애 같은 사람이 만약에 죽을 때까지 어린애 같으면 지옥 가느냐, 천당 가느냐? 난 몰라. 그럼 어린애 같은 사람은 성령 안 받았단 말인가? 그것도 몰라. 육적인 사람은 성령 받았고, 육의 사람은 성령 받았나, 안 받았나? 그것도 몰라. 나중에 나올 거예요. 내 다 읽어봤으니까.

본인도 입장 난처하게 돼버렸어요. 왜 난처하게 돼버렸느냐 하면, 이걸 자충수라 하는데 스스로 안 죽을 대마가 지가 놓아서 다 죽여 버리면 그게 자충순데. 성령을 받은 사람이 신령한 사람 맞잖아요. 그렇죠? 이 사람은 이래 주장해요. 성령 받은 사람이 신령한 사람 돼버리면, 그럼 나머지 나오는 사람, 육적인 사람, 어린애 같은 사람은 뭘 안 받은 사람이 돼버려요? 성령을 못 받은 사람이 돼버리고, 기껏해야 성령을 못 받은 상태에서 성령을 받은 사람을 추구하는 정도, 열심내서 따라 붙으려고 하는 사람. 그거 무슨 소용 있습니까? 그것 역시 이 세대에 속하는데. 소용없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래서 그 공식은 안 되고. 어떻게? 성령을 받았는데 종류가 네 종류의 사람. 신령한 사람, 어린애 같은 사람, 육적인 사람, 그리고 아예 육의 사람은 성령 안 받았으니까 이건 제쳐두고. 일 단계, 이 단계, 삼 단계 이렇게 만약에 성령 받아놓고 이 세 종류가 있다고 한다면 그 다음부터 뭐가 문제가 되느냐 하면, 그러면 어떤 인간이 있을 때 그 인간을 A등급과 B등급과 C등급으로 구분을 질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구분 질 수 있을까요? 너는 말이야 B등급, 어린애 같아. 너는 C등급, 육적인 인간이야. 너는 A등급 신령한 인간이야. 구분 짓기가 곤란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신령하다고 생각하다는 그 그룹 내에도 에이플러스 있고, 에이제로, 에이마이너스 있을 거 아닙니까? 그렇지요? 신령도 다 같은 신령이냐. 어데 초자 신령 가지고. 난 얼마나 능숙한 신령인데. 신령 속에도 등급이 있고 그러니까 안심이라든지 이거는 돼지, 소 부위처럼 이게 어디서 초자 신령이 선배 신령을 못 보고. 이럴 수가 발생돼요.

제가 말 억지로 하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이것에 승부 걸면서 목회합니다. 목회가 여기에 승부 걸어요. 다 구원받았다 하니까 구원 받은 게 끝이 아니고, 여기서 등급을 높이는 에이 중에서도 에이플러스 등급을 받자.

제가 혼자 생각해 봤어요. 사도바울이 삼층천 갔다 왔잖아요. 돈 얼마 먹이고 갔다 왔습니까? 얼마 주고 갔다 왔습니까? 돈 한 푼 안 드렸잖아요. 그런데 만약에 사도바울이 돈 한 푼도 안 드리고 삼층천을 봤을 때 나는 삼층천을 못 봤다 이 말이죠. 만약에 돈 주면 보여준다면 돈을 얼마나 내면 적당하겠습니까? 아마 있는 재산 더하기 내 생명까지 바쳐서라도 우리는 보고 싶어 할 거예요. 그것만 보면 땡이니까. 타짜지요. 최고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걸 보고 난 뒤에 몸에 뭐가 왔느냐? 자기가 바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주님 쪽에서 뭘 박아 놔버렸어요. 그것도 누구한테 시켜서? 그것도 미운 사탄을 시켜서, 사탄을 천사를 시켜서 가시를 박아 놨는데 이거 빼달라고 세 번 기도해도 안 되지요. 그래 이거는 박아 놨거든. 박아 놓은 이유를 사도바울은 내가 자고하지 않기 위해서, 내가 약한 데서 오히려 하나님 은혜를 더 높이기 위해서 했다 이 말이죠.

자, 그렇다면 왜 그런 소릴 하느냐 하면, 신령하다는 것을 이쪽, 인간 쪽에서 측정하면 극히 위험하다 이 말입니다. 지금 사도바울이 증거하는 게 다음 중 어느 것이냐? 1번, 나 신령하다. 2번, 삼층천 봤다. 3번, 나 부족한 가운데서 하나님 은혜 넘친다. 몇 번 입니까? 3번 아닙니까. 그러면 3번 같으면 모든 성령 받은 사람은 왜 사도바울처럼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느냐 말이죠. 나 부족하지만 주님 은혜 나한테 족하다. 왜 그런 소릴 못하느냐 이 말이죠. 뭘 그 사람의 마음을 현혹케 해서 이렇게 혼돈하게 만드느냐 말이죠.

그게 목사들이 목회하면서 승부를 어디다 하느냐 하면, 이게 등급 올리기에 승부 걸다 보니까 스스로 자긴 어린아이라고 여기고, 스스로 자긴 육적이라 해서 아예 어떤 때 난 포기 묵어요. 늦게 시작해놓고 많이 알아라. 난 돈이나 벌란다. 아이고, 따라가도 안 되는데 우야노. 안 되는데. 바빠서 교회 못 나오겠는데 우야노. 신령한 족들, 명품족들 많이 해라. 난 아예 안 갈게. 그래서 포기해버린 사람 많습니다. 젊은 애들. 예, 믿습니다. 하고 교회 안 나옵니다. 왜? 신령한 것은 조금 있다 늙은 다음에 신령하고 지금은 신령한 것까지 신경 못 쓴다.

박영선 목사 설교 아주 위험하죠. 문제는 그것보다 더 이전이지만 껍데기라도 위험한 거예요. 그 위험을 래드도 똑같이 저지르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했습니다. 제발 이 세대고 저런 세대고 간에 인간 쪽에서 파악하는 식으로 성경해석을 좀 하지 마라 이 말이죠. 오는 세대 같으면 주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느냐는 쪽으로 해석이 돼야지 우리가 나는 등급이 몇 등급이고? 그런 파악할 수 있는 여지조차 그걸 해선 안 된다고 보는 겁니다. 저는.

그럼 여기 보면 그러면 이 사람이 고린도전도 6장 12절에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하는 이 대목. 이 대목을 래드는 신령한 족에 속한 명품족에 속한 것으로 봅니다.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거는 절대로 아니라고 봅니다. 모든 성령 받은 사람은 모든 것이 가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한테 개인의 자질한테 묻지 마세요. 그거는 오는 세대, 이 세대의 특징을 몰라서 그런 소리하는 거예요.

여기서 좀더 어렵지만 시간론을 다시 해봅시다. 요건 상당히 어려운 대목인데 조금 참으시기 바랍니다. 묵시의 세계에서 지금 역사 세계는 항상 과거가 누적이 되어서 현재를 만들어요. 과거가 개인적으로 심리적으로 인간의 기억 속에도 과거 기억 밖에 없는 것뿐만 아니고, 현재란 자체가 순수 과거가 밀어내는 거예요.

그래서 과거 그리고 현재라는 이름의 과거 그리고 미래란 이름의 과거에요. 왜냐하면 미래 가봤자 과거가 누적된 게 미래가 쌓이니까. 하나의 탑이죠. 층층이 쌓입니다. 내가 비록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운전면허 처음에 할 때 뭐가 어떻게 하고 이런 거 기억 못하더라도 지금은 운전면허 할 때보다 지금이 미래 아닙니까? 미래 오더라도 그때 그 법칙 하나 못 외워도 운전 잘 하잖아요. 이미 숙달됐기 때문에. 숙달됐다는 말이 뭐예요? 과거의 모든 기능이 누적이 돼있어서 과거 없는 현재 없고, 과거 없는 미래가 없어요.

그래서 역사라 하는 것은 과거의 이걸 순수 과거라 하는데 순수 과거가 이겁니다. 이것은 바로 내 행위에 누적된 겁니다. 이러한 시간론에 의해서 인간은 결국은 과거의 동선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런 입장에서 이런 시각에서 어렵다는 게 뭐냐 하면, 이 세대의 시각에서 오는 세대를 보는 것, 1번. 2번, 오는 세대에서 이 세상을 보는 것. 이게 시간론이 달라요. 참 다릅니다.

이 세대에서 오는 세대를 봐버리면, 오는 세대가 뭐냐? 이건 미래가 됩니다. 그러면 여기서 보는 미래는 미래가 아닙니다. 예견 또는 예상입니다. 예견과 미래의 차이점은,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이 세대에서 오는 세대를 보는 그 관점입니다.

예견이라 하는 것은 지금을 포기 못해요. 지금 포기해버리면 지금이란 과거 바탕을 없애면 미래가 없으니까. 지금을 밀어붙이는 거예요. 그 사람이 열심히 공부합니다. 열심히 공부한 것을 밀어붙여서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서 수능에 합격해서 대학 들어가거든요. 지금 공부 안 하면 미래가 보장이 안 돼요.

취직하려하면 컴퓨터 배우고, 영어 배우고, 운전면허 배우고 다 배웁니다. 왜 배웁니까? 취직이란 미래는 이미 여기서 예상하고 있습니다. 예상만 하면 안 되지요. 예상을 대비해서 지금 나라는 것을 밀어붙여야 되니까 현재 밀어붙여야 되니까 지금은 준비해야 돼. 준비된 자만이 미래가 보장되니까. 모든 것을 획득하니까. 그러니까 나를 포기 못하죠. 예견이라 하는 것은 현재를 끌고 가는 거예요.

근데 미래라 하는 것은 그걸 비껴갑니다. 마중을 나오는데 빨간 옷을 입은 사람 만난다. 하니까 여기서 빨간 옷을 미리 생각해. 빨간 옷, 모자도 빨간, 알겠습니다. 내 갈게요. 한데 안 오는 기라. 나중에 벌써 왔어요. 못 알아보는 거예요. 아이고, 빨간 옷 해놓고 왜 엉뚱한 길로 옵니까? 내 빨간 옷 봐라. 빨간 내복 보여주는 기라. 안 보이죠.

그게 뭐냐? 십자가의 비밀 아닙니까? 분명히 왔는데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요. 그건 뭐냐? 과거 때문에 과거가 죄가 되서 과거가 틀이 되서 잘못이 되니까 현재에 예견한 것이 과거의 누적된 잘못된 틀어진 해석학이 누적이 되니까 메시아가 엉뚱한 메시아를 마중이 나오니까 만날 리가 있습니까? 못 만나죠.

예수님이 오심은 사람들이 천만 명이 아무도 예상 못한 대로 옵니다. 예수님 엄마, 마리아가 예수님 구원받는 방법. 자기는 그런 시나리오를 짠 적이 없어요. 내가 아기 예수를 얻고 이런 시나리오 짠 적이 없어요. 그런데 놀라죠. 왜 갑자기 임신입니까? 그것도 처녀가. 근데 그 시나리오는 뭡니까? 마리아는 생각하기를 과거의 내가 이렇게 요렇게 예상해서 구원받는 게 아니고, 미래가 내 허락도 없이 나에게 덮쳐버리니까 내 예상에 빗나가게 나에게 구원이란 사건이 터져버린 거예요.

그게 바로 아까 이야기한 이미 이 세대에 오는 세대가 덮쳐버린 겁니다. 고속도로에서 조그만 티코가 앞차하고 박았어요. 그러면 정면충돌하면 티코는 10톤 트럭 밑에 깔려 들어가 버리고 그 위에 뭐가 덮칩니까? 10톤 트럭이 덮쳐서 납작하게 만듭니다. 그게 구원입니다.

그래서 참, 목사들이 설교하기 어려운데. 성경본문을 볼 때 교인들이 이미 그 본문에서 미리 봅니다. 보고 누적된 들었던 게 안 있습니까? 아, 오늘 설교 이럴 거다. 그 예상대로 해주면 지루하죠. 미래가 그들이 예견을 보여주면 안 되고, 미래가 와야 돼요. 그건 몰랐지. 하고 덮쳐버려야 돼요. 덮쳐버릴 때 주님의 하신 일은 내가하는 일과 빗나가는구나. 알아요. 그리고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고, 뭔가 다른 분이 나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 되려면 설교자 본인이 주여, 저는 이 정도 아는데 이것 말고 더 주이소. 이건 내가 아는 거고, 이것 말고 내가 깨질 수 있는 이것마저 안다고 하는 이것조차 깨질 수 있는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끌어안고 간절히 간청할 수밖에 없죠. 그래야 목사가 설교하면서도 본인도 은혜 받지. 자기가 과거에 아는 게 아니니까. 이건 몰랐던 거니까.

그래서 목회하면서 기쁨이 숫자가 늘어나는 기쁨도 있지만 큰 기쁨이 뭐냐 하면, 저 인간 때려죽여도 절대 교회 안 나옵니다. 하는 사람이 나왔을 때 아, 설교할 때 신납니다. 오셨군요. 안 오는 줄 알았더니만. 그런데 이번 주 왔으니까 다음 주 올 줄 생각하지요. 안 나옵니다. 그럴 때 다시 한번 교회 관리자가 교회 목회자가 주님이지 내가 아닌 걸.

나는 자꾸 과거만 생각해서 나와야 될 건데. 과거만 생각하는 이놈, 이것이 바로 나의 악한 이 세대에 속한 버릇이에요. 그러니까 자기가 구원받은 건 기뻐하지 않고, 왜 지난 주 나온 교인 안 나오느냐고 주님 앞에 대드는 목사 돼버려요. 자기가 구원받은 상황은 잊어버리고 구원받은 기쁨은 잊어버리고 지가 펄펄 살아서 주님하는 일에 대드는 거예요.

그래 놓고 자기는 신령한 자라고 자처했으니까 신령한 꼴 좋~다. 내가 보기엔 어린애보다 더 못해. 미리 이야기합니다만 성령 안에 있는 사람은 어린애 같은 것, 신령한 것, 육적인 거 본인한테 다 해당됩니다. 언제까지? 95살 때까지, 죽을 때까지. 죽을 때까지 매일같이 해당됩니다, 그거는.

그래서 어떤 성경말씀도 이건 나한테 해당 안 되고 그런 말씀이 없어요. 모든 성경말씀이 다 나한테 해당돼요. 내가 바로 육적이고, 내가 어린아이고, 내가 바로 신령한 사람이에요. 어떤 경우도 마찬가지에요. 그건 주님 소관입니다.

예견은 현재를 밀어붙이는 것이고, 미래는 현재를 부정해버리는 거예요. 이걸 손성식 목사님은 많이 자주 이야기하는 게 있죠. 묵시가 역사를 공격하는 겁니다. 그래서 어려운 게 뭐냐? 저는 미래라 했잖아요. 여기서 보면 미래에요. 근데 미래가 현재로 되면 그게 미래가 아니고 현재가 돼버리죠. 미래란 말을 쓴다는 자체가 반칙이 돼버리죠. 예?

사람들은 미래이라는 것은 아직 오지 않은 거잖아요. 아직 오지 않았으면 오지 않은 동네에서 놀지 왜 이미 온 동네에서 노느냐 말이죠. 왜 오느냐 말이죠. 가라 이 말이죠. 그거 누가 이야기했습니까? 마귀가 이야기했죠. 예수님께서는 오는 세대 멸망하지 왜 미리 왔습니까? 왜 미리 와서 우릴 멸망시키려 합니까? 그게 마귀의 생각이 인간적인 생각하고 동일한 겁니다.

그래서 아하, 이렇게 오는 세대에서 보는 시간론에서 문제가 있어요. 왜냐하면 미래가 현재가 돼버리니까. 미래가 현재가 되면 미래는 없지요. 그래서 요거 말이 어렵기 때문에 현재-미래를 사용 안 하고 한꺼번에 사용한다고 그걸 뭐라고 하느냐? 이걸 ‘묵시’라고 이야기하죠. 묵시란 말은 시간개념에 속하는 게 아니고, 계시개념에 속하는 겁니다. 이게 요한 무슨론? 묵시론. 이건 뭐냐 다른 말로 하면, 요한계시론이에요. 이거는 묵시란 말은, 하나님의 계시가 활짝 열린다는 뜻입니다.

이걸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큰 극장이 있잖아요. 무대가 스크린이 있습니다. 자, 우리는 시간을 잽니다. 어이? 왜. A라는 무대 앞에 이 지점에서 B, 무대 끝까지 이거 한 몇 미터 되겠노? 그거 한 50미터 되겠다. 50미터? 우리 걸어가면 몇 초 걸리겠노? 걸어가면 한 10초 걸리겠나. 함 가보죠. 가본다고. 1초, 2초 가죠. 가는데 갑자기 걸어가고 있는데 스크린에 영화가 떴어요. 그림이 떴어요. 이 그림은 언제 떴습니까? 개인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하고 아무 상관없이 그냥 떴지요.

결국 이것은 알 수 있는 것은 시간론이라 하는 것은 아까 제가 뭐 했다고요? 인간이 어디에 예속된다? 시간에 예속된다 했지만 가만히 따져보니까 시간이 인간을 예속하는 게 아니고 인간이 뭘 만들어낸다? 자기 시간을 만들어내요. 그것을 고발하고 그걸 도출시키는 게 바로 한꺼번에 시간과 상관없는 세계가 들이닥칠 때 아하, 인간은 시간은 지가 소유했구나. 그걸 가지고 무슨 시간? ‘각자 시간’이에요. 제가 지어낸 용어에요. 쉽게 하려고.

사람은 똑같은 공간에 똑같이 있어도 지루한 사람이 있고, 빨리 간 사람이 있어요. 각자 시간이에요. 설교해도 어떤 사람은 아, 오늘 설교 지루하단 사람 있고, 퍼뜩 지나간다고 하는 사람 있고. 그게 뭐냐 하면, 분명히 시간이 인간을 지배한다고 봤는데 그게 아니고 인간의 시간의식은 고유의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있어요. 그걸 현상학이라고 해요. 각자 시간이에요. 이건 옆 사람도 몰라요. 며느리도 몰라요. 내가 아는 각자 시간이에요.

아아, 점점 어렵다는 뜻인데 어려운 김에 더 어렵게 해보자. 그런데 각자 시간을 가지고 있으면 그 말 맞습니까? 그 말 틀렸어요. 왜? 각자 할 때 ‘각자’가 규명이 안 돼요. 자아라는 게 규명이 안 된다고. 내가 확실히 규명되면 내 시간 따로 있겠는데 나도 나 몰라. 나도 달라져요. 어제 나하고 오늘 내가 달라져요. 내가 다른데 무슨 시간 있다고? 각자 시간이 있다는 말은 어제 내가 있는 시간 따로와 오늘 달라진 내가 갖고 있는 시간 따로 있어요.

그러니까 결국은 뭐냐? 시간 밑에 내가 종속된다 여겼는데 그게 아니고, 내가 각자 시간을 갖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시간이 또 다시 나를 변화시키는 거예요. 이쯤 되면 아이, 몰라, 몰라, 몰라 이래 돼요. 이래 되면 몰라, 몰라, 몰라 그런 거 다 때려치우고 예수 믿으면 되지. 그거 뭐하려고. 몰라, 몰라. 이래 돼야 돼요.

왜 여러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신학자들이 이런 내용을 모르고 성경을 연구한다고 하다 보니까 성경자체가 자기 구미에 안 맞아떨어지네. 내가 보기에는. 해석을 못해요. 해석을 해내지 못해요. 그래서 요한계시록 같은 건 손도 못 대고. 요한묵시록 아닙니까? 계시는 활짝 열리는 것이거든요. 계시란 뜻은 활짝 열립니다. 활짝 열린다는 말은 시간과 관계없지요.

여기 스크린 뒤에 보통 커튼이 쳐져 있잖아요. 커튼이 활짝 열릴 때 이 스크린 A 지점이 언제 커튼 뒤에 있었습니까? 옛날부터 있었지요. 그럼 B라는 지점은 언제 있었습니까? 옛날부터 있었지요. 그러면 활짝 열리는 스크린은 뭡니까? 이건 역사 아닙니까. 역사라는 커튼을 활짝 들추니까 묵시세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하나님은 동일하다. 이거는 결국 우리를 잘 들어 친구야. 날 갖고 놀은 거야? 예. 놀은 거 맞다. 하나님이 인간을 갖고 놀은 거예요. 사탄을 갖고 놀았고, 천사를 갖고 놀은 거예요.

눈치코치도 없이 묵시 세계인데. 강의 듣다가 욕할 건데. 난 이런 게 궁금해요. 이런 일은 없기 때문에. 나의 각자 시간 때문에 여러분 각자 시간을 손상시켰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묵시세계가 덮쳐버리니까 지금 내 시간 아니거든요. 전하는 사람 내 시간 다르다하니. 그러니까 인간은 서로 피해를 주는 거예요.

자, 봅시다. 요한계시록이라 하는 것은 세상에 요한계시록에서 시간론을 따진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이거는 커튼이 열려버렸는데 그거는 시간으로 따지면 안 되고 층이 있습니다. 언제까지 몇 년, 천년하는 그것은 뭐냐 하면, 표현을 할 때 묵시세계를 역사로 표현하려고 하니까 역사는 뭐가 있습니까? 시간이 있지요. 지금 묵시세계는 시간과 상관없습니다를 표현하면서 시간 가지고 설명하는 거예요.

그래서 무저갱 이후에 잠깐 놓였다가 어떻게 들어가고 그들은 잡히고 다시 잠깐 풀었다. 이게 뭐냐 하면, 아무 상관없는 시간과 상관없는 것이 지 마음대로 역사 초기부터 지금까지 휘젓고 다녔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겁니다.

목사님 그렇게 설명한 증거 대보세요. 증거가 뭐냐 하면, 바로 창세기 3장 15절에 나오는 옛 뱀이 요한계시록 12장에 뭐라고 돼있습니까? 나오잖아요. 뱀 아닙니까? 그 옛 뱀이 뱀 아닙니까. 그런데 전쟁이 언제 있었다고요? 인간이 타락하기도 전에 하늘에서 뭐가 있었어요? 전쟁이.

그 이야기를 왜 이제 와서 하나. 그게 어디 있었느냐 하면, 스크린 이 구석에 있었거든요. 이 구석에 있던 것이 역사가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 세계가 부정당했지요. 이 세계가 부정당하고 커튼이 확 풀어지니까 이 구석에 있던 것이 사실은 한 바탕, 한 지형 속에 동일하게 다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장기 두신 거예요. 우리는 장기판 앞에서 열심히 뛰고 있었고, 각자 시간 따로 뛰고 있었고, 각자 시간을 갖고 뛰고 있었고, 주님은 백날 뛰어봐야 장기판 위에서 하나의 장기 알이었다 이 말이죠. 그 장기판이 우리의 낯짝을 향하여 그냥 덮친 거예요. 그게 하늘나라입니다. 그 장기판이.

낯짝을 덮치니까 그제야 뭐가 보이냐 하면, 이미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그 다음에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에베소서 2장 7절에 보면 뭡니까? “하늘에 이미 앉히시고” 그게 뭐냐 하면, 이미 이쪽 A 지점 되면, 이미 B 지점은 저절로 A 지점과 같은 지형에 같은 공간에 있는 거예요.

다만 우리는 뭘 모르느냐 하면, 이 공간의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모를 뿐이죠. 15년 하면 좀 깊이를 압니까? 신령한 사람 됩니까? 그게 아니고 이걸 알게 하는 것은 성령이 와서 매일같이 우리의 시간이라는 커튼을 내가 또 덮어요. 이 땅에 먹고 살려고.

이걸 벗겨내고 덮으면 벗겨내고 이게 뭐냐? 묵시와 역사의 싸움 아닙니까? 우리는 역사라 해서 주여, 나도 인생 한번 멋지게 살아보겠습니다. 덮으면 확 벗겨내면서 이게 어디 죄인이 구원받아놓고 어데 딴 기쁨을 찾아. 닌 죽어도 마땅해. 아닙니다. 살아야겠습니다. 또 덮으면 또 벗겨내고. 니 오늘 죽으면 낙원에 있으리라. 낙원 좋긴 좋은데 좀더 살다가. 맨 날 덮고 벗기고, 덮고 벗기고.

스크린은 그대론데 그거 한다고 해서 지옥 가는 것도 아닌데 천국이 도착해 있으면서 맨 날 희미한 안개가. 이명박이 돼야 될 건데. 이인제 되면 안 되는데. 이회창 부인은 불교신자라 하는데 그거 되면 안 된단다. 이상하게 각자 시간. 뉴질랜드 사람은 신경 안 쓰는 거, 미국의 각자 시간, 시간 안 들고 대한민국 사람이란 이름에서 대한민국 사람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시간관, 시간의식 그게 덮치고 있어요.

우리가 은혜를 받고 보면 세상에 있는 드라마나 여자나 남자나 벌거벗고 돌아다니든지 우에 돌아다니든지 이 세상 정치가 어떻게 하든지 아무 상관없습니다. 사실은 사소한 문제고 아무 상관없어요. 온풍기 돌아가도 아무것도 아니고 끊어져도 아무것도 아니고, 우리의 모임 하다가 오늘 끝나도 아무것도 아니고, 내가 죽어도 아무것도 아니고 내가 죽는다 할지라도 나한테 안 중요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왜냐하면 오는 세대의 특징이거든요. 오는 세대의 특징이 제발 너한테 신경 뚝 끄라. 그리고 니 스케줄은 니가 무슨 짓을 해도 그게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가하고 모든 것이 뭘 해도 제재 받지 않는 그런 평면 위에 놓여 있다는 겁니다. 새삼스럽게 묻지를 않아요. 우리 행위에 대해서 묻질 않습니다. 이 세대에서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해도 죄가 되듯이 이 땅에 오는 세대에서 어떤 행위든 의가 돼버려요. 묻지를 않아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이 말 어디 이런 건방진 말을 합니까? 그리고 더 건방진 건 뭐냐? 내가 제재를 받지 아니한다. 야. 물론 제재 받겠지요. 지가 사도바울이 횡단보도 끊고 하면 다 제재 받고, 안전띠 안 하면 4만원 끊고 합니다. 그거하고 내 구원 받는 거 하고 그게 무슨 상관있느냐 말이죠. 각자 시간인데 각자 시간관인데.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것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오는 세대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뭐가 되느냐 하면, 이 세상 자체를 시간의 갇힌 걸로 보여요. 시간에 갇혀서 이것은 옛 하늘과 옛 땅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시간은 어디서 생겼느냐? 창세기 1장에 보면 시간은 해와 달과 별에 생겨요. 해와 달과 별 없어지면 뭐도 없어져요? 시간도 없어져요.

그러니까 오는 세대에서 보면 이 세대는 뭐냐? 각자 시간에 각자의 자기 자신의 변화라 했는데 이걸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이걸 육이라 하고, 오는 세대를 뭐라 보느냐? 영이라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육은 하늘나라를 보지 못하고, 영은 하늘나라를 이미 아는 거예요. 하늘나라 가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 아는 거예요.

그래서 래드가 말하기를 하늘나라는 이미 왔다고 봅니다. 하늘나라는 이미 왔어요. 왔기 때문에 온 증거가 뭐냐? 왔기 때문에 육이 뭔가를 안다. 아, 사소한 거. 내가 교도소 열 번 갔다와도 사소한 거예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사소한 거예요.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걸 영의 사람만 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십자가의 그 스케줄대로 어떤 사람은 돌에 맞아 죽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부자가 되서 죽는 사람 있고. 그거는 오야 마음대로지 나하고 관계없고. 그건 내 소관 아니다. 이러한 기쁨이 성령의 충만해서 좀 자주 있었으면 좋겠어. 이러한 기쁨이. 문제는 돌아서면 각자 시간으로 돌아와서 세상의 부귀영화로 다시 자기로 옷 입고 야, 이왕 살려면 인간답게 함 살아보자. 새로운 또 시작을 한다고 했죠. 근데 그것이 바로 육인 것을 아는 사람은 오직 영적인 사람 밖에 없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도바울의 신학의 기원과 원천에 대해서 중심에 대해서 보았습니다. 사도바울의 이런 이야기가 실제 이야기인 것을 저희들은 압니다. 십자가 지신 것도 실제 이야기고 다메섹에서 주님 만난 것도 실제 이야기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릴 다루시는 것도 우리의 목숨을 빼앗아가는 것도 실제 이야기인 줄 알았사오니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길 수 있는 저희들 삼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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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31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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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