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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71204a 부산강의 : 조지 래드 [신학신약]-바울1자유게시판디모데전서

20071204a 부산강의 : 조지 래드 [신학신약]-바울1

이름 : 한윤범(IP:59.6.189.149)

20071204a 부산강의 : 조지 래드 [신학신약]-바울1

(강의:이근호 목사)

오늘은 바울에 대해서.

바울에 의해 써진 성경 말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바울이 썼다는 것은 무시하면 남는 게 뭘까요? 바울이 썼다. 성경을 바울이 썼다. 그게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고 관련이 과연 있겠는가? 바울이 썼다고 이야기해야 할 그런 필요성이 있느냐 하는 겁니다. 그냥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인데 바울이 썼다. 그걸 꼭 언급을 해야 되느냐?

누가 썼든 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면 되지 누가 썼는가는 꼭 계산해야 되느냐? 사도 바울이 썼다. 라는 것, 그 자체가 성경 속에 이미 나와 있지요. 그럼 사도 바울이 썼다 하는 그것을 도외시 하지 않아야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그 범위 안에 우리가 다 포용하게 되는 겁니다.

사도 바울, 니는 난 몰라. 니는 가거라. 난 하나님 말씀 보겠다. 이럴 게 아니라 사도 바울이 썼다는 것도 무슨 취지가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는데 취지가 분명히 담겨 있기 때문에 바울이 썼다 이래 돼요. 바울이 썼다는 것도 그것도 고려해야 된다 이 말이죠. 말씀의 고려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그럼 그냥 하나님 말씀으로 썼는 것 하고, 사도 바울이 썼을 때 그럼 사도 바울이 꼭 그렇게 들어가야 될 그 역할이 뭐냐? 그 역할은 디모데전서 1장에 나와 있습니다. 내가 죄인 중에 괴수였는데 하나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 이것이 성경 말씀을 대할 때 전에도 제가 이야기했습니다만 이게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난해해요.

성경 말씀이 있는데 성경 말씀을 내가 다가갈 때에 성경 말씀이 뭐까지 고려하느냐 하면, 성경 말씀을 들여다보는 너란 인간은 이렇다. 라는 것조차도 이미 먼저 말씀이 먼저 이야기해 주는 거예요. 그러면 성경 말씀이 여기 있구나 내가 이해해야지. 들어서려고 하는데, 잠깐 니는 니 주제를 아느냐? 성경 말씀이 이래 나온다 이 말이죠.

그렇다면 성경말씀을 대하기 전부터 내가 알고 있는 내 자신이 바뀔 필요가 있지요. 쉽게 말해서 예배 있다, 교회 가자. 교인들이 문 열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목사가 잠깐 당신은 당신 자신을 압니까? 이렇게 묻는 거와 마찬가지다 이 말이죠. 목사, 당신 할 일이나 하소. 누구한테 내가 어떠냐 묻지 말고 당신이나 잘 하소. 그냥 내가 알아서 올 테니까 당신 잘 하소. 라고 배척할 수 없는 겁니다. 너 자신을 누군지 알아. 그걸 알고 지금 교회 문을 여는 거야. 이렇게 지적하는 것부터 먼저 시작이 되는 겁니다.

그런 경우가 성경에 또 나오는데, 어떤 여자가 예수님 병 고치는 소문났으니까 병 고치려 들어서니까 예수님이 먼저 물어요. 니가 누군지 아느냐? 그 여자가 하는 말이, 저 개 아닙니까? 그럴 때 그게 이미 예수님 말씀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자기 자신을 개라고 볼 수 있는 그 안목이 어디서 나왔겠어요? 그것이 바로 이 성경 말씀에서 나온 능력으로 포섭이 된 사람에 한해서만 자기가 개 같은 입장에서 성경을 새롭게 보게 되는 그러한 범주 안에 있는 영역 안에 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사도 바울의 역할이 뭐냐? 사도 바울이 성경 말씀이다. 썼겠지 뭐. 사도 바울 썼던 것 떼고, 성경 말씀만 생각합니다. 할 때 사도 바울은 그러지 말고 사도 바울이 썼다. 그게 의미가 뭔데? 사도 바울은 죄인 중에 괴수였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나는 주님을 만났다. 라고 했다 이 말이에요.

그렇게 되니까 사도 바울의 글을 같은 입장에서 읽으려면 뭘 알아야 되느냐 하면, 죄인 중에 괴수임을 아는 자에 한해서 은혜를 알게 되고, 그 자기가 죄인이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걸 아는 사람만이 사도 바울을 해석할 수 있는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만약에 이걸 무시하고, 이걸 무시하는 걸 가지고 조직신학이라 하는데, 조직신학은 누가 썼는가를 인정 안 해요. 안 하고 그냥 누가 썼는가 다 때려치우고, 성경 말씀 가지고, 성경구절 가지고 연결시키잖아요. 교리상. 그렇게 되면 연결시켜버리면 하나의 실존적인 문제, 실존적인 문제를 놓치게 되고, 그야말로 무엇과 무엇이 구분이 안 되느냐 하면, 종교와 복음이 혼동이 되는 그런 경우가 됩니다.

종교라 하는 것은 자신이 하나 가지고 있는 거고, 복음이라 하는 것은 복음 안에 자기가 탈취당한 거죠. 복음 안에 자기가 복음을 위해서 몽땅 다 빼앗긴 셈이 되는 겁니다. 이거는 목사뿐만 아니고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알았다는 말은 복음이 자기가 주인 되고, 자기는 복음의 종이 되는 거고.

종교라 하는 것은 내가 하나 액세서리처럼 갖고 있는 거죠. 하나의 편리한 카드처럼 쓸 수 있는 카드 계산하는 거예요. 종교를 버려야 되는 거예요. 종교를 버리란 말은 종교만 달랑 버린 말이 아니고, 종교를 가져야 되겠다는 그 생각, 나라는 자체를 완전히 포기하고 복음에 잠식돼야 됩니다. 복음에 지배를 받아야 됩니다. 종교를 가져버리면 내가 종교 생활하니까 주인공이 내가 되지만, 복음을 알게 되면 주인공이 나는 죄인으로 전락해버리고 주인공은 주님이 복음을 해결하신 주님이 주인공이 돼버립니다.

이 [바울] 이 글 다 읽으셨지요. 이거 다 읽으셨습니까? 한 50페이지 되는데 다 읽었다 치고. 이 책을 보는 사람, 특히 안 믿는 사람이나 이렇게 교회에 대충 종교를 가지고있는 사람이 이 책을 봤을 때 앞에 대목에는 거부감이 일어나지 않아요. 그런데 바울 대목에서 거부감을 갖게 될 겁니다.

그 거부감이 뭐냐 하면, 바울이란 사람이 유대교인인데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었느냐 하는 문제를 지금 래드는 초반부터 쭉 나와 있지요. 그러면 이것은 글 읽는 사람에게 뭘 강요하느냐 하면, 사도바울이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바뀐 그 사도바울처럼 되지 않으면, 당신은 내 책 뿐만 아니고 사도바울의 편지에 대해서 당신은 이해 못하는 사람이다. 이걸 철책을 딱 치고 들어간다니까.

사도바울 그전까지는 그런 게 없어요. 나 예수 믿는다. 예수 믿는다. 다 그래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님, 제가 왔습니다. 성경말씀 봅니다. 하나님, 큐티 합니다. 이해의 능력을 주세요. 이래 되는데 사도바울에 딱 들어가 버리면, 사도바울처럼 되지 아니하면 사도바울 내용은 전혀 모릅니다. 라는 식으로 래드가 저지선을 깔아 놔버렸어요.

여러분, 그거 못 느꼈습니까? 그 저지선이 뭐든가요? ‘다메섹 사건’이죠. 그러니까 초반에 사도바울 서론부분, 뒤에 나오는 원천 양쪽을 걸쳐서 래드는 다메섹 사건을 무지무지하게 앞자리에다 먼저 깔아 놔버려요. 바윗돌처럼 깔아 놔버린다고.

바울이 유대교인에서 뭐 됐다고? 기독교인 됐죠. 그러면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세 가지를 알아야 돼요. 하나는 뭐냐 하면, 유대교가 뭔지 알아야 돼요. 그런데 우리는 유대교도 아니잖아요. 이방인 아닙니까? 이방인의 입장에서 유대교가 뭔지 알아야 되고, 또 하나 뭡니까? 기독교가 뭔지 알아야 되고, 세 번째가 다메섹 사건을 체험해야 돼요. 이 세 가지 다 갖추어야 이방인이 사도 바울의 편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말입니다.

결국은 이 책은 뭐냐 하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느꼈고, 이렇게 체험했기에 그 체험한 입장에서 예수님을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 믿으세요. 라고 해놓고 이것이 사도바울의 개인의 의견 같으면 당신은 그런 식으로 믿어. 나는 달리 믿을게. 라는 것을 이야기하면 괜찮은데, 사도바울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 책대로 합시다. 이 책 말고 딴 것도 있지만 이 책대로 하고 이 책에 빠진 점, 문제점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이 책대로 한다면 래드가 주장하는 것은 뭐냐 하면, 나는 사도바울처럼 그런 거 체험 안 하고 유대교, 기독교 모르고 다른 방식으로 사도바울 말고 나 나름대로 예수님 계시 받고 믿겠다. 하는 그 사람들로 하여금 낙담케 낙심케 할 수밖에 없는 이 책의 주장이 뭐냐 하면, 바로 ‘비밀’이에요.

그 비밀이 뭐냐 하면, 십자가 비밀이에요. 이 저자 래드는 십자가를 전면에 내세워 버려요. 그러면 십자가가 뭐냐? 이거는 인간의 지혜로 알 수 없는 것이고 어리석은 것이다 말이죠. 숨어있는 비밀이라고 했어요. 여기 비밀이란 말 썼단 말이죠. 숨어있는 비밀이라고 하니까 저것들은 다른 걸 달리 이야기하겠지요.

저것들은 이걸 이야기했어요. 갈라디아서 1장 8절 이야기했습니다. 뭐냐 하면, 내가 전한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라고 해서 결국 그 말은 뭐냐 하면, 사도바울 니가 체험한 것은 니 사적인 체험이기 때문에 나는 무시하고, 나의 사적인 체험, 내가 어느 기도원에 가서 사적인 체험 가지고 나는 예수님을 따로 해석해서 구원받겠다. 하는 그것이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데, 그것은 래드는 십자가 갖고 이야기했고, 저 같은 경우에는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받는다는 이야기를 하겠다 이 말이죠.

그렇다면 이건 장벽이죠. 바울의 서론 들어가기 전부터 우리는 뭘 만나는가? 장벽을 만나게 됩니다. 저주에서 밀어내는 것 같아요. 사도바울이. 하나님이 주께서 사도바울에게 변화를 시킴으로 말미암아 이 사람이 강조하는 것처럼 고린도후서 5장에 나오죠. 예수님을 어떻게 육체로 아는 거예요. 이 책을 다 읽어보면 제 말이 탁탁 들어오는데, 안 읽어 본 분들은 ....

예수님을 뭐로 안다고요? 육체로 아는 자들은 일체 내가 하는 일을 못 알아먹게 돼있다. 라고 저지선을 깔아버려요. 이 분은 십자가를 앞장세워서 깔아버리고, 저 같은 경우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 받는다를 깔아버려서 사도바울이라 하면 1번, 2번, 3번을 다 알지 아니하면, 쉽게 말해서 당신 지옥 간다 이 말입니다. 이거는 뭐, 교회를 어떻게 할 것이냐, 목회를 어떻게 할 것이냐 지금 그런 문제는 사도바울의 귀에 들어오지도 않아요. 그런 건.

사도바울님, 그래 가지고는 목회 안 됩니다. 그래 가지고 한국교회 부흥 되겠습니까? 이 따위 소리는 사도 바울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거예요. 사도바울은 선제공격하고 있습니다.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 전하면 저주받는다 하는데, 저주 받는다는데 목회 성공하면 뭐하노 말이죠. 교회 세워서 뭐 할 건데.

1번, 2번, 3번 체험 없이는 그거는 이미 아무리 사도바울 서신을 온통 달달달 외워도 소용없는 짓이다 이 말이죠. 1번이 무슨 체험이라고요? 유대교가 뭐냐? 2번 체험은? 기독교가 뭐냐? 3번 체험은? 다메섹 사건, 그거 체험했느냐? 이 말이에요.

그래서 어지간한 래드 책 말고, 다른 바울신학 책에서는 그러면 대중들에게 다가설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저자들이 어떤 술책을 쓰느냐 하면, 사도바울이 이야기한 소위 성화론, 사랑하는 것, 그것 가지고 접촉점을 이루려고 다른 복음 외에 여기에 다른 문을 이렇게 만들어놔요. 다른 문을.

어제 서요일 목사한테 전화 왔어요. 서요일 목사 압니까? 총신 합동측이 무너지고 있다. 총신교수 합동측이 무너지고 있다. 자기는 그렇게 본다는 거예요. 한 마디로 개판이다. 그 접촉점을 주려고 다른 문으로 다른 게 너무 많이 들어와 버렸어요. 사도바울 말고 옆문으로 구원시키려고 했던 그 옆문으로 너무 많은 게 들어왔어요. 그 대표적인 게 뭐냐? 상담학이겠지요. 치료와 위로의 목회. 너무 많이 들어온 거예요. 그 문으로.

이 쪽 문은 사도바울이 아주 저지해버렸으니까 십자가 모르면 구원 못 받는다니까. 십자가를 안다는 것은 세 가지를 알아야 되니까, 구원 못 받으니까. 구원 못 받는다 하면 너무 절망적이잖아요. 상당히 절망적 아니겠습니까?

여기 이 책에 뭐냐 하면, 그걸 가지고 뭐냐 하면, 이걸 뭐라고 되어 있더라? 부정적으로 본다. 이런 식으로 해요. 세상을 부정적으로 본다. 사도바울은. 이 책에 나옵니다. 세상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거예요.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면, 사람이 종교를 갖든지 뭘 하는 것은 자기를 긍정하는 바탕 위에 자기 긍정을 더욱더 확대된 긍정으로 나가려 하는데 사도바울이 부정적으로 봐버리면 대화가 안돼. 애초부터 대화 자체가 성립 안 되죠. 대화가.

북한을 긍정적으로 봐야 대화가 되지, 북한을 나쁜 놈이라 하는데 그런 욕 얻어먹고 대화할 북한 지도자가 누가 있습니까? 없잖아요. 지금 사람들은 사도바울하고 대화해서 사도바울, 니가 주의 종인 것 인정해 줄게. 그 대신 나를 천당 넣어 줘. 그거잖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사도요한, 당신 주의 종으로 인정해줄게 나를 천국 넣어 달라.

사도바울은 뭐라고 합니까? 이렇게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비밀은 사람으로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해버리니까 애초부터 이야기하나마나라. 애초부터 십자가는 어리석어서 사람들은 아무리 지식을 할지라도 알지 못한다.

이 저자가 댄 성경구절 한번 봅시다. 고린도전서 함 봅시다. 3장 18절.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이 대목을 이 성경구절을 래드는 강하게 전제합니다.

이걸 기준으로 해서 이 구절부터 시작해서 이 구절 대면서 인간의 힘으로 구원 얻을 수가 있다, 없다? 없다.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하면 구원 얻겠습니까? 라는 것에 대해서 이 저자는 이 구절 가지고 인간의 지혜로, 힘으로 구원될 수 없다 이 말이에요. 마치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면 부자가 천국 갑니까? 하니까 어떤 누구도 인간의 힘으로 구원될 수 없다. 라고 시작하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 뒤에 말을 듣고 싶어 하지요. 없다 해놓고 그건 다 하는 소리고, 뭐 또 뒤에 옆문, 조그만 문이라도 있잖아. 그건 멘트고 공식 멘트 말고 우리 사바사바 사적인 구원할 통로를 따로 만들어내라. 이걸 요구한단 말이죠.

그림을 한번 그려보겠어요. 사람의 종교심이라는 게 얼마나 대단하지. 천국 문이 이래 있고. 천국 문이 고정돼 있고, 그 다음에 우리가 들어가는데 인간의 지혜로 못 들어간다 하니까 사람들은 거기에 자포자기할 인간이 아니죠? 뭡니까? 여기에 샛문, 조그만 샛문이 이게 있기를 원하잖아요. 이 문은 내 못 들어가고 하니까 나도 염치가 있지, 이 문 들어갈 생각 없습니다. 죄진 놈이 무슨. 이런 샛길 없습니까? 한다 이 말이죠.

그런데 이 사람들이 뭘 모르고 있느냐 하면, 이 성 자체가 고정되어 있고, 자기가 다가가서 고른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에 보면 이게 약간 언급되어 있는데 이 사람이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어요. 그게 의심스러운데 래드가. 내가 보기에는 래드는 이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강조를 안 한 것 같아요. 아는 것 같기도 하고, 자기 보는 중에 성경 말씀 대다보니까 이래 한 줄 모르지만 이 성이 움직인다는 사실, 이것이 이걸 덮친다는 사실을 이 사람도 모르는 거예요.

이게 약간 비슷하게 언급되어 있어요. 뭐냐 하면, 천국은 부활의 세계는 나중이 아니고, 이미 시작되었다. 그걸로 내가 억지로 이 분의 편을 든다면 그런 식으로 옹호할 수 있는데, 그러니까 부활이라는 생명의 세계가 나중에 가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서 활동을 개시했다는 식으로만 언급되어 있어요. 이 책에 보면 그래 돼있어요.

이걸 달리하면 천국의 성이 가만있고 우리가 다가가는 게 아니라 이것이 와서 덮쳐버리게 되면 이 덮쳐진 사람은 뭘 느끼느냐 하면, 내가 어느 쪽으로 갈까요? 라는 생각조차도 이거는 나한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가장 나에게 이거는 그런 생각조차 한다는 자체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몰랐으면 진짜 성경말씀대로 니가 어리석도다. 할 정도로 진짜 얼마나 지지리도 못나게 어리석었으면 내가 가서 샛문 찾느냐 이 말이에요. 얼마나 어리석었으면.

이걸 이 사람은 좋은 표현 한 가지 나와요. 이 책에서. 좋은 표현 내가 딱 한 가지 봤는데 그게 뭐냐 하면, 이걸 가지고 그 사람은 뭐라고 하느냐? 이걸 가지고 [거룩한 심판]이다. 표현 괜찮지요. 심판이 그냥 심판이 아니고 무슨 심판이라고요? 거룩한 심판. 성경에 안 나오는 용업니다. 안 나오는 용어지만 이렇게 붙여놓으니까 멋있어요. 이게 신구약이 다 되는 거예요.

심판을 하되 짜증나서 심판하는 게 아니고, 화딱지 나는 게 아니라 거룩한 심판을 하는 거예요. 거룩한 놈은 봐줄게. 그런데 언 놈이 나와 봐라 이 말이죠. 나와 봐라. 거룩도 안 되는 주제에 니가 어디를 가? 이 거룩한 나라에 들어가? 거룩도 안 된 주제에. 거룩될 마음조차 없는 인간이. 사람이 교회 가서 예수 믿고 천당 가길 원하지, 본인이 거룩될 마음 없잖아요. 거룩될 수도 없고. 내 속에 또 다른 법이 있는데 무슨 거룩을 해요.

그래서 래드도 이 바울 쓰면서 단단히 마음을 먹었어. 이건 도저히 사도바울 공부해보니까 도저히 교회를 위한 신학이라든지 목회성공을 위한 신학, 도저히 그건 사도바울에서 나오려야 나올 수가 없고. 참,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에라이, 사도바울에 있는 이야기 그대로 다 해버리자 하고 다 쏟아 버렸어요. 이 사람이. 이제는 교회 말아먹어도 할 수 없고, 교단 날아가도 할 수 없고 하여튼 나는 사도바울이 이야기한 그대로 이야기 다 해버린다. 이런 각오로 이 글 썼어요.

앞에 것은 상당히 유도리를 많이 줬는데, 이 사도바울 이쪽에서는 유도리를 안 줬어요. 내가 보기에는 뒤에 유도리 비슷하게 또 나오긴 나올 거예요. 초반에서는 하여튼 [사도바울의 신학사상의 기원과 원천]까지 보게 되면 이거는 저줍니다. 이거는 일체 어떤 누구도 오지 못한다.

물론이 사람이 지금 오지 못한다 해놓고 정말 제일 중요한 걸 빠뜨렸어요.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이 택한 자가 온다는 그 사실을 이야기 안 해요. 이상하게 침례교 계통은 예정론을 이야기를 안 해요. 예정론을 빼버리면 지혜를 초월한 지혜가지고 구원받으려고 시도할 거예요. 인간의 지혜는 부정해도 그 지혜를 초월한 지혜를 갖고 있으면 구원 안 되겠느냐 하는 그 생각한다고.

어떤 식으로도 저쪽에서가 아니라 이쪽에서 내가 다가가기를 바라는 마음 있어요. 그런데 예정론이 뭡니까? 내가 가는 것을 기피하고 그걸 피해가서 저쪽에서 정하신 사람에게 능력으로 찾아가는 게 예정론이잖아요. 이상하게 예정론에 대해서 이야길 안 하는 것 같아. 이야기하면 풀러신학교에서 쫓겨나는지 모르겠는데.

그러면 래드의 뜻에 따라서 래드가 바울의 사상의 원천이 어떤 것인지 지금부터 내가 설명해 드리겠어요. 그림으로 설명해 드릴게요. 래드는 제일 먼저 시간론부터, 제가 아까 다메섹 사건 이야기했지요. 다메섹 사건으로 일단 다 저지했어요. 쉽게 말해서 어떤 인간도 구원이 될 자격도 권리도 없고, 그냥 내동댕이친 입장에 있다. 그 이야기를 아주 강력하게 밀어붙입니다. 종교, 종교행위로 구원될 수 있는 그런 시절을 끝났다.

그러면 이 사람이 시작하는 게 뭐냐 하면, 시간론. 시간론 가지고 사도바울의 사상을 분석해 들어갑니다. 시간이 있으면 하나하나 다 찾아보겠지만 그러면 이 강의가 재미가 없어지고 지루해지니까 이걸 다 읽었다 치고. 시간론에서 이 사람은 이 세대와 오는 세대를 가지고 설명합니다. 이 세대 끝이 오는 세대의 시작으로 봅니다. 그 대목이 나옵니다. 세대가 두 개 있다. 이 세대, 지난 세대. 그냥 이 세대가 있고 오는 세대. 이 용어도 잘못되었어요. 하여튼 이 사람 시킨 대로 해봅시다.

이 세대 있고, 오는 세대가 있는데 이 세대의 끝이 오는 세대의 끝이다. 이렇게 바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고, 이 세대의 끝이라고 하고 끝이 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끝 대목이 길게 가는 거예요. 그리고 오는 세대가 이미 시작되었으면 바로 인수하기는 하는데 그게 이 세대와 오는 세대가 겹치는 세대가 따로 있다는 겁니다.

이게 유명한 게르할더스 보스의 그림 아닙니까? Already not yet. 이미, 아직 이라는 그림이거든요. 그걸 이 사람이 그대로 이미, 아직인데.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이 사람은 이 세대를 가지고 시간적으로 표현한 존재론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럼 이 세대 같으면 시계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되겠네. 시계만 들여다보는 건 시간만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이 세대를 뭐로 보느냐? ‘악한 세대’로 본다. 이 세대를 악한 세대라 하니까 이건 뭐냐 하면, 시간론에서 가치론 또느 의미론으로 바뀌지요.

사도바울이 ‘이 세대’할 때는 이건 뭐냐 하면, 시간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하는 것이 아니고, 아이고, 이 세상 자체가 악하고 세상 신이 지배하는 그런 세대가 되었다. 라고 이야기한다 이 말이죠.

자, 여기서 여러분, 논리가 어렵더라도 참으세요. 상당히 중요한 대목이니까. 그리고 목사님들 설교할 때 자꾸 이 대목 고려 안 하니까 문제 생기는 거예요. 시간론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인간이 시간은 지배합니까, 시간이 인간을 지배합니까? 이것부터 제가 먼저 물어보고 싶어요. 여러분한테. 인간이 시간 따라갑니까, 시간이 인간 따라가는 겁니까? 시간이 인간을 지배하지요.

그러니까 여기서 이 사람은 시간론을 먼저 내세운다는 말은, 인간은 이 시간 종속되어있고, 이거는 본인이 이야기가 아니고, 사도바울이 그렇게 한단 말이에요. 시간론에 세대론 되잖아요. 세대론이 인간보다 위에 있다는 말은, 인간은 이 세대에서 악하고, 악하고 아무리 악해도 인간 힘으로 벗어날 수 없다, 있다? 없다는 것이 사도바울의 사상의 원천이라는 거예요. 이 사람이.

인간보다 더 우월하고 인간보다 더 힘이 센 그 세력이 무슨 론을 앞장세워서? 시간론을 앞장세워서 우리의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규정을 하는 그러한 인식이 사도바울의 계시의 핵심이다. 이래 보는 겁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거지요. 사람보다 악마가 이 세상에는 더 힘이 세고, 인간은 악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라는 말을 뭐로 표현한다? 시간론으로 표현한다 이 말이에요. 근데 보통 시간 같으면 시간 스케줄은 내가 짜잖아요. 근데 시간론에서 이게 뭐냐? 세대론으로 바뀐다. 세대론으로 바뀌니까 시간은 째각째각이지만 세대론은 어디서 어디까지잖아요.

그러니까 이 세대에서는 인간은 뭐냐? 이 시간이 연장돼 있는 세대, 그 세대의 자식들이 인간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 악한 세대의 자식들이 인간이고, 날 때부터 악한 놈이 무슨 악한 세대를 이깁니까? 이기질 못하지요. 갇혀있는 거지요. ‘갇혀있다’는 말은 여기 안 나와요. 그것도 중요한데 그것도 이야긴 빼놓고 있어요.

그럴 때 다른 사람이 사도바울에 뭐라 했습니까? 사도바울아, 니 그런 아이디어 어디서 얻었느냐? 이래 나올 거 아닙니까, 당연히.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사도바울, 니는 무슨 통뼈로 그렇게 생각하느냐? 할 때 사도바울은 딱 내세우는 게 또 뭐냐 하면, 난 다메섹에서 봤다.

그러니까 사도바울하고 대화를 할라치면 딱 내세우는 게 뭡니까? 다메섹에서 주님을 봤다. 그러니 그럼 나는 주님을 안 봤잖아요. 그러면 이야기가 안 되죠. 딜레마죠. 이게 전도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구분이 안 되잖아요. 고소하는 재미지, 전도하겠다는 말하고 구분이 안 되잖아요.

그러니 사도바울은 결국 이게 뭐냐 하면, 내가 이렇게 아까 말한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변한 그 자체까지라도 뭘 봐라? 너희들이 이 악한 세대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하나님의 계시가 된다 이 말입니다. 나하고 니하고 비교할 생각을 하지 말라 이 말이죠. 내 자체가 계시고, 너는 계시가 아니다 말이죠. 너의 앞에 서 있는 사도바울의 계시란 말이죠.

그래서 편지에 보면 뭡니까? 나, 사도바울, 그리스도의 종된 사도바울은. 라고 나오는 거예요. 다른 사도들은 그건 사탄의 자식들이고, 내가 바로 참된 사도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앞에 서론부분이나 뒤에 나와요. 바울의 원천에 보면 나와요.

사도들의 권한은 사도들의 권한이 아니고, 주님의 권한이라고 아주 저자가 강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거는 메이천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FF. 부루스 영향을 많이 받고 있을 거예요. 그것도 같은 주장하니까. 하도 자유주의자들 떠드니까. 사도바울, 니도 가라. 니도 인간인데 뭐 까불어. 자꾸 이래 나오니까. 그게 아니고, 누가? 주님께 직접 받은 거고 배운 거다. 하는 것을 굉장히 강조를 많이 해요.

그 다메섹 사건을 이렇게 자꾸 내세울 때 그럼 사도바울이 래드의 이야기에 의하면, 다메섹 사건은 사도바울이 자꾸 이야기를 앞장 세워서 의사소통 자체를 부정해 버리고 내 말대로 무조건 믿어라. 이런 식으로 나올 때 왜 자꾸 다메섹 사건을 내세우는 이유가 뭐냐? 그걸 따져보면 뭐냐 하면, 다메섹 사건을 통해서 내가 유대교인에서 뭐로 바꿨습니까? 기독교인으로 바뀌었단 말이죠.

그런데 전에는 그럼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바뀌었다 할 때 래드에 따르면 이건 뭐가 바뀌느냐 하면, 율법관이 바뀌었단 거죠. 율법관에 대해서 유대인들의 율법관과 기독교인의 율법관이 바뀌었단 겁니다. 왜 바뀌었습니까? 다메섹 사건을 통해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은 반드시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할 것이고, 예수님을 안 만난 사람은 뭐, 유대교의 율법관도 괜찮네. 라고 볼 것이다 이 말입니다.

여기서 래드는 여기선 이야기 안 했지만 제가 보기에 세대주의를 박살낼 작정입니다. 세대주의 알지요. 성결교. 세대주의를 아주 박살낼 작정이에요. 왜냐하면 유대교인들이 생각했던 그러니까 다메섹에서 예수님 만나기 전에 사도바울이 생각했던 그 율법관은 구약성경, 신약성경을 보면서 누구든지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는 그 전부를 유대교인들이 다 갖고 있다.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래드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성경을 보고 성경에 대해서 그렇게 해석하고 이해할 수밖에 없던 그것을 바로 유대교인들이 이미 다 알 수 있고, 그걸 이미 바울 되기 전에 사울 때 마스터했어요. 가브리엘 문하에서 마스터했어요.

그러니까 사도바울의 입장에서 오늘날 총신이나 개혁주의 신학 보면 웃긴다니까. 웨스터민스터 그거 보고 유대교다 할 겁니다. 칼빈신학 보고. 물론 이 사람이 그것까지는 공부를 안 한 것 같아요. 조직신학 거기까지 손대면 지가 문제 있으면 모가지 날아가 싶지, 교수자리. 남의 밥그릇까지는 안 하지만.

율법을 어떻게 제대로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 문제가 아닙니다. 현재 개혁주의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뭐냐? 유대교의 잘못은 뭐냐? 율법의 정신을 모르고 율법을 지킨 게 문제다. 이 말 아닙니까? 그게 사울도 그런 식으로 생각 안 했어요, 율법을. 율법을 어떻게 지켜서 온전히 지키느냐 그 문제 가지고 지금 유대교인들이 욕 얻어먹을 게 아니다 이 말입니다. 유대교인은 율법 자체로 완벽하단 뜻이에요. 그 뜻이.

뭔 뜻이냐 하면, 이렇습니다. 지금 개혁주의자들이 얼마나 무식한 것인지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율법을 우리가 어떻게 잘 지키느냐 그 문제 때문에 사도바울은 율법을 버렸다 하는데 그게 아니라니까. 이 책에도 그게 아니에요.

쉽게 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모세언약, 율법은 하나님의 계시로써 그거는 독단적으로 독립적으로 충분하다 이 말입니다. 더 이상 계시가 필요 있다, 필요 없다? 필요 없다는 게 유대교입니다. 인간이 지키고, 못 지키고 문제 아니에요. 유대교인들도 알아요. 인간이 완전히 못 지킨다는 걸 알아요. 그게 아니고 율법에는 손대지 말란 말이죠.

우리가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그거는 오늘날 개혁주의자들이 그래 주장하는 거고. 율법의 정신의 못 지켰는데 제대로 지키면 사랑으로 지켜야 된다. 이거는 말도 안 되는 소리고. 그게 아니라 율법 자체에 하자가 없다는 게 유대교인들 주장입니다. 이거 한국교회 다 주장하는 거 아닙니까. 율법 자체에 하자가 없단 말이죠.

그걸 우리가 온전히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는 차후 문제에요. 먼저 율법을 대한 자세부터가 남달라야 된다는 겁니다. 율법 자체가 온전하기 때문에 거기서 새로운 계시가 필요 있다, 필요 없다? 없는데 이 나쁜 예수부터 해서 나쁜 열두 제자들은 뭣에 흠집을 냈다? 유대 율법 자체의 충족성에 흠집을 냈다. 그것 가지고 모자란다.

이거는 마치 오늘날 우리와 통일교 문선명이나 또는 마호메트를 선지자로 생각하는 이슬람교에 대한 악담과 똑같은 거예요. 우리는 뭡니까? 더 보탤 필요도 없고, 요한계시록 마지막에 뭡니까? 빼거나 제하면 생명나무에서 제하여버리죠.

그런데 마호메트가 계시가 모자라 지가 보태지요. 통일교 문선명이도 계시를 보태지요. 몰몬교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금덩어리 계시 받았다 했잖아요. 그러니까 우린 그걸 이단이라 하잖아요. 그래서 사울이 바울 되기 전에 그리스도 믿는 사람 뭐로 봤습니까? 이단으로 봐서 작살낼 때 신나게 박살냈죠. 사울 손으로 죽은 사람도 여러 명이고.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누구도 죽었다? 이 책에 보면? 스데반 집사. 스데반 집사도 그때 사울의 집행관에 의해서 스데반 집사는 살해당했습니다. 죽었어요.

도무지 사울이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고, 유대교 바리새인들이 머리가 나쁜 사람들 아닙니다. 그 당시 엘리트 계층이에요. 요새 같으면 사법고시 합격된 사람들입니다. 도대체 그 사람들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율법이 완전한데 예수라는 새로운 계시가 거기다 첨가할 이유가 없다는 거예요. 누가 납득 있게 설명 좀 해봐라. 아니 율법으로 됐지, 그거 왜 첨가해야 되는데. 누가 나를 좀 알기 쉽도록 율법이 이래서 문제가 있다든지 알기 쉽도록 납득을 해봐라.

그럴 때 다메섹에서 예수님 만났던 사도바울이 뭐라고 이야기하겠어요? 이렇게 이야기할 겁니다. 율법은 전면이고, 그 감추어진 후면에 예수그리스도가 있었단다. 이렇게 이야기해 버리죠. 그죠? 율법은 누굴 증거하는 것이다? 율법은 우리 인간 보고 지키라는 게 아니라 못 지키고, 지키고 나중 문제고, 지키라고 요구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이쪽 전면이 아니라 뒷면에 율법 뒷면에 누가 있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를 증거하기 위해서 율법을 내세워요.

그런데 예수님이 자기를 증거한다는 정도가 아니고, 율법이 하나의 인격을 증거한다는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율법이 뭘 증거하느냐? 십자가를 증거한다는 이 말은 도저히 인간의 논리로써는 있을 수 없지요. 하나의 사건을 증거한다. 율법이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증거한다. 이 사람은 그까지는 안 나와 있어요. 안 나와 있지만 방금 십자가 빼놓고는 이야기 돼있어요.

그 대목을 지금 내가 여러분들이 책들 갖고 있으면 다 하겠는데 책들을 안 갖고 있으니까 찾질 못하겠는데. 하여튼 유대교에서 해봅시다. 유대교에서 율법을 할 때 율법 자체로써 이미 만족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뭐냐? 율법대로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이 사람이 그걸 잘 봤어요. 율법대로 메시아가 오게 된다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율법도 뭘 비켜간다? 내가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를 비켜가는 거예요. 율법 자체만으로.

율법 자체만으로 뭐가 온다? 메시아가 온다는 것을 기다린단 말이죠. 율법 자체에서 메시아가 오기 때문에 메시아가 오게 되면,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율법에 의해서 율법대로 우리는 구원을 받는 겁니다. 이게 이사야를 읽어보면, 유대인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게 그런 문자가 쫙 깔려 있어요.

내 종, 야곱아. 이스라엘아. 넌 택하였다. 언젠가 이방나라 가고. 천이면 천 명이 다 그렇게 해석돼요. 그러면 그것으로 충족합니다. 와서 어린애가 어디에 손 넣고? 독사의 굴 손을 넣고. 그러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한데요? 그러면 됐잖아요. 뭐가 더 필요한데요.

특히 유대인들에게 더 율법으로 충족되는 것을 확실히 하는 이유는 말라기 이후에 삼백 년 동안 새로운 계시가 안 왔습니다. 왜 안 왔느냐 하면, 거기에 인간은 누구나 보게 되면 말라기 끝에 보면, 결국은 말라기 끝 자체가 더 이상의 계시는 필요치 않다를 말라기 마지막 대목에 그렇게 돼있어요. 이제 오실 분은 율법을 새롭게 주려고 오는 게 아니고, 시간 연장으로 온 게 아니고, 이제는 율법대로 끝장내려 오시는 분이 오시는가 그걸로 인간은 마감돼버립니다.

그런데 그것을 율법에 대해서 도사인 사도바울은 그걸 어떻게 설명하느냐? 그건 맞는데 그게 뭐냐? 그거는 이 세대에 끝나느니라. 라고 설명하는 거예요. 아까 율법 있잖아요. 율법으로 충족되지요. 이 세대가 어떤 세대라고요? 악한 세대지요. 왜 악한 세대이냐를 드러내는데 충분하다 이 말입니다. 율법은. 그러니까 율법으로 온 입을 막고 어디 아래 있게 함이니라? 심판 아래 있게 하리라.

그래 네 말 맞는데 이것은 뭐냐? 끝장나면 오는 게 맞는데 말라기에. 그 끝장이 뭐냐? 이 세대에 끝장이고, 아래층이고, 위층에 있는 무슨 세대? 오는 세대를 너희들이 몰랐잖아. 그런데 오는 세대를 앞장서서 당기시는 분은 누구였다? 예수 그리스도였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가 평소에 삼년 동안 살아계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율법은 방향이 화살표가 너희들에게 가는 것이 아니고, 참 이스라엘 되는 나, 나를 향하여 화살표를 왔는데 너희들은 화살표를 꺾어서 누구한테 갔느냐 하면, 마치 자기들 해방하는 쪽으로 그렇게 갔다 이 말이죠.

근데 율법의 화살표는 누가 아니다? 내다 이 말이죠. 어디로? 그 사건이 무슨 사건이냐? 바로 십자가 사건으로써 이 악한 세대가 어떻게 오는 세대, 어떻게 천국으로 이걸 진행을 하느냐에 그 문제에 있어서 모든 인간은 죄 안에 있기 때문에 탈락 될 수밖에 없고, 오직 유일한 창구, 구원될 유일한 새 언약의 창구, 예수님의 살과 피가 그 십자가가 유일한 창구로 아래층에서 2층으로 연결되는 유일한 층이 바로 십자가 층이다.

그래서 이 악한 세대를 위해서 몸을 버렸으니 이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뭘 받는다? 저주를 받는다. 그렇게 사도바울은 해석을 해버립니다. 그래 사도바울은 아까 제가 이야기한 시간론을 거론한 것은 인간은 이걸 하세요. 저것 하세요. 안식을 지킵시다. 이러면 시간론이 아닙니다. 그거는 지키면 되지만 시간이라 하는 건 인간이란 탈출을 못하죠. 시간이 인간을 지배하잖아요.

시간론으로써 세대론으로써 묶어버린 것은, 인간은 결국은 니가 여기서 율법으로 무슨 짓을 해도 오히려 죄가 더욱더 키워지는 것 밖에 없고, 몽땅 이거는 다 저주받아야 될 세대다. 이 안에 들어있는 이 세대와 더불어 이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사도바울, 당신은 우에 알았노? 하니 바로 뭐라고 합니까? 다메섹에서 예수님 때문에 알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왜 그런 소리하느냐 하면, 이 악한 세대에 자기가 소속되어 있어서 여기서 부지런히 연구했더니만 아하, 악한 세대가 안 되겠다. 오는 세대에 있어야 되겠다. 라고 한 게 아니고, 그래 되면 자기의 지혜로 구원은 받은 게 돼버려요.

오는 세대를 속해 보니까 이것이 뭐다? 악한 세대인 것은 비로소 알았다 이 말이죠. 오는 세대에서 보니까 2층에서 보니까 아래층이 보이는 거예요. 1층에서 보면 2층이 있는 것도 몰라요. 새로운 영적 세계 있는 줄도 모른단 말이죠. 그래서 이 책에서 래드가 말하기를 때로는 사도바울이 영지주의적인 생각을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래 돼있거든요. 이 책을 보면.

오늘날 교인들이 아래층만 생각하지 눈에 보이는 이 세대 생각하지, 무슨 2층까지 생각하는 교인 별로 없잖아요. 있으면 무섭습니다. 그거는. 아래층만 생각한다고. 언제 장례식 때 위층 이야기하는 사람 있든가요? 여기서 그냥 들어가자 안 합니까? 여기서 들어갈 자격이 안 되는데 악한 세대가 무슨 들어갈 자격이 돼요. 여기선 죽어야 되는데.

여기서 들어간다는 말은 이 악한 세대에서 지혜가 있어서 이 지혜가 연장시키면 천국 가는 지혜가 된다 이 말 아닙니까? 글쎄 그게 아니라니까. 사도바울이 이야기하는 건 그게 아니라니까요. 그럴 것 같으면 지도 율법으로 충분하지요. 지금 세대주의가 문제가 뭡니까? 구약으로 충분하고 신약은 부록 아닙니까? 그래 되잖아요.

구약에서 미진한 거 신약에서 약간 상세하게 보충했다 그거잖아요. 세대주의가 그렇지 않습니까? 어디 악한 세대, 이걸 부정적으로 봅니까? 그래 안 본다 이 말입니다. 이게 천주교와 똑같아요. 천주교도 마찬가지죠. 인간이 전적 타락한 것이 아니고, 인간은 약간의 형상이 남아 있는데 그게 약간 미진한데 정신 차리면 괜찮은 양심 가지면 다시 찾을 수 있다. 이게 바로 유대교인 생각들이에요.

이 세상을 이 세대 자체가 악하다는 걸 생각 안하고, 이 덩어리 자체가 악하다, 거룩하지 못하다 생각하지 안하고, 여기서 꼼지락꼼지락 뭘 해보려고 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서. 우리 이 세상에 교회 다니고, 헌금하고, 기도하고, 십일조하고 뭔가 해보려고 하는 거예요. 십일조하고, 주일성수하고, 안식일 지키고. 이거는 소용없는 짓입니다.

누가 너희를 안식일과 절기로 말미암아 너희를 비난케 하느냐? 내가 전한 것이 헛되게 될까 두려워한다, 걱정된다 했잖아요. 그런 것을 날과 절기를 삼가 지키니, 지킬 때 그냥 지키는 게 아니라 돈 내고 지킨다 이 말이거든요. 그런 걸 하니. 또 히브리서에선 뭐라 돼있습니까? 제물이 뭐가 필요하냐? 예수님이 영원한 제물인데 제물이 왜 필요하냐 이 말이죠.

히브리서에서 새 언약 피가 얼마나 강조된다고. 끝에 보면. 새 언약 피, 새 언약 피. 어데 모세의 율법을 모독한 놈도 그래 하는데 하물며 새 언약의 피를 밟은 놈들은 저주는 말도 안 될 정도로 무서운 저주다. 온 산천이 다 흔들린다 했습니다.

한번 정리해 봅시다. 이 시간, 첫 시간에. 여기서 이 악한 세대에서 오는 세대로 나갈 구멍이 있다, 없다? 구멍은 없습니다. 없는데 사도바울, 니는 어떻게 아느냐 했거든요. 그거는 오는 세대에 속한 분이 자기를 찾아와서 사울아, 니가 개인적으로 은혜를 주니까 이게 올 때 여기서 지난 세대에서 다가가는 게 아니고,

오는 세대가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이미 부활의 능력이 이미, 다른 말로 하면 십자가의 구원의 능력이 내가 십자가의 능력을 얻고자 노력하는 게 아니고, 십자가의 능력이 권총처럼 쏘니까 십자가의 능력을 받으니까 이게 구멍이 뚫려서 나만 십자가의 능력이 스며들어서 이 세대 속한 사람이 오는 세대에 속해 버린 겁니다.

그러니까 구원받은 사람이 증거할 게 뭐 밖에 없습니까? 권총이죠. 무슨 권총? 십자가란 총알, 그것만 자랑할 수밖에 없지요. 첫째 시간 정리해 봅시다. 결국 뭐만 자랑한다? 자랑이. 오직 십자가만 자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한다. 나에게는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게 없다.

그게 왜 하필 부활은 아니고, 십자가입니까? 뚫은 그게 당신 죽었다가 산데이. 이래 되면 지난 세대 다 있어요. 그게 아니고 니는 죽어야 돼. 이 이야기는 십자가 아니면 그런 근거를 제시할 수 없어요. 내가 죽어야 저주받을 죄인이라는 것은 부활이 아닙니다. 근거가 뭐가 됩니까? 십자가가 근거가 돼야 그걸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요.

그러니까 부활에 속한 이 세대가 오더라도 항상 접촉점은 뭐라고요? 핍니다, 피. 십자가입니다. 이 피를 주께서 재림하는 날까지 이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주님 오시는 걸 주님을 기념하는 겁니다.

10분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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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