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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5 대구강의 4 - 인간은 왜 행동하는가 2 - 라이프니츠의 형상철학1자유게시판[철학]

05 대구강의 4 - 인간은 왜 행동하는가 2 - 라이프니츠의 형상철학1

이름 : 구득영(IP:203.223.97.201)

인간은 왜 행동하는가 2 - 라이프니츠의 형상철학1

05,12,05 강의: 이근호 정리 : 구득영

◈ 신은 하나인데, 왜 인간의 행동은 다양한가?

오늘은 교재 "라이프니츠의 형상철학으로 파악한 인간의 행동 양식"을 살펴보겠는데, 이번 강의 주제가 "인간은 왜 행동하는가?" 라는 것인데, 인간의 행동은 자기가 하고 싶으면 그냥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자기가 그런 마음만 먹으면 자기 몸이니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인데, 이것을 왜 그렇게 따지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은 그렇게 똑같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은 같은 장소에 있더라도 똑같이 행동하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도 아니고, 만약에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행동하는가? 남의 명령, 남의 시선 등을, 이렇게 남을 의식하게 되는데, 그렇게 함으로서 자기에게 어떤 유익이 오는지를 계산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사람마다 다들 똑같지 않다는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여기에 대해서, 즉 "신은 하나인데 왜 인간의 행동은 가지각색인가?" 라는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다는 말이다. 만약에 우리 같으면 그냥 넘어가지 전혀 의문을 가지지 않는데, 그러나 그는 이것을 두고 "신께서 어떻게 섭리하는가?" 라는 섭리(攝理) 문제에 대해서 언급한다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신학과 철학과 과학이 분리되어있는데,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모든 인간의 정신적인 활동을 다룸에 있어서, 그 당시에는 신이 있다고 믿는 그런 시대, 즉 철저한 유신론(有神論)의 시대였는데, 이렇게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과학과 철학, 그리고 신학이, 이런 것은 인간이 자연과 자기 주변을 파악하는데 가운데 나온 산물인데, 이렇게 신이 존재함으로 이런 곤란한 문제들을 다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신이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저 꽃은 왜 피는가?" 라는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들 생각은 "아니, 그 꽃이 피든 말든 당신이 무슨 상관인가?" 라데 말이다.

그러나 라이프니츠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신이 있음으로 말미암아서 저 강아지가 움직이는 것이 해결이 된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강아지가 움직이는 것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가? 우리는 "당신이나 잘 하세요" 라고 하면 그만인데 말이다.

하지만 라이프니츠의 경우에, 이렇게 꽃의 움직임이나 강아지의 움직임이, "내가 누구인가? 나는 앞으로 무엇이 될 것인가? 나의 운명은 어떠한가? 나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존재인가?" 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러한 신과 자연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 주체철학 - 주체를 그 밑바탕에 깔고, 자연이든 신이든 오라 !!

이것이 바로 근대의 주체철학인데, 이 주체철학은 주체에 대한 관심을 그 밑바탕에 깔고서, 자연이든 신이든 거기에 집어넣는다는 것이다. 12세기에서 15세기부터를 근대사상이 나오는데, 제가 여기서 근대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사실은 근대가 아니라 옛날 그리스를 중심으로 한 터기나 마케도니아 등으로 퍼져있었던 헬라철학이 바로 주체철학의 원조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헬라철학은 어디서 왔는가? 이것은 B.C 6세기경에 나타난 바벨론 사람들의 사상이 지중해로 유입되면서 시작이 되는데, 그러면 이 바벨론 사상은 어디서 왔는가?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아들을 보면, 셈과 함과 야벳인데, 바로 이 셈의 후손들이 셈족이고, 그 셈족이 가지고 있던 사상을 초기 바벨론 사상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참으로 엄청났는데, 물론 앞의 B.C 6세기는 후기 바벨론 사상이고 말이다.

성경에 보면, 이것이 "앗수르→바벨론→메데→바사→ 로마"로 이렇게 진행이 되는데, 이 바벨론 사람들은 별을 연구하는 자들인데, 왜 이렇게 별을 연구하는가? 별이란, 요즘 말로 하면 일종의 카렌다과 같은 것인데, 별이 이맘때에 또 이 자리에 오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똑같은 것이 계속 반복된다면, 사람들이 무엇을 의식하게 되는고 하니, 이 자연세계는 인간의 이성으로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가능성을 열어두게 되는데, 성경에 나오는 동방박사들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로 추측하고 말이다.

◈ 도시국가와 영토국가에 대해서 !!

이렇게 별을 연구하는 것이 어디에 필요한고 하니, 토지의 경계를 결정하는, 즉 국가를 다스리는데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영토국가' 라고 하는데, 이에 반해서 '도시국가' 라는 것이 있는데, 이 도시국가는 영토개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는 '길(road)' 개념이라는 것이다. 길이 죽죽 나오고 그것을 따라가면 또 도시가 나온다는 것이다.

왜 시골에 길이 새로 생기면 그 주위가 얼마나 변하는가? 길을 따라서 식당이 들어서고 러브호텔이 들어서고 말이다. 이게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는데, 길을 따라 왕래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들을 통해서 교류가 되고, 여기서 이들을 보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도시국가는 원래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고, 농사를 지으려면 넓은 토지가 있어야 하니 말이다. 도시국가는 무역이 발달하게 되는데, 이렇게 무역이 발달하려면 사람들에게 팔릴만한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장인들이 만든 고가의 생산품들이 있어야 그것들이 교류가 되고, 그렇게 해서 도시국가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렇게 도시국가는 영토개념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서로 주고받는 유통의 개념인데, 그런데 이런 영토개념은 더 나아가면 몽땅 다 지배하겠다는 것으로, 즉 땅을 이렇게 지배하는데, 그러면 나중에 도시들 하나 하나를 다 지배함으로서, 그것이 넓어져서 영토개념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도시 하나 하나마다 혈연을 중심으로 한 부족(호족)들이 있는데,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국가를 이루면 부족들간에 갈등이 생기게 되고 말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고려를 창건한 태조 왕건인데, 이 왕건이 송도인가 하는 호족출신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인 병사를 거느리고 말이다. 이들이 무리를 이루고 교역을 통해서 부를 축적하면 용병을 거느리게 되는데, 그것이 일본은 사무라이이고, 유럽은 기사라는 것이다.

포커게임을 보면, 그것이 어디서 왔는고 하니, 그것이 기사들이 한량인데 그들의 오락도구라는 것이다. 물론 전쟁이 일어나면 바쁘겠지만, 그러나 평소에는 할 일이 없어서 영주가 사냥을 하면 사냥개노릇을 하고, 그리고 "내 사랑을 받아 줘" 라고 여자들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꼬드겨서 사랑고백 놀음이나 하다가, 그것도 심심하면 포커게임을 했다는 것이다.

◈ 일신론(一神論)의 등장 - 절대왕권을 위해서 !!

이러한 사적인 병사, 즉 용병들을 한꺼번에 다 뭉치게 되면, 그들을 지배할 수 있는 절대왕권이 생겨야하는데, 이러한 절대왕권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거기에 알맞는 사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사상을 위해서 다신론에서 일신론으로 바뀌게 되는데, 다시 말해서, 절대왕권이 등장하면서 일신론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자들을 '종교사학파' 라고 하는데, 궁켈이나 모빙켈 등이 여기에 속하고 말이다. 이렇게 일종의 부족국가인 도시국가에서 영토국가로 바뀌면서, 종교도 역시 그렇게 바뀐다는 것이다. 다신론에서 일신론으로 말이다.

국가는 왕과 더불어 또 하나의 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제(司祭)라는 것이다. 왕은 폭력적인 힘을 소유하고 있고, 사제들은 계약, 혹은 언약, 또는 법(코드)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왕이 백성들에게 폭력을 행할 때는 사제들이 만든 법을 가지고 하는데, 이것은 어느 나라라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 왕 - 불쌍한 신의 아들 !!

고대 국가들은 이렇게 왕과 제사장이 균형을 이루면서 발전하는데, 여기서 누가 불쌍한가? 왕이 불쌍하다는 것이다. 왕은 천자(天子), 즉 신의 아들인데, 이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 그러한데, 셈속의 경우도 역시 그렇고 말이다. 이 신의 아들의 역할이 무엇인고 하니, 자기 나라에 천재지변이나 기근 등의 어려움이 왔을 때, 그것을 신에게 잘 빌어서 백성들에게 그런 재앙이 미치지 않도록 무마하는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집트의 신인 '이시스'와 '오리시스' 인데, 그리고 이 이집트에서 만든 미라가 바로 왕족들인데, 왕들이 이렇게 영원하도록 미라로 만든 것은, 그런 왕들이 좋아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왕이 영원하면 제국도 영원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다신론을 정리할 필요가 있게 되는데, 이 다신론은 단순히 신이 여러 명이라는 차원이 아니라, 다신론은 별자리에서 나온 것인데, 왜 별자리를 보면 황금사자나 전갈 등이 나오지 않는가? 고대인들은 이렇게 자연을 한 통속으로 돌아간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러하고 말이다.

이것을 그림으로 그리면, 일종의 드럼통인데, 만약에 저쪽에 별이 떴는데 자기는 여기에 있다면, 이렇게 별의 운명을 따라 자기의 운명도 바뀐다는 것이다. 별이 이리로 오면 자기도 여기로 오고 말이다. 지금 저만 열내는 분위기인데, 여러분은 좀 이해가 되십니까? (마지못해) - 예!

이렇게 되니 바알신이 맞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질서가 잡히니 말이다. 그러니 무슨 다른 신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우주를 지배하는 고정된 법칙만 알면, 그 신을 '바알'이든 '엘'이든 이름을 갖다 부치면, 그렇게 되면 우리의 실체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자연이라는 것은, 이렇게 꽃이 피고 진다면, 인간 자신도 이렇게 꽃처럼 피고 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도의 브라만 종교인데, 소위 윤회사상이라는 것이다. 이런 것이 옛날 고대인들의 사상에 다 들어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이 아니고 말이다. 아니, 신이 별거냐는 것이다. 질서가 잡히면 신이지 말이다.

◈ 신이란, 완벽한 질서체제 !!

그러므로 신이란 완벽한 질서체제를 의미하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이 세상에는 그 어떤 무신론자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좀 더 세련되게 이야기하면, 사람에게는 선한 양심이 있고 그 선한 양심은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나님은 선하시기에 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하나님이 선하다는 말이 어디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선하게 살면 물론 처음에는 좀 고통스럽겠지만 나중에는 잘될 것이라고 하는 사고방식 때문인데, 사람이 그렇게 선하게 살다가 죽으면 영혼이 되어서 따로 모이는 곳이 있는데, 그것을 천국, 혹은 극락이라고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극락에 가는가? 평소에 이 땅에서 통용되는 법칙이 있는데, 선한 사람은 모든 일이 잘 되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죽어서도 착한 사람은 좋은데 간다는 말이다. 만약 착한 사람이 죽어서 나쁜데 간다면, 이 지상에서의 완벽한 신의 체계에 자체적 모순이 생긴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신이고, 내세이고, 그리고 종교라는 것이다. 이렇게 신에게 정성을 다하면 보답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즉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민족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종교의 공통점이라는 것이다. 지금 제가 슬슬 흥분하기 시작하지요?

◈ 제사는 왜 드리는가? - 세금 !!

이런 신에게 정기적으로 제사를 드리면, 그것이 악마이든 귀신이든 간에 괜찮은데, 정기적으로 제사를 드리면 그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사를 누락시키다든지 제사를 소홀히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그때는 손을 좀 봐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조폭 세계에서, 아니 그보다 더 질이 나쁜 양아치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이 양아치들은 가판대의 노점상인에게 가서 돈을 뜯어내는 놈들인데, 세금을 꼬박꼬박 잘 내면 다른 구역의 양아치들로부터 보호를 해주지만, 그러나 정작 세금을 내지 않으면 자기들이 바로 양아치들이기에 그 가판대를 마구 박살을 낸다는 것이다. 자기 구역은 자기들이 접수하니 말이다.

◈ 우주나 인간 자신이나 힘의 논리에 의해서 !!

이것이 바로 단순한 양아치의 법칙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이고 신의 법칙인데,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힘의 논리에 의한 정리정돈이라는 것이다. 스토아 학파나 라이프니츠에 의하면, 이 힘은 우리 인간의 내부의 욕망에서 나온다는 것인데, 그러니 우주의 힘의 논리나 우리 내부에 있는 욕망의 힘의 논리나 다같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철학에서는 '유비(類比)' 라고 하는데, 항상 비교를 하는데, 비슷한 것끼리 이렇게 비교를 하면 비슷한 것끼리는 다 맞다고,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이라는 것은, 즉 신의 말씀, 신의 언약은 뭐 그렇게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김용옥 교수가 뭐라고 하는가? 자기가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나서, 불교를 공부하고 동양학을 공부해보니, 기독교에 있는 것들이 불교와 동양학에 다 있더라는 것이다. 기독교라고 해서 새삼 새로운 것이 없더라는 말이다. 그런데 기독교 신자들은 아는 것이 그것밖에 없으니, 무식하게 자기 것만 진리라고 한다는 것이다. 마치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말이다. 이것이 천번만번 옳은 말인데, 지금의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고 하나의 종교이니 말이다.

그러나 복음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복음이 나오겠는가, 아니면 기독교가 나오겠는가? 당연히 나오는 것은 복음이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성경에서 기독교가 나온다고 2000년 기독교 역사에서 인간들이 그렇게 외쳤지만, 이것을 깨부순 사람이 누구인고 하니, '하르낙' 이라는 것이다.

◈ 하르낙 - 교회사는 헬라철학으로 뒤범벅 !!

이 양반은 교회사를 연구한 사람인데, 이 사람이 주장한 것은 무엇인고 하니까, 지금까지의 교회사는 외부에서 뭔가 자꾸만 유입이 되었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것이 바로 헬라사상이라는 것이다. 이 헬라철학이 교회의 모든 교리를 다 뒤덮고 있는데, 천주교이든 개신교이든 말이다.

이 헬라철학이 두 가지 영향을 미쳤는데, 존재론적으로는 초월신의 개념을 도입하게 했는데, 즉 플라톤주의를 말이다. 그리고는 인간의 개별성을 강조하게 했는데,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나온 것으로, 스토아 학파의 금욕주의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예정론이 나오고 말이다. 삼위일체를 비롯한 모든 기독교 교리도 이런 헬라철학의 영향아래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 삼위일체는 루메니우스의 삼신론 사상에서 나왔는데, 그가 이미 위계적 삼신론을 통해서 신에는 세 가지의 단계가 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기독교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그리고 필로는 유대교와 헬라철학을 결합하려고 했는데, 신비적인 히브리 사상과 헬라사상을 합쳐서 말이다.

이런 것들이 이미 다 나와있는데, 이런 것들이 과연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사람들의 정신과 융합되는가를 실험한 사람이 바로 '말시온' 이란 영지주의자인데, 이 영지주의가 무엇인고 하니, 지금까지 나온 모든 사상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부에 있는, 즉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심성에 얼마나 호소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계속해서 실험해본다는 것이다. 설교나 전도를 통해서 말이다.

그러니 이 하르낙이라는 사람은 리츨의 제자인데, 그가 교회사를 연구해보니 이것저것 다 빼고 나니 남는 것은 복음밖에 없더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하르낙이라는 사람이 대단해 보이지만,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복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르낙이 주장하기를, 사도바울도 제자들도 모두가 다 엉터리인데, 사도바울은 영적인 것을 너무 강조했고, 제자들도 예수를 신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주장하는 진짜 복음은 무엇인고 하니, 산상설교밖에 없다는 말이다. 산성설교는 지상에 이루어놓은 천국인데, 즉 이 지상이 천국이고 유토피아라는 것이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다신론이라고 하는 것은, 자연세계에서 제대로 된 영토국가가 되기 전에 도시국가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때는 다신론으로 도시국가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이들이 합쳐져서 영토국가가 되면서 다신론에서 일신론으로 가게 되는데, 이렇게 일신론이 되어버리면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다신론일 때는 각각 무엇을 할 때마다 거기에 적당하게 맞추면 되는데, 이사갈 때는 어떻고 결혼할 때는 어떻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 다신론의 경우에는 궁극적인 것은 미지의 세계로서 모르게 되는데, 왜 모르는고 하니 이 궁극적인 것을 인정해버리면 그 다음이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왜 하나밖에 없는 것이 다양하냐는 설명 말이다.

◈ 하나밖에 없는 신이 왜 다양한가?

오늘 강의의 핵심이 바로 이것인데, "하나밖에 없는 신이 왜 다양한가?" 라는 것이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까, "신은 하나인데 왜 사람들마다 행동은 다른가?" 라는 것이다. 하나의 신이기에 하나의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여기에 라이프니츠의 고민이 있는데, 신은 행동을 하나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물론 의지도 하나가 아니고 말이다. 그것은 바로 신 속에 다양함이 있기 때문에 신의 피조물인 인간들도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신 안에 다양한 의지가 있고 다양한 행동이 나온다면, 어떻게 그 신을 하나의 개별자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 라이프니츠 - 인간을 통해서 알 수 있다 !!

라이프니츠는 여기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이렇게 신이 어떻게 다양한 속성을 하나로 품을 수가 있는고 하니, 신의 위대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을 통해서 그것을 유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하나이면서도 다양한 행동을 하는 것을 통해서, 그런 인간을 보면서, 역시 신도 하나면서 다양한 속성을 가질 수가 있음을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제가 조금 전에 말한 신의 섭리를 설명함에 있어서, 즉 지금 라이프니츠가 신의 섭리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이렇게 신의 섭리를 설명함에 있어서 과학이나 철학이나 신학이 경쟁적으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설명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설명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신학이 신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사실 다른 방식이라는 것이 어폐가 있는데, 신학이 신을 설명할 때는 그 논리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설명하지 않는가? 사실은 못하는 것인데, 신은 하나인데 왜 인간들은 다양한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서 신학자들은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한다는 말이 하나님의 자율성이나, 또는 주권성이고 말이다. 즉 하나님은 자기가 하고 싶은 데로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을 철학자들도 다들 하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이 어떤 메카니즘, 즉 어떤 절차를 밟아서 그렇게 되느냐고 물으면, 신학자들은 무엇이라고 대답하는고 하니, "성경에서 더 나가지 말라는 것은 안 나간다" 라고 하는 것이다. 자기가 무식하다는 소리는 하지 않고 꼭 그런 핑계를 댄다는 것이다.

이렇게 철학자들은, 신학자들이 다른 방식이 없는 것이 아니라 무식해서 설명하지 못한다고 보는데, 이러한 신학자들의 무식함을 극복하고자 철학자들은 직접 인간의 논리로서 신의 섭리를 설명하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공부하는 라이프니츠의 '형상철학으로 파악한 인간의 행동양식' 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무식해서 못하면 자기들이 하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에서 어떻게 다양한 여러 행동들이 나오는가?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예를 들어서, 갈치를 좋아하는 '나'와 빨래하기를 싫어하는 '나', 이렇게 갈치반찬을 좋아하는 것과 빨래하기를 싫어하는 것, 이런 두 가지가 자기 속에 다 들어있다는 것이다.

◈ 신과 인간의 차이점 - 모나드 !!

여기서 라이프니츠는 신과 인간의 차이점을 먼저 이야기하는데, 신은 하나이면서도 다양을 만들어내는 모든 속성을 다 함께 품고 있지만, 그러나 인간은 하나이지만 다양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갈치반찬을 좋아하는 것과 빨래하기를 싫어하는 것은 다양이 아니라 변화라는 것이다. 이렇게 변화된다는 것은, 하나가 다른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즉 동일한 하나가 변화된다는 것이다.

그 '동일한 하나'를 뭐라고 하는고 하니, 그것을 '모나드(monad)' 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라이프니츠의 유명한 형상 철학의 기초가 되는 '단자(單子)' 라는 것이다. 이 단자는 갇혀있다는 의미인데, 그야말로 창문도 없다는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교재를 보면서, 라이프니츠는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했는지 한번 알아보자는 것이다. 먼저 교재 11페이지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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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상철학의 특징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 즉 물질적으로 나타나있는 세계를 논하기 이전에 우선 이 세계를 이렇게 존재하게 만드는 비물질적 차원을 먼저 논하면서 등장된 개념이다. 형상, 리, 섭리, 법칙, 구조 … 등등이 그런 것들이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 기독교의 '말씀', 성리학의 리(理) 등이 그러하고, 과학에서 말하는 법칙이나 구조 등도 여기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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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 기독교의 '말씀', 성리학의 '리(理)' 등이 정신세계에 속하는데, 이 정신세계가 우선인데, 여기에 질료, 즉 물질이 결합되면서 자연세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라이프니츠의 형상철학인데, 이것이 과연 맞는 이야기인가?

계속해서 교재 11페이지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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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니츠가 내세우는 모나드, 즉 단자(單子)도 일종의 형상이다. 그리고 그에 물질이 가미되어야지 우리가 경험하는 개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은 그리스도적 형상론과 다르다. 라이프니츠는 변화를 토대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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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인간은 단자이고 변화를 겪으면서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바로 그러한 사건들을 통해서 자기의 단자됨을, 즉 "나는 독립된 개체임을, 나는 남이 될 수 없다" 라는 사실에 대해서, 그러한 사실을 자기의 평생동안을 두고두고 깨닫는 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조금 더 쉽게 말해서, "내가 남이 될 수 없다" 라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간단한 논리인데, 그런데 실제로 자기가 남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언제 잊어버리는고 하니, 누군가를 지독히 사랑할 때인데, 그런데 그 사랑했던 자가 자기를 배신하고서 떠나버릴 때, 그 사람은 누군가가 때리지도 않는데 괴롭고 아프다는 것이다.

◈ 욕이란? - ㄱ+ㅐ+ㅅ+ㅐ+ㄲ+ㅣ !!

여기서 '욕'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해보면, 욕이라는 것은 기껏해야 미량의 에너지가 귀가를 때릴 뿐인데 말이다. 예를 들어서, '개새끼' 라고 했을 때, 이것을 분해해보면 "ㄱ+ㅐ+ㅅ+ㅐ+ㄲ+ㅣ" 라는 것인데,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제 아무리 괴롭고 기분 나쁜 일이 있더라도, 그것이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게 되는데, 왜 그런고 하니, 처음 있는 개새끼가 처음에는 동일하게 뭉쳐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우리 인간의 기억 속에서 "ㄱ+ㅐ+ㅅ+ㅐ+ㄲ+ㅣ" 라고 분해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두뇌 속에는 '해마' 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해마처럼 생겼다고 해서 해마인데) 여기에는 초기 기억이 저장되는 곳인데, 이 해마에 있는 뉴런의 신경조절물질이 바쁘다보면 여기에 신경을 쓰지 못하기에 기억이 해체가 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또렷하게 기억을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해리(解離)라고 하는데, 이렇게 해리가 되면, 초창기의 그렇게 기분 나쁜 것도 해리가 되면서, 즉 점점 잊혀지면서 다시 악수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쁨이나 슬픔도 그렇고, 이렇게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은 세월이 지나게 되면, 해마라는 기억저장소에서 세포들이 계속해서 활동하기 때문에 흐물흐물해진다는 것이다.

◈ 과학적 안목 - 시간이 약이다 !!

이렇게 "아픔도 괴로움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다 해결된다" 라고 설명하는, 이것이 바로 과학적 안목인데, 이것이 맞다는 말이 아니고, 이것을 더 넓게 이런 방식으로 다 설명을 해버리면, 그것을 두고 라이프니츠는 신의 섭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제 어두운 터널을 벗어난 듯한 느낌인데, 어디 이해가 좀 되는가요?

◈ 형상철학 - 형상자체가 아니라, 그 형상이 어떻게 변화가 되는가?

이렇게 신의 섭리가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인간이 어떤 모습으로 있는가, 즉 형상이 아니라, 그 형상이 어떻게 변화가 되느냐는 것이다. 그러한 변화의 원인과 동기들을 연구함으로서, 그 변화를 통해서 신께서 이렇게 섭리한다는 것을 단정짓고자 하는 것이 라이프니츠의 '형상철학' 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여러분이 "목사님, 그렇다면 해마까지 동원해서 설명한 과학적 인식이 맞습니까? 아니면 라이프니츠가 맞습니까?" 라고 한다면, 그러나 이 문제는 맞느냐고 물으면 안 되고, "어느 것이 더 심오합니까?" 라고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해마라는 이 두뇌는 시간이 지나면 다른 것을 생각나게 하는데, 이 두뇌는 질료(물질)인데, 이 두뇌를 형성하는 물질이 무엇인고 하니, 단백질인데 이 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되어있고 말이다. 그러면 모든 단백질이 다 두뇌인가? 그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단백질 중에서 두뇌가 되도록 하는 단백질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 두뇌가 되게 하는 단백질이 바로 '나' 라는 형상이라는 것이다. 이 '나' 라는 형상은 인간 속에 들어있고 말이다.

좀 더 쉽게 설명을 하면, 인간은 단자인데, 즉 '나'가 단자인데, 인간마다 무엇이 있는고 하니, 두뇌가 있는데, 이 두뇌가 가만히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에 가만히 있다면 어떤 사람은 동일한 '개새끼야' 라고 욕을 해도 가만히 있고, 또 어떤 가만히 있지 않는데, 그러니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다르면 무엇이 안 되는고 하니, 다신론이 되지 일신론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르다고 해버리면, 다른 귀신이 있다는 것이니 다신론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라이프니츠는 일신론을 주장하는데, 즉 모두를 하나로 묶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의 신께서 "왜 너하고 나하고 다른 감정처리를 하도록 하셨는가?" 라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변화속도, 즉 변화의 다양성 때문에 그러한데, 그러면 어떻게 변화하는가? 그것은 물질인 형상이 차이가 나서 그러한데, 즉 질적인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 과학은 천박스럽고, 철학은 세련되고 심오한데, 신학은 무식하다 !!

이렇게 되면, 과학은 천박스럽고 철학은 세련되고 심오한데, 물론 신학은 무식하고 말이다. 신학자들은 이런 것에 대해서 몰라서 침묵하니 말이다. "아니, 신이 그렇게 하면 하는 것이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가?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 라고 하면서, 성경구절까지 들먹인다는 것이다. 자기들은 말씀이 가는 곳까지만 간다고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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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라이프니츠의 변화는 단순히 외부적 힘에 의한 운동이나 외적으로 관찰된 변화가 아니라 모든 모나드들이 자체 안에 지니고 있는 내적 힘을 말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활동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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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활동성이 나오는데, 그러면 이 활동성이 무엇인가? 먼저 그 앞의 내용을 조금 언급하면, 라이프니츠는 변화를 외적인 변화와 내적인 변화로 보았는데, 이 외적인 변화는 관성의 원리인데, 이 관성의 원리는 버스가 달려가다가 스톱하면 승객들이 뒤로 넘어가는 현상인데, 즉 눈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물건을 던지면 다시 내려오는 중력의 법칙도 외적인 변화이고 말이다.

라이프니츠에게 있어서 이런 것은 과학인데, 사실 당시 그는 최고의 과학자이기도 했는데, 그에게서 미분적분이 나왔으니 말이다. 물론 옛날에는 한 사람이 과학과 철학과 신학을 다했지만 말이다. 사과가 떨어지는 중력의 법칙은 외적인 것인데, 그러면 "왜 내려오는가?" 라고 원인을 밝히는 것이 바로 내적인 것인데, 그것이 바로 '활동성' 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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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활동성'이란 무엇일까? 다름 아닌 한 모나드의 질적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 모나드를 구성하고 있는 속성들의 운동을 말하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나드들 사이에 질적 구분이 없다면 그들의 변화를 간파해 낼 도리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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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서, 단자들은 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 11페이지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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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니츠는 신이 우주를 창조할 때 모나드를 먼저 만들었다고 한다. 이것은 그가 물질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모나드를 이야기하는 것과 상통한다. 질료를 빚어서 개체를 만든 것이 아니라 개체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그 규칙성부터 먼저 만들었다는 말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말의 철학적 의미이다. 그리고 나서 질료를 만들어 그에 모나드를 구현시켜 개체들을 만든 것이다. 일종의 건물의 설계도가 건물보다 먼저 있는 이치와 같다. 플라톤과 비교해 보면, 플라톤의 경우 형상의 세계와 데미우르고스(만물을 조성하는 장인, 匠人)가 따로 있고, 이 데미우르고스가 형상을 본떠서 질료를 빚는다. 그런데 기독교 전통에 속해 있는 라이프니츠의 경우, 형상은 신의 머리(오성) 속에 들어있는 것이고 질료는 나중에 창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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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인고 하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고 할 때는 하나님이 질료를 창조했다는 것이다. 창조할 때는 설계도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 그 설계도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서 갑자기(?) 개혁주의의 조직신학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미 라이프니츠에서 벌코프의 조직신학이 등장을 하니, 그러니 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신학을 하는 사람들을 우습게 본다는 것이다. 성경을 떼고서 이야기해도 다 되는 것을, 즉 이미 철학자들인 자기들이 다 말한 것을 가지고서 마치 성경에서 나온 것처럼 새삼스럽게 주장한다는 것이다. 무식한 신학자들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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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오로지 건축가만 있었던 것이다. 그 후 건축가가 자기 머리 속에 들어 있는 관념들을 이리저리 결합시켜 갖가지 설계도를 만들었고, 그 중 괜찮은 것을 선택해 질료를 만들어 그에 구현시킨 것이다. 그러나 특정 인간의 개체가 죽 해체되어도 그 인간의 설계는 신에게 남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형태의 형상철학이 공유하고 있는 기본적인 사유 패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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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니츠의 주름이론 !!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는 죽어도 그 설계도가 남아있기에 다시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아주 은혜롭지 않은가요? 이것이 신학이 아니라 철학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양성은 무엇인가? 이것이 오늘 강의의 하이라이트인데, 여기서 그 유명한 '주름' 이론이 등장하는데, 주름은 쭈글쭈글한 것이지만 펼치게 되면 없어진다는 것이다.

쉬운 예가 종이접기 인데, 종이를 펼치면 한 장이지만 접으면 여러 장이라는 것이다. 종이 한 장이 한 면인데, 이 한 면은 극단적으로 단순하다는 것이다. 이 단순한 한 면을 반으로 접으면 두 면이 되고, 이렇게 두 면이 되면 단순한 것이 한 면인 것보다는 두 배로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종이는 여전히 한 장이라는 것이다.

이 동일한 질료, 즉 물질이고 재료인데, 이 질료는 물질과는 조금 다르기는 한데, 이 질료가 동일한 한 면인데, 이와 같이 우리의 신체도 태어날 태의 바로 그 신체인데, 세포가 아무리 분열해도 말이다. 그렇지만 어린아이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태어날 때는 아무 것도 모르다가 왜 5살이 되면 책을 읽는가? 그것은 질료는 같아도 형상이 달라서 그렇다는 말이다.

이것이 형상의 변화인데, 즉 주름진 'a' 라는 포인트, 'b' 라는 포인트, 그리고 'c' 라는 포인트에 있는 여러 가지 정보들이, 즉 하나님의 예정으로 담겨져 있던 것들이, 이렇게 주름이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외부로 표현될 때. "아하, 나에게도 글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5살 때 말이다. 그러나 그 아이가 25살 때 도박에 빠질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그것은 25살이 되어봐야만 비로소 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절대적 운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새로운 자기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운동에 의해서, 이것이 신의 섭리인데, 분명히 태어날 때는 쌍둥이였는데 나중에 한 사람은 형사로 다른 한 사람은 죄수로 만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본인들도 몰랐는데, 자기 주름 안에 어떤 정보들이 들어있는지 말이다.

이 주름은 일종의 부채도사(?)가 들고 있는 그런 부채와도 같은 것인데, 부채는 쥐고 있으면 하나지만 펼치면 갖가지 아름다운 그림들이 그 속에서 다 펼쳐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채가 접혀있을 때는 그 안에 어떤 그림이 있는지, 즉 어떤 정보가 있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생은 일종의 주름펴기인데, 주름이 펼쳐지면 자기도 몰랐던, 이게 산상설교에도 나오는데, 맹세하지 말라고 말이다. 개척교회 목사들이 주로 그러한데, "저 사람만큼은 믿을만하다" 라고 해서 회계집사를 맡겼다가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예수를 안 믿을 것만 같은 사람이 죽으라고 믿고, 잘 믿을 것 같은 사람이 교회를 떠나고 말이다. 그래서 잠언에는 보증을 서지 말라고 했는데, 이렇게 보증을 서주지 않으면 친척들이 섭섭하다고 난리를 치고 말이다.

◈ 주름이론 -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통해 빛을 발하다 !!

이런 주름살을 가지고 설명하는 라이프니츠의 주름이론, 즉 단자의 질적인 변화에 의해서, 즉 형상의 변화에 의해서 주름이 잡히고 그 내용물인 정보가 나온다는 이론이 드디어 1953년에 드디어 발견이 되는데, 그게 무엇인고 하니, 왓슨과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히면서 현재와 같은 유전자의 개념이 확립되었다는 것이다.

DNA의 21번째 인자는 바로 백혈병 인자이고, 7번째는 정신병이고, 이것은 당뇨병인고, 이것은 무엇이고, 등등 말이다. 이러한 DNA 구조 안에서 정작 본인은 언제 당뇨병이 발병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 DNA 구조를 살펴보면, 이 아이는 앞으로 당뇨병 환자가 될 수밖에 없음이 다 나온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병든 DNA를 떼어내고서 건강한 DNA를 교체하는 것이 황우석 교수가 하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감히 MBC PD수첩이 반대를 한다니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자기들은 암에 걸리면 안 고쳐도 되는가? 어디 병원에 오기만 해보라는 말이다. 천주교 사제단도 여기에 동조해서 생명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생명이란 것은 결과론적으로 그렇게 생명이 되는 것이지, 즉 그렇게 다 되고 난 뒤에 이름을 무엇이라고 붙이느냐의 문제이지, 생명이 따로 있어서 보호하고 말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당히 어려운 내용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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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모나드에는 창이 없다"라는 의미인가? 그렇지 않다. 고립되기는커녕 오히려 모든 모나드들이 무한히 중첩되어 있다. 라이프니츠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을 신(神)에 귀속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근대적 사유는 인간의 정체성을 인간 바깥에서 찾았다. 형상, 신, 하늘, 리(理) 등이다. 라이프니츠에게서 신은 절대적 객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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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모나드는 창이 없다" 라고 했는데,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그 어떤 경우라도 자기 인생이 타인의 인생이 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말이 맞죠? 자기 인생은 끝까지 자기 인생으로 간다는 것인데, 그런데 만약에 이것을 모르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 '모나드'에는 창이 없다 !!

'이것이 인생이다' 라는 그야말로 대한민국에서 비참한 인생만 골라서 끌어다 모아놓은 다큐멘터리가 있는데, 여기에 보면 주로 그 내용이, "내가 살다가 어떤 남자를 만났는데 그는 천하에 사기꾼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남자를 만났는데 그는 그야말로 폭군 중에 폭군이었다. 그래서 내 인생은 지금 이렇게 요모양 요꼴이다" 라는 식으로, 전부가 다 남의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라이프니츠에 의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남편을 잘못 만난 탓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누구를 만나더라도 자기 인생은 끝까지 자기 인생으로 가는 것이지, 다른 사람 때문에 자기 인생이 새삼스럽게 더럽게 꼬이고 말고 하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본인이 관성의 법칙에 의한 그런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즉 어떤 남자를 만나더라도 조건을 따져서 결혼을 결정해야 하는데, 본인이 감정에 사로잡혀서 남자에게 흠뻑 빠져서 자기 내장(?)까지도 모두 내주는 식으로 살아놓고는, 그런데 이제 와서는 남자에게 폭행을 당하고 이렇게 배반을 당해서 이혼을 해놓고는, 그래서 자기 인생을 저 놈 때문에 자기 인생을 조졌다는 식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만약에 다른 여자 같았으면 과연 그렇게 되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본인의 주름에 잡혀있던 어떤 자기만의 본성과 같은 것들이 그 남자를 만남으로서 비로소 발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때 그런 그 남자와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서 말이다.

그래서 스토아 학파나 라이프니츠는 이것을 뭐라고 하는고 하니, 이것을 '사건' 이라고 하는데, 어떤 사건을 만나게 되면 자기 품속에 있던 다른(?) 본성이 발현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발현' 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만나면 빛이 반짝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빛이 지나가면 꺼져버리고 말이다. 즉 반응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 라이프니츠의 인생론1 -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말라 !!

그러니 라이프니츠가 말하는 인생은 무엇인고 하니, 제발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하나님 탓을 하든지 말이다. "저를 왜 이런 단자로 만들었습니까?" 라고 말이다. 그러니 이 단자(單子)라는 개념은 절대로 자기 인생이 그 어디에 집어넣더라도, 남극에 보내든지 북한에 보내든지 그 어디로 보내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이 사회를 핑계대지 말고, 아버지가 어떻고 하면서 가족을 핑계대지 말라는 것이다.

이렇게 단자는 창문이 없으니 자기 단자는 자기 말고 다른 것으로 갈 데가 없는데, 타인과의 관계는 일으키지만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타인으로 달라지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 자신 속에서 질적인 변화는 있지만 말이다.

왜 이러한 단자개념을 만들어야 하는고 하니, 결국에는 이 단자가 신이기 때문에, 즉 신이 변해버리면 큰일이 아닌가? 그러니 변화를 줄 수 있는 그분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신이 변하면 다신론이 되는데, 그렇게 되면 기독교의 유일신과 다르다는 것이다.

◈ 라이프니츠의 인생론2 - 인간의 운명은 타고났다 !!

라이프니츠는 기독교를 신봉하는 철학자이기에 그렇게 되면 안 되는데, 물론 복음은 모르고 말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신은 하나이어야 하고, 이 신으로부터 모든 사물을 다 설명해야 하는데, 이렇게 설명을 하다보면, 결국 "인간의 운명은 타고났다" 라고 주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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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칸트 이후의 철학자들은 주체와 자유의 철학을 전개했다. 인간 의식이 자유이다. 인간이 절대적인 주관성이요 주체성이다. 선택과 거기에 따른 책임성을 스스로 끌어안고 있다고 보았다. 인간이 발견한 모든 객관은 인간 주관의 어떤 조건들 하에서만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인식론이 중요하게 부각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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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보면 '자유' 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라이프니츠의 생각과는 다른데, 라이프니츠는 절대적 결정론자인데, 그는 이 자유라는 것은 사실상 하나의 새로운 사건의 반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반응을 일으키고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나와 나'의 경계선이 허물어지는데, 상대방이 허물어지는지 사실 잘 모르는데, 자기는 분명 허물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주었는데, 그런데 상대방이 그만 도망을 가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다시 어디로 오는가?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것이 상당히 중요한 것인데, 고린도전서 16장에 보면,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했는데, 그래서 구원을 받으려고 다 주를 사랑하는데, 그런데 그렇게 사랑을 해놓고 자기에게 무슨 일이 생기게 되면,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고전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이것을 그림으로 그리면, 여기에 하나님이 계시고 또 이렇게 자기가 여기 있다면, 처음에 이렇게 주께 모든 것을 다 자꾸만 퍼주면 나중에 없어진다는 것이다. 사랑할 때는 텅텅 비고 다 없는 것 같은데, 그런데 왜 또 뭔가 이렇게 생기느냐는 것이다. 간과 쓸개도 다 퍼주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 "에이, 다시는 퍼주나 봐라" 라고 하는데, 즉 다시 자기 것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것이 참으로 이상한데, 마치 엘리아와 사르밧 과부의 사건과도 같다는 것이다. 부어도 부어도 자꾸만 무엇인가가 나온다는 것이다. 신약의 오병이와도 같고 말이다. 분명하게 하나님께 꺼벅 엎어지고 주님께 꺼벅 자빠졌는데, 그래서 예배를 드릴 때는 눈물을 흘리고 했는데, 그런데 교회 문을 나서서 집으로 차를 몰고 오는데 자기 자존심이란 놈이 '붕' 하고 떠오른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디에서 그런 것이 나오느냐는 것이다.

◈ 칸트 - 신이여, 이제 굿바이 !!

칸트는 이것을 '자유' 라고 했는데, 사실상 '자율' 이라는 개념이 더 어울리는데, 자기가 스스로 법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자기가 한 것은 자기가 책임진다는 것이다. 칸트가 이렇게 주체와 자유를 이야기했다는 것은, "신이여, 이제 굿바이"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신에게 너무 넘어가서 그에게는 인간은 없고 신만 있는, 신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반해 칸트는, "신이여, 안녕히" 라고 함으로서, 이제 신은 완전히 날아가 버리고 자기 스스로 신으로 등기 이전하는 그런 시대가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교재 12페이지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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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니츠의 실체는 활동성을 그 기본 성격으로 하고 있다. 고대에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원래 세상의 본모습이고, 움직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든 그 본모습이 타락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고대에는 "왜 움직이는가"를 설명해야 했던 시절이다. 그런데 근대에 와서는 거꾸로 되었다. 근대에 와서는 세계는 기본적으로 운동하는 것으로 파악이 된다. 그리고 거꾸로 사물이 "왜 정지할까"를 설명하려고 한다. 물음 자체가 거꾸로 된 것이다. 이것은 근대 물리학의 제1원리가 '관성의 원리'인 이유이고, 근대 물리학자들이 몰두했던 문제들 중 하나가 '마찰'에 관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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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니츠 - 이상하다, 왜 정지하지?

"이상하다,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데 왜 움직이지?" 라고 하는 것이 고대라고 한다면, 그대의 라이프니츠에 와서는, "이상하다, 왜 정지하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은 이 정지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데, 자동차의 놀라운 점은 정지하지 않으면 자동차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는 자동차가 아니라는 것이다.

근대의 모든 발명품들은 움직이는데 그 의미가 있는데, 즉 저쪽과 이쪽의 거리를 좁히는데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빠른 속도로 말이다. 과거에는 창을 던져서 사람을 죽이고 했는데, 그런데 그렇게 하면 던져서 날아가는 시간이 너무나 길다는 것이다.

그래서 몽고인들의 경우에는 말을 타면서 활을 쏘게 되었고, 그렇게 되면 말이 달리던 관성에다가 자기가 활을 쏘는 힘이 합쳐져서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그게 이제는 장갑차를 타고 총을 쏘고 대포를 쏜다는 것이다. 그리고 버튼을 눌려서 미사일을 발사하고 말이다. 그러니 얼마나 빨라졌는가? 이렇게 움직임을 더 빠른 움직임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 움직임이 움직임으로 효과가 있으려면 정지가 없어져야 하는데, 사실 정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이다. 유치원이 있는 아이들이 가만히 있는 것이 어려운가? 아니면 움직이는 것이 어려운가? 가만히 있는 게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어른들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그래서 예배를 어린아이들과 같이 드린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데, 물론 옛날에는 아이들이 훈련을 받아서 잘 견뎠지만 말이다. (마치 서울 의존교회는 아이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훈련을 하지 않기 때문에 10분 이상을 견디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를 탓할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몸 구조가 그렇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달원 목사는 이런 경우에 떠드는 놈들에게 그 험상 굿은 표정으로 큰 소리로 야단을 치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설교를 하곤 하는데, 물론 이근호는 야단도 전혀 못 치고 속으로만 꾹 참고는, 마치 벙어리 냉가슴으로 그냥 지나가지만 말이다.

이제 교재 14페이지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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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실체성에 대해서 모나드가 어떤 방식으로 지각을 하게 될까? 라이프니츠에게 있어서 지각들이란 첩첩이 내부에 접혀져 있다. 한 모나드 안에 무한한 많은 지각들이 내속(內屬)이 되어 있지만 이들 모두가 의식되지는 않는다. 라이프니츠는 지각을 통각과 의식으로 둘로 구분한다. 통각이란 인간의 자기 의식적 수준, 즉 '정신'의 수준에서 성립하고, 의식이란 영혼을 가진 모나드의 수준에서 성립한다. 그러니까 모나드/정신/통각의 3분법이 성립한다. 모나드에 해당되는 것은 지각이고, 정신에 해당되는 것은 의식이고, 그리고 통각에 해당되는 것은 통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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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사실 무지무지 어려운 이야기인데, 왜 이렇게 해야만 하는지 교재를 계속해서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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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이렇게 구분을 지었을까? 사람이 죽은 상태를 예를 들면,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미세 감각 상태에 떨어진 것을 의미한다. 즉 극미한 상황이지만 그 안에도 미세한 주름이 접혀 있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와 같은 물질주의자들은 물질 자체를 애초에 죽은 것으로 간주하지만, 라이프니츠는 그렇게 보지 않고, 완전한 소멸의 상태로 보지 않고 있다. 충만한 삶과 '0'에 가까운 삶 사이에 무수한 위계(층계)가 있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와 같은 물질주의자들은 죽음으로 인해 물질과 영혼이 전적으로 분리되었다고 보는 반면에, 거기에 비해 라이프니츠는 영혼과 신체는 늘 같이 존재한다. 영혼이 명료한 지각을 갖기 위해 신체가 요구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단지 개체마다 영혼의 물질의 배합이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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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주의자인 데카르트는 사람이 물질이기에 죽으면 꼼짝도 못한다고 보는데, 그러나 반면에 라이프니츠는 사람은 죽어도 움직인다는 것이다. 다만 육체가 움직이지 못하기에 밖으로 반응을 나타내지 못할 뿐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기절을 하면 느끼지 못하는데, 깨어나면 느끼고 말이다. 여기서 기절했다는 것은, 정신이 정신을 발현할 수 있는 육체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디선가 돌맹이가 날아와서 때리니 '뿅'하고 갔다는 것이다.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깨어나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죽고 난 뒤에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것이 무척이나 어렵기 때문에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보면,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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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금강산이 보이지 않더라도, "금강산에 가고 싶다"를 욕망한다. 이렇게 금강산을 상상을 통해 욕망한다는 것은 얼핏 우리 마음을 가능적 금강산으로 채웠다고 해야할 것 같지만, 사실 우리 마음속에 금강산의 무(無)가 표상된 것이고 그만큼 우리 마음이 움푹 패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패인 부분을 메우려고 애를 쓴다. 즉 금강산을 현실적 존재이자 가능적 무(無)로 바꾸는 것이다. 바로 이 욕망이 우리 행위의 원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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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금강산에 가고 싶어라 !!

여기서 "'금강산에 가고 싶다'를 욕망한다" 라고 할 때, 이 욕망은 '욕동' 이라고도 하는데, 이 욕동은 지각과 더불어 우리 내부에 있는 것으로, 이것이 교재 14페이지에 있지만 설명을 하지 않았는데, 너무나 복잡해서 말이다. 사실상 이렇게 복잡하기 때문에 세련된 철학이 되는데, 이 욕망은 주름이 펼쳐진 힘이라는 것이다. 눈앞에 금강산이 보이지 않더라도 금강산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그런데 왜 금강산에 가지 못하는가? 그것은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글을 읽고 나니, 더 쉽게 예를 든다고 해놓고서는 사실은 더 어려워졌는데, 이렇게 금강산에 가고 싶다고 욕망한 것은 누군가가 금강산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들은 이미지가 있다는 것이다. 즉 이야기는 들었는데 경험은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슨 말인가? 우리 인간 내부에 금강산 이야기만 들어도 거기에 가고자 하는 힘이 들어있다는 것인데, 이렇게 "금강산에 가고 싶다" 라고 반응을 하는 것은, 이미 그것이 우리 내부의 주름 속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금강산이 좋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러나 금강산에 가지를 못했는데, 그것을 '결핍' 이라고 하는데, 이런 결핍을 메우기 위해서 나타난 것이 바로 '욕망' 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라이프니츠의 주장이라는 말이다.

◈ 욕망이 생기는 것은 주름 속에 이미 가능성이 내포 !!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소위 견물생심(見物生心)과도 비슷한 것인데, 예를 들어서, 백화점 쇼윈도우에 아무 것도 걸려있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하지만 뭔가 거기에서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사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즉 보았기 때문에 욕망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것을 라이프니츠는 단자 속에, 즉 주름 속에 그러한 가능성이 내포되어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영혼은 하나님의 것이 손대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영혼은 불멸하다는 말인데, 비록 질료는 썩지만 말이다. 이렇게 되니, 신학자들이 해야할 일을 철학자들이 대신해서 다 해주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교재를 계속해서 그냥 읽어보자. 쉽게 설명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워지니 말이다.

교재 15페이지를 계속해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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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드가 단순한 물질 덩어리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지각 작용과 욕동 작용에 근거를 두고 있다. 만일 이 우주에 물질 덩어리만 있다고 생각해보면, 지각이나 욕동이라는 것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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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조금 전에 말한 '욕동'이 나오는데, 이것을 '욕망' 이라고 보면 되는데, 계속해서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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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어떤 두 물질 덩어리가 있다면 그 덩어리들은 그냥 공간 속에서 같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두 물질 덩어리가 서로 지각을 하고, 또 상호적으로 어떤 일정한 활동을 한다면, 그 때 우리는 그들을 그냥 물질 덩어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때 우리는 그 덩어리들 안에는 물질이 아닌 어떤 것, 즉 영혼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모나드의 상태는 의식이 동반되지 않는 상태이다. 그러니까 식물적인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혹은 인간의 경우를 말한다면 기절을 해서 아무런 꿈조차 꾸지 않는 깊은 잠에 떨어진 미세 지각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지각없는 모나드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물이 되면 비로소 영혼으로서의 모나드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경우를 보면, 기절하기 전에 통각했고, 기절해 있었을 때 통각하지 못했고, 다시 깨어났을 때 통각한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기절해 있었을 때도 지각은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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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기절이 나오는데, 이 사람이 기절하기 전에 어머니를 보았다면 어머니를 느꼈는데, 그것이 통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기절을 해버리면 어머니에 대해서 말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깨어나면 어머니를 알아본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데도 어머니를 알아보는가? 처음 느낌(통각)과 그 다음의 느낌을 연결해주는 어떤 영혼적인 활동이 있는데, 그것이 '지각' 이라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 16페이지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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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이 없어졌다가 갑자기 다시 생길 리가 없다. 즉 존재에서 무로 갔다가 존재로 다시 돌아올 수는 없다. 다만 밑바탕에서의 연속성 위에서 어떤 불연속성이 있는 것이다. 마치 물을 국자로 떠냈다가 다시 담았다가 다시 떠내는 행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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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왜 행동하게 되는가? - 모나드 속에 있는 미세지각에 의해서 !!

이렇게 물을 국자로 떠냈다가 다시 담으면 물은 그대로 있는 것인데, 그러므로 인간의 행동은 영혼이 함께 있는 지각에 의해서 이루어지는데, 즉 미세지각에 의해서 인간은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 강의 주제가 "인간은 왜 행동하게 되는가?" 라는 것인데, 모나드 속에 있는 미세지각에 의해서 인간은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라이프니츠에게 있어서 절대죽음은 없는데,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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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드에게는 절대 죽음이라는 것은 없는 것이다. 이것을 라이프니츠는 지각론을 통해 증명한다. 절대 죽음만 없는 것이 아니라 라이프니츠에게는 절대 무도 없다. 예컨대 우주가 멸망해서 그 어떤 형상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변했다고 해도 거기는 미세 지각들로 출렁이고 있다는 보는 것이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다시 우주는 그 안에서 발생해서 높은 정신 상태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세 지각 상태는 일종의 흐름이지 정지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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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렇게 우주는 달라져도 영혼은 이 우주 속에 항상 흘러 넘치는데, 이것이 바로 신의 섭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라이프니츠의 주장이 사실 굉장히 심오하고 신비롭게까지 보인다는 것이다. (그냥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조금만 더하고 마치겠는데, 교재 17페이지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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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경우를 보면, 아주 어릴 때는 방금 봤던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어머니가 나가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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